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바이를 타는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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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오토바이 연료통에 휘발유를 손수 넣으면서 친구의 의중을 떠봤다.

"내가 기름 사 줬으니까 한 번 태워 줄 거지?"

"알았어. 내가 드라이브 시켜 줄게."

"고마워!"

내가 오토바이를 타자 친구는 질풍노도처럼 도로를 쌩쌩 달렸다. 나는 친구의 넓은 등에 얼굴을 대고 허리를 양손으로 감쌌다. 오토바이가 바람을 가르며 달리고 있고, 나는 제 세상을 만난 듯이 유쾌하게 웃었다. 

친구는 한적한 시골 길에서 속력을 낮추고 여유 있는 태도를 보였다. 내가 장난으로 친구의 바지 지퍼 부분에 손을 갖다 대자 친구는 느긋하게 말렸다. 

"하지 마."

나는 친구의 말을 귓전으로 듣고 자지를 만지는데만 정신이 팔려 고대로 꼼짝 않고 있었다. 친구는 길가에 오토바이를 멈추고 나에게 명령조로 말했다. 

"자꾸 그러면 내려놓고 간다." 

나는 대답 대신에 고개를 끄덕이며 건성으로 응대했다. 친구가 오토바이를 몰자 나는 친구의 바지 지퍼 부분에 손을 다시 갖다 댔다. 친구는 길가에 오토바이를 멈추고 나를 향해 화를 버럭 냈다.

"형, 내려!"

내가 오토바이에서 내리자마자 친구는 오토바이를 몰고 쏜살같이 떠나 버렸다. 나는 멍하니 친구가 고개 넘어로 사라지는 것을 응시할 뿐 아무 말이 없었다.

친구가 나를 데리러 오지 않을 것 같아 터벅터벅 시골 길을 걸어 갔다. 그런데 갑자기 친구가 나타나 내 앞에서 오토바이를 돌리더니 말없이 서 있었다. 내가 골이 난 표정을 짓고 그냥 지나쳐 버리자 친구는 내 옆에 천천히 따라오며 명령조로 말했다. 

"형, 타!" 

나는 친구의 말을 듣고도 못 들은 체 가던 길을 계속 걸어갔다. 친구는 언성을 높여 다시 명령조로 말했다.

"빨리 타라니까!"

나는 집까지 걸어갈 속셈으로 걸음을 멈추지 않고 친구보다 앞질러 갔다. 친구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는지 내 옆을 스치며 지나갔다. 

"내가 진짜로 태우러 오나 봐라." 


내가 시골 길을 얼마나 걸었을까? 친구는 오토바이를 세우고 내가 오기를 기다리는 것이 시야에 들어왔다. 나는 시선을 외로 돌리고 친구를 막 지나치려고 하는 순간 친구가 내 손을 꼭 잡으며 의아하게 생각했다.

"형, 남자 맞아?" 

나는 친구의 말을 흘려들으며 잡은 손을 뿌리쳤다. 친구는 더 이상 말싸움을 벌이기 싫은 듯이 고집을 꺾었다. 

"알았어! 형 맘대로 해." 

나는 골이 난 표정을 풀고 오토바이에 얼른 타며 손바닥으로 앞 좌석을 탁탁 쳤다. 친구는 오토바이를 몰고 나는 친구 뒤에 앉아 엉큼한 생각을 품었다. 나는 살그머니 친구의 바지 지퍼를 내리고 자지를 한번 만져 보는 이 기분, 정말이지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친구의 자지는 내 손길에 관심이 없는 듯 고추장에 콕 찍어 한 번 깨물어 먹을 만한 크기라고 생각할 때 출근 시간에 맞춰 놓은 알람 소리가 꿈속을 헤매고 있는 나를 현실로 데려왔다.


11월 2일   

"감사합니다! ㅇㅇ 주유솝니다."

"구인 광고 보고 전화했는데요?"

나는 야간 근무 중에 뜻하지 않은 전화가 걸려 와 의아하게 생각했다. 전화를 건 사람의 목소리만 들어도 어리다는 것을 직감으로 알았다.

