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일만큼 사랑했기에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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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일주일째 입을 꾹 다물고 무표정한 얼굴로 시선을 피하는 나를 그는 말 그대로 좌불안석, 내 눈치를 보느라 절절매는 것이 느껴졌어.
하지만, 그 녀석은 내가 싫어하는 한가지, 꼭 그 한가지를 고치지 못했어. 아무리 습관이라고 하더라도, 내가 그렇게 위협에, 애원에..... 또 그가 그런 행동을 하는 순간부터 하루 종일 제발 그런짓 다신 하지 말라고 들들볶아 댔지만 그는 바뀌지 않더라구.
이정도면 골초가 담배를 끊고 뼈속까지 할렐루야를 외치는 모태신앙 광신자도 부처님에게 불공을 드릴정도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하지만 그는 여전히 끝내 내가 그렇게 혐오하는 버릇을 고치지 못하더군.
“정말 미안해.....정말 다신 절대 지하철에서 다리 안꼬고 앉을게...응? 제발....”
출근 준비하느라 바쁜 와중에서도 아직 조금 여유있는 내가 슬로우모션으로 국물을 떠먹고 있는 식탁의 옆의자에 앉아서 그는 두 손을 모으고 정말 애원하듯이 애처로운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았어.
나는 여전히 그를 무시하고 그가 끓여 내온 우거지 국을 느릿느릿 떠먹고 있었지.
“정말 다신 안 그래.” 그가 내 무릎위에 얹혀진 왼손을 꼭 잡았어.
“내가 다시 지하철에서 다리 꼬고 앉으면 사람새끼가 아니라 개, 돼지새끼다.”
그가 내 손을 잡은 채로 내 허벅지를 슬며시 비벼댔어.
“이번 한번만.. 으응?” 그가 머리를 나와 식탁 사이로 들이밀고는 슈렉에 나오는 귀여운 고양이만이 할 수 있는 그런 깜찍하고 애처로운 표정으로 나의 여전히 무표정하고 굳은 얼굴을 올려다보았어.
“응? 응? 응? 제발...”
속으로는 그 귀여운 녀석을 품에 안고 회사고 뭐고 침대로 끌고 가서 눕히고는 끈적거리는 내 입술로 그의 온 몸을 핥아버리고 싶었어. 하지만, 여전히 내 머릿속에는 또 다른 그의 모습, 지하철에서 옆 사람의 불편한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자기 편하고자 다리를 꼬고 심드렁하게 앉아있는 모습이 겹쳐 보이더라구.
나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수저를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어.
양치질을 하려고 칫솔에 치약을 짜는 동안에도 그는 화장실 문가에 서서 슬며시 핸드폰을 열어 시간을 확인하면서도 나의 눈치를 살피기에 바빴어.
“그럼 만일 다음번에 내가 또 다시 지하철에서 다리를 꼬고 앉으면...” 갑자기 그가 무슨 대단한 결심이라도 한 듯 목소리의 톤이 바뀌면서 커졌어.
“내가 그냥 내 다리를 확 분질러버릴게.”
나는 고개를 돌려 그를 한번 흘끗 본 후에, ‘흥’ 하고 콧방귀를 뀌는 시늉을 슬며시 해 보였어.
“아니. 그러면...” 그가 그런 나를 향해서 손사래를 한번 치더니 다시 입을 열더군.
“니가 내 다리 부러뜨려버려.”
“뭐?” 내가 입안에 있던 치약거품을 싱크대 속으로 내 뱉고는 그에게 얼굴을 돌렸어.
“농담 아니고...” 그가 두 눈을 똥그랗게 뜨고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계속하더군.
“나, 너 없이 못살거든. 근데 너가 이렇게 나에게 화가 난 상태로 계속 지내는 것도 못버티겠어.” 나는 멀뚱하게 그를 바라보았어.
