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아라 황석호 -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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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1차 필기시험은 합격이었다. 이어진 면접은 뭐 할 것도 없고, 결격 사유가 될 만한 것도 없어서 최종 합격이 되었다. 첫 발령이 날 때까지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휴대폰을 켰다. 멤버들에게 합격을 하면 연락을 하겠다고 했으니 언제가 좋을지 가늠하며 차일피일 미루다가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왔다. 내가 연락을 하기 전에 먼저 민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야, 그동안 어떻게 연락도 한 번 없냐? 공부는 잘 돼 가?”


  “안 그래도 조만간 연락할라 그랬어. 나 합격했어.”


  “진짜? 와~ 축하해.... 그럼 시간 많겠네?”


  “이것저것 정리할 게 있어서 바빴어. 바쁜 거 끝나면 연락할라고 했었는데....”


  “암튼 너 한 번 올라올 수 있어? 기차표는 석호가 끊어줄 거고, 며칠 있는 동안 나랑 있든지 석호랑 있든지 하면 될 건데.”


  내가 고향에 내려가 있는 줄로 아는 민구에게 이제 이실직고를 할 때가 된 것 같았다.


  “나 올라왔어. 특별시 공무원 합격했거든. 살 집 마련하고 정리하느라 바빴던 거야. 근데 석호가 내 기차표는 왜 끊어줘?”


  “석호 결혼식에 오는 거니까.... 다음 주 일요일에 석호 결혼해. 석호가 쪽팔린다고 나한테 연락하라고 그래서....”


  연락을 하지 않은 몇 달 동안 석호의 삶에 지각변동이 일어난 것 같았다. 내가 밴드를 나올 때만 해도 전혀 감지되지 않았던 일이 불과 1년도 안 되는 사이에 벌어져서 조금 당황스러웠다. 우리 나이 32살이었으니 결혼을 하는 게 이상할 것이 전혀 없고 오히려 늦은 감이 없지 않았는데, 그래도 나에게는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석호를 만나기 전에 민구와 먼저 약속을 잡았다. 자초지종을 석호에게 듣는 것보다 민구에게 먼저 듣는 것이 나을 것 같아서였다. 결혼을 하는 당사자에게 이것저것 묻기도 그랬지만 석호의 성격으로 봤을 때 왠지 말을 잘 해주지 않을 것 같았다. 자기가 결혼을 한다는 소식도 쪽팔린다고 민구에게 부탁을 한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민구가 학원에 출근을 하는 날이라 출근 전에 잠깐 보는 걸로 약속을 잡았다. 민구가 다니는 학원 근처로 가서 민구를 기다렸다. 커피숍에 들어선 민구는 나를 보자마자 욕부터 했다.


  “씨.발새끼, 올라와 있었으면서 연락도 안 하고....”


  “바빴다니깐.... 너 연락 받고 나 좀 놀랐어.”


  “나도 놀랐어. 철우도 그렇고.... 석호 본인은 더 놀랐을 거야.”


  “그게 무슨 말이야? 결혼하는 석호가 왜 놀라?”


  “그게.... 일이 좀 있었어.... 석호가 사고를 쳤거든....”


  “무슨 사고? 누구랑 사고 쳤는데?”


  “너도 아는 애야.... 은정이.... 석호가 은정이랑 결혼해.”


  웃음이 나왔다. 그렇게 몇 년을 쫓아다니더니 결국 결실을 맺는구나 싶어서였다. 은정이라면 놀랄 것까지는 없는 일이었다.


  “은정이라면 놀랄 일도 아니네 뭐. 근데 웬일이래? 은정이 안 이쁘다고 사귀지도 않았으면서....”


  “내 말이 바로 그거야. 석호 씨.발새끼 내 말 안 듣더니 결국 코 꿰인 거잖아.”


  나에게 들려준 민구의 이야기는 정말 기가 차는 일이었다. 공연이 끝나고 석호가 은정이랑 같이 잤는데, 덜컥 임신을 했다는 것이었다. 석호가 쪽팔린다고 민구에게 미룰 만한 일이었다. 더 기가 차는 것은 그 자리에 민구도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은정이 하나를 석호와 민구가 같이 따먹은 것이었다.


  “씨.발 변태 새끼들....”


