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과외 선생님 -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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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형이 펜을 들고는 조용히 숙제를 체크하고 있었다.
"얼씨구. 여기 식이 또 틀렸네. 그러니 답이 안나오지. 이 유형은 모의고사에 자주 나오는 단골 유형이라고 저번 수업 때 별표 까지 하면서 두 번이나 강조했던 것 같은데. 도현준 정신 안차리지."
선글라스 때문에 어두워서 내 풀이가 잘 보이지도 않을텐데, 하나하나 체크를 하며 풀이 점검을 하고 있었다.
근데 수학 풀이가 맞았는지 틀렸는지보다
지금 내겐 형의 안부가 더 중요했고 형의 눈치를 보며 눈 옆에 멍이든 부분으로 자꾸만 초점이 옮겨졌다.
눈이 참 예쁜 사람인데
누구한테 맞기라도 한걸까.
도대체 어쩌다가 저렇게 크게 멍이 든걸까.
형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는데
나도 모르게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차오르더니
결국 조용히 눈물 한 방울을 흘려버리고 말았다.
난 눈물을 훔치려 기침을 하는 척 손으로 재빨리 닦아내는데
순간 내가 눈물 흘리는 걸 형이 봤는지
“야...도현준, 너 왜 우냐?”
형이 왜 우냐며 내 이름을 부르는 순간 긴장이 풀리면서 아까부터 꾹 참고 있던 눈물을 쏟아내고야 말았다.
“야....도현준. 미친. 얘가 갑자기 왜이래? 오늘따라 좀 많이 오바한다 너 (휴지를 떼어 나에게 건네곤)”
5분 정도 시간이 지났을까.
형은 내가 울고 있는 동안 옆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갑자기 울고 있는 나를 형이 어떻게 생각했을까?
이렇게 울고 있는 나를 형이 어떤 모습으로 바라보았을까?
사실 이런 생각조차 할 겨를도 없었다.
그렇게 난 어느 정도 마음을 진정을 시키곤 아까 형이 쥐어준 휴지를 한데 모아 코를 세차게 풀고는 거친 호흡을 진정시켰다.
그렇게 다시 찾아온 방 안의 고요함.
그 고요함의 적막 속에 우리 두 사람의 심장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오는 듯 했다.
그리곤 형의 왼손이 내 오른손 위에 살포시 올려지더니
“이제 다 울었냐...?”
“.....(고개를 끄덕이며)”
고개를 끄덕임과 동시에 포개었던 내 손을 그대로 위에서 감싸쥐었다.
그리곤 다시 찾아온 정적.
“현준아...오늘 형 부탁하나만 해도 되냐?”
“네? 네 말씀하세요. (호흡을 가다듬으며)”
“나... 오늘 하루만 너네 집에서 자고 가도 될까?”
“형. 집은 어쩌구요?”
“그냥 오늘 하루만. 딱 하루만 너네 집에서 자도 될까?”
형은 내가 말한 질문에는 대답을 하지 않고 자도 되냐는 물음만 반복해서 하고 있었다.
“저는 괜찮은데.. 형 여기서 자고 가도 정말 괜찮은 거 맞아요..?(걱정되는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그럼 여기서 편하게 자고 가요 형.”
그렇게 편하게 자고 가란 말을 끝내자마자 형이 내게 살짝 기대며 내 오른쪽 어깨 위에 머리를 살포시 얹었다.
"미안한데..이러고 잠시만.. 잠시만 좀 있자(내 어깨에 머리를 기댄채로)"
갑작스러운 형의 행동에 조금은 당황스러웠지만
두근거리는 이 내 마음이 갑작스럽게 다가온 형을 밀어낼 마음보다 컸던 탓 이였을까.
