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과외 선생님 -1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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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성태형이 수트 차림을 하고선 1층 로비 옆 기둥에 가볍게 기댄채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설마 가게에서 나와서 우리 회사로 온 후, 그 때부터 계속 기다린 걸까.
"형!! (형에게 가까이 다가가서는) 정말 죄송해요. 식당에서 많이 기다렸죠. 혹시 식당 나오고 나서 여기 온 다음 계속 기다리신거에요??"
"그냥 문자도 못 읽고 연락도 안 오는거 보니까 왠지 회사에 큰 일이 생겨서 못 왔을 거란 생각 들어서.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이 쪽으로 와지더라구~(머리를 긁적이며) 근데 그게 진짜였나보구나~"
"아.. (시간을 다시 한번 보더니, 약속시간으로부터 두 시간 정도 흐른 걸 확인하곤) 시간이 벌써 이렇게..정말 죄송해요. 잠시 정신이 나갔었나봐요 형한테 연락도 못 드리고....진짜 죄송해요."
"아니야~~"
형의 수트 차림을 위에서 아래로 한 번 훑으며
"근데 형 어디 다녀오는 길이에요? 연차라면서 왠 정장이에요~"
"(웃으며) 저번에 9년 만에 처음 만났는데 얼굴도 엉망에, 머리도 엉망에.... 생각해보니까 무지 부끄럽더라..그냥 우리 오늘 다시 처음 만난 걸로 하면 안되냐? (머리를 긁적이며)"
"에이..그게 뭐가 중요하다고..형도 참;"
그게 뭐가 중요하나는 말을 입 밖으로 뱉었지만 사실 형의 수트 입은 모습을 처음 봐서 그랬을까. 고등학교 때 우리 학원에 조소 모델로 왔던 형이 이제는 진짜 모델 처럼 느껴졌다.
"현준아"
"네 형"
"나 근데 지금 너무 배고프다. 아까부터 배에서 자꾸 꼬르륵 거려. (환하게 웃으며 배를 만지는)"
"아 내 정신 좀 봐. 근데 지금 이 시간까지 아무것도 안 먹고 기다렸어요? 간단한 거라도 좀 챙겨드시지..."
"너도 안 먹었을거 아냐~ 그럼 됐어."
"(시계를 한 번 보고는) 지금 시간이 많이 늦어서; 혹시 괜찮으시면 우리 회사 근처에 24시간 설렁탕 국밥 맛집 있는데 거기로 갈래요? 제가 소고기는 나중에 사드릴게요 형"
그렇게 함께 들어선 국밥집.
들어가자마자 설렁탕 두 개요~ 하고 외치고는 자리에 앉은지 2분도 채 안된 것 같은데 설렁탕 2개가 곧바로 나와선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소리와 함께 테이블 위에 놓여졌다.
뚝배기 위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설렁탕 안으로 숟가락을 집어 넣어 국물 한 숟가락을 뜨고는
"마침 추웠는데 뜨끈한 국물 딱 좋다!! 내가 좋아하는 소면도 많이 들었어~(웃으며) 얼른 먹자 너도 배고플텐데!"
"형 많이 배고팠죠? 전이나 순대 같은거 따로 더 주문할까요 형?"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이걸로 충분해"
"많이 들어요. 오늘 일은 정말 제가 뭐라 드릴 말씀이 없어요. 사실 저.. 사고 쳤거든요..(울상을 지으며)"
"어? (화들짝 놀라며) 무슨 사고를 쳤는데;;"
"제품 디자인 이미 다 인쇄까지 끝난건데, 그게 하필 오표기한 상태로 공장에 보내졌었더라구요.. 그래서 공장에 당장 공정 중지 요청 들어가고...디자인 수정작업하고 하느라 멘붕이 와서.... 형이랑 약속 한 것도 까먹어버리고.. 그래서 연락도 못 드리고 (울상을 지으며) 진짜 죄송해요.."
"그놈의 죄송하다 소리는 언제까지 할래~ 그 사과! 여기까지만 하자. 그래도 일은 잘 마무리 된거지?"
"네.."
"그럼 된거지 뭐~~당장 힘들고 어려워도, 다 지나가더라"
그렇게 서로 마주 보며 설렁탕을 먹고 있는 도중에
"현준아"
형이 나를 나지막이 불렀다.
"네 형"
"난 우리가 정말 다시 못 만날 줄 알았는데"
"저도요. 그래도 이렇게 만나니까 너무 좋아요. 다시 고등학생으로 돌아간 느낌이랄까?"
"현준아"
"네?"
"넌... 그러니까 넌..."
"네"
"아직도 날 좋아하냐?"