  “씨.발 나는 끌려간 거라니깐.... 석호 그 새끼가 나 끌고 간 거라고.... 셋이서 하자고....”


  “지랄하네. 니가 잘도 끌려갔겠다. 내가 널 몰라? 너도 좋아서 간 거 아냐. 근데 석호도 웃기는 놈이네. 코 꿰일까봐 안 한다 그래놓고.... 좋아하는 애 있다고 그랬으면서 왜 은정이야?”


  “내 말이.... 근데 그날 은정이가 좀 유독 석호한테 달라붙었어. 석호도 존.나 꼴린다고 계속 나한테 말했었고.... 그냥 불꽃이 튄 거지. 철우 먼저 집에 가고 셋이서 술 마시다가 은정이가 하도 들이대니까 석호가 나랑 셋이서 할 수 있음 하자고 그랬거든. 은정이는 바로 콜했고.... 석호가 자기는 변태라서 똥구멍으로 하는 거 좋아한다고 그랬는데도 은정이가 그걸 또 받았어....”


  “아우~ 씨.발 변태새끼들.... 그럼 그날 석호가 은정이 처음 따먹었는데, 그날 딱 임신을 한 거야?”


  “응. 공연 끝나고 은정이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석호한테 자기 임신했다고, 석호가 아빠라고 당당히 말하는 거야. 나는 존.나 어이없어서 석호한테 그냥 지우는 게 어떻겠느냐고 넌지시 말했는데, 씨.발 황석호 또 자기 성격 바로 나오더라고. 책임진다고.... 씨.발 또.라이 새끼....”


  나는 의심스러운 것이 있어서 말을 돌리려다가 그냥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너도 같이 잤다면서 석호 앤지 어떻게 알아?”


  “씨.발, 그 소리 할 줄 알았어. 난 진짜 아냐.... 씨.발 똥구멍 준다는데 내가 미쳤다고 보지에 조ㅈ을 박냐? 너도 알잖아. 내가 똥구멍 얼마나 좋아하는지....”


  그랬다. 잘 알고 있는 일이었다. 민구가 내 표정을 살피고 말을 이었다.


  “셋 다 취해서 모텔 들어갔는데, 침대에서 세 명이 잘 수는 없을 거 같아서 나는 빨리 하고 나왔단 말야. 씨.발 나랑 석호 둘이서 자기에도 좁은데.... 나는 은정이 보지에 조ㅈ도 안 댔어. 그냥 바로 똥구멍에 박고 쌌단 말야. 그리고 바로 집에 갔고....”


  “씨.발 술 취했는데, 니가 보지에 쌌는지 똥구멍에 쌌는지 어떻게 알아?”


  “당연히 알지. 암만 술 취해도 내가 보지랑 똥구멍 구별도 못할 거 같애? 느낌이 다른데.... 석호가 술 취해서 널브러져 있을 때 은정이가 석호한테 올라타는 거 보고 나는 바로 똥구멍에 박았다니깐. 너 석호 자지 큰 거 몰라? 석호 조ㅈ이 보지에 들어가 있는데 내 조ㅈ이 들어갈 틈이 있었겠냐? 나 가고 나서 둘이 제대로 사고를 친 거지....”


  민구와 헤어지고, 연습실을 찾아갔다. 내가 함께 지냈던 그 연습실이 아니었다. 민구에게 새로 이사를 한 연습실의 위치를 듣고 무턱대고 찾아가는 것이었다. 클럽 근처에 있는 오래된 상가 건물 맨 꼭대기 층이었다. 미리 석호에게 연락을 안 했지만 석호는 나와 있을 게 분명했다.

  나는 철문 앞에서 노트를 하고 손잡이를 돌렸다. 잠겨 있는지 열리지가 않았다. 석호에게 전화를 할까 말까 망설이고 있는데, 철문이 열렸다. 석호가 보였다. 석호는 나를 보자마자 끌어안았다. 나도 석호를 끌어안고 방방 뛰었다. 오랜만에 보는 것이라 너무나 반가웠다. 석호도 반가움을 표했다.


  “씨.발, 전화는 하고 오지. 내가 없었으면 어쩔 뻔 했어?”


  “있을 거 뻔히 아는데 뭐....”


