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여우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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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가 끝나고 자리로 돌아와서 남아있던 자료를 정리하고 보니 퇴근시간이 거의 다 되어가고 있었다.

 

의자 등받이에 기대어 느긋하게 한바탕 기지개를 켠 후, 막 그가 컴퓨터를 끄려고 손을 뻗었을 때, 그의 휴대폰이 울렸다.

 

오빠 이제 퇴근시간이지?”

명랑한 혜원의 목소리가 휴대폰을 통해서 들려왔다.

, 이제 퇴근해야지.”

모니터에서 윈도우의 종료를 알리는 메시지를 흘끗 보면서 그가 말했다.

오빠가 나에게 제안한 것 말야. 좀 생각해봤는데.....” 휴대폰을 귀에 대고 그는 그녀가 말을 끝내기를 기다렸다.

오빠 말대로 한번 해보기로 했어.”

그래.” 그런 그녀의 말에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닌듯한 표정으로 그가 대답을 했다.

그런데 나한테도 조건이 있어.”

뭔데?”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그가 물었다.

전화로 말하기는 좀 그렇고.....”

“........”

지금 퇴근하는 거지?”

.”

그럼 뱅뱅사거리 근처에 우리 저번에 만났던 카페에서 봐. 나도 지금 출발할게.”

그래.”

 

 

그렇게 사무실을 막 나서는 그의 휴대폰이 다시한번 울렸다.

발신자를 확인 한 후, 재훈은 얼굴을 찌푸렸다. 그리고 마치 망설이듯이 한번 주위를 돌아보고는 마지못한 듯 수화기를 귀에 가져다 댔다.

왠일이냐?”

, 나 지난 주말에 손하봤다.”

“......”

갑작스런 형우의 말에 재훈이 옮기던 걸음을 멈추고 자신의 주위를 한번 돌아보았다.

어디서?” 불편함을 감추지 못한 말투로 그가 물었다.

어디겠냐? 뻔하지. ‘어비스에서 윤수하고 술마시고 있더라구.”

엘리베이터로 향하던 재훈이 몸을 돌려 비상구 계단 쪽으로 발을 돌렸다.

손하 완전히 얼굴이 반쪽이 되어서... 너무 안돼 보이더라.”

“........”

...그리고, ......” 다음 할 말을 잇지 못하고 형우가 긴 한숨을 내 쉬었다.

?” 이미 그가 할 말을 눈치챈 듯 했지만 짐짓 모르는 척 재훈이 물었다.

어떻게 너......... 진짜....”

“........”

내가 너한테 전화를 해야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였거든?”

“........”

, 손하한테 늬네 아버지 시한부 인생이라고 사기쳤냐?”

“.......”

. 정말...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래서?” 등 뒤로 비상구 문을 닫고 그가 물었다.

?“

그래서 뭐라고 했어?“

! 내가 정말..... 그 자리에서는 잘 모르겠다고 얼버무리긴 했는데....“

재훈이 비상구의 계단을 따라 걸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 그래도 그렇지..“

”.........“

사기칠게 따로있지....“

그래. 내가 다 잘못했다. 그래도 그냥 모르는 척 해 주라.“

미리 귀띰이라도 해주던가.“

”........“

그리고 그렇게 금방 알게 될 거짓말을 하냐.“

그냥....“

계단을 내려가던 걸음을 멈추고 재훈이 낮게 한숨을 쉬었다.

당분간만 모르는 척 해 줘. 그러면 되는 거지 뭐.“

그럼....“

그런 그의 귓속에 갑작스럽게 부드러워진 음흉한 형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손하 만나봐도 돼냐? 아무래도 넌 이제 헤어진건데..“

!“ 낮은 목소리였지만 마치 분노를 표현하는 듯한 말투가 그의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꿈깨라!“

그리고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그는 전화를 끊어 버렸다.

 

잠시 그렇게 휴대폰을 움켜 쥔 손을 내려다 보던 그가 몸을 돌려 벽을 향해 돌아섰다.

비겁한 자식.“ 그가 이마를 계단의 벽에 대고 낮은 신음을 내 쉬었다.

 

 

 

낙원 상가 앞을 지나던 중이었다.

 

우리 저기서 우리 미래가 어떨지 점이나 한번 볼까?“ 해맑은 웃음을 지으면서 그를 돌아보고 손하가 물었다.

, 쪽팔려. 남자 둘이 그런데 들어가서 애정운 봐달라고 그러냐?“ 거북한 표정으로 그가 그런 손하에게 손사래를 쳤다.

