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아라 황석호 -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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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남자 혼자 사는데, 우리집보다 더 깨끗해. 나랑 영지가 계속 쓸고 닦고 해도 이 정도는 아닌데....”


  “애들이 있으니까 그런 거지. 나는 애도 없고 아예 어지르지를 않잖아. 방에 가서 앉아. 에어컨 틀어놨어.”


  철우는 석호와 함께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문이란 문은 다 열어봤다. 방문은 물론이고, 서랍장과 싱크대 선반까지 다 열어봤다. 3년 가까이 사는 동안 완전히 자리가 잡혀서 집안에 있어야 할 것들이 모두 다 갖춰져 제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석호가 감탄을 하며 말했다.


  “이제 진짜 사람 사는 집 같애. 너 단칸방에 살다가 2층 독채 갔을 때도 짐 거의 없었잖아. 책이랑 옷이 전부였는데.... 옷도 상자에 쌓아두고.... 이영기 이제 특별시에 완전 말뚝을 박았어.”


  “쓸데없는 소리하지 말고 빨리 가서 앉아. 난 안주 좀 만들어 갈게.”


  가장 편하고 빨리 만들 수 있는 소시지야채볶음을 접시에 담아 방으로 들어갔다. 혹시나 영오도 먹을 수 있을 것 같아 일부러 간을 세게 하지 않았다.

  철우는 운전 때문에 첫 잔만 비우고, 나머지 술은 석호와 내가 나눠 마셨다. 한 사람이 술을 마시지 않는 대다 석호도 나도 그다지 술을 즐기는 편이 아니라 어쩌다 한 번씩 목을 축이는 수준이었다.


  이야기는 자연스레 과거로 흘렀다. 세 사람의 공통 화제는 밴드 생활밖에 없었으니 서로의 기억 속에 재미나게 남아 있는 것들을 끄집어냈다.


  “석호야, 너 영기 처음 봤을 때 기억나지? 이 새끼 악기 연주도 못하면서 뭔 배짱으로 왔는지.... 나 그 때 아예 개무시했잖아. 그러고 보면 민구가 참 성격 좋아. 영기 생각해서 조심스럽게 거절했잖아. 석호 너는 사람 보는 눈이 있고....”


  석호는 철우의 말을 듣기만 할 뿐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철우가 말을 이었다.


  “괜히 너한테 미안해지네.... 너 잘생긴 거 가지고 질투하고.... 그땐 정말 내가 어렸던 거 같애. 내가 영기 너처럼 생겼으면 존.나 잘난 척 하고 그랬을 텐데, 넌 그런 것도 없었잖아.”


  “씨.발, 이제 알겠냐? 내가 너 얼마나 원망 많이 했는데.... 잘생긴 게 죄지 뭐.... 그때 정말 재밌었다 그치?”


  “응. 정교 빠지고 너 들어온 게 정말 다행이었어. 정교가 계속 했으면 아마 우리 그냥 뒷방 늙은이로 빠졌을지도 몰라. 어차피 정교는 본과 가기 전에 잠깐 한 거였으니까.... 석호야, 너 정교 소식 들었어?”


  석호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몰라. 그딴 새끼 관심 없어.”


  “아우 저 성질머리.... 하긴 나도 정교가 한 살 많다고 깝치는 거 싫었으니까.... 민구가 같은 리듬 파트라고 정교 제일 잘 챙겼는데 나중엔 민구도 짜증냈으면 말 다 한 거지 뭐. 민구 지금쯤 비행기 내렸을라나....”


  “민구 신혼집은 어디야?”


  내 질문에 철우가 답했다.


  “우리 아파트. 민구 그 새끼도 나처럼 바득바득 우겨서 지네 아버지한테 집 하나 얻어냈잖아. 강남에 있는 아파트가 뭔지.... 그거 때문에 처갓집 허락 받아냈을 걸? 진짜 민구가 하나부터 열까지 나를 따라했네.... 하하하하하.”


  “하하하하 좋은 건 배워야지.... 에휴~ 난 강남 아파트 사주는 아버지가 없으니까 결혼도 못하고 평생 혼자 살아야겠네.”