  “민구한테 얘기 들었지?”


  “응.”


  “씨.발....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어.... 그래서 말인데....”


  석호는 나에게 결혼식 축가를 부탁했다. 당연한 일이었고, 석호가 결혼을 해서 마음이 좀 아프긴 하지만 그래도 축하할 일이었기에 나도 기쁜 마음으로 축가를 불러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 축가를 나만 부르는 게 아니었다.

  석호는 자기의 결혼식을 ‘SUKO FLY의 단독 공연’으로 만들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신랑 신부 입장에 주례사가 이어지고, 축가 한 곡 다음으로 사진 촬영을 하는 일반적인 결혼식이 아니라 주례사 같은 거 없이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공연을 하고 사진 촬영으로 결혼식을 끝맺는 것으로 이미 얘기가 끝난 상황이었다.


  “그래서 내가 같이 공연을 해야 되는 거라고?”


  “응. 우리 네 명이 턱시도 입고.... 멋질 거 같지 않냐?”


  “근데 내가 왜? 베이스 치는 사람 있을 거 아냐, 그 사람은 뭐 하고?”


  “없어. 너 빠지고 민구랑 철우랑 나랑 세 명뿐이야. 그러니까 니가 베이스 쳐줘야 한다는 말이지.”


  석호는 베이스 주자를 영입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아니 어쩌면 영입을 했는데, 석호 맘대로 하는 것에 적응을 못해서 예전에 기타리스트처럼 알아서 나갔을 수도 있었다.


  “그동안 안 맞춰봤는데, 며칠은 좀 맞춰 봐야지.... 너 시간 있는 거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다음날부터 결혼식 공연을 위한 합주에 들어갔다. 이미 선곡이 다 되어 있었다. 자기 마음대로인 것은 여전했다. 석호가 나에게 불러달라고 요구한 노래는 한동준의 ‘너를 사랑해’였다. 서정적인 가사와 멜로디 때문에 노래방에서 종종 부르는 노래였다. 익히 아는 노래에 결혼식 축가로 어울리고, 내가 여러 번 불러본 것이라 크게 문제될 것은 없었으나, 석호를 마음에 두고 있는 내가 석호의 결혼식에서 석호와 그의 아내를 위해 불러야 하는 상황이 문제였다. 하지만 어쩌랴. 석호의 결혼식이고, 석호가 이미 결정한 것이었으니 따를 수밖에 없었다.


  석호가 선택한 노래들 중에 반은 석호 플라이의 노래였고, 반은 다른 가수들의 노래를 커버한 것이었다. 결혼식에 온 하객들을 위해 적절하게 짜놓은 것 같았다. 어르신 하객을 위한 트로트도 포함되어 있었다. 우리 노래만 했으면 따로 모일 필요가 없었겠지만 다른 노래들을 해야 하니 나를 불러 연습을 하는 것이지 싶었다.

  합주를 하는 동안 밴드 활동에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는 석호 아버지도 자주 찾아왔다. 내가 밴드에서 나간 것을 멤버들만큼이나 아쉬워하고 내 앞날을 축복해 주셨다.


  결혼식 당일, 오전에 모여 마지막으로 리허설 겸해서 합을 맞추고 결혼식장으로 향했다. 일반 예식장이 아니었다. 무대가 갖춰진 구청 강당이었다. 짙은 신부화장을 한 은정이가 우리를 반갑게 맞이했다.

  결혼식의 주인공 석호는 물론이고, 나머지 우리들도 석호처럼 턱시도를 입고 메이크업을 했다. 옷은 그렇다 치고 메이크업은 좀 그렇지 않느냐는 내 말에 민구가 나를 말렸다.


  “석호 결혼식이잖아. 그냥 하라는 대로 해. 이런 게 하루이틀이냐?”


  내가 메이크업을 할 때 민구가 옆에서 디자이너에게 말했다.


  “얘 좀 못나게 해 주세요. 신부보다 이쁘면 안 되니까. 크크크크....”


