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 _ 두 번째(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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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제 _ 두 번째 (2)
진혜인이 입사하고 7개월차. 두 사람 사이의 거리가 완전히 좁혀지는 결정적인 계기가 발생했다. 그 날 역시 강혁 부장은 야근을, 진혜인은 그 옆에서 잡무를 도와주고 있었다. 강부장의 야근 명령에 시달린지 벌써 3주. 아무리 진혜인이 강부장에 대한 욕망을 품게 되고, 진혜인의 내면 속 ‘남성의 단단한 육체를 탐하면 안 된다’ 라는 방어본능이 깨져가고 있었다고 해도. 야근을 3주째 하고 있다는 사실에 슬슬 분노가 치밀어 올라오고 있었다.
그를 향해 품고 있던 욕망보다, 피곤함과 자유시간을 빼앗기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분노가 더 커져가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강부장이 장난을 걸어오고, 친절하게 말을 걸고, 스킨쉽을 자연스럽게 하더라도. 아무런 감흥도, 흥미도 없이 짜증이 치밀어 오르기만 했다. 당연히 강부장은 평소의 그와 다르다는 것을 눈치챘고, 날이 흐를수록 두 사람 사이의 말과 접촉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야근 3주차, 15일째 되는 날. 이 날이 모든 게 달라지게 된 날이다.
평소 퇴근 시간보다 2시간이나 훌쩍 지난 밤 9시 정각. 진혜인은 강부장이 시킨 물건을 가지러 자재창고에 내려갔다. 아무리 봐도 지금은 필요 없어 보이는 물건들이다. 근데 왜 가지러 가라고 시킨 건지, 그것도 이 늦은 시간에 야근까지 시켜가면서 그러는 건지 강혁 부장을 도저히 이해못하겠다며 속으로 온갖 욕을 퍼붓고는 진혜인은 내려갔다. 진혜인은 자재창고에서 물건들을 차례차례 집어 들었다. 대량의 펜들과, A4용지 그리고 화이트 잉크들. 그것들을 바구니 한 구석에 담아 넣고 있을 때 거기서 용도는 확실하지만 왜 여기에 놓여있는지 이해할 수 없는 물건 두 개를 발견했다.
“이게 왜 여기에?”
그는 자신도 모르게 육성으로 말을 꺼냈다. 거기에 놓인 물건은 콘돔 두 개와, 300ml 러브젤이었다. 당연히, 진혜인은 그것들을 사용한 적이 있고, 집에 러브젤을 따로 사둘 정도로 애용하는 중이다. 이 때까지 그는 확실한 이성애자였다.
그 때, 진혜인이 있는 곳 자재창고의 불이 갑작스럽게 꺼졌다. 차단기가 내려간 건지 아니면 형광등이 나가버린 건지 그는 알 수 없었다. 당장 눈 앞의 콘돔 두개와 러브젤은 마치 그게 거기에 당연히 쌓여 있었던 먼지인 것처럼 그의 신경 밖으로 사라져버렸다. 그는 속으로 한숨을 아주 크게 두 번 쉰 다음에 핸드폰 플래쉬 앱을 켰다. 그때였다.
누군가가 그를 향해 뛰듯이 접근해왔다. 아무도 없어야 할 자재창고에서 뛰는 듯한 발걸음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한쪽 팔로는 진혜인의 두 팔과 가슴 쪽을 휘감고, 다른 손으로는 그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가 크게 소리 지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으로.
“읍!!”
진혜인은 이때 솔직히 속으로 ‘아 나 죽겠구나.’라는 생각을 세 번은 했었다. 바로 흉기 같은 것에 찔려서 과다출혈로 죽거나, 목에 칼이 찔려 죽거나 둘 중 하나로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단순 강도인가? 그러면 살 만할 텐데. 아니면 나를 노리고? 내가 살면서 이렇게까지 원한을 입을 사람이었나?’ 라는 등의 별의 별 생각을 다 했다. 엄청 속으로 무서웠었다.
그런데 진혜인은 일이 이상한 방향으로 틀어지고 있음을 3초 안에 감지했다.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남자(남자임을 알 수 있었던 건 몸을 감싸고 있는 사람의 팔 근육과, 등에 닿는 가슴의 단단함, 그리고 손이 매우 거칠었기 때문이다.)가 진혜인의 입을 막고 있었던 손을 풀고, 그의 사타구니 중심에 있는 물건을 천천히 쥐었기 때문이다.
“읏!”
그의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감탄사의 종류가 바뀌었다.
“너 누구야!”
