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소설] 나를 태우다 - 마음이 얼어붙었는데...(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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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나를 태우다 - 마음이 얼어붙었는데 불가마인들 따뜻할까?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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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글은 장편으로 기획된 글로써,

진한 선정적인 장면이나 빠른 전개가 없습니다.

졸렬하고 흥미롭지도 않은 제 글을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와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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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만일까?

 

평상시 말이 많은 편도 아니고,

속으로 혼잣말을 많이 하던 내가

그렇게 침묵이 익숙하던 내가

이렇게 침묵이 어색하게 느껴진 것이...

 


길상은 오늘 하루 종일 말이 없이

나무 그루터기에 앉아 가마만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다.

길상의 큰 눈에는 가마의 무엇이 비치고 있는 것일까?

 

나는 길상에게 섣불리 다가가지도 못하고

말도 걸어보지 못한채 멀리서 바라만 보고 있다.

 


며칠 안되는 시간이지만

나에게 따뜻하게 대해준 길상이,

항상 서글서글한 눈웃음을 치던 길상이

저렇게 가만히 있으니

왜인지 아쉬운 생각과 불안한 생각이 가득하다.

 


스승이라는 노인이 길상을 부르던 호칭부터

무엇을 버리지 못했다는 것인지

또 왜 같이 오라고 한 것인지

정말 묻고 싶은 것이 많지만

 

작은 키지만 모든 것을 받아들일 것처럼

넓게 보이던 길상의 등판은 이제

모든 것을 거부하는 듯한 모습만을

보이고 있었다.

 


하릴없이, 개를 만지거나 방에 앉아 있다가도

다시 나와서 길상을 보면 길상은 마치

나무 밑둥에서 다시 자라나 천년을 간다는

주목의 줄기라도 된 양 그대로 변함이 없는 모습으로

앉아만 있을 뿐이었다.

 

멋쩍은 마음에 담배라도 피울 요량으로

주머니를 뒤져보니 핸드폰이 잡혔다.

 

그동안 핸드폰이 없으면 단 한순간도 살 수 없을만큼

바쁘게 연락을 오고가던 핸드폰

고맙다는 말도, 죄송하다는 말도, 사랑한다는 말도

나보다 더 먼저 듣고

나보다 더 많이 듣던

내 동반자 핸드폰의 존재가 왜 그동안은 생각이 나지 않았을까?

 

핸드폰은 물에 빠져서 침수가 된 것인지

배터리가 다 떨어진 것인지

전원이 들어오질 않았다.

 


어느쪽이던, 하루에 수십여통씩 걸려오던 핸드폰에

다시 생명이 공급된다면 나의 부재를 책망하는

수십개의 문자와 메시지, 그리고 통화목록이

나를 채찍할 것 같아 두려웠다.

 

하지만 지금 상황 같아서는 핸드폰으로

뉴스라도 보고 이 무료함을 달래보고라도 싶은데,

핸드폰에게 다시 숨결을 넣어줄 방법은

방에는 보이지 않았다.

 

길상에게 물어볼 수도 없는 상황에서

우선은 핸드폰을 주머니에 꾸겨넣고

뭐라도 할 요량으로 싱크대로 다가간다.

 


벌써 아침 점심참을 지나 이제 곧

오늘의 태양이 수명을 다할 때가 되어가는

상황이니, 요깃거리를 준비해야할 것인데...

 

길상의 부지런함에 힘입어 식사 걱정이 없었는데

이번엔 내가 해야 할 상황이라는 의무감으로

싱크대 이 곳 저 곳을 열어본다.

 


쌀은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길상이 만든 것인지, 아니면 어디서 사온 것인지

길쭉하니 애호박처럼 생긴 항아리 안에

하얀 쌀이 그득히 들어 있었다.

 

하지만 찬을 삼을 만한 것이 없었다.

 

길상이 밭이 있다는 이야기를 꺼낸 것이 생각나

뒤켠으로 돌아가 보았다.

 

줄기와 잎으로는 당근과 생강도 구분 못하는 나이지만,

이것 저것 채소를 뽑아내 담고

한 켠에 놓인 장항아리에서 장을 퍼담아

서투른 솜씨로 상을 보았다.

 



그런대로 먹을 수는 있을 것 같은 상을 보고

쭈뼛거리는 걸음으로 길상의 등으로 다가가

등에 말을 건다.

 


“......길상씨...식사를.....”

