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아라 황석호 -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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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민구는 점점 아래로 내려가 내 엉덩이 사이에 얼굴을 파묻었다. 엉덩이가 벌어지고 부드러운 것이 똥구멍에 와 닿았다. 내가 따먹은 년들이 한 명도 없으니 똥구멍을 빨아주는지 아닌지 알 수가 없었지만 민구가 따먹은 년들은 민구의 똥구멍을 한 번도 핥아준 적이 없는 듯 했다. 아무튼 민구가 혀를 날름거리고 입술로 추릅대는 솜씨는 정말 남달랐다. 보지를 빠는 게 그렇게나 좋다던 민구다운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어 살짝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저절로 신음도 나왔다.
“씨.발 똥구멍 빨리니까 좋지? 내가 좋을 거라 그랬잖아. 조ㅈ이 들어가면 더 좋을 거야.”
확신에 찬 듯 말하는 민구가 귀여워서 또 살짝 웃음이 나왔다. 민구는 본격적으로 하려는지 내 똥구멍에 귀두를 몇 번 문지르며 말했다.
“임신 걱정도 없으니까 존.나 편해.”
임신 걱정만 있지 병 생각은 아예 없는 듯 했다. 나도 애써 머리를 저으며 병에 대한 생각을 지워냈다. 민구는 똥구멍에 귀두를 살짝 찔렀다. 나는 강하게 힘을 줘서 조금 들어오는 것을 밀어냈다. 민구는 여러 번 시도했으나 잘 되지 않자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씨.발.... 보짓물이 없어서 그런가.... 침으로는 안 되네....”
나는 짐짓 모르는 척 민구에게 말했다.
“씨.발 뭐야. 존.나 아프기만 하고 좋기는 개뿔이네. 그냥 똥구멍이나 빨아줘. 씨.발 존.나 좋더라.”
“씨.발 내가 똥구멍에 조ㅈ 박을라고 똥구멍 빤 거지. 미쳤다고 니 똥구멍만 빨아 주냐?”
“씨.발 그럼 빨리 해. 잠 와 죽겠어.”
“잘 안 되니까 그러지.... 보짓물 묻혀서 넣어야 되는데 넌 그게 없으니까 잘 안 들어간단 말야. 아~ 씨.발 존.나 꼴리는데....”
나는 짜증나는 말투로 민구에게 힌트를 줬다.
“아~ 씨.발 그럼 로션이라도 바르던가.”
“아 맞네....”
민구는 로션을 가져와 내 똥구멍에 발랐다. 그런데 바로 찌르지를 않았다. 또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씨.발 똥구멍 먹기 전에 자지 한 번 빨려야 되는데....”
사람의 욕심은 정말 끝이 없었다. 한 가지를 얻으면 또 다른 한 가지에 욕심이 생기게 마련이었다. 민구가 딱 그랬다.
“야, 이영기.... 내가 똥구멍 빨아줬으니까 너 내 자지 빨아줘.”
똥구멍까지 내주는 마당에 자지를 못 빨 이유가 전혀 없었다. 오히려 내가 바라는 바였다. 명분은 민구가 제시했으니 나는 응하기만 하면 되었다.
“씨.발 가지가지로 한다. 똥구멍 대주고 조ㅈ까지 빨아줘야 돼?”
“니가 따먹은 년들도 못하는 거 내가 해줬잖아. 자지 정도는 빨아줘야지.”
나는 귀찮다는 듯이 민구의 자지를 입에 넣었다. 민구의 입에서 존.나 좋다는 말과 여자보다 훨씬 잘 빤다는 말이 계속 터져 나왔다. 자지를 빤 경력이 몇 년인데,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와~~~ 씨.발 존.나 꼴려.... 영기야 엎드려.”
민구의 자지가 들어왔다. 꽤나 굵어서 꽉 차는 느낌이 좋았다. 드럼을 치는 놈이라 그런지 리듬감도 탁월했다. 민구는 내 허리를 들어 내 뒤에서 열심히 박았다. 민구에게 똥구멍을 대줬던 년이 좋아할 만했다. 단지 체위를 바꾸려 하지 않는 것이 좀 아쉬웠다.
