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름 (13) - 재영의 시선

작성자 정보

  •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본문

오… 요샌 그런 것도 있구나. 신기한 세상일세. 잠깐… 아는 사람이 봐주면…?
“혹시… 이건 어때요?

?

 

 

*

 

 

혹시 지금 끊은 독서실 이용권 언제 만료돼요?”

다음주 수요일이요. 오늘 빼고 3일 남았네요

“오, 마침 잘 됐네요. 오해하지 말고 들어요, 낮 동안 우리 집에 와서 공부해요.

?? ?

“오해하지 마요. 은석 씨한테 이상한 흑심 같은 거 있는 거 아니니까.
그냥… 좀… 괜히 미안한 마음이 있기도 하고, 내 옛날 생각이 나기도 하고.

저도 합격하기 전까지 그 나이대의 불안감을 느껴봐서. 동병상련이랄까.

“…….

 

“그리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아직 창창한 나이에… 아무리 단기간에 쉽게 벌 수 있대도 그런 일, 하지 마요.
마사지할 때 보니까 엄청 성심성의껏 하던데.
솔직히 잠깐 하고 손 털 거였으면 마사지는 대충 하고 ‘애프터’로 적당히 때우고 돈만 받아갈 수도 있었잖아요.
기본적으로 성실한 사람 같아요. 눈치도, (새어나오는 웃음) 엄청 빠르고. 일 잘할 스타일인데.
사람 기분도 잘 맞춰주는 게 합격해서 일 시작만 하면 똘똘하고 싹싹한 후배 될 거 같은데.

여전히 대답없이 듣고만 있는 은석.
 

“꼰대 같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데, 그게 맞아요. 은석 씨도… 솔직히 내심은 그렇게 생각하죠?

…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는 은석. 그리고 입을 연다.
 

“… 그치만… 그러면 그냥 제 집에서 혼자 공부하는 거랑 뭐가 달라요?

“아아, 아까 아는 사람이면 나을 것 같다고 했죠? 내가 감독해 줄게요.”

“? 그치만 늦게까지야근도 많으시고 일 바쁘실 텐데그리고 수험이랑 실무는 또 다르잖아요.”

아 내가 뭘 가르쳐주고 이러겠다는 게 아니라, 아까 캠스터디 아는 사람이랑 하면 확실히 눈치보일 것 같다면서요.
나는 이젠 그래도 아는 사람아니에요? 더군다나 업계 선배가 될 수도 있는 위치고.
그리고 혹시 알아요, 나중에 은석 씨가 회계법인 지원할 때 내가 면접 볼지.
지금 열심히 하면 내가 눈여겨 봤다가 추천할지도 모르고. 원래 이 바닥 다 레퍼런스로 뽑아요.”

은석의 표정을 보니, 잠자코 들으며 생각에 잠긴 듯하다. 고민하고 있구나. 이에 계속 이어나가는 재영.

우리 집에서 캠 켜놓고 공부해요. 일하느라 바빠서 자주는 아니겠지만, 중간에 한 번씩 볼게요.
그리고 그거 녹화되죠? 녹화해 놨다가 나중에라도 보죠 뭐.
시간 찍어놓기만 하고 그 날 머리에 들어온 건 없을 수도 있으니까,
퇴근하고 와서 오늘 뭐 공부했는지 물어볼게요. 실무랑 수험이 괴리가 좀 있으니 OX다 말해주긴 어렵겠지만
그래도 대충 들으면 아 오늘 공부했구나정도는 알죠. 만으로 5년차인데 나도.”

 

“… 고객ㄴ, 선배님이 저한테 굳이 그렇게까지 해주실 필요가 있으세요?
단순히 어제 일 때문에 미안해서라고 하기엔 너무 큰데요.”

 

우왓바로 호칭 선배님이야? 태세전환 무섭다너무 뻔뻔하고 당돌해서 오히려 맘에 든달까..
오랜만이다, 이런 성격.
 

혹시 전 애인이 생각나서 이러시는 거면 그건 좀 불편해서, 그것만 확실히 해주시면.”

 

돌려 말하기 없이 핵심을 찌르고 들어온다. 역시마사지사일 땐 마냥 귀여운 순둥순둥 강아지 같더니
일상의 성격은 보아하니, 호불호 확실하고, 잇속 밝고. 시원시원해서 좋네.
마사지사일 때랑 일상이 이렇게까지 다른 것도 굿굿. 포커페이스는 클라이언트 만날 때 필수라고.

그치만경한이는 이런 성격 아니었어. 마사지로 봤을 그 때 그 성격이 경한이 성격을 닮았지.
이 성격은 아니올시다. 확실히 구분짓게 해줘서 고맙다.
 

그렇지만이제 더 이상 너한테서 경한이를 보는 건 아니지만,
하나는 맞아. 너를 통하면그 아이에 대한 부채감을 씻을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은 들어.
스물여덟의 내가, 그 당시의 경한이에게 미안했지만표현하지 못했던.
너는 너고 걔는 걔인 거, 이제 확실히 잘 알지만, 그치만.
 

