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드 무비(Sad Mov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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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숨긴 나이


   나는 고심 끝에 일곱빛깔로 닉네임을 결정하고 인터넷에 접속했다. 채팅하기 전에 우선 내 닉네임을 알리기 위하여 대기실에서 죽치고 있었다. 그리고 채팅방을 만들어 내 덫에 한 사람이 걸리기를 기다렸다. 인내력을 가지고 기다린 보람이 있어 드디어 대나무라는 닉네임이 입장했다.

-안녕하세요? 전 대나무라고 합니다.

-대나무님 만나서 반갑습니다.   

대나무는 자신감이 넘치는 신상을 공개하여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나는 기회를 놓치지 않을 심산으로 실제의 나이보다 열 살이나 줄여서 신상을 밝혔다. 

나와 대나무 사이가 급진적으로 발전하면서 훗날 만날 것을 굳게 기약하고 채팅방에서 나왔다. 나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나는 평상시와 다른 옷차림으로 약속 장소에 일찍 도착했다. 대나무를 만날 걸 생각하니 마구 가슴이 설레었다.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고 자문자답하면서 대나무가 오기를 기다렸다. 출입문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손을 높이 들었다.

"여기요."

나와 대나무는 휴대전화를 통해 사진을 주고받아서 처음 만났는데도 낯설지가 않았다. 대나무는 나와 눈길이 마주치자 꾸벅 인사하더니 의자에 앉자마자 대뜸 의구심을 가졌다. 

"제가 아는 사람에 비해 나이 들어 보이시네요."

"아! 남들이 다 그렇게 말해서 이젠 면역이 됐어요."

나는 위험한 고비를 돌파구의 방편으로 삼았다. 대나무는 내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나이에 대하여 언급하지 않았다. 

스무 살의 대나무는 청소년에서 탈피하여 성년으로 접어드는 싱싱하고 생기 있는 나이, 나는 대나무가 마냥 좋기만 했다. 사과를 한입 깨물면 과즙이 사방으로 톡톡 튀는 듯한 느낌이 들어 순간적으로 엉큼한 생각을 품었다.

나는 속내를 감추고 차림표을 대나무에게 건네주었다. 대나무는 차림표를 자세히 훑어보다가 한참만에 입을 열었다. 

"전 못 고르겠어요. 형이 사 주고 싶은 거 사 주세요."

"그럼, 정식 먹어요."

"제가 형이라고 부르는데 경어를 쓰면 이상하잖아요?"

"그럼 우리 편하게 서로 말 트고 지내는 거 어때?"

"그거 좋죠."

대나무는 내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이고 방긋 웃었다. 어쩌면 사람을 만나서 대화를 나눌 때 제일 중요한 건 마음의 벽을 허무 것이 아닐까?


2. 영화 관람


   나는 주말 오후에 대나무와 영화관 앞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나는 대나무가 예매한 입장권을 돈으로 주려고 했는데 한사코 거절했다.

"돈 대신 이따가 맛있는 거 사줘."

"그러면 돈이 더 드는데."

"그게 아까우면 그냥 돈으로 줘."

나는 그냥 우스개로 해 본 소리인데 대나무는 비위가 상했다. 나는 화급하게 손사레를 치며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나와 대나무는 영화관 안으로 들어가 의자에 앉았다. 여러 사람이 수군수군하며 소란을 피우다가 영화가 시작하자 일순간에 조용해졌다.

나는 영화를 관람하는 내내 딴 생각하여 대형 화면이 망막에 맺히지 않았다. 오래 망설이던 끝에 결심하고 대나무의 허벅지에 손을 슬쩍 얹었다. 그리고 심장 맥박이 빨리 뛰기 시작했다. 대나무는 의외로 아무렇지 않은 듯이 가만히 앉아 있었다. 