  “지랄을 해라. 민구나 나는 변변한 수입도 없는 딴따라니까 그런 거고, 너는 월급 따박따박 나오고, 잘릴 위험도 없는 공무원에, 아파트에, 살림살이까지 다 갖추고 있는데 뭔 엄살이야. 당장 결혼해도 되겠구만.... 너 사귄다는 여자는 잘 돼 가?”


  “헤어졌어. 너도 알잖아. 나 사람 오래 안 만나는 거.... 이번에는 오래 좀 만나볼까 했는데 개 버릇 남 못 주는 게 딱 맞아. 몇 번 따먹으니까 금방 질리더라.”


  “또 만나는 여자 없어?”


  “귀찮아. 그냥 혼자 사는 게 편해.”


  그동안 말이 거의 없던 석호가 입을 열었다.


  “그래 맞아. 혼자 사는 게 편해. 만나는 여자 없으면 결혼하지 말고 혼자 살아. 그게 속 편해.”


  “야, 황석호, 넌 말을 왜 그렇게 해? 니가 그런 걸 왜 영기한테 결혼하지 말라고 하냐? 자기가 잘못해서 코 꿰여 놓고.... 내가 그 씨.발년이랑 결혼하지 말라 그렇게 말했는데 내 말 안 듣더니 꼴 좋다.”


  내가 영지라도 된 것처럼 철우에게 한 마디를 던졌다.


  “야, 넌 애 아빠가 애 있는 앞에서 욕을 하고 지랄이냐?”


  “뭐 어때. 영오 아빠는 지 아들 앞에서 나보다 더 많이 하는데....”


  “아우 씨.발.... 그년 얘기는 왜 꺼내, 기분 조ㅈ같게....”


  나는 석호에게 짜증을 냈다.


  “야, 애 앞에서는 욕 좀 하지 마. 애가 뭘 배우겠냐? 담배 피고 욕하고.... 아빠 맞아?”


  “나두 그렇게 컸다니깐. 얘도 크면 욕도 할 거고 담배도 필 건데 뭐 어때. 조기교육 받는 셈치는 거지.”


  철우가 석호를 향해 실소를 하며 나에게 말했다.


  “씨.발.... 이 새끼 이렇게 말해도 지 새끼 하나는 끔찍하게 아껴. 그러니까 영기 너 잔소리 안 해도 돼.... 야, 황석호. 그나저나 너 언제까지 영오 혼자 데리고 살 거야? 그냥 어머니한테 맡기라니깐. 니가 부모님 집에 다시 들어가든지.”


  “내가 직장 생활을 하는 것도 아닌데 애를 어떻게 맡겨.... 내 애니까 그냥 내가 키우는 거지. 집에는 쪽팔려서 못 들어가겠다고 그렇게 말해도 또 그런 말은 왜 꺼내 가지고 사람 속을 뒤집냐?”


  “답답하니까 그렇지. 오늘 같은 날은 맡기고 와도 되잖아.”


  “너 황영오 몰라? 그렇게 자주 보는 너랑 민구 옆에도 잘 안 가려는 놈인데, 얘가 지 할머니랑 잘도 있겠다.”


  “크크크크 영오도 자기 맘대로 사네.... 아빠랑 똑같아.... 천하의 황석호가 자기 맘대로 안 되는 사람이 생겼어. 꼬시다 짜식아.”


  철우는 석호를 계속 놀렸다. 옛날로 돌아간 것 같아 나도 오랜만에 즐거웠다. 영오는 석호와 내 사이에 앉아 내가 만들어준 간식을 잘 먹었다. 이렇게 순한 아이가 자기 마음에 안 들면 떼를 쓰면서 울고불고 한다는 것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9시가 넘어서면서 영지에게 전화가 왔다. 영지는 더 놀라고 하는 것을 철우가 데리러 가겠다고 했다.


  “석호 너는 어쩔 거야? 지금 갈 거면 가는 길에 내가 내려 줄게.”


  “영기야, 나 오늘 니네 집에서 자고 가면 안 돼?”