“나, 진짜 이제는 지하철에서 앉아서 다리 꼬지 않을게.” 그가 자신의 말을 확신하듯이 고개를 끄덕해보였어.
“만약에 정말로 내가 다시 한번 다리를 꼬면.... 니가 내 다리 박살내버려.” 무슨 말도 안되는 걸 얘기하고 있냐는 나의 표정에도 그는 짐짓 아주 심각한 표정으로 나를 빤히 바라보았어.
“다리 하나 없다고 죽는 건 아니잖아. 근데 난 너 없으면 안돼.”
그를 만난지 일년이 넘어가고 있었어. 햇수로는 이제 삼년이 되는 것이지만 말이야. 그렇게 그는 올해의 결심을 ‘지하철에서 앉아 있을 때 절대로 다리를 꼬지 않는다’ 라는 것으로 삼았어.
하지만 아무리 그가 그렇게 다짐을 해 보여도 나는 그를 신뢰하지 않았어. 그는 나를 만난 후 일년이 넘는 기간동안 지하철을 함께 셀수 없이 많이 이용하는 동안에 잊지도 않고 꼬박꼬박 다리를 꼬았어. 그의 다리는 아주 정확한 백프로 전자동이었어.
어떻게 그렇게 지하철에만 앉기만 하면 자동으로 왼쪽다리가 오른쪽 다리 무릎 위로 올라가는지....
나는 그에게 다른 것은 어떤 것 하나도 말을 꺼내지 않았어. 그가 나와의 약속을 어기고 술을 마시고 늦게 들어오던지, 가끔씩 변기에 큰일을 보고도 잊어버리고 물을 내리지 않던지, 신은 양말을 어디에 쑤*셔 박았는지 세탁기를 돌릴때마다 그의 양말과 숨바꼭질을 하던지... 나는 그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양말 한짝을 찾아 소파를 끌어내고 그 속에 박혀있는 한짝을 찾아낸 후에, 거실 바닥에 모로 누워서 티비에 눈을 고정한 채로 나에게 ‘미안,미안..’ 하면서 그가 마치 지나가는 말로 읊조릴 때에도 나는 그저 아빠미소를 지으면서 그의 옆에 쪼그리고 앉아서 그의 엉덩이를 토닥토탁해 주었을 뿐이야.
하지만 지하철에서 옆에 앉은 사람이 슬며시 불편한 표정을 지어보여도 아무 생각없이 자기 편한대로 다리를 꼬고 그가 앉아있는 것을 볼 때면 마음속 저 아래로부터 화가 끓기 시작해서 곧 머리끝까지 넘쳐 올랐어.
그것도 셀 수 없이 반복되다보니 나는 너무 지쳐가기 시작했어. 아마 그런 나에게 그도 지쳐가고 있었을거야. 그렇다고 그와 헤어진다거나 그런 생각을 한 것은 아니야. 그가 말한 것처럼 나도 그 없이는 결코 살수 없다는 것을 나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 흔한 유행가 가사처럼 나는 정말 그를 죽도록 사랑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의 그런 버릇과 나와의 그런 양립할 수 없는 사실 때문에 나는 지난 몇 달 동안 두통으로 시달렸어. 우울증도 생기고 꿈속에서까지 예전에 내가 어렸을 적에 지하철에서 내 옆에 앉았던 그 못된 아저씨도 보이기 시작했어.
자기가 구둣발끝으로 내 무릎을 치고도 오히려 올려다보는 나를 향해서 재수없다는, 뭘 쳐다보냐는 그런 싸가지 없던 그 나이 처먹은 아저씨의 얼굴을 보는 악몽 때문에 나는 잠도 제대로 잘 수 없었어. 차라리 꿈속에서 그 아저씨가 그렇게 나를 노려볼때 벌떡 일어나서 그 늙은 놈의 죽통을 갈기던지, 발로 짓이겨 놓는 그런 통쾌한 꿈을 연이어 꿀 수 있다면 좋으련만 꼭 그런 악몽은 그 늙은 작자가 오만한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는 것으로 끝이 났어.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그 작자와 내 연인인 그가 겹쳐 보이기 시작하면서 나는 소름이 돋기 시작해 버린거야.