설렁탕을 먹던 숟가락이 잠시 멈춰졌다.
형이 아직도 날 좋아하냐고 묻는데
'그럼요! 형이 과외 쌤 할 때 제가 얼마나 그 과외수업 시간 만을 손꼽아 기다린 줄 아세요. 제가 얼마나 형을 좋아했다구요. 근데 형이랑 헤어지고 나서 형을 얼마나 기다리고 또 기다렸는지, 시간이 흘러도 형과 연락이 되지 않아서 얼마나 답답했는지 아마 형은 잘 모를꺼에요. 형을 한 시도 잊지 않고, 보고 싶어했고, 얼마나 기다려왔는지를요'
라는 말이 왜 바로 입 밖으로 나오질 못하는걸까.
무엇이 걸리는거지?
왜 형에게 즉답을 하지 못하는거야.
분명 아직도 성태형을 좋아하고 있잖아. 그의 외로움을, 그의 아픔을 함께하고 싶고 위로해주고 싶잖아. 근데 왜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거야. 바보같이.
아직도 날 좋아하냐는 갑작스런 질문에 마치 실어증이라도 걸린 사람 처럼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다가
"너무 갑작스럽게 물으시니까..(멋쩍은 웃음을 보이다) 콜록콜록 (괜히 기침을 하곤)"
"(미소를 보이곤) 우리가 안 본지 9년이나 지났으니.. 시간이 오래되긴 했구나..(말 끝을 흐리며) 내 질문이 좀 이상했다. 미안해 (웃으며)"
"아..아니에요 형"
"그럼 질문을 좀 바꿔서, 혹시 지금 만나는 사람은 있어?"
형의 계속되는 질문은 최종 압박 면접과도 같은 무게로 날 짓눌렀다.
내가 또 한 번 아무 말도 못하고 있자
"있구나."
"(흠칫하며) 근데 사....귀는건 아니고..."
"사귀는건 아니고!? (궁금한 표정으로 날 쳐다보며)"
"그냥 밥 먹고.. 차 마시고... 그러는 사이에요"
"그럼.. 잠도 잤어..?"
"네? 콜록 콜록 (내가 지금 형 질문을 잘못 들었나 싶어 괜히 헛기침이 나와서는)"
잠도 잤냐는 질문을 너무나도 태연하게 물어보는데 이전에 내가 알던 성태형에게서 괴리감을 느끼고 있었다.
"형.."
"응?"
"형은 군대 생활 하면서, 제대 후 대학교 다니면서, 그리고 졸업하고 지금까지 저 안 보고 싶으셨어요?"
나도 형에게 하고 싶은 질문을 던졌다.
"보고싶었지! 찾고도 싶었고! 근데 번호를 모르니 연락할 방법이 없더라구..그래서 제대하고 나서 바로 너네 집에 한번 찾아간 적 있었는데 다른 사람이 나오더니 그런 사람 잘 모르겠고 얼마전에 이사왔다고 하더라고~"
"그랬구나.. 우리 집에도 왔었구나.."
"그래도 너무 늦지 않게 만나서 다행이야. 혹시나 너무 나이 들어 늙은 모습으로 마주하고 싶진 않았거든"
"(웃으며)"
"그럼 다시 물어서 미안한데, 지금 만나는 사람 역시 남자..인거지?"
"(주저주저하다) 네.. 형은 혹시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 있으세요?"
"없어~~~"
"형 선 자리 많이 들어오지 않아요? 직장도 좋고 형 외모에 인품도 좋고."
"그럴 것 같지?? 근데 빛 보다 빠른게 소문이라고. 우리집 형편이랑 아버지 소문을 모르는 사람이 없더라. 겉으로 보기엔 어려운 환경에서 그래도 잘 컸네 하면서도 속으로는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고 아마 생각하겠지."
"형 그건...(잠시 할 말을 잃어선)"
"설렁탕 다 식겠다. 얼른 먹자. 이 집 깍두기 잘하네~ (깍두기를 내쪽으로 밀며) "
그렇게 우린 아무 말 없이 다시 숟가락을 들기 시작했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밥을 다 먹고나니 시간이 저녁 10시 30분을 넘어가고 있었다.
재빨리 계산을 하곤 형이 뒤 따라 나오는데
"배도 채웠고, 날도 추운데 따뜻한 커피라도 한 잔 하실래요 형?"
"아니야; 너 야근해서 피곤할텐데 너도 들어가서 얼른 쉬어야지. 오늘은 이만 여기서 헤어지자"
"오늘 연차면 내일은 출근하시는거죠?"
"어!"
"지하철 타고 가세요? 아님 버스? 아니면 택시..?"
