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부야에서 만난 남자 -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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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횡단보도에 초록불이 켜지고 나서 한꺼번에 쏟아지는 인파에 잠시 멍을 때리다 정신을 부여잡고는 


‘그래.. 갈색 옷을 입고 있었어.’ 


난 급한 마음에 소매치기를 당한 그 사람이 한국사람 임을 확신하곤 뒤따라오는 그를 쳐다보며 한국말로 외쳤다.


“갈색 옷에 청바지요. 30대 일본 남자 같고, 머리는 생머리에 키는 175정도!(큰 목소리로 외치며)”


“헐!??? 하...한국 분이셨어요? (놀라는 표정으로 날 쳐다보며)”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손가락을 들어 시부야109건물 쪽으로 손가락을 가리키며) 저쪽으로 사라졌다구요!!! 빨리!!!!!!!“


그렇게 우리 둘은 범인을 쫓아 인파 사이를 헤집고 뛰기 시작했다.


“어!?? 저기 갈색 옷~~~~~”


갈색 옷을 입은 남자가 보이길리 급히 앞으로 뛰어가 그의 어깨를 붙잡는데 너무 급했던 나머지 바지는 미처 확인도 하지 못했나보다. 

 

가까이서 보니 바지도 청바지가 아닌 검은색 면바지를 입고 있었고 당연히 그 소매치기 범인은 아니였다. 


범인은 한 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닌 것처럼 몸과 발이 어찌나 재빠른지 우리 눈 앞에서 금방 자취를 감추었고 하필 날도 꽤나 어둑어둑 해지고 있어서 시야 또한 방해가 되고 있었다.


“(숨을 헐떡거리며) 저..저기... 지..지금 상황에 시부야 한복판에서 그 사람을 찾기는 어려울 것 같은데 일단 경...경찰에 신고부터 해야 될 것 같아요. 저쪽에 코반 (우리나라의 지구대, 파출소) 있거든요. 그리로 가서 일단 사고 분실 접수부터 해야 될 것 같습니다. 제가 보니까 아까 그쪽에게 뭐 물어본 그 여자랑 한 패 인거 같던데....아 그리고 지갑 안에 신용카드 있죠”    


“네....(넋이 나간 상태로 겨우 대답을 하고는)”


“일단 카드 사용 못하게 분실 접수부터 하시죠”



그런데 그 때 갑자기 내 휴대폰이 울리더니, 보이스 톡이 오고 있었다. 


은호였다.



“여, 여보세요?”


시부야 시내의 시끄러운 소음 속에서 받은 전화 탓에 은호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목소리 들려!? 난 네 목소리가 잘 안들리는데...”


“여보세요? 형!! 난 형 목소리 엄청 잘 들리는데?”


그러다 갑자기 통신이 원활해졌는지 선명하게 들리는 은호의 목소리. 


“어~~~어!!! 이제 잘 들린다~~~ ”


“형이 보내 준 사진 봤어!!! 뭐야 그 셀카는!! 사람들한테 좀 찍어달라고 하지. 근데 나도 시부야 가고싶어지네.” 


“그러게. 너도 같이 왔으면 참 좋았을텐데.. 다음엔 너 휴가 맞춰서 꼭 같이 오자! (내 앞에서 2m 정도 떨어져 갈색옷을 입은 사람을 찾는지 계속 고개를 좌우로 두리번두리번 거리고 있는 그 남자의 눈치를 살피고는) 근데, 은호야. 정말 미안한데 내가 지금 급한 일이 있어서 이따가 다시 전화나 톡 할게.”



은호와의 전화를 급히 끊고는 


그에게 다가가


“죄송해요. 갑자기 중요한 전화가 와서요.."


“아 아니에요. 아무래도 직접 찾는 건, 포기를 해야...겠..죠?”


“포기라뇨. 일단 신고부터 해야죠. 근데 가방 안에 뭐뭐 들었어요?”


“지갑에 돈이랑 신용카드.. 그리고 여권도 들어 있어요..”


“(놀란 표정으로) 네? 여권이요??? 아니 여권을 왜 가방에....(진정하며) 일단 경찰서로 가서... 신고부터 하시죠. 이쪽 경찰들도 소매치기나 분실 같은 거 많이 접수해봐서 어쩌면 도움을 받을 수도 있을지 모르니..(손가락을 가리키며) 저 쪽에 파출소 있거든요. 인상착의는 제가 직접 봤으니 제가 옆에서 이야기 해드릴게요”


그렇게 근처에 있는 파출소에 도착했는데

그런데 그가 문 앞에서 들어가지 않고 쭈뼛쭈뼛 거리고 있었다. 


“... 왜 그러세요? 혹시 화장실?? 화장실은 저쪽에 있는데...”


“아 다른게 아니라....”


“네??”


“정말 죄송한데.. 제가.....일본어를 하나도 할 줄 몰라서요...혹시 일본어 잘 하세요..?”


“(그를 넌지시 쳐다보고는) 일단 들어가시죠”


그렇게 내가 먼저 들어가자 그도 나를 따라서 들어왔다. 