아직도 추운 날씨가 계속되던 2월 중순에 그가 어느 날 나에게 웃으면서 말하더군. 자신의 다리 꼬는 습관은 이제 백프로 고쳐졌다고...
“정말이야?” 나는 일부러 미소를 짓는 척 하면서 식탁의 맞은편에 앉아 저녁을 먹는 그를 바라보았어.
“어, 진짜야.” 그가 확신에 찬 눈빛으로 나를 보고 웃더군.
하지만 난 그런 그를 결코 믿을 수가 없었어. 그래도 혹시나 하면서 커피를 끓이러 걸음을 옮기면서 식탁아래에 있는 그의 다리를 흘끗 보았어.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그의 왼쪽다리가 오른쪽 무릎 위에 가지런히 올려져 있더군. 그래도 난 목소리를 편하게 하고 그에게 말했어.
“다행이다. 그럼 이제 니 다리 부러뜨려 버리지 않아도 되겠네.”
그가 곤히 잠든 새벽, 또 다시 그 재수없는 늙은이가 지하철에서 구둣발로 내 무릎을 치는 꿈을 꾼 후에 나는 잠이 깨었어.
옆에서 새근거리면서 천사 처럼 자고 있는 그를 잠시 내려다 보았어.
그래, 난 결코 그를 잃을 수는 없었어. 그리고 그의 왼쪽다리가 무릎 아래부터 사라진다고 해도 전혀 상관이 없었어. 그래도 나는 그를 온전히 사랑할거니까.
그의 한쪽다리의 무릎 아래를 잃는 것이 그와 헤어져서 그를 잃게 되는 것보다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훨씬 나을테니까 말이야. 그리고 그도 나와 똑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는거야.
나는 슬며시 일어나서 밖으로 나왔어. 다용도실의 문을 열고 들어가서 한쪽에 세워져 있는 기타 커버를 벗겼어. 하지만 그 안에는 기타가 들어있는 것은 아니야.. 대신 그 안에는 내가 예전에 보이스카웃에서 장작패기 대회에서 우승하면서 받은 도끼가 들어있었어.
오랫동안 쓰지 않아서 녹이 슬어있더군.
나는 슬며시 그것을 꺼내서 날끝을 만져보았어. 그렇게 날끝이 녹이 슬고 뭉툭해서는 고통없이 단 한방으로 그 일을 끝내는 것은 어려울 것 같이 보이더군.
나는 도끼를 들고 숫돌을 찾아서 목욕탕에서 아침까지 정성스럽게 도끼날을 갈았어.
퇴근 시간, 일부러 나는 그가 이용하는 4호선으로 갈아타고 미리 혜화역에서 내렸어.
그의 회사는 종점에서 가까운 창동역 근처라서 그는 항상 자리를 잡고 앉아서 퇴근을 했어. 그의 퇴근시간도 항상 칼 같이 일정했고 그는 습관적으로 맨 뒤에서 두번째 칸, 그러니까 9번째 칸에서 두 번째 문으로 승차를 했어.
모든 것들을 머리속으로 계산 한 뒤에 그의 퇴근시간에 맞춰서 그에게 전화를 했어.
“오늘도 같은 시간에 퇴근하는거야?”
“어, 늘상 똑같지 뭐.” 오랜만에 퇴근시간에 맞추어서 전화하는 나에게 그는 뜻밖이라는 듯이, 아주 밝은 목소리로 반겨주었어.
“근데 어떻게 전화를 했네? 이 시간에 네 전화 받아본 적이 언제인지 가물가물 할 정돈데 말야.” 그가 그렇게 토를 달았어.
“너 맛있는 거 해서 먹이고 싶어서...” 나는 일부러 은근한 목소리로 대답했어.