"지하철 타고~"
"아 전....(택시라고 말하려다 나 혼자만 너무 편하게 가는 건가 싶어서) 버....버스요. 그럼 여기서..헤어질까요...?"
"그러자~~~"
"형 그리고 오늘 마카롱이랑 샌드위치, 그리고 빵 정말 맛있게 감사히 잘 먹었어요."
"다음에 더 맛있는 걸로 사줄게"
"그럼 형 들어가요~~~ (손을 흔들며)"
"(형도 손을 흔들며 나에게 인사를 한다)"
그렇게 형에게서 뒤돌아
버스 정류장 쪽으로 걸어가려는데
한 15초 정도 앞으로 걸어갔을까.
"도 현 준!"
형이 날 큰 목소리로 불러세웠다.
고개를 돌려보니 형이 내 쪽으로 다가오지 않고 조금은 먼 곳에서 그대로 멈춰선 채 날 쳐다보고 있었다.
"네?? (조금 큰 목소리로 대답하며)"
현란하게 반짝거리는 네온사인 불빛아래 도로 에서 울리는 자동차의 클락션 소리까지 우리 주변은 반짝이는 불빛과 온갖 소음으로 가득했다.
우리 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잠시 세상이 멈춰선 것 처럼
서로의 눈을 마주치고,
잠시동안 그렇게 서로를 계속해서 바라보았다.
우리가 제자리에 서서 마주본지 10초 정도 시간이 흘렀을까?
그런데 그 때
"형은 아직도 그대로야!!!!!!!!!"
도시의 소음을 뚫고 온 형의 외침이 내 귓가에 전해져 왔다.
"네????"
난 분명히 잘 들었지만.. 습관처럼 되물었다.
"난 아직도 그대로라고 임마! 나 간다"
그렇게 형이 수트 차림으로 아직도 그대로라는 말을 하고선 뒤돌아서 지하철 역 쪽으로 걸어가는데 아직도 그대로 라는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싶어서 역 방향으로 걸어가는 형을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그렇게 형을 계속 멍하니 바라보는데
내가 19살 때,
"나도 널 좋아하고, 너도 날 좋아하는데 군대를 다녀온 그 이후에도 우리가 이 감정 그대로면 사귀는걸로."
라고, 문득 형이 했던 말이 떠오르면서 갑자기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아직도 그대로..' '아직도 그대로..'
그리고 아직도 그대로 라는 말이 자꾸만 내 귓가에 맴돌기 시작했다.
성태 형이 아직도 날 좋아하는 감정이 그대로라니..
이건 말도 안되는데 라며 이성이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목적지를 잃은 사람처럼 제자리에 계속 멈춰선 채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데
지--------------잉
휴대폰 진동이 울렸다.
성태 형이 또 무슨 문자를 바로 했나 싶어서 휴대폰을 열어 보는데
[뭐해~어디야? 안 바쁘면 잠깐 볼 수 있어?]
문자를 보낸 사람은 성태형이 아닌 진우형이었다.
[야근해서 지금 회사 앞이에요..]
[아니 그놈의 회사는 무슨 이 시간까지 야근을 시켜 미친거 아냐? 밥은]
[먹었어요.]
[그럼 잠깐만 보면 안돼?]
[형 죄송한데 시간도 늦었고, 조금 피곤해서요..]
[나 지금 집에 들어가는 길인데 형 차 안에서 잠깐만 봐. 그리고 너한테 할 말 있어. 지금 회사 앞으로 잠깐 갈게. 거기 있어]
그렇게 10분 정도 기다렸을까.
검은색 소나타가 내 앞에 세워졌다.
창문이 지----------익 내려지더니
"타"
진우 형이었다.
난 조수석에 몸을 실었고
"밥 뭐 먹었어?"
"설렁탕 먹었어요"
"혼자?"
"네?"
"혼자 먹었냐고~~~"
"아..회사 사람들이랑..."
"너 또 왜 그러냐? 눈은 또 반쯤 풀려가지고... 많이 힘들었냐?"
"아니에요;; 근데 우리 어디가요?"
내가 어디가요? 라는 물음을 건네자마자 형이 갑자기 내 쪽으로 훅 다가오길래 반사적으로 몸을 뒤로 뺐다.
"야야!! 안 잡아 먹어 임마!! 어휴...(안전벨트를 당기곤) 벨트 하라고!!!!"
"아....네...."
"나도 오늘은 열두시 전에 들어가봐야해. 근데 나도 마침 밖이였고, 너도 야근하느라 답답했을텐데, 이렇게 드라이브도 해주면서 너 집에도 태워다주고 완전 일석 이조 아니냐?"