내 어깨 위에 잠시 머리를 대는 것 만으로도
위로를 받을 수 있다면 잠시만이 아닌 한 시간, 그것도 아니,
하루라도 내 어깨를 빌려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귓가에서 나는 형의 작은 숨소리와 옅게 퍼져오는 형의 체취를 오롯이 느끼다가
“형”
“응”
‘똑똑’
혹시 무슨 큰 일이라도 있는 건 아닌지 조심스러운 질문을 건네려던 찰나에 방문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갑자기 울리는 노크소리에
내게 기대있던 형이 재빨리 다시 일어나 자세를 잡고
과외 수업에 열중하는 척을 했다.
“성태쌤, 잠시 들어가도 될까요?”
“네 어머니"
‘끼익’
문이 열리며
“과일 좀 들고 하시라고....(성태 쌤을 보고는) 어머..선생님 근데 방 안에서 갑자기 왠 선글라스를.....”
“아....엄마!!! (다급한 목소리로) 성태쌤이 저번 주에 라식 수술을 해서. 당분간 며칠은 써야 된대”
순간 나도 모르게 거짓말을 해버렸다. 그것도 아주 자연스럽게.
“아. 그러셨구나. (과일을 책상 위에 내려두곤) 어머! 그럼 수술 때문에 저번에 못 오신거였어요? 그럼 사실대로 말씀을 하시지... 수업하시면서 이거 과일 좀 들면서 해요~~~현준이가 쌤 딸기 잘 드신다고 하셔서. 그럼”
"네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돌아서는 엄마를 향해
“아!! 엄마!”
“응??”
혹시나 아까 운 탓에 붉어진 눈을 들키기라도 할까 엄마를 불러놓고는
재빠르게 엄마로부터 고개를 돌리며 책상을 주시한 채
“(계속 앞을 주시하며) 오늘....있잖아”
“어.. 오늘 뭐!?”
“오늘 성태쌤 우리 집에서 하루만 자고 가도 되지?”
“응? 자고 간다는게 무슨 말이야?”
“아 그게.. 쌤 집에 부모님 친구 분들이 몇 분 오셨는데 오늘 쌤 집에서 모두 자고 가신다고, 방금 전에 통화왔는데 찜질방에서 오늘 하루만 자고 오라면서.. 전화가 왔었거든.”
한번 시작된 거짓말은 또 다른 거짓말을 낳고 있었다.
“아...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어어... 그렇게 해 (성태쌤을 보고는) 그렇게 해요 쌤~ 불편하더라도 찜질방 보단 여기가 낫지 뭐~~오늘 하루 편하게 쉬다 가세요~~~ (뭔가 번뜩이는 표정을 짓더니 날 한번 쳐다보며) 아 맞다! 그럼 그동안 밀린 수업 오늘 다 보충 해주시면 되겠다 그쵸 쌤.”
“아..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가...감사합니다”
그렇게 엄마가 방을 나가곤
“도현준, 거짓말 참 잘하네"
“이렇게라도 둘러대야 엄마가 이상하게 생각 안 하죠...”
“(날 지그시 쳐다보며) 뭘 이상하게 생각하는데?”
“.....(당황한 듯) 아; 아니에요. 수업이나 해요. (포크로 딸기를 하나 찍어선) 아! 이거 딸기부터 좀 먼저 먹어요.”
“아~~~~(갑자기 입을 벌리는 형)”
“네? (당황하며) 손 없으세요..? 갑자기 왜 이러세요...”
“그냥 좀 먹여주면 안되냐? 아~~~(계속 입을 벌린채로)”
난 못 이기는 척 벌려진 입 속으로 딸기를 넣어주었다.
"딸기 진짜 달다.”
함께 딸기를 먹으며 수업을 진행 하고 있는데
‘똑똑’
한번 더 노크소리가 들리곤
문이 빼꼼 열리며
“어머~자꾸 죄송해요 쌤(성태샘을 한번 보더니 날 보고는) 엄마 아빠랑 저녁 모임 있어서 나갔다 온다~~ 늦을지도 몰라서 쌤이랑 먼저 저녁 챙겨먹어. 이걸로 뭐 시켜 먹던가 (3만원을 건네며)”
“알았어~(3만원을 받으며)”
“(돈을 건네다 내 얼굴을 봤는지) 근데 현준이 너 눈이 왜 이렇게 빨개..? 긁었니...? 아니면.. 혹시 울었니?”