“뭐 먹고 싶어?”
“음.....” 그가 잠시 생각하는 듯 말을 끌었어. “콩나물 국밥”
“그래 알았어.” 나는 마치 장을 보고 있는 것 같은 목소리로 대답을 했어. “재료 좀 얼른 준비해야겠네.”
혜화역에서 나는 그가 탄 열차가 오기를 기다리면서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하고 있었어.
그가 탄 열차가 올 시간이 다가오자 나의 심장이 조금씩 크게 뛰기 시작했어. 나는 한숨을 크게 내쉬면서 심호흡을 했어.
“그래, 고통없이 딱 한방에 끝내는 거야.” 나는 내 허리에 세워놓은 기타커버를 만져보았어.
그러는 사이에 마침내 그 열차가 혜화역으로 들어오더군.
나는 천천히 발을 옮겨서 열린 차량 안으로 들어갔어. 그리고 눈을 슬며시 감고 기도를 했어.
“하느님, 부처님, 알라님.. 제발 그가 다리를 꼬지 않고 앉아있기를 비나이다.” 그렇게 난 간절히 빌었어. 그리고 이번에 그가 다리를 꼬고 있지 않다면 나는 평생 그가 다리를 꼬지 않을 것이라고 믿겠다고 기도했어. 제발 그가 다리를 꼬지 않고 있다면.. 제발 그가 다리를 꼬지 않고 있다면...심장이 너무 크게 쿵쾅거려서 내 주변 사람들이 그 소리에 모두 놀랄듯했어. 긴장으로 손바닥에서 땀이 배어나오고 등에서는 식은땀이 강물처럼 흘러내리더군. 제발 이걸 사용하지 않게 해주세요. 가슴이 저려왔어. 어지러운 증세를 느끼면서 나는 오른손으로 기타커버를 잡았어.
순간 차라리 그가 이 열차를 타지 않기를 간절히 바랬어. 그러면 안전하게 그냥 집으로 돌아갈거라고 생각하면서 말야.
“제발..제발..제발...” 입으로 되뇌이면서 나는 그를 찾아 주변을 둘러보았어.
그러나 역시 그의 앉은 모습이 내 눈에 들어왔어.
뽀얀 얼굴에 피곤했던지 약간 고개를 앞으로 숙이고 끄덕거리면서 졸고 있었어.
나의 그런 모든 간절한 기도에도 불구하고 그의 왼쪽다리는 또다시 그의 오른쪽 무릎위에 올라가 있었어. 그리고 그의 발치에 서 있는 사람은 그의 들려진 왼쪽다리의 구둣발에 닿지 않기 위해서 한걸음 만큼의 공간을 비워둔 상태로 서있더군. 나는 사람들을 뚫고 걸음을 옮겨서 그의 앞쪽으로 걸어왔어.
그의 정면으로 비집고 들어오니 불쾌한 표정으로 그런 방해자를 돌아보던 주변 사람들이 나의 덩치와 우락부락한 얼굴에 눌려 슬그머니 피하더군.
나는 그를 조심스레 내려다 보았어. 천사같은 모습이었어. 내 품에 안겨서 쌔근거리면서 잠들던 바로 그 모습으로 그는 잠들어 있었어.
한참을 그렇게 사무치게 아리는 가슴을 누르면서 그를 내려보다가 나는 기타커버를 움켜쥐었어.
한방이면..... 딱 한방이면 그와 나의 사이에 있는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거였어. 그러면 그와의 영원한, 끝없는 사랑과 행복이 이어질 수 있는 거라는 생각이 다시 내 머릿속을 채우기 시작했어.
그래, 딱 한방이면....... 입안이 바싹 마르고 입술이 타들어가는 듯이 느껴졌어. 그리고 나는 천천히 침착하게 기타커버의 지퍼를 찾기 시작했어.
어두운 밤이 나를 에워싸고 있었어.
