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와 꼬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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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절은 바야흐로 겨울철에 들어서고 있다. 기와 지붕에 메타세콰이어 낙엽이 쌓이던 가게는 인테리어 작업이 한창이다. 투명 유리로 가게의 앞면을 만들고 건물의 전부를 흰색으로 색칠했다. 가게 안으로 들어가면 벽면 양쪽에 원목 선반을 설치하고 한가운데 탁자와 의자가 있다. 안쪽으로 책상과 컴퓨터를 배치하고, 가게와 살림집을 연결하는 출입문이 있다. 


   승리는 개업식을 생략한 채 가게를 일찍 열고 장사를 시작했다.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려고 하는데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이 승리를 밖으로 유인했다. 승리는 모형 비행기와 무선 조종기와 충전지를 챙겨 가게를 나섰다. 횡단 보도에서 녹색 불이 들어오기를 기다리는 동안에 도로 건너편에 사자상이 눈에 띄었다. 승리는 녹색 불이 들어오자 두리번두리번 좌우를 살피고 도로를 건넜다. 

승리는 조천 둔치에 발길을 멈추고 깃발이 바람에 펄럭이는 것을 보더니 방향을 살폈다. 모형 비행기에 충전지를 넣고 무선 조종을 준비하는 동안에 건소는 승리에게로 다가왔다. 

모형 비행기가 속력을 올리고 이륙하자 승리는 무선 조종기로 곡예비행을 시도했다. 건소는 고개를 들어 곡예비행하는 광경을 바라보고 절로 감탄을 자아냈다.

"우아, 멋지다! 할아버지 저도 한번 하게 해주세요."

승리는 무선 조종하면서 뒤를 돌아보고 얼른 모형 비행기에 눈길을 주더니 무뚝뚝한 말투로 대응했다.

"나 너 같은 손자 둔 적 없다."

"그래도 가족 중에 저 같은 손자가 있지 않나요?"

"어른한테 꼬박꼬박 말대답하는 게 버르장머리가 없구나."

"죄송해요."

건소는 시무룩한 표정을 짓고 집으로 무거운 발을 옮겼다. 승리는 건소의 동태를 감지하고 이내 모형 비행기를 잔디밭에 착륙했다. 건소를 그냥 보내는 게 꺼림하여 소년을 소리쳐 불렀다.

"꼬마야!"

"저 꼬마 아녀요. 자지에 털 난 어엿한 사내란 말에요."

"아주, 고 녀석 성깔 보통이 아니네."

승리는 입 속으로 중얼거리다가 큰 소리로 엉뚱한 말을 불쑥 내던졌다.

"니가 거기에 털 났는지 난 못 봐서 알 수 없고 ····."

건소가 한꺼번에 트레이닝 바지와 팬티를 허리 아래로 내렸다. 승리는 건소의 돌발적인 행동에 말을 멈추었다. 두 사람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흐르더니 승리가 건소의 거웃을 보고 입가에 미소를 띠면서 입을 열었다.

"너 니 약점 말할 때마다 추리닝 까 보이지."

"어, 어떻게 아셨어요?"

"니가 하는 행동을 보면 단박에 알 수 있어."

건소는 입을 반쯤 열어 연하게 빙그레 웃었다. 승리가 손에 모형 비행기를 들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너한테 비행기는 어려우니까 자동차는 해줄 수 있어."

"정말요?"

"응, 나 따라와 봐."

"예, 할아버지 고맙습니다!"


승리가 문을 열고 건소와 함께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건소는 승리의 남다른 배려에 입이 함박만하게 벌어졌다. 

"이게 다 할아버지 거에요?"

"응, 근데 꼭 할아버지라고 불러야 되니?"

"그럼 ····."

건소는 잠시 말을 끊고 승리의 눈치를 살폈다. 승리가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자 건소는 얼렁뚱땅 넘어갔다.

