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아라 황석호 -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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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김민구, 너도 와 있었네.”


  석호였다. 민구가 들어오면서 현관문을 잠그지 않은 모양이었다. 욕실 밖에서 석호와 민구가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응, 더워서.... 영기 방에 에어컨 있으니까 시원하게 자러 왔지. 넌 왜 왔어?”


  “나도 에어컨 때문에 왔지.... 근데 너 샤워하면서 딸딸이 쳤냐? 조ㅈ을 세우고 지랄이야?”


  “굶어서 그래.... 영기 씻고 있으니까 좀 있다 들어가.”


  “씨.발, 너도 나처럼 어지간히 많이 굶었나 보네. 많이 굶으니까 그냥 조ㅈ이 발딱발딱 서지? 딸딸이 쳐도 그때뿐이야. 아무 소용이 없어....”


  “그치? 근데 너 여기서 자고 갈 거야?”


  “응. 요즘 더워서 제대로 자지도 못했어. 전에 에어컨 바람 쐬면서 자니까 진짜 좋더라. 너도 여기서 자러 온 거 아냐?”


  “자러 오긴 했는데.... 너도 잘 거면 비좁은데....”


  “뭐 어때, 에어컨 틀고 잘 건데 붙어 자면 어때서....”


  시원하게 샤워를 마친 우리는 에어컨 바람에 몸을 말리며 담배를 피웠다. 민구가 자지를 쓸어 올리며 말했다.


  “사타구니에 땀 차서 습진 생기고 그러는데, 에어컨에 말리니까 존.나 좋네. 석호 너도 그렇지?”


  “응. 역시 사람은 문명의 이기를 누리고 살아야 돼.”


  그리고 그대로 자리를 잡고 드러누웠다. 벽을 바라보고 돌아 누운 내 등 뒤에서 석호와 민구는 자기들이 따먹은 여자들을 안주거리 삼아 신나게 떠들어댔다. 그놈의 똥구멍 타령은 지겹지도 않은지 석호와 민구는 여자 이야기가 나왔다하면 언제나 똥구멍으로 귀결되었다.


  “석호야, 너 좋다고 따라다니는 은정이 있잖아. 걔랑은 안 사귈 거야? 성격 화통하고 좋던데....”


  “난 별로.... 우리 팬이니까 그냥 가만히 있는 거지, 솔직히 좀 귀찮아. 공연 마치고 클럽 앞에서 기다리는 것도 부담스럽고.... 잘못 건드렸다가 괜히 코 꿰일 거 같애.”


  “그럼 안 따먹었어?”


  “응. 솔직히 별로 안 이쁘잖아. 뚱뚱하기도 하고....”


  “와~ 그 정도면 이쁜 거지. 씨.발 자기도 뚱뚱하면서 눈은 존.나 높아요.”


  “아쉬울 것도 없는데 내가 걔랑 왜? 나도 철우처럼 아끼면서 공들이는 애 있어.”


  “진짜? 이뻐?”


  “당연히 이쁘지. 씨.발.... 걔 처음 봤을 때 빛이 나더라.... 지금까지는 고백했다가 까일까봐 쫄아서 보고만 있었는데, 조만간 고백도 할 거고 철우처럼 제대로 따.먹어서 빼도 박도 못하게 할 거야.”


  “씨.발새끼.... 진짜 철우가 우리 스승이야, 스승. 나도 공들이는 애 있거든. 내가 가르쳤던 애....”


  “고딩? 씨.발 변태 새끼야. 미쳤냐?”


  “고딩 아냐. 좀 전에 영기한테도 말했는데.... 울학교 간호학과 2학년.... 드럼 친다니까 자기는 밴드에서 드럼 치는 사람이 제일 멋지다고 하더라고. 선생님 선생님 하면서 질문도 하고 눈웃음치는데, 씨.발 완전 반했잖아. 자기 또래는 유치해서 싫다나.... 아직 어리니까 어떻게 하지는 못하겠고, 나도 철우처럼 걔 대학 졸업하면 확 내 걸로 만들려고....”


  “크크크크 너 걔 볼 때마다 존.나 따먹고 싶어서 조ㅈ이 발딱발딱 하지?”


  “당연하지.... 씨.발 꼴리네.... 너도 걔 생각했어? 너도 꼴렸네?”


