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아라 황석호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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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호기심과 웃음기가 가득했던 선생님의 표정이 편지를 읽는 동안 웃음기는 완전히 사라지고, 흙빛으로 변했다. 편지지를 쥐고 있는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러다 선생님의 손이 아래로 툭 떨어졌다. 바로 앞에 서 있던 나를 바라보는 것 같은데, 눈에 초점이 없었다. 그러다 고개가 툭 떨어졌다. 나도 고개를 숙여 편지를 봤다. 단정한 글씨체가 눈에 들어왔다. 선생님이 공책을 보며 늘 칭찬한 내 글씨와 비슷했다.

  편지는 그리 길지 않았다. 그런데 그 내용이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것이었다. 구구절절한 말도 없었다. 다른 좋은 사람이 생겼으니 선생님도 다른 좋은 사람을 만나라는 간단한 내용이었다. 형규 형이 선생님에게 이별을 고하는 편지였고, 그러니까 선생님은 형규 형에게 차인 것이었다.


  갑작스럽게 이별을 당한 선생님의 마음은 내가 어렸어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어렸기 때문에 선생님을 위로할 수 있는 방법은 알지 못했다. 그래서 그저 선생님과 똑같이 고개를 숙이고 편지만 쳐다봤다.

  시간이 지날수록 단정한 글씨가 점점 사라져 갔다. 너무나 단정해서, 또박또박 눌러 쓴 흔적이 너무나 선명해서 오히려 정이 떨어지던 글씨가 모양을 점점 잃어갔다. 한 방울씩 떨어지는 물방울에 잉크가 번져 갔고, 물방울은 파란색 잉크를 머금고 약간 경사진 곳으로 흘러내렸다. 물방울은 편지지 위에 그치지 않고 떨어져 글씨를 하나씩 지워가다, 편지의 맨 끝줄에 적혀 있던 ‘형규’마저 흘러내리는 물방울에 마지막으로 글씨가 번지자 선생님은 형규 형을 부르며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나도 덩달아 울었다. 선생님이 기분이 좋으면 나도 그랬듯이 선생님이 우니까 나도 괜히 눈물이 났다. 선생님이 울먹이는 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영기야, 울지마.... 흑흑흑.... 니가 왜 울어.... 흑흑흑.... 남자는 우는 거 아냐.... 흑흑흑.... 영기야~~~~”


  선생님은 나를 끌어안고 내 등을 토닥이며 울지 말라고 하면서 자기는 나보다 더 많이 울었다. 흐르는 눈물에 내 몸이 젖을 정도로 많이 울었다. 나도 선생님의 육중한 몸을 안고 작은 손으로 등을 토닥였다. 그래도 선생님은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선생님이 울음을 그쳤을 때는 해가 지고도 한참이 지나 어둠이 깔리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나는 교실을 나갈 채비를 하는데, 선생님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나는 담뱃갑에서 담배 한 개피를 꺼내어 선생님의 입에 물리고 성냥을 그어 담배 끝에 갖다 댔다. 콧바람에 금세 꺼져 버려서 다시 성냥을 그어 가져갔을 때에야 겨우 담배에 불이 붙었다. 선생님은 길게 한숨을 쉬듯 담배 연기를 뿜어냈다.


  “영기야.... 나 이제 어떻게 사니....”


  어린 나에게 너무나 어려운 질문이었다. 어른이 된 지금의 나도 대답하기 힘든 질문을 선생님은 그때 겨우 5학년이던 나에게 하고 있었다.


  “밥 많이 먹으면서요.”


  선생님은 무연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다 또 한숨 같은 담배 연기를 뿜어냈다. 선생님은 담배가 다 타들어갈 때까지 계속 담배를 물고 있었다. 나는 선생님의 입에서 담배를 빼내어 비벼 끄고는 선생님의 손을 잡아 끌었다. 선생님이 버티고 있으면 내 힘으로 감당을 할 수 없었겠지만 다행히 선생님은 순순히 일어나 나에게 끌려왔다. 나는 선생님을 끌고 운동장을 가로질러 학교를 나왔다. 그렇게 계속 집을 향해 걷는데, 선생님이 멈춰 섰다. 잡아 당겨도 딸려오지 않았다. 선생님이 멈춰 선 곳은 중국집이었다. 반대로 선생님이 나를 잡아 끌었다. 그리고 중국집으로 들어갔다.

