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부야에서 만난 남자 -15화-

작성자 정보

  •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본문

-15-


[김준우 시점]



"그냥...형 한 번 안아드리고 싶었어요.." 


승준이 형과 포옹 후 몸을 떼는 순간, 흐르는 이 어색한 공기.


어색한 이 분위기를 피하기 위해 얼른 화장실로 들어가 가볍게 손과 발을 씻고는 방 한쪽 끝에 형이 깔아둔 이불 쪽으로 가면서 형에게 말을 건넸다.     


"형. 저 내일 출근도 해야해서 먼저 자 볼께요. 형도 얼른 씻고 편히 주무세요"


"어. 그래. 내일 역까지 태워줄게."

 

그렇게 이불 위에 먼저 누워 잠을 청하려 하는데


오늘 커피를 너무 많이 마신 탓 이였을까 


아니면 승준이 형이 게이였다는 사실에 놀라서였을까.


그것도 아니면 아까 저녁에 은호와 한바탕 싸운 일 때문이였을까.


복잡한 마음 때문인지 도무지 잠이 오질 않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자밖에 좋아지질 않는다 말하는 승준이 형의 그 음성이 내 귓가에 반복해서 울리고 있었다. 



뒤척이다 밤을 지샌 후

새벽 5시를 넘어가던 시각. 


피곤했는지 조용히 코를 골며 곤히 자고 있는 승준이 형을 뒤로하고 가방을 챙기곤 조심스레 공방을 나왔다. 


그리곤 택시를 타서 평내호평역으로 이동 후 새벽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형에게 문자 하나를 넣어두었다. 


[인사도 없이 먼저 이렇게 나와서 죄송해요 형. 어제 형 만나기 전에는 정말이지 마음이 복잡했었는데, 이상하게 복잡했던 마음들이 조금은 정리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에요. 게다가 남양주에 와서 좋은 공기도 쐬고, 형 공방 구경도 하고. 이렇게 또 형과의 좋은 추억을 하나 만들어 가네요. 그리고 형. 저는 진심으로 형이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힘내시고 좋은 하루 보내세요!]




AM 7:30 


‘띠띠띠띠 띠~ 띠리리~~’   


집에 도착해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니 식탁 위에 빈 소주병 두 병과 반쯤 먹다만 새우깡 한봉지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곤 안방문을 조심스레 여는데 열자마자 술냄새가 코끝으로 전해지더니 역시나 침대위에 은호가 한 껏 술에 취해 뻗어 자고 있었다. 


난 은호 앞으로 다가가 어젯밤 때렸던 녀석의 뺨을 조심히 어루만졌다. 


그리곤 조용히 입술을 열었다.


"많이 아팠냐!?.. 형이 어젠 미안했다. 그리고 도쿄 시부야에서 만난 그 사람.. 임마 형 그 사람이랑 안 잤거든!!? ..형이 지갑도 뭐도 다 잃어버린 탓에 내 숙소에서 3일동안 재운 건 사실이지만, 근데 정말 아무 일 없었어..그 형에게 특별히 감정이 있는 것도 아니였고 말야.."


"그나저나 최은호, 넌 현수가 그렇게도 좋냐?"


"너 맨날 나한테 입버릇 처럼 돈 많이 벌어서 형한테 톰브라운 셔츠 하나 사주겠다더니. 어제 현수가 그 셔츠 입고 있더라. 그거 니가 사준거 맞지? 그래서 카드값 감당하느라 최근에 돈이 없었던거고."


"형한테 말이라도 하지..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고. 아니.. 그냥 그것도 나 모르게 하고, 그냥 이제 그만 헤어지자고 말하지. 그리고 내가 뭐라고 해도 끝까지 현수랑 잤다는 말은 하지 말지.. 그럼 조금은 덜 아팠을텐데.."


