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야 널 만지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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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생일날 저녁에 친구를 초대했는데 친구는 근무한다는 핑계로 불참했다. 그래서 친구에게 앙갚음하려고 나는 고개를 옆으로 흔들며 주문을 외었다.

"니 생일 잊어버려야지. 니 생일 잊어‥‥."

"그럼 니가 사는 아파트에 현수막 걸어 논다."

친구가 한 방 먹이는 바람에 나는 고개를 옆으로 흔들다 말고 웃음을 터뜨렸다.

"으하하- 현수막 살 돈 나나 줘라. 그걸로 선물이나 사게." 

친구는 혀를 날름 내밀고 내 보복을 피해 저만큼 달아났다. 아무튼 내 생일은 지났지만 친구는 초대에 응하지 못해 마음에 두었는지 집으로 돌아갈 생각하지 않고 나와 함께 침대에 누웠다. 나는 친구의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좋았다. 그래서 이번 한 번만은 친구를 믿어 보기로 하고 잔뜩 기대를 걸었다.

"친구야 부탁 한 가지 들어 줄래?"

"뭔데?"

친구가 반문하자 나는 말을 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서두를 길게 늘어놓았다.

"음, 내가 말해서 들어 주지 않으면 서로가 곤란하니까 어떤 부탁이든지 들어 줄 수 있으면 '예스'라고 대답해 줘."

"일단 니 부탁을 들어 보고 나서 내가 대답할게."

"그런 대답 말고 확실하게 예, 아니요?"

친구는 내 부탁이 무엇인지 알고 있어 마음이 선뜻 내키지 않았다. 그동안 나는 친구와 같이 잠을 잘 때마다 친구의 중심부를 만지는 버릇이 있었다. 내가 아침에 일어나 친구와 시선이 마주치면 멋쩍게 웃고 아무렇지도 않게 지냈다. 그래서 이번만은 맨 정신으로 친구를 살살 꾀어 성에 대한 욕구를 불사르고 싶었다. 

사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친구에게 여자가 생긴 뒤부터 나는 안달이 나서 견디지 못했다. 친구의 중심부를 만지지 못하게 할까 봐 조바심을 냈다. 나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친구를 동성애에 빠뜨리고 싶어 완곡한 말씨로 구슬려 삶았다.

"내 부탁 들어 주기 곤란하면 안 해도 좋으니까 자기 의사를 확고히 밝혀 봐."

"좋아! 들어 줄게. 말해 봐."

"정말?"

"응."

친구의 대답만을 기다렸는데 막상 들어 준다고 하니 입이 떨어지지가 않았다. 그래서 침을 한 번 꿀꺽 삼키고 내 부탁을 조심스레 말했다.

"널‥‥만지고 싶어."

"그런 거라면 단호히 거절하겠어."

"야, 내가 어렵사리 말을 꺼냈는데 그게 뭐냐? 그리고 한번 말했으면 사나이 대장부가 그걸 지켜야지. 쩨쩨한 놈!"

"난 그런 부탁인 줄 모르고 그랬어."

"어쨌든 내 부탁을 들어 준다고 했으니까 잔말 말고 들어 줘!"

내 부탁에 대해 즉각 반박하고 나서자 친구가 화를 내고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주섬주섬 입었다. 나는 친구가 떠나는 것을 잡지 않은 채 멍하게 천장만 바라보았다. 


   현아, 외로운 이 밤 나 홀로 지샐 순 없어. 현아, 뜨거운 눈물 이렇게 흘려야 하니. 현아, 너 떠난 후에 얼마나 울었는지. 먼 곳에 있는 당신은 아무것도 몰라‥‥. -김범룡의 노래 현아 중에서-


   나는 가끔가다가 친구와 의견 충돌이 생기면 냉각기간을 두었다.  친구는 며칠 뒤에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내게 찾아오곤 하였다. 그러나 이번 만은 친구가 오기를 기다리다가 지칠 즈음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난데 뭐하냐?"

"그냥 집에 있어."

내가 냉랭한 말투로 전화를 받자 친구는 기분이 상해 전화를 끊었다. 나는 친구에게 차갑게 대했지만 속마음으로는 반가워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내가 자존심이 강해 친구에게 먼저 전화로 연락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혹시 친구에게 방해가 될까 봐 무작정으로 연락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렇게 하루, 이틀, 사흘 그리고 더‥‥.