  “씨.발.... 생각만 해도 꼴려....”


  “근데 너 이렇게 큰데 이게 똥구멍에 들어가냐?”


  “이거 보다 더 굵은 똥도 누는데 안 들어갈 게 뭐 있어. 처음엔 못하겠다고 앙탈부려도 좀만 있으면 다 된다니깐. 너도 나만큼 굵잖아.... 씨.발 존.나 하고 싶네.”


  “나도.... 영기야, 너 자냐?”


  벽을 바라보고 누워서 석호와 민구가 시끄럽게 떠드는 대화를 듣고 있었으니 잠이 들 리가 없었다.


  “안 자. 씨.발 시끄러워 죽겠는데 잠이 오겠냐?”


  석호가 나에게 물었다.


  “영기 너는 마음에 두고 있는 애 없어?”


  10년 동안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이 이렇게 묻는 것에는 뭐라 할 말이 없었다. 그래도 내 마음을 감춰야 했으니 뭐라도 지껄여야 했다. 등을 돌린 채로 심드렁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말했잖아. 안 사귄다고.... 내 앞에 줄 서 있는 년들 따먹는 것도 힘든데 뭐 하러....”


  내 말을 받아서 민구가 짜증나는 목소리로 말했다.


  “영기, 쟤 저렇게 말할 때마다 존.나 재수 없어. 씨.발 조ㅈ도 작은 게 얼굴 반반하니까 인기는 존.나 많고.... 섹스도 잘 못하는 새끼가....”


  “영기가 섹스를 잘하는지 아닌지 니가 어떻게 알아?”


  “딱 보면 알지. 조ㅈ도 작고 비리비리 한데 잘하겠냐?”


  “씨.발새끼.... 너 진짜 영기랑 섹스한 거 아냐? 나 오기 전에 니들 빠.구리 했지? 하고 나서 같이 샤워한 거 아냐? 딱 그림이 그렇던데....”


  “하하하하 그래 했다 어쩔래? 씨.발 너 안 왔으면 한 번 더 할라 했는데.... 영기가 내 똥구멍에 조ㅈ 박았는데, 씨.발 존.나 못하더라. 조ㅈ이 작아서 간에 기별도 안 갔어.... 야 황석호, 내가 똥구멍 한 번 대줄까?”


  “농담을 진담같이 해. 남들이 들으면 진짠 줄 알겠네.... 내가 대가리 총 맞았냐? 너 같은 뚱땡이 똥구멍에 내 조ㅈ을 박게? 영기면 몰라도.... 영기 정도면 내가 눈 딱 감고 박.아줄 수도 있지.... 머리에 파마까지 해서 뒷모습만 보면 진짜 여자야 여자....”


  “하하하하 진짜.... 영기야, 석호한테 똥구멍 한 번 대줘. 조ㅈ도 큰데....”


  나도 바라던 바였다. 하지만 이런 건 아니었다. 내가 여자의 대용이 되는 것은 참기가 힘들었다. 나는 남자를 사랑하는 남자, 게이일 뿐 일반들에게 여자 취급을 받는 사람은 아니기 때문이었다.


  “씨.발, 재수 없어. 둘 다 꺼져.”


  “와~ 진짜 어쩜 이렇게 피부가 부드럽냐....”


  석호의 목소리가 들리고, 엉덩이에 손끝이 닿는 느낌이 왔다. 에어컨 바람 때문에 차가워진 몸에 소름이 돋는 것 같았다. 나도 모르게 손을 뿌리치고 엎드려 누웠다.


  “씨.발, 이게 미쳤나....”


  조금 전까지 나랑 섹스를 했던 민구가 진담인지 농담인지 구별이 되지 않는 말을 던졌다.


  “우리 영기 앙탈 부리니까 더 귀엽네~”


  “씨.발, 농담할 기분 아냐. 그냥 니들 집에 가라. 나 혼자 잘 거야. 피곤해.... 씨.발 존.나 짜증나....”


  석호가 나를 달래듯이 말을 걸었다.


  “영기야~ 장난이잖아....”


  “이게 장난이야? 씨.발, 내가 여자야? 니들 꼴리면 니들한테 똥구멍이나 대주는 씨.발년이냐고. 장난도 정도껏이지....”


