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리, 이상무 #1 ~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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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 이대리


“대리님. 대리님은 진짜 이해가 안돼요.”

“또 뭐가..”


뭔 말 할줄은 대충 안다.


“제가 아는 형들 중에 대리님만큼 성격 굿. 얼굴 완전 훈남. 학벌좋아 집안좋아. 그리고 이 팔뚝 보세요.”

“아 아퍼 임마..왜 꼬집어!”

“왜 여자친구가 없냐구요..!”


술 거나하게 취한 회사 후배녀석이 또 시작을 한다.


“취했다. 가자 집에!”


나? 이우석. 올해 서른. 얼마전 대리승진한, 그냥 좀 유명한 회사 다니는 직장인이다. 그리고..예상했겟지만. 그래 게이다. 

작년까지 2년간 사귄 동생이 있었다. 빅. 김대현이라는 이름이 있지만 나도 친구들도 모두 빅이라 불렀다. 나름 멋지게 잘 어울린다고 부러움 많이 받는 소위말하는 인스타 유명 커플이기도 했다. 여차저차 헤어진뒤로 거의 8개월이 지났지만 이제 누굴 만나는것도 귀찮아진다. 

그러다보니 여기 게이들이 모인다는 사우나 앞에 지금 나는 다시 서있다. 지난번엔 이 사우나 앞에서 한시간이나 망설이다가 발길을 돌렸다.

교감신경을 충분히 자극시킨 알콜은 나도 모르게 발걸음을 사우나 안으로 안내했다.


“흡..”


수면실에 들어가자 마자 풍기는 야릇한 냄새. 축축하고 비릿하고 역했다.

잔뜩 취한 와중에도 그 불쾌하면서도 야릇한 냄새는 뇌리에 또렷히 남았다.


어두컴컴한 저 안쪽에서 분명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지만 근처로 다가설 용기는 나지 않았다.


“어..!!”


그렇게 가장자리에 누워 우물쭈물 거리기도 잠시.. 어느덧 발기도 되지않은 내 물건은 누군가의 입속으로 들어가 있었다.

“으윽..”

그의 혓바닥 속에서 흔들리던 내 물건은 어느새 그의 목젖을 찌르며 고개를 곧추 세우고있었다.

손으로 그의 머리카락을 느끼고 어깨를. 등을 느꼈다. 매끄럽고 단단한 근육질이다. 어둠속에 어렴풋이 비치는 그의 살결은 의외로 하얗다.


팔로 얼굴을 가렸다. 내가 누구인지 숨기고 쾌락의 끝을 느끼고 싶었다.

목이 아프지 않을까 걱정될 만큼 나의 물건을 격렬히 빨고있는 그의 머리를 잡고 더 강하기 내리찍는 순간 어느덧 또다른 누군가가 나의 오른쪽 젖꼭지를 공략했다. 

“아...”

신음이 흘러나왔다.

게이생활 5년차지만 아직 두사람이.. 아니 다시 지금 내 왼쪽 젖꼭지를 문 노란머리 녀석까지.. 세사람이 나를 감싸건 그야말로 첫 경험이다.


숨막히는 순간이었다. 찌릿한 양쪽 젖꼭지에서 흘러내리는 쾌감은 터질듯한 나의 물건과 결합하고 그 강렬한 전기적인 자극은 나도모르게 다리가 덜덜 떨리게 만들었다.


내 물건을 미친듯 빨아내던 하얀 근육녀석은 어느덧 내 위로 올라와서 내 물건을 내리찍는다.


“으윽...”

이대로 사정할것 같았던 그 순간. 문득 내 물건과 그 사이에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 뇌리를 스쳤다.


“아..잠시만..콘돔..”


그냥 더 이상은 내 욕정이 이성을 이길 순 없었다.


그를 밀쳐내고 양 젖꼭지를 점령하던 나머지 두명도 밀어내고 난 그 소돔같은 수면실을 빠져나왔다.


채 발기가 풀리지도 않은 내 물건을 손으로 감추며 샤워실로 들어가려는 순간.


“!!!!”


헤어진 동생..빅과 눈이 마주쳤다.

딱 0.5초의 멈칫함과 아직 벌겋게 부풀어있는 내 물건을 바라보는 동생의 눈길 0.5초를 합해 우리의 조우는 1초였고 아무만 없이 나는 도망치듯 그곳을 나왔다.


“씨ㅂ”


게이인 것이 갑자기 소름돋게 싫어졌다.





Chapter 2. 이상무 05/04


새 회사 출근 일주일째. 아직 정신이 없다.

회사는 생각보단 많이 답답하다. 맥북을 달랬더니 1주일동안 감감 무소식이다. IT지원팀 팀장을 조저야하나? 아니 들어오자 마자 진상 상무 들어왔다고 소문날수도 있다.


“상무님”

부하 팀장이다. 부하라고 하지만 사실 나보다 두살이 많다.


“상무님..오늘 상무님 환영회식 아시죠? 저희 차 세대로 이동하는데 상무님도 저희차로 가시죠!”

들어오면 꼭 회식을 해야한다고 해서 마지못해 잡았지만 뭔가 이 회사는 일보다 단합대회가 우선인 느낌이라 좀 싸하다.


“네 그러시죠”


나? 이름은 이영준. 나이는 마흔둘. 이혼한지 3개월차 돌싱이다. 

열심히도 했고 또 운도 좋았다. 전회사에서도 최연소로 이사 달고 이 회사에 스카우트 받으면서 상무 안주면 안오겠다고 버텼더니 전례없다는 말과 함께 상무 타이틀을 주더라.

요즘 IT업계에 30대 중반 임원이 넘쳐나는데 아직도 대기업이랍시고 이런 마인드인게 불만이긴 하지만 이런 보수적인 조직에서도 인정받은 느낌이 나쁘지는 않다.


이혼은 왜 했냐고? 굉장히 길고 고달픈 이야기지만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기로 하고, 어쨋건 늦게 시작한 결혼생활 3년만에 정리하고 다시 돌싱이 된 이 기분을 방해받고 싶지는 않다. 그만큼 지난 3년이 쉽지않았다.


“상무님”


눈앞에서 나를 부르는건 웬 젊은 녀석이다. 본적이 있었던가? 입사하고 지난 일주일 거의 방에만 있었다 .


“전략팀 이우석 대립니다. 팀장님이 상무님 모시고 오라셔서.. 지금 나가실수 있으세요?”



“어.. 어 그래요”


대리를 보내? 

나보다 두살많은 부하 팀장이 살짝 나를 무시하는 느낌이 들기도 전에 저 멀쩡하게 생긴 대리녀석이 같이가자고 웃고 서 있는데 괜히 기분이 나쁘진않았다. 남자건 여자건 잘생기고 이쁜애들하고 일하면 일도 더 잘되더란게 지금까지의 결론이다.


“이대리, 차가 좋네요?”

아무리 요즘 욜로가 유행이라지만 대리라면서 AMG붙은 벤츠를 회사에 끌고다녀도 되나 싶다가도 그런 생각 자체가 꼰대스러울수 있다는 강박에 금방 쿨한 모드로 바뀐다.


“아..네..아닙니다. ㅎ 그냥 차 좋아해서요..”


녀석이 냄새가 좋았다. 우드에 시트러스. 육두구..

한동안 말없이 운전하는 녀석의 냄새를 분석하느라 오랜만에 후각을 풀 가동시켰다. 아, 누군가의 향수를 분석하는건 내 오랜 취미이다. 변태가 아님을 밝혀둔다.