  짜장면 곱빼기와 보통이 탁자 위에 놓이고, 선생님은 젓가락으로 보통을 비볐다. 나도 선생님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곱빼기 그릇을 당겨 열심히 비볐으나 면이 꼬여 잘 비벼지지 않았다. 선생님은 보통 그릇을 나에게 밀고, 곱빼기를 가져갔다. 그리고 다 비벼지지도 않은 짜장면을 이리저리 휘저어 비벼가면서 후루룩 들이마시듯 먹었다. 훗날 내가 ‘밥만 잘 먹더라’라는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 가슴이 아프면서도 한 편으로 슬쩍 웃었던 것이 바로 선생님이 이날 짜장면 곱빼기를 먹는 장면이 떠올라서였다.


https://youtu.be/nwsmwsJCLNA

옴므 - 밥만 잘 먹더라


    중국집에서 나온 선생님과 나는 손을 잡고 나란히 걸었다. 선생님 집까지 함께 걸어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선생님은 우리집으로 가는 골목 입구에서 나에게 먼저 가라고 우겼다. 사회적 관계와 나이 차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선생님에게 인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 날은 광복절이자 토요일이었으므로 나는 해질 무렵 목욕 도구를 챙겨 선생님 집으로 향했다. 알루미늄 문을 두드리고 선생님을 불렀다. 아무 반응이 없었다. 살짝 문을 당겨 봤다. 쉽게 열렸다. 안으로 들어가 방문을 두드렸다. 역시 반응이 없었다. 미닫이문을 조심스레 밀었다. 부드럽게 열렸다. 방바닥에 소주병이 몇 개 널브러져 있고, 선생님은 벽에 기댄 모습으로 고개를 꺾고 잠들어 있었다. 한 손엔 반쯤 남은 소주병을 꼭 쥔 채였다.

  나는 널브러진 소주병을 한 쪽 벽에 가지런히 놓고, 손에 쥐고 있는 소주병을 빼냈다. 인기척에 놀랐는지 선생님은 잠에서 깨어 나를 쳐다봤다. 나는 조용한 목소리로 선생님을 불렀다.


  “선생님....”


  “가~!”


  선생님은 소리치듯 한 마디를 던지고 베개를 당겨 나를 등지고 누웠다. 예상치 못한 선생님의 반응에 나도 놀라 한참을 그 자리에 서서 가만히 있다가 조용히 방을 나와 문을 닫았다. 머리로는 선생님을 이해했다. 실연을 했고, 술에 취하고 잠에 취해 있어서 나에게 소리를 쳤다고. 그런데 가슴 한 켠이 아려왔다. 선생님 곁에 있어 주고 싶은 내 마음을 몰라주는 것 같아서였다.

  목욕을 하러 나왔으니 목욕을 한 흔적은 남겨야 했기에 나 혼자 목욕탕에 갔다. 때는 밀지 않고 그냥 목욕탕 의자에 앉아 선생님만 생각했다. 자꾸 선생님의 표정이 떠올랐다. 나라를 다시 찾아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면서 서로 얼.싸안고 기쁨을 표출했을 이날, 그래서 광복절이라 칭하고 기념을 하는 이날에 선생님은 나라를 잃은 것보다 더 상심한 표정으로 술에 취해 널브러져 있었다. 선생님처럼 내 입에서도 한숨이 절로 나왔다.


  며칠을 앓다가 보면 나아질 것이라 생각을 했는데, 선생님은 꽤나 심각해 보였다. 개학을 하고 나서도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머리에 쏙쏙 들어오게 잘 가르쳐 주는 것은 1학기 때와 똑같았지만 선생님은 분명히 달라져 있었다. 목소리에 힘이 없고, 잘 웃지도 않았다. 우리가 칠판에 적힌 것을 필기를 할 때, 예전 같으면 선생님은 교실을 돌아다니며 필기를 깔끔하게 잘 하는지 감시를 해야 하는데, 이제는 그저 창문 앞에서 밖을 바라보며 한숨만 쉬었다. 딱히 무엇을 보는 것 같지도 않았다. 눈에 초점이 없었다.