"형이 널 외롭게 만들어서, 니가 말한대로 널 그렇게 방치해서 미안했다. 은호야"


"2년 함께한거 그 까짓게 뭐라고..예전이나 지금이나 나도 참..그때는 4년이라는 시간에 얽매이더니, 이제는 2년이라는 시간에 또 얽매이네.."



어느새 내 한 쪽 눈에선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만나지다 헤어지는거 그게 뭐 그리 어려운 일이라고.. 그 말 하기 힘들면. 하지마 넌.. 그 말은 내가 할 테니까."



"우리 그만... (눈물을 닦으며) 그만 헤어지자 은호야..."



자고 있는 은호 앞에서 헤어지자고 말한 뒤,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회사에 출근을 했다.




AM 9:10


회사 안, 


"준우씨, 어제 집에 안들어갔어!?? 어제랑 옷차림이 똑같네?"


"아;; 급한 일이 있어서 어디 좀 다녀오느라;; 죄송합니다"


"아냐아냐, 뭘 나한테 죄송할 것 까지.. 근데 혹시 장거리 연애라도 하는거야? 그러다 막차가 끊겨서 첫차를 타고 바로 회사로 출근하는 그런 시츄에이션??? (웃으며) 나 드라마 너무 많이 봤나봐. 쏘리~~~"



그렇게 오전에 일을 하는데 일이 손에 잡히지도 않고, 어제 밤을 샌 까닭에 너무 피곤하기도 해서 그랬을까.


대리님께 먼저 말씀드리고, 부장님실에 들어가 반차를 신청했다. 그렇게 반차를 내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다시 집으로 들어오는데


집으로 들어가자마자 오후 출근준비를 하고 있는 은호로부터 쓴 소리가 날아왔다.



"형 지금 제정신이야? 어제 내가 한번 더 이야기 하자고 했는데도 외박을 해??"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그냥 모질게 대하자 싶어



"내가 외박을 하던, 여행을 가던 난 누구처럼 연애하는 도중에 다른 사람이랑 몸은 안 섞었어. 제정신이 아닌 건 내가 아니라 최은호, 너 같은데?"


"뭐???(어이가 없다는 듯) 진짜 형 지금 말 다 했어?"


"어 다했어."


"적어도 나한테 미안할 짓은 안 했다고!? 지금 형이 나한테 이러는게 미안해 해야되는거야. 알기나 해? 또 혹시 알어. 남양주를 진짜 갔는지 안 갔는지 사실 확인도 안되는데 그 사람 집에서 잠이라도 자고 와서 안 잤다고 하면, 어제랑 또 똑같이 적어도 미안할 짓은 안했다고 그렇게 말 하기만 하면 그만 아니냐고??"


"그만해.."


"뭘 그만해. 오히려 그만하라고 외치고 싶은건 형이 아니라 나거든?? 내가 남석이랑 저녁을 먹었다고 해도 믿어주지도 않으면서..."


"남석이랑 저녁을 먹고 안 먹고가 그렇게 중요해? 나한텐 그날 니가 누구랑 저녁을 먹고 술을 먹은게 중요한게 아니야 은호야.. (덤덤한 표정으로) 니가 우리 집 주차장 에서 현수랑 키스를 했다는게 중요한거지....


이게 뭘 의미하는지 알기나해?....(울컥하며) 니가 이제 나에게 어떤 말을 하더라도 난 최은호 너를 믿을 수가 없게 됐다는거야...그만하자 정말.. 나도 지쳤다 이제"


".....(아무말도 없는 은호)"


"그리고 어제 내내 생각해봤는데... 사실 더 생각해볼 것도 없는 것 같아.. 우리 그만... 이제 그만 헤어지자 은호야(담담한 목소리로)"


"헤어지자고? (괜히 울컥해서는) 그래. 잘 됐네. 나도 지쳤어. 나도 지쳤다고!! 정말 지긋지긋 했는데....그래 헤어져. 당장 헤어지자고!!!!!!!!!!!!(소리를 지르며)"


"집은 다른데 구할 때 까지 형 눈치보지 말고 살어. 짐 정리할 시간도 필요할테니. 형도 혼자서 월 60만원은 부담이니까 너 나갈때 까지 천천히 다른데 알아볼꺼니까."   