그리고 녀석의 숨 깊은곳에서 희미한 알콜이 느껴진다.


조용한 차에서 적막을 깬다.

“이대리 어제 술마셨어요?”

“헉 상무님.. 어떻게... 그런데 이미 다 깼는데.. 저 음주운전 아닙니다. ㅎ 진짜요..”

“아니 이정도 냄새나면 불면 나올걸? ㅎㅎ”


또 침묵이 흐른다. 아직 잘 모르는 대리녀석이랑 딱히 할말도 없다. 그렇다고 이녀석이 상무님 하면서 말을 잘 걸지도 않는다.

흘깃 이대리의 옆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잘생겼다. 꽉다문 입술을 가끔 씰룩거리는데 입술도 잘생겼다. 하얀 목덜미에 어깨가 다부지다.

핸들을 부여잡은 두 팔이 살짝 걷어올린 셔츠와 묘하게 어울린다. 

브랜드가 정확히 보이진 않았지만 분명 스와치 같은 평범한 시계인거같은데 녀석의 팔 위에서 꽤 멋지게 자리잡혔다. 

문득 머리속에 여러 생각들이 스쳐간다. 분명 나는 살짝 가슴이 뛰고있었다.


“다 왔습니다. 상무님!”


깜짝 놀랐다.

“어.. 수고했어요 땡큐!”


술자리가 시작되었다. 나는 소주를 싫어하지만 이 회사는 소주말고는 술을 모르는 분위기다.

재벌가 아들인 우리 사장님과 입사전에 만났을때도 부르고뉴 그랑크뤼를 기대한 나의 예상을 무참히 깨고 소주로 밤을 지샜더랬다.


“원샷”

“파도”

익숙하지 않은 시간이 흐른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취기 가득한 내 눈앞에 소주잔 하나가 다가온다.


“상무님. 제가 한잔 드려도 되겠습니까?”


녀석이다. 이대리..





Chapter 3. 5월 4일 / 이대리


눈을 떴다. 

숙취와 함께 온몸이 뻐근하다. 오른쪽 가슴이 시큰거린다.

유독 오른쪽을 공략한 녀석이 강하게 물었다.


나도 나지만, 난 전 애인 빅을 그런곳에서 만날줄은 상상도 못했다. 내 위에 있던 그 녀석처럼 빅도..그랬..을까? 그냥 아니길 빌어본다.


출근길. 더 깨끗하게 샤워를 하고 더 깨끗하게 차려입었다. 마치 어젯밤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른 사람인 냥.

대리석으로 빛나는 로비로 들어서서 사원증을 찍는다. 좋은 냄새가 난다.

어제 그 곳의 나는 이제 없다.


“이대리! 오늘 저녁에 상무님 환영회식 알지? 이대리 차로 좀 모셔와.. 내차는 담배냄새에 쩔어서 좀 그렇다. 난 다른 팀원들 데리고 갈게.”


얼마전 새로 부임한 이영준 상무. 파격적으로 젊은 나이에 상무 타이틀을 달고 나타나 들어오기 전부터 말이 많았다. 사장님 빽이라는 말도, 경력 부풀리기에 사장님이 속았단말도..

며칠 스치면서 보긴했지만 나이에 비해 관리 잘한 미중년 포스랄까. 아니 우리 팀장 보다 어리다던데 그 나이면 아직 딱히 중년은 아닌건지도.

표정은 뭔가 까칠하고.. 항상 말이 없었고 혼자 무슨일을 하는지 방에서만 틀어박혀있는 모양새가 뭔가 이 회사랑 잘 안맞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저.. 상무님..”


방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난 정말 오랜만에 심장에서 쿵 소리가 남을 느꼈다.

뒤돌아 앉아있다 무슨 일인지 돌아보는 이상무가 그 순간 왜 그렇게 멋져보였을까.. 드라마로 찍는 다면 그 순간은 필히 슬로우모션이어야만 설명이 가능할 거다.


그런 그가 지금 내 옆자리 조수석에 앉아있다.

무슨 뒷자리냐며.. 뒷자리에는 굳이 안타겠다니 어쩔수 없었지만, 덕분에 제대로 운전하기는 글렀다.


괜히 신경쓰였다. 왼손은 핸들에 오른손은 적당히 오른쪽에 두고 운전하는 나지만 그냥 막 오른손이 미친척하고 이상무의 손을 잡아버릴것 같은 상상이 끝없이 이어졌고.. 난 이렇게 양손을 운전대에 올려놓을 수 밖에 없다.


“이대리 어제 술마셨어요?”


헉... 순간 어제 술마신것 부터 그곳에서 벌거벗고 누워있는 내 모습까지 들켜버린 느낌이다.

아니 나한에서 아직 술냄새가나나? 갑자기 숨 쉬는것도 불편해진다.

“ 아 네.. 근데 지금은 멀쩡합니다..”

“그래도 그 정도면 불면 나올거 같은데? ㅎㅎ”


한동안 침묵이 이어진다.

무슨말을 하기도 어려웠지만 왜 내가 이렇게 긴장하는지 스스로도 의아했다. 살짝살짝 백미러로 비치는 흰머리가 섞인 구렛나루와 모양 잘 잡은 이마와 샤프한 은빛 안경. 그 아래 적당히 검은 눈썹, “나 만만한 사람 아니야”라고 말하고 있는 똑부러진 눈매.. 

40대의 손 치고는 평생 고생한번 안한것 같은 깨끗한 손과 그 아래로 탄탄한 허벅지까지.

운전석에 앉아 티 안나게 볼수 있는 모든것이 순간 순간 내 눈에 들어왔다.


술자리에서도 내 머릿속엔 온통 이상무였다.

환영회의 주인공으로 저 가운데에 앉은 이상무는 벌써 몇잔째 원샷을 이어간다. 그럼에도 흐트러 없다. 이정도 술에 내가 취할거 같나?라고 말하는것 같다.

그를 멀찌기서 바라본다.

왜지? 난 지금까지 한번도 나이 많은 사람을 좋아한적도 만나본적도 없는데.. 아니 중년은 무슨 중년이나며 나이 많은 형 만나는 친구를 시체처리반 아니냐고 놀렸던 나 아닌가.

그것도 일반한테 이렇게 끌리는 이상한 경험을 하는게 스스로도 신기했다. 내가 너무 굶었나? 게이 생활이 싫어지니 이제 더 익사이팅하게 일반한테 눈길이 가나?


“이대리 무슨생각해?”

앞에 앉은 과장이 소주잔을 내민다.

“아..아뇨.. 주세요. ㅎㅎ”


파도와 원샷의 연속이다.

어느샌가 꼿꼿하던 이상무의 등이 살짝 굽었다. 그도 취기가 많이올라왔나보다..

상사에게 술을 드리는 건 나에게 전혀 용기낼 일이 아니지만, 이상하게도 이상무에게 술을 권하기까지는 용기와 취기가 필요했다.


“상무님.. 저 술한잔 드려도 되겠습니까?”

“어 그래요. 이대리. 아까 운전 고생많았어요”

“아..아닙니다..”


고개를 들고 정면으로 이상무를 이렇게 가까이서 바라본건 처음인듯 하다.


“!!!”

생각보다 더 잘생겼다. 술을 따르는 내 손을 바라보며 씩 웃는데.. 콧등이 안경을 슬쩍 밀어올린다.

