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아라 황석호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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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석호의 아들이 찾아왔다. 마지막으로 얼굴을 본 지 햇수로 6년 만이었다.


  “영오야, 연락도 없이....”


  내가 퇴근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영오는 아파트 철문 앞에 쭈그려 앉아 있었다. 나를 기다린 것이 분명했다. 2월 말이라도 해도 여전히 찬바람이 쌩쌩 부는 날이었으니 한눈에 봐도 추워 보였다. 얼마나 기다린 것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으나 볼이 빨갛게 얼어 있는 것으로 보아 제법 오래 기다렸지 싶었다. 혼자 사는 집에 일찍 들어가 봐야 TV밖에 볼 것이 없었기에 하루 동안 쌓인 스트레스도 풀 겸 노래방에 들렀다가 온 것이 화근이었다. 퇴근을 하고 집에 바로 왔어야 했다는 후회가 밀려왔다. 괜히 영오에게 미안했다.


  “아저씨 안녕하....”


  “인사는 이따가 하고 추운데 얼른 들어가자.”


  나는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구멍에 넣고 돌렸다. 딸깍. 자물쇠가 풀리자마자 문을 열고 영오를 먼저 들여보냈다. 영오의 옆에 있던 캐리어는 내가 들고 들어갔다. 영오는 매고 있던 백팩을 들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놓을 자리를 찾는 모양이었다. 나는 그것도 받아 캐리어 옆에 놓았다.


  “얼마나 기다렸어? 많이 추웠지? 저녁은 먹었어?”


  영오는 물음에 대답을 않고 나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나도 대답을 기다리며 영오를 바라보다 한꺼번에 질문을 너무 많이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영오는 내 질문에 대한 답이 아닌 뜬금없는 말을 했다.


  “여전하시네요.”


  “뭐가?”


  “하나도 안 변하셨다구요. 저는 많이 변했는데, 바로 알아보셔서 신기하고.... 고맙습니다.”


  “변하긴 뭐가 변해. 키랑 덩치만 커졌지 얼굴은 그대로....”


  말을 끝맺기 전에 웃음이 먼저 터져 나왔다. 영오는 자기 아빠를 더 많이 닮아 있었다. 옛날 석호가 보여줬던 고등학교 시절의 사진이 떠올랐다.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던 사진 속 석호의 모습이 그대로 재현된 것 같아 저절로 웃음이 터진 것이었다.


  “왜 웃으세요?”


  “아냐, 그냥.... 반가워서.... 보일러 빵빵하게 틀긴 했는데 너 많이 춥겠다. 따뜻한 물로 샤워하면서 몸 좀 녹여. 그동안 집도 따뜻해질 거야.”


  “저 별로 추위 안 타요.”


  “볼때기가 빨간 게 얼었는 걸. 빨리 샤워해.”


  억지로 등을 떠밀어 영오를 욕실로 밀어 넣고 설렁탕을 배달시켰다. 그리고 널브러져 있는 집을 대충 치웠다. 식탁에 앉아 담배를 하나 피워 물었을 때 영오가 가져온 캐리어가 눈에 다시 띄었다. 24인치가 넘어 보이는 크기의 캐리어는 하루 이틀 여행을 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짧은 여행이라고 쳐도 영오가 혼자 여행을 떠날 나이는 아니었기에 영오에게 어울리지 않는 물건이었다.

  영오의 나이가 정확히 몇 살인지 가물가물했다. 손가락을 꼽아 계산을 했다. 열여덟. 이제 3월이 되면 고등학교 2학년이 되는 나이였다. 성인으로 취급받는 스무 살이 되려면 아직 2년이나 남았고, 곧 새 학년 새 학기가 시작될 텐데 살던 집을 떠나는 것은 무리가 있었다. 백번 양보해서 봄방학을 이용해 여행을 떠났다 하더라도 내가 사는 이 집이 여행지가 될 수는 없었다.


  영오는 욕실에 들어간 모습 그대로 다시 나왔다. 나도 씻어야 했으니 바로 욕실에 들어가 간단히 세수를 하고 발만 씻고 나왔다. 소파도 없는 작은 집이었기에 따로 앉을 곳도 없었는지 영오는 내가 앉아 있던 식탁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 내가 자리에 앉자마자 습관적으로 담뱃갑을 드는 것을 보고 영오가 말을 던졌다.


  “이것도 여전하시네요.”


  나는 꺼냈던 담배를 다시 집어넣었다. 영오와 눈을 맞추고 말을 하려는 순간 영오의 입에서 먼저 말이 터져 나왔다. 내가 사는 곳에 온 목적이 드러나는 말이었다.


  “저 재워 주세요.”


  나는 슬며시 웃고는 다시 담배를 꺼내어 피워 물었다. 연기 한 모금을 내뿜고 다소 심드렁하게 말했다.


  “그래. 옛날처럼 편하게 자고 가.”


  “오늘 하루만이 아니구요....”


  “내일도 자고 가.”


  “그게.... 오래 자고 갈게요.”


  “얼마나 오래? 곧 봄방학도 끝나잖아. 학교 가야 되지 않아?”


  “음.... 2년 동안 자고 갈게요. 학교는 여기서 다녀도 되구요.”


  코딱지 만한 아파트지만 방이 세 개였으니 재울 공간은 얼마든지 있었다. 하지만 이틀, 아니 고등학생이 2주도 아니고 2년은 너무 길었다. 나는 지난 6년 동안 영오가 어떻게 살았는지 아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아는 것이라곤 6년 전, 영오를 마지막으로 보던 때 영오가 석호의 누나 그러니까 영오의 고모네 집에 들어간다는 것뿐이었다. 그 후로 단 한 번도 만난 적은 물론이고 연락도 하지 않고 지냈으니 내가 아는 것이 없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아저씨....”


