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심리학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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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로롱.
「173/90/45 평범 건장중년. 운동합니다.」
이 근처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사람이었다. 우선 빠르게 개인 프로필을 살핀다. 사진을 보니 안경을 쓰고 있긴 했지만, 전반적으로 얼굴은 그리 나쁘지 않다. 운동한다는 본인의 말과는 달리 프로필 상 운동하는 사람의 몸은 아닌 듯싶었지만, 어차피 어느 정도의 거짓말은 감안하고 만날 생각이었으니까. 만나보고 정 아니다 싶으면 사과하지, 뭐. 술 마셨는데도 괜찮으냐고 물어보니 상관없다는 답장이 온다. 그쪽에서는 내가 어지간히 마음에 들었나보다. 제안한 장소는 걸어서 가도 될 정도로 학교에서 가까운 곳. 망설임 없이 발걸음을 옮긴다.
저벅저벅.
보통 이런 번개 전에는 상대방에 대한 기대감과 불안감으로 떨려야 하는 게 맞는데... 정말 이상하게도 지금은 아무런 감흥이 없다. 술 마셔서 대범해진 건가 잠시 의심해보지만, 아무래도 그건 아닌 것 같다. 걸음이 별로 힘들지 않을 정도로, 이미 술기운은 아까보다 많이 가신 상태다. 얼마 걷지 않아 정했던 장소에 도착하자, 가로등 아래 실루엣 하나가 미리 나와 서 있다. ...실화인가. 애써 현실을 부정해보려 다시금 주위를 샅샅이 둘러봐도 사람이라고는 딱 저 사람 한 명 뿐이다. 아무리 다들 프로필 뻥튀기 한다지만 이건... 경우가 많이 심한데. 거의 다른 사람 수준이다. 사진 속 같은 안경을 끼고 나오지 않았다면, 아마 정말 이 사람이 맞을까 계속 믿지 못하며 의심했을 것이다. 아, 대체 내가 왜 그랬을까. 순간의 치기를 참지 못하고 이런 참사를 빚어낸 어리석은 내 행동이 못내 후회된다. 무시하고 돌아설까 하다가 저 사람이 계속 기다릴까봐, 그래도 최소한의 예의는 지키자는 마음에 가까이 다가가 말을 건넨다.
“안녕하세요.”
“어...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생각했던 거랑은... 많이 다르시네요.”
“그래요? 그쪽은 생각보다 더 좋으신데.”
당장 화를 내는 대신, 넌지시 왜 거짓말했냐고 책망하듯 눈치를 주며 돌려 말해본다. 그러나 이 사람이 어디 이런 경우가 한 두 번 이었겠는가. 표정 하나 흔들림 없이 느끼하고 음침하게 웃는 얼굴로 당당하게 대답한다. 후. 많이 뻔뻔한 사람이네. 하긴. 그러니까 그런 프로필을 떡하니 남겼겠지. 내 키에 한참 못 미치는 걸 보면 아마 키는 170cm가 채 안 될 테고. 운동은 무슨. 부실한 하체에 하필이면 또 딱 들러붙는 스키니 진을 입고 있어, 아무리 좋게 봐줘도 건장이란 말을 붙이기엔 턱없이 모자라 보인다. 그리고 화룡점정, 얼굴... 앱으로 보정한 건지, 각도의 마술인 건지 분명 사진으로 봤을 땐 나름 괜찮았는데, 실제로 보니 마치 불독 견종과 같이 볼과 턱살이 축 늘어져있는 모습. 이 정도면 굳이 벗겨보지 않아도 대략 사이즈가 나온다. 아마 가슴과 배만 튀어나와 살이 축 늘어진 전형적인 ET형 몸매겠지.
“죄송합니다만, 제 스타일 하고는 많이 다르시거든요. 그럼 좋은 분 만나시길.”
덥썩.
“?!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아응. 난 그쪽 너무 맘에 드는데. 받기만이라도 하구 가요, 응?”
확!
그나마 나름 감정 참아가며 끝까지 예의 있게 대하려고 했건만. 말이 전혀 안 통하는 상대다. 돌아서려는 것마저 질척거리며 붙잡는 불쾌한 손을 뿌리치고, 왔던 길을 있는 힘껏 다시 뛰어 돌아간다. 지금의 이 우스꽝스러운 상황이 너무 열 받고 수치스러워서 가슴이 터져버릴 것 같다. 분노의 끝은 곧 슬픔이라 했던가. 뛰어온 덕에 순식간에 다시 학교 후문에 도착하긴 했지만, 밀려드는 공허함과 우울함에 그 자리에 굳은 채 더 이상 집으로 가는 발걸음을 떼지 못 한다.
“후우, 후우...”
지금 내 스스로의 모습이 너무 비참해 보이는 나머지 코끝이 찡해진다. 울음을 참아보려 아랫입술을 꽉 물어본다. 난 계속 이렇게 힘들게 살아가야만 할까.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하게 사랑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고 싶고, 행복 하고 싶은 것뿐인데. 한 걸음, 하루하루가 왜 늘 고난의 연속일까. 내가 뭘 그리 잘못했다고. 참던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리던 바로 그 때.
“현진오 학생?"
“...?!”
최악이다. 이 사람을 여기서 이렇게 마주친다고? 어느새 다가왔는지 거짓말처럼... 그가 내 옆에 떡 하니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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