“영기야, 너도 좋지? 씨.발 존.나 좋아.... 나 잘하지?”
“씨.발.... 생각보다 좋네.... 민구야 자세 바꾸자.”
“어떻게?”
“내가 바로 누울게.”
“하하하하 그게 되겠냐? 보지도 아니고 똥구멍에 박는 건데.... 자세가 딱 두 개밖에 안 나와. 뒤에서 박는 거랑, 니가 올라가는 거랑.”
나는 민구의 말을 무시하고 벌렁 드러누워 다리를 벌렸다. 민구의 자지가 끄덕이는 모습이 보였다. 튼실한 몸이 섹시했다.
“되는지 안 되는지 해봐야 아는 거지. 내가 다리를 들 테니까 해봐.”
민구는 반신반의하면서 나에게 다가와 자지를 찔러 넣었다.
“오~~~ 씨.발 되네....”
나는 팔을 뻗어 민구의 젖꼭지를 만졌다. 민구가 신음을 토했다. 나는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을 민구에게 던졌다. 내가 게이에 마짜라는 것을 숨기기 위함이었다.
“내가 보지 쑤실 때 여자들이 내 젖꼭지 만져 주는 거 좋아하거든....”
“씨.발.... 니가 이쁘니까 여자랑 하는 거 같애.... 아우 씨.발....”
민구는 상체를 숙여 나에게 키스를 했다. 입으로 들어온 민구의 혀를 쪽쪽 빨았다. 민구는 내 발목을 잡고 자지를 미드미컬하게 쑤.셔댔다. 나도 뒤에서 받는 것보다 민구의 동글동글한 얼굴과 듬직한 몸을 보며 받는 것이 훨씬 좋았다. 민구는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보며 강하게 밀고 들어왔다.
“영기야.... 다리 잡아.”
나는 오금을 잡고 다리를 내 쪽으로 당겼다. 민구가 훨씬 더 자지를 박기 편할 터였다. 민구는 고개를 숙이고 아래를 쳐다봤다. 게이건 일반이건 남자들은 자기의 자지가 구멍으로 들락거리는 모습을 보는 걸 좋아하는 듯 했다. 민구가 퉁퉁한 손으로 내 자지를 만졌다. 몸이 움찔했다. 그런데 그건 내 기대이고 착각에 불과했다. 민구는 내 자지와 불알에 손을 올려놓고 있을 뿐 만지지 않았다. 참담했다. 그러니까 민구는 자기의 자지가 내 똥구멍 안에 들어가는 걸 보고 싶은데, 내 자지와 불알이 거슬리니까 손으로 가린 것이었다. 나는 민구의 손을 치우고, 자지를 잡고 흔들었다.
“영기야, 뒤로 돌아.”
민구는 내 뒤에서 허리를 잡고 똥구멍에 자지를 마구 쑤.셔댔다. 자기의 행동을 합리화하려는 듯이 나에게 자꾸 물었다.
“씨.발 존.나 좋아.... 영기 너도 좋지?.... 씨.발 너도 좋지? .... 씨.발 너도 좋을 거야, 내가 존.나 잘 박으니까....”
민구가 잘 박는 것도 맞고, 좋은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내 몸만 그런 것일 뿐, 기분은 조ㅈ같았다. 나는 몸과 마음의 부조화를 빨리 불식시키기 위해 있는 힘껏 똥구멍을 쪼았다.
“우와~ 씨.발 존.나 쪼여.... 으아~악~~~~”
나는 그대로 엎어져서 베개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한 허탈함과 허무함이 밀려왔다. 욕실 문이 열리는 소리와 물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변기에 오줌이 떨어지는 소리도 들렸다. 이어서 민구의 목소리가 들렸다.
“넌 안 씻어?”
