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릴레이 소설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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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구(준)
준은 또래들 보다 심하게 동안이었다. 얼마 전에 종로에서 알게 된 동준 보다 훨씬 젊어 보였고 소주방의 영철은 그중에서 제일 나이가 들어 보였었다. 준은 어릴 때부터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면 항상 동생으로 오해받았다. 일찍부터 그런 말을 자주 듣다 보니 이제는 이력이 생겨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준이, 아내(황유라)와 사별을 하고 혼자 산 지도 어느덧 10년이 다 되어 간다. 다행인지 자식은 없었지만 사실은, 자신이 일찍부터 게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결혼하기 전에 부모님 몰래 정관수술을 했었다. 그것도 모르고 집에서는 왜 자식이 안 생기냐고 매번 다그쳤지만 아내는 그런 이유도 모르고 끝내 그렇게 세상을 뜨고 말았다.
그래서 마음 한편으로는 그 점이 늘 아내에게 미안했었다. 준은 현재 건축 설계사의 임원으로 일하고 있는데 그저 남 부럽지 않게 평범한 듯이 평범하지 않은 듯 사는 중년이다. 준의 본명은 이정구, 고향은 충남 공주였다. 아직도 고향에는 노모가 홀로 살아 계신다.
정구는 아내가 떠나고 몇 년 뒤 3년은 어머니와 함께 살았었다. 자식도 없이 혼자 있는 아들이 애처로워 보여 어머니가 얼마 간이라도 같이 지내자고 해서 함께 살았다.
정구가 회사 때문에 고향으로 내려가지는 못하고 대신 노모께서 인천으로 올라왔었다. 그러나 그런 생활이 오래 가지는 않았다. 3년이라는 시간을 함께하면서 노모와 감정만 안 좋아졌었다. 매 순간, 참견하고 잔소리하는 노모 때문에 정구는 돌아 버릴 지경이었다. 결국 3년을 다 못 채우고 노모를 고향으로 내려보냈다. 그리고는 집도 몰래 이사를 해 버렸다.
- 친구야! 마쳤어...? (금요일, 정구가 퇴근 시간 무렵에 제일 친한 친구 정열에게 전화를 걸었다)
- 응, 이제 마치려고…(사무실의 시계를 보며…)
- 저녁에 한잔할까...! 다른 일 없지...?
- 어… 그렇긴 한데…(정열은 갑작스러운 정구의 전화에 망설인다)
- 왜, 일 있어?
- 아니야, 편네에게 전화하고 바로 전화 줄게!
*편네란? 여편네의 줄임말인데 친한 사이라서 둘만이 장난스럽게 하는 말이다.
- 이 친구, 여전하구먼! 알았어. 바로 전화 줘...!
잠시 후.
- 어디서 볼까? (정열이 들뜬 목소리로…)
- 음… 친구, 육회 좋아하잖아! 오랜만에 내가 서울로 뛰지. 전에 갔던 마장동 고기 거리에서 볼까? 오랜만에 싱싱한 고기로 속도 좀 채우고...!
정구는 서울에서 정열과 술을 파한 뒤에 종로3가에서 술을 더 마실 심산이었다.
- 그럴까...? 좋지! 나도 요즘 속이 좀 허 했었는데…
- 편네는 뭐래? 괜찮다고 해...?
- 응, 자네 만난다고 하니 OK! 하지! 하하…
- 그럼, 희순 씨도 같이 볼까...? (정구가 약간 장난스럽게…)
- 뭔 소리야! 관둬! (정열이 기겁한다)
정열과 희순은 대학 CC 커플이었다. 살아생전에 세상을 떠난 유라와도 무척 친했었고 서로 자주 왕래하며 사이좋게 지냈었다. 희순은 유라가 떠나고 정구가 아내 없이 혼자 사는 것을 보니 늘 마음이 애처롭고 안타까웠었다. 혼자 있는 친구를 소개해주려 해도 싫다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남편이 다른 친구는 몰라도 정구가 불러서 술 한잔하자고 하면 무조건 승낙했다.
가끔 같이 어울리기도 했었고. 하지만 희순 모르게 정열은 정구에 대해 중요한 비밀 하나를 알고 있었다. 바로, 정구가 게이인 것을 희순은 모르고 있었다. 아무리 부부라지만 알리기가 좀 그랬었다. 정구 또한 그 사실을 지금도 모르고 있다.
정열과 정구는 같은 고등학교, 같은 대학교를 함께 다녔었다. 서로에 대해 비밀이 없었지만 정구가 가장 두려워하고 비밀리에 감추고 있던 자신의 성 정체성을, 정열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렇게 수십 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서울의 성동구 마장동 고기 거리에서 만난 둘은 가끔 들러는 단골집에서 소고기 모둠을 시켰다. 푸짐하게 나온 한 접시를 비울 때쯤 테이블에는 진로소주가 이미 4병이나 비어 있었다. 앞에 먹은 빈 접시가 사라지고 육회탕탕이 추가로 다시 나왔다. 둘이서 4병이면 어느 정도 취기가 슬슬 올라오는 시점이었다. 분위기가 좋아서 끝으로 1병을 더 주문했다. 마지막 술병이 반쯤 비워졌을 즈음…
- 이거, 오늘 너무 마시는 거 아냐...! (정구가 좋으면서도 걱정되는 듯 말했다)
- 야, 오늘 실컷 마셔 보자! 우리 편네가 허락했잖아! 마시고 우리 집에 가서 같이 한 잔 더 할까?
