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아라 황석호 -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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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나는 마음이 조급해졌다. 한 번 달아오른 몸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나 요즘 라면 잘 끓여 먹어. 이렇게 맛있는 걸 왜 안 먹고 살았는지 모르겠네.... 라면 먹고 가. 나 라면 잘 끓여. 니가 끓여 달라는 대로 다 끓여줄게....”
민구는 눈웃음을 치며 나를 바라보다 한 마디를 던졌다.
“나 요즘 마누라가 밥 잘 해줘서 라면 같은 거 안 먹는데.... 마누라 밥이 제일이거든. 처음에는 좀 서툴더니 이제는 잘해.”
분명히 내 말을 알아들었으면서 말을 돌리는 민구가 정말 얄미웠다. 하지만 약속도 펑크 난 마당에 민구가 유일한 대안이었기에 끝까지 참았다.
“좋겠다. 마누라가 해주는 밥 먹고 살아서.... 그럼 너 요즘 외식은 안 해? 너 결혼하기 전에는 외식 많이 하고 다녔잖아. 집에서 밥만 먹으면 좀 물리지 않냐?”
“당연히 물리지. 밥만 먹고 살 수가 있나. 돈까스도 먹고 싶고, 탕수육도 먹고 싶고 그렇지.... 근데 외식하고 가면 집에서 밥 못 먹으니까 바로 표시 나. 마누라가 밥상 차려놨는데 안 먹으면 남편의 도리가 아니거든. 너도 알지만 우리 마누라 이쁘고 젊잖아.”
“이야~ 김민구 결혼하더니 철 들었네.... 마누라랑 거기로도 하나 보지?”
“거기? 어디? 거기로 뭘 해?”
다 알면서 능글능글하게 웃으며 모르겠다는 듯이 묻고 있는 민구를 때리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민구가 정말 필요했다.
“씨.발 다 알면서.... 존.나 가증스러워.... 마누라랑 뒤로도 하냐고오?”
“하하하하 오늘 우리 영기가 존.나 꼴렸쪄요?”
민구는 대놓고 나를 놀렸다. 꼴린 것이 사실이었기 때문에 민구를 째려만 볼 뿐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씨.발, 내가 튕기니까 존.나 짜증나지? 이제 그때 내 마음 알겠냐?”
“씨.발새끼....”
“근데 어떡하냐? 너 머리 짧아서 이제 너한테 안 꼴리는데....”
나는 내 진심을 담아 민구에게 진짜로 욕을 했다.
“씨.발 조ㅈ같은 새끼....”
민구는 내가 욕을 하는 대도 여전히 능글능글하게 웃었다.
“빨리 나가자. 화장실에서 둘이 뭐하나 싶겠다.”
민구가 먼저 화장실에서 나갔다. 참담했다. 민구가 오줌을 눌 때 봤던 자지가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아서 더욱 비참했다.
겨우 정신을 수습하고 자리로 돌아갔을 때 벌써 파장 분위기였다. 석호 때문이었다. 영오가 아빠를 찾는다고 전화가 왔다고 했다. 석호가 먼저 나가고, 나머지 우리는 남아 있는 술을 비우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철우도 자기 차를 타고 떠났다. 민구와 나 둘만 남았다. 잘 가라는 인사도 하기 싫어서 지하철 쪽으로 몸을 돌리는 나를 민구가 붙잡았다.
“영기야, 잠시만....”
민구는 휴대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자기야, 출근했어? .... 오늘 영기가 놀러 와서 영기네 집에 우리가 쳐들어가기로 했거든.... 응, 장모님한테 보미 못 찾으러 간다고 자기야가 연락 좀 해줘.... 알았어. 내가 내일 아침에 보미 찾으러 갈게. 자기야는 퇴근하고 바로 집으로 와.... 응, 돈 많이 벌어와~ 자기야 사랑해~~~”
민구는 전화를 끊고 나를 향해 살짝 윙크를 했다.
