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부야에서 만난 남자 -1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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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호 시점]
현수 형과 첫 키스 하던 그 날, 모텔로 이동해 잠 까지 잔 이후로
동거는 준우 형과 하면서 동시에 현수 형과의 아슬아슬한 만남을 이어가는데 마치 어디쯤이 낭떠러지인지도 모른 채, 보이지 않는 벼랑 끝을 향해 조금씩 아주 조금씩 뒷걸음질 해서 걷고 있는 듯 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그런 불안감과 무서움보다도 날 더 힘들고 지치게 하는 건 다름 아닌 외로움 이었다.
준우 형은 날 참 편안하게 대해주는데도,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왜 그런지 모르게 점점 더 내가 외로워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이런 와중에도 바보같이 형에게 '우리 그만 헤어지자' 라는 말이 입밖으로 쉽게 떨어지질 않았다.
준우형과의 사이에 대해 깊게 고민하는 걸 아마 현수 형도 눈치 챘겠지!?
요즘 들어 더욱 더 적극적으로 나에게 호감을 보이면서, 브레이크도 없이 직진만 해서 들어오는 현수형이 부담스러울만도 한데도 이상하게 그게 싫지 않았다.
무엇보다 형은 매니저라는 이유로
혹은 나보다 윗사람이라는 이유로
내게 밥과 술을 자주 사주며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내 외로움을 달래주곤 했다.
이번엔 내가 사겠다고 해도, 형이 언제 계산을 했는지 계산을 하려고 하면 이미 계산을 저분이 했다는 가게 직원의 말이 늘상 되돌아오곤 했다.
그러던 어느날 현수형의 생일이라는 이유를 핑계로 조금은 무리해서 준우 형과 2년 가까이 연애 하면서 한번도 사준 적 없는 백화점 명품관에서 구입한 비싼 선물을 그에게 건네기도 했다.
준우형한테 선물한 것 중에 가장 비쌌던 건 아마도 작년 형의 생일날 사준 검정색 나이키 후드티. 그게 아마 제일 비싸게 주고 샀던 걸로 기억난다.
난 현수 형과 짝을 맞추고 싶은 마음에 똑같은 브랜드 매장에서 내가 입을 옷과 신발까지 함께 구매했다.
형에게 선물하고, 나에게도 주는 선물이라며 그때는 마냥 좋아서 어쩔 줄 몰랐는데 이번달 카드값 고지서에 350만원이 찍힌걸 보고 나서야 계획에도 없던 과소비를 했단 걸 뒤늦게 깨달았다.
그렇게 준우형과 동거를 하면서 한달에 한 번 꼭 내야만 하는 월세와 식비 50만원을 바로 내지 못하는 상황이 왔는데도, 이상하게 걱정이 되질 않았다.
그 50만원은 다음 월급날에 준다고 하면 되겠지..!? 라며 어렵지 않게 우선순위를 뒤로 미루는 날 보며, 처음으로 이상하면서도 묘한 감정이 들기 시작했다.
돈이 전부는 아니겠지만 돈을 조금만 더 들이면
조금 더 좋은 식당에서, 조금 더 좋은 호텔에서, 조금 더 좋은 브랜드 매장에서 옷을 사 입을 수 있다는 그런 생각.
그동안 너무 절약만 하고 살았던 걸까?
호감이 가는 사람을 위해 돈을 쓰는 데서 오는 그 쾌감이 왜 그렇게도 짜릿하던지.
이 감정을 뭐라고 표현해야 하는 거지. 말로는 도저히 설명을 하지 못할 것 같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현수형과의 만나는 횟수가 점점 늘어만 갔고, 집에 들어가는 귀가시간은 이전 보다 더 늦어지고 있었다.
한번은 준우형이 평일날 출근을 하고 우연히 현수형 쉬는날과 내 오프 휴무일이 겹치던 그 날, 과감하게 현수 형을 우리 집으로 불러서 잠자리를 가진 적도 있었다.
분명 지금 내가 하는 이 일들이 잘못된 행동이라는 걸 머리로는 이해하면서도 시간이 갈수록 내 본능과 감정들이 자꾸만 이성을 삼켜버리고 있었다.
몇 주 후, 준우형이 일본으로 출장을 간 당일.
백화점 매장 안.
반듯한 정장 차림으로 나에게 다가오는 현수형.
