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아라 황석호 -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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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특별시는 공기부터 달랐다. 내가 살았던 지방 변두리 동네에서는 느낄 수 없는 공기였다. 내가 숨을 쉬는 공기에는 자유가 녹아 있었다. 일제로부터 벗어난 날에 사람들이 거리에 쏟아져 나와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던 그 기분을 알 것만 같았다.

  입학을 하기 전, 고층빌딩 숲을 헤집고 다니며 특별시의 특별한 공기를 들이마시고 자유와 해방감을 만끽했다. 하루하루가 새롭고, 즐겁고, 벅찼다. 특별한 혜택이 전혀 주어지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특별시에서 특별한 기분을 만끽하는 것, 그것만으로도 만족했다.


  그러나 입학을 하고 나서부터는 좀 달라졌다. 첫 수업 때부터 국문과에 들어온 것을 약간 후회했다. 점수를 잘 받을 줄 알았다면 법대나 상대를 갔을 텐데, 재수까지 하고 또 떨어질 수는 없었기에 하향지원을 한 것이 잘못이었다.

  씨.발.... 강의실 안은 온통 여자였다. 남자라고는 나를 포함해 다섯 명이었다. 게다가 재수를 한 사람은 나뿐이었고, 모두 나보다 한 살 적은 녀석들이었다. 그래도 동기들이니 친하게 지내야겠다고 마음은 먹었으나 왠지 거리감이 느껴졌다. 내가 아니라 동기들이 나를 다가오지 못하게 막았다. 보이지 않는 선이 그어진 듯했다. 밥도 자기네들끼리 먹었고, 일부러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강의실에서도 나와 떨어진 곳에 몰려 앉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내 할 일만 하면 되었으니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오히려 나를 괴롭힌 것은 여학생들의 관심이었다. 동기들뿐만 아니라 선배들까지도 그랬다. 선배들은 나에게 다가와 자기 동아리에 들어오라고 권유를 했고, 여자 동기들도 자기들 그룹에 나를 포함시키려 애를 썼다. 학과에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살뜰히 나를 챙겼다. 게다가 내가 원하지도 않았는데 중간고사 때에는 노트를 갖다 바쳤다. 씨.발.... 짜증이 났다.


  그나마 내가 여학생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내 처지 때문이었다. 지원이 없을 것이라던 엄마가 한 달에 얼마큼씩 용돈을 부쳐왔지만 앞으로의 일이 어떻게 될지 나도 장담을 할 수가 없었기에 수업이 끝나면 아르바이트를 했다. 커피숍 아르바이트였는데, 용돈 정도는 벌 수 있을 것 같아 시작한 일이었다.

  한동안은 여학생들로부터 벗어나는가 싶었으나 그것도 오래가지를 못했다. 내가 일을 하는 커피숍까지 찾아와 나를 들볶았다. 우리 학과뿐만 아니라 다른 학과 학생들까지 끌고 와서 나를 귀찮게 괴롭혔다. 사장은 그것을 좋아했으나 내가 견딜 수가 없어 두 달이 조금 넘어가면서부터 그만 뒀다. 여학생들이 귀찮아서이기도 했지만 5월 중순은 축제 기간이라 대학에 와서 처음 맞이하는 축제를 아르바이트 때문에 즐길 수 없을 것 같은 마음도 컸기에 그만 둔 것이었다.

  하지만 이것도 나의 패착이었다. 나는 축제를 즐기고 캠퍼스의 낭만을 만끽하려 했으나 현실은 전혀 그러지를 못했다. 기숙사 생활을 했으니 어디 도망을 갈 수도 없어서 나는 꼼짝없이 여학생들에게 끌려가 학과 주점에서 일을 해야 했다. 호객 행위에 서빙은 물론이고, 설거지거리가 쌓이면 그것도 처리해야 했다. 1학년이었기에 자질구레한 일을 맡아서 해야 한다는 것이 명분이었다. 거기에 하나 덧붙여진 것이 남자이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이 나에게 여성혐오적인 면이 많다고 욕을 종종 하는데, 나는 모든 걸 인정했다. 옛날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혐오할 만해서 혐오하는 것이다. 여자 자체를 혐오하는 것이 아니라 여자인 척, 여자니까, 여자라서 등등 자신이 여자임을 내세우면서 이득을 취하려는 것들을 혐오했다.