   직장 동료의 아들이 돌을 맞아 초대를 받았다. 청주 웨딩 프라자 뷔페로 가기 위해 조치원 역전 시내버스 정류장에서 좌석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에 이왕이면 내가 사는 곳에서 돌 반지를 사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금은방에 갔다 온 사이에 한동안 소식을 모르던 친구를 내가 서 있었던 자리에서 만났다. 나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친구를 소리쳐 불렀다.

"친구야 어디 가냐?"

"어어!"

"나 돌잔치에 가는데 너도 함께 갈래?"

"사실 나 여자 친구와 영화 구경 가기로 했어."

"그래, 즐거운 시간 가지도록 해라."

나는 억장이 무너졌으나 조금도 내색하지 않고 담담한 말투로 대화를 나누었다. 친구는 좌석 버스를 타려고 하다가 내 의향을 떠보았다.

"넌 이 버스 안 탈 거니?"

"응, 난 딴 방향으로 가."

친구를 먼저 보내고 내가 뒤늦게서야 좌석 버스를 타고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어깃장 놓은 것을 후회했다. 어쩌면 친구가 나와 같이 영화 구경하자고 했으면 직장 동료의 아들 돌잔치를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친구에게 여자가 생겼다고 친구를 멀리할 충분한 이유가 없었다. 친구의 몸을 탐하고 싶어서가 아니고 내 옆에 친구가 있으면 마음이 편하고 마냥 좋기만 했다. 그 이유는 나 자신도 모르고 수수께끼 같은 의미를 가졌다. 

나는 용기를 내어 친구의 생일날 축하 케이크를 사 들고 집을 찾아갔다. 초대를 받지 않은 손님은 갈 때 반갑다라는 서양 속담이 있지만 친구를 만나고 싶은 일념으로 생일을 핑계를 삼아 친구네 집으로 들어섰다.

"어, 어서 와. 그동안 잘 지냈니?"

"응, 생일 축하해!"

"고마워! 여긴 내 여자 친구야. 서로 초면인 것 같은데 인사 나누지."

"그래, 친구한테 얘기 듣고 궁금했는데 이렇게 만나게 돼 반갑습니다."

"저도 보고 싶었어요." 


나는 여자보다 친구를 더 좋아했다. 친구를 좋아하면 그 여자도 좋아하게 되는지 적개심을 품었던 마음이 사라지고 나와 친구와 여자가 한테 어우러져 흥겹게 놀았다. 친구는 기분이 좋아 나의 입장을 헤아렸다.

"내 친구도 좋은 여자 있으면 소개해 줘."

"좋아요. 제 친구랑 언제 한번 만나요."

나는 겉으로 표현은 않지만 친구의 권유에 따지듯이 속말했다. 

'난 친구를 좋아한단 말이야.' 

나는 문득 친구와 대화를 나누던 일이 생각났다. 친구가 여자를 만나기 전까지는 나와 잠을 자는데 거리끼는 것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여자의 입장을 생각하고 내 부탁을 들어 줄 수도 안 들어 줄 수도 없어 난처했었다.

나도 역시 친구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친구와 관계를 가지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친구의 삶에 해를 끼친다면 아무런 전제조건도 없이 무조건 포기해야 하는데 그것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를 본 일이 있는가. 짐승의 썩은 고기만을 찾아 다니는 산기슭에 하이에나 나는 하이에나가 아니라 표범이고 싶다. 산정 높이 올라가 굶어서 얼어 죽는 눈 덮인 킬리만자로의 그 표범이고 싶다. 자고 나면 위대해지고 자고 나면 초라해지는 나는 지금 지구의 어두운 모퉁이에서 잠시 쉬고 있다. 야망에 찬 도시에 그 불빛 어디에도 나는 없다. 이 큰 도시에 복판에 철저히 혼자 버려진들 무슨 상관이랴 나 보다 더 불행하게 살다간 고호라는 사나이도 있었는데‥‥. -조용필의 노래 킬로만자로의 표범 중에서-

 

   나는 야간작업을 끝내고 퇴근하는 길에 무엇이 저렇게 바쁘게 만들어 자동차가 도로를 쌩쌩 달리나 의아하게 생각할 때 꽃상여를 트럭에 실은 채 내 옆을 지나갔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꽃상여를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나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담배를 피우려고 베란다 창문을 활짝 열었다. 샛노란 은행잎이 지난밤에 몰아친 비바람을 견디지 못하고 가지만 앙상한 은행나무가 시야에 들어왔다. 나는 담뱃불을 붙이며 은행나무를 동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너도 내 처지와 어쩌면 그리 똑같을까?' 