나는 잠든 척을 했다. 민구는 내 옆에서 부시럭거리더니 이불을 끌어당겨 나도 덮어주고 가만히 누워 있었다. 조금 있다가 민구의 코 고는 소리가 약하게 들렸다. 나는 그제야 조용히 일어나 변기에 앉아 내 것이 아닌 물을 비워 내고 휴지로 똥구멍만 닦고는 다시 이부자리로 돌아와 잠을 청했다. 내 머릿속에 씨.발이라는 단어가 수십 번 자막처럼 흐른 뒤 나도 잠이 들었다.
문을 두드리며 석호가 깨웠을 때에야 민구와 나는 잠에서 깨었다. 민구가 이불을 들치고 일어났다. 나도 따라서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민구도 나도 자지가 서 있었다. 민구의 자지는 팬티 안에 숨은 채로 내 자지는 그대로 드러나 있다는 것이 달랐다. 서로 마주 보고 웃긴 했으나 어색했다. 석호가 계속 문을 두드려서 민구가 짜증나는 소리로 외쳤다.
“씨.발, 일어났어. 씻고 나갈게.”
민구와 나의 어색함은 며칠 간 유지되었다. 하지만 오래 가지 않았다. 유들유들한 민구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웃고 떠들어 대서 나도 거기에 자연스럽게 편승했다.
해가 바뀌어 우리는 한 살씩 더 먹었다. 졸업을 하는 날, 나는 엄마만 특별시에 올라오는 줄 알았으나 일찍 시집을 간 큰누나를 빼놓고 모든 식구가 총출동을 했다. 거기에 더해 큰이모와 작은이모까지 옆에 있었다. 단촐하게 부모님만 오신 다른 멤버들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큰이모와 작은이모는 길게 늘어뜨린 내 머리를 보고 혀를 내둘렀다. 그리고 몇 년을 올라와 살면서 어째 한 번도 집에 안 왔느냐고 타박을 했다. 나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엄마에게 학사모를 씌워줬다. 가운도 벗어줬다. 누나들도 학사모를 쓴 적이 없었으니 나는 누나들에게도 학사모를 씌워줬다. 그렇게 식구들과 사진을 찍었다.
우리 멤버들은 각자의 가족들을 모두 보내고, 학사모와 가운을 반납하기 전에 연습실로 달려가 각자의 악기를 소품으로 삼아 사진을 찍었다. 합주를 하는 모습을 연출해서 찍기도 했다. 지금처럼 그때도 스마트폰이 있었다면 학사모를 쓰고 연주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찍었을 텐데.... 아쉬울 뿐이다.
졸업까지 했으니 우리가 소속된 곳은 오로지 밴드밖에 없었다. 석호는 본격적으로 곡을 쓰는 작업에 매진했다. 나는 내 나름대로 바쁘게 지냈다. 학교에서 완전히 해방이 되었으니 대기 중이었던 학생들을 더 받았다. 게다가 철주가 고2에 올라가면서 이과반으로 가는 바람에 나는 수업 준비를 위해 오전에 학원을 다녀야 했다. 고1 때 배우는 수학은 나도 다 배운 것이라 혼자서도 가능했고, 어려운 것은 물리학이 전공인 민구의 도움을 받아가며 해결했는데, 문과 출신인 내가 이과 수학을 가르치는 것은 애시당초 불가능했기에 학원에 등록해 배우는 수밖에 없었다. 석호가 연습실에서 곡 작업을 하고 있을 때, 나는 그 옆에서 수학 문제를 풀었다.
“야, 너 진작에 이렇게 공부했으면 서울대도 갔겠다.”
나도 석호랑 비슷하게 생각했다. 서울대는 턱도 없는 소리더라도 훨씬 더 좋은 대학에 들어갈 수 있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석호에게 짜증이 나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말 하지 마. 생각만 해도 소름끼쳐.”
사실이었다. 내가 더 좋은 대학에 갔다면 석호를 만날 수 없었을 테니, 그것은 나에게 정말로 소름끼치는 일이었다.