‘… 이걸 지금 얘한테 말할 수는 없겠지.’
 

그건 아니에요. 솔직히 생긴 건 전 애인이랑 좀 많이 비슷하긴 한데.
지금 보니 성격은 완전 딴판이에요. ㅎㅎ 이제 둘을 괜히 오버랩할 일은 없으니까 걱정 마요.”
 

아 네…”

그럼 그렇게 할래요?”

계약조건은 어떻게 되죠?”
이 철두철미함. 너무 좋아.


*

 

중략됐지만, 곧 은석의 부모님이 병문안을 오신다고 톡을 남기신 탓에 재영은 일단 자리를 피했다.
재영과 은석은 번호를 교환했고, 몇 차례 상의가 오가고 퇴원 후부터 본격적으로 집주인과 반쯤동거남으로서
아래의 규칙 하에 몇 주간 지내 보기로 하였다. 위 대화에서 드러나지 않은 세부적인 규칙이 오가는 톡 속에 살로 붙었다.
 

1.      (표은석)은 갑(박재영)의 주거공간에 07:00 출근, 21:00 퇴근한다.
(
부모님께는 독서실에 공부하러 간다고 한 것이라, 퇴근하고 잠은 집에서.)

2.      을은 출근 후 캠스터디 영상을 촬영하며 공부하되 일일 공부시간이 10시간 이상이어야 한다.
주말 예외 없음. , 재활치료, 가족행사 등 불가피한 사유에 따라 갑을 설득할 경우 제외.

3.      을은 출근시간 동안 하기 열거된 전자기기를 제외한 갑의 주거공간 내 전자기기를 자유롭게 조작하고,
주거공간 내 식료품으로 식사를 할 수 있다.
- TV (
공부해라), 갑의 노트북
이에 대해 별도로 비용을 청구하지는 않으나, 하기 집안일로써 갈음한다.
(
열거조항, 추후 합의 하에 내용 추가될 수 있음)
-
식사에 따른 설거지, 음식물쓰레기 처리, 분리수거 배출

4.      갑은 퇴근 후 을에게 일일 공부내용을 확인하고 필요 시 스터디 영상을 확인한다.

5.      만약 갑이 을의 업무보고를 청취하여 판단하기에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되거나,
영상자료상 일일 공부시간에 미달한 경우 을은 갑이 추가로 요구하는 집안일을 한다. (예시조항)
-
화장실 청소, 방 청소, 갑의 퇴근 후 저녁식사 상차림 등

6.      을은 종사 중이던 서비스업(마사지업)을 중단하고, 갑과의 계약이 유지되는 동안 재개하지 않는다.

7.      갑과 을은 각각 상대방의 동의 없이 상대방에게 성적 접촉을 하지 않는다.
 

언뜻 보기에 굉장히 하우스 섭-돔의 계약서 같지만, 7항 덕분에 이를 면했다.

재영과 은석의 첫 만남이 그렇고 그런(?) 것이었던 이상,
자칫 잘못하면 얼마든지 그런 쪽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것을 두 사람 모두 잘 알기 때문이다.



*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 어느덧 은석이 퇴원하는 날-토요일-이다.
 

(재영) 일주일 동안 고생했어요. 이따 퇴원 몇 시에 해요?

(은석) 열 두시 쯤요. 부모님 오셔서 일단 같이 집 가서 점심 먹을 것 같습니다.
부모님이랑 잠깐 시간 좀 보내고 3시까지 출근해도 괜찮을까요?

(재영) 네 그렇게 해요. 저녁에 잠깐씩 보긴 했어도 일주일 동안 집에 못 들어갔는데 가족들이랑 회포는 풀어야죠.

 

톡을 보내놓고, 재영은 잠시 생각한다.

누구랑 같이 이 공간에서 (반쯤이지만) 동거라니정말 인생 계획에 없던 일이다.

 

재영이 6년이나 연애나 번개를 안 하긴 했지만 욕구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마사지 한 것만 봐도 알듯이.

다만 그동안 대부분 혼자 해결하는 정도로 만족해서 그렇지.

 

갑자기 그 섹시한 은석이 이 집에 들어오게 되면,

재영은 더 이상 혼자 해소하지 않게 될까? 아니면 기록이 나날이 갱신될까?

 

어른답게 굴자. 함부로 건들지 않기로 했으니까. ‘스터디가 섹터디 된다는 농담이 괜히 있는 게 아니야.’

 

그리고애초에 이걸 생각한 건 경한이에 대한 부채감을 해소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잖아. 그걸 잊지 마.

내가 은석이를 함부로 범하면 그건 경한이에 대한 부채감을 더하는 일이 될 거다. , 명심하자.