"낼 낮에 다시 전화 주실래요?"

"낮엔 학교 가서 지금 시간 있어요."

"그럼 여기 위치 아세요?"

"예, 지금 가면 되나요?"

"예, 오세요."


전화를 걸은 학생은 교복을 입은 채 낡은 오토바이를 몰고 주유소로 왔다. 나는 학생을 보자마자 대뜸 나이를 먼저 물었다.

"학생 몇 살이에요?"

"열여덟 살요."

"열여덟 살이면 몇 학년이죠?"

"고 이인데요." 

나는 다음 질문에 대해 즉각적으로 반응을 보였다. 

"공부는 어떡하고 알바를 하나요?"

"내년에 직업 훈련 학교에 갈 거에요." 

나는 공부에 대한 질문은 일단 접어 두고 이야기를 엉뚱한 방향으로 돌렸다.

"알바 해서 돈 벌면 뭐할 건가요?"

"친구들하고 스키장 가려고요." 

나는 학생의 당돌한 태도가 마음에 들어 조건을 달았다.

"나도 거기 데려가면 여기서 일할 수 있도록 힘써 줄게요."

"밥 사 주면 그럴게요."

학생은 대답을 망설이지 않고 자기의 생각을 솔직하게 표현했다. 나는 학생에게 덧붙여 조건을 달았다.

"날 친구로 받아 주면 그럴게요." 

"그럼 말 놔도 되나요?" 

"좋아! 그 대신 단둘이 있을 때만."

그래서 내 나이 삼십삼 세에 십팔 세의 친구가 생겼다. 친구는 만족한 표정을 짓고 오토바이 위에 올라탔다. 나는 친구가 주유소를 떠나려고 할 때 소리쳐 불렀다.

"야, 동의서 가지고 가야지. 그리고 전화번호도 알려 주고."

"아까 전화한 번호로 하면 돼."

"아주, 요놈 봐라. 너 내 맘에 쏙 든다!"


11월 3일

   소장은 비상 연락망의 제목을 우리 가족 연락처로 표기했다. 직원 회합도 일정하게 정하지 않고 누구든지 회의를 열 수 있었다.

"차 한 잔 할래요?"

"예, 그래요."

직원들이 원형 탁자에 모여 차를 마시며 주유소 문제에 대하여 의논했다. 나는 친구의 신상을 간략히 말하고 아르바이트하는 것을 건의했다. 내가 직원들의 가부 결정을 기다리는 동안 주임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일 주일이나 버틸 수 있을래나요?" 

"제가 참고 잘 이끌어 가면 될 거 같은데요."

나는 직원들의 의사표시를 긍정적으로 유도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소장은 눈치가 빨라 내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나는 회합이 끝나자마자 친구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나는 저녁 무렵 주유소에 출근하면 주간 근무자와 교대할 때 특이하게 인사말했다.

"다녀왔습니다."

내 집은 잠을 자고, 밥을 먹고, 잠시 휴식을 취하는 공간에 불과하고 생활은 주로 주유소에서 했다. 

친구는 내가 문자 메시지를 보낸 것을 받고 나보다 한 시간 일찍 주유소에 출근했다. 소장과 단독 면담이 끝나고 간단한 입사 절차를 밟자마자 바로 선배들과 매장에서 근무했다. 

내가 주유소에 출근하자 친구가 나를 제일 먼저 알아보고 눈인사를 보냈다. 주간 근무자가 퇴근하면 야간 근무를 책임지는 내가 아르바이트 학생 두 명과 함께 매장에서 일했다. 그 중 한 명이 오늘 입사한 십팔 세의 내 친구였다.


11월 10일

   친구는 다음날이 11데이라고 오토바이에 과자를 두 박스씩이나 싣고 야간 근무를 나왔다. 나는 내심 기분이 좋아 은근한 말씨로 친구에게 물었다. 

"그거 누구 줄 거니?"

"여자 친구에게 선물하려고요."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나는 내심 몹시 실망했으나 애써 천연한 표정을 짓고 친구에게 다시 물었다. 

"그 많은 걸 다 줄 거야."