  “응?”


  “2년 동안 저 키워 주세요.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만요.”


  당돌한 말이었지만 나는 영오에게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 물어봐야 소용이 없는 일이었다. 2년이나 같이 살아야 하는 사람을 고르는 데에 엄청난 고민을 했을 것이 분명했다. 영오가 2년 동안 자신을 키워줄 사람으로 나를 선택했고, 내가 내치지 않을 것으로 믿었기에 찾아왔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그 사람이 왜 나여야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러니 이유를 물을 필요가 없었다.


  “그래.”


  영오의 얼굴에 웃음이 피어올랐다.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 같기도 했다.


  “짐 정리는 내일 하고 편하게 옷만 갈아입고 와.”


  “넵.”


  영오는 캐리어와 백팩을 욕실 옆 작은방에 가져다 놓고 티셔츠와 추리닝 바지 바람으로 나왔다. 어릴 때 여러 번 이 집에서 자고 간 적이 있었으니 내가 따로 말을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행동했다.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영오가 약간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어? 올 사람 있어요?”


  “아니, 내가 배달시켰어.”


  매일 혼자서만 먹던 밥을 영오와 함께 먹으니 나로서도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밥을 제대로 먹고 다니기나 한 것인지 영오는 설렁탕에 딸려 온 밥 한 공기를 비우고, 남아 있던 찬밥까지 모두 말아 먹었다. 내가 시키는 대로 빈그릇을 문 밖에 내놓고 돌아온 영오는 내가 담배를 피우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입맛을 다셨다. 뻔했다. 유전자는 못 속이는 법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사진 속 석호도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었다.


  “피우고 싶음 피워.”


  내가 담뱃갑을 슬쩍 밀어주자 영오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제꺼 피울게요. 디플은 가래 끓어요.”


  영오가 방에 들어가 가지고 나온 담배는 던힐 1mg 이었다.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꽤나 익숙해 보였다. 게다가 이것도 자기 아빠를 닮아 있었다. 태어날 때부터 아빠가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보며 자랐으니 그럴 만도 했다.


  “언제부터?”


  “2년 좀 안 됐어요.”


  “이거 어디서 샀어?”


  “요 앞 편의점에서요.”


  “나도 거기서 사는데.... 아저씨한테 한 마디 해야겠네.”


  “무슨 말요?”


  “학생한테 담배 팔았다고, 신고한다고.”


  “아무도 절 학생으로 안 봐요. 교복 안 입으면 버스 카드 찍을 때 기사 아저씨가 뭐라고 하는데....”


  “암튼 앞으로 담배 사지마. 내가 신고해서 편의점 아저씨 밥줄 끊기게 하지 말라고.... 내가 사다줄 테니까.”


  “그래두.... 아저씨를 담배셔틀 시킬 수는 없잖아요.”


  “까짓거 담배셔틀 하지 뭐. 담뱃값도 만만치 않을 텐데.... 너 키워주는 데에 담배도 포함. 됐지?”


  “네.”


  “대신 약속해. 학교에선 안 피우는 걸루. 아빠처럼 학교에서 피우다가 걸려서 징계 당하지 말라는 얘기야.”


  “아빠가 그랬어요?”


  “그랬다더라. 그나저나 너 학교는 어디야?”


  “XX고등학교요.”


  “헐~ 아빠랑 같은 학교네? 그럼 여기서 너무 멀잖아. 전학 가야 되는 거 아냐?”


  “고등학생이 무슨 전학요. 제가 알아서 할게요. 먹이고 재워만 주세요.”


  그렇게 영오와의 동거가 시작되었다. 내가 왜 나를 선택했느냐고 묻지 않았듯이 영오도 그 이유를 말하지 않았다. 나와 연락이 끊어졌던 6년 동안의 일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무척이나 궁금했다. 아직 어린 나이인 영오가 지금까지 살던 집을 떠나 나에게 온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분명히 우여곡절이 있을 터였다. 하지만 나는 궁금증을 억누르기로 했다. 때가 되면 내가 묻지 않아도 영오가 먼저 말을 할 것이라 여겼다. 말을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상관하지 않고 절대로 내가 먼저 묻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다짐을 했다.


  나와 함께 살게 된 황영오의 아빠 황석호는 나의 절친, 아니 내가 유일하게 사랑한 사람이었다. 그 사실을 나만 알고 석호는 알 수가 없었을 테니 백퍼센트 짝사랑인 셈이었다.

  나의 가장 친한 친구 황석호. 내가 재수를 하고 들어간 대학교 학생회관 동아리 방에서 나는 석호를 처음 만났다. 하지만 이것은 석호의 기억일 뿐....


  5월의 싱그러운 햇살이 내려오던 축제 기간의 어느 날, 야외 가설무대에서 ‘크게 라디오를 켜고’, ‘비와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던 학교 밴드의 공연이 있었다. 대운동장에서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지던 노랫소리에 정신이 나가 버린 나는 학과 주점에서 설거지를 하던 것을 내팽개치고 무대 앞으로 달려갔다. 노래를 부르는 주인공을 애써 찾을 것도 없이 한눈에 들어왔다. 빨간 기타를 매고 ‘사랑해’를 수도 없이 외치던 보컬이 바로 그 주인공, 석호였다.


  나는 대학교 새내기 시절, 내 눈으로 처음 석호를 보았던 1990년의 봄을 아직 기억한다.




-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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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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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됩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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