은호가 화가 잔뜩 났는지 이후로 나와 아무 말도 하지 않고는 출근 준비를 다 마치고 현관문을 '쾅' 하며 세게 닫아버리곤 밖으로 나가버렸다. 



"휴.......(한숨을 크게 내쉬곤)"



생각보다 괜찮은건가?


좀 많이 아플 줄 알았는데, 꽤나 무뎌진 기분이 들었다.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컵에 따르지도 않은 채로 벌컥벌컥 마셔댔다. 


그리곤 식탁에 앉는데


지------------잉


휴대폰 진동소리가 울렸다.


누구지 싶어 휴대폰을 확인하는데 승준이 형이었다. 


[점심 먹었어~? 그나저나 아침엔 언제 간거야? 아 그리고 어제 형이 이야기 한 건 그냥 넋두리 즈음으로 생각하고 잊어줘. 지금 생각하니까 무지 창피하다. ㅎㅎ]


장난같은 문자에 나도 그냥 장난식으로 받아치면 될 걸. 은호와의 일 때문에 그랬을까. 갑자기 센치해져선


[형이 잊으라니까 더 이상 그 부분에 대해선 저도 이야기 안할게요. 근데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해도 돼요 형?]


[응?]


[이제 그 안에 형을 그만 가두셨으면 좋겠어요. 물론 그 아픔들이 다 아물진 못하더라도, 언젠가 시간이 지나면 분명 그 상처와 아픔들이 다 잊혀지고, 그렇게 아무는 날이 올꺼에요. 그러니 꼭 행복해지세요. 형은 그럴 자격 충분히 있으신 분이니까.]


라고 꽤나 진지하게 문자를 보내버렸다. 


형이 진지한 문자에 당황했을까!? 10분정도 답장이 오지 않다가


얼마 후 울리는 진동 소리. 


휴대폰 문자함을 열어보니


[고맙다]


라는 세글자가 답장으로 도착해 있었다.  





[최은호 시점]


백화점 매장 안.


"형 오늘 무슨 일 있어요? 안색이 너무 안 좋은데...?"


내 표정이 많이 안 좋아보였는지 남석이가 내 안부를 물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신경 끄셔~~"



잠시 쉬는 시간


현수 형이 날 휴게실로 부르곤 


"속은 좀 괜찮어? 설마 집에 들어가서 술 더 마신건 아니지?"


"더 마셨어요..."


"뭐?? 어휴... 너도 참"


"형"


"응?"


"저 헤어졌어요."


"응???"


"준우형이랑 헤어졌다구요"


"아 그래...? 난 너 선택을 존중한다 은호야."


"그래도 사귀고 있는 도중에 형이랑 자는 건 아니였는데...(말 끝을 흐리며)"


"응?? (당황하는 표정을 보이며)"


"그 때 형이 그러셨죠. 이 백화점에 온 그 날부터 제가 맘에 들었었다고. 그 말을 듣는데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요. 무작정 제가 좋다고 말하는 그런 형의 솔직한 모습들이 정말이지 좋았거든요. 형이랑 같이 있는 모든 시간과 그 상황들이. 그리고 형에게 선물할 수 있다는 그런 내 자신이 얼마나 뿌듯했는지 몰라요.


이렇게 짧은 시간에 누구에게 빠졌던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형을 좋아하게 됐어요 저도. 준우형과 동거를 하면서 아슬아슬하게 형과 몰래 뒤에서 만남을 가지는 그런 짜릿했던 기분은 아마 앞으로도 평생 겪어보지 못할 것 같아요.   


근데...아무리 그래도... 준우형이랑 같이 연애하는 도중에 형이랑 같이 자는 건 아니였는데...(말 끝을 흐리며)"


"지금 그 말은.. 나랑 잔 걸 후회한다는거냐..?(차분하게 날 쳐다보며)"


"그냥.. 준우형한테 그만 헤어지자고 하고, 형이랑 편하게 시작했어도 아무 문제 없었을텐데..전 왜 이렇게 어려운 길을 택했을까요... "


"은호야.."


