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맨스(Bromance) -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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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 이틀, 사흘 그리고 형을 안 만난 지 2주가 흘렀다. 나는 형을 집에서 만나지 않고 그동안 혼자 지냈다. 일요일 오후 텔레비전을 시청하고 있었는데 대문 밖에서 형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머니가 대문을 열어 주러 가는 사이에 나는 방으로 들어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가만히 누워 있었다. 

형이 방문을 열고 들어와 이불을 잡아당겨도 나는 힘겨룸을 잘 버텨 내었다. 형은 말없이 앉아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머니는 커피와 강냉이를 그릇에 담아 방 안으로 들어왔다. 형은 벌떡 일어나 커피와 강냉이를 어머니로부터 건네받으며 감사의 뜻을 표했다.

“잘 먹겠습니다.” 

형은 강냉이를 깨물어 먹다가 커피를 홀짝홀짝 마셨다. 나는 이불 속에서 숨죽이고 귀를 기울인 채 꼼짝하지 않았다. 형은 잠시 머물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살짝 건드리며 헤어지는 인사말했다.

“나 갈게 배웅해 줘. 안 그러면 엄마한테 혼날 테니까.” 

나는 최면 상태에 빠진 사람처럼 이불을 걷고 벌떡 일어나 형 뒤를 졸졸 따라갔다. 형은 어머니에게 커피 잔과 그릇을 주며 점잔피우지 않고 강냉이를 청했다.

“강냉이는 집에 가서 먹게 담아 주세요.” 

어머니는 비닐 봉지에 강냉이를 더 담아 형에게 건네주었다. 나는 현관문 앞에서 형을 기다리며 속말했다.

‘나쁜 놈, 보기보다 숫기가 좋구나.’ 

나는 잰 걸음으로 대문 앞에서 형을 기다렸다. 형은 내 눈치를 살피며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나는 형이 집을 나서자마자 무뚝뚝한 말투로 배웅했다.

“아저씨, 잘 가!”  

형이 나를 바라보든 말든 잘 가라는 한마디 말만 하고 뒤돌아서서 후닥닥 집안으로 들어갔다. 


   며칠 뒤, 나는 학교 생활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보니 생일 축하 케이크가 있어 어머니에게 어리광부렸다. 어머니는 내 속내를 알아채고 생일 축하 케이크에 대하여 설명했다.

"다 큰 녀석이 징그럽게 웬 어리광이니? 저 케잌은 형이 사 왔어."

"엄마, 정말요?"

"형한테 고맙다고 꼭 해."


   나는 저녁을 먹은 뒤에 형네 집으로 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무덤덤하게 말을 높였다.

“생일 케잌 줘서 온 건 아녀요. 엄마가 형을 찾아가 인사하라고 해서 왔어요.”

형은 소리 없이 빙그레 미소지으며 나의 의향을 떠보았다.

"내가 앞으로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니?"

나는 내심 기뻤지만 겉으로는 담담한 체 반말로 대답했다. 

“그전처럼 대해 줘.”  


   나는 토요일 오후에 집으로 들어서자마자 책가방을 집어던지고 밖에 나갔다. 반 친구들과 사슴벌레를 잡으러 동네에서 가까운 산에 올랐다. 우리는 모두 사슴벌레를 찾으러 돌아다니는데 수풀을 헤치고 나아가는 일이 쉽지 않았다. 

참나무 가까이 접근하여 사슴벌레를 잡으려고 산을 샅샅이 뒤지었다. 그러나  사슴벌레는커녕 개미 새끼 하나 구경도 못 했다. 한 친구가 기운이 빠진 상태가 되어 산행을 포기했다.

“야, 우리 그냥 놀다 가자.”

"그래, 그게 좋겠다."

우리는 모두 산길을 지나가 논길로 접어들었다. 나는 친구와 장난치다가 논길에서 발을 헛디뎌 아래로 떨어졌다. 운동화와 바지에 진흙이 묻어 엉망진창이 되었다. 우리는 모두 노는 것을 포기하고 집을 향하여 지름길로 갔다. 

숲 사이로 난 오솔길을 걸어 과수원을 지나고 나니 형이 사는 동네가 보였다. 나는 친구들과 동네 앞에서 헤어지고 걸음을 재촉했다. 창문 아래에 서서 유리창을 두드리며 형을 소리쳐 불렀다.