"하드보드지에 'ㅇㅇ야 사랑해!' 라고 써서 교실 복도에 펼쳐 놓을 건데요." 

나는 친구의 말을 듣는 순간 문뜩 좋은 구절이 머리를 스쳤다. 

"그건 너무 대중적이니까 이건 어때?"

"뭔데요?"

"음, ㅇㅇ야 너는 내 운명이다!" 

"우아, 형 정말 멋쟁이!" 

친구는 나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우고 방그레 웃어 보였다. 나는 친구의 모습이 귀여워 확 덮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친구는 매장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가운데 틈틈이 과자갑에 풀을 발라 하드보드지에 붙였다. 그리고 하드보드지에 친구가 의도한 대로 글자을 완성하자 남은 과자를 나에게 선뜻 건네주었다.

"이건 형 먹어요."

"친구야 고맙다!"

"저 오늘 이거 사느라고 저녁을 안 먹고 와서 배고파요."

"어유, 이걸 받어 말어."

"헤헤- 형, 우리 친구잖아요."

"알았어. 일단 과자는 잘 먹을게."

나는 늘 먹는 밥보다 친구의 취향에 맞게 음식을 제안했다.

"피자 어때?"

"좋아요! 제 친구가 배달하는 곳에 시켜 먹어요." 

"니 친구도 알바하니?"

"예."

친구는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잽싸게 꺼내 전화를 걸었다.

"야, 난데 우리 주유소로 피자 라지 하나 배달해 줘. 아차, 콜라도 큰 걸로 갖다 줘."

나는 친구가 피자를 주문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어이, 친구 니가 돈 낼 거니?"

"헤헤- 형 대신 제가 주문한 거 뿐이에요."


11월 11일

   나는 주유소에 출근하면 으레 소지품을 책상 서랍에 보관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담배 한 갑과 과자 세 갑이 들어 있었다. 나는 메모지에 글귀가 적힌 것을 읽어 보았다.

-과자는 야간 근무자와 나누어 먹고 담배는 혼자 피워요.

소장의 정감이 넘치는 글귀를 읽는 순간 저절로 깊은 감동을 자아냈다. 나는 서랍에서 과자를 꺼내 내 것은 책상 위에 그냥 놓아 두고, 친구와 아르바이트하는 학생에게 한 갑씩 나누어주었다. 


소녀가 손에 커다란 바구니를 들고 택시에서 내려 주유소로 다가왔다. 친구는 소녀를 보자마자 단숨에 달려가 소녀를 반가이 맞이했다.

"이거 나 줄려고 가져 온 거야?"

"응, 아까는 정말 고마웠어."

"뭘 그런 걸 가지고. 이리 와."

친구는 소녀로부터 커다란 바구니를 건네받더니 소녀의 손을 꼭 잡고 매장 부스로 들어갔다. 친구와 소녀는 매장 부스에서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시간을 한참이나 지나서야 친구가 택시를 호출해 여자 친구를 태워 보냈다. 나는 친구 쪽으로 다가가 커다란 바구니를 슬쩍 훔쳐보았다.

커다란 바구니에는 여러 가지 과자류가 푸짐하게 담겨 있어 슈퍼마켓이 연상되었다. 나는 내심 무척 기뻤지만 곁으로는 담담한 체했다.

"여자 친구보고 더 놀다 가라고 하지 왜 그냥 보냈어."

"매장에 있는 게 눈치가 보이나 봐요."

"그래?"


이튿날 아침에 친구는 퇴근을 위해 커다란 바구니에 담긴 과자를 고대로 오토바이에 실을 준비했다. 나는 커다란 바구니가 오토바이에서 떨어지지 않게 끈으로 꽁꽁 묶어 주면서까지 기대를 걸었는데 친구는 인사말 한 마디만 툭 던지고 유유히 사라졌다.

나는 친구를 집으로 보내고 어제 책상 위에 놓아둔 과자가 생각나서 그거라도 먹으려고 찾아보니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어느 틈에 친구는 내 과자까지 처먹고 가 버렸다. 

"어유, 이 새끼 오늘 제삿날이다!" 


