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 _ 두 번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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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제 _ 두 번째.
진혜인, 그는 지금 강부장의 집 문 앞에서 망설이고 있었다. 여길 들어가서 다시 한번 더 그걸 경험하게 된다면. 그는 그 자신도 알고 있었다. 들어가는 순간 돌이킬 수 없을 거라는 걸. 이제는 자신의 정체성이 완전히 달라지게 될 거라는 것을. 하지만 그런 변화들이 가져올 여파를 걱정하는 것보다, 그가 들어가기를 망설이는 이유는 단순 어린아이가 강렬하게 원하던 것을 손에 넣기 직전의 머뭇거림과 같은 이치다. 손에 넣기 직전의 긴장감과 상상들. 그것들을 자신도 모르게 즐기는 중이었다.
그 시작은 진혜인이 회사에 들어오고 3달째 되는 날, 강부장과 처음으로 회사 업무를 위해 사무실이 아닌 다른 곳으로 이동했을 때였다. 조금의 거리를 둔 체 엘리베이터에 탑승한 두 사람은 그다지 친한 사이는 아니었기에 별 말없이 자재창고로 이동 중이었다. 원래 보통 자재창고로 보내지는 직원들은 계약직 신입들 내지는 직급이 낮은 정직원들이 가게 되지만, 이번에는 중요한 경리자료와 관련된 물품을 가지러 가야 했기 때문에 강부장과 계약직 진혜인이 같이 이동하게 되었다.
창고 앞으로 도착한 두 사람은 안으로 들어가서 각자 맡은 물품들을 찾기 시작했다. 내부의 온도는 묘하게 더웠고, 천장의 전등은 아슬아슬하게 약한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한참을 물건을 찾고 있을 때였을까, 어느덧 강부장은 물건을 다 찾았는지 진혜인의 옆에 서 있었다. 진혜인은 깜짝 놀라서 옆을 돌아보았고 강부장과의 입술이 거의 맞닿을 뻔했다. 4cm의 거리가 둘 사이의 간격이었다. 서로 놀랐는지 둘은 그 상태로 굳어버렸고, 3초정도 멈춰 있었다.
진혜인은 그 때를 생생하게 기억한다. 놀란 토끼의 눈과 비슷하게 자기를 쳐다보는 그 3초의 정적동안 그는 강부장의 입술을 상세하게도 관찰하였다. 완전히 붉지는 않지만 붉은 톤을 지니고 있는 그의 입술에서는 전자담배 특유의 단내가 풍겨오고 있었다. 그 냄새가 아직도 기억난다. 두 사람은 3초가 흐른 뒤, 서로 뒷걸음을 치며 거리를 벌렸다. 그 순간에 맞닿은 손가락 끝의 온기가, 진혜인은 아직도 기억이 났다.
그 손가락 끝이 맞닿았을 때, 모든 감각이 거기에 집중이 되기라도 했는지 전기가 이는 듯한 착각까지 느꼈다. 심장이 살짝 철렁 가라앉는 기분. 그 감각이 기억난다.
그 때 이후로 두 사람은 자주 물건을 찾으러 창고로 내려갔다. 물론 진혜인의 의도가 아니었지만, 어쩐지 같이 다니게 되는 일이 많아졌다. 밥을 먹으러 갈 때도, 강부장이 출장으로 어딘가로 이동할 때도 진혜인이 동승하게 되었다. 점차 그 빈도가 많아졌고, 심지어 강부장이 야근할 때 진혜인이 남아야 되는 일도 잦아졌다.
그 때마다 두 사람은 친밀해져 갔다. 진혜인은 절대로 먼저 쉽게 다가가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강부장은 진혜인이 거리를 두려고 할 때마다 점점 더 가깝게 다가와서는 그가 뒤로 발을 뺄 수도 없게끔 만들었다. 마음이나 정신적인 얘기만이 아니라 육체적인 부분도 얘기하는 것이다.
점차 강부장의 스킨쉽이 과감해졌다. 처음에는 손가락이나 손톱 끝으로 진혜인의 몸을 조금씩 우연이라는 명목으로 닿게끔 만드는 것이었다. 그럴 때마다 진혜인의 모든 감각은 순식간에 손 끝으로 이동되어 전기적 자극과 같은 느낌을 맛보았고, 강부장을 미세하게 조금씩 의식하게 되었다.
우연이라는 명목으로 손가락 끝이 닿는 것. 그 다음으로 강부장은 친한 남자 동료들끼리는 원래 그렇지 않느냐는 듯 친밀하게 스킨쉽을 해왔다. 손바닥으로 팔이나 어깨를 살짝 치기, 한쪽 팔로 진혜인의 다른 쪽 어깨를 감싸기, 팔과 어깨로 살짝 밀치기 등등. 고등학교 때 남자들이 서로 치대면서 놀듯이 장난을 걸어왔다. 물론 선은 지키면서. 일과 잡담, 업무와 장난의 경계를 넘지 않으면서 그에게 점점 다가왔다. 진혜인은 솔직히 조금 당혹스럽긴 했다. ‘왜 이러지?’ 라는 생각들로 머리가 가득했다. 하지만 그가, 강부장이 진혜인의 몸을 만지고, 접촉할 때마다 진혜인의 내면에 있는 뭔가가 조금씩 벗겨지는 기분을 진혜인은 느꼈다.
지금에서야 생각해보면 아마 방어본능인 것 같았다. 내가 남자와 섹스를, 강혁 부장님과의 섹스를 바라고 있다는 것에 대한 저항. 그의 육체와 몸, 체취를 조금 더 맡고, 핥고, 알아가고 싶다는 욕망에 대한 거부감. 그게 조금씩 조금씩 벗겨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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