왜.. 귀엽지? 


“이대리 몇 살이에요?”

“아 네 저 올해 서른이요..”


“92? 원숭이띠?”

“네..원숭이띠요. ㅎ”


“띠동갑이네.. 부럽다...”

“아 상무님도 원숭이띠..그럼 80..”


띠동갑이 좋아진다니.

그것도 일반이. 이건 내일 다시 일어나서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상무님은 그럼 자제분이..”

“저요? 없어요. 그리고 돌싱이니까 앞으로 묻지마요. ㅎㅎ”


아 돌싱이었구나. 그럼 혼자 살겠네..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뇌리를 스친다.


“아.. 죄송합니다. 앞으론 안여쭤보겠습니다! 아 그리고 상무님. 저한테 말 편하게 하세요. 자꾸 존대하셔서 민망합니다”


뭐 굳이 상무라고 해서 부하직원한테 반말을 하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런데 나한테 꼬박꼬박 존대하는 이 아저씨는 뭔가 낯설었다.


“저 반말 잘 안해요.. ㅎ..”


특이한 사람이다. 

정말 나한테만 반말 안하는거 아니겠지? 나한테 벽을 치는건 아니겠지?


또 다시 원샷과 파도의 한시간이 흘렀다.

나도 모르는 새에 나는 이상무의 옆자리로 와 있었고

이상무는 내 어깨에 살짝 고개를 떨구고 눈을 감고 있다.


“이대리. 상무님 많이 취하셨네. 대리 불러서 댁에 좀 모셔다 드려..!”


뭔가 꼭 상상속에서 이럴 것 같던 일이 당연한 듯 벌어지고 있었다.


To be continued..




“상무님.. 잠시만요”


축 처진 나를 누군가 부축한다.

이대리다.


“어..미안해요”

“대리기사 왔습니다. 차에 타시죠..”


내 팔을 걸친 이대리의 어깨가 느껴진다.

단단하고 야무지다. 나도모르게 손으로 이대리의 어깨를 한번 힘껏 움켜쥐었다.


“상무님 댁 어디세요?”

“서울숲 쪽.. 나 택시타도 되는데..”

“어.. 저도 성수동인데.. ㅎㅎ..”


뭔가 같은 동네라는것을 알게되었고 잠깐 필름이 끊긴 듯 하다.


다시 눈을 떳을때 차는 동호대교위를 달리고 있었다.

동호대교의 오렌지색 조명이 빠르게 스쳐지나갔고 순간 왕가위 영화의 멜랑꼴리함 속의 주인공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죄송합니다. 성수대교로 갔어야 하는데 잘못탔네요..”


대리기사가 뭐라고 하든 몽롱한 이 시간이 나쁘지 않았다.


“괜찮습니다. 말씀드릴려다가 말았어요”


이대리다. 아.. 내옆엔 이대리가 있었지.

이대리는 금새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 뭐라고 말을 걸고 싶었지만 이렇게 취한 모습을 보여준 것 자체가 좀 부끄럽다는 생각에 다시 눈을 감는다.


“고마워요! 잘 들어가고! 어린이날 잘 보내고!”


뭔가 큰 잘못을 한 것 같진 않았지만 취해서 집까지 모셔다지는 내 모습이 스스로도 그닥 탐탁하진 않았다.내릴때는 오히려 정신이 번쩍 들면서 나 하나도 안취했다는 냥 쿨하게 이대리에게 인사하고 아파트로 들어선다.


“쉬세요!”


뒷통수의 꽂히는 이대리의 목소리에 다시한번 뒤를 돌아보았다.

저쪽에 젊고 잘생긴 녀석이 서있었다. 기분이 좋았다.

손을 한번 휙 들어 주고 나는 웃으며 뒤돌아섰다.


얼마나 지났을까.


“???”

벨이 울렸다.

이대리..였다.


“우리집을 어떻게..알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대리가 나에게 다가와 키스한다.

“이게 무슨...”


이대리의 손이 내 바지춤을 잡는다.

“어억..”


이대리의 손아귀에 든 내 물건이 주체없이 일어서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대리는 무릎을 꿇어 내 벨트를 풀고, 바지를 내리고..

미친듯 내 물건을 탐닉한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주저앉아 버릴 것 같다.

태어나서 이런 흥분은 처음이다..


내 성기와 음모가 이대리의 침으로 범벅이 되어감을 느낀다..

이대리의 입은 살아있는 거대한 블랙홀처럼 내 성기는 물론 내 온몸을 빨아들일듯 강력히 조여온다.

“으윽..”

절정에 이르려는 순간 누가 나와 이대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전 부인이었다.


“아니 여길 당신이 어떻게..”

세상이 무너지는것 같은 심장의 충격을 느끼는 순간.


눈을 떴다. 주위가 햇살로 가득하다.

꿈이다.

개꿈이고 찝찝하고 더러운 꿈이다.


멀쩡한 부하직원과의 동성 섹스를 하다가 전 와이프에게 걸리는 꿈이라니..


이불을 들쳐본다.

아직 발기가 덜 풀린 채로 속옷에 프리컴이 잔뜩 묻어있다.

꿈이었지만 진짜처럼 그 느낌이 생생했다.


다시한번 눈을감고 팬티속으로 손을 넣는다.

조금씩 다시 커지는 나의 성기를 흔들면서도 내 머릿속은 복잡했다.

꿈속의 이대리가 나오면 다시 지워버리고 다른 여자를 생각했다. 그러면 또 다시 이대리가 나온다. 다시 이대리를 지운다..

그럴수록 내 성기는 더욱 단단해지고..급기야는 터져나갈 듯 뜨거워진다. 

내 손은 더욱 빠르게 움직인다. 얇은 린넨이불조차 손에 닿는게 거슬린다고 느끼는 순간 모든 이불을 차버리고 나는 오롯이 내 자신과 혼자가 된다.


이대리의 성기와 여자의 음부가 서로 싸움하듯 교차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 여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이대리의 젖꼭지와 성기와 입술과..음모가 내 얼굴을 뒤덮는다.


그렇게.. 절정을 맞이했다.


“윽..”


오랜만이다..입술까지 정액이 날라왔다.


“후우...”


큰 한숨을 내 쉰다.

손으로 입주위를 닦는다. 코로 스며드는 꽤 오랫동안 묵힌 정액의 냄새가 강렬하다.

아무 생각이 없다. 모처럼 만족스러운 쾌감이었다.


근데 그 꿈은..뭐였을까?


난 왜.. 남자 부하직원과의 정사를 꿈꾸었을까..


혹시 난.. 정말.. 그런 사람인걸까?


어린이 날을 맞이한 42세의 나는.. 

다시 사춘기 소년이 된 것 같은 혼란스러움으로 이렇게 침대에 누워 있다.





Chapter 5. 5월 5일 / 이대리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아니 정확히는 창에 비친 이영준 상무님..의 모습을 보고있다.

차 안의 어둠은 어느덧 동호대교의 오렌지색 조명으로 채워지고 차창에 비치는 잠든 이상무의 실루엣은 더욱 나를 설레게 만든다.


슬쩍 이상무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잠들어 있는 이상무..취해서 긴장이 풀렸는지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옆구리 살과 살짝 나온 배가 흰 셔츠안에서 윤곽을 보인다. 숨을 쉴때마다 오르락 내리락..

그리고 살짝 벌어진 셔츠 틈으로 이상무의 배냇나루가 보인다.


“...”