같이 살고 있는 준우 형이 오늘부터 금요일 까지 도쿄로 출장 간 사실에 대해서는 현수 형에게 미리 말을 해놓은 상태였다.
“은호야, 오늘 우리 퇴근하고 자주가는 종로 야외 포차에서 간단하게 술이나 한 잔 콜?”
“네 좋아요. 형”
“나 오늘 니가 내 생일 때 사준 톰 브라운 셔츠 입고 출근했지롱~~이따 퇴근할 때 보여줄게.”
퇴근 후 종로 3가
길가 야외 테이블 자리에 마주앉아 오늘 백화점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며 웃고 떠드는데 뭐가 그렇게 서로 재미 있는건지 사소한 이야기에도 깔깔 거리며 웃어댔다.
그러다 갑자기 형의 휴대폰이 울리더니
“하..미친 (한숨을 쉬며) 백화점 관리자 한테 전화왔다. 잠깐만”
그렇게 형이 전화를 받으러 잠깐 자리에서 일어서는데
그러고 보니 아까 준우형이랑 초저녁에 잠깐 보이스 톡을 하다가 무슨 급한 일이 있는지 이따 다시 전화나 톡을 하겠다며 급하게 전화를 끊던게 생각이나서 폰을 확인해보는데 전화는커녕 문자조차 와 있지 않았다.
10시 20분이 넘어가는 시각.
사실 현수형과 있느라 준우형의 이따 연락하겠다는 말은 신경 쓰지도 않고 있었다.
하지만 맘과는 다르게 괜히 준우 형에게 내가 형의 연락을 계속 기다리고 있었다는 내용으로 문자를 보냈다.
[형. 아까 전에 이따가 전화나 문자 한다며!! 이 따 가 !!!!!!! 지금 벌써 열시 넘었거든?????? 이러다 이따가가 내일이 되겠어! 흥 !! 나 없이 일본가니까 그렇게 좋아?????]
문자 하나를 보내자마자 바로 1이 지워지는걸 보고는,
[어? 뭐야. 1 바로 지워지는거봐. 카톡도 바로 확인가능하면서..!!!! 아주 혼나야해!!]
형은 미안하다는 이모티콘과 함께 오늘 시부야에서 한국 사람을 우연히 만났는데 하필 그 사람이 소매치기를 당해 이렇게 저렇게 도와주었다는 이야기를 내게 건네고 있었다.
[우리 형 하여튼 오지랖은 알아줘야해. 근데 그 사람도 그렇다. 35살이나 됐으면서 그런일은 좀 알아서 하라그러지. 뭘 그렇게 하나하나 다 도와주고 그래. 내일 중요한 미팅도 있는 사람이.]
[일본어를 하나도 못한다잖아.]
[아니 그 사람은 영어도 못한데?]
[일본 사람들에겐 그래도 영어보단 일본어가 편하니까..]
[그래!! 우리 착한 갓 준우 형 참 잘했어요~~~~~ 나라도 칭찬 해줘야지!!!]
[저녁은 먹었고? 집이야?]
[집이지 그럼. 저녁은 먹었어.]
형이 집이냐고 물어보는데 나도 모르게 너무나 자연스럽게 집이라고 거짓말을 했다.
지금 이 시간에 집이 아닌 그것도 게이들이 자주 모이는 종로 3가라고 하면 형이 백퍼센트 오해할게 뻔했다.
[그래. 너도 오늘 하루 종일 일해서 피곤 할텐데 얼른 쉬어라.]
[응 내일 미팅 잘하구!! 뿅!!!]
준우 형이랑 같이 있을 때 보다 형이 도쿄로 출장을 가고, 이렇게 떨어지다보니 오히려 마음 속에서 자라나는 미안한 마음 때문인지 시간이 생길 때 마다 지금은 뭘 하는지 형에게 문자를 보내곤 했다.
다만, 감정에서 오는 것이 아닌 그저 습관처럼.
[다시 현재로 돌아와서 김준우 시점]
새벽에 잠을 뒤척이다 언제 잠들었는지 눈을 떠보니 어느새 시간이 오전 8시 20분을 지나고 있었다.
화장실 문이 덜컥 열리곤 언제 일어났는지 샤워까지 모두 마친 상태로 허리 밑으로 수건만 둘러싼 채 나오는 승준이형.