  “야, 이영기~!”


  “왜? 뭐?”


  “내가 전에 장난치는 걸로 정색하면 너 따먹는다 그랬지?”


  “씨.발 지랄하네....”


  나는 석호에게 냉소 가득한 한 마디를 날리고, 등을 돌려 발밑에 두었던 얇은 이불을 덮었다. 


  “이 씨.발....”


  석호가 이불을 들치고 나를 뒤에서 끌어안았다. 그리고 나를 깔아뭉개듯 위에 올라탔다. 석호가 먼저 벌인 일이었으니 나도 못이기는 척 그냥 받아주려고 했다. 민구가 보고 있더라도 조금 전에 자기도 나랑 섹스를 했으니 할 말이 없을 터였다. 석호의 자지가 내 똥구멍에 닿는 것이 느껴졌다. 단단히 발기가 되어 있었다. 가만히 있기는 뭣해서 벗어나려는 시늉만 하며 살짝살짝 몸을 흔들었다. 고개를 돌려 민구의 표정을 살폈다. 호기심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석호가 자기랑 똑같다는 생각을 하는 듯 했다.

  석호의 귀두가 똥구멍에서 미끌거렸다. 육중한 무게가 더해져 귀두가 조금씩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빠져나가려는 듯 살짝살짝 몸을 더 움직였다. 그럴 때마다 석호의 자지가 더 들어왔다.


  “씨.발.... 장난 아냐. 내려와. 씨.발....”


  똥구멍에서 묵직한 통증이 밀려왔다. 귀두가 다 들어온 것 같았다. 석호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씨.발 앙탈 부리니까 존.나 귀엽네....”


  순간 조금 들어왔던 석호의 자지가 빠져나갔다. 그리고 석호가 약간 몸을 일으켰다. 내 움직임도 멈췄다. 장난이 끝난 것 같았다. 살짝 아쉬움이 밀려왔다. 하지만 그것은 내 오산이었다. 석호는 손에 침을 뱉어 아래쪽으로 가져갔다.


  “야, 황석호~ 진짜 따먹을 거야?”


  “응.... 여자한테 인기 많다고 깝치는 거 존.나 재수 없어....”


  민구의 표정에 음흉한 웃음이 스쳐가는 것이 보였다. 훨씬 더 미끄러워진 석호의 자지가 다시 똥구멍을 뚫고 들어왔다. 귀두를 지나 제법 많이 들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될 대로 되라 싶은 마음에 석호의 자지가 더 잘 들어오도록 몸을 더 비틀었다. 모르긴 몰라도 반 정도는 들어온 듯 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석호의 말이 내 귀에 들어왔다.


  “민구야, 영기 엎어 놓으니까 진짜 여자야.... 여자랑 하는 거랑 똑같애....”


  침만 발린 석호의 자지가 똥구멍에 들어오는 고통보다 석호의 말이 더욱 아프게 내 귀에 들어와 박혔다. 옛날의 기억 하나가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미스 국문에 출전했던 내 사진을 보고 있을 테니 자지를 빨아 달라던 그 기억이었다.

  참담했다. 머리를 길러 파마까지 한 내 뒷모습 때문에 석호는 나를 완전히 여자로 인식하고 있었다. 적어도 민구는 내가 남자라는 것을 인정하고, 자신의 독특한 취향을 나에게 설득시키며 다가왔기에 받아들일 수 있었지만 석호는 그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나를 여자로 만들어 버려서 자신의 행동을 민구에게 합리화하고 있었다.

  내가 그토록 바라던 상황이 발생했고, 석호의 자지가 벌써 반이나 들어와 있었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었다. 내가 원한 것은 남자 대 남자로,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만나는 것이었다. 나는 온힘을 다해 몸을 일으키며 석호를 밀쳐냈다.


  “씨.발새끼야.... 진짜 이게 미쳤나.... 에이~ 씨.발....”