깔끔하고 지적인 인상의 이상무의 얼굴과 저 배냇나루는 뭔가 잘 매칭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오히려 그 모습이 더 섹시했다. 

살짝 내 아랫도리에 힘이 들어감을 느꼈다.

그 배냇나루를 한번 쓰다듬어 보고 싶었다.

여전히 다부진 이상무의 상체보다 저 무방비상태의 옆구리살을 한번 꼬집어 보고 싶었다.


“사장님, 여기죠?”


대리기사의 말에 어느덧 정신을 차린 이상무는 술이 다 깼다는 듯 차에서 내린다.


“우리집에 가서 한잔 더 할래?”

를 기대한 건 그냥 b급 퀴어영화에서나 가능한 일이겠지.


“이대리. 고마워요.. 어린이날 잘 보내고!”


아쉬움이 컸지만 그냥 그런 이상무의 모습도 마냥 좋았다.

오히려 뭔가 내 상상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현실이 웃프기도 했지만 일반에게 이런 감정을 느끼며 헤벌레 하고 있는 나 스스로도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쉬세요!”


더 밝은 목소리로 뒤돌아선 이상무에게 인사를 건냈다.


“!!!”

이상무가 돌아본다. 그리고 나에게 크게 손을 흔들고는 다시 뒤돌아 선다.

뒤돌아 서며 씩 웃는 그 모습에.. 다시한번 내 심장이 내려앉는다.


“아 시발..왜이렇게 좋지 저 아저씨..”


나도 모르게 내뱉은 말을 들은 대리기사가 흘깃 처다본다.


“저 앞에 아파트로 가주세요”



날이 밝았다.

어제 꽤 많이 마셨는데도 멀쩡하다. 오히려 몸이 가벼운 느낌이다.


창밖으로 빨간 성수대교와 함께 이상무의 아파트가 보인다.

이상무의 아파트와 우리집은 불과 걸어서 십분거리다.

몇동 몇층인진 모르지만 저 아파트 창문 중 어느 한곳은 이상무의 집이겠거니 생각하니 괜히 계속 쳐다보게 된다.


돌싱이라는게..혹시 뒤늦게나마 본인이 게이인을 자각하고 이혼한걸까?

애는 왜 없지?

어제 술마시고도 내 어깨를 붙잡기도 하고 뭔가 이상한 스킨십을 느꼈는데 그건 나만의 망상이겠지?

근데 술자리에서 굳이 내 어깨에 기대서 잠이 드나?

뒤돌아 서면서 왜 웃었지? 혹시 나 좋아하나?

정말 그럼 숨은 게이일수도 있는가 아냐?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이상무가 궁금했다. 아니 일반이라도 한번 들이밀어 보고싶었다.

뭐 그냥 좋은 상사로..좋은 형님으로 모셔도 되고.

세상에 난.. 그렇게 무서울 건 없다. 난 그런 놈이다.


그렇지만..


“상무님! 어제 많이 드셨는데 괜찮으세요? 해장 잘 하십시오!  이우석 대리 드림.”


아직 내 이름도 모를것 같은 이상무에게 이 평범한 카톡하나를 날리는데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릴줄은 몰랐다.


카톡에 ‘1’이 지워지지 않는다.


거의 한시간을 1을 봤다가.. 핸드폰을 침대로 던졌다가를 반복했다.


이거 뭐지.. 좀 짜증이 났다가.. 아무렇지도 않은 듯 했다가..

스스로가 스테이블 하지 않음을 느낀다.


내가 왜이러지?

그냥 술법과 뻗어서 자고 있는거잖아..

읽씹을 당한건가?


잊어버리려고 인스타그램 돌려본다.

이쁜척 하는 애들이 없는 돈으로 최대한 좋은곳에 가서 찍어올린 가식적인 사진들이 넘쳐난다.


한때 인스타에서 게스타 소리 들어본 나도.. 다른사람에게 그런 느낌이었을까?

다 부질없다.


그때 갑자기 카톡 알림창이 울렸다.


알림창을 열어보는 그 1~2초의 순간도 가벼운 몸의 떨림을 느꼈다.


...


“너 요즘 찜방다녀?”


아.. 씨 ㅂ...

친구의 카톡에 내 눈을 의심했다.


“뭔 말이야?”


“너 봤다던데 사람들이? 그룹으로 했다고..”


“헐..”


“너 얼굴팔릴만큼 팔렸는데 웬 찜방이야.. 가는건 니 자유지만.. 너 좋다는 애들 많잖아 그냥 사람을 만나!”


“누가 그래? 사실 아니고 소문 신경안쓰니까 너 또 그런 헛소문 듣고 또 흘리고 다녀라..”


녀석이 좀 입이 싸서 입 단속을 할 필요가 있다.


“아님 말고..”


다시 휴대폰을 던진다.

인생 처음으로 간 곳에서.. 그래 처음으로 여러명이랑 했었다.

그런데 그거 한번에 난 이 바닥에서 찜방 돌아다니는 그룹 즐기는 천박한 예전 게스타가 되버린건가?

짜증과 화가 솟구친다.

그냥 욕이 나온다. ㅆㅂ...


다시 카톡이 울린다.


“ㅆㅂ 또 뭐..!”


상소리를 내 뱉던 내 입술에 미소가 감돈다.


“이대리! 잘 잤어요? 같은 동네라고 하지 않았나? 약속 없으면 해장이나 할래요?”


이영준 상무는 카톡 속에서 그렇게.. 나에게 웃으며 이야기 하고 있었다.







Chapter 6. 5월 5일 / 이상무


한참을 누워있다 몸을 일으켰다.


배꼽부터 가슴팍까지 사방으로 튄 정액이 살짝 말랐는지 하얗게 피어오른다.

“풉 ..”

나도 모를 허탈한 웃음이 피식 터진다. 

씻고 운동이나 가야겠다.


습관처럼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


아직 친구 추가도 되어있지 않은 “우석이”란 이름의 카톡이 남겨져있다.


“상무님! 어제 많이 드셨는데 괜찮으세요? 해장 잘 하십시오! 이우석 대리 드림.”


“하..”

조금전까지 이녀석을 생각하며 혼자 쾌락에 빠졌었었지.. 그런데 이렇게 살뜰맞게 와 있는 문자에서 이녀석을 다시 보니 기분이 묘했다.

좀 미안하기도 하고.. 설레기도 하고.. 녀석이 지금의 나를 봤다면 어떨까 싶기도 하고..


이대리의 카톡 프로필 사진을 돌려본다.

코랄 빛 바다사진. 사막 일몰 사진.. 페루도 다녀왔네.. 여행을 좋아하나 보다.

“자식..정장도 되게 잘어울리네..”

신입사원 대표 선서를 맡았나보다. 정장에 파란색 넥타이를 한 지금보다도 조금 더 어려보이는..아니 내눈에는 보송보송한 애기같이 보이는 잘생긴 이대리가 내 눈앞에 있다.


“!!!”

수영장인가보다. 벗은 상체를 노출한 사진이 한참 뒤에 나온다.

지금보다는 조금 더 까맣다. 울룩불룩한 근육이 아닌 딱 만지면 쫀쫀할것 같은 적당한 근육이 매끄럽게 어깨부터 팔뚝까지 이어진다..  가슴은 부드럽게 근육으로 갈라지며 굴곡져 더 탱탱해 보인다.

살짝 보이는 깨끗한 밝은 갈색톤의 젖꼭지가 눈에 들어온다..  