  더 이상 남지 말라는 말이 없었으므로 나는 청소가 끝나면 계속 남아서 선생님을 기다렸지만 선생님은 오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한 시간 정도는 남아서 혼자 바이엘을 연습했다. 그리고 목욕도 혼자 다녔다. 엄마는 내가 여전히 선생님과 목욕을 가는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모르는 것이 나을 것 같아 나는 말을 하지 않았다. 혼자 목욕을 하는 것은 너무 심심했다. 등도 밀지 못하고, 목욕 후에 늘 먹던 바나나 우유를 먹지 못하니 목욕을 하고도 한 것 같지가 않았다. 


  개학을 하고 일주일이 지나고, 이주일이 지났다.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하다 싶었다. 나도 선생님한테 버림받은 기분이 들어 하루하루가 힘들었다. 게다가 버림받은 사람한테 버림을 받은 셈이었으니 기분이 더욱 안 좋았다. 뭐라도 해야 했다. 선생님처럼 그냥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검사를 하는 일기장에 선생님이 보라고 구구절절이 내 마음을 표현했다. 평소에도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일기장에 적곤 했으니 딱 좋은 것이었다. 일기장을 걷어 선생님 책상 위에 쌓아두고, 검사가 끝나면 나눠 주는 것도 부반장인 내가 하는 일이었으므로 선생님이 아닌 다른 사람이 내 일기장을 볼 리는 만무했기에 정말 솔직하게 썼다. 맨 마지막에는 다시 선생님과 함께 남아서 노래를 부르고, 피아노를 치고 싶은 소망을 단도직입적으로 썼다. 그것이 추석을 며칠 앞둔 수요일 저녁이었고, 목요일에 다른 학생들의 일기장과 함께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다음날, 추석 연휴를 하루 앞둔 금요일이었다. 검사가 끝난 일기장을 모두 나눠주고, 나는 다른 학생들의 눈치를 보며 재빨리 맨 뒷장을 펼쳤다. 늘 검사가 끝난 일기장에는 파란색으로 선생님이 전하는 몇 마디가 남겨져 있었기에 그것을 보기 위함이었다. 딱 한 줄이 적혀 있었다.


  - 오늘 남아라.


  눈물이 날 것처럼 기뻤는데, 한 편으로는 짜증이 났다. 선생님이 교실로 오지 않은 것이었을 뿐, 나는 매일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청소가 끝나고, 반 친구들이 모두 떠난 교실에서 피아노 의자에 앉아 선생님을 기다렸다. 복도를 걸어오는 발자국 소리가 쿵쿵 들렸다. 선생님이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숫자를 거꾸로 세어 나갔다. 1을 외치고, 땡 소리를 하자마자 교실 문이 드르륵 열렸다. 나는 두 손을 모으고 선생님에게 가볍게 인사를 했다. 선생님도 고개를 까딱하며 내 인사를 받고 피아노 의자에 앉았다. 날씨가 제법 선선해졌으므로 선생님이 옷을 갈아입는 일은 없었다.


  “이리와 앉아.”


  나는 선생님의 다리 위에 올라앉았다.


  “어디까지 했더라....”


  나는 바이엘 교본을 넘겨 배우지 않은 곳을 펼쳤다.


  “그동안 다 까먹었겠네. 복습부터 하자.”


  새로운 진도를 나가지 않고, 이전의 것을 연습만 했으므로 나는 한 번도 틀리지 않고 또박또박 건반을 눌렀다. 선생님도 약간 감동을 하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내가 피아노를 치는 동안 선생님의 손은 내 사타구니가 아닌 피아노 의자에 가 있었다.


  “바로 새 번호 하면 되겠네.... 자, 이거는 중간에 조표도 바뀌고, 양손 교차도 해야 되고, 임시표도 붙어 있으니까 좀 힘들겠다. 이 부분에서 양손 교차가 일어나니까....”


  선생님은 친절하게 악보에 표시를 해가며 내가 주의해야 할 부분에 대해 설명했다. 그리고 겨드랑이 사이로 팔을 뻗어 먼저 시범을 보였다.


  “이제 니가 쳐봐.”