"형. 이런 우유부단하면서도 흐지부지한 제가 뭐가 좋다고..이런 저 좋아하지마세요. 그리고 형이라면 저보다 훨씬 더 좋은 사람 만나실 수 있잖아요. 충분히 그럴 능력도 되시고. 전 당분간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저에게 집중하고 싶어요.. 그렇다고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당장 그만두겠단 소린 아니에요. 


스물아홉, 20대 끝자락, 어리지도 않은 나이인데도 

그동안 엄마가, 그리고 준우형이 해주는 밥만 먹으면서 살아왔더라구요. 


독립도 해서 제 스스로 밥도 해 먹어 보고, 받기만 하는 것이 아닌 누군가를 챙기기도 하면서 그렇게 모든 걸 스스로 해보고 싶어요"


"그래. 너한테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겠지. 나도 너한테 네 감정 일부로 강요하고 싶진 않아...그러니 너도 내 마음 강요하지마. 널 좋아하지 말라는 이야기.. 그런 말 함부로 하는거 아니야. 난 있잖아, 은호야. 너 처음 봤을때 부터 맘에 들었다고 했던거. 그리고 너와 함께 했던 모든 순간들은 나에게 진심이였고 지금도 충분히 널 좋아하고 있어. 그것만 알아줬으면 좋겠다."



휴게실에서 현수형이 나가는데



문득 오늘 아침에 있었던 일이 또 다시 내 머릿속을 괴롭히고 있었다.  


술에 한껏 취해 잠들었다가 현관문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에 꿈인가 싶어서 잠이 살짝 깨려던 참이였다. 


순간 준우 형이 안 방으로 들어오길래 당장이라도 몸을 일으켜


'지금이 도대체 몇 시야? 어떻게 이런 상황에 외박을 할 수가 있냐고, 지금 형이 제정신이냐고?' 몰아붙이고 싶었는데


갑자기 형이 어젯밤 때렸던 내 뺨을 부드럽게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최은호, 현수가 그렇게도 좋냐?"


"너 맨날 나한테 입버릇 처럼 돈 많이 벌어서 형한테 톰브라운 셔츠 하나 사주겠다더니.

어제 현수가 그 셔츠 입고 있더라. 그거 니가 사준거 맞지? 그래서 카드값 감당하느라 돈이 없었던거고."


"형한테 말이라도 하지..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고. 아니.. 그냥 그것도 나 모르게 하고, 그냥 이제 그만 헤어지자고 말하지. 그리고 내가 뭐라고 해도 끝까지 현수랑 잤다는 말은 하지 말지.. 그럼 조금은 덜 아팠을텐데.."


"형이 널 외롭게 만들어서, 니가 말한대로 널 그렇게 방치해서 미안했다. 은호야"


"2년 함께한거 그 까짓게 뭐라고..예전이나 지금이나 나도 참..그때는 4년이라는 시간에 얽매이더니, 이제는 2년이라는 시간에 또 얽매이네.."



눈을 감은 채 형의 말들을 가만히 듣고 있는데


눈물을 흘리는 건지 조금은 흐느끼는 것 같으면서도 떨리는 목소리를 계속 듣고 있자니 울음이 날 것만 같아서 꾹 참고 있었다. 


그리곤 얼마 있다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출근을 하는건지 그대로 다시 집을 나가면서 그제서야 나도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오전 내내 심란하고 마음은 복잡했지만 그래도 일은 해야되니 오후 출근시간에 맞춰 준비를 하고 있는데


1시도 안된 시간에 현관문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조퇴라도 한 건가'


그렇게 문을 열고 들어오는 준우형을 보는데


이 시간에 무슨 일이야. 조퇴라도 했어!? 어디 아퍼? 라는 안부인사보다 


"형 지금 제정신이야? 어제 내가 한번 더 이야기 하자고 했는데도 외박을 해??"