"네. 고마워요 형"
그렇게 우린 근처에 있는 한강 공원으로 향했다.
한강물이 보이는 공원 앞에 주차를 시키곤 편의점에서 따뜻한 커피를 사와 형에게 건넸다.
"형 여기 커피요"
"오냐.... 저기 쭌아"
....
"쭌!!!! (다시 내 이름을 크게 부르는)"
진우 형과 함께 있는 이 순간에도 자꾸만 아직도 그대로라는 성태형의 마지막 외침이 내 귓가에 맴돌면서 메아리 처럼 반복해서 들려오고 있었다. 그런 까닭에 진우형에게 제대로 집중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네?"
"너 진짜 왜 이래!?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길래 그렇게 넋이 나가있어? 어? 저번부터. 무슨 일 있어?"
"아; 아니에요. 제가 오늘 회사에서 일 관련 큰 실수를 해서.. 그거 좀 처리하면서 집중하느라 몸이 피로해졌나봐요"
"너 진짜.. 많이 좋아하는구나"
"네?(놀라선)"
"그 사람. 9년만에 만났다던, 너가 저번에 말한 그 과외선생님."
형이 순간 성태형을 짚어서 말하길래.. 깜짝 놀랬다.
"그 때 카페에서 과외 이야기 나왔을 때 부터 변한 니 표정. 그리고 과외 선생님 만나고 나서 모텔로 왔을 때의 너 표정. 그때랑 지금 표정이 그 사람을 아주 좋아합니다 라고 써져 있어요~~ 좋아하는데 이걸 어떡해야 하나 하는 표정 말야. (커피를 따며) 연애 한 두번 하냐?? 표정만 보면 딱 알지. 게다가 너 너무 티나. 그것도 아주 확!!"
"..죄송해요 형.."
"그래서 이제 형이랑 안 만날꺼냐?(커피를 마시곤)"
난 아무말도 하지 못한 채, 차창 너머로 흐르는 한강만 바라보고 있었다.
"(한숨을 한 번 깊게 내 쉬고는) 날 좋아하지도 않고, 게다가 난 유부남이고.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나 정말 최악의 연애 상대네. (웃으며)"
"아..아니에요 형...."
"저번에 모텔에서 너 우는거 지켜보면서 형이 많이 생각해봤는데, 있잖아 우리 말야. 아무래도 여기까지만 만나는 게 맞는거 같아서."
"네? (순간 놀래서) 그게 무슨..."
"야 임마. 아무리 섹스가 좋다고 해도 맘이 딴 놈한테 가 있는데! 너라면 좋겠냐?? 뭐!! 유부남인 내가 할 말은 아니다만.. (말을 흐리며) 암튼 난 그거 싫다"
"(아무말도 하지 못한 채 커피를 마시며)"
"(형도 커피를 마시곤) 이거 근데 커피 맞지? (웃으며) 왜 커피에서 술 맛이 나는것 같냐? (커피 한 모금을 마시더니 기어에 손을 가져가 주차에서 후진으로 바꾸고는) 할 말도 다 했고, 이제 집으로 갑시다~~~~~~"
"벌써요...?"
"왜? 내가 차 안에서 자지라도 꺼내서 빨아달라고 할 줄 알았어?"
"아 형..(순간 당황해서는) 제 말은 그런게 아니라.."
"나도 오늘 열두시 전에는 들어가봐야 된다고 했잖아. 이 말 하려고 왔어. 이제 그만 만나자는 말. 그래도 우리가 만난게 반 년이나 됐는데 얼굴이라도 보고 말해야 안되겠냐? 왜!? 그 표정 뭔데!? 막상 그만 만나자고 하니까 나같은 TOP 이제는 못 만날꺼 같으니 아쉬워?"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아까부터 다 마신 커피 캔을 입으로 가져다가 계속해서 마시는 척을 하고 있었다.
"쭌, 우리 그래도 속궁합은 잘 맞았는데.. 그게 쪼오끔!? 아쉬운거라면 아쉬운거?? (웃으며 운전을 계속 하는 형)"
집으로 가는 길,
그동안 있었던 일들에 대해 이야기 하며 그렇게 20여분 정도 운전해서 가다보니 어느새 우리 집에 다 도착해버렸다.
"벌써 집에 다 왔네요. 고마워요 형."
"뭐~ 나도 마침 가는 길에 데려다 주는거라 어려운 것도 아냐~"
"할 말이 참 많을 것 같은데 막상 그만 만나자고 하시니까..입술이 잘 안 떨어져요.. 저한테 잘해 주셔서...정말 감사해요. 형"
"고맙다, 미안하다 그런 말 집어치우고 쿨하고 멋있게 좀 헤어지자! 어?"