지금은 성행위에 몰두해 영화 따위는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그곳을 탐험하기 위한 욕망만 충만했다. 대나무의 감촉이 부드러운 순면 팬티와 팽배하게 부풀은 그곳 사이를 손끝에 의해 감지했을 때 벅찬 감동이 거세게 밀려왔다.

나는 순면 팬티 소변구에 손을 넣어 더듬적거리더니 드디어 맨살의 그곳을 만져 보았다. 대나무의 그곳은 오랜 시간 내 손을 기다린 듯 단단하고 꼿꼿하게 서 있었다. 너무 크지도 않은 그곳을 잡는 순간 흥분하여 몸이 부르르 떨렸다. 

나는 그곳의 탐험을 무사히 마치고 용기를 내어 대나무의 손을 끌어당겨 내 것에 놓아두었다. 대나무는 대형 화면을 망연히 응시할 뿐 아무 반응이 없었다. 


나에게 영화 감상을 물어 본다면 대나무의 그곳을 탐험한 바를 서슴없이 말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대나무는 영화관에서 나오자마자 내 어깨를 툭 치며 옆 사람한테 들리지 않게 조용히 말했다.

"형 때문에 영화를 봤어도 무슨 내용인지 하나도 모르겠어." 

"그랬어! 아유, 귀여운 거. 그런 나는 어떻것니?"

나는 대나무의 목을 팔로 감싸고 매우 귀여워했다. 대나무는 그렇게 내 마음에 녹아 들어오고 있었다.


3. 16년 차이 


   연말 황금 연휴를 즐기는 사람들이 번화한 거리에 북적거렸다. 요소 요소에 경찰관을 배치하고 치안 유지를 담당했다. 때때로 무전기로 교신할 때마다 노이즈 음이 들렸다.

나는 대나무와 함께 술집으로 들어가 의자 앉아 술과 안주를 주문했다. 나는 대나무와 대화하는 동안에 시선을 돌리다가 사복 차림의 경찰관을 발견했다. 2명의 경찰관은 사람들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이쪽으로 다가와 말을 걸었다.

"신분증 좀 보여 주세요."

대나무가 지갑에서 주민 등록증을 꺼내 경찰관에게 제시하자 다른 경찰관이 나에게 신분증을 요구했다. 나는 뜻하지 않은 상황에 놀라 거짓말했다.

"집에 두고 왔는데요."

"그럼 신원 조회하게 주민 등록번호 불러 주세요." 

나는 경찰관의 요구를 들어 줄 수도 안 들어 줄 수도 없어 참으로 난처했다. 이 일은 애당초 처음부터가 잘못되어 후회가 막심했다. 

나는 주민 등록번호를 불러 주면서 대나무가 어떻게 생각할지가 자못 의문스러웠다. 사람이 살다 보면 별별 일을 다 겪게 마련인데 지금의 상황은 최악의 결과를 낳았다. 경찰관은 무전기로 서로 교신하더니 이상 없다며 자리를 떴다. 

나는 대나무의 얼굴을 도저히 바라볼 수가 없었다. 이번 일은 돌발 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방법을 몰라 나도 어찌해 볼 도리가 없었다. 대나무는 내 마음을 아는지 조금도 내색하지 않았다. 

"술이나 마시자."

"자, 다 같이 건배!"

대나무는 기분이 좋게 나를 대하며 술을 마셨다. 나와 대나무는 권커니 잣거니 술을 마시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대나무는 오래 버티지 못하고 결국은 기진맥진하여 쓰러졌다.

나는 술값을 지불한 뒤에 대나무를 부축하여 눈에 띄는 모텔로 들어갔다. 대나무를 침대에 눕히고 나도 벌렁 드러누워 멍하게 천장만 바라보았다. 

어차피 들통난 것이라면 내 마음대로 대나무를 겁탈할까? 나는 걱정 때문에 뜬눈으로 밤을 새우고 밝은녘에 잠이 들었다.       


4. 자기 용서


   나는 대나무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나니 마음이 홀가분했다. 종일 방 안에서 뒹굴고 있는데 휴대전화 벨이 울렸다.