라는 말부터 몰아 붙이곤 


남양주를 진짜 갔는지 안갔는지, 그 사람 집에서 잠이라도 자고 와서 안 잤다고 하면 그만 아니냐고 그렇게 모진 말들을 뱉어버렸다. 


그런데 니가 이제 나에게 어떤 말을 하더라도

난 최은호 너를 믿을 수가 없게 됐다는거야...그만하자 정말. 이라는 준우형의 말에 


형이 일본에서 그 사람과 정말 잤는지 아니면 형이 어젯밤 남양주를 다녀온게 맞는지 아닌지, 나 조차도 준우형을 믿지 못하는 걸 보고는 형과의 깨져버린 신뢰를 이제와서 회복하기엔 너무 늦었단 사실을 비로소 깨달았다. 


결국 형의 입에서 '그만 헤어지자' 라는 말이 나왔고..나도 울컥하는 마음에 당장 헤어지자고 그렇게 형에게 소리 치곤 집 밖을 나와버렸다. 



그렇게 헤어지자는 말에 나 또한 헤어지자며 큰 목소리로 외치곤 집을 나오는데



'그래 내가 잘못했으니까...'


'만나다가 헤어질 수도 있는거고, 처음부터 인연이 아니었을 수도 있는거니까...'


라며 억지로 마음을 추스리려 하는데 내 마음과는 다르게 한 쪽 눈에선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럼에도 준우형과의 관계를 이제는 돌이킬 수 없다는 걸 확실하게 깨달았는지 입 밖으로 확정 지은 형과의 이별을 마음속으로도 준비해야겠다는 마음을 다지며 그 어떤 날보다 무거운 한걸음 한 걸음을 앞으로 내딛고 있었다. 


  


[김준우 시점]



며칠 후.


회사 안 


점심을 먹고 오후 근무 시작 전 잠시 쉬고 있는 도중에 문자 알림이 울렸다. 


[준우야 혹시 좋아하는 문구라던가 좋아하는 시 있어? 형이 너한테 선물 하나 하고 싶은데.]


승준이 형이었다. 


[와~~~ 정말요?]


[내일까지면 충분하지?? 천천히 생각하고 말해줘. 부담은 절대 NONO.]


[어!? 부담 절대 노노. 그 말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은데... 자꾸 누가 절 따라하는 것 같단 말이죠...]


[기분 좋아보인다. 김준우!?]


[기분 엄청 좋죠~~~~. 2년이나 사귄 애인과 헤어졌으니까요 하하]



잠시 답장이 오지 않다가


약 5분후 


[미..미안]


이라는 답장이 왔다.


[생각보다 그렇게 아프진 않고, 기분도 정말이지 좋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에게도 아물 시간은 필요할 것 같네요 ㅎㅎ ]


[그래. 형이 심혈을 기울여서 만들어 줄테니~~ 잘 생각해서 내일까지 꼭 보내줘!! 그리고 힘내라 김준우!!!]


[예썰~~~~~근데 형 내일까지 생각할 것도 없을 것 같아요.]


[응?]


[지금 저를 위한 아주 좋은 문구가 하나 생각 났거든요. 그걸로 꼭 해주셨으면 좋겠는데]


[그게 뭔데? .. 혹시나 잘생긴 김준우. 뭐 이런건 안돼....]


[그런거 아니거든요....... -_-]


[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자밖에 좋아지질 않더라. 특별한 나 자신 칭찬해.]



형이 놀랐을까.


난 형이 어느 정도 알고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몇 분이 지나도 답장이 오지 않자


[저렇게 꼭 해주세요!!!! ^^ 특별한 제 자신을 위한 선물입니다. 그 선물을 형이 직접 만들어 주신다니 더 영광이구요. 저 문구를 떠올려 낸 내 자신, 한번 더 칭찬해~~~~]


[김준우]


[네?]


