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여우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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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의 창가에 앉아 벌써 두시간이 넘도록 재훈은 창밖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2층의 창문을 통해서 그 너머에 나 있는 좁은 일방통행로가 눈에 띄었다. 그리고 그 길 위를 택시와 승용차들이 줄지어 그의 시야의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느릿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 도로를 건너 그 동네의 먹자골목이 형성되어 있었다.

 

그는 그렇게 앉아 길 건너편의 꽤 큰 체인점 갈비집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회사에서의 스케줄을 대충 끝낸 후, 그는 곧장 이리로 왔다.

 

그리고, 갈비집 앞에서 휴대폰을 꺼내 그가 형우에게서 받은 주소를 다시한번 확인하고 나서도 막상 그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한참을 문 앞에서 서성거렸다.

 

그렇게 한동안 그 주변을 배회하던 그가 마침내 길 건너편의 체인점 카페에 들어와 2층 창가에 자리를 잡고 앉게 되었다.

 

여전히 빤히 창밖으로 길 건너편의 갈비집 건물을 내려다 보면서도 그는 형우가 보낸 문자의 내용을 믿지 않고 있었다.

아니,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 절대로 믿고 싶지 않았다 는 편이 맞는 듯 했다.

 

형우가 잘못된 이야기를 들었거나 형우에게 그 말을 전달한 사람이, 그가 누구이건, 사람을 잘못 본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겨우 한달 전 즈음에 그가 손하를 만났고, 그때 손하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이제 대리로 승진도 했고 본인 스스로의 삶을 살고 싶다....

 

손하의 회사에 전화를 걸어 확인해 볼 수도 있었고, 아예 손하에게 전화해서 사실을 직접 그의 입을 통해서 들어 볼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휴대폰의 창에 떠 있는 그의 전화번호를 빤히 내려다 보면서도 결국 그는 통화버튼을 누르지 못하고 말았다.

 

그렇게 하염없이 창밖의 길건너에 있는 건물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을 때 그 갈비집의 작은 뒷문이 열리는 것이 보였다.

한 젊은 남자가 그 갈비집의 로고와 이름이 선명하게 박혀있는 검은색 앞치마를 두르고 양손에는 큼지막한 쓰레기 봉투를 들고 나왔다.

그리고 한쪽 구석에 대충 만들어 놓은 듯한 나무로 된 보관창고를 열고 그 남자는 힘겹게 그 봉투를 그 안으로 밀어 넣었다.

 

양손을 자신이 두른 앞치마에 대충 한번 문지른 다음, 그는 다시 쪽문을 열고 안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런 그를 보고 재훈은 심장이 멎는 듯 했다.

 

형우가 보낸 문자는 사실이었다. 방금 그것을 재훈은 자신의 두 눈으로 확인했다.

답답해진 가슴으로 숨을 쉬는 것 마저 힘들어보이는 듯한 표정으로 한숨을 몰아 쉬고는 그는 고개를 떨구었다.

 

한참을 그는 팔꿈치를 테이블위에 괴고 두손으로 얼굴을 감싼채로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휴대폰에 문자가왔다는 착신 신호가 울렸을 때에야 비로소 그는 무거운 그의 머리를 들고 손을 뻗어 화면을 열고 그것을 확인했다.

 

또 다시 휴대폰을 손에쥐고 한참을 망설이는 듯 보이던 그가 마침내 누군가의 번호를 찾아 통화버튼을 눌렀다.

 

신호가 한참을 울렸다. 재훈은 상대가 전화를 받을때까지 인내심 있게 기다렸다.

그리고 그렇게 휴대폰을 귀에 대고 창밖을 내다보고 있는 그의 눈에 다시 쪽문이 열리고 아까와 똑같은 복장으로 손하가 밖으로 나오는 것이 보였다.

 

여보세요?”

길 건너편의 갈비집의 담벼락에 기대어 휴대폰을 귀에 대고 있는 손하의 목소리가 재훈의 휴대폰을 통해서 흘러나왔다.

나야..” 힘겹게 꽉막힌 목소리로 간신이 재훈이 대답을 했다.

왠일이야?”

꼭 해야할 말이 있는데, 지금 바빠?”