진혜인은 그의 상체부분을 감싸고 있는 팔을 뿌리쳐보려 했지만 무슨 힘이 그렇게 센지 전혀 그 팔을 뿌리칠 수가 없었다. 오랜 시간 운동을 했던 사람의 팔이었다. 그래서 그는 수법을 바꾸어 들고 있던 핸드폰의 플래쉬 렌즈 부분을 그의 눈에 집적적으로 비추었다. 팔을 감싸고 있던 남자는 당황했는지 진혜인의 사타구니 중심의 묵직한 물건을 만지던 손으로 눈을 가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갑작스러운 플래쉬 공격에서도 그는 소리 하나를 안 내뱉으며 눈을 가리던 손을 천천히 그의 핸드폰을 향해 뻗었다. 그러면서 진혜인의 귓가에 그 남자의 입은 가까워져 갔고, 진혜인은 피부와 피부가 조금씩 가까워진다는 그 고유의 은밀한 느낌을 느끼며 힘이 살짝 빠졌다.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남자는 진혜인의 귓볼을 살짝 깨물더니 깨문 입술 사이 혓바닥으로 그의 귓볼을 살짝 빨기 시작했다. 진혜인은 이 상황에서 기분이 나빠야 정상인데 어쩐지 묘한 쾌감이 느껴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솔직히 이 때부터 그는 자기를 팔로 감싸고 있는 남자의 정체를 눈치 챘었다.
그 남자 특유의 전자담배 냄새가 났다.
“쉿.”
강부장은 진혜인에게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주었다. 귓속 고막에 자신의 바람이 들어가도록. 따뜻한 입김이 확실하게 진혜인의 귓속으로 들어가, 그가 자신의 온도를 느낄 수 있도록.
“하…ㅇ…읏..”
진혜인의 입에서는 자기도 모르는 새에 이런 탄식이 나왔다. 온전히 육체에 느껴지는 쾌감에 몸을 맡긴 듯, 음란한 소리. 보이진 않지만 자신의 뒤에 있는 강혁 부장의 입이 웃고 있을 것임을 그는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원래의 진혜인 성격이라면 속으로 수 만가지의 생각을 하고, 검토한 끝에 어떤 한가지의 결과를 행동으로 옮겼을 것이다. 아마 이런 상황이라면 머리를 뒤로 뻗어 상대의 이마에 가격한 후에 존나 튀던가, 때리던가. 둘 중 하나의 모션을 취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가만히 있었다. 저항하고 싶지 않았다. 강혁 부장이 오랜 시간 스킨쉽과 외설적인 농담들, 접촉과 오묘하고 알 수 없는 분위기로 진혜인 내면의 방어기제에 금이 가도록 만들었고, 욕망은 더욱 더 넘치도록 했다. 그 결과가 지금 진혜인을 움직이지 않게끔 만들었다. 그는 더 진도를 빼고 싶었다.
진혜인은 몸의 힘을 완전히 뺏다. 그 즉시 강부장은 양팔을 막고 있던 자신의 또 다른 팔을 풀고, 진혜인의 오른손 손등 위에 자신의 오른손을 깍지를 겹쳐서 꼈다. 진혜인을 뒤에서 왼팔로 안으면서, 오른손은 깍지를 끼고, 진혜인의 오른쪽 귀 부분을 천천히 혀로 핥기 시작했다. 진혜인은 그의 타액이, 전자담배 냄새가 나는, 향기 좋은 단내가 나는 그 타액이 귓가에 흐르는 것을 느꼈다. 그 타액은 귓등을 타고 흘러 진혜인의 턱 선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 모든 흐름과, 몸에 돋는 이상한 기류가 생생하게 느껴졌고 결과 진혜인의 성기는 급격한 혈액을 공급받아 어느때보다 크게 뻗어버렸다. 전여자친구의 골짜기 안에 넣기 직전, 단 한차례도 그 정도까지 커졌던 적이 없었는데.
‘내가 미친건가?’
진혜인은 모든 감각을 느끼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서는 이런 생각을 했다. 그의 성기가 그렇게 크게 발기가 된 것을 보니, 그는 자기가 진짜 이상해졌음을 느꼈다. 그의 요도 입구 부분에서 쿠퍼액이 조금씩 아주 천천히 흘러나왔다.
“읏….”
어느덧 두 사람이 있는 공간 안에서는 강부장의 조금씩 거칠어지는 숨소리와 진혜인의 낮은 신음소리 뿐이다. 진혜인의 엉덩이 골에는 어느덧 땀이 살짝 맺혀 있고, 그 맺힌 엉덩이 살 뒤로 바짝 붙어있는 강부장의 커다란 무엇인가가 느껴졌다. 단단하고 묵직한 무엇인가가.
