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여우 8

작성자 정보

  •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본문




늦은 밤,  혜원의 집 앞에 차를 세우고 재훈이 좌석의 안전 벨트를 풀고 있었다.

 

그들이 타고 있는 차의 밖에서는 길 양쪽에 높게 매달린 가로등이 어둠을 쫓고 있었지만 여전히 별하나 떠 있지 않은 하늘에서 계속해서 어두움이 무겁게 내려오고 있었다. 

 

정말 그렇네.”

  

벨트를 풀고 차에서 내리려고 하던 혜원이 갑자기 뜬금없이 그렇게 입을 열고는 차문을 잡은 손을 떼고 그를 한번 돌아보았다. 


처음엔 오빠가 우유부단하고 좀 답답하다고 생각했었거든....”

“......”

그런데 오늘 오빠 부모님 뵙고 나서 느꼈어. 보통 분들은 아니시겠다라고...”

그의 표정을 흘끗 보고는 그녀가 몸을 돌려 차의 문을 열었다.



오빠 부모님 이렇게 직접 뵙고 대화를 한건 오늘이 처음이었잖아.” 차에서 내려 그녀를 향해 걸어오는 그를 보면서 나지막히 말을 건네면서 그녀가 희미한 미소를 띠었다.

아직 결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고, 이제 처음 인사를 간 것 뿐이었는데, 부모님께서, 특히 어머님이 아주 조근조근하게 디테일한 것 하나까지도 원하시는 것 다 말씀하시는 것 보고서....”

“.....”

아니구나 싶더라구.”

그녀가 그를 흘끗 보고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나는 안되겠어.”

혜원아....”

그렇게 부르는 재훈을 그녀가 다시 돌아보았다.

오빠도 참, 힘들게 살았겠다 싶다. 작은 것 하나까지도 다 자신의 마음에 들어야 하시는 어머님 곁에서...”

그녀가 손을 내밀어 아무 표정없이 그녀를 바라보는 그의 손을 부드럽게 잡았다.

내가 오빠한테 제시한 조건, 결혼하고 3년동안 부모님으로부터 분가해서 살기, 적당한 시점에 해외 지사로 나가기, 적당히 서로의 삶 터치 않하고 살다가 나중에 어쩔수 없이 돌아올 때, 성격차라는 이유를 적당히 대서 헤어지기...”

말을 멈추고, 그녀와 눈을 맞추지 못하고 회피하는 그의 눈을 그녀는 올려다 보았다.

그거 다...쓸데 없는 거였어. 어머니 앞에서는...”
여전히 그녀의 시선을 피하고 있던 그가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보기에 오빠는.... 그냥 돈이 필요한 가난한 집안의 딸 하나 들여오는게 정답인거 같애.”

그런 그녀의 말에 그가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죽었습니다 하고 시어머니 비위 맞추면서 평생 친정 먹여살릴 생각에 고분고분하게 살아갈만한 여자 말야.”

어이없다는 그의 표정을 보면서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아니면...”

그녀가 강렬한 눈빛으로 그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쿠데타를 벌이던가. 부모님 상대로...”

“.....”

그리고 독자노선 걸어가. 사생활과 사업은 별개라는 인식 확실하게 부모님께 인식시켜드리고...”

“......”

이것도 저것도 아니면....”

말을 잇기 전 그녀가 낮은 한숨을 쉬었다.

그냥, 오빠 자신이 이것도 저것도 아닌 사람인거야.”

말을 마치고 그녀가 몸을 돌려 집의 높은 대문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혜원아...”

자신을 부르는 낮은 그의 목소리에 그녀가 고개를 돌렸다.

그 짐은 모두 오빠가 져야지.”

그렇게 말한 그녀가 그를 향해 다시 천천히 걸어왔다.

상대방에게 떠넘기면 안되잖아.”

“......”

전에 오빠가 사랑했다던 그 여자...사실은 남자였지?”

그녀가 빤히 그를 바라보았다.

계속 사귀었더라면 오빠의 부모님에게 어떻게 말씀드리려고 했었어?”

“......”

그 사람과의 관계에서 오빠는 진지함이란 없었지?”

그런 그녀의 말에 그의 표정이 굳어졌다.

어짜피 때가 되면 헤어질 건데 데드라인 정해놓고 즐긴거지?”

!”
화가 난 듯, 낮은 말투였지만 그의 목소리는 강렬했다.

내 말이 맞다면 오빤 정말 비겁하다.”

“......”

내가 남자 많이 만나봤다고 말했었지?”

“......”

그래도 걔넨 처음부터 즐기는 거라고 했었어. 어짜피 나중엔 유산 물려줄 부모 말 따라야 한다고...”

“......”

오빠도 그 남자에게 그렇게 얘기 했어?”

여전히 아무말도 하지 않고 자신을 노려보는 그를 바라보던 그녀가 고개를 돌려 주위를 한번 둘러보았다.

게이들은 원래 그런거야?” 그녀가 목소리를 낮춰서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미래란 없으니 모두 원래 잠깐동안 즐기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거야?”

“.....”

아니면 오빠가 그 사람을 농락한거야? 사업 수완 좋은 사람처럼 꿀떨어지는 말로 환심 산 후에 나중에 단물 빠지면 나 몰라라 쳐내는... 그런 수법 사용한거야?”

너 정말.....”

분노에 찬 표정으로 빤히 그녀를 바라보는 재훈을 보고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화를 낼 사람은 오빠가 아니야.”

“......”

달콤한 말로 오빠가 책임도 져주지 못할 사람 꼬드기지마. 아무것도 해주지도 못하면서 다가진척, 착한 척, 피해자 인척 하지마.”

“.......”