내가 어디로 향하는지 의식도 없이 나는 나의 의지를 모두 버린채 내 다리가 움직이는 대로 내 온몸을 내맡기고 있었어.
갈대숲이 내 앞을 가로 막았어.
나는 손에 들고 있던 기타 커버로 나를 가로막는 덤불을 툭툭 치면서 내가 지나갈 수 있는 길을 만들었어.
매서운 한밤중의 찬바람이 나의 얼굴과 목을 면도칼처럼 가르면서 스쳐갔어.
“누군가.... 제발.. 아무나..” 슬며시 내 두 눈에서 눈물이 맺혀 흘러내리기 시작했어.
“제발 저 좀 도와주세요....” 온몸에서 힘이 모두 빠져 나간 듯, 그렇게 나는 휘청거리면서 눈에 익은 물가를 걸어가고 있었어.
마치 나의 그런 애원에 대답이라도 온 듯이 주머니 속에 있는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어.
“대단한 것도 아닌데....” 목구멍 저 깊은 곳에서 누르기 힘든 고통스러운 덩어리 하나가 튀어 올라왔어. ‘정말 별것도 아닌데, 그까짓 다리 꼬고 앉는 것이 도대체 뭐라고....’ 목구멍에서 신음소리가 새어나왔어.
손을 들어 소매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냈어.
‘더 큰일로 주변사람들 괴롭히면서도 모두 다 잘살고 있는데....’ 뜨거운 눈물이 갑자기 밀물마냥 쏟아져 나와 나는 더 이상 걷지 못하고 무릎을 꿇고 넘어져 버렸어.
“그까짓 다리 꼬고 앉는게 무슨 큰 죄라고오!” 크게 악을 쓰고 나서 나는 길가에 여전히 쌓여있는 눈을 손으로 움켜 쥐었어. 손아귀 안에서 눈이 뿌드득 소리를 내었어. 내 양 손이 부르르 떨려왔어.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잠바 속의 주머니에 있는 핸드폰은 여전히 끊임없이 울리고 있었어.
“이런 내가 증오스러워... 정말 미안해. 정말 미안해....” 마치 그가 내 앞에 서 있기나 한 듯 무릎을 꿇고는 나는 그렇게 그에게 울면서 사과를 했어.
힘들게 일어서서 나는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어. 어쨌든, 나의 목적지에 다다라야만 했어. 그곳이 어디인지 내 자신도 알지 못하고 있었지만 말이야.
그와 낚시를 올때마다 같이 타던 배가 마치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그렇게 낮은 물결에 나른하게 흔들리고 있었어. 내게 고개를 끄덕이듯 말이야.
나는 마치 무의식의 존재에 끌리듯 다시 손에 움켜쥐고 있던 기타커버의 지퍼를 열어서 벗기고는 그 속에 숨어있던 도끼를 꺼내었어. 그리고 마치 그것이 지팡이라도 되는 양 나의 몸무게를 지탱하면서 조심스럽게 배 위에 올랐어.
주변은 무서울 정도로 차갑고 조용했어.
그 침묵 속에서 순간 딩동 하고 메시지가 왔다는 신호가 주머니에서 들리더군. 나는 천천히 손을 주머니 속에 넣어서 핸드폰을 꺼냈어.
‘어디길레 전화도 안받아? 콩나물국밥은 없는거야? 하긴 난 너만 있으면 되는데... 어서들어와 보고싶어.’
그의 메시지. 이 비현실적이고 몽롱한 세계에서 다시 현실로 끌고 가려고 나를 붙잡는 덩굴손 같이 느껴졌어.
나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주변을 돌아보았어.
그래 내가 속한 곳은 여기가 아니야. 나는 으레 이시간이면 그와 함께 우리 집에서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 둘만의 시간을 보내야 하는 때였어.
마치 블랙홀에 빨려들어 전혀 예측하지도 못했던 뜻밖의 세상으로 빨려들어온 듯 갑자기 완전히 낮설어진 어두운 주변을 다시한번 돌아보았어.