합주는 주로 내 스케줄에 맞춰 진행이 되었다. 내가 오전에는 학원에 가야하고,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이 하교를 해서 저녁을 먹고 난 뒤의 시간은 과외 수업을 해야 했으니, 합주는 평일 오후로 정해졌다. 멤버들의 배려였다. 고마웠다.
밴드에 목숨을 건 석호를 비롯해 민구와 철우도 아무 일을 하지 않는 백수라서 가능한 일이었다. 석호는 그래도 매일 연습실에서 곡 쓰는 작업에 집중했지만 민구와 철우는 오로지 여자를 꼬시는 데에 집중했다. 밴드를 하는 이유가 여자 꼬시는 것이라고 나에게 말했던 것을 본격적으로 실천하면서 몸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있는 집 자식에, 관대한 부모님 덕분이었다. 그와 반대로 없는 집 자식인 나는 과외를 하면서 돈을 벌어야 했고, 관대하지 않은 엄마의 잔소리 폭격을 막기 위해 매달 용돈을 드려야 했다.
지난 2년을 지내오는 동안 연습실에 이것저것 잡동사니들이 쌓여 조금은 어지러웠는데, 석호는 새봄이 찾아오는 즈음에 TV와 비디오 그리고 우리가 앉아서 쉬는 소파를 제외하고 싹 치워 버렸다. 대신 그 자리에 녹음 장비를 들여놓았다. 물론 석호가 결정하고, 석호가 알아서 한 일이었다. 학교 다닐 때와는 확 달라진 분위기에 모두가 숙연해졌다. 여자 따먹는 것뿐만 아니라 농담 따먹기를 좋아하는 민구마저도 아무 말이 없고 표정도 비장했다. 철우가 숙연함을 깨고 한 마디를 날렸다.
“우리가 이걸로 먹고 살아야 된다는 거지?”
모두들 말이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의 합주는 더욱 진지해졌다. 석호가 가져다 둔 외국 밴드의 공연 영상을 볼 때도 예전과는 태도가 달랐다. 예전에는 이러쿵저러쿵 수다를 떨면서 보다가 민구와 철우가 가져온 포르노 비디오로 바꿔 끼우고 보는 일이 많았는데, 이제는 모두가 진지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꿈을 키웠다.
“와~ 진짜 저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드럼 치면 진짜 소름 돋겠다.”
민구의 말에 석호가 받았다.
“그치? 어릴 때부터 꿔온 꿈이야.... 나 꼭 저렇게 할 거야. 니들이랑 같이.... 씨.발 우리가 못할 게 뭐 있어. 합이 딱딱 맞는데. 안 그래?”
철우도 자기의 소망을 피력했다.
“진짜 저렇게 하다가 관객들한테 내 몸 던지고 싶다.... 하늘을 나는 기분일 거 같애....”
나도 한 마디를 보탰다.
“석호야.... 너 진짜 곡 잘 써라.... 우린 너만 믿는다.”
나는 민구, 철우와 함께 석호의 어깨를 주무르고 토닥였다. 석호도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모두 비장한 마음으로 석호가 써내는 곡을 파트별로 맡아 연주를 하고, 수정을 하면서 본격적인 음악의 세계에 발을 디뎠다. 그래도 천성은 숨지지 못하는 것이라, 나는 밴드 합주와 과외를 병행하면서 게이로서의 이중생활을 만끽했고, 민구와 철우는 여자를 꼬시는 데에 진력을 다 했다. 남자들은 다 그러했으니 석호도 연습실에만 틀어박혀 곡을 쓰는 것은 아니었다. 민구가 이번에 따먹은 애는 똥구멍을 대 주더라며 자랑을 하면, 석호도 그걸 받아서 민구와 함께 시시덕거렸다. 석호와 민구는 가장 많이 싸우면서 또 가장 죽이 잘 맞는 사이였다.