? 요새는 남남커플도 많이 본대. 그리고 여기 종삼이잖아.“

싫어.“

마치 동상처럼 꼼짝 않고 서 있는 그를 손하가 빤히 바라보았다.

우리가 내년에는 어떨지, 5년 후에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궁금하잖아. 여전히 서로 잘 지내고 있을지....“

너만...“ 그런 손하를 빤히 보면서 재훈이 입을 열었다.

네 마음만 그대로면 돼.“

진짜?“ 그렇게 말하는 재훈을 보면서 손하가 빙글빙글 미소 지었다.

그 거짓말 믿어도 되는거야?“

그 정말 믿어도 돼.“ 입꼬리를 올리고 웃음짓는 손하의 팔을 잡고 재훈이 자신쪽으로 당겼다.

네 마음만 그대로면 십년 후에도 우리는 지금하고 똑같애.“

그가 손을 올려 손하의 어깨를 감싸고 자신에게 바짝 끌어당겼다.

그러니까, 5년 후의 우리들의 모습이 어떨지 네 자신에게 물어봐.“

 

손하와 사귀게 된 후 2년이 다 되어가던 그때에는 손하에게 그렇게 말하던 자신의 말은 진심이었다. 그때까지는 손하의 웃는 모습이, 옅게 패이는 그의 보조개가, 찡끗거리던 그의 눈웃음이 여전히 그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그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믿었다.

그때까지 일회성의 관계만 이어오던 자신의 삶 속에도 드디어 정착이라는 단어가 자리잡게 되는 것이라 여겼었다.

뉴 페이스에 접근해서 정복하려는 그 본능적인 욕구보다 손하의 주변에서의 숨바꼭질이, 해바라기처럼 그의 주위를 맴도는 것이 행복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멋지게 물 속으로 뛰어들어 한껏 파도타기를 하는 것도 즐겁지만, 녹음이 우거진 오솔길을 이마에 산들바람을 느끼면서 빌 밑에는 부드러운 흙과 주변에서 들려오는 은은한 풀벌레 소리가 상쾌하다는 것도 또한 그의 삶 속에서 그는 느끼게 되었다.

 

그렇게 손하와 느긋하게 길을 걸어가면서 짜릿함을 추구하는 자신의 본능적인 감정은 억제 할수 있을 것이라 여겼었다.

 

 

 

뱅뱅사거리 도로앞의 신호등에서 그는 발을 멈췄다.

 

그의 시야에 길 건너편의 2층에 위치한 고급스러운 카페의 모습이 보였다.

 

여전히 그는 그가 선택한 길이 자신의 입장에서는 최선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 이외의 길을 자신은 선택할 수 없다고 그는 되뇌었다. 누구라도 자신의 입장에서는 자신과 같은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그는 자신을 정당화하고 있었다.

 

신호등에 초록색이 들어오고 그가 발을 막 옮기려고 할 때였다.

뒤에서 누군가가 그의 팔을 움켜쥐었다.

이제 찾았네.“

놀라서 돌아선 재훈의 앞에 20대 초반의 한 젊은 남자가 서 있었다.

내가 잠든 사이에 그렇게 슬며시 새벽에 도망치면 내가 못 찾아낼 줄 알았어요?“

”.......“

그렇게 내가 마음에 들었다면서.. 물고 빨고 다 하더니 내 이름도 모르지?“

비열한 웃음을 띄고 녀석이 재훈을 빤히 바라보았다.

마치 놓으면 도망이라도 칠 것이라는 듯, 그 녀석은 재훈의 팔을 통증을 느낄 정도로 꽉 움켜쥐고 있었다.

하준이...“

.. 그래도 이름은 알고 있네?“

녀석이 일그러진 표정속에서도 피식하고 한번 웃었다.

몇년동안 일본으로 유학갔다가 귀국하고 처음 나간 술자리에서 만난 건데... 그런 인연이 쉽게 지나가버리면 너무 아쉽지 않겠어요?“

”.......“

안그래요? 재훈형?“

녀석이 여전히 놀란 표정의 재훈을 보면서 히죽거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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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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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쓰는 게 처음부터 뼈대를 세우고 이야기거리를 모으면 되는 줄 알겠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어떤 소설이든 쓰다보면 방향 전환도 필요해지고. 새로운 인물이 창조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잘 다려진 옷을 입으면 조심스럽지만 트레이닝복을 입으면 자유스럽다. 그래서 트레이닝복의 편안함이 나는 좋다. 소설도 그렿지 않을까 싶다. 억지로 꾸미지 않은 이 소설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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