- 열아. 그건 아니다! 희순 씨가 감사하게 시간을 허 했는데 집에까지 가서 술판을 벌이면 싫어하지… 내가 그렇게 눈치가 없는 놈은 아니거든!
- 쩝~ 그런가...? 아무튼 자 한 잔 마셔!
- 그래, 그러자! 나야 집에 간들 누가 있기나 하겠어… 난, 밤새워 마셔도 좋~아...! (놀리는 듯…)
그러자 갑자기 열이가 살짝 우는 듯했다. 고개를 숙이며 눈물을 훔치는데… 그걸 정구가 보았다.
- 열아, 너 갑자기 왜 그래! 우는 거야...?
- 자~식, 울기는…
- 아닌데! 너 방금 눈물 훔쳤잖아! (그러면서 정열의 팔을 건드렸다)
- 아니라고! 아니란 말이야...! (좀 오버스럽게 정열이 소리를 질렀다)
정열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정구가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 너 갑자기 왜 그래! 술 취했어!
- 그래, 나 술 취했다! 왜, 어쩔래...! 나 술 취했다구!~~~ 술 취했어!... 짜식, 너 보면 내가... 가슴이 찢어진단 말이야...! (이제는 정열이 정말 흐느끼기 시작했다)
- 너, 뭔 일 있구나! 희순 씨랑 싸운 거야...?
- 바보 같은 놈! 우리 편네가 내게 얼마나 잘해주는 데 왜 싸워! 이 바보야!
- 그럼, 왜 그러냐고! 술 잘 마시다가…
- 정구야...! 내 친구, 이정구!
- 네… 정구님!… 그대 친구, 이정구 여기 있습니다요...!
- 나…... 너…... 너, 남자 좋아하는 거 알고 있어...! (정열은 낮게 힘주어 말했다.)
- …...!
그 순간, 잠시 시간이 멈춘 듯했다. 얼마 동안 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미동도 하지 않고 그렇게 몇 분이 지났다. 정구는 소주잔을 잡고서 약하게 떨고 있었다. 그의 시선은 맑고 투명한 소주잔 속에 머물고 그의 눈가에는 소주보다 쓰고, 불보다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 언제부터 알았는데...? (잠시 후, 너무나 침착하고 담담하게 고개도 들지 않고 정구가 물었다)
- 미안… 내가 괜히 말했지...? 정구야 난 다 이해해!…
- 언제부터 알았었냐구!!! (정구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갑자기 소리를 지르자 주변 사람들이 한 번씩 힐끔힐끔 쳐다보기 시작했다. 아까는 앞에 사람이 소리를 지르더니, 이젠 다른 사람이 소리를 지르니 행여 싸우나 싶은가 보았다.
- 너… 대학 때부터 알았어…
- 대학 때부터? 그렇게 오래전에...?
- 우리... 1학년 때 MT 갔었잖아… 그때… 알았어!… 너무 오래되었지만 난 그날 일을 다 기억해! 네가 그날, 우리 과 3년 장진영 선배... 기억나? 그날 네가... 그 선배 자는데…
- 그만! 그만해...! 그럼 지금까지 알면서 나를 기만했던 거야!
- 뭔 소리야! 널 기만하다니! 난, 네가 혼자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늘 걱정했었는데...! 그 후로도 이상하게 네가 남자들에게 유독 관심이 있어 보였어… 그래도 유라 씨를 만나고 나중에는 결혼하길래 결혼하면 괜찮은가 했지… 근데, 얘기도 낫지 않는 것도 이상했고… 결정적으로 너를 종로 3가에 있는 술집에서 나오는 것을 봤었지…
- …...?
- 벌써, 십 년이 훨씬 넘었을 거야… 우리가 마흔 중반쯤 되었나...? 한번은 종로 3가에서 회사 동료들과 회식하고 나오는데, 그 뭐지… 멤버십 클럽이라고 적혀 있는 술집에서 네가 나오는 거야! 오래전에 후배들이 종로에 있는 술집 대부분이 게이클럽이라고 하더라구! 특히, 멤버십 클럽이라고 간판에 적혀 있으면 그곳이 게이 술집이라고…
정구는 기가 막혔다.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모르게 지금껏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더군다나 다른 사람도 아닌 가장 가깝고 친한 친구인 정열이가 알고 있었다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 혹시!… 희순… 씨도 알아...?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 뭔 소리야! 그걸 왜 편네에게 말하냐! 걱정하지 마! 나만 알고 있어... 내 주변에는 아무도 몰라!
- 친구야...! 좀 전에 내가 역정을 내서 미안했어… 나도 모르게… 네가 그런 사실을 알고 있단 말에 눈앞이 캄캄했었다.
- 괜찮아! 난 다 이해한다고! 우린 친구잖아! 자식~! 네가 지금껏 얼마나 마음 조이고 불안했겠어… 우리가 내일모레면 육십인데… 더 늦기 전에 네게 말해주고 싶었어. 네 곁에는 내가 있다고 말이야...!
- 정열아. 고맙다!… 그리고 미안해! 이 못난 친구를 이해해 줘서…
- 그런 소리 하지 마! 친구끼리 그런 말이 어딨어...! 이제 내게라도 너의 주변 상황을 편하게 털어놓고 그래. 부담 갖지 말고… 알았지...?
- 그래… 알았어…! 고맙다…
서울의 밤바람이 시원하게 둘의 가슴을 쓸고 지나간다. 밤하늘에는 그 어느 때보다 별이 총총히 박혀 빛나고 있었다.
*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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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장동에 인천바람이분다가 맞는지 모르겠습니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