“주말 저녁에도 출근해?”
“넌 사람이 평일 주말 따져서 아프냐? 간호사가 3D 업종인 거 몰라? 3교대야.... 오늘은 밤 근무고.... 빨리 가자.”
“가도 돼?”
“전화하는 거 못 들었어? 안 그래도 똥구멍 먹은 지 오래 됐는데.... 씨.발, 오늘 너 각오해라. 내가 씹.창을 낼 거니까.”
집에 도착하자마자 서둘러 씻고, 참고 있었던 본능적 욕구를 마음껏 발산했다. 정말 오랜만에 섹스를 하는 것이라 민구와 몇 번 할 때 떨었던 내숭도 떨지 않았다. 민구도 내 적극적인 행동에 동참했다. 민구는 한 마리의 짐승 같았다. 민구의 눈에 나도 그렇게 보였을 터였다.
민구는 내 똥구멍에 자지를 박고 얼마 있지 않아 사정을 했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민구의 변명이 이어졌다.
“씨.발.... 오랜만에 똥구멍 따.먹어서 그래....”
민구와 나는 간단히 씻고, 침대에 기대 앉아 담배를 피웠다. 나는 민구에게 아까 대답을 듣지 못했던 것을 다시 물었다.
“마누라하고는 뒤로 안 해?”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해. 한 번 시도했다가 죽는 줄 알았어. 똥구멍은 배설기관이고 세균 어쩌고 하면서 나한테 일장연설을 하더라.... 나이 차이가 많이 나서 항상 조심스러워.... 근데 옛날부터 물어보고 싶었던 게 있는데....”
“뭐?”
“그때 있잖아.... 나랑 했으면서 왜 석호랑은 안 했어? 너 화내면서 나가니까 정말 당황스럽더라. 솔직히 나는 니가 나랑도 했으니까 석호랑도 할 줄 알았거든.”
“석호한테 나랑 했다고 말했어?”
“아니. 그런 걸 어떻게 말해.... 너 그렇게 나가고 나서 석호가 엄청 자책했었어. 너한테 미안하다고.... 나한테까지 미안하다고 하던데 뭐. 장난 심하게 쳤다고, 못 본 걸로 해 달라고.... 근데 난 봤거든. 석호 자지가 니 똥구멍에 들어간 거.... 가끔 똥구멍에 박고 싶을 때 니 생각났는데, 니가 석호한테 화내는 게 생각나서 하자고 말 못했어.... 니가 밴드 나가고 못 본 것도 있긴 했지만....”
나는 대답 대신 민구에게 물었다.
“넌 내가 여자로 보여? 내가 여자 같아서 섹스한 거야?”
“아니. 너 머리 길 때 이쁘장한 게 여자 같이 보이긴 해도 조ㅈ 달고 있는데 어떻게 여자로 보여. 절대 아니지.”
“그때 석호가 나를 여자 취급하는 거 같아서 싫었어.”
“그럴 거 같더라. 석호가 나한테도 순간적으로 니가 여자로 보였다고 그랬으니까.... 씨.발, 오랜만에 똥구멍에 조ㅈ 박으니까 진짜 좋네. 영기야, 한 번 더 하자.”
민구가 나를 여자로 보지 않는다는 것에 흥분이 되어 민구에게 입술을 내밀었다. 민구도 스스럼없이 입술을 내밀어 입을 맞췄다. 민구의 혀를 받으며 젖꼭지를 만지다 아래로 내려가 자지를 주물렀다. 민구의 자지가 점점 부풀어 올랐다. 민구도 내 자지를 만지다 불알 아래로 손을 넣어 똥구멍을 간질였다.
침대 위로 올라가 서로 반대로 누워 자지를 빨았다. 민구의 손가락이 똥구멍 안으로 들어왔다. 민구의 가랑이 사이로 얼굴을 들이밀어 민구의 똥구멍을 핥았다. 민구의 입에서 굵직한 신음이 새어 나왔다. 민구의 손가락이 하나 더 들어왔다. 나도 손가락에 침을 묻혀 민구의 똥구멍에 손가락 하나를 넣었다. 그리고 전립선을 찾아 손끝으로 누르며 문질렀다. 내숭을 떨 필요가 없으니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을 총동원하여 민구를 자극했다.