  나는 예상치 못한 석호의 말에 선뜻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석호가 핑계를 댔다.


  “집에 가봐야 할 일도 없고....”


  “그래. 자고 가. 언제는 뭐 니가 내 허락 받고 잔 것도 아니잖아. 너 맘대로 해.”


  “그럼 나 먼저 갈게....”


  철우가 신발을 신으면서 나에게 한 마디를 던졌다.


  “연습실에 놀러오고 좀 그래라. 너 얼굴 보려면 결혼을 하든지 돌잔치를 해야 되잖아. 까닥하다간 민구 애 돌잔치 때나 보겠네.”


  “그래 알았어. 시간 나면 놀러 갈게. 운전 조심하고....”


  “그래 잘 있어.”


  술상을 대충 치우고, 석호와 나는 침대에 기대고 앉아 TV를 봤다. 한동안 말이 없던 석호가 나에게 물었다.


  “사는 게 재밌어?”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아니. 그냥 살아. 먹고 살아야 되니까. 넌 사는 게 재밌어?”


  “뭐 옛날하고 똑같지. 내가 하고 싶은 거 하고 사니까 나름 괜찮아. 영오랑 노는 것도 재밌고.... 너.... 밴드 안 하고 싶어?”


  당연히 하고 싶었다. 내가 그만 두고 싶어서 나온 것도 아니었으니 더욱 그랬다. 하지만 고수익을 올리던 과외도 다 사라진 마당에 그나마의 월급을 받아야 먹고 살았으니 하고 싶다고 덤빌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냥 이렇게 사는 거에 익숙해졌어. 나는 적극적으로 밀어주는 아버지도 없고, 등 처먹고 살 마누라도 없는데.... 월급이라도 받고 살아야지....”


  석호는 또 한동안 말이 없다가 입을 열었다.


  “앨범 또 하나 낼 거야. 아직 곡이 다 안 모여서 당장은 아니고 내년쯤에 나오겠지.... 너 노래 한두 곡 불러줄 수 있지?”


  “노래 안 한 지 오래 돼서 잘 될지 모르겠네.... 생각해 볼게.”


  “씨.발....”


  석호가 갑자기 욕을 했다. 뜬금이 없는 것이었다. 내가 바로 허락하지 않고 생각해 본다며 한 발 뺀 것이 심기를 건드린 것이 아닌가 싶었다.


  “너한테 쪽팔려 죽겠어.”


  “뜬금없이 뭐래? 뭐가 쪽팔려?”


  “사고 쳐서 결혼한 것도.... 얼마 살지도 못하고 헤어진 것도....”


  “뭐 사람이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는 거지.”


  “존.나 쪽팔려서 너한테 바로 말도 못하고.... 민구하고 철우한테 미뤘어.... 씨.발.... 그냥 여기서 담배 피면 안 되냐? 베란다 나가기 존.나 귀찮아.”


  나도 마찬가지였다. 에어컨을 끄고 문이란 문은 다 열어 놓고 석호와 담배를 피웠다. 영오가 걱정되었으나 앉은뱅이 책상 앞에서 이것저것 만지며 놀고 있어서 괜찮을 듯했다. 아빠도 피우는데 뭐 어떠랴 하는 마음도 있었다.


  “내가 먼저 보냈어. 조금이라도 젊을 때 딴 데 시집가라고.... 그래서 영오도 내가 맡은 거야. 저 녀석 없었으면 어쩔 뻔했나 싶다. 영오 크는 거 보는 재미로 살아. 아버지가 나를 두 번 키우는 거 같대. 나도 어릴 때 낯 많이 가리고 그랬다나....”


  “혼자 키우는 거 힘들지 않아?”


  “내 새끼니까 힘들어도 어떡해. 키워야지.... 나랑 안 떨어지려고 해서 공연할 때마다 전쟁이야. 울고불고 난리를 쳐서 내가 업고 공연한 적도 있다니깐. 웃기지?”