진짜 피해자는 상대방을 구렁텅이로 끌고 들어가는 그런 무책임한 오빠에게 관심을 가지고 사랑해주는 사람들이니까.”

희미한 가로등 빛 아래에서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눈꼬리에 순간적으로 빛이 났다. 그리고 볼을 따라 희미한 눈물이 흘렀다.

 

손을 들어 손바닥으로 자신의 그런 볼을 한번 문지른 다음, 그녀가 몸을 돌려 부지런히 대문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몸이 좋지 않아서 혜원이가 오늘 교회에 나오지 못할 것이라는 그의 말에 한쪽 눈썹을 치켜뜨고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면서도 그의 어머니는 그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교회로 향하는 승용차 안에서도 창밖을 보면서 아무말도 없던 그녀가 무엇인가 기억이 났다는 듯 어느 한 순간 그에게 고개를 돌리고 입을 열었다.

 

오늘 오센건설 사장 아들 우리 교회 나온다고 교회 비상연락망으로 연락왔었다.

”.......“

처음 나오니까 편하게 맞아달라고....“

그런 그녀에게서 그는 고개를 돌려 창 밖을 내다보았다.

너 그 오센건설이 상당히 큰 기업인건 알고 있지?‘

그렇게 고개를 돌린 그의 뒷통수를 보고 그녀가 말을 이었다.

그 사장이 느즈막히 낳은 삼대독자야. 나중에 그 기업 고스란히 물려 받을거고...“

”......“

나이는 이제 스물 두셋밖에 안됐으니 너보다 나이가 많이 어리긴 하지만 가깝게 지내서 손해볼 것 없으니 눈에 들게 잘 하도록 해. 일본에서 유학생활하다가 얼마 전에 귀국했다더라...“

그녀의 말에 무심코 그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름이 뭐였더라? 이 하준인가?“

그녀의 말에 재훈은 한순간 등골이 오싹한 느낌이 들었다.

걔네 집안이 대대로.....“

 

그녀가 계속해서 무엇인가 말하고 있었지만, 그의 시선은 그의 앞 좌석의 검은색 등받이에 멍하니 고정되어 있었다.

 

 

 

 

사람들의 무리에서 벗어나 교회 밖 정원의 한쪽 구석에 있는 작은 테이블에 앉아서 재훈은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이웃간의 소박한 정을 나눔이라는 미명하에 점심식사 후에 사람들과 모여 전혀 도움되지 않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그의 어머니가 대화를 끝내고 나오기를 그는 기다리고 있었다.

 

혜원이의 병문안을 구실로 가능한 일찍 교회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이미 예배 중에 모든 사람들 앞에 새로 모신 주의 자녀로서 목사님의 옆에서 자신의 소개를 하던 그 이 하준이라는 녀석이 그가 알고 있는 그 하준이라는 것을 눈으로 그는 확실히 확인을 했다.

 

가능하면 앞으로 그 녀석과 맞닥뜨리지 않는 방법을 생각해 내려고 하고 있는 재훈의 등 뒤에서 누군가의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여기 있었네?“

그가 앉아있는 의자의 옆에 서서 그가 재훈을 내려다 보았다.

뭐냐?“

그의 맞은편 의자에 자리를 잡고 앉는 녀석을 보면서 차가운 목소리로 그가 물었다.

에이... 고맙다고 다시한번 인사하려고....“

녀석이 능청스러운 표정을 짓고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돌아오는 목요일 경에 다시한번 좀 부탁드려요. . 그때 아빠가 그 마트 주인 여자 불러다가 내가 아니라는 거 확인시켜줄거라네. 그때 형도 와서 내 알리바이 대 줘야지.“

꿈깨라.“

어허....“

그의 냉담한 대답에 녀석이 다시 히죽거렸다.

혜원이 누나하고 결혼할지도 모른다면서?“

여전히 실실거리는 웃음속에서도 그 어린녀석의 눈빛속에는 잔인함이 배어나오고 있었다.

누가 그래?“
형우형이 그러던데?“

”.......“

, 재훈이 형은 그 날밤이 처음 본 거지만, 형우형은 고딩때부터 알고 지냈었어. 그땐 형우형이 가끔 주말에 우리 동네 교회에도 왔었거든. 삼성동에 있는 거였는데....“

”.......“

그런데 그 형이 재미있는 얘기도 해 주던데? 재훈형이 6년 넘게 사귀던 사람이 있었는데, 얼마전에 헤어졌다고....”

“.......”

클라스가 다른 애들하고 사귀면 좋아?”

녀석이 재훈을 자극하는 투로 비열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걔네들 거시기에는 금장식했나? 그것 할 때 맛이 달라?”
. . 입 닥쳐라.” 그가 낮은 목소리로 하준을 노려보았다.

. 형이 아직까지 걔 좋아하나보네....” 그런 그를 보면서 하준이 피식하고 웃었다.

나한텐 그런 놈이나 고양이 새끼나.... 그게 그걸로 보이는데....”

“.....”

형 목요일에 잘 부탁해.”

잔인한 눈빛으로 한번 그를 노려본 다음 하준이 그의 등을 툭툭 치고는 그의 뒤쪽에 있는 카페안으로 사라졌다.

 

 

관련자료

댓글 1

<span class="sv_wrap"> <a href="https://ivancity.com/bbs/profile.php?mb_id=formylife" data-toggle="dropdown" title="그리고함께 자기소개" target="_blank" rel="nofollow" onclick="return false;"> 그리고함께</a> <ul class="sv dropdown-menu" role="menu"> <li><a h님의 댓글

  • <spa…
  • 작성일
잘 읽히는 소설은 흐름이 자연스럽고
대사의 결이 잔잔한 물결의 흐름과 같아서다.
한글자씩 눈에 담으며 읽을 가치가 점점 커져간다.
재미가 좋다.
알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