“흡..” 헛기침이 난다.

나도 모르게 확대를 해보려고 했지만 해상도가 낮아서인지 확대 안하느니 만 못하다.

상의를 벗고 뭐가 그리 좋은지 환하게 웃고있는 이 녀석의 그 사진이 너무 이뻐서 한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슬쩍 사진을 저장해본다.


답장을 뭐라고 하지?


몇번을 쓰고 지운다.


“이대리도 잘 들어갔어요? 좋은 하루 보내고!”

너무 사무적이다.


“이대리 어제 내가 술을 좀 많이 마셨죠? 괜히 번거롭게 해서 미안하네.. 암튼 회사에서 또 봐요!”

회사에서 또 봐요? 상무가 대리를? 좀 구차하다.


“응 어제 고생많았어요! 이대리도 해장 잘하고!”

이 정도면 괜찮겠지..?


근데.. 이대리가.. 보고 싶은 걸...


“이대리! 잘 잤어요? 같은 동네라고 하지않았나? 약소 없으면 해장이나 할래요?”


모르겠다. 한참을 망설일 보내기 버튼은 이렇게 내 메세지를 전한다.

여자친구랑 약속있을테지..? 어린이날을 그냥 보낼 리가 있겠나.. 


생각보다 금방 답장이 온다. 내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네 상무님! 어디서 뵐까요? 제가 상무님 아파트 입구로 갈까요? ㅎ”



급하게 샤워를 하고 옷을 입어 본다.

하늘색 셔츠에..아줌마가 다림질해 논 하얀바지.. 머리엔 포마드를 발라서 살짝 클래식하게 세팅 한다. 펜트하우스의 그 소리 버럭지르는 배우 같다.


“아이씨..”


너무 멋을 냈다. 난 해장하자고 한 상무잖아. 데이트하러 나가는게 아니잖아.


다시 옷을 벗는다.

그냥 폴로티에 추리닝 반바지. 머리는 다시 감고 포마드를 덜어낸다.

대충 거울에 본 나는 오히려 조금 더 뽀사시하고 어려보인다. 앞머리도 자연스럽게 안경으로 떨어지니 부드러워 보이기도 하다. 그래 괜찮다. 나만의 착각인진 모르겠으나.


아파트 입구에는 어제 나를 여러번 태우고 다닌 이대리의 반짝반짝한 까만색 벤츠와 그 앞에 잡지에서 방금 튀어나온 모델같이 잘 차려입은 이대리가 씩 웃으며 서있다.


“...”

추리닝 반바지 아래로 듬성듬성 털이난 내 다리가 눈에 들어온다.

아..잘 차려입고 올 걸..나 혼자 거지같잖아..


“상무님.. 어디로 가실까요?”


그래도 이대리는 밝게 웃는다. 잠깐 부끄러웠던 내 얼굴에도 금새 웃음이 번진다.


“한남동 북엇국집 갈까요?”


그렇게 그냥 상무와 대리의 밍숭맹숭한 해장타임의 컨셉으로 정확히 한시간 반의 시간은 눈 깜짝할새 지나갔다.


하지만 그 와중에 이대리에 대해 몇가지 사적인것도 알게 되었다.


여자친구는 지금은 없다. 요즘은 여자에 크게 관심이 없단다. 일이 좋단다.

여행 좋아하고 혼자서도 잘 다닌다. 다음엔 호주 태즈매니아 섬을 가고싶단다.

학교다닐때 럭비부였고 지금도 가끔 동호회 나간다고 한다. 연세대 출신이다. 고등학교는 미국 코네티컷에서 다녔다.

집은 우리 아파트 바로 맞은편 아파트. 1년전에 독립해 혼자 산다.

비싼 아파트 혼자 사나며 부모님 직업도 알아냈다.


“이대리 완전 엄친아네요.”


“아닙니다..ㅎ 전 상무님처럼 되면 소원이 없겠는걸요..”


그래.. 밍숭맹숭한것 같았지만 생각보다 이야기를 많이했네..


“들어가세요!”


어느덧 해가 지고 있다.


“어. 그래요. 내일봐요”


집으로 들어왔다.


이대리의 아파트 옆으로 붉게 물든 석양이 내리고 있다.


웬지 내 가슴도 촉촉히 붉어 진다. 아니..창피하지만 핑크빛으로 물들어 가는 느낌이다.


그래.. 나는 사실..


오랫동안 남자에게 느끼는 끌림을 강하게 부정하며 살아온

그런 사람이.. 맞다.


하루이틀만에 갑자기 훅 나에게 들어섰지만.. 

이대리가 정말 좋은 것.. 같다. 


다시 이대리의 카톡 프로필 사진을 돌리기 시작한다.

젊다.. 건강하다.. 이쁘다..


이대리가 미치도록.. 좋아졌다.







Chapter 7. 5월 10일 / 이대리


이번주는 내내 하반기 전략 자료 만드느라 분주하다.


“팀장님, 잠시만요!”


이상무다. 이상무가 문을 열고 팀장을 부른다.

그리고 금방 문을 닫는다.


이상무와 술도 마시고, 애프터 해장도 하고 뭔가 훨씬 가까와졌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회사에서 더 가까워 질 일은 잘 없다.


그냥 일개 대리와 저 방안에 있는 어려운 상무님일뿐.


그저 가끔 이렇게 살짝살짝 얼굴만 보여 ’주셔도’ 황송하게 생각해야하나.


지나칠때 살짝 눈인사를 한적은 있지만.. 


해장하면서 나누던 이야기와.. 그때의 이상무의 눈빛과 미소와.. 까칠한 수염과.. 찡긋 들어올리는것도 하물며 섹시한 안경..


그리고 특히나 아파트에서 반바지 추리닝을 입고 터벅터벅 걸어나올때의 그.. 위 아래로 흔들리던 앞섬...의 존재감.


솔직히 너무 좋아 까무러칠뻔 했지만 표정관리하기 시선 관리하기 힘들었던 그 순간의 설렘은 어느덧 일상속에서 멀어져 가는 듯 하다.


이래서 일반을 좋아하면 안되는구나...



“우석, 담배 피러가자!”


이상무 방에서 나온 팀장이 담배콜을 한다.


난 담배를 피진 않지만.. 뭐 따라가서 옆에 서 있는건 잘 한다.


팀장 표정이 좋지않다.


“왜 그러세요?”


“아니..나이도 어린게 어디서..”


담배를 든 손이 파르르 떨린다. 이상무와 무슨일이 있었나보다.


“우석이 니가 싱가폴 가라”


싱가폴? 싱가폴 컨퍼런스는 팀장과 이상무가 함께 가는걸로 어제 품의를 올렸다.

팀장은 매년 갔었고, 올해는 팀장이 굳이 이상무랑 같이 가겠다고 해서 올린거였는데... 왜 팀장 대신 내가 가지? 


“영어를 잘하냐.. 얼마나 잘하냐.. 가서 뭘 듣고 올거냐.. 출장이 놀러가는거나..나 참 직장생활 20년만에 별의별 소리를 다 들어 보네..”


“그러게요...”

하면서도 가슴이 뛰다.


“영어 네이티브 급으로 하는 직원 없냐길래 너 하나 있다고했더니..너랑 가겠다네.”


“네..저도 안가고싶은데..”


“가면 피곤할거야. 얼마나 까칠한데. 담에 다시는 같이 출장간다고 하나 봐라. ㅅㅂ..”