, 지금 과장님하고 팀원들 모두 회의중이라....” 왼손으로는 자신의 휴대폰을 귀에 대고 오른손으로는 끊임없이 앞치마의 한쪽에 손바닥을 문지르면서 그가 자신의 주위를 한번 둘러보았다.

그래...” 그런 그의 모습을 내려다보면서 재훈이 마치 혼잣말 하듯 대답을 했다.

회의하다가 나온거라... 나중에 다시 통화하자.”

그래.”

휴대폰을 바지 뒷주머니에 넣고 손하는 황급히 그 작은 뒷문을 열고 그 안으로 다시 사라졌다.

 

멍하니 그가 사라진 그 쪽문을 한참을 내려다보던 재훈이 다시 옆에 놓여있던 휴대폰을 집어들었다.

 

, 오늘 나좀보자.”

상대방이 전화를 받기가 무섭게 재훈이 거칠게 말했다.

그리고 간단하게 시간과 장소를 말하고는 상대방이 뭐라고 반응을 보이기 전에 그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무거운 몸을 일으킨 후 다시한번 창밖으로 한번 시선을 준 후에 그는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너지?”

종업원의 안내를 받고 자신이 있는 룸으로 들어와 자신의 맞은편 자리에 털썩 주저앉는 하준을 보며 재훈이 입을 열었다.

그런 그를 흘끗보고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검은 유니폼을 입은 종업원이 고개를 한번 숙여보이고 문을 닫고 사라졌다.

뭐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하준이 그런 재훈을 바라보았다.

뭐가 나라는거야?”
말을 잇지 못하고 재훈은 그런 하준을 노려보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인데 그래?”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하준이 히죽거렸다.

손하..”

“......”

, 걔한테 무슨 짓 했어?”

내가 그 사람한테 무슨 짓을 해?”

여전히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눈을 똥그랗게 뜨고 그가 재훈을 바라보았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내가 무슨 싸이코냐?”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그가 목소리를 높였다.

나도 그 사람에 대해서 들은 소문은 있지만, 나와 상관 없어.”

“......”

절대, 나 아니야. 네버!” 그가 두 팔을 들어 엑스자로 만들어 보이고는 마치 확신이라도 시키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무슨 소문?”

그런 그를 빤히 바라보면서 재훈이 입을 열었다.

말해 봐.”

뭐야, 형 몰랐어?”

재훈을 빤히 보면서 하준이 피식하고 웃었다.

그래도 전 애인이라면서..”

그냥 말 해.” 재훈이 그런 그를 노려보았다.

나도 그냥 들은건데...” 마지못한 듯 하준이 입을 열었다.

그 사람 다니던 회사 게시판에 누가 그 사람 게이라고 글 올렸대.”

“.......”

다른 남자하고 키스하는 사진도...”

“.......”

그 사람도 참 그렇다.”

어둡게 변한 재훈의 표정을 흘끗 보고서 하준이 계속 말을 이었다.

그게 무슨 대단한 일이라고 회사까지 때려쳤대? 당당하게 아무일 없는 것처럼 그냥 웃어넘기고 계속 다니면 되는거지...”

“.....”

그게 무슨 죄도 아니고....”

입 다물어라.”

낮은 목소리였지만 그런 그의 말투에서 그가 간신히 화를 참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챈 하준이 어깨를 한번 으쓱해 보이고 몸을 일으켰다.

어디가냐?”

나도 커피한잔 마시려고 그런다.” 그렇게 말을 툭 던지고 하준이 룸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일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꼬이기 시작했는지 재훈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자신은 그저 젊음을 잠깐동안 즐기길 원한 것 뿐이었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행동이 피해가 가기를 바란 것은 아니었다. 특히 자신 때문에 직,간접적으로 타인의 삶에 좋지않은 영향을 끼치게 된다는 것은 절대 그가 원하는 것은 아니었다. 특히 그가 한때는 사랑했고, 가까이 지냈던 사람들이라면 더욱 그렇다.

 

하준이 아니라면...

그는 머릿속으로 그가 아는 사람들을 한사람이 떠올리기 시작했다.

손하가 게이인 것을 알고 키스하는 사진을 올렸다면, 그것은 거의 백퍼센트 자신의 모습이었을 것이고 자신과 손하를 아는 사람의 소행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녀석이 아니라면.... 딴이 떠오르는 사람이 없었다.