  결혼식은 간단했다. 신랑 신부와 양가 부모님이 함께 무대에 올라와 인사를 하고, 덕담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바로 공연에 들어갔다. 앞서 내 이야기로 석호가 가사를 썼다던 ‘라면이 싫어’를 시작으로 첫 두 곡은 석호 플라이의 노래로 신나게 달렸다. 석호가 멤버들을 소개했다. 먼저 민구와 철우를 소개하고 나는 마지막으로 소개했다.


  “오늘 제 결혼식을 위해서 특별히 모신 놈입니다. 베이스 이영기~~~!!!”


  박수가 나왔다.


  “얼마 전까지 석호 플라이의 비주얼을 담당하면서 여성 팬들을 몰고 다녔던 놈.... 그럼 뭐합니까. 결혼은 제가 먼저 하는데.... 이 놈이 저와 제 아내 될 사람을 위해서 노래를 불러준답니다.... 고맙다 영기야....”


  석호는 전자기타를 내려놓고 의자에 앉아 통기타를 들었다. 다른 반주 없이 오로지 석호의 통기타 반주만이 강당에 울려 퍼졌다. ‘너를 사랑해’는 혼자 통기타를 치면서 직접 노래를 부르는 것이 훨씬 더 결혼식 축가 분위기에 맞을 텐데 굳이 나에게 노래를 시키는 것은 닭살스러운 것을 참지 못하는 석호의 성격 때문일 터였다.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의 결혼식에서 너를 사랑한다는 노래를 불러야 하는 내 마음을 알 리가 없으니 석호는 해맑은 미소를 짓고 기타줄을 뜯었다. 나는 그런 석호를 바라보며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첫 소절을 불렀다.


  ♬ 아침이 오는 소리에 문득 잠에서 깨어 내 품 안에 잠든 너에게 워~~~~ 너를 사랑해.... ♬


  석호가 막차를 놓쳐 내 방에서 자고 갈 때 새벽에 눈을 뜨면 내가 석호의 품에 안겨 있던 적이 종종 있었다. 널찍한 품이 너무나 따스해 나는 마음이 편안해져서 다시 잠이 들었는데, 이제 그 품은 내 것이 아니었다. 아니 처음부터 내 것이 아니라 어떤 여자의 것이었고, 이제 그 품이 주인을 찾은 것이었다. 무대 가장자리에 앉아 공연을 지켜보는 은정이가 진짜 부러웠다.


  ♬ .... 영원히 우리에겐 서글픈 이별은 없어 때로는 슬픔에 눈물도 흘리지만 언제나 너와 함께 새하얀 꿈을 꾸면서 하늘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워~~~~ 너를 사랑해 너를 사랑해 ♬


  노래를 끝내고 벗어 놓았던 베이스 기타를 다시 둘러매려는데 이벤트 회사 직원이 의자와 통기타를 하나 더 가져와서 석호의 옆에 놓았다. 석호가 나를 향해 손짓을 했다.


  “영기야, 이리 와.”


  석호의 결혼식이었으니 석호가 하라는 대로 석호의 옆에 가서 앉았다.


  “영기야, 우리 꿈의 대화 한 번 땡기자.”


  예정에 없던 일이었다. 석호가 하자고 하니 어쩔 수 없이 통기타를 잡았다. 베이스 기타에 익숙해지고 나서 심심풀이 삼아 석호에게 배운 것이었다. 키보드를 치면서도 기타 욕심을 버리지 못하던 철우 때문이기도 했다. 키보드를 버리고 기타 두 개로 사운드를 만들자고 늘 졸라대는 철우가 석호에게 시위를 하느라 기타를 칠 때 나도 통기타를 쳐보고 싶다고 석호를 졸라 배운 것이었다.

  연습실에 석호와 내가 둘만 남아 있다가 심심할 때면 둘이서 기타를 잡고 노래를 부르곤 했었는데, 그때 가장 많이 부른 노래가 바로 ‘꿈의 대화’였다. 석호가 어린 시절 친구 둘이서 이 노래를 부르는 것을 보고 자기도 꼭 해보고 싶었는데, 나를 만나서 소원을 이뤘다며 좋아하던 기억이 생생했다. 톤이 다른 석호와 내 목소리가 어우러지는 게 나도 듣기가 좋았다. 전자 악기 소리가 아닌 어쿠스틱 기타의 소리는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누구도 아닌 석호와 함께 부르는 것이었으니 나는 그 시간들이 행복할 수밖에 없었다.