나는 퇴근길에 이를 윽물고 저녁에 친구가 주유소에 출근하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문득 아까 친구와 주유소에서 헤어질 때 나에게 인사말한 것이 생각났다.

"형 고마워! 낼 봐."

"으으- 이 새끼 오늘은 쉬는 날이구나!"


11월 17일

   나는 날씨가 추워지면서 난방 문제로 고민하다가 난방장치를 신청해 친구에게 전기히터를 주었다. 친구는 따뜻한 전기히터에 쬐더니 몸이 나른하여 꾸벅꾸벅 졸았다. 

나는 심야에 매장을 둘러보다가 친구가 졸고 있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다. 낮에는 학교 생활하고 밤에는 아르바이트 한다는 것을 측은히 여기고 나는 잠들어 있는 친구를 조용한 목소리로 깨웠다.

"친구야 일어나 봐. 여기서 자지 말고 사무실로 들어가자."

"예. 형 고마워!"

친구는 잠결에도 감사의 뜻을 표하는 것을 빼먹지 않았다. 나는 사무실에 의자를 가지런히 늘어놓고 친구를 재웠다. 그리고 친구 몸에 겨울 점퍼를 덮어 주고 사무실에서 나왔다.

나는 친구를 재우고 나니 왠지 가슴이 뿌듯했다. 매장에서 손님을 맞이하는 사이에 깊은 상념에 잠기다가 불현듯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아하, 심야에 근무자끼리 돌아가며 자야겠구나."

나 자신이 매장에서 일하더라도 두 시간씩 돌아가면서 수면을 취해야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분명히 말하지만 내 의견을 제일 먼저 반기는 것은 당연히 친구일 것이다.


11월 25일

   나는 우연히 매장에서 일하다가 한 청소년을 만났다. 그 청소년은 요즘도 가끔 내가 야간 근무 중에 놀러 와서 나와 함께 커피를 마셨다.

나는 친구와 같이 매장에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청소년이 느닷없이 나타났다. 나는 청소년을 오래간만에 만나 사무실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청소년과 한참이나 이야기를 나눈 뒤에 주유소 앞에서 헤어졌다. 내가 사무실로 들어가려고 하자 친구는 내게로 다가오며 말을 붙였다.

"형! 저 애 사귀지 말아요."

"그건 왜?"

"전에 쟤와 같이 알바했는데요. 손버릇이 나빠서 금고에 있는 돈 갖고 도망 갔어요."

"그래? 고마워!"

나는 친구의 말을 듣는 순간 말없이 친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친구는 멋쩍게 씩 웃으면서 나와 눈길을 피했다. 나는 사무실 의자에 앉아 친구에게 다시 한 번 눈길을 주며 속말했다.

'고놈 참, 기특한 친구네!' 

친구는 그동안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아 낡은 오토바이를 헐값에 처분하고 600CC 중고 오토바이를 샀다. 그러나 휘발유 살 돈이 없어서 쩔쩔맸다. 나는 친구의 충고를 호의로 받아들이고 오토바이에 휘발유를 가득 채워 주었다.


12월 3일

   어제와 오늘을 경계로 하여 첫눈이 펑펑 내렸다. 눈은 주유소 조명등의 환한 불빛을 받아 커튼을 친 듯 지붕 아래로 막이 형성되었다.

친구는 눈이 내린다고 좋아서 매장을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나는 말없이 친구를 바라보며 지난 일을 되새겨 보았다.


친구는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어 스키장에 간다고 하지만 나는 눈이 내리는 날에 비료 포대를 들고 뒷산에 올라 바지가 눈에 젖도록 눈 썰매를 탔다. 


내가 지난 일을 되새기는 동안에 택시 한 대가 주유소 앞에 멈추었다. 나는 의아한 눈길로 택시를 보고 있는데 소녀가 친구를 찾아왔다.

친구가 소녀와 함께 매장에 있어도 영업을 방해하지 않는다면 나는 둘 사이에 관섭할 필요가 없어 모르는 척했다. 사실 아르바이트 학생이 쉬는 날이라 나와 친구 단둘이서 야간 근무를 했다.  그래서 친구와 소녀는 주유소에서 만나기로 한 것 같았다.