 

재영은 오전 루틴대로 헬스장에 다녀오고, 혼자 자취방에서 점심을 먹고,
등등 자신의 페이스대로 주말을 알차게 채워간다.
 

얼마나 지났을까. 전화가 울린다.

, 250. 왔나 보다.’

 

선배님 문 앞입니다.”

, 그래요 잠시만요 열어 줄게요.”
재영이 문을 열자 해바라기꽃 한송이를 든 은석이 서 있다. 그 귀여운 눈웃음을 한 채.
 

뭐예요 웬 꽃? 퇴원한 거 축하한다고 내가 꽃을 사다 줘야 할 판에.”

에이 아닙니다. 무슨 말씀이세요. 퇴원하자마자 선뜻 제 공부를 도와 주시겠다는 선배님 마음에 제가 감사해야죠.”
어우이 능청그치만 알잖아, 키크고 잘생긴 애가 눈웃음치면서, 끼 흘리면서 능청스러우면 답 없다.
 

받으세요. 8월이 한참 철인가 봅니다.
여기 오는 길에 꽃집 앞에 진열된 거 보니까 햇빛 받아서 그런지 더 예쁘던데요.”

아하하, 네 그럼. 고마워요.”

 

집 비밀번호는 ****이에요. 다음부터 그냥 들어와요.”

네 알겠습니다~” 자연스레 식탁 앞 의자에 앉는 은석.

행여나 뭐 막 집어갈 생각 마요. 저기 카메라 보이죠?”
꽃을 꽂아두기 위해 찬장에서 안 쓰는 긴 병을 주섬주섬 꺼내며 재영이 말한다. 천장 모서리에 달려 있는 카메라.

캠스터디 뭘로 찍을까 했는데, 저걸로 하면 될 거 같아요.
녹화도 되고 내가 앱으로 바로 볼 수 있고, 내가 원하면 내 목소리 오디오 타고 나오게 할 수도 있고.”
아아~ 저거 그거네요. TV에서 광고하는 그집에 혼자 있는 강아지나 고양이 보게 해주는 그거 맞죠?”

 

은석의 이 말을 듣자마자 재영의 아랫도리에 곧바로 힘이 들어가 반 발’에 이른다.

어우저거 생긴 건 강아지인데 속은 여우지 참. 알면서 일부러 말했다 방금.
그걸 그렇게 굳이 입으로 뱉어서 짚으면 내가 꼭집에 펫 하나 들여놓은 거 같잖아.
그렇다고 여기서 내가 어허 건전하게 공부만 해야지 무슨 상상하냐고 엄근진하면..
‘?
선배님? 무슨 상상을 하시는 거예요?’ 그러면서 능청 떨겠지. 상상하니 얄미운데 은근 또 귀엽네.

아니야 박재영, 공과 사(?) 구분하자. 원래의 목적을 잊지 마.’
 

언제부터인가, 은석의 태도는 이제 마사지사의 그 상냥함과 병원에서의 까칠함 그 사이 어딘가에 자리매김한 채다.
재영은 그런 능글맞은 스타일을 싫어하지 않고.


아아 그거 맞아요. 광고 혹해서 샀네. 성능 괜찮을 거 같아서.”
저거 한 두 푼도 아닐 텐데 저 때문에 사신 거면또 너무 죄송한데.”

괜찮아요. 그런 말 들으려고 단 거 아니니까. 공부 열심히 해서 빨리 붙는 게 나한테 갚는 거예요.”

감사합니다.” 능글맞은 웃음. 싫은데 좋아.
 

그럼, 피차 잡소리로 시간낭비하지 말고 이 식탁 테이블에서 바로 공부 시작해요.
.. 병실에서 누워서 하긴 했겠지만 어디 제대로 집중이 됐겠어요.
떨어진 폼 복구하려면 좀 걸릴 텐데 더 지체하면 안 되죠.

나도 저기 보이는 (제 노트북이 놓인 구석 책상을 가리키며) 책상에서 내 할 일 할 테니까.”

~ 알겠습니다!”

, 오늘은 보니까 책을 많이는 못 가져온 거 같은데, 조금씩 가져와서 저기 책장에다 꽂아요.
보다시피 고향집에서 내 책 갖다 꽂아 놨는데도 책장에 자리 많이 비니까.”

넵 감사합니다! ㅎㅎ “


어물쩍거리다가는 죽도 밥도 안 된다. 바로 시작하는 게 맞아. 초반에 분위기가 딱 잡혀야지.’

 

관련자료

댓글 1

<span class="sv_wrap"> <a href="https://ivancity.com/bbs/profile.php?mb_id=samauinim" data-toggle="dropdown" title="samauinim 자기소개" target="_blank" rel="nofollow" onclick="return false;"> samauinim</a> <ul class="sv dropdown-menu" role="menu"> 님의 댓글

  • <spa…
  • 작성일
이제 스터디가 섹터디되겠군요 ㅎ
알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