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름 (26) - 재영과 은석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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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씻죠.”

“… .”

둘은 함께 화장실로 들어간다.

 

 

*

 

 

내가 등 씻어줄게요, 받으면서 말하지 말고 들어요.”

샤워기 물줄기를 맞으며 선 은석의 등 뒤에서 재영이 나지막이 말한다.

오늘내가 갑자기 리드해서 은석 씨랑 몸의 대화를 한 이유가 뭘 것 같아요?”

“…?” 눈치 좋은 은석이라도 이번에는 정말 모르는지 잠자코 있는다.


우리 7항 넣을 때 기억하죠. 우리 첫 만남이 마사지였기 때문에, 얼마든지 서로의 몸을 탐할 수 있어요.

물론 그 말을 꺼낸 게 내가 은석 씨랑 하고 싶을 것 같다는 욕구의 방증인 건 맞아요.

맞는데, 이젠 정말 경한이랑 상관없이 은석 씨가 공부에 집중하는 상황을 만들어주고 싶어요.

오늘처럼 이렇게 대놓고 밥 먹다가 플러팅하면 곤란하다는 얘기죠.”

“… , 생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도 왜 내가 오늘 은석 씨 장단에 맞춰주고, 심지어 리드하듯 태도를 바꿨을까?

그건 다른 거 아니에요. 자꾸 그런 식으로 흘리면 나도 가만 있지 않는다. 괜히 자극하지 마라. 뭐 이런 뜻?

계속 보니까 은석 씨가 자꾸 내 반응 재밌어서 그렇게 나오는 것 같아서. 나 쑥맥 아니라고.”

“… 죄송합니다.”

 

사실 내가 이렇게 나오면 은석 씨가 오히려 불타올라서 앞으로 더 하려 들지 않을까?
싶기도 해서 오늘 그냥 적당히 거부하려고 했는데. 딱 잘라 말하긴 어렵지만 은석 씨는 능글맞은 게,

아무래도 햇빛보단 바람 전략이 맞아. 내가 리드할 줄 몰라서, 하고 싶지 않아서 가만히 있는 거 아닌데,

내가 먼저 배려해서 참고 있는데, 정작 공부에 집중해야 할 당사자인 은석 씨가 이러면 안 되지, 그런 싸인이에요.

똑똑한 은석 씨니까, 무슨 말인지 알아 들었죠?”

“…, 알겠습니다.”

 

딱 맞는 비유는 아니지만, 착한 사람이 화나면 더 무섭다더니 뭐 그런 건가.

갑자기 압도적으로 다가오는 이 카리스마그래, 내가 맨날 내 앞에서 순한 것만 봐서 그렇지

순하다가도 카리스마 보일 땐 딱딱 보이니까, 그러니까 회사에서도 인정 받겠지. 외유내강형. X나 멋있어

 

은석의 이 생각에 대답이라도 하듯, 다시 상냥하고 부드러운 손길로 은석의 등에 바디워시를 다 펴바른 재영.

그리고 샤워기를 대 물로 씻겨 내려준다.


또또, 굳으려고 한다. 능글맞은 척은 다 하면서 이럴 때 보면 완전 애라니까.
그렇다고 마냥 목석처럼 있으란 말 아니고. 무슨 말인지 알죠? 선 넘는 거, 삼진아웃, 그것만 안 하면 돼요.
, 내 등도 씻어줘요.”

“…?”

저번에 헬스장에서 약속한 거 아니에요? 이런 건 서로 품앗이 하기로? 얼른요.”

, . 이내 다시 웃음을 보이며 냉큼 재영의 등을 씻어주는 은석.

 

 

*

 

 

서로 오해도 다 풀고, 서열 정리(?)도 됐겠다, 이제 둘 사이엔 적당한 꽁냥거림과 상호부조만 남았다.

물론 두 사람은 아직 연애를 선언한 관계는 아니지만, 어쨌든 반 동거인으로서,
그리고 당초 계약엔 없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은석이 맨입으로 신세만 지는 것은 아무래도 미안해서,

아래의 두 가지 항목을 은석이 제안하여 추가하게 되었다.

1.      매주 토요일 같이 장을 보고 그 날 식사 한 끼는 을(표은석)이 요리해서 대접한다.

2.      일주일에 한 번 함께 방을 청소한다.

우리는 이들의 그 꽁냥거리던 날들 중 어느 하루들의 하이라이트(?)만 엿보고 퇴장하기로 하자.

 

 

*

 

 

출근! 좋은 아침입니다-“

은석은 문 열고 곧장 식탁으로 걸어와 재영의 볼에 볼뽀뽀를 한다.

입술을 떼고 자리로 가 착석하려는 은석의 턱을 잡고 젖혀서 입술을 맞추는 재영.


할 거면 제대로 하지 볼뽀뽀가 뭐예요 볼뽀뽀가.”

ㅎㅎ 오늘 아침은 뭐예요?”

은석 씨 덕분에 전에 선물 받고 한 번도 안 쓴 와플 기계를 처음 꺼냈네. 크로플 해봤어요.
저번에 우리 마트에 장보러 갔다가 잠깐 카페 들렀을 때 엄청 먹고 싶어하는 거 같아서.”

선배님 역시 눈썰미. 아 근데 이거 먹으면 살찐단 말이에요 운동 더 많이 해야 되는데 ㅠㅜ
먹고 싶은 건 맞는데 일부러 참는 거였는데ㅠㅜ 휴, 그래도 선배님이 해주신 거면 맛있게 먹겠습니다-.”