소녀는 내가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에 집으로 돌아갔다. 나는 친구에게 제대로 해주지 못해 마음이 몹시 아팠으나 조금도 내색하지 않았다.


나와 친구는 밤참을 먹고 매장에 쌓인 눈을 치우다가 둘이서 감당하기엔 눈이 너무 많았다. 친구는 힘에 부쳐 도저히 못 하겠다며 눈을 치우는 것을 포기했다. 나도 밀대로 눈을 치우는 데 지칠대로 지쳐 매장에 방치해 두었다. 


12월 10일

   친구는 주말에 아무 예고도 없이 나를 찾아왔다. 나는 뜻하지 않은 친구의 방문을 받고 반가운 기색을 나타냈다. 친구는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내가 사는 원룸을 둘러보고 감탄을 자아냈다. 

"아주, 제법 사람 사는 것처럼 사네." 

"그럼 넌 내가 막 사는 줄 알았냐?"

"헤헤- 그건 아니지만 아무튼 좋다!"

친구는 자신의 발에서 냄새가 난다며 욕실로 들어가 깨끗이 씻었다. 나는 친구가 발을 씻는 동안에 음식을 간단하게 준비했다. 친구는 음식을 맛나게 먹고 침대에 큰대자로 벌렁 누웠다.

내가 빈 그릇을 치우는 사이에 친구는 잠이 깊이 들었다. 나는 친구가 자는 모습을 우두커니 바라보다가 친구가 잠이 깨지 않도록 조심성 있게 그 옆에 누웠다.


친구는 낮에는 학교에 다니고 밤에는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었다. 친구가 긴장을 풀은 탓인지 아니, 피로가 쌓여서인지 몰라도 근무 중에 나태심을 드러냈다. 

나는 친구와 함께 야간 근무하면서 좋은 길로 이끌어 가려던 마음이 친구의 나타함 때문에 결심이 흔들렸다. 나는 친구를 나무라지 않고 알아 듣게 잘 타일렀다.

"어이, 친구! 자네 요즘 근무에 태만하더니 마감 때 돈이 모자라는데 다시는 이런 잘못이 없도록 조심해야겠어."

"알았어요."


내가 친구에게 잘못을 지적했는데도 친구는 오래 버티지 못하고 결국 매장 부스 안에서 의자에 앉아 졸았다. 친구는 심야에 의자 않아 끄덕끄덕 졸다가 손님이 오면 정신을 집중하지 않아 실수를 저질렀다.

내가 근무 교대 전에 정산하면 돈이 모자랄 때가 있었다. 친구가 실수로 돈 계산을 잘못했으면 그것을 시인해야 하는데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사실 돈 몇 푼 모자란다고 인색하게 군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돈이라는 것이 서로의 신뢰감을 더럽히는 주유한 이유가 되었다. 그래서 나는 과단성 있게 최후의 수단을 택했다.

"친구는 오늘부터 교대로 자는 시간 없어."

"왜요?"

"내가 친구를 재워 주니까 학교 파하고 싸돌아다니다가 주유소에 와서 맨날 의자에 앉아 졸고 있잖아."

"제가 싸돌아다니는 거 어떻게 아세요?"

"다 소식통이 있어. 아무튼 똑바로 근무해."

"알았어요."

친구가 볼멘 목소리로 대답하고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친구의 표정을 보니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하지만 친구가 나태해지도록 내버려둘 수가 없었다.


12월 17일

   나는 주간 근무자와 교대한 뒤에 친구에게 커피 한 잔을 갖다 주었다. 친구는 나에게 컵을 받으며 감사의 뜻을 표했다.

"고마워요."

"내가 그 다음에 뭐하지?"

"매장에 돌아다니며 쓰레기를 말끔히 치워요."

"그리고 또 뭐해?"

"사무실에서 하는 일 없이 어영부영 시간만 보내다가 밤 열두 시에 마감해요."

"킥킥- 너 아주 줄줄 외우고 있구나."