  여자인 것을 내세우지 않고, 성별에 상관없이 자기가 해야 할 일들을 묵묵히 하고, 여자이기 때문에 오는 신체적 차이를 인정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여자들을 나는 절대로 외면하지 않았다. 이 험난한 세상을 함께 헤쳐 나가야 하는 동지로서, 내가 게이니까 사회적으로 차별을 받는 같은 처지였으므로 나는 그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했고, 실제로 이해했다. 여자들하고만 살아서 여자들이 얼마나 차별을 받고 위험에 처해 있는지 누구보다 내가 더 잘 알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배운 것들은 대가리도 잘 굴려서 여자임을 내세워 혜택 받는 것을 당연시 여겼고, 할 수 있는 것들도 여자라는 것을 내세워 하지 않았기에 나는 그런 태도를 혐오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이런 여자들의 행태에 진절머리가 나서 학과에 몇 안 되는 남자들을 대신해 맞서 싸우기까지 했다.

  우리가 여잔데 이런 걸 어떻게 하느냐고 항변을 하면, 씨.발 여대는 여자들밖에 없는데 이런 것들을 어떻게 하고 살겠느냐고 따졌고, 남자가 되가지고 어찌 그리 속이 좁냐고 욕을 하면, 남자는 속이 넓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니들의 편견이 니들 스스로를 약자로 만드는 것이라고 일갈했다.

  내가 게이이기 때문에 나는 더욱 열렬히 혐오했다. 그년들은 나에게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것들이어서였다. 다른 남자들한테 이런 년들은 잠자리에서라도 쓸모가 있었겠지만 나는 잠자리에서조차 쓸모가 없었으니 나에게는 벌레만도 못한 존재들이었다.


  하지만 내가 1학년이었던 때는 전혀 그러지를 못해서 나는 여학생들에게 끌려가 자질구레한 일을 담당했다. 나는 그년들에게 정말 필요하고 쓸모 있는 존재였다. 앞서도 늘 말했으니 다시 또 내 입으로 말하기는 좀 뭣하지만 나는 많이 잘생겼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엄청 많이. 그렇기에 내가 호객 행위를 하고, 서빙을 하는 우리과 주점에는 남자들보다 여자들이 훨씬 많았다.


  아무튼 1990년 5월 축제가 한창이던 어느 날, 정확히 말해 5월 23일, 여학생들에게 붙잡혀 설거지를 하고 있던 나는 밴드의 노랫소리를 들었고, 모든 것을 팽개치고 달려갔고, 운동장을 쩌렁쩌렁 울리던 밴드 공연을 보면서, 빨간 기타를 매고 노래를 부르던 보컬을 보게 되었다. 빨간 기타를 치며 샤우팅을 하는 그의 모습은 내가 재수를 하는 동안 잠시 잊고 있었던 노래에 대한 열정을 깨웠다.


  헤비메탈의 강렬한 사운드에 소리를 질러대던 보컬이 노래와 노래 사이에 멘트를 날렸다.


  “이런 노래들 별로죠? 같이 부를 수 있는 노래로 달려 볼게요. 여러분들 부활 좋아하시나요?”


  여기저기서 그렇다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럼 영희, 숙희, 태희 등등 모든 희자 돌림 여성들에게 이 노래를 바칩니다.”


  긴머리를 치렁치렁하게 늘어뜨린 보컬은 반주도 없이 바로 첫 마디를 불렀다. 첫 가사는 ‘희야’였다. 희야~ 하고 외칠 때 나는 소름이 끼쳤다. 이승철보다 훨씬 더 감미로운 목소리였다.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희야를 필두로 후반부 공연은 우리나라 밴드의 대중적인 곡들이 이어졌다. 크게 라디오를 켜고, 비와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말갛게 해가 솟으라고 외쳤다. 그리고 공연을 마쳤는데, 모여 있던 사람들은 그냥 보내지 않았다. 앵콜곡으로 보컬이 부른 노래는 내 마음을 읽은 듯한 곡이었다. 재수를 하는 중에도 틈틈이 챙겨 들으며 위로를 받던 곡, 무한궤도의 ‘우리 앞에 생이 끝나갈 때’였다.


https://youtu.be/RpPyxmCTI0U

무한궤도, ‘우리 앞에 생이 끝나갈 때’


  눈물이 나왔다. 공연이 끝나고 모여 있던 사람들이 모두 흩어졌을 때도 가만히 서 있었다. 다리가 떨어지지 않았다. 밴드 사운드도 그러했지만 보컬이 내질렀던 소리가 내 귀에 머물러 있었고, 내 발목을 붙잡았다.

  밴드 공연이 끝나고 나는 며칠 동안 앓았다. 가슴에서 치밀어 오르는 감정 때문이었다. 노래를 부르던 보컬의 모습이 떠나지를 않았다.