쉬는 날은 사람의 심리를 변화하는 작용했다. 나는 한숨 푹 자고 났더니 몸이 가뿐하고 정신은 말똥말똥했다. 만일 오늘이 근무하는 날이면 축 처진 몸을 억지로 일으켜 세우고 회사에 출근할 텐데. 나는 활기에 넘쳐 있어 밀린 빨랫감을 세탁기에 넣고, 진공청소기로 집안을 청소하다 보니 벌써 저녁때가 되었다.

내가 저녁을 막 먹고 설거지하려고 하는 찰나 휴대전화 멜로디가 울렸다. 휴대전화 창을 통해 발신 번호를 확인 뒤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친구의 전화를 받으면서 가슴이 왜 두근거리는지 의아심이 들었다.

"응, 친구야!"

"술 한잔 할래?"

"어디서?"

"우리가 자주 가던 술집으로 와."


내가 술집 안으로 들어가 보니 친구는 이미 술을 많이 마신 상태였다. 나는 친구의 굳어진 얼굴을 보는 순간 여자 관계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음을 직감했다.

나는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권커니 잣거니 술을 마시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술집 주인이 영업 시간을 내게 일러 주어 친구를 부축해 밖으로 나왔다. 

"친구야 어디로 갈까?"

"가까운 데로 가자."

"알았어."

나와 친구가 모텔 안으로 들어가자 친구가 다짜고짜로 나를 덮치고 가쁜 숨을 몰아 쉬었다. 친구와 성행위할 바에는 차라리 내가 여자가 되는 편이 낫다. 그러면 다른 사람 눈치 안 보고 친구와 함께할 수 있을 테니까.

친구의 욕정은 나의 중심부를 팽팽하게 발기시키고, 나는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어 탐욕을 부렸다. 친구는 내 몸을 뜨겁게 애무하다가 한참만에 입을 열었다.

"좋아!"

"응, 계속해 줘."

내가 쾌감이 절정에 도달하려고 할 때 방바닥에 마구 널려 있는 옷에서 휴대전화 멜로디가 울렸다. 친구는 나와 성행위 도중에 휴대전화를 받았다. 수화기에서 여자의 떨리는 말소리가 또럿하게 들렸다. 친구는 나를 내팽개치고 옷을 주섬주섬 입고 방을 나갔다.


친구는 내 곁으로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나 혼자서 쓸쓸히 모텔에서 나와 차가운 새벽 바람을 씌며 시선을 땅 거죽에 고정시키고 깊은 생각에 빠졌다.

'친구야, 훗날 친구가 나를 찾는다면 킬로만자로의 눈 속에서 동사되어 있는 채 발견할 것이다. 나는 눈감는 마지막 순간까지 친구의 모습을 떠올리며 이 세상으로 왔다가 친구를 통해 많은 것을 경험했으니 미소를 띠고 천상계에 있는 내 별자리로 돌아갈 것이다.' 


   친구는 11월 11일 정각 11시에 여자와 결혼했다. 누구나 오래도록 기억하기 쉬운 날짜와 시간을 정했는데 공교롭게도 내가 시간을  볼 때마다 디지털 시계는 11시 11분이었다. 친구가 신혼여행을 떠나 낭만적인 사랑을 나누는 시각에 나는 , 내 삶의 마지막 여행길을 향해 떠났다.


   나는 어느 이름 모를 전투에서 진 고독한 패배자다.

내가 필요한 것은 다시 싸움터에 나가 이길 수 있는 신검(新劍)이 아니고 편히 쉴 보금자리다.

나는 싸움에서 졌다고 그 패배감을 가슴 아파하지 않는다.

내가 제일 가슴 아픈 것은 나를 진정으로 받아 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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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사랑의 결말은 말할 수 없는 고통^^
혼자 쓸쓸히 앓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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