나는 석호의 원대한 꿈을 지지했다. 합주도 없고, 과외도 없는 날에 석호와 둘이 있을 때면 옛날처럼 신해철의 앨범을 틀어 놓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신해철이라는 뮤지션은 석호는 물론이고 나에게도 우상이었으니 석호와 내가 죽이 잘 맞는 이야깃거리였다. 1994년과 1995년, 1년 간격으로 나온 넥스트의 앨범은 석호와 내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아이씨~ 해철이 형님이 앨범을 좀 빨리 냈으면 석호 플라이 말고 다른 이름으로 했을 건데....”
“뭘로? 설마 날아라 황석호는 아니지?”
“씨.발 어떻게 알았어? 정말 너는 가끔 보면 내 마음에 들어왔다 나간 거 같애.”
“니가 단순해서 그런 거지. 공대 출신 어디 가겠냐고.”
“씨.발 공대 무시하냐? 대학 나온 남자 반이 공댄데 너 그러다가....”
“그러다가 뭐?”
“아냐 아무 것도....”
“그럼 지금이라도 석호 플라이 말고 날아라 황석호로 바꿔. 내가 뭐라고 하겠냐, 민구랑 철우가 뭐라고 하겠냐?”
“나도 그러고 싶은데.... 따라하는 거 같잖아. 날아라 황석호 하면 누가 봐도 날아라 병아리 표절한 걸로 알 텐데.... 영기야, 진짜 해철이 형님 대단하지 않냐? 어떻게 병아리 한 마리로 삶과 죽음에 대해서 노래할 수 있냐고.... 날아라 병아리 처음 듣고 울었잖아....”
모든 악기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석호는 철우의 키보드를 치며 날아라 병아리를 불렀다. 나도 한 파트를 맡아서 석호의 키보드 반주에 내 목소리를 실었다. 노래 반주 기계가 아무리 좋아도 석호가 직접 연주하는 것에는 발밑에 때만큼도 따라오지 못했다.
“나는 Being 앨범에서 The dreamer가 제일 좋아. 가사도 좋고, 곡 전체가 진짜 드라마틱해. 너 전에 이 노래 합주할 때 기타 치는 거 보고 정말 죽이더라.”
“그래 그래.... 내가 그 노래 듣고 또 꿈을 꾸는 거 아냐. 아~ 정말 해철이 형님 반만이라도 따라갔음 좋겠다.... 기타 치는 건 줄기차게 쳤으니까 대철이 형님 반은 따라가는 거 같은데, 곡 쓰는 거랑 작사 하는 거는 진짜 에휴.... 나 잘난 맛에 사는데, 대철이 해철이 형님들 때문에 내가 못난이 같아서.... 아우 씨.... 이 형님들은 이름도 비슷해....”
이렇게 한 번 시작된 이야기는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이어지다 한숨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그 한숨은 석호가 더욱 의지를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
석호가 연습실을 마련하고 처음 우리에게 내민 곡은 솔직히 조금 유치했다. 멜로디는 그렇다 치고 가사가 참 낯 뜨거웠다. 나뿐만이 아니라 석호 본인도 그걸 인정했다. 모두 머리를 맞대고 수정 작업을 거쳐도 별반 나아지는 것은 없었다. 우리가 가요제 예심에서 떨어진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복합된 것이겠지만 유치한 가사가 한몫을 크게 담당하지 않았나 싶다.
그런데 졸업을 하고 나서 석호가 만드는 노래는 유치함이 사라지고 사뭇 진지했다. 눈물 바람을 하는 사랑 타령도 아니었다. 내 생각에 선거 유세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사고가 많이 발전한 듯 했다. 게다가 우상으로 섬기는 신해철의 노래에도 분명히 영향을 받았을 터였다.
석호는 정말 신을 떠받치듯이 신해철을 떠받쳤다. 석호랑 나랑 둘이서 보러 갔던 신해철의 공연에서 석호는 경배하는 듯한 동작으로 노래를 듣고, 따라했다. 나 역시도 석호와 비슷한 모습으로 공연을 관람했겠지만 석호에게서 뿜어 나오는 에너지는 주위에서 함께 공연을 보는 사람들과는 사뭇 달랐다. 신해철의 기를 다 빨아들이려는 듯이 온몸을 떨며 관람하는 모습은 사이비 종교의 광신도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다.