  석호는 하모니카까지 목에 둘렀다. 나한테 말을 하지 않고 혼자서 계획을 세우고 준비를 한 듯 했다. 자기 결혼식이라고 완전히 자기 마음대로였다. 석호와 나는 눈짓을 주고받으며 전주를 시작했다. 석호가 부는 하모니카 소리가 강당에 퍼졌다. 신랑 신부의 부모님에게 눈도장을 찍으려고 참석한 하객들에게도 익숙한 전주 멜로디라서 바로 호응이 왔다. 석호와 나는 주거니 받거니 혹은 함께 노래를 불렀다.


  ♬ .... 외로움이 없단다 우리들의 꿈속엔 서러움도 없어라 너와 나의 눈빛엔 마음 깊은 곳에서 우리 함께 나누자 너와 나만의 꿈의 대화를.... ♬


  어르신 하객의 호응에 힘입어 석호는 예정되어 있던 트로트 한 곡을 뽑았다. 나훈아였다. 몇몇 어르신들이 전국노래자랑의 관객처럼 자리에서 일어나 덩실덩실 춤을 췄다. 석호가 예정에 없던 꿈의 대화를 넣은 것이 이런 반응을 이끌어내기 위한 연출인 것 같았다. 앨범도 안 팔리고, 그러니 석호가 부르는 노래를 아는 사람이 거의 없어도 석호는 공연 연출 하나만큼은 탁월했다. 대학 시절 공연을 할 때부터 관객들의 반응을 이끌어내는 데에는 탁월한 능력이 있었다.

  나훈아의 노래에 이어서 신나게 우리의 노래를 부르고, 석호는 쉬는 겸해서 잔잔한 노래를 한 곡 불렀다. 결혼식의 또 다른 주인공 신부 은정이를 위한 헌사이기도 했다.


https://youtu.be/dinn-CoSeFM

N.EX.T – 먼훗날 언젠가


  마지막 곡을 남겨 두었을 때, 객석 맨 앞줄에 앉아 있던 석호 아버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옆에 앉은 석호 어머니가 아버지의 팔을 잡고 주책이라고 끌어 앉히려는 것을 뿌리치고 석호 아버지는 무대 위에 올라와 석호가 건네는 기타를 어깨에 둘러맸다. 합주를 할 때 연습실에 자주 찾아온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신랑 아비 황만수올시다. 나도 왕년에 딴따라 좀 하다가 결혼하고 자식들 낳고 먹고 사느라 못하고 살았는데, 이놈이 날 닮아서 기타 치는 걸 좋아하더니 이렇게 딴따라가 됐지 뭐요. 내가 딴따라 할 때 정말 유명했던 신씨 아들놈이 이 나라에서 기타 제일 잘 친다고 소문이 자자한데, 내 아들놈도 그놈 못지않게 기타 잘 치고 노래도 잘 한다우. 이놈이 나 닮아서 뚱뚱해 가지고 연애 한 번 못하나 싶어서 걱정했드만 갑자기 결혼하겠다고 이쁜 며느리 데리고 와서 내가 기분이 좋아가지고 여기 올라왔어요. 옛날 생각도 나고, 아들놈이랑 같이 있으니까 든든하고 좋수다.”


  석호와 아버지가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을 보니 정말 판박이였다. 저렇게 닮았는데, 베이스 기타를 사러 갔을 때 왜 못 알아봤는지 의아할 정도였다.

  붕어빵 같이 닮은 아버지와 아들이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다. 이 세상의 남자라면 모두가 원하는 것. 바로 ‘미인’이었다. 한 번 보고, 두 번 봐도 자꾸만 보고 싶은 그런, 그 누구의 애인인지 정말 궁금해지는 그런, 나도 사랑하고 모두 사랑하는 그런.... 미인.... 나에게는 그 미인이 석호였고, 이제 석호에게 그 미인은 은정이였다. 석호는 물론이고 석호의 아이까지 가진 여자. 석호의 옆에 이제 은정이가 있으니 내가 밴드를 떠난 명분이 내 스스로도 확실히 서는 셈이었다.