“저도 바빠서 못 간다고 해주시면 안돼요? 엄청 부담스러운데..”

팀장 기분도 맞춰줄겸, 맘에도 없는 말이 나온다.


“가면 고생이겠지만..너도 그런거 느껴봐야지. 이대리가 다녀와.”


“네...”


“ㅆㅂ..무슨 영어야.. 대충 듣고 좀 놀다 오는 거지.. 공부하러 컨퍼런스 가? ”


이상무에 대한 분노를 굳이 감추지 않는 팀장 앞에서 난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상무님이 나를 출장에 데려가신다고?

중고등학교 미국에서 나왔단 이야기 듣고.. 그래서 영어 잘하는 직원 찾은거 아냐?

나 데려가려고??


갑자기 심장이 더 뛰기 시작한다.


그리고 어느덧 나는 이상무의 방 문을 연다.


“어 이대리”


팀장이 말하던 그 싸가지 없고 까칠한 이상무가 환하게 웃으며 날 맞이한다.


“상무님.. ㅎ”


“얘기 들었죠? 담주 싱가폴 컨퍼런스 같이 가요.”


“네 상무님.. 감사합니다.”


“응 내가 카톡으로 몇개 자료랑 사이트 링크 보내줄테니까 사전에 한번 보시고요. 가서 컨퍼런스 말고도 그쪽 회사 임원들 몇사람 만나볼려고 하니까 약속도 미리 좀 어랜지하고. 암튼 자세한건 톡으로 보내줄게요”


“넵..”


“그래 수고하구요!”


가볍게 손을 들어 인사하고 다시 모니터를 보는 이상무..

오늘따라 면도를 더 깔끔히 했는지..더 좋은 로션을 발랐는지.. 훨씬 환하고 깨끗한 피부.. 살짝 머금는 미소에 동년배 중년남자에게선 보기힘든 살짝 파인 보조개.. 부드럽게 웨이브로 넘어간 포마드의 곡선과 광택.


뒤돌아서는 순간에도 난 이상무의 디테일을 하나하나 캐치하고 있었다.


하루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짝사랑 하던 누군가와 당장 1박2일 여행을 떠나게 된 기분이 이런걸까.


집에 와서도 붕 떠있는 듯한 이 기분이 쉽사리 정리가 되지 않는다.


“!!”


카톡이 울린다. 이상무다.


“카톡” “카톡” “카톡”


몇번에 걸쳐 울리는 카톡창에는 몇개의 웹사이트 링크와 pdf 파일이 아무 말 없이 줄줄이 올라온다.


“늦게 보내서 미안해요. 이거 확인하고 잘 준비해 주세요. 호텔은 회사 출장비 기준에 맞게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만다린 오리엔탈 알아 봐주면 좋구요.”


“네 상무님..”


문득 이상무 카톡의 프로필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분명 지난번에는 아무 사진이 없는..그냥 회색 사람모양의 프로필이었던걸로 기억하는데.. 바다사진이다. 아닌가 원래 프로필 사진이 있었나?


사진이 한장이 아니다.


“!!!”


“아..장교셨나..”


중위 계급장을 단 검은색과 녹색의 카모를 멋들어지게 바른 군인사진이다.

지금의 지적인 눈매는 그대로인데.. 이렇게 군복에 총을 겨눈 이상무의 생경한 모습이 놀랍고도 섹시하다. 나도 모르게 사진속 중위 이영준의 얼굴을 만져본다. 


다음엔 찔려도 피한방울 안나올것 같은 깨끗한 피부를 가진 똘망똘망한 젊은 이상무가 와인잔을 앞으로 내밀고 웃고있다. 군인 사진과는 또다른 느낌이다. 잘생긴 부잣집 도련님이 따로 없다.


“corton bressandes gran cru.. chateau pavie ..“

앞에있는 와인병 라벨까지 하나하나 나는 읽어본다.


여기가 어디지? 알래스카인가? 아이슬란드인가?

뒤는 빙하인데 앞에선 반바지에 반팔을 입고 배낭을 멘 이상무의 모습이다.

반바지 아래로 아마도 지금보다는 훨씬 더 튼실해 보이는 살짝 그을린 종아리가 섹시하다. 이런 곳에 같이 여행했더라면 얼마나 좋을까.. 순간 배낭 멘 이상무의 옆에 서 있는 나를 상상해본다.


그리고 지금 내가 알고있는 이상무의 정장이든 상반신 사진이 보인다. 어디선가 발표를 하고 있다.

어느덧 사진속의 이상무는 내가 아는 그 이상무에서 군인, 한량, 여행가의 이미지가 합쳐진 더욱 근사한 매력을 가진 이상무로 변해있었다.


이 사람 나한테 왜이러지?

숨은 게이 맞는거 아냐?

왜 이렇게 나를 흥분되게 만들지?


이번 싱가폴 출장에서 난.. 이 사람을 가만히 둘 수 있을까?


내가 어떻게 하면 이 멋진 아저씨를 내 품에 들어오게 할 수 있을까?


많은 생각이 오갔다.

그렇게 아마 새벽 두시까지 잠을 이룰 수 없었던 건 같다.


다시 핸드폰을 들었다. 카톡 사진을 다시 보고싶다. 이상무 얼굴을 보고.. 한번 사정을.. 하면

잠이 들 수 있을까?


“!!!”


바다사진을 제외한 모든 프로필 사진이 다 사라졌다.

카톡 시스템 에러인가?  젠장 뭐지?


그렇다고 그냥 잠들 순 없다.


사진은 없지만 내 머릿속에 이상무는 생생하게 남아 있으니까..


눈을 감는다.

손을 속옷 속으로 넣는다.


그리고 내 머릿속의 이상무 끄집어 내어.. 벗겨본다...

실 오라기 하나 남기지 않고..






Chapter 8. 5월 18일 / 이상무


드디어 싱가폴 출장날이 다가왔다.


설레서 제대로 잠도 자지 못했다.


회사 업무를 하는데.. 출장을 가는데 이렇게 사적인 감정이 들어가도 되나 싶은 죄책감.. 괜히 사람 좋은 팀장을 무안하게 만들고 자존심에 상처 준 것 같은 미안함에 사실 그렇게 마음 편한 한주는 아니었다.


그런데 이대리가 보고싶은데, 이야기 하고 싶은데.. 웃는 모습 보고싶고 나도 같이 웃고싶은데.. 

이 보수적인 회사에서 내가 이대리에게 먼저 무언가 말을 건낼 수 있는 방법은.. 그렇게 라도 하지 않았으면 방법이 없었던가 아닌가.


아니다. 아무 이슈 없는거다. 어려운 주제의 세미나가 열리는 컨퍼런스다. 영어도 잘 못하는 아저씨가 그곳에 가서 할수 있는 건 오직 밤에 칠리크랩 먹고 술마시는거 외에 뭐가 있겠나.

나는 회사를 위해서도 상무로서 옳은 판단을 한거다.

라고 굳이 명분을 가져다 붙인다.


공항까지 이대리 차로 이동을 한다.

아파트 앞에는 역사나 반짝반짝 깨끗한 이대리의 검은색 벤츠가 서 있다.


“안녕!”


나도 모르게 평소에 하지않던 반말이 나온다. 좀 붕 떠 있나보다.


꼭 좋아하는 사람과 여행가는 것 처럼 마음이 설렌다.


“출발하겠습니다. 상무님!”


차가 출발하는데 꼭 롤러코스터가 출발하는것 같은 흥분이 나름 감싼다.