“어??? 내가 울긴 왜 울어. 이거 아까 간지러워서 좀 세게 비벼서 그런가봐...(일부로 눈을 또 비비며)”
"근데 현준아 ..(나와보라는 눈치를 주는데) "
엄마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데
거실에서 아빠 목소리가 급하게 들려왔다.
"여보 뭐해! 늦겠어. 지금 나가야 돼!"
"네 알았어요~~~~ (목소리를 높이며) 현준인 눈 비비지 말구.. 지금 화장실 가서 얼른 손 부터 씻고 와라.”
“알았어"
“아무튼 저녁 잘 챙겨 먹고 (급히 방문을 나가면서 뭔가 이해할 수 없단 표정으로 고개를 갸우뚱하며) 그럼 남은 시간 잘 부탁드려요. 쌤~~”
그렇게 엄마와 아빠가 집을 나간 후
우리 집엔 형과 나 둘 뿐이었다.
시간이 흘러 과외수업이 모두 끝이 났고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켜는데 마침 배가 고팠는지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형 우리 저녁 뭐 먹을래요?”
“현준아, 형 이거 (선글라스를 만지며) 잠깐 벗어도 되냐..”
“아.. 벗으세요~~~ 전 괜찮으니까”
그렇게 형이 선글라스를 벗는데 시퍼런 멍이 형의 눈가에 물들어 있었다.
난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애꿎은 손만 만지작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왜 안 물어봐?”
“네...?”
“누가 그랬는지, 어떻게 이렇게 됐는지 안 궁금해...?”
“....(살짝 당황하며). 안 그래도 아까 형에게 무슨 일 있는거 아니냐고 물어보려고 했었는데..근데 형이 원하지 않으면 이야기 하지 않아도 돼요”
“(잠시 아무 말이 없더니) 밥이나 먹자. 너 배고프겠다.”
“형 뭐 먹고 싶어요..? (책상을 열어 3만원을 더 꺼내곤) 여기 제 용돈 3만원이랑 합쳐서 6만원 있으니까 우리 진짜 맛있는거 시켜 먹어요”
형은 뭐하러 돈을 더 쓰냐며 어머니가 주신거에서 아무거나 하나만 시키라고 말을 했지만
난 맛있는 음식이라도 가득 먹여주고 싶어서 그랬을까.
치킨 피자세트, 그리고 족발 보쌈 대짜 세트까지 시켰다.
30분 후
“아니...하나만 시키라니까 뭘 또 이렇게 많이 시켰대.”
“형 저번에 족발 좋아한다 그랬잖아요. 그리고 치킨이랑 피자 싫어하는 사람은 거의 없으니까!! 헤헤”
“다 먹을수나 있겠냐 이거? 얼른 먹자. 막국수 불겠다. 이거부터 얼른 먹어 (내 쪽으로 막국수를 들이밀며)”
그렇게 음식을 입에다가 가져가는데
정말 허기가 져서 그랬던 걸까.
아니면 하고 싶은 말이 너무나 많았지만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라
살짝 어색함이 감도는 그 기운이 싫었던 걸까.
우린 아무 말도 없이 음식만 그저 빠르게 흡입하기 시작했다.
아무런 말도 없이. 그저 음식만.
약 30분간 배불리 먹고는 남은 음식을 대충 정리하고 나서야 그제서야 보이는 형의 불편한 옷차림.