강부장의 왼쪽 손가락은 서서히 움직이면서 안고 있는 진혜인의 오른쪽 가슴 정중앙에 자리를 잡았다. 그러면서 한 번 크게 움켜쥐고, 다시 검지 손가락으로 그의 유두 부분을 살살, 원형을 그리며 문지르고, 꼬집다가 다시 움켜쥐기를 반복했다. 진혜인은 자기의 오른쪽 가슴을 마치 초등학생들이 전에 유행한 슬라임이라는 액체 장난감을 가지고 놀듯이 움켜쥐는 강부장 때문에 세 가지 종류의 다른 신음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그가 크게 움켜쥘 때는 살짝 아프면서도 꽉 쥐여지고 있다는 압박감, 소유욕이 느껴져서 조금 큰 소리의 신음이, 그의 손가락이 유두부분을 원형을 그려가며 천천히 돌릴 때는 그의 모든 감각을 자신의 손가락에 집중시키고 말겠다는 집중력 내지는 이기심 같은 것이 느껴지며, 살살 간지럽고 동시에 그 느낌이 쾌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얇고 긴 작은 신음을. 마지막으로 그의 유두를 검지와 엄지로 꼬집으면서 느끼게끔 해줄 때는 마치 강부장이 평소에 자신에게 장난을 치듯이 짓궃게 구는 것 같고, 자길 봐주라는 듯이 애처럼 구는 듯해서 기분 좋은 중성음이 섞인 중간 크기의 신음을 내뱉었다.
강부장은 그렇게 한참을 진혜인의 가슴을 가지고 놀다가, 문득 자기가 너무 아프게 한 건 아닌지 걱정 조금 들어 물어보았다. 예의상.
“아파?”
“아뇨. 아픈 것보다… 놀랐습니다.”
“미안해. 나도 모르게.”
강혁 부장은 마치 이게 우발적인 상황인 것처럼 말했다. 진혜인이 마치 자기 자신을 좋아하는 마음을 억제하지 못해서 충동적으로 이렇게 몸을 탐닉하듯 만지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도록, 일부러 그렇게 얘기했다. 당연히 그는 일부러 콘돔과 러브젤을 그 자리에 놔뒀고, 일부러 야근과 출장을 같이 다니게끔 했고, 일부러 밥을 같이 먹었고, 일부러 지금 창고로 내려가서 물건을 가지고 오라고 시켰다. 이 상황이 연출될 수 있게끔.
그가 저항할 수 없이, 내면에 거부반응이 없어질 수 있게끔 천천히 공을 들여가며. 진혜인은 속으로 생각은 많고, 대상의 감정에 대해 민감한 촉각을 지니고는 있지만, 이런 식의 설계와 장난에는 속수무책으로 눈치가 없는 바보 같은 사람이기에 그대로 속아버린다. ‘이상하다’는 의심, 아주 자그마한 의심 하나만을 품은 채.
그 상태로 정지. 두 사람은 더 이상 무언가를 하지 않고 멈춰 있었다. 강부장은 이때쯤 이제 그만 멈춰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진혜인이 좀 더 애타는 마음을 먹고, 더 확실한 태도를 가지고 접근을 하던, 멀리하던 할 테니. 아무리 설계를 하고, 접촉을 하고, 방어기제를 부수는 작업을 한다고 해도.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상대방이기에 지금 여기서 더 진도를 나가면 안 된다. 그가 선택할 수 있게끔 여지를 주는 게 최소한의 예의인 것 마냥.
객관적으로 봐도 완벽하게 관리되어 있는 근육의 몸. 탄탄하고 꽉찬 가슴 근육과 복근, 그리고 오랜 기간동안 운동해서 단련된 이두 삼두와 어깨 근육. 이목구비는 확실하게 잘 드러났고, 잘생겼다. 토끼 같은 눈에는 쌍꺼풀이 자연스레 있고, 누구나 접근하기 쉬운 듯한 친절한 태도와 말투, 하지만 그 안에서 선은 지키며 위엄을 유지하는 듯한 태도를 지닌다.
여직원 사이에서 이미 그는 한번 같이 자보고 싶은 남자였다. 개중의 남자를 좋아하는 남자 직원들 사이에서도 마찬가지겠지.
완전히 승자의 위치에서 선택권을 쥐여주는 듯한 놀이. 그는 지금 그런 놀이를 하는 것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래서 솔직히 그는 여기서 멈추고 집에 돌아갈 생각이었다. 시간은 많았고, 기회도 많았다. 진혜인이 이 상황 자체를 포기하고 다시 원래대로 돌아간다고 해도 상관이 전혀 없었다. 만날 사람을 일부러 많이 만들어 두지는 않았지만, 볼 사람들은 있다. 욕망을 해소할 수단 또한 있다.
그래서 그는 천천히 몸을 떨어뜨렸다. 진혜인에게 끼었던 손의 깍지도 천천히 풀면서 손 끝의 감각을 느낄 수 있게 만들어주고, 왼쪽 손 또한 그의 왼 가슴 유두 부분에서부터 사선으로 내려 스치듯이 느끼게 해주면서 풀어줬다. 귀 바로 옆에 있었던 얼굴도 천천히, 그의 온기와 기척이 서서히 멀어지는 듯이 느낄 수 있게 해주며. 천천히 멀어졌다. 그러고 바로 올라갈 생각이었다. 거기까지가 오늘 나갈 진도였고, 이 이후에는 어떻게 되던 더 이상 신경 안 쓰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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