  그렇게 주말을 보내고, 월요일 수업이 모두 끝난 뒤 밴드 동아리방에 무턱대고 찾아갔다. 학생회관 지하 구석에 있는 동아리방 문 앞에서 심호흡을 하고 노크를 했다. 아무 반응이 없었다. 다시 노크를 해도 여전히 반응이 없어 조심스레 손잡이를 돌려 문을 열었다. 방 안에 있던 세 명의 사람들은 다들 이어폰을 끼고 있었다. 인기척을 느낀 사람들의 시선이 나에게 쏠렸다. 그 중의 하나가 며칠 전 공연에서 봤던 보컬이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하지만 보컬의 시선은 1초도 머무르지 않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무슨 일로....”


  공연 때 드럼을 쳤던 사람이 나에게 끝을 맺지 않는 질문을 했다. 나는 대뜸 말을 잡아채서 내가 찾아간 목적을 말했다.


  “밴드에 가입하고 싶어서 왔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에게 관심도 없는지 드럼 주자만 나에게 말을 했다.


  “오디션 벌써 학기 초에 끝났는데....”


  “그때는 제가 몰랐어요..... 축제 때 공연 보고 너무 좋아가지고....”


  “우리가 좀 하죠....”


  드럼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관심이 생겼는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나에게 물었다.


  “기타 좀 쳐요?”


  “아니요.”


  “그럼 베이스는?”


  “아니요.”


  답답했다. 그러나 희망 같은 질문이 돌아왔다.


  “피아노는 쳐봤어요?”


  “네.”


  “얼마나?”


  “바이엘....”


  내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세 사람이 크게 웃었다. 나는 주눅이 들어 아무 말을 못하고 있다가 한 마디를 겨우 던졌다.


  “노래....”


  그런데 이번에도 겨우 한 단어 만에 말이 끊겼다.


  “공연 봤으면 알 거 아니에요. 보컬은 우리가 워낙 빵빵해서 필요 없거든요. 1학년?”


  “네.”


  “신입생이라 마음은 알겠는데, 이렇게 불쑥 찾아와서 악기도 다룰 줄 모르는 사람을 받을 수는 없죠. 그냥 노래 동아리 알아봐요.... 근데 거기도 오디션 벌써 다 끝났을 텐데.... 암튼 우리는 안 되겠네요.”


  맞는 말이었다. 굳이 입장을 바꿔 생각하지 않아도 내가 밴드에 들어가는 것은 안 되는 일이었다. 더 이상 아무 말을 못하고 돌아서려는데, 어깨 너머까지 오는 긴 머리를 앞으로 늘어뜨리고 있던 보컬이 입을 열었다. 그런데 대뜸 반말이었다.


  “노래 잘해?”


  나는 떨리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겨우 입을 열었다.


  “쪼끔....”


  “그럼 해봐.”


  내가 무슨 노래를 해야 하는지 물어보려고 하는 찰나에 드럼이 먼저 말을 꺼냈다.


  “야~ 황석호~ 노래는 왜 시켜?”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보내기는 좀 그렇잖아. 노래 해봐. 뭐할래?”


  “뭐할까요?”


  “너 꼴리는 대로 아무 거나.”


  꼴리는 게 없었다. 내가 꼴린 건 노래가 아니라 자지였다. 공연을 볼 때도 그랬고, 가까이서 보니까 더 꼴렸다. 둥글둥글하고 큼지막한 얼굴이며, 얼굴에 비례하는 커다란 덩치는 나에게 너무나 익숙한 모습이었고, 내가 그토록 바라고 상상하던 이상형이었다. 게다가 딱 달라붙은 청바지 앞섶이 묵직해 보였다.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계속 머뭇거리자 드럼이 다시 보컬에게 말했다.


  “야, 황석호. 우리한테 필요한 게 너 대신해서 기타 칠 사람이지 보컬이 아니잖아.”


  “잘 부르기만 하면 같이 노래하는 것도 좋지.”


  “석호야, 나 지금까지 너만큼 노래하는 사람....”


  “희야~ 나 좀 바라봐~~~~”


  나는 논쟁이 길어질 것 같아 드럼의 말을 막으며 냅다 소리를 질렀다. 세 사람의 시선이 모두 나에게 쏠렸다. 다음 가사를 생각하며 노래를 부르려던 나를 이름이 석호인 듯한 보컬이 막았다.


  “합격.”


  나는 입을 벌린 채로 몸이 얼었고, 드럼과 키보드는 눈이 똥그래졌다.


  “잘하네. 목소리가 트였어. 90학번? 무슨 과?”


  “국문과요.”


  “오~~~ 국문과 좋아 좋아.”