  모든 공연이 끝나고 사진 촬영이 이어졌다. 여느 결혼식처럼 부부와 가족들 다음으로 친구들 순서로 촬영이 진행되었다. 신랑측 친구들은 정말 화려했다. 죄다 클럽에서 밴드를 하는 사람들이었으니 머리에서 옷까지 모두 개성이 넘쳤다.

  식사까지 끝내고 신랑 신부의 친구들은 모두 피로연 장소로 이동을 했다. 석호 플라이의 홈그라운드 클럽이었다. 신혼여행 비행기가 밤 시간이어서 결혼식 피로연은 늦은 시간까지 이어졌다. 술판이 벌어진 것은 너무나 당연하고, 여러 밴드들이 몰려 있었으니 계속 풍악이 울려 퍼졌다. 마음이 편치 않은 나는 바깥에 나와 담배만 줄창 피웠다.


  “너 여기 있었구나? 한참 찾았잖아.”


  철우였다. 철우도 내 옆에 쭈그리고 앉아 담배를 피워 물었다.


  “왜 찾았어?”


  “차에 풍선 달고 해야지. 그거 같이 할 사람이 너밖에 없잖아. 지금 민구는 술 빤다고 정신 없는데....”


  담배를 피운 뒤 철우는 나를 데리고 골목 안으로 들어갔다. 딱 봐도 새 차인 것이 분명한 스포티지 한 대가 있었다.


  “씨.발.... 내가 저 새끼 웨딩카 해주려고 차 산 거 같네.”


  “우와~ 이거 니 차야?”


  “응. 얼마 전에 큰맘 먹고 한 대 뽑았어. 애가 있으니까 자꾸 택시 타게 되더라고. 그 돈으로 차 사는 게 나을 거 같아서.... 좋지?”


  “응. 부럽다.”


  “씨.발 부럽긴.... 너두 차 뽑아. 이제 직장인인데.... 너 돈 많잖아.”


  “풍선은 어딨어?”


  철우는 주머니에서 종이박스를 꺼내 나에게 던졌다. 콘돔이었다. 그것도 돌기가 있는 특수형이었다.


  “이게 뭐야?”


  “콘돔 몰라? 너도 콘돔 안 끼냐?”


  “아니, 콘돔을 몰라서가 아니고, 뜬금없이 콘돔을 왜 주냐고?”


  “씨.발, 가운데 다리 잘못 놀린 새끼한테는 이게 딱이지. 빨리 꺼내서 불어.”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웃으면서 콘돔을 꺼내 불었다. 보통의 풍선이랑 달리 불기가 쉽지 않았다. 기름기 때문에 자꾸만 미끌거려서 더 그랬다. 철우가 씁쓸한 목소리로 혼잣말처럼 나에게 말했다.


  “석호 저 새끼 좀 걱정 되고 불안불안하다.”


  “왜?”


  “잘 살까 싶어서.... 씨.발, 내가 죽자사자 따라다녀서 결혼을 해도 가끔 내가 결혼을 왜 했나 싶을 때가 있는데.... 석호 저 새낀 그런 것도 아니잖아. 은정이 싫다고 귀찮다고 하던 앤데.... 너도 알지? 석호가 마음에 두고 있는 여자 있다는 거.”


  “응. 근데 뭐 있으나 마나지. 고백도 못하고 혼자서만 짝사랑한 건데.... 은정이가 석호 좋다고 따라다녔으니까 잘 살겠지. 민구 말로는 은정이 임신한 거 알고 석호가 바로 책임진다고 결혼하자고 했다던데.... 석호 성격 알잖아. 끝까지 책임지는 거.... 그럼 된 거 아냐?”


  “민구 새끼 때문에 더 그런 거지.... 너니까 하는 말인데.... 진짜 또.라이 새끼들 아냐? 이럴 줄 모르고 했다 치더라도, 친구랑 같이 잔 애랑 어떻게 결혼까지.... 같이 사진 찍을 때 내 얼굴이 다 화끈거리더라. 씨.발새끼들.... 진짜 10년 넘은 친구 아니었으면 내가 욕을 바가지로 했을 거야. 그놈의 친구가 뭔지....”