“형, 난데 집에 있어?” 

내가 형을 불러도 집안에는 아무런 인기척이 없어 돌아섰는데 대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형은 지난밤을 설쳤는지 졸리운 눈으로 멀거니 나만 바라보았다. 나는 형을 만나게 되어 너무 기뻐 집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운동화와 바지를 벗으며 도움을 청했다.

“형, 이대로 집에 가다가는 엄마한테 죽으니까 해결 좀 해줘.” 

"어디 가서 이래  가지고 온 거니?"

형은 잠이 덜 깬 상태로 운동화와 바지를 받아 들고 어찌 된 일인지 연유를 물어 보았다.

"히히- 친구들과 장난하다 그랬어."

"운동화하고 바지 이리 줘."

형은 세탁기에 바지와 세제를 넣고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세면장에서 칫솔로 운동화를 빨아 볕에 널었다. 나는 발이 더러워 물로 깨끗이 씻고 삼각팬티을 입은 채 침대에 누워 텔레비전을 시청했다. 

형이 방문을 열고 들어와 내 얼굴을 바라보는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아니나 다르랴, 형이 내 몸을 뜨겁게 애무하는데 짜릿짜릿한 감정을 느꼈다. 

나는 눈을 지그시 감고 성행위를 음미하면서 형이 삼각팬티를 벗길 수 있게 엉덩이를 들었다. 형은 내 삼각팬티를 무릎 아래로 벗겨 놓고 그 곳을 만지작거렸다. 나는 형에게 나지막한 목소리로 속삭이었다.

"형, 입으로 ‥‥." 

형은 내가 그 말을 하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양손으로 골반을 꽉 잡고 입 속에 그 곳을 넣어 중점적으로 빨았다. 내 고환이 형 입 속으로 들어갈 때마다 구부러진 몸에서 고통 반, 희열 반의 조화(造化)가 탄성을 질렀다. 

"헉헉!"

형과 나는 거친 숨을 몰아쉬고 무아경에 빠진 순간 황홀한 전율이 온몸을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성적인 흥분이 최고에 달하여 사정하는 것을 꾹 참다가 정액을 내쏘았다. 형은 격정에 사로잡혀 내가 사정한 정액을 혀로 핥아먹었다. 

나는 원기가 차차 회복되어 침대에서 일어나 삼각팬티를 입었다. 형은 자동으로 탈수된 바지를 다리미로 다리고, 드라이기로 운동화를 말려 주며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이젠 죽지 않고 너를 다시 만날 수 있겠니? 그리고 이 세상에 아들 죽이는 엄마는 없어.” 

"히- 형, 고마워!"


   나는 횡단 보도 신호등을 기다리자니 지루하기 그지없어 사방을 살피고 한길을 건넜다. 형은 나의 예상 밖의 행동에 당황하며 못 가게 말렸다.

“야, 지금 빨간 불인데 가면 ‥‥.” 

내가 한길을 건너자마자 횡단 보도 쪽에서 끼익 소리를 내면서 급정거를 했다. 나는 고개를 획 돌려 형을 바라보았다. 형은 자신의 실수에 대해 운전자에게 고개를 숙여 사과했다.

"죄, 죄송합니다."

형은 종종걸음으로 내게 다가오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무심코 너 따라 하다가 차에 치일 뻔했잖아.” 

"형은 타이밍을 잘못 맞췄어."

형은 행동거지를 태연한 척했지만 떨리는 목소리만 들어도 지금 심정이 어떤지 짐작할 수 있었다. 


형과 나는 음반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형은 나에게 DANGEROUS 카세트테이프를 선물하더니 씩 웃어 보였다. 나는 흐뭇한 표정을 짓고 속마음으로 감사의 뜻을 표했다. 

형은 집에 돌아오는 길에 슈퍼마켓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음악을 빨리 듣고 싶어 걸음을 재촉하다가 장난기가 발동하여 길모퉁이에 숨어 형이 오기를 기다렸다. 형의 발소리가 내게로 다가왔을 때 갑자기 소리를 꽥 질렀다.

"야!"

"으악, 아이고 나 죽겠네."

내가 달려들자 아주머니는 자지러지게 놀라 비명을 질렀다. 나는 뜻하지 않은 가혹한 현실에 눈앞이 깜깜했다. 어서 빨리 도망을 가야지 하면서도 양심의 가책을 받아 아주머니에게 내 실수를 재빨리 사과했다.