  내가 건반에 손을 올려놓으면서 자연스레 선생님의 손은 아래로 내려갔다. 이번에는 평소처럼 내 허벅지에 손이 멈췄다. 나는 손가락 번호에 신경을 쓰며 천천히 또박또박 건반을 눌렀다. 선생님도 내 박자에 맞춰 허벅지를 두드렸다. 내가 틀리지 않고 건반을 잘 누를 때까지 선생님은 계속 손 박자를 맞췄다. 그러다 내가 어느 정도 익숙해지자 박자를 멈추고 가만히 손을 얹고 있었다. 이제 꼬추를 만질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제법 흘러도 선생님은 가만히 손을 얹고만 있을 뿐 꼬추를 만지지 않았다. 괜히 마음이 불안해져서 손가락이 자꾸만 다른 건반을 눌렀다.


  “이게 참 어렵지?”


  어려운 건 사실이었지만 바이엘 악보는 시간을 들여 연습을 하면 쉽게 해결되는 문제였다. 정작 내가 어려운 것은 바로 선생님이었다. 달라진 모습에 적응이 되지 않았다. 선생님의 질문에 대답을 하는 대신 나도 질문을 던졌다.


  “선생님....”


  “응?”


  “꼬추 안 만지세요?”


  선생님은 아무 말이 없었다. 나는 선생님의 상처 받은 마음을 풀어주고 싶었다. 선생님의 텅 빈 마음을 내가 채워주고 싶었다. 선생님과 피아노를 치고 노래를 부르는 일을 하지 않는 동안 비워진 내 마음도 채우고 싶었다. 나도 형규 형과 같은 남자였으므로 선생님의 마음을 채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일어서서 바지와 팬티를 내렸다. 그리고 피아노 뚜껑에 손을 짚고 엉덩이를 내밀었다. 내 행동의 의미를 선생님은 알 것이라 믿었다. 선생님이 내 엉덩이를 만지고, 더한 것도 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내 예상과는 달리 선생님의 목소리만 들렸다.


  “영기야, 피아노 그만 치자.... 오늘 내가 바쁜 일이 있어서....”


  말소리에 이어서 선생님이 일어서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피아노 뚜껑에 엎드린 채로 두 손에 얼굴을 묻었다.


  “영기야.... 옷 입어....”


  선생님이 내 엉덩이를 토닥이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차마 몸을 돌려 선생님을 볼 수가 없었다. 부끄럽고 처참했다. 그리고 선생님이 너무 야속했다. 나는 엉덩이를 흔들어 선생님의 손길을 뿌리쳤다.


  “그럼 나 먼저 간다....”


  선생님의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교실 문이 열렸다 닫히고, 발자국 소리가 점점 멀어져갔다. 그래도 나는 가만히 피아노 뚜껑 위에 엎드려 손에 얼굴을 묻고 있었다. 눈물이 났기 때문이었다. 선생님의 마음을 제대로 알 것 같았다. 함께 있고 싶은 사람이 곁을 떠난다는 건 저절로 눈물이 나고, 화도 나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가슴이 너무 아팠다.

  겨우 겨우 눈물을 멈추고 옷을 입었다. 운동장을 가로 질러가면 내가 혼자가 된 것이 너무 표가 날까봐 운동장 가장자리로 빙 돌아서 갔다. 어깨가 늘어지고, 내딛는 발걸음이 너무 무거웠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선생님은 나에게 말로도, 행동으로도 어린 내가 해답을 찾을 수 없는 질문을 던진 셈이었다.

  정말 어떻게 살아야 할지, 당장 선생님을 어떻게 볼지 막막했다.


  그래도 나는 새나라의 어린이라서 일찍 일어나기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었고, 새나라의 어린이답지 않게 늦잠을 잤다. 추석 연휴 첫날이라 학교에 갈 필요가 없었으니, 새나라의 어린이일 필요도 없었다.

  내가 잠에서 깨었을 때 우리집은 소란스러웠다. 명절이었으니 음식 장만을 하느라 온식구가 총동원되었기 때문이었다. 앞서도 얘기했지만 집에 여자가 많다는 것은 명절 음식을 만드는 데에도 장점이 있었다. 철저한 분업 시스템으로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나는 꼴에 남자였으므로 없는 것이 도와주는 것이라, 씻지도 않고 최대한 방해가 되지 않도록 TV 앞에 쭈그려 앉아서, 누나들이 이거 틀어라 저거 틀어라 할 때마다 채널을 돌리며 리모컨 역할을 충실히 했다.