“영기야.... 이상해.... 아우~ 영기야....”
“씨.발 게이 새끼.... 존.나 느끼네.”
나는 민구를 향해 비웃음을 날렸으나 한 편으로는 민구도 나에게 그렇게 해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민구는 그럴 만한 지식도 스킬도 없었다. 민구의 자지에서 프리컴이 새어 나왔다. 나는 민구의 전립선을 자극하며 자지를 빨았다. 민구의 입에서 자지러지는 신음이 터져 나왔다.
나도 흥분감에 사로잡혀 민구의 자지에 내려앉았다. 제법 굵은 자지가 똥구멍을 꽉 채우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길이가 조금 짧은 것이 아쉬웠다. 민구의 젖꼭지를 엄지와 검지로 살살 문지르며 엉덩이를 들썩였다. 나쁘지 않았다. 민구의 웃는 얼굴이 나를 더욱 흥분시켰다. 민구가 내 허리를 잡고 허리 반동을 이용해 자지를 쑤.셔댔다. 내 입에서도 신음이 터져 나왔다.
“씨.발.... 존.나 쪼여.... 너 이제 죽었어.”
민구는 나를 눕히고 자지를 박았다. 내 뒤에서 박기도 하고, 일어서서 벽에 손을 짚게 하고 박기도 했다.
탑이랍시고 자부심을 내세우다 별다른 기술도 없이 그냥 자지를 박기만 하다가 싸버리는 게이들에 비해 민구는 다양한 체위로 리듬에 변화를 주면서 자지를 박아댔다. 여자를 만족시켜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일반 유부남이 역시나 섹스를 잘했다. 게다가 드럼 연주로 리듬과 박자가 몸에 배인 민구는 더욱 탁월했다. 만나기로 했던 게이를 바람맞힌 것이 다행으로까지 여겨졌다.
“아으~ 민구야 싸고 싶어....”
“싸.... 나도 쌀 거 같애.”
나는 자지를 흔들어 참고 있던 정액을 배출했다. 정액이 뿜어져 나올 때마다 저절로 똥구멍에 힘이 들어갔다. 민구도 그 힘을 고스란히 자지로 느낄 터였다. 아니나 다를까 민구의 입에서 비명 같은 신음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자지를 박은 채로 몇 번 몸을 부르르 떨었다.
정말 오랜만에 느끼는 강렬한 쾌감이었다. 자위로는 도저히 느낄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강렬한 허무함이 밀려왔다. 고작 이따위 쾌감을 위해 마누라와 딸이 있는 민구를 꼬여내 이짓을 했나 하는 죄책감도 밀려왔다. 차마 민구의 얼굴을 볼 수가 없어 팔뚝으로 눈을 가렸다.
샤워를 끝낸 민구는 발가벗은 채로 침대에 덜렁 누웠다. 마음 같아서는 집으로 보내고 싶었지만 차마 그럴 수는 없어서 민구가 잠이 들 때까지 기다렸다가 석호가 자고 가는 방에 가서 누웠다. 눈을 감아도 쉽사리 잠이 들지 않았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새벽녘에야 겨우 잠이 든 나를 민구가 아침에 흔들어 깨웠다. 눈을 부비며 겨우 일어나는 나에게 민구가 약간 짜증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너 왜 여기서 자? 일어나서 너 없길래 깜짝 놀랐어.”
“싱글 침대에서 어떻게 둘이 자. 니 등치를 생각해야지.”
“아~ 맞네.... 나 이제 가야 돼. 한 번 더 하고 싶은데 마누라 집에 오기 전에 가서 밥 해 놔야 돼.”