  나는 티셔츠와 추리닝 반바지 하나만 들고 방을 나왔다. 서둘러 옷을 걸치고 현관을 빠져나오며 방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씨.발새끼들아, 니들끼리 자빠져 자고 에어컨 끄고 나가~”


  급하게 나오느라 담배도, 지갑도, 얼마 전에 장만한 휴대전화도 가져오지 않아서 그냥 밤거리를 쏘다녔다. 참담한 마음이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처음으로 내가 게이라는 사실이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남자를 좋아할 것 같으면 그냥 여자로 태어나게 할 것이지, 왜 남자로 태어나 남자를 좋아하게 만들어 힘들게 하는지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석호가 얼굴이 안 이쁘다고 소 닭 보듯 하는 은정이가 부러웠다. 얼굴이 이쁘든 안 이쁘든, 석호가 관심을 주든 말든 은정이는 여자였으므로 석호에게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할 수가 있는데, 나는 남자라서 그 마음을 감추고 살아야 했으니 은정이가 부러울 수밖에 없었다.

  짝사랑을 하는 마음을 내가 누구보다 잘 알기에 석호 주변을 맴도는 은정이에게 멤버들 몰래 내가 딱 잘라서 말한 적이 있었다. 석호는 별로 마음이 없는 것 같으니까 마음을 접으라고. 하지만 은정이는 나에게 언젠가는 진심이 통하게 되어 있다면서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거라고 말을 했다. 은정이가 여자니까 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남자이기 때문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마음을 접어야 하는 것은 오히려 나인데, 은정이에게 주제 넘는 짓을 한 셈이었다.


  장씨 아저씨의 말이 딱 맞았다. 일반한테 마음 줘봐야 내 마음만 아프다던 그 말.... 그런데 그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닌 걸 뻔히 알면서도 석호에게 마음이 가는 걸 어떻게 막을 수가 없었다. 갑자기 후회가 밀려왔다. 석호가 여자 취급을 하든 말든 석호와 섹스를 하고, 민구를 증인으로 삼아 석호에게 책임지라고 바득바득 우겨서 내 걸로 만들어야 했다는 후회였다. 어차피 마음을 못 얻을 것이라면 몸이라도 취하는 것이 옳았다. 내가 먼저 석호 자지를 빤 것도 아니고, 조ㅈ같은 내 인생 여기서 더 조ㅈ 돼 봐야 거기서 거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씨.발.... 민구랑 섹스도 한 김에 석호랑도 하는 게 옳았다. 민구랑 하니까 존.나 좋았다면서 씨.발 한 번 하자고 대놓고 말하는 게 나을 듯 했다. 차라리 잘 된 일이었다. 민구를 구실로 삼아 내가 원하는 것을 하는 게 후회를 없애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하지만 입에는 아무도 없었다. 석호가 남긴 쪽지만이 한 장 덜렁 남겨져 있었다. 쪽지에는 장난이 지나쳤다는 말과 연습실에서 보자는 말이 적혀 있었다. 쪽지를 구겨 던져 버리고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한동안 연습실에 가지 않았다. 어차피 전화가 올 데도 거의 없었으니 휴대전화도 꺼 버렸다. 철우가 와서 나를 부르며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집에 없는 듯 불도 끄고 조용히 있었다. 계속 두드리면 문을 열어 줄까봐 철우가 다녀간 후로는 아예 집에 있지를 않았다. 가르치는 학생들이 여름휴가를 떠나서 과외 수업이 없는 게 천만 다행이었다.

  연습실에 가지 않는 며칠 동안 시내를 돌아다니다 영화를 보고, 노래방에 틀어박혀서 노래를 불렀다. 마음이 갑갑할 때 혼자 노래방에 틀어박혀 노래를 부르는 것만큼 좋은 것은 없었다. 노래책을 뒤적이다 눈에 띄는 것 여러 개를 한 번에 예약했다가 다 부르고 나면 다시 몇 개를 예약하고 부르고를 반복했다. 그러다 노래 하나가 가슴에 와서 꽂혔다. ‘너를 처음 만난 그때’였다.


https://youtu.be/4rVue4Hl3FA

박준하 – 너를 처음 만난 그때


  가사 전체가 나에게 맞는 것은 아니어도, 정말 내가 살아있다는 걸 느낀 것은 석호를 처음 만난 그때부터였고, 자기혐오에 빠져 있던 내가 나를 사랑하게 된 것은 석호를 마음에 두기 시작했던 그때였다.