친구가 멋쩍게 씩 웃는 모습이 매우 귀여워 내가 친구를 힘껏 껴안았다. 그러나 아르바이트 학생의 특징은 일을 배울 만하면 주유소를 그만두었다. 

친구도 6일 뒤에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고 내 곁을 떠나기로 했다. 아르바이트를 그만두면 다른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힘들게 번 돈을 다 까먹을 것이 번했다.

내가 친구를 통해 얻은 것은, 단순한 문제에 화를 내지 말고 꾹 참으면서 아르바이트 학생들을 이끌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었다. 

친구는 속이 좁은 나를 이해하고 그동안 꿋꿋하게 견뎌 주어 여간 대견한게 아니였다. 나는 매장 청소를 뒤로 미루고 친구와 둘이서 이저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친구는 주유소에 들어와 평상복을 유니폼으로 급히 갈아입느라고 바지 지퍼를 위로 올리는 것을 잊어버렸다. 친구의 옷매무새는 한마디로 남대문, 바로 그것을 열어 놓고 손님을 반가이 맞이했다. 나는 친구 쪽으로 다가가 넌지시 친구의 옷매무새를 지적했다.

"친구는 개방적인 면이 있어 아마 여자 손님들이 환장할 거야."

"그게 무슨 말이에요? 씩- 설마 제가 잘생겼다는 말은 아니죠?"

"킥킥- 친구 넌 잘생긴 것보다 귀엽게 봐 주는 편이지."

친구가 내 말을 알아듣거나 말거나 바지 지퍼를 그대로 놓아둔 채 나는 사무실로 들어와 업무 보고서를 작성했다. 친구는 매장에서 한참이나 일하고서야 열에 받쳐서 씩씩거렸다.

"형이 한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다가 손님이 알려 줘서 알았잖아요."

"으하하-  고거 참 고소하다."

"에이, 배신자!"

"야, 다 영글지도 않은 거 좀 보여 주면 어때서 그래?"

"형이 제 거 봤어요?" 

"니 거 보진 못했어도 만져는 보았지."

"아, 오토바이 뒤에 탔을 때!"


12월 23일

   주유소는 25일이 월급날인데 성탄절이고, 24일은 토요일이라 은행이 문을 닫는 바람에 이틀을 앞당겨 23일에 월급을 받았다. 친구는 야간 근무를 끝내고 다른 친구들과 스키장에 간다고 마음이 들떠 있었다. 

"형도 저와 함께 가요."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했는데 요즘은 스키장 가는구나. 근데 내가 자리 비면 모가지 잘리는데."

"이다음에 제가 돈 벌어서 피자 가게 내면 형 데리고 갈게요."

나는 친구의 기특한 말을 듣자마자 서랍에서 작은 상자를 꺼내 친구에게 건네주었다. 친구는 작은 상자를 받으며 소리 없이 빙그레 미소지었다. 

"이게 뭐에요?"

"고추 보호대!" 

"으하하- 팬티구나."

"응, 소녀 만날 때 입어."

"고마워요! 그럼 또 만나요."

나는 인사말 대신에 긍정의 표시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친구가 선물을 받고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등을 돌려 사무실을 나갔다. 나는 친구의 뒷모습을 한참이나 지켜보고 있었다. 친구가 오토바이 위에 올라 앉아 나를 바라보고 큰 소리로 말했다. 

"형! 스키장 갔다 와서 매일 놀러 올게요."

"그래, 기다리고 있을게."

친구는 손을 흔들고 오토바이의 시동을 걸자마자 주유소를 빠져 나갔다. 나는 우두커니 서서 친구가 내 눈길에서 벗어날 때까지 바라보며 친구와 대화하던 것을 돌이켜 생각했다.

"형, 저요. 내년 여름 방학에 오토바이 전국 투어 갈거에요."

"그럼 소녀를 뒤에 태우고 가겠네."

"오토바이 뒤에는 절대 여자 태우는 거 아녀요."

"그래! 그럼 난?"

"형은 태우고 갈게요. 그 대신 밥 사 줘요."

"알았어. 밥도 사 주고 맛있는 건 다 사 줄게."

"정말요? 아이, 좋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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