  하나도 안 웃겼다. 그저 안쓰럽기만 했다. 언제나 자유롭게 살고자 했던 석호가 자신이 낳은 아이 때문에 속박을 받는 것 같아서였다. 자기가 마음에 두고 있던 여자와 결혼을 해서 영오를 낳았으면 자유를 온전히 누리면서 밴드를 했을 텐데 은정이한테 코가 꿰여서 자유를 상실한 것 같아 나도 속으로 은정이에게 욕을 퍼부었다.


  “너 아직도 마음에 두고 있던 애 좋아해? 걔랑 연락하고 살아?”


  “아직 좋아는 하지.... 근데 쪽팔려서 어떻게 연락해. 자기 앞가림하면서 잘 살고 있는 애를.... 애초에 내 욕심이었어. 걔는 나한테 아무 마음도 없는데 괜히 나만 좋아해서.... 걔 얘기하지 마. 괜히 마음만 아프니까....”


  “미안....”


  “니가 미안할 게 뭐 있어. 그냥 내가 못난 건데....”


  영오가 석호에게 안기며 눈을 비비고 하품을 했다. 


  “영오 졸리나보다. 너 영오 데리고 먼저 씻어. 욕실 수납장에 새 칫솔 있으니까 그거 쓰고....”


  석호는 영오의 옷을 벗기고 자기도 벗었다. 통통하게 살이 찐 영오는 더 귀여워 보였다. 오랜만에 보는 석호도 옛날보다 살이 더 찐 듯 했다.

  석호가 씻는 동안 비어 있는 방에 내가 쓰던 돗자리를 깔고 잠자리를 마련했다.


  “저 방에 돗자리 펴놨어. 영오랑 저기서 자.”


  석호는 내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표정이 그다지 안 좋아 보였다.


  “그럼 니가 영오 데리고 침대에서 잘래? 내가 저 방에서 자도 되니까....”


  “뭔 말이야. 손님이 손님방에서 자야지. 그럼 나 먼저 잘게.”


  그렇게 석호와 영오는 우리집에서 처음으로 자고 갔다. 그런데 이것이 한 번으로 그치지 않았다. 석호는 한 달에 한두 번은 꼭 영오를 나에게 맡겼다. 공연 때문이었다. 영오가 나에게는 낯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이 명분이었다.

  석호가 영오를 맡길 때면 금요일 퇴근 시간에 맞춰 내가 일하는 곳으로 찾아왔다. 내가 영오를 데리고 먹이고, 같이 놀다가 씻기고 재우면 밤늦게 석호가 와서 하룻밤을 자고 다음날 영오를 데리고 갔다.

  처음 두 번은 그냥 바닥에서 재우다가 손님 대접을 제대로 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더블침대를 들여 놓았는데, 오히려 이것이 석호가 자주 우리집에서 자고 가는 계기가 된 것이 아닌가 싶었다.


  아이를 봐야 하는 것이 귀찮은 일임에는 틀림이 없었지만 그 아이가 석호의 아들이라 석호를 위한다는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단조로운 생활에 하나의 변화이기도 해서 나에게 나쁜 일도 아니었다. 영오가 대소변을 못 가리는 아이도 아니었고, 장난도 그다지 심하지 않아서 오히려 심심한 나를 영오가 데리고 놀아주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어린 아이여도 내가 만들어주는 것을 가리지 않고 잘 먹어서 데리고 있기가 정말 수월했다.


  하루하루 시간이 흘러 2004년 벚꽃이 피기 전에 민구는 딸을 낳았다. 그리고 그해 말에 SUKO FLY의 두 번째 앨범이 나왔다. 첫 번째 앨범처럼 10곡 중에 내가 노래한 것이 2곡이었다. 연주는 하지 않고 피처링 형식으로 노래만 했다.

  해가 바뀌어 2005년 새학기가 시작되고 얼마 있지 않아 민구의 딸 돌잔치에 모두 모였다. 어느새 철우는 학부모가 되어 있었다. 민구의 아이에게 줄 금반지와 철우의 아이에게 줄 초등학교 입학 선물을 사들고 돌잔치에 참석했다.

  본격적인 행사가 시작되고, 민구의 딸 보미가 지난 1년 동안 살아온 모습이 사진으로 나타났다. 철우가 사진들을 보며 한 마디를 던졌다.


