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부는 날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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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깊은 물속은 차갑고 어둡다.
숨막히는 고통 그리고 차디찬 온도
내 몸 주위를 휘감고 있는 압박감
이게 나의 삶과 정확히 같게 느껴지는 고통이었다.
눈을 살짝 뜨니 뿌옇게 보이는 얼굴.
민석이다.
민석은 어디서든 그의 향기를 뿜는다.
바닷속이더라도 말이다.
그의 입술이 가까워지고 포근하게 그의 숨을
내 안에 넣어준다. 갑갑하던 내 온몸은 서서히 풀리고
어두운 바닷속은 핑크빛의 밝은 조명으로 바뀌었다.
눈을 떠보니 내 눈 앞에는 민석이가 세근세근 자고 있었다.
약간의 코고는 소리까지 들렸다. 조금 추위가 돌아서 몸이 옥삭했다.
머리가 멍하기는 했지만 움직이지 못할 정도는 아니어서
방에 들어가 이불을 갖고 왔다. 도저히 누워있는 민석을 방으로 들고 갈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민석에게 포근히 이불을 덮어주고 그 안으로 내가 들어갔다.
그의 자고 있는 얼굴에 내 얼굴을 가까이 다가갔다.
어제의 술취한 그의 모습과 술주정 그리고...입맞춤 들이 떠올랐다.
그냥 단순한 키스였는데 내 온몸은 불같이 화끈해졌다.
이는 중학교 때 짝사랑하던 누군가의 기억과 같았다.
나이 들어 이런 느낌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너무 귀해서 다가갈 수 없는 어떤 존재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민석은 본인이 이런 존재란 걸 알고는 있는 것일까.
그의 숨소리에 묻혀 나도 옆에서 곤히 잠에 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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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뭐냐고! 둘이 미친 거 아냐? 여기서 뭐한 거야!"
고래고래 빽빽 거리는 소리 때문에 눈은 떠졌지만 몸은 숙취 때문에 움직이지 않았다.
고개를 간신히 들어 소리나는 쪽을 보니깐 남자 둘이 현관문에 우뚝 서있었고 작은 키의 한 사람이
이렇게도 빽빽 소리를 지르고 있었던 것이었다.
"민석이 나 두고 뭐하는 짓이야!!"
그 작은 사람은 부리나케 달려들면서 민석의 어깨를 이리저리 흔들었다.
민석은 귀찮은 듯 목을 닥닥 긁으며 떠지지도 않는 눈을 억지로 뜨면서
'뭐야. 뭐야'만을 읊었다.
같이 있던 키큰 남자는 여전히 현관 앞에서 멀뚱히 서 있었다.
모습만 보면 깍두기 아저씨와 같이 험악하게 생겼고 키는 컸지만 덩치가
더 큰 편이라서 커보이지 않는 비율이었다.
"뭔 일이야? 아침부터..."
졸린 눈을 비비며 민석이 두 사람을 번갈아 보며 이야기 했다.
"오늘 시내에서 사기로 했잖아."
"뭐 뭐였지?"
"그.,,, 그냥 빨리 일어나."
작은 남자는 민석을 탁탁 치며 엄마처럼 일으켜 세웠다.
"으....술 냄새. 씻지도 않았지! 빨리 씻고 나와!"
하면서 민석의 셔츠를 벗겼다. 한 두 번 해본 모습이 아닌 것처럼
너무도 자연스러웠다. 난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려 다른 곳을 쳐다 봤다.
민석의 몸을 보고 있는 게 들키면 안 될 것만 같았다.
2인용 식탁에 나와 작은 사람이 나란히 앉았다.
키큰 사람은 현관에서 신발을 벗고 들어왔지만 여전히
뻣뻣한 모습으로 주변에 서있었다. 난 무슨 죄인이라도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민석은 퍽퍽 물소리를 내며 욕실에서 씻고 있었다.
"서울에서 왔어요?"
난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강남?"
난 그의 눈을 마주치며 또 비슷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가본 적 있죠. 강남~"
작은 사람은 손에 차고 있는 팔찌와 반지를 건드리면서 이야기했다.
본인도 딱히 이야기를 이을 수 없었는지 내려온 머리를 손질만 하고
아무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내 눈을 보고 한참을 뜸들인다.
"저기.... 어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눈에 레이저라도 나올 것 같은 느낌이라 뭐라고 말도 못했다.
벌컥 샤워실 문이 열리고 수건을 들고 머리를 말리는 민석이 데꾸했다.
"무슨 일은! 아무 일도 없었어. 그냥 둘이 술 마셨어."
에구... 이런 말을 하니깐 더 이상했다. 민석은 참 순진한 구석이 있는 것 같았다.
민석은 드로즈만 입은 채로 몸의 물기들을 닦고 머리를 닦고 있었다.
온몸은 정확히 구릿빛의 탄탄한 몸을 갖고 있었다.
그의 몸을 스캔하고 있는 내 눈을 스캔하는 뭔가 느낄 수 있었다.
옆에 있던 작은 남자였다. 거기에 또 레이저가 뿜어져 나올 것 같았다.
"아유 씨~ 옷 빨리 입고 나가자."
"이 분도 같이 가야 해."
"뭐?!!!!!"
작은 사람은 쨍쨍한 칼이 숨어 있는 목소리로 나를 쳐다봤다.
눈이 실명하는 줄 알았다.
"갈아 입힐 옷들이 없거든. 내 옷은 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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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은 병팔이라는 키가 큰 남자가 했고
뒷좌석엔 나와 민석이 앉았다.
그리고 보조석에는 찰스?라는 작은 사람이 앉았다.
찰스가 본명인지 친구들끼리 부르는 닉인지는 모르겠는데
그를 찰스라고 했다.
난 아무 소리 없이 조용히 앉아있었다. 휴대폰이 있었지만 전원이 꺼져 있었고
그 자리에서 켜보기도 싫었다.
찰스는 보조석에서 도착할 때까지 쉴새없이 시시콜콜한 자신의 일상에 대한 얘기를 늘어놨다.
그리고 곁눈질로 나를 흘끔흘끔 쳐다보는 것을 느꼈다.
말하는 뉘앙스나 그들끼리 이야기 하는 중간에는 알아듣지 못한 사투리들이
섞여 있었고 지역적 은어들도 들어 있었다. 난 그 사이에 말을 섞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시내라는 곳에 도착했을 때
난 어디 동남아 관광지처럼 화려한 상권을 기대했지만
너무도 평범한 거리였다. 차가 서고 찰스가 얘기했다.
"둘은 여기서 기다리세요. 민석이랑만 뭐 살게 있어서 그러니깐..."
민석은 이미 계획한 게 있었는지 아무렇지 않게 문을 열고 나갔고
찰스 역시 덩달아 차밖으로 나갔다. 둘은 붙어걸었고
찰스는 자연스럽게 민석의 팔에 팔짱을 끼고 걸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속이 안 좋아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원래 둘이 친해요."
묵묵하던 병팔이란 친구가 갑자기 조용한 차 안에서 소리를 내서 화들짝 놀랐다.
놀란 모습을 보고 병팔이도 같이 놀라는 모습이 보였다.
예상과 같이 목의 울림이 낮았고 생각하는 조폭이미지보다 목소리는
저음의 성악가 같았다. 목소리를 듣고 나니 이미지가 단번에 조폭에서 성악가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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