  왜 국문과가 좋은지는 드럼의 말이 끝나고 밝혀졌다.


  “황석호, 너 지금 제정신이야?”


  “노래 잘하는 거 너도 들었잖아. 게다가 국문과래잖냐. 씨.발 가사 쓰면 딱 좋잖아.”


  드럼도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보컬이 나에게 두툼한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했다. 나는 덥석 그 손을 잡았다.


  “난 황석호. 토공 89. 넌 이름 뭐야?”


  “이영기요.”


  “반갑다.... 공연 봤으면 알겠네. 얘는 드럼.”


  드럼이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 손을 잡았다.


  “난 김민구. 물리 89. 얘는 키보드.”


  한 마디도 하지 않던 키보드가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 손을 또 잡았다.


  “난 한철우. 지질 89.”


  서로의 소개가 끝나고 나는 석호에게 물었다.


  “그럼 90은 저밖에 없나요?”


  “응. 올해는 아무도 안 뽑았어. 다들 젬병이라서. 근데 너 현역이냐 재수냐?”


  “재수요.”


  “그래? 그럼 우리랑 나이 똑같네? 근데 정교는 오늘 또 늦냐?”


  석호의 짜증 섞인 질문에 민구가 달래듯이 대답했다.


  “니가 좀 이해해라. 우리보다 수업 많잖아.”


  민구는 나에게 고개를 돌리고 말을 건넸다.


  “정교는 베이스 쳐. 재수해서 우리보다 한 살 많고, 의대라 바빠.”


  석호의 한 마디에 말도 안 되게 가입을 하고, 말도 안 되게 빨리 수긍을 하며 나를 받아들인 멤버들은 소개를 끝낸 다음 본격적으로 나의 호구 조사에 들어갔다. 나는 지방 출신이고,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모두 고해 바쳤다. 내가 호구 조사를 당하는 동안 베이스를 치는 정교가 도착했고, 나는 그들이 연습하는 것을 구경할 것으로 기대했으나 그들은 나를 데리고 동아리 방을 나와 술집으로 향했다. 신입 멤버 환영이 명분이었다. 그날 나는 인사불성이 되었다.


  그렇게 나는 90학번의 유일한 밴드 멤버가 되어 매일 같이 동아리방을 들락거렸다. 석호를 비롯한 89학번 멤버들 외에도 80년대 중반 학번 멤버들을 보긴 했으나 그들은 이미 물 건너간 사람들이라 동아리방에 가끔 얼굴을 내비치기만 했고, 89학번 바로 위의 88학번과 87학번은 모두 군대에 끌려가 있었기에 밴드 동아리의 주축은 89학번 멤버들이었다.

  나는 동기들이 하나도 없는 동아리에서 89학번 멤버들이 합주하는 것을 구경하며 새 학년 첫 학기를 보냈다.


  동아리방에 들락거리면서 내가 알게 된 것은 기타에 보컬까지 담당을 한 석호가 리더였으며 모든 것을 이끌어 나간다는 것이었다. 다루지 못하는 악기가 없을 정도로 출중한 실력에 엄청난 고음까지 자유자재로 내지르는 노래 실력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자기밖에 모르는 독단적인 성격이 스스로를 리더의 자리에 올려놓은 듯 했다. 내가 밴드에 들어간 것도 다 석호의 독단적인 결정이었으니 다른 것은 말을 하지 않아도 뻔했다.

  모든 포지션에 다 멤버가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냥 멀뚱히 앉아 그들이 합주하는 것을 구경만 했다. 아주 가끔 석호가 나에게 노래를 시켜서 그나마 내가 밴드 동아리의 일원이라는 것을 느끼게 했다. 아무래도 좋았다. 나는 석호가 노래 부르는 것이 듣기 좋았고, 석호와 한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했다.


  첫 학기의 기말고사가 끝나고 종강 파티 때에 우리과 여학생들이 나를 붙잡았지만 나는 단호히 뿌리치고 동아리방을 찾았다. 89학번 멤버들과 함께 하기 위해서였다.

  술이 몇 순배 돌자 모두들 또 나에게 시선이 집중이 되었다. 베이스를 치는 정교가 나에게 물었다.


  “영기 너는 밴드 동아리 왜 들어왔어?”


  처음 가입을 하려고 찾아갔을 때 가장 먼저 들어야 했던 말을 이제야 듣는 것이어서 나는 어릴 때부터 노래를 좋아했던 것부터 시작해, 합창 대회며, 내가 방황을 하던 때에 들국화의 행진을 듣고 전율을 느꼈던 것과 무한궤도가 그대에게를 부르는 모습이 너무 좋아서 밴드 음악에 뿅 갔다는 말을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내가 말을 끝냈을 때 모두 아무 말 없이 입을 벌린 채로 나를 바라봤다. 드럼을 치는 민구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와~~~ 대단하네. 존경스럽다.”