  다들 명절이라 바쁜 터이기에 찾아올 사람은 전혀 없었는데, 대문 밖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너무나 익숙한 목소리였다. 마침 마당에 있던 엄마가 대문을 열고 손님을 맞이했다. 역시나 선생님이었다. 선생님 목소리가 방 안까지 들렸다.


  “벌써 시작하셨어요? 제가 너무 늦게 왔네요.”


  “아이고 선생님 뭐 하러 오셨어요?”


  “저도 좀 도와야 할 거 같아서....”


  “선생님 아니라도 일할 사람 많아요.... 선생님은 영기 데리고 목욕이나 가서 영기랑 놀다가 저녁에 오세요.”


  나는 엄마의 등에 떠밀려 목욕 가방을 챙겨들고 집에서 강제 추방을 당했다. 선생님이 집에 들러 목욕 도구를 챙기고, 목욕탕으로 갈 때까지 나는 선생님으로부터 한 걸음 뒤에 떨어져서 걸었다. 목욕탕엔 역시 명절이라 사람들이 많았다. 나는 선생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어색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선생님도 어색하기는 마찬가지인 듯 했다. 그래도 선생님이 어른이니까 어색함을 먼저 깼다.


  “어제 시장에서 어머니를 만났어. 나도 차례 지낼 음식 장만을 해야 하니까.... 어머니가 두 일 벌이지 말고 한 집에서 하자고 해서.... 어머니 덕분에 편하고 좋네....”


  선생님은 우리집에 찾아온 이유를 내가 묻지도 않았는데 먼저 보고를 했다. 선생님의 말을 통해 그 바쁜 일이라는 것이 명절 음식을 장만하기 위해 시장에 가는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는 얘기였다.


  “어제 내가 먼저 간 게.... 시장에서 장을 봐야 하니까....”


  이미 추론을 통해 알고 있는 내용을 선생님은 나에게 또 보고했다. 나는 보고가 필요 없다는 의미를 담아 짧게 말했다.


  “네.”


  그것으로 다시 침묵이 이어졌다. 등을 밀 때도 아무 말 없이 등을 돌려대는 것으로 의사를 표시했고, 다 밀면 등을 톡톡 치는 것으로 의사를 전달했다.

  목욕을 마치고 집에 돌아갈 때도 그랬다. 나는 한 걸음 뒤에 떨어져서 걸었다. 선생님 집과 우리집으로 가는 갈림길에서 선생님이 뒤를 돌아봤다.


  “영기야, 선생님 집에서 있다가 저녁 때 같이 가자.”


  선생님의 음식 장만도 해주는 엄마의 지엄한 명령이었으므로 선생님도 어길 수 없는 것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역시나 한 걸음 뒤에 떨어져서 걸었다. 선생님 방에 들어가서도 한 걸음 떨어진 곳에 앉았다. 이번에는 선생님 뒤가 아니라 앞이었다. 우리집에는 없는 컬러 TV를 보며 어색함을 달랬다. 등 뒤에서 담배 냄새가 났다. 연기가 나에게까지 다가와 내 코를 스치고 지나갔다.


  “콜록 콜록”


  연기가 매워 기침이 났다. 선생님이 황급히 내 뒤에 다가와 손으로 연기를 흐트렸다.


  “영기야 괜찮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내 의도와는 상관없이 나는 선생님의 다리 사이에 앉게 되었다. 선생님은 또 담배를 피웠다. 바로 내 머리 위에서 연기가 날아갔으므로 나는 연기로부터 안전지대에 있는 셈이라 기침이 나지 않았다. 선생님은 담배를 비벼 끄고 몇 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또 담배를 입에 물었다. 이건 좀 아니었다. 창문을 열어 놓았어도 이미 방 안은 담배 연기로 가득했다.


  “피지 마세요.”