"아, 아줌마 죄송해요. 형인 줄 알고 ‥‥."

"아이고 이런! 망할 자식 같으니."

아주머니는 화가 머리 끝까지 나서 나의 잘못을 호되게 꾸짖었다. 나는 아주머니의 꾸지람에 고개를 떨어뜨리고 옷만 만지작거렸다. 형은 의아하게 생각하고 아주머니의 노여운 마음을 진정시키며 나를 감싸고 돌았다.

“제 동생인데요. 잘못한 점이 있더라도 너그럽게 용서해 주세요.” 

"애가 있지 않았으니 다행이지 만약에 큰일날 뻔 했잖아."

형은 내 잘못에 대해 아주머니에게 고개를 숙여 정중한 태도로 사과했다. 아주머니는 분을 삭이지 못하고 마지못해 집으로 돌아갔다. 형은 아주머니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상체를 흔들며 배꼽을 쥐었다. 나는 슬그머니 화가 치밀어 공연히 형에게 화풀이했다.

“에이, 나쁜 놈! 나 그냥 집에 간다.” 

형은 웃음을 참지 못해 킥킥거리며 나를 앞질러 길을 걸었다. 나는 형네 집에 들어 카세트를 플레이하고 볼륨을 높였다. 저음 스피커에서 울려 나오는 강한 비트가 심장 박동과 일치하여 생동감이 넘쳤다. 형은 옷을 훌훌 벗어 버리고 나의 의향을 물어 보았다.

"너도 같이 씻자."

나는 옷을 벗고 형을 따라 욕실 안으로 들어갔다. 형이 내 몸에 물을 뿌리고 비누를 문지르더니 말끔히 씻었다. 형은 나의 그 곳을 자세하게 살펴보고 우스갯소리했다.

“너보다 이게 더 잘생겼다.” 

나는 눈을 반하게 뜨고 형의 그 곳을 바라보았다. 형의 피부는 조금 흰 편이기는 하지만 그 곳은 독특하게 검고 거웃이 많았다. 형이 허리를 구부리고 입 속에 나의 그 곳을 넣었다. 

"아아."

나는 저절로 활기에 넘치는 탄성을 질렀다. 형이 어디를 먹든지 참을만한데 입 속에 고환만 넣으면 온몸이 다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들어 숨을 헐떡이었다. 나를 맛있게 먹는 소리가 욕실 벽에 부딪쳐 메아리가 울렸다. 


   형은 나와 함께 시내버스를 타고 운주 산성을 향하여 떠났다. 둘이 시내버스에서 내려 논길을 걸어 오솔길로 접어들자 산은 봄색을 지워 버리고 여름색을 분주살스레 단장했다. 

산에 오를 때는 금방 정상에 오를 것 같았는데 막상 오르고 보니 험한 산길을 걷기가 어려웠다. 형은 산에 오르며 나를 작년 가을에 처음 만났던 이야기를 꺼냈다.

"널 전자오락실에서 만날 때는 나한테 존댓말하고 예의 바른 학생이었는데 지금은‥‥.” 

“처음엔 다 그런 거 아냐. 만약 형이 나한테 하는 걸 우리 아빠가 알면 어떻게 할까?” 

나는 형의 말이 끝나기 전에 앙칼진 목소리로 톡 쏘아붙이었다. 형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나를 향하여 눈을 흘겼다. 그리고 덧붙여 알아듣게 잘 타일렀다.

"내 맘 아프게 하면 언젠가 너도 아플걸."

"흥, 내가 형 속을 모를 줄 알고?"

나는 형의 말을 허투루 듣고 콧방귀뀌었다. 형과 나는 운주산 정상에 올라 주위를 두루 살펴보았다. 대리암으로 개척의 탑을 세우고, 조경이 깔끔했다. 구름 한 점 없는 저 하늘 밑에 흑성산과 독립 기념관이 보였다. 형은 산성을 복원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단둘이 산행하는 것도 괜찮구나."

"정상에 올라 보니 힘든게 한순간에 사라지네."

나는 형 옆에 앉아 정면으로 보이는 먼산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형은 손가락으로 칡덩굴이 소나무를 감아 오르는 것을 가리키며 생각하는 바를 말했다. 