  자기밖에 모르고, 자기 맘대로 하는 석호, 게다가 일반이었으니 더 이상 석호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머릿속에서 작용하는 객관적인 인식일 뿐, 내 가슴에서는 그렇지가 않았다. 내 심장은 석호만 보면, 석호만 생각하면 반사적으로 쿵쿵 뛰었다.


  장씨 아저씨를 비롯한 몇몇 사람들이 내가 잘생겨서 인기가 많을 것이라 예상을 했어도 나에게 애인이 없는 것은 어쩌면 석호 때문이었다. 게이바에서 만나 서로 말이 잘 통해 섹스까지 갔을 때에도 나는 항상 석호와 비교를 했다. 아니 저절로 비교가 되었다. 내가 만났던 사람들은 석호와 닮긴 했으나 석호가 아니었으므로 반드시 어딘가 차이점이 있었을 테고, 나는 그것이 싫어서 한 번의 섹스를 끝으로 관계를 이어가지 않았다. 섹스가 끝난 뒤의 허탈함도 당연히 한몫을 담당했다. 

  어린 시절, 윤상호 선생님과 함께 살 때는 확연히 달랐다. 지금 생각해보면 선생님과의 관계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불릴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기는 하지만 그것이 사랑이든 아니든 나는 선생님을 무척 좋아했고, 선생님도 나를 무척이나 아낀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 어린 나이에도 섹스가 즐겁기만 했다. 허탈함 따위의 감정이 전혀 들지 않아서 섹스가 끝난 뒤에 선생님이 담배를 한 대 피우고 곧바로 다시 이어지기도 했었다.

  내가 섹스 후에 느끼는 허탈함은 정서적 교류가 없이 몸만으로 느끼는 섹스 때문이 아닌가 싶었다. 민구를 정말 좋아하고 믿지만 그것은 친구로서의 관계였을 때 그런 것이고, 섹스가 결부되는 관계에서는 그렇지가 않았다. 나도 민구도 서로의 몸만을 원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석호도 마찬가지일 터였다. 민구와 그랬듯이 석호와 섹스를 했다고 해도 석호는 내 몸, 더 정확히 말해 내 똥구멍만을 원하는 것일 테니 어쩌면 섹스 후의 허탈함은 더 커질지도 몰랐다.


  ♬ .... 이젠 더 이상 너에게로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걸 알아 그냥 이렇게 바라만 볼 거야.... ♬


  어쩔 수 없었다. 석호가 내 마음에 들어와 앉아 떡 하니 버티고 있고, 덩치 큰 석호를 밀어낼 힘이 나에게는 없으니 그냥 받아들여야 했다. 다만 아무도 모르게 마음으로, 늘 그래왔듯이 석호가 좋은 노래를 만들고 무대에서 신나게 노래 부를 수 있도록 응원하고 또 그것을 바라보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석호 옆에서 리듬을 맞춰주는 것이 내가 삶에서 느끼는 그나마의 행복이라는 것을 나는 다시금 깨달았다.


  노래방에서 나와 연습실로 발길을 옮겼다. 합주를 하고 함께 클럽으로 가는 시간이었다. 내가 없으니 공연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하고 있을 터였다.

  지하 계단을 내려섰을 때 연습실 철문이 활짝 열려 있는 것이 보였다. 합주를 끝내고 쉬는 모양이었다. 내가 빠졌는데 합주를 제대로 했을까도 의문이었다. 괜스레 미안해졌다. 자박자박 걸어서 연습실 철문 앞으로 다가섰다. 연습실 소파에 석호와 철우가 앉아 있고, 민구는 드럼 의자에 앉아 있었다. 철우가 나를 보자마자 일어나 나를 부둥켜안았다.


  “영기야, 전화도 안 받고 그동안 뭐했어? 집에 가도 없고, 전화도 안 받고.... 걱정했잖아....”


  철우의 말투와 표정에도 걱정이 담뿍 묻어 나왔다. 철우는 내 대신 석호와 민구를 번갈아 쳐다보며 소리를 질렀다. 이번에는 짜증이 묻어 있었다.


  “내가 온다 그랬지? 씨.발새끼들 진짜....”