“상무님.. 예전에 장교셨어요?


동부이촌동 앞을 지나는 차 안에서 조용히 운전하던 이대리가 말을 건넨다.. 

헉.. 그 사진을 봤구나..


“어..어떻게 알았어요?”

당연히 그 사진을 본거다. 이대리는..


“상무님 카톡 프로필에서..군인때 사진 있더라고요..”


“아.. 그거 봤구나.. 네 맞아요. ROTC 였거든..”


사실 그날 이대리에게 이런저런 자료를 보내면서.. 난 이대리에게 조금 더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냥 회사의 꼰대 임원이 아니라.. 나도 이렇게 젊은 시절이 있었고.. 이대리처럼 이쁜 시절이 있었고.. 나도 남들 못지않게 여행 좋아하고.. 와인도 잘 알아.

이대리 너도 잘생기고 젊고 멋지지만.. 나 그렇게 후진 아저씨 아니야.. 이런 마음이었달까. 


그러니까 혹시라도 이 사진을 보게 되면 나를 조금 더 편하게 생각해 달라고. 호감을 느껴달라고..

뭐 그런 표현을 하고 싶은 생각에 옛날 사진첩에서 사진 몇장을 카톡 프로필에 업로드 시켰다.


물론 몇 시간도 되지 않아 그 모든게 구차하고 부끄럽다는 생각에 사진을 다 삭제했지만..


어쨌건 그 짧은 와중에도 이대리는 내가 올린 사진을 다 본거다.


“상무님..정말 멋있더라구요..”

“ㅎ 무슨...”

부끄러웠다. 그런데 좋았다.


“상무님 거기..빙하앞에서 찍은 사진.. 거기 어디에요?”


알래스카다.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남자와 키스를 했던 문제의 그 장소.


“어 거기 알래스카에요.. 스워드라고.. 앵커리지에서 차로 두시간 정도..”


“아..거기 정말 멋있던데요.. 저도 가보고 싶더라고요..”


“ㅎㅎ”

다음에 같이 가자고.. 내가 데려가줄게.. 하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계속 운전하는 이대리를 흘끔흘끔 보게 된다.


하얀 폴로셔츠의 팔통이 이대리의 알통 둘레만큼 팽팽하게 늘어나 있다.

팔에서 손목..그리고 손등으로 이어지는 혈관을 한번 눌러보고 싶다.


군살 하나 없는 배와.. 그 아래 물론 바지가 접힌 거지만 불룩하게 솓아있는 면바지의 앞섬까지 내 눈길은 어느 한 곳을 지키고 있기가 힘들다.


목이 탄다.


옆에 이대리가 마시라고 준비한 캔커피로 손이 간다.


“!!!!”


이대리도 커피를 마시려고 했는지.. 이대리의 손이 내 손과 겹쳐진다.

0.1초? 0.2초?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손이 파르르 떨렸다.


“어..!”

짧은 호흡을 내밷고 이대리의 손은 다시 운전대로 향한다.


“아 내 커피는 오른쪽이네.. 이대리 마셔요. 따줄까요?”


인천공항에 도착할때까지.. 내 왼손의 전율은 계속 저릿하게 남아있었다.


그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이대리 손의 따듯한 체온과.. 피부의 스침과.. 순간의 압력과.. 미세전류기가 있다면 족히 20v는 됬을것 같은 순간의 전기적 자극..


말로 설명할 수 없지만 내 심장소리까지 전해진 것 같은.. 내 마음을 들켜 버긴 것 같은 그 기분이.. 인천공항에 오는 그 40분간의 시간..나를 벙어리로 만들어버렸다. 


“상무님.. 그럼 탑승수속 하시고 안에서 뵐게요!”


회사에서 끊어 준 내 비행기표는 비즈니스. 이대리는 이코노미..

길게 줄이 늘어선 이코노미 카운터 앞에서 이대리가 인사를 건넨다.


“이대리.. 저랑같이 체크인 하면 줄은 안거도 돼요. 저리로 가자.”


이대리와 같이 비즈니스 카운터에서 수속을 한다.


“이준영님은 비즈니스로 예약하셨고.. 이우석님은 이코노미시네요?’


“네..”


마음 같아선 이대리를 옆에 앉혀서 가고싶다. 비지니스 얼마한다고..

그런데 다 오버인걸 안다. 아니 내가 이코노미에 앉아서 가고싶다. 그런데 그것도 오버인걸 더 잘 안다.


“이우석님!”

“네”

 “업그레이드 되셨습니다. 비즈니스로 발권해 드릴게요!”


“!!!”

귀를 의심했다.

좋았다.


“와...”

이대리가 나를 처다본다.

업그레이드 된 건 좋은데..제가 감히 상무님과 같이 비즈니스를 타도 되겠습니까? 뭐 이런 눈빛이다.


“이대리 운도 좋은데요? ㅎㅎ”


“상무님..제가 원래 좀 운이 좋습니다. ㅎㅎ”

이대리도 즐거워한다. 그래 세상에 비행기 업그레이드 될것 만큼 기분 좋은 일이 얼마나 될까.


“ㅎㅎ 잘됬네..편하게 가자고..”


사실 더 운이 좋은건... 이대리가 아니라 나다. 

그래 내가 더 운이 좋은거다.


앞으로 6시간 반을 이대리 옆에..

있을 수 있는건... 


바로 나니까.





Chapter 9. 5월 18일 / 이대리


승무원이 따라 주는 샴페인 한잔을 마시니 아 이제 출발인가 싶다.


혼자 여행을 했다면 비지니스클래스 타는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런데 회사에서 지정해 주는 좌석을 내 돈 내고 승급하는건 아무래도 싸가지 없어 보이는 일이라 그냥 이코노미에서 조용히 이상무 생각이나 하려고 했다.


그런데 이건 뭐 하늘에서 점지해 준 운명처럼.. 지금 나는 샴페인을 한잔 들고 이상무 옆에 앉아있다.


6시간 반이란 시간을 거의 한쉬도 쉬지않고 이상무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와 취향이 비슷한 여행이야기.. 이상무의 과거 군 장교 시절 이야기..

첫 직장부터 지금까지의 최연소 승진만 찍어왔던 화려한 캐리어 이야기까지.


그런데 단 한가지의 질문을 못해서 나는 계속 답답했다.


“상무님.. 그런데 이혼하고 나서 지금 만나시는 분은...”

머릿속에 이 질문만 계속 빙빙 돌았다.

응 솔직히 말하면.. 이혼남인건 알겠는데 당신 혹시 여자에 관심 없는거 아니나..를 묻고싶었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걸 물을 수 있을까. 그냥 궁금증은 오롯이 내 몫일 수 밖에.


그런데 나도 느낌이란 것이 있다. 게이다 라는것이 있잖은가..

난 이상무가 적어도 나에게 일반적인 직원 이상으로 뭔가 관심이 있어 한다는 걸 100% 확신했다. 그게 아니면 난 내 게이인생을 헛산거다.


아까 차에서 서로 손이 부딪혔을때도.. 

내가 심장마비 걸릴것 같은 느낌이 들었을때.. 분명 이상무도 무언가 느꼈다. 왜냐면 그 영점 몇초의 순간이지만 내 손을 덥썩 잡을 것 같은 찰나의 망설임이 느껴졌거든.


이 궁금증은 이번 출장에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알아내고야 말겠다는 다짐을 했다.