아니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녀석 밖에는 그런 짓을 할 사람이 없기 때문인 것이다.

 

 

문이 열리고 하준이 직접 손에 칵테일 한 잔을 들고 돌아와 앉았다.

 

너가 아니면....”

칵테일을 입에 갖다 대는 녀석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면서 재훈이 입을 열었다.

누구야?”

그의 묻는 말에 다시한번 녀석이 어깨를 으쓱 해 보였다.

그럼.. 누구한테 들었어?”

현식이 형.”

누구마치 그가 누구인 줄 모른다는 표정으로 한쪽 눈썹을 치켜올리고 재훈이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술번개 방장있잖아. 형하고도 친한거 같던데 뭘 그래.”

“......”

저번에 형한테 번개 오라고 하고 엄마가 급하게 찾아서 집에 오게 된 그날.... 그날, 그 손하라는 사람도 거기 왔었잖아.”

“......”

그날 들었어. 그 방장형한테서...”

 

 

! 그리고....”

무엇인가 생각에 잠긴듯한 재훈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다시 하준이 입을 열었다.

형이 왜 나한테 이러는지 알고 있어.”

그의 말에 재훈이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래. 내 성격 못돼먹고 더러운거 나도 인정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나도 잘 모르는 사람한테 일부러 그런짓은 안하지.”

그의 말에 일그러진 표정으로 비웃듯이 재훈이 피식 하고 웃었다.

, 뭐야. 그 웃음은?”

굳어진 얼굴로 그가 재훈을 빤히 바라보았다.

.”

재훈이 녀석을 노려보았다.

너가 유학이라는 핑계로 왜 일본에 가야했는지 내가 모를 것 같지?”

“.....”

술 취해서 생판 모르는 남에게 찝쩍대다가 차이니까 그 사람을 반 죽도록 두들겨 팼다면서?”

누가 그래?” 그가 험악한 표정으로 재훈의 눈을 뚫어지게 쏘아보았다.

 

순간 본능적으로 재훈의 몸이 움찔 했다. 녀석의 인간성이 없는 사이코기질이 밖으로 나와서 자신도 감당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질까 순간 두려워졌다.

 

어떤 새끼가 무슨 말을 지껄였는지 모르겠지만....”

한 손에 반쯤 남아 있는 칵테일 잔을 움켜쥐고 그가 여전히 재훈을 똑바로 노려보면서 말을 이었다.

그 새끼가 먼저 내 애인에게 찝쩍거렸어.”

너 고딩때 수능 본 날이었다며...” 자신도 모르게 입 밖으로 말이 튀어나왔다.

, 씨*발!”

하준의 눈이 커지고 입 꼬리가 내려가기 시작했다.

수능 보는 고딩은 애인도 못 만들어?” 녀석이 소리를 질렀다.

“.....”

그 자식이...” 뚫어지게 재훈을 바라보면서 그가 말을 이었다.

나이도 처먹은 게 술이나 얌전히 처먹지 우리한테 와서 껄떡댔다고,,,"

“......”

애인 사이라고 했는데도 계속 수작걸면서 한번 대주면 용돈준다고!”

“.......”

이 세상에 어떤 사람이 그런 말 들었는데 가만있어? 누가 참아?”

“.......”

형한테 그런 말 한 놈한테 가서 말해. 쥐뿔도 모르면 남의 말 함부로 지껄이지 말고 입 쳐닫고 살라고!”

 

 

그렇게 말하고 하준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몸을 돌려 룸의 문쪽으로 향했다.

형은 도대체 뭐냐?”

발을 멈추고 그가 다시 재훈을 돌아보았다.

형 주변에 있는 사람들 중에서 형이 정말로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있기는 한거냐?”

“......”

그 사람이 고기집에서 일하는 것도 이제야 알게 된 주제에....”

마치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재훈을 한번 돌아보고는 그가 문을 열고 나가버렸다.

 

 

그의 등 뒤로 닫힌 문을 멍하니 재훈은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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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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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는 얽힐수록 오해는 늘고 깊어진다.
진심이 의심받는 그 순간들엔 더더욱.
사람에 대한 진지함을 생각하며 읽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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