민구가 파트 강사로 돈을 벌기는 해도 마누라 월급에 비해서는 용돈 벌이 수준일 터였다. 민구를 보내고 조금 더 자려다가 그만 뒀다. 매주 토요일 오후에 하던 빨래를 하지 않아서였다. 세탁기를 돌리는 동안 집안의 문이란 문은 다 열어 환기를 시켰다. 민구와 피워댄 담배 냄새며 섹스를 하느라 흘린 땀 냄새를 빼기 위해서였다. 청소기를 돌리며 방은 물론이고 거실 구석구석을 밀고, 걸.레를 몇 번이나 빨아가며 방을 닦았다.
그래도 속이 시원하지 않았다. 침대보와 이불을 둘둘 말아 들고 집 근처 빨래방으로 가서 대형 세탁기에 집어넣고 돌렸다. 이불 빨래를 하는 동안 커피숍에서 시간을 보냈다. 건조마저 마치고 냄새를 맡아보니 원초적 욕망의 흔적이 남아 있지 않았다.
2005년 7월이 되면서 완전 주5일제 근무가 시작되어 시간이 많이 남았다. 석호는 매주 금요일에 영오를 나에게 맡겼다. 한 번은 지방 행사가 있어서 일요일까지 맡긴 적도 있었다.
영오는 세 번째 생일을 지나면서 구사할 수 있는 단어의 양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영오를 허벅지 위에 앉히고 그림책을 읽어줬다. 쉽게 하는 말은 모두 알아 들어서 내 이야기 상대가 되어 주기도 했다. 밥을 먹고 내가 설거지를 할 때면 내 반바지 끝을 잡고 떼를 쓰듯이 말했다.
“아저씨 그림책.”
영오는 나를 항상 아저씨로 불렀다. 석호가 아저씨 말고 삼촌이라고 부르라 해도 무조건 아저씨였다. 석호의 아들이었으니 자기 마음대로였다. 너무 귀여웠다. 석호의 아들이라 더욱 그랬다.
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7월 중순의 어느 날, 석호가 나를 끌어안고 방방 뛰었다.
“영기야, 나 TV 출연해.”
MBC에서 방송하는 ‘생방송 음악캠프’에 잘 알려지지 않은 뮤지션을 소개하는 코너가 새로 개설이 되었는데, 거기에 출연한다는 것이었다. 신설 코너의 첫 방송이 7월 30일이고, 석호 플라이는 그 다음 주에 출연하기로 결정이 되었다고 했다. 꾸준하게 클럽에서 공연을 하고, 지난 해 말에 두 번째 앨범을 낸 것이 좋은 결과를 낳은 듯 했다.
10년이 넘도록 바라던 일이 드디어 성사된다는 사실에 나 역시도 석호만큼이나 기뻤다. 나는 진심으로 석호에게 축하를 했다.
7월 30일 토요일, 석호에게서 전화가 왔다.
“영기야, 음악캠프 보고 있냐?”
“넌 다음 주에 나온다 그랬잖아.”
“그래도 같은 밴드가 출연하니까 봐줘야지. 곧 시작하니까 너도 봐. 우리도 다 모여서 보고 있어. 모니터링 해야 다음 주에 잘 할 수 있으니까. 그럼 너도 꼼꼼하게 봐. 이따가 또 전화할게.”
석호는 벌써부터 엄청 흥분해 있었다. 클럽의 분위기가 고스란히 지상파 방송을 타고 나온다는 생각에 나도 은근히 기대가 되었다.
하지만 그 기대는 곧 경악으로 바뀌었다. 처음에는 내가 잘못 봤나 싶었다. 그런데 절대로 잘못 본 게 아니었다. 분명 내 눈 앞에서 딸랑거렸던 것은 자지였다. 검은 숲에 가려 잘 보이지는 않았어도 두 사람이 바지를 벗고 팔딱팔딱 뛴 것이 확실했다. 생방송이었기에 카메라는 갈 곳을 잃어 방황했다.