[너도 이 쪽 이였어?]


[와... 지금 놀라신거 맞죠?? 저 지금 기분 엄청 좋아졌어요 형!! 그만큼 제가 일틱 스러웠다는 거잖아요]


[뭐래... 아무튼 나 못해. 선물 취소]


[와.. 형 남자가 한 입으로 두 말하기 있습니까?]


[나 남자 아니야.]


[제가 이자카야 화장실에서 형꺼 다 봤는데요..? 분명 남자였는데...]


[..........]


[선물 기다릴게요 형!!! 오늘도 화이팅]


[준우야. 너 집 주소 하나 보내 줄래. 혹시나 우리가 오랫동안 만나지 못할 수도 있으니 완성되면 집으로 바로 보내줄까 하고~~]


[집 주소 - 요기 주소요~~~]


[오케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자밖에 좋아지질 않더라. 특별한 나 자신 칭찬해"


사실 이 문구는 내 자신보다


형에게 직접 전해주고 싶은 말이였다. 


직접 저 문구를 써내려가면서


그만큼 승준이 형 스스로가 특별하다는 걸 느꼈으면 좋겠어서...



그리고 정확히 2주 후, 


서울로 켈리그라피 교육을 하러 온 승준이 형과 레스토랑에서 저녁 약속을 잡았다. 



"형 여기요~~~~(손을 들고는)"


"어~~ !! 왔어?? 오히사시부리!! (오랜만이야)"


"그 일본어는 또 뭡니까 (웃으며) 오랜만이에요 형"


"근데 넌 살 좀 빠진 것 같다. 밥 좀 잘 챙겨 먹어라. 이별 한번만 더 했다간 난리 나겠다.."


"(웃으며) 형이 오늘 저녁 사주신다니까 그래서 아주 배터지게 먹어보려구요"


"근데 오늘 니가 사는거 아니였어???"


"와 이렇게 나오신다구요?"


"배고프지. 얼른 주문부터 하자. 저기요~~"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후식으로 커피 한잔을 하고 있는데 


형이 주섬주섬 함께 들고온 종이가방에서 뭘 꺼내더니 뽁뽁이로 감은 작은 액자 하나를 건넨다. 


"자~선물"


"와!!!! 집으로 보내주신다더니, 바로 들고 나오셨구나 (웃으며) 제가 의뢰한대로 잘 하신거죠? 혹 한글자라도 빠졌으면 저 이거 안 받습니다."


"어휴... 보고나서나 말하세요~~~"


그렇게 


뽁뽁이를 다 걷어내고 보니


작은 액자 안, 검은색 붓글씨로 진하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자밖에 좋아지질 않더라. 특별한 나 자신 칭찬해.」


라는 문구가 써져 있었다. 


이걸 보는데 갑자기 마음이 뭉클해지면서 감동이 밀려왔달까. 


"어떻게 마음에 좀 드십니까? 의뢰인이 워낙.. 까다로우셔서..엇 표정보니 맘에 들긴 드나본데!? (환하게 웃으며)"


"뭐 썩 맘에드는 건 아닌데.. "


"나 그럼 다시 가져간다....(내게 있는 액자를 다시 가져가려는 액션을 취하며)"


"그래도 선물은 정성이니까~~~~~ 이건 잘 받도록 하겠습니다(웃으며) 고마워요 형. 정말로요."


"오냐!!!"


"형은 뭐 갖고 싶은거라도 있으세요? 전 재주가 딱히 없어서 원하시는거 말씀하시면 제가 하나 선물해드릴게요"


"지금은 기억 안 나니까. 이거 저장. 나중에 써먹고 싶을 때 써도 되는거지?"


"그건 나중에 뭘 갖고 싶어하시는지 제가 들어보고 결정할게요."




PM 10:20


그렇게 승준이 형과의 만남을 뒤로하고


집으로 들어 와 샤워를 마치고 잠시 쉬는 도중, 작은 방 문을 열어보니 은호가 곧 이 집을 나가려는지 이삿짐들이 가지런히 박스로 정리 돼서 쌓여있었다. 