  선생님은 내 앞으로 손을 뻗어 담배를 갑 안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나를 돌려 앉혀 내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고, 얼굴을 어루만졌다. 갑자기 울컥해서 눈물이 글썽해졌다.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선생님의 눈을 계속 쳐다보고 있으려니 눈이 아파서였는지, 엉덩이를 내밀고 있던 나를 혼자 교실에 남겨두고 가버린 선생님이 원망스러워서인지, 예전처럼 다시 밝은 웃음을 되찾은 선생님이 반가워서인지 글썽이던 눈물방울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울지마. 내가 남자는 우는 거 아니랬잖아.”


  선생님은 굵은 엄지손가락으로 내 눈물을 닦았다.


  “짜식.... 우니까 더 잘생겼네....”


  나는 선생님을 끌어안았다. 그리고 선생님의 입에 내 입술을 갖다 댔다. 나는 키스가 뭔지 그때 나이에도 이미 알고 있었으므로 선생님의 입에 혀를 집어넣었다.

  키스를 시작으로 나는 선생님과 섹스를 했다. 많은 사람들이 어린 내가 선생님이랑 섹스를 한 것을 두고, 선생님을 비난할 수도 있겠지만 선생님은 아무런 잘못이 없었다. 내가 원한 것이었다. 나는 선생님을 좋아했고, 그것은 선생님도 마찬가지였다. 서로 좋아하면 섹스를 하는 게 당연한 일이라는 걸 나는 그 나이에도 알고 있었다. 


  생애 첫 섹스를 한 나는 지쳐서 잠이 들었다. 내가 눈을 떴을 때 선생님은 내 옆에서 벽에 기대어 기타를 치고 있었다.


  “일어났어?”


  창문 밖은 조금 어둑했다.


  “지금 몇 시....”


  “8시 조금 안 됐어. 너무 잘 자서 안 깨웠는데.... 밤에 잠 안 올까봐 걱정이네.”


  “낮잠 많이 자도 잘 자요.”


  “배고프지? 밥 차려 올게.”


  선생님이 차려온 밥상은 명절 음식이었다. 한눈에 봐도 우리집 표 음식이었다. 밥을 먹고 옷을 주섬주섬 챙기는 나를 가만히 쳐다보다가 한 마디를 던졌다.


  “옷은 왜 입어?”


  “집에....”


  “씻지도 않고 왜 옷을 입어? 빨리 나가서 이 닦고 세수해.”


  내가 씻는 동안 선생님은 밥상을 치우고 설거지를 했다. 다 씻고 나서도 선생님은 내가 옷을 입지 못하게 했다.


  “여기서 나랑 자고 내일 아침에 같이 가자.”


  나는 선생님의 품에 안겨 옛날이야기를 들었다. 선생님이 살아온 이야기였다. 어린 나이였던 나에게 잘 와 닿지 않는 이야기여서 지금은 잘 기억도 나지 않는다. 전쟁, 석유파동, 화병 등등 지금까지 기억이 나는 단어들로 미루어보면 선생님의 부모님은 석유파동으로 사업이 망하고 화병으로 돌아가신 것 같다. 자식들도 뿔뿔이 흩어져 살고, 아들 중에 첫째인 선생님이 제사를 맡았다는 그런 이야기였다.


  “누나가 피아노를 배우는데 너무 부러운 거야. 그래서 나도 졸라서 같이 배웠지. 어른들이 남자가 그런 거 하면 꼬추 떨어진다고 못하게 했는데 막 떼를 썼어.... 꼬추 안 떨어지고 이렇게 잘 달려 있는데 말야. 하하하하.... 사범학교 가서도 계속 피아노 쳤고....”


  선생님은 자기가 처음 섹스를 하던 때의 일도 이야기했다. 나랑 똑같은 나이에, 나랑 똑같이 성인 남자가 그 상대였다.


  나는 선생님 품에 안겨 또 잠이 들었다. 선생님은 다음날 아직 어둑한 시간에 나를 깨워 목욕탕으로 데리고 갔다. 어제 갔는데 왜 또 가냐는 내 말에 차례를 지내기 위해 목욕재계를 해야 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목욕을 마치고 나와 함께 우리집에 온 선생님은 엄마에게 탕국과 여러 가지 나물을 받아들고 집으로 돌아갔다.




-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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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세한구성 대단한필력..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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