방송이 끝나면 전화를 하겠다던 석호에게서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대신 늦은 밤 철우에게서 연락이 왔다.
“영기야, 너 당장 좀 와라.”
“왜?”
“석호가 맛이 갔어. 석호는 우리가 알아서 하면 되는데, 영오가 지금 울고불고 난리가 나서....”
영오의 울음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나는 곧장 택시를 타고 달려갔다. 연습실에 도착하니 석호는 인사불성이 되어 있고, 영오는 그 옆에서 석호를 흔들며 울고 있었다. 영오는 나를 보자마자 달려와 안겼다. 철우가 한숨을 깊게 쉬고 어렵게 한 마디를 던졌다.
“아까 방송 끝나고 작가한테 전화 왔었어. 아무래도 출연 못 할 거 같다고.... 그 전화 받고 퍼 마시더니 이렇게 됐어.”
영오랑 석호를 모두 감당할 수는 없어서 영오만 데리고 집으로 와서 씻기고 재웠다. 9시 뉴스에까지 나온 것을 보면 생각보다 파장이 큰 듯했다.
다음 날 9시 뉴스에 음악캠프 방송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이 나왔다. 석호의 방송 출연이 공식적으로 좌절되다는 것을 확인해 주는 뉴스였다.
나도 모르게 욕이 나왔다. 어떻게 해서 바지를 벗고 성기를 드러냈는지 저간의 사정을 알지 못하니 비난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다. 내가 석호 플라이에서 활동을 할 때도 발가벗고 신나게 합주를 한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신이 나고 삘을 받으면 공연을 하다가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Red Hot Chili Peppers 같은 경우 공연을 할 때 자지에 양말을 씌우고 하기도 했으니까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는 문제였다.
하지만 그것은 외국의 경우이고, 설사 우리나라에서 그렇다 하더라도 공연을 보러 온 관객들과 음악이라는 약에 취해 서로 공감을 한 상태에서나 가능한 일인 것이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불특정 다수가 보고 있는 공중파 TV 방송, 그것도 생방송 중에 바지를 벗는다는 것을 수긍할 사람은 얼마 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이것저것 다 떠나서 내 입에서 욕이 나온 것은 그 다음에 출연할 석호 플라이가 출연을 못하게 된 것 때문이었다. 10년 넘게 꿔온 꿈이 금세 물거품이 되어 버린 것을 석호 플라이의 멤버들은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그나마 철우와 민구는 엄청 실망을 해도 정신줄을 놓지는 않았는데, 사랑하는 아들을 앞에 두고 인사불성이 되어 버린 석호의 실망감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일요일 9시 뉴스가 끝나고 거의 밤 11시가 다 되어서야 석호가 영오를 데리러 왔다. 초점 없는 눈으로 멍하게 서 있는 석호에게 그 어떤 말로도 위로를 할 수가 없었다. 아니, 그 어떤 말도 위로가 될 수 없을 듯 했다. 석호도 아무 말을 하지 않고, 나에게 손을 흔드는 영오를 데리고 집을 떠났다.
다음 날 월요일, 사무실 직원들은 주말에 있었던 방송 사고를 화제에 올려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았다. 직접 본 사람은 그 짧은 순간에 대해 생생하게 묘사를 했고, 직접 보지 못한 사람들은 뉴스를 통해 모자이크 처리된 화면만 봐서 아쉬운 것인지 못 봐서 다행이라는 것인지 말이 더 많았다. 대화의 결론은 생양아치들이 나와서 난장판을 피웠다는 것이었다. 근본이 못 배워 처먹은 것들이라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그딴 짓들을 하는 것이라며 욕을 했다. 나도 욕을 했으니 어느 정도 수긍이 되는 측면이 있어서 그냥 잠자코 있었다.