  철우는 내 베이스 기타를 케이스에 넣고 자기 어깨에 둘러맸다. 그리고 내 손을 잡아 끌어 밖으로 나왔다. 손수 담배에 불을 붙여 내 입에 물려주고 자기도 한 대 피워 물었다. 철우는 내 어깨를 한 손으로 주무르기만 할 뿐 아무 말이 없었다. 나도 그저 담배만 피울 뿐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담배를 반쯤 피웠을 때 석호와 민구도 철우와 내 옆에 쭈그리고 앉아 담배를 피웠다. 침묵이 이어졌다. 그 침묵을 깨야 하는 사람이 나인 것 같아 자리에서 일어나며 한 마디를 던졌다.


  “씨.발....”


  철우도 나를 따라 일어나며 딱 한 마디를 했다.


  “씨.발....”


  또 아무 말 없이 모두 함께 지하철을 타고 클럽으로 향했다. 지하철을 타고 가는 동안에도, 클럽의 대기실 안에서도, 공연을 마치고 나서도 아무 말 없이 손만 흔들고 헤어졌다.


  이런 어색함은 며칠 가지 않았다. 더위를 못 참는 민구가 씨.발을 외치며 옷을 벗고 고무다라이에 들어가 땀을 식혔고, 철우와 석호 그리고 나까지 순서대로 고무다라이에 들어갔다. 물에 젖은 팬티를 입고 눈치를 봐가며 지하실 복도에서 담배를 피웠다.

  내가 먼저 웃었다. 철우가 나를 따라서 웃고, 민구와 석호도 웃었다. 웃으면 복이 오는 법이었다. 지난 10년 동안 함께 지낸 세월은 한 번의 웃음으로 웬만한 것은 다 퉁칠 수 있었다. 나만 아무 일도 아닌 듯이 장난처럼 넘어가면 되는 것이었다.


  더운 여름이 가고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은행나무 가로수도 노랗게 물이 들었다. 내가 가르치는 고3 학생들의 수능 시험도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이중생활에 더욱 매진했다. 금요일 저녁에 공연을 하고, 토요일 저녁 무렵까지 과외를 한 뒤에는 무조건 게이바에 가서 놀았다. 내가 가는 곳은 딱 두 곳이었다. 장씨 아저씨와 처음 갔던 곳과 그 근처에 있는 비슷한 형식의 술집이었다. 젊은 사람들이 들끓는 게이 클럽에 가면 춤도 추고 많은 사람들과 대면할 수 있었겠지만 가고 싶은 마음이 별로 생기지 않았다. 춤을 못 추는 것도 있었고, 친구도 없이 혼자 가는 것이 어색해서였다. 그냥 혼자서 맥주 두어 병을 마시고, 노래를 부르는 것이 나에게는 딱 맞았다.

  지난여름 이후로 나는 마음을 열어 놓았다. 나를 마음에 들어 하고, 말이 잘 통하는 사람이 있으면 여러 번 만나볼 마음을 갖고 있었다. 내 마음 속에 들어 앉아 있는 석호를 밀어내려는 심산이었다. 그리고 나도 남들처럼 수시로 전화를 하며 달콤한 말을 속삭이고, 정기적으로 섹스도 하고 싶어서였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주면 섹스 후에 허탈함도 없어지고, 내 생활도 훨씬 안정적이 될 것 같았다.


  수능 시험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던 어느 토요일 밤이었다. 더 이상 가르칠 것이 없다며 고3 학생들을 하산시킨 날이라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날씨도 제법 쌀쌀해서 니트 모자로 바꿔 쓰고 간 날이었다. 긴 머리를 감추기 위해 항상 게이바에 갈 때면 상투 들 듯이 머리를 묶고 챙이 있는 모자를 뒤로 쓰고 다녔는지라 약간 불편했는데, 니트 모자는 대충 머리를 말아 올려서 눌러쓰면 되었기에 한결 편했다.

  여느 때처럼 먹잇감을 찾듯이 게이바에 온 사람들에게 추파를 던지며 노래를 불렀다. 덩치 있는 사람들이 많이 온다는 말을 듣고 한 달 전부터 뚫은 곳이었다. 눈요깃거리가 많았다. 노래도 더 잘 되는 것 같았다.


  두 곡의 노래를 연달아 부르고, 내 자리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다음에 부를 노래를 찾고 있을 때였다. 내 옆에 누군가 와서 슬며시 앉아 나에게 말을 걸었다.


  “저.... 혹시.... 석호 플라이....”




-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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