  “뭐가요?”


  “밴드 하는 이유가.”


  “다들 저랑 비슷하지 않나요? 매일 음악 듣고 그러잖아요. 다들 음악 좋아해서 하는 거잖아요.”


  내 말에 키보드를 치는 철우가 한 마디를 던졌다.


  “뭐 틀린 말은 아닌데.... 난 아냐.”


  “선배는 왜 밴드 하는데요?”


  “여자 꼬시려고.”


  너무나 단순한 이유에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하지만 나를 제외한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민구 선배는 왜 밴드 하는데요?”


  “여자 꼬시려고.”


  “정교 선배도요?”


  “응.”


  왠지 석호도 그럴 것 같아 나는 묻지 않았다. 그런데 민구가 나에게 물었다.


  “석호가 왜 자기 혼자 기타치고 노래하는지 알아?”


  질문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억지로 대답했다.


  “여자.... 꼬시려고....”


  “아니.”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그렇지, 역시 음악성이 남다른 석호는 분명 큰 이유가 있을 듯 했다.


  “석호 선배는 왜 밴드 하는데요?”


  석호 대신 키보드를 치는 철우가 나에게 답했다.


  “여자 따먹으려고. 저 새낀 우리보다 한 차원이 높아.”


  석호는 나를 바라보며 눈만 꿈벅꿈벅 할 뿐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부인을 하지 않는 것을 보니 철우의 말이 맞는 듯 했다. 사람들은 깔깔거리며 나를 계속 놀려 먹었다.


  “그래서 여자 많이 꼬셨어요?”


  내 질문에 나를 놀리던 모두가 웃음을 그치고 말없이 술잔을 부딪쳤다.


  그렇게 쫑파티를 끝으로 여름방학이 시작되었다. 그것은 곧 내가 기숙사를 나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2학기가 시작되면 다시 들어갈 수 있었지만 방학 동안 기숙사를 운영하지 않았기에 나는 집으로 내려가거나 학교 앞에 방을 구해야 했다. 집으로 내려가는 것은 내가 싫었고, 방을 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것은 동아리방에서 먹고 자는 것이었다. 동아리방 한쪽 구석에 있는 소파에서 쪽잠을 자는 일이 종종 있었고, 또 여름이라 가능하지 싶었다. 다른 멤버들도 나를 말리지 않았다.

  동아리방에서 먹고 자는 것은 나에게 유리한 면도 있었다. 학교 건물을 올리는 공사 현장에서 노가다를 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두 달 남짓 되는 방학 동안 며칠 쉬지도 않고 열심히 일을 했다. 잔업도 마다하지 않았다. 몸은 고되고 힘들었지만 마음은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일을 마치고 샤워를 한 뒤 동아리방에 가면 석호가 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합주를 하는 날이 아니어도 매일 동아리방에 나와서 혼자 기타줄을 뜯다가 내가 소파에 누워 잠을 청할라 치면 연습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갔다.


  노가다를 한 지 2주쯤 되어 어느 정도 몸에 익숙해졌을 때 석호가 나에게 물었다.


  “안 힘들어?”


  “힘들어요. 온몸에 파스인 걸요....”


  “근데 왜 해?”


  “해야 되니까요.... 근데 선배....”


  석호는 내가 부르는 소리에 대답 없이 나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나는 평소부터 하고 싶던 말을 조심스레 내뱉었다.


  “악기 좀 가르쳐 주면 안 돼요? 베이스 소리 너무 좋은데....”


  “배워서 뭐하게?”


  “뭐하긴요, 저도 밴드 멤번데.... 뭐라도 배워 놔야 되잖아요. 학원 가기에는 좀 그래서....”


  “그럼 기타 배우지 베이스는 왜? 다들 기타 못 잡아서 난린데.”


  “베이스 둥둥거리는 게 너무 좋아요. 정교 선배가 뒤에서 둥둥 받쳐주면 사운드가 확 살잖아요. 정교 선배가 베이스로 받쳐줘야 제대로 된 소리가 나오니까.... 정교 선배가 엄지로 줄 두드리면서 치는 거 너무 멋져요.”


  “씨.발....”




-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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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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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pa…
  • 작성일
9편에 유일하게 댓글이 없어서
1빠로 남깁니다 ㅎㅎㅎ
작가님 홧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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