들어가자마자 무슨 일이냐고 여쭤오는 경찰분에게


“스미마셍, 아노..칸코쿠진데스케도 시부야에키노마에데 카방토 카메라오 누스마레마시타. 나카니와 사이후토 파스포토가 아룬데스케레도모. 와스레모노토도케 데키마스카.”

(실례합니다. 한국인인데요. 시부야 역 앞에서 가방이랑 카메라를 도난당했습니다. 안에 지갑이랑 여권이 있는데요. 분실물 신고접수 가능할까요)


그렇게 도난신고 관련 이야기를 하자 이쪽으로 오라고 하더니 정확히 몇 시에 어디에서 잃어버렸는지 이야기를 나누곤 신청서 하나를 건네더니 자세한 경위를 써달라는 것이었다. 


난 그 남자에게 


“이거 도난 접수 하려면 그 쪽 신상이랑 경위 자세하게 다 적어야 하거든요.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근데 그 쪽.. 일본어... 엄청 잘하시네요.”


“성함이요. 성함. (그를 재촉하듯 펜을 종이에 탁탁 치며)”


“아;;(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죄송해요. 신승준입니다.”


“나이는요”


“서른다섯이요.”


헐... 생각했던 것 보다 나이가 조금 있네. 


그렇게 영문명으로된 이름과 나이, 휴대폰번호 등 기입에 필요한 정보들을 적고 있는데 


경찰분이 우릴 측은하게 보더니 신상정보만 적어서 주면 나머진 본인들이 적겠다며 자세하게 말을 해달라고 했다.


그래서 있는 그대로 하치코 동상 앞에서 있었던 일부터 두 명이 한 패거리로 의심된다는 내용과 함께 그들의 인상착의를 상세하게 알려주었다. 


그리곤 종이를 한번 더 나에게 건네더니 잃어버린 가방과 카메라를 그림으로 그려 달라고 요청했다.


그림을 그리기 어려우면 가방과 카메라에 대한 색깔과 브랜드 등 특색이 있는 건 모두 적어달라며 추가로 부탁하길래 그래서 그 신승준 이라는 남자와 함께 계속 이야기 하며 적을 수 있는 건 상세하게 모두 적었다. 


일단 분실 사고 접수를 마치고 접수 확인증을 우리에게 건네더니 분실물 접수가 들어오거나 주변에 순찰 돌면서 혹시나 해당 가방이나 카메라를 찾으면 바로 연락을 주겠다는 말을 건넸다. 


난 경찰에게 받은 접수 확인증을 그에게 건네며


“분실물 접수가 들어오거나, 주변에 순찰 돌면서 혹시라도 비슷한 가방이나 카메라를 찾으면 그 쪽 휴대폰으로 바로 연락을 준다고 하니까 휴대폰은 절대 꺼두지 말라고 하시네요”


“네.. (나에게 갑자기 고개를 숙이곤)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일본까지 와서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은혜는요. 찾지도 못했는데;;”


그런데 그가 갑자기 내게 휴대폰을 건네더니 


“저기,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그 쪽 성함이랑 연락처 좀 알 수 있을까요...”


“네;; 어려운 것도 아닌데요;;”


난 건네받은 휴대폰에 번호를 찍고는 그에게 다시 건네며 이름은 준우에요. 김준우. 


“아. 준우씨. (내게 고개를 숙이며) 다시 한 번 정말 감사드립니다. 오늘 준우씨 아니였으면 저 진짜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거에요.”


“서로 어려울 때 도우면 좋죠 뭐~ 쉽진 않겠지만 꼭 가방이랑 카메라 찾을 수 있길 바랄게요.”


그렇게 서로 인사를 하며 파출소를 나오는데 어느새 하늘은 캄캄해졌지만 시부야의 시내는 화려한 네온사인 불빛으로 밝게 뒤덮여 점점 더 번화가 다운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덧 시간은 밤 8시를 향해가고 있었다. 


“숙소가 어디세요. 전 신주쿠역 부근 호텔이라서요.”


“아.....(말끝을 흐리더니) 전 이 근처에요”


“근데 지갑도 없으신데 저녁은 어떻게 하시려구요...”


“아.. 숙소에 컵라면 있어요. (환하게 웃으며)”


“아 네. 알겠습니다. 물건 꼭 찾으셨으면 좋겠어요. (악수를 건네며) 그리고 정확한 건 아닌데 외국에서 갑자기 지갑이나 현금, 여권 같은거 분실했을 때 대사관 같은데서 도움 받을 수 있는 방법들이 있다고 들었거든요. (그나저나 돈이라도 빌려줘야되나 하는 생각에 잠시 뜸을 들이다) 그럼.. 조심히 들어가세요. (괜히 뻘쭘해서는, 악수를 건네며)”


“(악수를 받아주며) 정말 감사합니다. 준우씨. 나중에 이 은혜는 꼭 갚을게요.”


“그럼(인사를 하곤)”


그에게 인사를 하고 뒤돌아서 열 걸음 정도 걸어갔을까.


아까 그가 말한 컵라면 이란 단어가 자꾸만 귓가에 맴돌았다.