"여보세요?"

"전데요."

나와 대나무의 사이를 우려했던 거와는 달리 맑은 목소리가 수화기를 통해 들렸다. 나는 흥분을 가라앉히고 냉정하게 생각했다.

"왜, 깍듯이 경어를 쓰지?"

"대여섯 살도 아니고 십육년이나 차이 나는데 어떻게 말을 놔요."

대나무의 직설적 표현에 나는 가슴이 뜨끔했다. 나는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대나무의 의중을 떠보았다.

"우리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

"그럼 전에 만났던 장소로 나와요."


나는 대나무를 약속 장소에서 만나자마자 다정하게 맞아 주었다. 대나무는 이야기를 나누다가 문득 시선을 내게로 돌렸다.

"왜, 그런 눈으로 쳐다보고 그래."

"실제 나이를 알고 보니 동안이시네요."

"고마워! 뭐 먹고 싶으니?"

나는 기가 살아 차림표를 대나무에게 건네주었다. 대나무는 차림표를 보면서 지나가는 말로 느끼는 바를 슬쩍 비쳤다.

"매너는 좋으시네요."

나는 마음에 만족함을 느껴 어리석게 한번 웃었다. 그리고 속마음으로는 쾌재를 부르며 좋아했다. 대나무는 손을 높이 치켜들고 아르바이트 학생을 불렀다.

"여기 정식 둘 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대나무를 내 집으로 데리고 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모든 것을 밝히고 나니까 거리낌없이 보여 줄 수 있었다. 대나무는 앨범을 달라고 하더니 옷을 벗고 침대에 엎드려 사진을 보았다. 나는 대나무와 같이 사진을 보면서 행복이 넘쳐흘러 방 안에 가득 쌓였다.   


대나무는 곤하게 자고, 나는 홀로 잠에서 깨어 대나무가 깰세라 조심조심 그곳을 만져 보았다. 대나무는 발기하지 않은 말랑말랑한 그곳을 허락하면서 나를 묘한 감정에 휩싸이게 만들었다. 나는 틀림없이 대나무의 그곳을 만지고 있는데 내 것을 만지는 착각을 일으켰다. 

나는 하도 신기해서 대나무의 그곳을 손으로 살짝 꼬집었다. 대나무는 움찔 놀라 몸을 뒤척거렸다. 나는 손을 움직이지 않고 쥐죽은듯이 가만히 누워 있었다. 

벽시계의 초침이 재깍재깍 소리를 내며 돌아가더니 어느새 나도 모르게 대나무의 그곳을 잡고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나는 눈을 뜨고 대나무와 얼굴을 마주 보았다. 내 손을 폈다가 네 손가락을 접고 새끼 손가락만 세웠다. 대나무가 손 모양을 알아채고 나를 덮쳤다. 그리고 내 것을 만지려고 이불 속을 파고들었다. 


5. 감정 싸움


   나는 대나무를 위하는 마음으로 영화 입장권을 예매하고 전화를 걸었다. 휴대전화 신호는 가는 데 대나무가 전화를 받지 않아 다소 실망했다. 나는 조금 더 기다렸다가 다시 대나무에게 전화했다.

"네?"

"조금 아까 왜 전화를 안 받았니?"

"볼일 보고 있었어요."

"그랬구나. 나 영화표 샀는데 우리 어디서 만날까?"

"저, 선약이 있는데 어쩌죠?"


나는 혼자라도 영화를 관람할 생각으로 영화관 안으로 들어갔다. 대나무와 함께하지 못한 것이 내내 서운했지만 그를 잊어버리고 영화에 몰두했다.

사람들은 영화가 끝나자 자리에서 일어나 출입구 쪽을 향해 걸어갔다. 나는 자리에서 막 일어나려 하는데 바로 그 때 낯익은 얼굴이 눈에 띄었다.