ㅎㅎ 나 오늘은 좀 빨리 가봐야 돼서. 같이 못 먹어서 미안.”

아 뭐예요 기껏 아침부터 이렇게 다 만드시고 본인은 안 먹고 가는 게 말이 돼요? … 대신 그럼 오늘 일찍 들어오세요.”

ㅎㅎ 일찍 들어오고 말고가 내 맘대로 되나요.”

아 암튼요. ㅎㅎ” “그래요 오늘 공부도 열심히 하고 이따 저녁에 봐요.”

 

 

*

 

 

점심시간을 기하여 은석에게 전화한 재영.

 

은석 씨.”

아 네 선배님 점심 드셨어요?”

네 먹었죠. 난 추어탕. 은석 씨는?”

그냥 뭐 집에 있는 거 먹었습니다. , 내가 만들었지만 여름에 오이무침은 진리다 진짜.”

ㅋㅋㅋ 아침에 크로플은 괜찮았어요?”

네 너무 맛있던데요. 아 그래도 다음부턴 이런 거 아침부터 선배님도 힘든데 만들지 마십시오.
맛은 있는데 어차피 저도 운동만 더 해야 된단 말이에요 ㅠ ㅎㅎ

ㅋㅋㅋ 좋으면서 괜히 나 힘들까봐 그런 소리 안 해도 돼요.”

ㅎㅎ 이따 일찍 들어오실 거죠?”

아 오늘따라 왜 자꾸 보채요. ㅋㅋㅋ 이따 회사에서 출발하면 톡할 테니까,

괜히 나 생각한다고 공부 대충하지 마요. 이따 물어봐서 웅얼웅얼 거리면 알죠? 이번주도 화장실 청소 당신이야.”

여부가 있겠습니까. 저번에 벌칙으로 화장실 청소하는데 아주 거기 털이…”

얼씨구? 나보다 집에 있는 시간 더 긴 거는 은석 씨거든요? 확률적으로 그게 누구 건지 잘 생각해 봐요.”

남의 거기 털 얘기는 그만 알아보도록 하자.

 

암튼 그 이후도 핑퐁 대화를 이어나가다, 통화를 마치고 히죽이며 자기 자리로 돌아오는 재영.

아니, 재영 씨 요새 무슨 일이에요? 점심시간에 잠깐 나갔다 오기만 하면 입꼬리가 아주 광대를 뚫는 게.

아니 그러고 보니까 전엔 나랑 퇴근하고 술도 곧잘 마시더니 바로 집에 가는 게집에 뭐 우렁각시라도 숨겨놨어요?”

옆자리 직장동료의 한 마디. 어떻게 아셨나요. 돗자리라도 까심이.


 

*

 

 

- 집 잘 지키고 있었어요?”

아니 선배님 오늘 인사말은 꼭집 지키는 개가 된 것 같은.ㅋㅋ

인사하며 들어온 재영을 반겨주는 건식탁에 미역국.

 

“? 이게 뭐예요?”

아이, 선배님 오늘 생일이잖습니까. 카톡 생일 알림에 지난주부터 보이던데.”

내 입으로 말하긴 뭐해서 가만히 있었는데 센스 대박. 아니 근데우리 주말에 장볼 때 미역국 재료는 안 샀는데?”

에이, 서프라이즈하려고 그랬죠. 아까 저 늘 산책가는 시간에 요 앞에 마트 가서 샀습니다.
카메라에 잡힐까 봐 들어오자마자 후다닥 냉장고에 넣어놓고퇴근길 운전하면서 오실 시간에 후딱 했지요.

다행이다 카메라로 그건 못 봤구나. 작전 성공 ㅎㅎ

어휴은석 씨 이런 거 만들 시간에 공부나 더 해요. 이거 했다고 이따 안 봐줍니다. 물어봐서 얼렁뚱땅이ㅁ…”

숟가락으로 미역국을 떠 재영 입에 물리는 은석.

, 이제 조용해졌네.”

아니ㅋㅋㅋㅋ 해보자는 거죠 이거?”

 

 

*

 

 

“… 그러네요? 의외로 멀쩡하게 오늘 공부할 건 또 했네요?”

, 제가 선배님 성격 아는데, 안 봐주실 거 아는데, 당연히 더 빡! 집중해서 1시간을 2시간처럼 공부했죠.”

어우 말은 하여튼 청산유수이제 아홉 시 거의 돼 가는데 얼른 가 봐요.”

, 선배님 잠깐만요. 하나 더 있어요 오늘은. 생일이니까.”

 

불을 끄고 갑자기 침대 밑에서 양X캔들을 꺼내더니 불을 켜는 은석. 와 이것도 몰래 사놨어?

“? 뭐예요?”

우리고객님? 제가 누구 덕분에이제 고객이 한 명밖에 안 남아서요.

근데 그 고객님이랑 저번에 시간을 다 못 채운 거 같아서. 생일 기념으로다가?

오늘자 공부 검사도 합격했겠다, 이 정도는 허락하시죠 사감 선생님?”

? 하하.”

 

재치에 반쯤 기대감, 반쯤 어이없음에 너털웃음을 터뜨리는 재영.

듣고 싶으신 음악 있으세요, 고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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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pa…
  • 작성일
너무 좋다 둘 사이가.
그냥 이렇게 연애하자고 하면 안 되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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