그 날의 태백은 아름다웠다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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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떨결에 그 사람의 손에 이끌려 따라 내린
이미 해가 떨어져서 어두운 동해역 광장.
뭔가 분주하게 전화를 하는 그 사람을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었다
전화를 마친 그가 다정하게 말을 걸어왔다
[거짓말쟁이 동생. 숙소는 잡았어요?]
[네? 전 여기서 버스 타고 서울 올라갈려고]
[아까는 태백에서 올라간다더니]
[아 정말이예요, 태백에서 버스가 눈으로 취소되어서 어떻게든 서울로 갈려고 동해발 기차 탄거예요. 거짓말 아니예요 제가 왜 거짓말을 해요]
[알았어요. 한번 놀린거 가지고 너무 정색하지 마요. 미안해 지자나요. 그럼 빨리 터미널로 가보죠. 버스도 시간도 확인해야죠]
동해 버스 터미널까지 가는 택시 안에서 그 사람은 많은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나는 간간히 나를 쳐다보는 그 사람의 시건을 애써 외면하며
택시 창밖만을 바라보았다.
택시비를 내려는 그 사람을 마다하고 기어이 내가 요금을 지불했다.
그리고 도착한 터미널은 이미 마지막 버스까지 예약이 끝났고, 내일 오전 11시경 버스만이 남아 있었다.
[동생 어쩌지. 내일 아침에 가야겠네]
[….]
[숙소는 있어?]
[… 터미널 근처로 모텔 알아봐야죠]
[음 그러지 말고 이건 어때, 내가 근처에 잠잘때가 있어 거기서 자는건?]
[???]
놀란 눈으로 그 사람을 쳐다보다 말을 이었다
[아니예요, 괜찮아요]
[아니야 거짓말쟁이 동생. 부담갖지말고 같이 술이나 한잔 해줘요]
왜 일까.
거절을 했어야 정상적인 사고 였지만, 나도 모르게 그 사람의 호의를 받아 드렸고
그 사람이 말한 숙소로 향했다.
추암 해변앞에 있는 자그만한 민박집
들어갈때 부터 민박집 주인과 친분이 두터운지 정겹게 인사를 주고 받고 근황을 묻던 그 사람에게
70은 되보이던 주인으로 보이는 할머니는 자연스레 키를 넘겨 주었다.
방에 들어가자 마자 그 사람은 옷을 훌러덩 벗으며 가방에서 옷을 갈아입었다.
등산을 하느라 입었던 등산복을 벗고 아디다스 검은색 츄리닝으로 옷을 갈아입고서는
나에게도 자기 가방에서 츄리닝 하나를 꺼내주며 갈아 입으라고 권했다.
뭐가 부끄러운지 그 사람의 시선을 피해 뒤를 돌아서 옷을 갈아 입었고 그런 나에게 그는 다시
[이제 옷도 갈아입었고, 근처 식당에서 밥이나 먹고 오죠]
하더니, 내 의향과는 상관없이 다시금 나를 밖으로 끌고 나갔다.
[빨리 나와요, 여긴 시골이라 다들 일찍 문 닫아요 빨리]
그 사람의 알수 없는 이끌림에 끌려 도착한 칼수국집
하루 저녘을 마감하는 시끄러운 식당이였지만
뜨거운 장칼국수에 막걸리 한 주전자
간간히 서로의 잔에 막걸리를 채워주고
술을 마실때 마다 잔을 서로 부딪히고
아무말 없이 식사를 마쳤다
계산대에 앞에서 서 있던 우리에게
[각자 계산이신가요? 1인당 13500 원입니다]
라는 말에 우리는 그냥 아무말 없이 각자 계산을 했다.
가게에서 뽑아든 종이 커피잔을 마시며, 숙소로 천천히 걸어갔다.
숙소 앞에서 숙소로 가지 않고 어디론가 앞서서 걸어가는 그 사람을 따라 걸어갔다.
조용히 어두운 거리를 지나 작은 기차 굴다리는 지나서
추암이 보이는 곳에 그 사람이 앉았다.
말 없이 그 사람은 담배에 불을 붙여 피기 시작했다.
나도 조용히 그 사람의 옆자리에 앉았다.
손에는 빈 종이 커피잔이 들려 있었고, 그냥 빈 커피잔을 만지작 거렸다.
그러다 조용히 들려오는 파도 소리 바다 소리에를 들으며 멍하니 앞의 풍경을 바라 보았다.
파도치는 기암 절벽와 가늘게 위태롭게 서 있는 추암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져 갔다.
파도 소리를 음악 삼아 가만히 눈을 감았다.
다 떠나 보낸지 알았던 기억들이 하나 둘 씩 다시금 기억나기 시작했다.
그 사람의 블러그를 처음 발견하고
그사람의 블러그를 매일 매일 찾아가서 글과 사진을 탐닉하고
그 사람이 좋아하는 음악을 따라 듣고
그 사람이 좋아하는 책을 따로 읽고
그 사람이 좋아하는 그림을 따라 보고
그 사람이 다녔던 여행지를 따라 가고
그러다가 그 사람에게 고백을 하고
그 사람과 같이 음악을 듣고
그 사람과 같이 책을 읽고
그 사람과 전시회를 같이 가고
그 사람과 100일 기념 여행을 하고
그 사람과 사랑을 나누고
그 사람의 다음 여행을 같이 가자는 약속을 하고
그리고 헤어지고
이제서야 보이는 내 이기심
이제서야 보이는 내 편견
이제서야 보이는 내 자격지심
이제서야 보이는 그 사람의 아픔
이제서야 보이는 그 사람의 인내심
이제서야 보이는 그 사람의 사랑 과 진심
깊은 한 숨을 쉬며 천천히 눈을 뜨고 앞을 보았다.
아직은 어두워서 아무것도 안 보이는 해변의 앞
어두운 해변에 조금식 보이는 기암 절벽과 추암의 모습
파도소리, 멀리서 보이는 선박의 불빛
차가운 바닷 바람
그러도 보니 얼굴에 매섭게 느껴지는 바람만 느껴질 뿐이였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 몸을 가려주고 있는 작은 담요 하나
주변을 살펴보니
그 사람이 자리에 없었다. 내 손에 들려있던 빈 커피 잔엔 작은 종이 하나가 들어 있었다.
숙소로 가는 작은 약도와 그 사람의 전화 번호
[천천히 와요, 길 못찾을꺼 같으면 연락주세요]
담요를 더욱 꼭 끌어 안으며 이제는 그 사람이 아닌 다른 그 사람을 생각을 했다.
작은 담요에 남아 있는 얇은 담배향을 맞으며
이상하게 그 사람을 닮은 그 사람을 생각을 했다.
나도 알수 없는 이 감정을 뭐라 해야 할지…..
시계를 보니 벌써 새벽 5시 반..
숙소를 들어가서 보니 그 사람은 방에 2 사람분의 이부자리를 펴고
안쪽의 자리를 비워두곤 굳이 문쪽의 자리에 자고 있었다.
조용히 안으로 가서 짐을 정리했다.
그리곤 그 사람의 가방앞에 접어 놓은 츄리닝과 종이 한장, 그리고 명함 한장을 남겼다.
[처음 보는 분에게 너무 큰 민폐를 드린거 같아요. 하지만 덕분에 고마웠고 덕분에 감사합니다.
언제 기회되면 꼭 감사의 말 전하고 싶습니다]
그 사람이 준 작은 무릎 담요를 어깨에 두르고, 가방을 한 쪽 어깨에 들쳐메고
그렇게 그 겨울의 태백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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