  “저 김민구 따라쟁이 새끼.... 사진 마지막에 자기랑 딸내미 사진 같이 나오는 거 아냐?”


  영지가 고개를 저었다.


  “아냐. 민구 오빠를 하나도 안 닮아서 엄마랑 딸 사진이 나란히 나올 거야.... 근데 민구 오빠 진짜 따라쟁이네. 영기 오빠가 보미 이름 지어줬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영오만 오빠가 안 지은 거네.... 석호 오빠, 영오 이름 누가 지은 거에요?”


  석호는 영지를 슬쩍 돌아보고 짧게 말했다.


  “내가.”


  “좀 이쁘게 짓지.... 우리 반에 특이한 이름이 몇 명 있는데, 이름이 특이하니까 괜히 특별해 보여....”


  석호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이름이 뭐가 그리 중요하다고.... 영기도 미역기 소리 들어가면서 잘만 살았는데 뭐. 영지 너도 아들 딸 낳고 잘 살잖아. 그냥 이름은 아무렇게나 짓는 거야. 막 불러야 나쁜 귀신도 그냥 간다니깐. 영오가 안 좋은 환경에 살아도 병치레 한 번 안 하고 잘만 크잖아. 내가 다 이름을 잘 지어서 그런 거야.”


  영지의 말대로 화면에 엄마와 딸의 돌사진이 나란히 걸렸다. 새초롬한 모습이 너무나 귀여웠다. 민구가 입이 찢어져라 웃었다. 보미는 돌잡이에서 냉큼 돈을 집어 들었다. 정확히 말하면 금화 모양의 초콜렛이었다. 모두가 큰소리로 박수를 치며 웃었다.


  돌잔치가 끝나고 석호는 영오를 데리고 우리집으로 와서 자고 갔다. 이제는 익숙해진 일이라 석호는 자기 집 드나들 듯이 편하게 자고 갔지만 나는 날이 갈수록 힘이 들었다. 밴드를 나올 때부터 억누르고 있던 내 본능이 살아나는 듯 해서였다. 석호가 샤워를 하고 몸을 말린답시고 발가벗고 집을 돌아다닐 때 나는 숨이 턱턱 막혔다. 20대를 지나오면서 석호의 알몸에 익숙해졌다 싶었는데, 지난 몇 년간 전혀 보지 않고 살아서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간 것인지 자꾸만 석호의 자지에 눈길이 갔다. 그나마 영오가 있었기에 내 욕구를 억누를 수가 있었다.


  6월의 어느 날이었다. 주5일 근무라 쉬는 토요일이었다. 그 전날 영오를 데리고 놀다가 밤늦도록 석호가 오지 않아 영오와 함께 잔 날이었다. 아침에 눈을 떠 화장실에 가려는데 석호가 방문을 열고 자는 모습이 보였다. 새벽에 들어온 것 같았다. 그런데 발가벗은 모습이었다. 아침이라 석호의 자지가 하늘을 향해 솟아 있었다. 참고 있던 욕망의 불꽃이 튀었다. 화장실에서 오줌을 누고 폭풍 같은 자위를 했다.

  늦잠을 늘어지게 잔 석호가 영오를 데리고 집을 떠났을 때도 한 번 타오른 욕망의 불꽃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다. 한 번 더 자위를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참고 또 참다가 결국 게이사이트에 들어가 채팅방에 ‘WANTBEAR’로 대화명을 만들어 대기를 탔다. 30분쯤 지났을까 1대1 대화 신청이 들어왔다.

  서로 간단히 자기소개를 했다. 나는 나이를 속여 한 살 어리게 서른다섯 살이라고 했다. 상대방은 서른일곱이라고 했다. 신체 사이즈나 그런 것들이 마음에 들어 다짜고짜 만남을 요청했다. 상대방도 흔쾌히 받아들였다. 내가 먼저 상대가 있는 쪽으로 이동을 하겠다고 했더니 좋아라 하면서 동네를 지정했다. 하필이면 클럽이 모여 있는 그 동네라 괜히 꺼림찍해서 장소를 바꿀까도 싶었지만 이것저것 따질 것이 못 되었는지라 나는 바로 출발한다며 대화방에서 나갔다. 그리고 진짜 바로 집을 나섰다.