“일어났어요?”
“아 네..벌써 다 씻으신거에요?”
그가 걸을 때 마다 흰 수건 가운데로 볼록하게 튀어나온 채 흔들거리는 그의 앞섶에 자꾸만 눈이 가고 있었다.
분명히 수건으로 가려져 있음에도 그젯밤 이자카야 안 화장실에서 보았던 형의 묵직한 자지와 귀두가 선명하게 그려졌다.
“네 어제 일찍 자서 그런가 일곱시에 눈이 떠지더라구요!!”
“대박. 엄청 일찍 일어나셨구나~ (하품과 함께 기지개를 켜며) 아 벌써 한국에 가는 날이구나~~~ 으...출장보고서도 써야 되는데.....“
“쉬엄쉬엄 하셔요~~(머리를 말리며)”
그렇게 모든 준비를 마친 후 체크 아웃을 하곤 간단하게 역 주변에서 식사를 한 뒤 출국을 위해 공항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결국 파출소에선 우리가 출국할 때 까지 아무런 연락이 오질 않았다.
“파출소에서는 아무런 연락도 안 왔죠 형..?"
“예상은 했지만, 그래도 좀 가슴 아프긴 하네요.. 잃어버린채로 떠난다는게..”
“어쩔 수 없죠. 그만 잊으시고, 한국 가셔서 좋은 걸로 다시 장만 하시죠~”
“그래야죠!(웃으며) 그래도 다행인 건..준우씨 같은 동생 알게 됐다는 거?”
“네?(사실 그의 말을 정확히 들었지만, 다시 듣고 싶었달까!? 습관처럼 그에게 되물었다)”
“가슴아픈 일이지만, 어찌됐든 이런일로 준우씨 같은 귀한 사람 알게됐으니, 결과론적으론 좋은 일 아닌가 해서요 (웃으며) 저 엄청 긍정적이죠?“
그가 환하게 웃는데..이상하게 그의 환한 미소에 자꾸만 내 마음이 무장해제 되고 있었다.
오후 비행기를 타고 저녁이 넘어선 시각, 인천공항에 도착을 해서 입국수속을 마친 뒤 한 손엔 캐리어를 잡은 채로 형과 마주서서 헤어질 준비를 하고 있었다.
“형 이거...(오만원 짜리 한 장을 건네며) 집에 가실 때 차비 하세요~.”
“마지막까지 신경써주셔서 진짜 고마워요 준우씨. 일단 오늘이랑 주말엔 푹 쉬시고 다음주 월요일에 시간되시는대로 계좌번호랑 해서 제가 사용한 금액 문자로 보내주세요. 지금 빌려주신 이 5만원이랑 속옷 2장값까지 모두 해서요!“
“넵! 모조리 다 청구할테니 긴장하세요!!!!”
“네~~~ 빼놓지 말고 전부다 꼭이요!!!”
“형”
“넵”
“나중에 형 일하시는 공방 한 번 구경 가도 돼요?”
“그럼요~~~~~언제든지요(환하게 웃으며)”
“형 덕분에 여러가지 의미로 잊지 못할 출장이었습니다.”
“저도 정말이지 잊지 못할 것 같네요. 첫 여행에 소매치기라니..(멋쩍어하며) 물론 도난도 당하고, 많이 잃어버리긴 했지만 그래도 준우씨랑 며칠 있으면서 오랜만에 참 즐거웠습니다. 일본 가기 전엔 상당히 무거우면서도 복잡한 마음이었는데, 한 결 가벼워진 것 같아요. 그리고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좋은 동생 한 분 알게 된 것 같아서 매우 뿌듯합니다.”
“헤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아 그리고 형 다음에 우리 만나면 그땐 저한테 존대 그만 하시고, 말 편하게 해주세요. 괜히 또 어색하게 존대하고 그러기 없기!! 이거 약속하는거에요!!"
그렇게 편하게 웃고있는데
“네 알겠습니다~ 다음에 보면 꼭 그렇게 할게요~ 그간 정말 감사했어요. 자주는 힘들겠지만 그래도 우리 나중에 볼 수 있음 종종 봬요. 조심히 들어가시구요”
라고 말을 뱉고는
형이 나에게 두 걸음 가까이 다가와 날 확 끌어안으며 포옹을 해주었다.