“제발 그에게 저를 돌려보내 주세요.” 목구멍속에서 내 목소리가 아닌 타인의 그것과 같은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어.
“제가 바라는 것은 이런게 아니예요.” 다시한번 뜨거운 눈물이 내 볼을 타고 흘러내렸어.
“그와 헤어지고 싶지 않아요. 제발 제자리로 절 돌려보내 주세요. 다른 사람들처럼요.” 나는 애원하듯 그렇게 하늘을 올려다보았어.
“영훈이가.....” 갑자기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내 입이 움직이기 시작했어.
“나 없이도 영훈이가 행복하게 해주세요.” 도대체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걸까. 도대체 나 없는 그가 행복할 수 있을까? 도대체 왜 내가 그의 곁을 떠나야만 하는 걸까.
“나를 이 세상에 보낸 신이 있다면......” 나의 입을 통해서 소름끼치게 두려운 말을 내뱉는 내 안의 또 다른 존재의 힘에 압도되어 있었어.
두려움에 떨면서 안간힘을 쓰기 시작했지만 마치 내 온몸이 단단한 밧줄로 묶여버린듯 숨쉬기도 힘들게 느껴지기 시작했어. 나는 절망에 빠져서 외치고 있었어. '제발 저를 보내주세요. 저는 살고 싶어요. 그의 곁으로 보내주세요. 그를 사랑해요.'
“나를 도와주실 수 없다면.... 제발....” 그러나 나의 입과 내 몸은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또 다른 존재에 의해서 조종되고 있었어.
“내가 떠난 다음에도 영훈이가 더 이상 상처받지 않도록 해주세요... 그가 나 없이도 행복하게 해주세요. 그게 내 소원이예요.”
나를 완전히 압도하고 있던 그 존재는 그렇게 나를 무시해 버리고 있었어.
“그를 사랑해요. 하느님.”
왜! 어째서 그런 사소한 일이 그와 나를 이렇게 갈라놓는 것일까. 어째서 그런 하찮은 일이 나를 이렇게 그로부터 멀리 보내버린 것일까.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내 입을 통해서 나불거리고 있는 이 존재는 어디서 생겨나온 것일까.
그는 강제로 나의 머리를 숙이게 하더니 물끄러미 내 손에 들린 도끼를 내려다 보게 만들었어.
처음부터 이 도끼는 그에게 사용할 것은 아니었어. 어떻게 내가 그에게 그런짓을 할 수가 있었겠어.
차라리 내가, 내가......
순간 내 눈 앞에 그의 모습이 떠올랐어.
“너를 사랑해. 미치듯이..... 죽도록....”
그에게 손을 뻗고 싶었어. 그의 볼을 어루만지고 그의 입술에 키스하고 싶었어.
어쩌다가 그런 하찮은 일이 이렇게 말도 안되는 현실을 만들어 버린걸까. 너 없는 나를 상상할 수 없듯이, 나 없는 너도 힘들텐데....
“제발 절 돌려보내 주세요.” 차가운 볼 위를 뜨거운 눈물이 다시 흘러내렸어.
“그를 사랑해요. 제발..... 절 그의 곁으로 돌려보내 주세요...”
하지만 운명의 신은 이미 나의 주사위를 던져 버린 듯했어. 그가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내 몸을 천천히 일으켰어.
작은 그 배가 슬며시 흔들리기 시작했어.
극도의 공포에 질려서 꽉 악문 이빨사이로 비명같은 신음소리가 흘러나왔어. 그렇게 끝끝내 버티려고 했지만 이미 나의 온몸을 통제하고 있는 그를 이길 수는 없었어.
부들거리는 내 두손이 마침내 도끼를 붙잡았어.
곧이어 그것은 마치 춤을 추듯이 허공을 가르고 내 머리위에서 밤하늘의 별빛사이로 희미한 빛을 내었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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