"전 한번 맘먹으면 안 변해요. 그냥 할아버지로 할래요."

"넌 누굴 닮아 고집이 그리 세냐?"

"아빠가 그러시는데요. 할아버지를 닮았데요."

"그 분이 어떤 분인지 안 봐도 알겠다."

건소는 마음의 만족함을 느껴 어리석게 한 번 웃었다. 승리가 진열장 위에 모형 비행기를 올려 놓자 건소는 그쪽으로 다가갔다. 완성품들이 진열되어 있는 중에 손가락으로 모형 자동차를 가리켰다.

"이걸로 하고 싶어요."

"그래, 우선 조종기를 설명해 줄게."

승리가 무선 조종기 두 개를 양손에 들고 자세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오른손에 있는 조종기는 그립형인데 생긴 모양을 보고 흔히 권총형이라고 해."

"그러고 보니 그렇게 생겼어요."

"왼손에 든 건 ····."

승리는 잠시 말을 멈추고 건소의 초롱초롱 빛나는 눈을 바라보았다. 승리가 말을 멈추자 건소는 의아하게 생각했다.

"왜 그러세요?"

"응, 아무것도 아냐. 자, 이건 콘트롤 스틱형인데 난 첨부터 이걸로 배워서 한번 써 봐."

"예."

승리가 무선 조종기를 건소에게 건네주자, 건소는 해죽거리며 좋아서 어쩔 줄 몰랐다. 승리는 다른 무선 조종기를 가지고 방법을 가르쳤다.

"우선 건전지 넣는 방법을 알려 줄게. 조종기 뒷면에 커버를 손으로 밀면 열리거든."

건소가 승리를 따라서 무선 조종기 커버를 열었다. 승리는 손가락으로 건전지를 집고 세세한 설명했다. 

"건전지 케이스를 보면 스프링 달린 쪽이 음극이고 반대쪽은 양극이야." 

"그건 알아요."

"건전지는 젖꼭지처럼 볼록하게 나온 부분이 양극이고 반대쪽은 음극인 거 알지?"

건소가 대답 대신에 입을 반쯤 열어 연하게 빙그레 웃었다. 승리는 건소가 웃는 것을 알아채고 속을 떠보았다.

"내가 젖꼭지라고 말해서 웃는 거지?"

"예. 그러고 보니 진짜 그렇게 생겼어요."

승리는 건소의 얼굴을 바라보고 멋쩍게 씩 웃으며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배터리는 요게 플러그고 이건 잭이야. 건소도 보다시피 양극과 음극이 바뀌지 않게 모양을 만들었기 때문에 서로 맞춰 끼우기만 하면 돼."

승리는 무선 조종기 전원 스위치를 건소에게 알려 주었다.

"이 스위치를 위로 올려 봐."

"이렇게요."

"응, 조종간 아래와 옆에 있는 트림 조정하는 건 이따가 알려줄게. 우선 자동차 전원 스위치를 온 쪽으로 밀어 봐."

"예. 어, 불이 들어와요."

"그건 정상적으로 작동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신호야. 이젠 내가 가르쳐 준 반대로 스위치를 다 꺼."

건소는 모형 자동차의 스위치를 끄자마자 바로 무선 조종기 스위치를 껏다. 승리는 무선 조종기와 배터리를 가방에 챙겨 넣고 진열장에서 모형 자동차를 들었다.

"이젠 밖에 나가서 한번 주행해 보자."

"예."

건소가 양손에 무선 조종기와 모형 자동차를 들고 신이 나서 승리와 함께 길을 걸었다. 승리는 인라인 스케이트장에 당도하여 모형 자동차와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승리가 먼저 무선 조종기와 모형 자동차 스위치를 켜자 건소도 승리를 따라서 했다. 승리는 무선 조종기 사용법을 건소가 잘 알 수 있도록 설명했다.