'네' 라고 어서 대답을 해야되는데
그의 갑작스런 포옹에 또 다시 입이 얼어 붙어버렸다.
“여..연락할게요. 형..”
그렇게 공항에서 인사를 마친 뒤, 그와 헤어지고 나서 집에 들어오니 어느덧 시간이 아홉시를 넘어서고 있었고 은호는 9시 30분 정도 되야 집에 오기 때문에 집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짐을 모두 내린 뒤, 정리는 나중으로 미루고 샤워부터 해야겠다 싶어 온수를 켠 뒤 화장실로 들어서는데
‘어랏’
그 때처럼 뭔가 또 다시 낯선 향이 느껴졌다.
이건 분명 은호의 체취가 아닌데.
내가 잘 모르는 향수 냄새 같으면서도 어떤 이의 체취 같은 냄새가 화장실에 아직 남아있는 듯 했다.
그나저나 어제 아침 은호와 영통을 할 때 보이던 빨간색 칫솔은 쓰레기통에 버렸는지, 아니면 어디로 치운건지 이제는 보이질 않았다.
‘분명 빨간색 칫솔 이었는데..’
복잡한 생각은 미뤄두고 샤워를 마친 후 잠시 식탁에 앉아 쉬고 있는데
‘띠띠띠띠 띠~ 띠리리~~’
비밀번호 누르는소리가 들리더니 은호가 퇴근을 하며 현관에 들어서고 있었다.
“오!!!! 형!!!!!!!!! 왔구나!!!”
“오냐!!!!!!!!!!!!”
그렇게 은호에게 일주일만에 얼굴을 내비치는데 예전같으면 나에게 달려와 덥석 안기고도 남았을 은호인데 들어오면서 인사만 건네고는 바로 방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뭐야. 최은호. 형 별로 안 반갑냐!? 예전 같으면 달려와서 꽉 안아주더니.(괜히 서운한 듯) ”
“내가 애도 아니고 뭘 안겨~~출장 다녀오느라 고생많았어 형.”
“그래도 매일매일 형 뭐하는지 문자도 자주하고. 기특해. 우리 은호. 자~~~여기 네 선물. (식탁 위에 올려두며) 이따 열어봐”
“오!!! (선물에 관심을 보이며) 뭐야 뭐야~?????????”
“시세이도 화장품 세트야. 그리고 일본 과자 몇 가지 사왔어. 여러 가지 세트로 사왔으니까 ~ 백화점 가져가서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랑 나눠 먹으라구~~ 애인이 사왔다 하면 사진 보여달라고 할 수 있으니, 친한 형이 사줬다고 하면 될 듯?”
“와!! 역시 우리 형 최고네!!!! 고마워 형. 도쿄에서 사진 찍은거 있음 구경이나 좀 하자 형".”
“어. (휴대폰을 건네며) 일본이랑은 시차도 없는데 비행기 타고 왔다갔다 해서 그런가 엄청 피곤하네..(하품을 크게 하며)”
"먼저 들어가 쉬어~~사진만 보고 폰은 맨날 두던데 놔둘게~"
그렇게 은호에게 휴대폰을 건네곤 침대에 몸을 눕히는데
순간 물 흐르듯 이어지는 자연스러운 대화 속에서, 피곤함까지 몰려와 신경 쓰지 못했던걸까.
휴대폰 안에 승준이 형 사진이 몇 십장은 될 텐데. 심지어 둘이서 같이 찍은 사진도 몇 장 있을텐데...
난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안방 문을 급히 열고는
"은호야!!!!!!!!!!! (다급하게 부르며) 잠깐만, 형 휴대폰 좀"
외치며 은호를 바라보는데
"형 근데 이 사람은 누구야? 꼭 한국 사람처럼 생겼네. (야키니쿠 고기집에서 승준이 형과 함께 찍은 사진을 가리키며) 형 이번에 회사 동행하는 사람 없이 혼자 출장 갔다고 하지 않았어??? 그리고 이 사람이 입고 있는 이 검은색 나이키 후드티. 이거 내가 형한테 사준 거랑 똑같은 옷 아냐..?(날 물끄러미 쳐다보며)"
순간 흐르는 정적.
고요함 속, 서늘함이 등 뒤로 전해지고 있었고
은호와 난 불안하면서도 위태로운 눈빛으로 서로를 향해 쳐다보고 있었다.
(다음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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