  지하철을 타자마자 철우에게 전화가 왔다. 내 안부와 함께 석호의 안부를 묻는 전화였다.


  “어제 석호가 술이 떡이 돼 가지고 니네 집에 간다고 그랬는데....”


  “응, 새벽에 와서 알아서 잘 자고 갔어.”


  “그럼 다행이네. 오늘 합주하는 날인데 전화도 안 받고 그래서 혹시나 물어본 거야. 너 지금 밖이야?”


  “응. 볼 일이 있어서 잠깐 나왔어.”


  “그럼 나온 김에 연습실 들러. 얼굴 한 번 보게. 민구도 돌잔치 때 제대로 얘기도 못했다고 아쉬워하더라.”


  “그래 나중에 들를게.”


  일이 잘 되려는지 만나는 장소가 연습실이 있는 동네였으니 섹스를 하고 기분 좋게 연습실에 놀러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정말 오랜만에 섹스를 한다는 생각에 어린애마냥 기분이 들떴다. 자위는 백 번 해봐야 섹스 한 번만 못한 것이었다.

  환승역에서 사람들이 우루루 내리고 우루루 탔다. 그런데 씨.발.... 그 우루루에 석호가 끼어 있었다. 석호가 좁은 틈을 비집고 나에게 다가와 말했다.


  “너 어디 가?”


  대답할 말이 궁해서 나도 물었다.


  “너는 어디 가?”


  “연습실 가지 어디 가긴. 오늘 합주하는 날이야. 너는?”


  “나도 연습실. 아까 철우한테 전화 와서 놀러오라고 하더라고. 민구도 보고 싶다고 그래서....”


  “잘 됐네. 같이 가자. 합주 간단히 하고 오랜만에 넷이 밥 먹으면 되겠네. 술은 어제 내가 너무 많이 마셔서....”


  지하철에서 내려 석호를 따라 연습실까지 걸었다. 가는 도중에 몇 번이고 잠시 갈 데가 있어서 하고 말을 하려다가 차마 하지를 못했다. 분명히 어디 가느냐고 물을 것이고, 그랬을 때 마땅히 대답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서였다. 그냥 여자 따먹으러 간다고 했으면 됐을 것을 석호 앞이라 미처 생각이 나지를 않았다.

  만나기로 한 2번 출구 앞을 지날 때 속이 쓰렸다. 내가 너무 급하게 서두른 잘못이었다. 느긋하게 담배를 한 대 피우고 나와도 될 것을 뭐가 그리 급해서 막 도착하는 지하철을 달려가 탄 것인지 후회막급이었다.


  합주를 하는 것을 구경하고 넷이 함께 저녁을 먹을 때에도 타올랐던 욕망의 불꽃이 사그라들지 않았다. 전날 마신 술 때문에 간단히 한 잔을 걸치는 자리에서 민구가 화장실을 갈 때 나도 따라갔다. 민구가 오줌을 누면서 나에게 말했다.


  “오랜만에 너랑 같이 있으니까 좋네. 자주 놀러와. 좋잖아.... 나도 언제 한 번 너네 집 놀러가야 되는데....”


  나는 민구의 말꼬리를 붙잡았다.


  “오늘 어때? 밥은 먹었으니까.... 라면 먹고 가.”


  “야, 이영기~ 니가 무슨 라면이야.... 라면 절대로 안 먹는 새끼가....”


  나는 시선을 아래로 향하여 민구가 오줌을 다 누고 자지를 터는 것을 지켜봤다. 민구의 시선도 나를 따라 아래로 향했다. 그제야 민구는 내 말을 알아챘는지 나를 향해 웃었다.


  “니가 웬일이냐? 나한테 먼저 하자 그러고.”


  “라면 먹고 갈 거야 말 거야?”


  민구는 나를 야릇한 눈빛으로 바라보기만 할 뿐 말이 없었다.




-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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ㅂㄱ 상대가 석호였던거 아닐까.,안탑깝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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