하지만 점심시간에 일이 터졌다. 내가 늘 달아놓고 먹는 식당에 사무실 수다꾼들이 몰려왔다. 나는 가볍게 눈인사를 하고 조용히 밥을 먹었다. 내 바로 옆 테이블에 앉은 수다꾼들은 또다시 방송 사고를 화젯거리에 올렸다. 반찬을 나르는 주인아주머니도 간간이 끼어들어 몇 마디를 던졌다. 사무실에서 조용조용 이야기를 할 때와는 차원이 다른 내용들이 오고갔다. 나는 못 들은 척 계속 밥을 먹었다.
그런데 자꾸만 내 귀에 거슬리는 말이 들렸다. 욕을 하는 것까지는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일탈을 가지고 밴드 하는 사람 전체를 싸잡아 매도를 하는 것에는 참을 수가 없었다. 바지를 벗은 두 사람을 향한 비난이 밴드 하는 사람 전체로 번져 모두가 다 개쌍양아치로 매도되었다.
“밴드 하는 게 어때서요? 음악이 좋아서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노래 만들고 노래 부르는 게 잘못된 겁니까? TV 자주 나오고 앨범 많이 팔리는 가수는 괜찮고, TV 안 나와서 사람들이 모르면 양아치 되는 겁니까? 인디 밴드 노래 들어본 적 있어요?”
나는 휴대폰을 꺼내 노래를 재생했다. 휴대폰의 mp3 기능이 신기해서 석호 플라이의 노래를 넣어둔 것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내가 재생한 노래는 석호 플라이의 두 번째 앨범에서 내가 부른 노래였다. 전형적인 롹 발라드 곡으로 내가 불러서 좀 망치긴 했지만 서정적인 멜로디가 일품인 노래였다. 후렴부의 고음 부분은 석호와 함께 불러서 노래를 살렸다.
노래가 흘러나오는 동안 수다꾼들의 얼굴 표정이 점차 변해갔다. 신선한 충격을 받은 것이 분명해 보였다.
“제목이 뭐에요?”
“그래도 살아야지.... 이게 제목이에요.”
“영기씨는 이 밴드 좋아하나 보죠?”
“네. 이 밴드가 부르는 노래는 다 좋아해요.”
“이런 밴드를 출연시켰으면 사고도 안 나고 좋았을 텐데....”
나는 감정을 억누르고 나지막하게 말했다.
“이번 주말에 나오기로 예정돼 있었어요..... 근데 방송사고 때문에 다 취소 됐어요.”
“어떡해.... 근데 영기씨가 그걸 어떻게 알아요?”
“제 친구들이에요. 제일 친한.... 대학 동기들이에요. 못 배워 처먹은 애들이 아니라....”
수다꾼들 모두가 내 눈치를 봤다. 나는 담담한 목소리로 수다꾼들에게 말했다.
“15년 동안 밴드하면서 방송 출연 한 번 하는 게 소원인 애들이었어요. 출연 결정 나고 저한테 엄청 자랑했는데.... 취소가 돼 버려서.... 다 애들 아빤데.... 애들한테 아빠가 TV 나오는 거 보여줄 수 있게 됐다고 좋아했었는데....”
나는 내친 김에 수다꾼들에게 커밍아웃을 했다.
“방금 그 노래 제가 부른 거에요.”
수다꾼들의 눈이 똥그래졌다.
“어쩐지 목소리가 낯익다 했어.... 그럼 영기씨도 밴드해요?”
“했었어요. 공무원 되기 전까지.... 저도 SUKO FLY 멤버였는데, 밴드 그만 두고 할 일이 없어서 공무원 시험 친 거에요. 못 배워 처먹은 양아치라서 좋은 데 취직도 못하고 공무원밖에 할 게 없어서....”
나는 한껏 비아냥거리고는 마저 밥을 먹은 뒤 식당에 비치된 공책에 작대기를 하나 긋고 밖으로 나왔다. 8월 1일의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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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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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틈틈이 쓰고 있으니 조금만 느긋하게 기다려 주셨으면 합니다.
업데이트가 지연되는 제 마음도 갑갑하고 아프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