"오른쪽 조종간은 속도를 조종하는 거고 왼쪽 조종간은 방향을 조종하는 거야. 오른쪽 조종간을 위로 천천히 올려 봐."

"어, 차가 움직이기 시작해요."

"이젠 아래로 살짝 내려 봐."

"차가 뒤로 가요."

"중립 위치에 조종간을 놓으면 브레이크 기능으로 차가 멈출 거야."

"야, 진짜 신기해요. 근데 누가 이걸 만들었어요?"

"나보다 머리 좋은 사람들이 이것저것 발명해서 돈 쓰게 만든 거야."

승리는 이야기를 하다가 시선을 건소에게로 돌렸다. 승리와 눈이 마주치자 건소는 방긋 웃었다. 

"자, 이젠 왼쪽 조종간이 어떤 기능하는지 짐작할 수 있겠니?"

"예. 아까 트림에 대해서 설명해 준다고 했는데요."

"아, 그렇지. 차가 똑바로 가지 않고 어느 한쪽으로 기울면 트림으로 조절하는 건데 왼쪽 조종간 아래에 톱니 모양을 찾아봐."

"찾았어요."

건소는 대답하면서 승리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승리는 건소와 시선이 딱 마주치자 농을 걸었다. 

"왜, 내가 멋있어 보이니?"

건소가 대답 대신에 고개를 끄덕이자 승리가 잘못을 지적했다.

"어른이 물어 볼 때 말로 대답하는 거야."

건소의 해맑고 싱그러운 미소를 보고 승리는 환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아무튼 그걸 왼쪽으로 밀면서 앞바퀴를 봐봐."

"어! 바퀴가 조금씩조금씩 움직여요."

"그렇게 해서 차가 똑바로 가게 맞추는 거야. 내 말 알아듣겠니?"

"예."

"그럼 이제부터 니 맘대로 해."

건소는 승리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기다렸다는 듯 무선 조종기를 작동했다. 인라인 스케이트장을 쌩쌩 달리는 모형 자동차를 보고 승리가 불쑥 한마디 내뱉었다.

"그거 실수로 부서지면 물어내야 돼."

"알았어."

건소는 무선 조종에 빠져 반말로 재빨리 대답하더니 잠시 후에 의구심을 가졌다.

"차 값이 얼마나 가요?"

"적어도 몇 십  만 원은 할걸."

"정말요?"

건소는 무선 조종하다 말고 승리 얼굴을 바라보았다. 승리는 건소의 표정을 살피고 장난기가 어린 웃음을 머금었다.

"반만 내."

"왜 반이에요?"

"주범은 나고 공범은 박건소니까."

"으하하, 할아버지 멋지세요. 어, 근데 제 이름은 어떻게 아셨어요?"

건소가 오른손 엄지를 추켜세우다가 문득 의아하게 생각했다. 승리가 묻는 말에 대답은 하지 않고 능글능글 웃기만 했다. 건소는 승리의 행동에 의구심을 가지고 골똘히 생각하더니 그제야 트레이닝복에 이름이 새긴 것을 보고 싱겁게 웃었다. 

건소가 무선 조종에 익숙해지자 승리의 모형 자동차 뒤에 바싹 붙었다. 승리는 미소를 짓고 팽팽한 접전을 벌였다. 

승리와 건소가 새 배터리로 교환하면서 눈길이 마주쳤다. 건소가 싱글거리며 승리에게 과감히 도전했다.

"할아버지 저랑 시합할래요."

"그 도전에 기꺼이 응해 주겠어. 하지만 그냥 시합하면 재미없으니까 내기하자."

"뭘로요?"

"니가 날 이기면 가게에서 아무거나 골라서 가져도 돼."

"정말요?"

"요 녀석 좋아하기는 그러는 넌 뭘 걸 거니?"

"전 제 자신을 걸래요."

"아주, 요 녀석 봐라. 자신 있단 말이지?"