아니 이번 출장에서 아무일 없이.. 직장 상사와 후배라는 감정일 뿐이란 걸 확인한다면 앞으로 이사람을 머릿속에서 완전히 지워버려야 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러지 않고서는 이 막역한 호감의 느낌이 나에게 큰 상처를 줄 것 같기도 했기 때문이다.


대담해져야지..


비행기가 싱가폴 상공에 거의 다다라서야 살짝 잠이 든 이상무의 오르락 내리락 하는 배를..

나는 한참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welcome to the mandarin oriental singapore!”


이 상무가 예약해 달라고 한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은 컨퍼런스가 열리는 선택시티와 그리 멀지 않다.

택시에서 내리자 마자 습하고 무더운 공기가 훅 들어오더니 호텔 로비 안은 오키드 냄새와 함께 서늘하고 상쾌한 공기가 감돈다.

이상무의 취향인 것 같다. 나라면 같은 가격이라면 저 꼭대기 수영장이 유명한 마리나 베이 샌즈 를 선택했을것 같았지만 말이다. 수영장에서 멋진 야경 배경으로 인스타 사진도 찍고.

아..이제 인스타 끊기로 했지.


“이대리. 오늘은 간단히 저녁이나 먹을까? 방에서 짐 풀고 7시에 로비로 내려와요.”


“네 상무님..!”


“아 싱가폴 와봤다고 그랬나?”


“아뇨 처음입니다. 싱가폴은”


원래 여행을 좋아하기때문에 학교다닐땐 유럽이건 남미건 참 많이 돌아다니기도 했지만 게이 생활 한 이후에는 방콕, 도쿄, 상해, 타이페이 정도로 내 여행의 동선은 어느새 좀 진부해 지고 있었다.


방으로 들어와서 침대에 푹 몸을 던져본다.


상쾌하게 사각거리는 이불이 긴 비행의 피로를 잊게 한다.


내가 이 곳에 이상무와 같이 와 있다니.. 웃음이 난다.

꿈같은 이 느낌에 혼자 실실 누워서 쪼개는 모양이라니.


“이대리 싱가폴 첨이라니까 제가 싱가포르에서 젤 좋아하는 데 데려갈게요”


택시를 부른 이상무의 목소리가 경쾌하다.


“Robertson quay please”


택시를 20분 정도 타고 달려간 곳은 로버슨 키 라는 곳이었다.

서울로 치면 글쎄. 한강은 아닌것 같고 청계천도 아닌것 같고.. 그 두 물줄기의 딱 가운데 정도 규모의 하천을 따라 작은 교량과 아기자기한 가게들이 즐비해있다.


이상무가 나를 그 중 한 일식당으로 안내한다.

이상무가 들어서자 마자 일본인으로 보이는 주인이 이상무를 환하게 반긴다.


뭐라뭐라 일본어로 이야기하는 두사람. 이상무는 못하는게 뭐지?

일본어까지 잘해?


싱가폴까지 와서 일식을 먹나? 라는 생각을 했지만

지금까지 먹던 일식 과는 좀 결이 달랐다. 뭔가 더 열대스럽고 더 믹스된 느낌이랄까.


“맛있는데요 상무님!”


“내일은 컨퍼런스 가야하니까 술 안하시려고 했는데 안되겠어요..” 하더니 이상무가 샴페인을 시킨다.


어느새 우리 둘 앞에는 빈 샴페인 병 두개와 반병을 비운 레드와인이 남아있다.


“이대리는 왜 여자친구 없어?


아마도 레드와인을 딸때부터 이상무는 더이상 나에게 존대말을 하지 않았다.


나도 좀 혀가 꼬인다.


“저요.. 관심이 없어서요..”


“ㅎㅎ 관심이 왜 없어?”



“게이니까요” 라고 머리는 이야기하고 있는데 입술이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게요..뭐 일도 많고..”


“그런데 상무님은요..이혼..하신건 알지만 여자친구는..”


“나? 이혼한지 이제 4개월 되가는데 무슨 여자친구야..”


아. 이혼한지는 얼마되지 않았구나. 그럼 정말 일반인 건가?


“이혼하고도 여자친구 충분히 있을수 있죠.. 여자 때문에 이혼하셨을수도 있고..ㅎㅎ”


술이 들어가니 조금 더 질문에 거리낌이 없다.


“나도 별로 관심없어. 이제...”


살짝 빨개진 이상무의 귀가.. 눈에 들어왔다.


“상무님 저는 첨 보시고 어떠셨어요?”


취한김에 물었지만 물은 나도 어색하고 뭔가 이상한 질문이다.


“뭐가 어때?”


“이..그냥.. 뭐 직원으로서 후배로서..어떠셨는지 ㅎ”


순간 왜 내가 이런 질문을 했는지 후회했다. 난 무슨 답을 들을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그런데 내 귀를 의심케하는 답이 이상무의 목소리로 흘러왔다.


“너.. 이뻤지..”


“????”


훅 들어온 이상무의 말에 순간 뭐라고 대처해야 할지 잘 판단이 서지 않았다.


“ㅎㅎㅎ 상무님..뭐가 이뻐요.. 남잔데요..”


“ㅎㅎ 그런가..”


그냥 그렇게 넘겼다. 그리곤 그 뒤엔.. 딱히 뭐라고 할 말이 생각되지 않았다.


마지막 레드와인 한잔을 다 비웠다.


그곳을 나섰을땐 아까의 그 후덥지근함은 다 사라지고.. 시원한 강바람이 감돌고 있었다.


“이대리. 여기서 강변따라 한 30분 쭉 걸으면 클락키라고 나와. 거기까지 걸어가서 택시타자.”


이상무와 함께 어둠속 불빛들이 빛나는 로맨틱한 강변길을 걷는다.

이상무는 별 말없이 터벅터벅 걸으며 한껏 오른 취기에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내가 이렇게까지 설레는 데이트를 누군가 한적이 있었나?

그것도 일반인지 바이인지 게이인지도 알 길 없는 이혼남과? 까마득한 회사 상사와? 

띠동갑인 아저씨와?


이상무는 지난번에도 느꼈지만 나보다 술이 조금은 약하다.


발걸음이 휘청휘청 자칫 강둑 아래로 떨어질것 같기도 하다.


“상무님.. 이쪽으로 오세요..”


오른손으로 이상무의 어깨를 감쌌다. 어깨동무도 아니고 부축도 아니고 조금은 어정쩡한 자세이긴 하다.

뭐 둘다 술 취했으니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누가봐도 이상하지 않을거다.


이상무는 살짝 나쪽으로 기대는 듯 하더니 왼손으로 내 허리를 쓱 감싼다.


이상무의 손길이 내 허리에 닫는 순간 온몸에서 전율이 흘렀다.


“!!!!”


그렇게 이상무는 내 허리를 감싼채로.. 휘청거리며 걷는다.


나도 휘청거렸다.

“흡...”

숨쉬기도 어려운 이 설레임 때문에. 

때로는 간혹 내 허리를 잡은채로 움직이는 이상무의 손가락때문에..


분명 우리는 누가봐도 크게 이상하지 않은 취객일 뿐이었지만.. 

나는 이상무와 마치 길에서 섹스를 하는 것 같은 강렬한 자극을 느꼈다.


그리고 클락키에 도착한 순간. 

난 어느덧 확신이 들었다.


이건 분명..

나만 느끼고 있는 감정이..

아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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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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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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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습니다. 이렇게 돌아와 주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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