  철우의 말도 틀린 게 아니었다. 철우 아내랑 그렇듯이 자주는 아니더라도 민구와 은정이도 가끔 보는 사이가 될 텐데 조금, 아니 볼 때마다 어색할 것 같았다. 하지만 이왕 벌어진 일이고, 그런 건 두 사람이 해결할 문제인 것이라 섣불리 넘겨짚을 일은 아니었다.

  콘돔 풍선을 다 붙인 뒤 철우가 클럽 안으로 들어가서 마무리하는 분위기로 만들었다. 모여 있던 사람들은 석호를 차에 태우기 전에 신발을 벗겨 발바닥을 때리고, 헹가레를 치려다 석호의 몸집에 눌려 제대로 들지를 못해 길바닥에 패대기를 쳤다. 


  철우가 결혼을 했을 때처럼 술에 취한 민구는 그냥 택시를 태워 집에 보내고, 철우는 나랑 신혼부부를 태워 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으로 가는 동안 석호는 혀 꼬부라진 소리로 연신 지껄여댔다.


  “영기야, 나 사이판 가는 거 알지? 씨.발.... 우리 다 같이 가야 되는데.... 우리 단체로 게임의 법칙 보고 박중훈처럼 사이판 가자고 그랬잖아.... 영기야, 철우야, 내가 먼저 사이판 갔다 올 테니까 우리 다음에 다 같이 사이판 가자.... 사이판.... 사이판 가는 거야~~~~”


  “씨.발, 대가리 총 맞았나....”


  철우가 운전을 하면서 나에게만 들릴 듯한 소리로 작게 혼잣말을 했다.

  박중훈의 양아치 연기가 돋보였던 게임의 법칙은 비디오를 빌려 연습실에서 모두 함께 본 영화였다. 마지막 공중전화부스 장면은 욕망 성취의 목전에서 한 순간에 그것이 좌절되는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이라 아직도 가슴에 아릿하게 남아 있다. 거기에 더해 이경영이 남자에게 몸을 파는 장면 때문에 나에게는 조금 씁쓸하게 남아 있는 영화이기도 했다.

  사이판이라는 곳이 있는 줄 그 영화를 통해 처음 알게 된 우리는 걸핏하면 박중훈과 이경영을 흉내 내며 사이판 가자고 지껄였었다. 사이판은 젊었던 우리들에게 미지의 세계이자 일종의 로망이었다. 

  그런 사이판에 신혼여행으로 간다고 석호는 신이 나 있었고, 철우는 그것을 못마땅해 했다. 박중훈이 머리에 총을 맞는 것을 연상시키는 철우의 말에는 가족보다 더 가까이 지내온 석호에 대한 안쓰러움이 묻어 있었다.


  석호 부부를 보내고 철우가 나에게 물었다.


  “나 보낼 때도 이런 기분이었냐?”


  “어떤 기분인데?”


  “아까도 말했잖아. 걱정되고 불안불안 하다고.”


  “너 갈 때 다들 너 많이 부러워했어....”


  “씨.발 부럽긴.... 넌 기분이 어때? 석호 부러워?”


  솔직히 부러웠다. 석호가 아니라 은정이가 많이 부러웠다. 부러울 수밖에 없었다. 부부라는 것은 세상이 공식적으로 인정을 해주는 것이었으므로 나 같은 게이는 절대로 느껴볼 수 없는 것이라 정말 부러웠다. 이런 상황에서도 나는 내 감정을 숨겨야 했다.


  “글쎄.... 그냥 은정이가 소원성취해서 잘됐다는 생각이 드네.... 너도 너무 걱정하지 마. 은정이가 석호 많이 좋아하니까 잘 살 거야.... 그럼 운전 조심해서 가.”


  “에휴~ 씨.발.... 나도 모르겠다.... 바래다줄게 타.... 괜찮아. 제발 좀 너도 이제 친구 이용해 먹고 살아. 우리는 걸핏하면 너 이용해 먹었는데.... 빨리 타.”


  철우는 지하철역에 세워 달라는 내 말을 무시하고 기어코 아파트 입구에 나를 내려줬다. 나는 철우의 차 뒤꽁무니가 사라질 때까지 가만히 서 있다가 발길을 돌렸다. 집이 아니라 잘 가는 노래방 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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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호가 결혼했군요 슬슬 1화에 나온 석호 아들도 나오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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