건소는 흐뭇함을 참지 못하고 입을 조금 벌리고 은근히 웃는 소리를 냈다. 승리는 기분이 좋아 시합 방법을 차근차근히 설명해 주었다. 

"인라인 스케이트장을 보면 바깥쪽은 파란색이고 안쪽은 빨간색이지."

"예."

"우리가 서 있는 곳에서 출발하여 파란색을 한 바퀴 돌면 저기 반원주까지 교차해서 빨간색을 번갈아 도는데 주행 중에 금에서 벗어나거나 교차하는 지점을 어기면 지는 거야. 내 말 알아 듣겠니?"

"예, 파란색을 먼저 돌고 요 앞에서 빨간색으로 교차해서 돌면 되는 거죠?"

"우아, 건소 머리 좋다."

"할아버지 고마워요."

건소가 칭찬을 듣고 기분이 좋아 온몸이 공중에 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승리는 건소의 기분을 알아채고 그에 대비해 시합을 시작했다.

"건소야, 출발선에 서."

"예."

"하나 둘 셋하면 출발하는 거다."

"그냥 한 번에 말씀하시면 안 될까요?"

"고 녀석 성질 한번 급하긴. 알았어."

건소가 모형 자동차를 출발선 앞에 멈추고 승리의 신호를 기다렸다. 승리는 출발을 망설이지 않고 큰 소리로 신호를 보냈다. 

"출발!"

전동기가 윙윙 회전하는 소리와 동시에 두 대의 모형 자동차 타이어에서 스파크가 일어났다. 건소가 승리보다 월등히 나은 무선 조종 실력으로 모형 자동차가 앞서서 질주했다. 승리가 이번 내기를 포기하려는 순간 건소가 반원주를 도는 지점에서 속도를 늦추지 못하는 바람에 모형 자동차가 파란색에서 벗어났다. 승리는 여유 있는 태도를 보이며 파란색과 빨간색 코스를 완주하고 환호성을 질렀다.

"야호, 내가 단번에 이겼다! 이제부터 누가 뭐라고 해도 넌 내 거야. 알았지?"

"할아버지 단판은 너무 억울해요. 더도 덜도 말고 삼세번으로 해주세요."

"쩨쩨한 놈, 첨부터 그렇게 말할 것이지. 내기에 지니까 삼판양승하자고."

"할아버지, 제발 부탁 좀 들어 주세요."

건소가 쉽게 단념하지 않자 승리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건소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좋아! 출발선에 다시 서."

"헤헤, 할아버지 고맙습니다!"


승리와 건소의 시합 결과는 승리가 이길 것이 번했다. 건소는 내기에서 지고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승리는 건소의 기분도 아랑곳없이 자기 뜻대로 밀고 나갔다.

"건소 넌 내 거니까 아빠한테 호적에서 이름 파 달라고 해."

"제가 할아버지 거면 가게에 있는 것도 제 거네요."

"천만에, 그건 너와 상관없는 줄 알아라."

"근데 절 가져서 뭐하실려고 그래요."

"내가 달라고 한 거 아니다. 너 자신을 선뜻 걸고 내기한 거니까 앞으로 어디에 쓸지는 생각해 봐야겠다. 아, 아들 삼으면 되겠네."

"네? 할아버지 제가 아무리 잘못했기로소니 이건 너무하시는 거 아녀요. 손자면 모를까 아들이라면 나이 차이가 많이 나요."

승리가 멋쩍에 씩 웃으며 이야기를 다른 방향으로 돌렸다.

"오늘은 그만 하자."

"할아버지 한 번만 더 하면 안 될까요?"

"배터리를 다 써서 이젠 하고 싶어도 못하니까 담에 하자."

"예. 오늘 할아버지를 뵙고 많은 걸 경험해서 기분 째져요."

"고 녀석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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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재밋게봤습니다 근데ㅠ외람된말씀이지만 범죄자이름쓰는건좀그렇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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