“저 가는 칡덩굴이 보잘것없이 보여도 한 해, 두 해 굵어지면서 소나무를 죄고 결국은 죽게 될걸. 근데 칡덩굴이 소나무의 고마움을 알까?” 

형은 자신과 나를 소나무와 칡덩굴에 비유했다. 나는 형의 비유에 대해 즉각 반박하고 나섰다.

“누가 소나무고 누가 칡덩굴인데?” 

형은 대답 대신에 어머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진정한 사랑은 죽음 직전에 알 수 있어."


   어머니는 밥 먹은 것이 체한 것 같아 의사의 검진을 받았다. 의사가 아버지만 특별히 면담하여 어머니의 병명을 일러 주었다.

"지금 환자는 위암 말기입니다. 집에서 편히 쉬게 하세요."

어머니는 아버지의 얼굴 표정을 살피고 단박에 몸에 이상이 생긴 것을 알아챘다.  두 사람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물끄러미 허공만 바라보았다. 

아버지는 자식을 불러들여 자초지종을 낱낱이 털어놓았다. 어머니는 병이 악화되어 자리에 누워지냈다. 아버지를 대신해서 내가 간병할 때 어머니가 깊은 상념에 잠긴 것 같아 질문했다.

“엄마, 지금 제일 하고 싶은 게 뭐야?” 

“옛날에 네 아버지와 결혼하기 전에 엄마를 되게 좋아했던 사람을 한번 만나고 싶다.” 

어머니는 대답을 주저하지 않고 말했다. 그리고 이듬해 여름에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는 식목일날 정원에 목련 나무를 심으며 훗날을 내다보았다.

"이 나무가 꽃 필 때까지 내가 살려나 ‥‥."

아버지는 나무를 심다 말고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다. 4년 뒤에 아버지가 꽃상여를 타고 집을 떠나는 날 만개한 흰 목련화가 화답했다. 


형은 이야기 도중에 슬픔을 못 이겨 눈물이 글썽글썽했다. 나는 다정하게 형 어깨에 손을 얹고  두 사람을 떠올려 보았다.


   나는 집에서 도시 중학교로 전학하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을 때 형에게 미리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러나 형은 나와 헤어지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널 만나고 싶을 때 언제든 만나면 돼."

"그래!"

형이 말은 그렇게 하지만 내심으로는 싫어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도 형 말에 공감하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그럼, 헤어지는 인사 같은 건 안해도 되겠네."

"헤어지는 인사를 안 해도 세월이 흐르면 절로 잊혀질 거야"

형의 말에 내가 이의를 달며 진실을 말했다.

"난 절대로 형을 잊지 않을 거야."

"아주, 제법 맘에 드는 말을 하네."


   나의 전학은 순조롭게 되어 정든 학교와 이별하는 아쉬움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새로운 학교의 두려움 반, 새로운 친구의 설렘 반으로 마음이 뒤숭숭했다. 

   나는 그 때마다 형에게 자주 전화를 걸었다. 형은 나를 반갑게 대하며 건강 상태가 좋은가 물어 보았다.

"밥은 잘 먹니?"

"응, 형은 나 안 보고 싶어?"

"보고 싶지는 않은데 가끔 네 생각하지."

"언제?"

"너랑 함께 하고 싶을 때."


   형과 헤어진지 어느덧 3년이 흘러갔다. 나는 주어진 일상생활에 얽매이다 보니 형의 말대로 사이가 멀어졌다. 

어느덧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하는 일 없이 어영부영 세월만 보내다가 여자 친구를 사귀었다. 주말에 여자 친구와 데이트할 때 갈 만한 곳이 없어 형네 집으로 갔다. 

형은 내가 여자 친구와 함께 찾아가자 싫은 내색을 보였다. 그러나 나와 여자 친구가 사랑방에서 머물 수 있게 방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잠자리를 보았다. 나는 옷을 훌훌 벗은 뒤에 형광등을 끄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여자 친구의 의중을 떠보았다.

"옷 벗고 너도 함께 자자."

여자 친구는 팬티을 입은 채 침착한 태도로 이불을 덮었다. 나와 여자 친구는 연인처럼 스스럼없이 성행위를 시작했다. 여자 친구의 깊은 곳에 나의 그 곳을 삽입할 준비를 마치고 엎드려뻗쳐 자세를 취했다. 