 


길상의 등은 말이 없었고,

이 추운날 하루 종일 칼바람에 에위어

작아진 것 같은 길상의 등판은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다시 용기를 내어 어색한 손을 뻗쳐

길상의 어깨를 짚으며 말을 걸었다.

 


길상씨....이러고 계시면... 건강 상할 거에요...

식사를 준비했으니....뭐라도 좀 드시는 것이...“

 


천년 주목이 잠에서 깨는 것처럼

천천히 길상의 얼굴이 나를 향했다.

 


슬픔에 찬 얼굴일까?

울고 있었을까?

화난 얼굴일까?

 


하루 종일 내 머릿속에 맴돌던 궁금증과 달리

길상의 얼굴은 평온해 보였다.

 


모든 희노애락을 달관한 부처의 미소는 아니더라도,

오늘 아침에 그런 일을 겪은 사람의 표정으로는

아니 그 무엇도 읽을 수 없는 표정이었다.

 

다만, 길상의 큰 눈 깊은 곳에서

잠깐의 빛이 반짝이다 사라진 것처럼 보인건

내 착각일까?

 


“......선생님....죄송해요. 제가 너무 오래 있었죠?

시장하실 텐데 들어가시죠...제가 상 보아드릴게요.“

 

아니...제가 허락도 받지 않고...부엌을 좀 썼어요....

준비는 해놨으니 들어가서....한술 뜨시죠....“

 

고맙습니다. 선생님 그럼 들어가시죠.”


 

말 없는 식사를 마치고,

생기를 찾은 것일까?

길상이 내온 찻잔을 들고

마주하였다.

 


길상이 내게 무슨 할 말이 있는 것일까?

나는 가라 앉은 분위기에 휩쓸려서인지

길상의 무표정이 모든 질문을 거부해서인지

아무런 말도 못하고 손에 든 뜨거운 찻잔의

온기만 느끼고 있을 뿐이였다.

그때였다.

길상의 입이 긴 한숨을 내쉬고

그 멋진 눈에 다시금 색이 돌아온 것은

 


“...후우...죄송합니다. 선생님...

오늘 일은 여러 가지로 궁금하신게 많으실 거에요.”

 

...아니....,..궁금하다기보다는...... 그래요.”

 

“....선생님, 술을 잡수십니까?”

 


갑작스런 길상의 질문에 나는 멈칫할 수 밖에 없었다.

술이라?

어제도 길상이 동네 사람들과 술을 마실 때

나도 몇 잔을 얻어마셨던 것은 기억 못하는 것인가?

 


그러고보니 회가 동했다.

하루가 멀다하고, 술을 마시던 내게 들려온

술이라는 단어는 길상을 만난 이후로

처음으로 내가 진짜로 원하는 무엇가라는

갈망을 불러왔다.

어제는 분위기에 휩쓸려 동네 사람이 권하는 대로

받아 마시기만 했지만, 길상과 단둘이

조용히 술잔을 기울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반가웠다.

 


반갑다? 길상과 단 둘이 하는 술자리가?

무슨 생각이지?

나 스스로에게 의문이 들었다.

 

왜 반갑지?

길상이 내 친구인것도 아니고

연인은 더더욱 아닐지언데,

왜 반가운거지?

 


내 얼굴을 보던 길상은 내 표정에서

허락의 뜻을 읽었는지,

가타부타 말도 없이 어디선가

금새 술상을 봐왔다.


아까 내가 상을 차릴땐 보이지 않던 것들이

어디서 나온 것일까?

 

화려한 장식이 없는 소박한 나주반 밥상위에

작고 하얀 도자기로 된 주전자와 술잔이 두 개

그리고 역시 하얀 접시 위에 올려진

얇게 저며진 검붉은 둥근 덩어리가 보였다.

 


스승님께서 좋아하시는 소주하고, 이건 어란이란 것이에요. 들어보세요.”

 


그렇게 말하고는 길상은 내 잔과 자신의 잔을 채우고는

자신의 잔을 들어 올리며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건배를 하자는 것일까?

무엇을 위하여, 무슨 좋은 일이 있다고

건배를 해야하는 것일까?

 

하지만 사회생활에 익숙해져 있는 나의 손은

어느새 잔을 들어 길상의 얼굴을 보며

잔을 부딪혀 갔다.

 


“...선생님...오늘은 제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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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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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pa…
  • 작성일
잔잔한 맛에 봐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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