한 번은 내가 너무 힘들어하는 석호를 보고 직접 신해철을 찾아가 보라고 조언을 한 적이 있었다. 큰 악기상을 하는 아버지의 인맥을 동원하면 얼마든지 가능해 보였다. 대단한 열정을 가지고 밴드를 이끄는 석호를 신해철도 좋아하면 좋아했지 거절하지는 않을 듯 했다.
하지만 석호는 고개를 저었다. 신해철 앞에만 서면 왠지 작아질 것 같다고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것 같은 말로 내 조언을 묵살했다. 작은 키에 작은 체구의 신해철 앞에서 육중한 석호의 몸이 작아져 봐야 훨씬 더 클 테지만 석호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신해철은 골리앗의 모습이어서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석호가 말은 안 해도 나는 알 수가 있었다. 좋은 노래들로 앨범을 만들어 조금은 당당한 모습으로 찾아가고 싶다는 것을 석호는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으로 나에게 말을 했다. 나도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바랐다. 석호 옆에 꼽사리 껴서 함께 찾아가 악수를 하고 사인을 받고 싶었다.
그렇기에 석호는 제대로 된 앨범을 내기 위해 사방이 막힌 연습실에서 창작의 고통을 견디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피와 살을 짜내고 뼈를 깎는 고통 끝에 나온 노래를 우리가 열심히 연습해서 녹음을 하면 석호는 데모를 들고 여기저기 쫓아다니며 앨범을 낼 수 있는지 타진을 했다.
하지만 프로의 세계는 냉정했다. 프로들의 세계는 캠퍼스 내에서 다른 밴드의 노래를 카피하여 신나게 공연을 하면서 환호를 받은 우리들이 쉽게 발을 들이 밀 수 있는 세계가 아니었다. 프로의 세계는 자본이 결부되어 있었다. 공짜로, 시간만 내면 얼마든지 찾아와 무대 아래에서 환호를 지르는, 같은 학교 학생들로 구성된 관객들을 상대로 하는 것이 아니었다. 시간을 내는 것은 물론이고, 돈까지 지불한 사람들에게 거기에 합당한 노래와 공연으로 보답을 해야 하는 세계가 바로 프로의 세계였다.
아마추어 세계였던 캠퍼스를 떠난 지 1년이 가고, 2년이 갔다. 내가 처음으로 과외를 시작했던 주인집 아들 철주도 대학생이 되었다. 주인 아주머니가 철주를 처음 맡길 때 내가 다니던 대학만 가도 소원이 없겠다고 그랬는데, 철주가 국립대는 못 갔지만 바로 그 다음의 사립대에 들어갔기에 철주도 주인 아주머니도 만족해했다. 오히려 내가 만족을 못했다.
철주를 가르치는 동안 나도 학원에 등록해서 수학의 전 과정을 학습했기에 더 이상 학원에 다닐 필요까지는 없었다. 오전 시간에 여유가 생겨 늦잠을 잘 수 있었으니, 대기를 타고 있던 여러 팀들을 한꺼번에 받아 밤늦게까지 시간표를 짜서 수업을 했다. 내가 공부해야 할 양은 줄고, 수업은 늘어서 수입이 반 이상 더 늘어났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대졸 미취업자에 해당했으므로 국가적으로 공식 백수였다. 내가 벌어들이는 수입은 나 자신 말고는 아무도 몰랐다. 우리 멤버들도 정확히는 몰랐다.
우리는 졸업을 한 뒤에도 여전히 합주실에 모여 우리끼리 연주를 하고 노래를 불렀다. 우리끼리만 있어도 즐겁기는 했다. 한여름에 팬티 바람으로, 간혹 발가벗고 연습을 하는 것은 매년 해온 것이었으니 낯설지도 않고 오히려 우리를 더 즐겁게 했다. 민구와 철우도 여전히 여자를 꼬시며 재미나게 살았고, 나는 나대로 과외를 하면서 제법 많은 수익을 올리며 바쁘지만 즐겁게 살았다. 석호도 창작의 고통을 참고 견디며 살았지만 고통마저 즐기는 모습으로 살았다.