나와 여자 친구는 경이감을 맛보며 일심동체가 되었다. 나는 형을 지나치게 의식하고 거친 숨소리를 내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형은 식사를 준비하고 곤하게 자는 나를 깨웠다. 세 사람은 의자에 앉아 말없이 아침밥을 먹었다. 형은 나와 여자 친구를 배웅하러 집을 나섰다. 버스 터미널에서 차표를 사서 나에게 건네주며 훗날 다시 만날 것을 굳게 기약했다.

"결혼할 때 꼭 연락해."

"형은 결혼 안해?"

형은 내가 묻는 말에는 대답하지 않고 엉뚱한 소리만 했다.

"중학생이던 너를 만나려면 어디로 가야 하니?"

"음, 아마 불가능할 걸."

나는 형의 실망한 눈빛을 보고 버스에 올라 차창가 좌석에 앉았다. 형은 버스가 터미널을 출발하자 잘 가라고 손을 흔들었다. 나도 형의 배웅에 손을 흔들어 답례했다. 


   나는 군대에 들어가 동기의 소개로 한 여성을 알게 되어 결혼을 약속했다. 병장으로 제대하고 결혼식을 올리는 날 축하객 중에 의식적으로 형을 찾았으나 눈에 뜨이지 않았다. 신혼여행을 마치고 축의금 방명록에서 형의 이름을 보았을 때 기분이 묘했다.


   형은 전생에 밤에 활동을 하는 부엉이라고 말했다. 부엉이는 달빛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는 돌을 둥지에 모아 놓고 몇 개인지 세어 보았다. 

“하나, 둘 우아 많다!” 

부엉이는 둥지에 빛나는 돌이 여러 개 있어도 셈할 때 둘 밖에 몰랐다. 그래서 형은 내가 우연히 산을 지나다가 부엉이 둥지를 발견하면 돌을 주워 오는 요령을 일러 주었다.

"둥지의 돌을 두 개만 남겨 놓고 오면 계속해서 얻을 수 있지만 돌을 욕심내서 다 가져오면 부엉이는 침입자가 있는 줄 알고 그 곳을 떠나고 말지."

"그게 정말이야?"

"응, 넌 날 못믿니?"

내가 형의 얼굴을 의심쩍은 눈으로 바라보자 덧붙여 돌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했다.

"달빛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는 돌이란 사람들이 말하는 보석의 원석(原石)이야." 


   부엉이는 사람이 되고 싶어 달밤에 빛나는 돌을 하나 부리에 물고 하늘 끝까지 올라갔다. 하늘나라에는 세상의 모든 만물이 사람이 되려고 천제(天帝) 앞에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부엉이는 오랜 세월 끝에 시골에서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형은 전생에 자유로이 날아다니던 부엉이가 더 좋았다고 말했다. 

나는 동화 작가처럼 지어내는 형의 얼굴을 바라보며 궁금히 여기었다.

“나도 거기에 있었어?” 

“응, 넌 부엉이가 부리에 물고 간 빛나는 돌이야.” 

나는 소리 없이 빙그레 미소지으며 형의 전생에 대하여 물어 보았다.

"형, 부엉이 둥지를 찾아 가면 빛나는 돌을 얻을 수 있겠다. 근데 그게 어디에 있어?"

형은 나를 의아한 눈으로 뚫어지게 보고 되물었다.

“넌 전생에 대해 기억나는 것 있어?” 

“아니, 하나도 없어.” 

“나도 그래.” 

형과 나 사이에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내가 형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니 눈을 깜박거리지 않았다. 나는 순하게 잠을 자는 형의 그 곳에 손을 얹었다. 순면의 흰 삼각팬티 사이로 도드라진 그 곳이 내 손끝을 통해 느꼈다. 


   “자기야, 일어나 아침 먹자.” 

아내가 나를 소리쳐 부르는 바람에 깊은 잠에서 깨어나 주위을 살펴보았다. 주위가 변한 건 하나도 없고 꿈속에서 형을 만난 것뿐이었다. 

나는 꿈에도 잊지 못할 형의 안부가 궁금하여 수화기를 잡고 세월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 번호를 꾹꾹 눌렀다. 몇 번 신호는 가는데 전화를 받지 않다가 형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슬그머니 수화기를 놓았다. 그리고 옛 추억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형이 버스 터미널에서 잘 가라고 손을 흔들던 그 모습이 마지막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마지막이라는 말보다 더 슬픈 것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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