그리곤 발걸음을 멈춰 뒤를 돌아보는데


어깨가 축 늘어진 채로 무겁게 한 걸음 한 걸음을 천천히 내딛고 있었다. 


“그래.. 숙소에 따로 여비는 있겠지. 무슨 오늘 처음 본 사람한테 돈 까지 빌려줘.. 오바 그만하자. 김준우. 여기까지 도와준 것도 어디야. 그리고 나도 내일 일정도 있고 바쁘니까.”


그렇게 혼잣말을 하고 다시 역 방향으로 발걸음을 떼려고 하는데


입 밖으로 뱉어낸 말과는 다르게 내 마음은 그러하지 않았는지 마치 발바닥에 자석이 붙은 것처럼 내 발이 쉽게 떨어지질 않았다.


그리곤 반대로 몸을 돌이키자 바닥에서 이내 발이 떨어지더니 


뛰어가 그를 다시 붙잡았다.


“저기...........저기요...”


“(놀라며) 아 깜짝아..”


“다른게 아니라..”


“네..뭐 놓고 가신거라도....?”


“그게 아니라.. 괜찮으시면 저랑 저녁 같이 드실래요. 지금 이래저래 경황도 없으시고 입맛도 없으시겠지만 그래도.. 컵라면은 좀 아닌것 같아서요. 이럴 때 일수록 더 잘 챙겨 먹어야죠.  (그의 눈치를 살피며) 안 그래도 저녁시간 늦어져서 무지 배고프단 말이에요. 이거..그 쪽한테도 조금 책임 있는거 아시죠? (멋쩍은 미소를 보이며) 장난이구요. 그래서 지금 같이 가자고 오히려 제가 그 쪽 붙잡는거니까요. (멋쩍은 표정으로 그를 계속 쳐다보는데 그가 대답이 없자) 부디 거절은 안 하셨으면 좋겠는데...”



이런저런 일들로 오늘 고생 많았는데 같이 밥이냐 먹지 않겠냐 라고 간단히 말하면 될 껄.


왜 이렇게 불필요한 말들을 이리저리 장황하게 꺼내놓는건지...나도 참..



“제가 거절하면 어쩌시려구요..?”


“그럼 뭐.. 500엔 짜리 덮밥이나 먹어야죠(웃으며)”


“(그가 갑자기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결국 왼손에서 오백엔짜리 동전 하나를 보이며) 제가 지금 수중에 가진 게 이 오백 엔이 전부라 이 가격 선에서 해결할 수 있는거 아니면; 전 괜찮습니다.”


“아 형!! 제 말 잘 안 들었죠!! 이럴 때 일수록 더 잘 챙겨 드셔야 한다구요!!!”


나도 모르게 순간 그에게 형이란 말을 뱉어버렸다.  


그리곤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눈을 마주쳤는데 


계속 서 있기가 민망해서


난 형의 뒤쪽으로 걸어가

형의 쳐진 어깨 위로 두 손을 올려



“일단 가시죠! 거긴 혼자 가기도 좀 그렇단 말이에요.”



라며 그의 어깨를 잡은 채, 앞으로 내밀며 그의 발걸음을 도왔다. 



그러고보니 나도 예전에 일본으로 여행 왔을 때 경비용으로 봉투에 넣어두었던 3만엔을 잃어버린 적이 있었다.


그 때 나에겐 정말이지 너무나도 큰 돈이였던터라 잃어버리고 난 뒤 그 때부터 여행이란 여행은 하나도 집중할 수 없었고 속상해서 눈물까지 났었던 기억이 아련히 떠올랐다. 


그런데 이 형은 돈도 돈이지만 지갑에 여권에 비싸보이는 카메라까지.


게다가 그 카메라 안엔 소중한 사진들도 분명 많을것이며 도난 당한걸 찾을 수는 있는건지, 포기해야되는게 맞겠지 하며 근심과 걱정으로 한 가득일텐데.


내가 너무 밥 먹을 기분이 전혀 아닌 사람을 억지로 끌고 가는건 아닌지 이런 저런 생각들이 내 머릿속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그렇게 천천히 걷고 또 걷다 보니 어느새 가게 앞에 다다랐다. 




가게 앞에 도착하자 그가 고개를 들어 간판을 올려다 보고는 


“여긴...이자카야 술집 아닙니까?”


“저녁으로 야키니쿠 전문점이나 샤브샤브 먹으러 갈까도 했는데 왠지 많이 안 드실 것 같아서요. 그래서 이자카야로 왔습니다. (그의 눈치를 한번 더 살피며) 그리고, 자고로 술은 함께 마셔야죠. 그래서 제가 혼자 가기 좀 그렇다라고 했던 거구요.”


“아까 저한테 형이라고 하셨죠. 저보다 동생이신거 같은데 그 쪽에게 신세 지는거 더는 원치 않....”



“그러지 말고, 더운데 같이 맥주나 한 잔 합시다! 제발!!!!”



난 형의 말을 끊어내곤 그의 팔을 잡아 당겨 이자카야 안 쪽으로 그를 들이밀었다.



(다음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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