“헐.. 내 정신 좀 봐. 제가 형 갈아입을 옷도 안주고. 잠시만요 (잠시 내 방에 다녀와서는) 형 이거 제 옷 인데, 얼추 맞을꺼에요. 얼른 편한 옷으로 갈아입어요. (편한 옷과 츄리닝을 건네며)”
“(내 옷을 받고는) 응 땡큐.”
그렇게 형이 옷을 갈아입고 쇼파에 잠깐 앉아있는데 자꾸만 시퍼렇게 멍이 든 눈이 신경쓰여 형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럴 땐 도대체 무슨 말을 해야하는건지
바보같이 아무런 생각이 나질 않았다.
“혀...형. 배부르시죠. 우리 아파트 앞에 공원 길 예쁜데, 소화도 시킬 겸 잠깐 밖에 나가서 산책이라도 할래요?”
“그래~”
그렇게 편한 옷으로 모두 갈아입고선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공원 산책길로 향했다.
밖에 나와 형과 함께 시원한 공기를 쐬니 마음이 한 결 편해짐을 느꼈다.
선선하게 불어오는 가을바람과, 걸음을 뗄 떼마다 밟히는 낙엽소리는 내 두근거리는 심장소리를 감추기에 충분했다.
여덟시가 지난 시각.
밖이 어두컴컴한데도 형은 선글라스를 낀 채 조용히 걷고 있었다.
날이 어두워져서 그런지 인적이 드문 공원 산책길 이었지만, 가끔 지나가는 사람들이 이 밤에 선글라스를 낀 성태 형을 지나갈 때 마다 한번 씩 힐끔 쳐다보곤 했다.
오밤중에 선글라스는 누가 봐도 아이러니한 모습이긴 했으니까.
옆에 있는 나도 정말이지 궁금해 미칠 노릇이였지만, 정말 무슨 일인지, 도대체 누가 그랬는지 형을 추궁하고 싶진 않았다.
무엇보다 형이 나에게 편하게 먼저 털어놓기를 바라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본인의 가장 큰 고민을 털어놓는 것만큼 무게를 함께 나누고 견디는 일은 없을 테니까.
우린 아까 밥을 먹었을 때처럼 밖을 나와서도 아무 말 없이 그저 걷기만 했다.
그렇게 5분 정도 나란히 걸었을까.
먼저 침묵을 깬 건 형이었다.
“너 만났을 때 엄청 더운 여름 날 이였는데, 벌써 가을이네”
“형 우리 미술학원에서 처음 만났었던 날, 그 날도 엄청 더웠던 여름 날 이었던 거 아시죠..”
“아 그래.. 그 때도 무지 더운 날 이었지 아마..”
“학원 앞에서 들어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갈팡질팡 하던 형 기억나요.(괜스레 웃으며)”
“넌 기억력도 좋다. (두 팔을 벌리며) 아 바람부니 시원하고 좋네”
“그러게요. 정말 끝나지 않을 것 같은 폭염이었는데, 언제부턴가 바람이 정말 선선해졌어요. 그리고 전 (낙엽을 일부로 밟으며) 이 소리가 정말 좋아요”
'바스락 바스락'
“(웃으며) 니가 얘냐?”
“쳇...”
그렇게 형을 등 뒤로 하고 앞으로 조금 더 나아가 낙엽을 즈려 밟으며
“들어보세요~ 낙엽 밟는 소리가 얼마나 좋은데요”
난 혼자 웃으며 낙엽을 일부로 소리가 나도록 밟고 있었다.
‘바스락’ ‘바스락’
그렇게 혼자 웃으며 바보처럼 낙엽 밟는 일에 열중하고 있는데
"형도 와서 좀 밟아 보세요. 이게 하다 보면 진짜 재밌..."
갑자기 누군가가 뒤에서 강제로 날 덮치기라도 하 듯 확 끌어안았다.
그것도 아주 세게.
내가 정말 좋아하는 형의 체취가 오롯이 전해져 와서 그랬을까.
내 등과 형의 가슴이 맞닿은 그 순간,
미친 듯이 내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다음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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