졸업을 하고 3년째 되던 해, 철우가 스타트를 끊었다. 석호 플라이의 멤버들 중에 가장 먼저 결혼을 했다. 1997년, 우리가 스물여덟 살이던 해였다. 여름이 막 시작되는 때였다. 신부는 대학을 갓 졸업하고 사립 중학교에 발령을 받은 교사였다. 백수였던 철우가 어떻게 결혼을 하게 되었는지 다른 사람들은 몰랐지만 우리는 잘 알고 있었다. 양다리에 가운데 다리까지 걸치고 다니면서 수시로 바꿔치기를 하던 철우가 딱 한 사람은 절대로 놓지 않았는데, 그 사람이 바로 부케를 들고 철우 옆에 서 있는 사람이었다.
내가 1학년 때 밴드에 들어가자마자, 여자를 꼬시기 위해 밴드를 한다고 하면서도 한 번도 꼬시는 것에 성공을 못하고, 가을 축제 공연에서 환호성이 나한테만 터졌다고 삐져서 말도 안 하던 철우가 군대를 제대하고부터는 확 달라져서 여기저기 찔러보다가 제대로 건진 마누라였다. 복학을 하고 첫 신입생이 들어왔을 때 바로 꼬신 여자였다. 정말 아끼고 사랑하고 지고지순하게 순결도 지켜준 여자였다. 정말 아무 것도 모를 때 낚아채서, 자기만 바라보고 살도록 키운 다음 교사가 되자마자 바로 임신을 시켰다. 빼도 박도 못하게 만든 셈이었다. 철우가 백수라도 나름 집안 배경이 빵빵했으니 가능한 일이었다. 철우는 우리에게 강남에 30평대 아파트 한 채를 미리 상속받는 셈치고 아버지에게 빼앗아 냈다고 했다. 그 다음은 교사 마누라가 벌어오는 돈으로 열심히 음악하면서 살 거라고 우리에게 자랑을 했다.
밴드를 하는 백수에게 이 정도면 좋은 일이었다. 말은 마누라 등쳐먹고 살겠다고 해도 결혼식 날 마누라가 될 여자를 무척이나 사랑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었다. 오랜 세월 얼굴 맞대고 살아온 우리들이 철우의 눈빛을 모를 리가 없었다. 축가는 당연히 우리들 몫이었다. 결혼을 하는 당자사인 철우의 피아노 반주에 석호의 통기타 반주를 합하여 다 같이 노래를 불렀다.
신혼여행을 떠나는 철우를 배웅하기 위해 공항에 따라간 우리는 철우 부부를 태운 비행기가 하늘을 나는 모습을 지켜봤다. 석호 플라이의 멤버 4명 중에 키보드 주자 철우가 제일 먼저 날아오른 것이었다.
철우를 보내고 나머지 우리 세 명은 철우가 주고 간 돈으로 술을 마셨다. 모두 철우를 부러워했다. 결혼 생각이 전혀 없는, 게이인 나조차도 철우의 결혼이 부러웠다. 그 중에 민구가 가장 부러워했다. 술이란 술은 거의 혼자서 다 마시고, 연습실에서 미친 듯이 드럼을 두드리다 비틀거리며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민구를 태운 택시 뒤꽁무니를 바라보다 석호가 무심한 듯 한 마디를 툭 던졌다.
“씨.발새끼.... 존.나 부러운가 보네.”
“부럽겠지.... 밴드하는 목적을 완벽히 달성한 건데....”
“씨.발 나도 많이 부럽네. 너도 부럽지?”
“당연하지....”
석호와 나는 다시 연습실로 돌아와 신해철의 노래들을 들으며 부러운 마음을 달랬다. 나는 석호를 바라보며 너도 언젠가는 철우처럼 결혼을 하겠지 하는 생각이 들어 마음 한 구석이 조금 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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