나는 대나무를 보는 순간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대나무의 배신 행위에 화가 나서 씩씩거렸다. 지금의 솔직한 심정은 대나무를 늘씬하게 두들겨 패고 싶었다. 그러나 가혹한 현실을 직시하고 화를 꾹꾹 눌러 참았다.

나는 집에 돌아와 휴대전화를 들었다가 놓기를 반복하며 초조한 마음을 누르지 못하고 방 안을 서성거렸다. 대나무는 때맞게 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전데요. 같이 영활 못 봐서 죄송해요."

"아냐. 난 아무렇지 않으니까 걱정하지 마. 밥은 먹었니?"

"예."

나는 일순간에 다감한 심성을 가지고 마음을 바꾸어 먹었다. 대나무는 나의 일에 대해서는 한시름 놓은 듯 목소리가 한층 생기에 넘쳤다. 


며칠 뒤, 나는 대나무와 함께 하고 싶어 전화를 걸었다. 대나무가 나를 반가이 대하는 태도가 진지했다. 나는 기분이 좋아 대나무의 의향을 물어 보았다.

"지금 갈테니 집에 있을래?"

"저 조금 있다가 나가 봐야 하는데요."

나는 차분하게 앞뒤를 헤아리지 않고 대나무의 비위를 건드렸다.

"전에 영화 같이 본 사람이 누구냐?"

"제 친구요."

나는 사람을 잘못 본 것 같아 꼬리를 사리고 횡설수설했다. 대나무는 차분한 목소리로 무언가 암시하는 듯한 말을 남겼다.

"저를 그렇게 못 믿으셨다면 이만 전화 끓을게요."

"잠깐만!"

뚜뚜뚜


6. 자포자기


   "오늘이 며칠이지?"

나는 대나무와 만남 아니면 헤어짐이라는 선택의 갈림길에서 헤매고 있었다. 대나무의 사생활을 존중해야 한다는 사실은 엄연한 진리였다. 

나의 모든 자존심을 버리고 하루바삐 대나무를 만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고 공백 기간을 두었다.


나는 대나무가 결백하다는 것을 확신한 다음에 그의 집 앞에서 전화를 걸어 용건만 간단히 전했다.

"나 안 보고 싶었니?"

"저를 못 믿는 사람을 보고 싶다고 생각하시나요?"

나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고 대나무의 반문에 대해 즉각 반박하고 나섰다.

"널 꼭 붙잡고 싶어서 그랬어."

대나무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수화기에서 거친 숨소리만 들려 왔다. 나는 대나무의 틀어진 마음을 돌리려고 차분한 목소리로 의중을 떠보았다.

"우리 아무 일 없었던 걸로 하자."

"그게 말처럼 쉽게 되나요?"

나는 인사 한마디 없이 교제를 바로 끊어 버리는 대나무의 언행에 실망하고 그 앞에 버린 자존심을 도로 챙겨서 집에 돌아왔다. 그리고 두 번 다시 재발하지 않게 대나무와의 추억을 억지로 머릿속에서 지워 버렸다. 그렇게 하루, 이틀, 사흘 그리고 더‥‥.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조차 모르고 세월이 무심하게 흘렀다. 나에게 필요한 건 시간이 해결해 줄 뿐이었다. 

나는 기운을 차리고 평범한 일상생활으로 기필코 돌아 가리라고 굳게 마음먹었다. 거울에 비친 초췌한 얼굴을 보고서야 비로소 채팅의 의도는 좋았으나 결과적으로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나를 이렇게 만든 건 대나무가 아니고 바로 나였음을 깨달았다.



++ 지금까지의 글은 Sue Thomson의 Sad Movie 노래 가사에서 영감을 받아 쓴 글입니다. 

 

Sad movies always make me cry


He said he had to work, so I went to the show alone.

They turned down the lights and turned the projector on.

And just as the news of the world started to begin,

I saw my darling and my best friend walking in.


- 이하 생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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