그 때 갑자기 현관문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들리길래 얼른 작은 방을 나와선


"왔어?"


"어, 형 (편의점 봉투를 위로 올리며) 맥주 사왔는데, 오랜만에 같이 한잔 안 할래!?"


"어..그럴까??"


그렇게 식탁에 마주 앉아 봉지에서 맥주 4캔을 꺼낸 뒤, 2캔은 냉장실에 넣어두고 2캔과 마른안주만을 남겨둔 채 


앞에 놓여진 맥주 캔을 따고는 그대로 들이키는데

 

"다음주에 여기서 나갈게 형. (덤덤한 표정으로)"


"아... 그래...? 집을 따로 알아본거야!? 아니면 본가인 의정부로 다시 들어가는거야?"


"나도 독립해야지. 휴무일에 신림 쪽 돌아다니다가 원룸 계약했어. 보증금 500만원에 월 45만원. 직접 가봤는데 깔끔하고 혼자 살기 나쁘지 않더라구~"


"아 그렇구나.. 잘했네.."


"형도 여기서 계속 살 건 아니지..?"


"응. 형도 다른 곳 알아봐야지."


"그래.~ 가끔 형 밥 그리울 것 같기도 하다. (웃으며)"


"귀찮다고 배달 같은거 너무 자주 사먹지 말고. 다 해버릇 해야 느는거야. 너도 밥솥 하나 사서 밥 꼭 해먹 ..."


"어우... 잔소리 또 시작이네.."


"거기 백화점은 계속 다닐거지?"


"어~ 그래야지"



잠시 뜸을 들이다..



"현수랑은..?"


"뭐~"


"현수랑 잘 되가냐고~"


"그냥 당분간은 나에게 좀 집중하고 싶어~~~"


"최은호, 너 현수 좋아하잖아.. 지금 아무 감정이 없으니까 이야기 하는건데, 현수 정말 좋은 애야~"


"나도 알어. 진짜 괜찮은 사람이란거. (웃으며)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할게 형!! 거기까지!!!"


"(괜히 뻘쭘해서는) 이거 맥주 4캔에 만원이야? 아님 만천원?? 맛이 괜찮네~~~"



그렇게 대충 가볍게 술을 마시다 정리를 하는데


"형"


"응?"


"그동안 정말 고마웠어. 헤어지더라도 이 말은 꼭 하고 싶었어"


"그래 이런 형이랑 같이 살아줘서.. 나도 고마웠어. 형이 너 마지막으로 한 번 안아주고 싶은데."


"마지막이라고 하니까 갑자기 실감나네..(웃으며) 아~~ 이제 형 잔소리 안 들을 생각하니까.. 진짜 속 시원하다 (웃으며)"


그렇게 은호와 가볍게 포옹을 하는데 정말 이 포옹이 은호와의 마지막 포옹이라는게 지극히 현실처럼 느껴졌달까. 


꿈만 같던 사랑도 다 이별하면 현실이라는 말이 몸소 느껴지면서 순간 씁쓸함이 전해져왔다. 


1주일 뒤, 결국 은호가 집에서 떠났고 이 집에 홀로 남게 되었다. 


상처가 나면 새살을 돋아나게 하기위해 마데카솔이나 후시딘을 바른다는데 난 이 아픔에서 낫기 위해 무엇을 발라야만 할까.



(다음화에 계속..)

==================

관련자료

댓글 1

<span class="sv_wrap"> <a href="https://ivancity.com/bbs/profile.php?mb_id=romatis" data-toggle="dropdown" title="Troiu 자기소개" target="_blank" rel="nofollow" onclick="return false;"> Troiu</a> <ul class="sv dropdown-menu" role="menu"> <li><a hre님의 댓글

  • <spa…
  • 작성일
씁쓸하지만 현실적이네요
알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