"형 충분히 멋있는 사람이에요. 그리고 유부남인데 게이라는 죄책감 너무 안가지셨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그렇게 되고 싶어서 된게 아니잖아요.."
"어쭈, 마지막이라고 좋은 말 많이 해준다!? 근데 쭌"
"네?"
"나 뭐 하나만 물어봐도 되냐?"
"네 물어보세요~"
"그 선생님이 내 꺼보다 크냐?"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아 진짜!!! 형 이러실꺼에요??"
"아 누가 더 크냐고~~~~~~~ 크기 때문에 지면 내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클 것 같아서 그래"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형이 훨씬 더 굵고 커요! 됐죠?"
"와.... 그냥 물어만 본건데 그 선생님 자지는 언제 또 봤대???? 대박이다 너 진짜..."
"아... 그건...... (말을 얼버무리다) 옷 갈아입을 때 딱 한 번 본 적 있어요 그냥...(대충 둘러대곤)"
"아 그러셔~~~(웃으며) 암튼 내가 더 크다는거지? 이제야 맘이 좀 놓이네. 이지랄. (웃으며) 근데 너 안 내리냐?"
"갑니다 가요!! (벨트를 풀며)"
"다 큰 놈이 울지 말고 잘 해봐 쫌!!!"
그 때 갑자기 울리는 전화벨소리
"야야!! 와이프 와이프!! 아니 진짜 어디 몰래카메라라도 단거 아냐? 귀신같이 너랑 있을때 전화가 한 번씩은 꼭 온다. 아무튼 잘 들어가~~ 그리고 잘 살아라 쭌!! (나에게 잘 살라는 말을 하곤 바로 전화를 받고는) 어 자기야~ (나에게 묵언으로 손짓을 하며 잘가라고 흔드는 형) 아~ 집에 들어가는 길이지~~~ 지금 회사 후배 집에 좀 태워주느라~~이제 곧 들어갈거야~~어어~~~"
그렇게 난 차 문을 닫고 진우 형을 보냈다.
내가 성숙해진걸까. 만나고 헤어지는 것들에 대해 점점 무덤덤해져 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무 연고도 없이 어플을 통해 우연히 만나게 된 사람이었지만, 진우 형이라는 좋은 사람을 만난건 어쩌면 내게 행운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오늘 하루 24시간이
마치 2년 4개월인 것 처럼 많은 일들이 내게 벌어지고 있었다.
조금은 혼란스러웠지만
19살의 그 때
내가 좋다는 형의 문자를 받고
아무 답변 없이 이틀이나 기다리게 만들었던 일이 떠올랐다.
이제는 정말이지 형을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면 안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내가 혹시라도 게이가 아닌 형에게 동성을 사랑하는 족쇄를 채웠나 싶다가도 형이 아직도 날 좋아하는 마음이 그대로라고 고백하는 이 상황에서도 한번 더 형을 놓치면 이제는 평생 형을 보지 못할 것 같은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예전에 과외해주던 그냥 아는 동생.
가끔 연락하며 술 한잔 기울이는 동생.
성태형에게 있어서 그렇게 그냥 아는 동생으로만 남고 싶지 않았다.
집을 들어가기 전, 빨라지는 심장소리와 차오르는 숨 때문에 심호흡을 하듯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뱉었다.
그렇게 난 호흡을 진정시키고 휴대폰을 들어 11시 40분을 넘어가는 늦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성태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화음이 연결되는 순간,
왜 이렇게 미친 듯이 떨리는 건지.
혹시 전화를 안 받으면 이 늦은 시간에 전화를 한 이유에 대해서는 뭐라 문자를 보내야하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던 도중
"어~ 현준아. 이 시간에 무슨 일이야.."
형이 전화를 받아버렸다.
말을 해야하는데 호흡이 자꾸만 가빠져와서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었다.
"??? 현준아??? 혹시 통화 잘못 누른거 아니지? 형 한테 전화 하려고 건거 맞지??"
"네 형..(숨을 고르며)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어~~ 뭔데?"
"그러니까....... 저도....(주저하다) 저도 아직 그대로에요 형."
순간 통화 속에 정적과 침묵이 내려앉았다. 난 형이 무슨 말을 할까 싶어 초조해 하며 휴대폰을 든 채로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그렇게 올려다 본 겨울 하늘은 한 없이 고요하기만 했다.
(다음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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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18화네요.
이 소설은 20화가 최종 마지막회입니다. 이제 19화, 20화 이렇게 두 편 남았습니다.
제 소설을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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