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바다... 그리고 두 사내(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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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말이 필요 없는게 더 자연스러운 사이도 있는 모양이다.
바로 그와 나 사이 처럼...
선술집에서 소주 두 병을 더 마신 후 밖에 나오니 이미 날이 어둑어둑해져 있다.
제법 술에 취한 듯, 그가 비틀거리며 걷는다.
나는 한 발자국 뒤에서 그를 주시하며 천천히 걷고 있다.
비틀거리며 걷다가 도로 턱에 걸려 넘어질뻔한 그의 어깨를 간신히 붙잡고 일으켜 세운다.
"철호 선배님... 많이 취하셨나봐요"
"흐흐... 나 원래 취할때까지 안마시는데... 오늘 지웅이 동생 덕분에 기분이 좋아서..."
그가 또 비틀거리기에 나는 그의 겨드랑이 사이에 내 목을 끼우고 그의 허리를 한쪽 팔로 감았다.
그가 게슴츠레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한다.
"흐흐.... 지웅아... 나 안취했다니까?"
"네... 선배님 안취하셨어요. 그냥 제가 선배님 팬이어서 한번 안아보고 싶어서 그러는 겁니다."
"팬? 흐흐... 나 같은 놈 뭐 좋아할 게 있다고..."
내뱉은 말과는 다르게 기분은 좋은 모양이다.
나에게 그의 몸을 맡기기로 결심한 듯, 그의 체중이 조금씩 나에게 실려오기 시작한다
"선배님 한창때 인기 정말 많으셨습니다. 아마 모든 씨름 후배들이 다 선배님 팬이었을걸요?"
"그래... 한때 그런 적이 있었지... 아주아주 오래전에..."
생각보다 무거운 그를 지탱하자니 내 다리가 후들거리기 시작한다.
그게 아니면, 내 이상형이 술에 취해 나한테 몸을 완전히 기대고 있는 아찔한 상황 때문인지도...
"선배님... 저기 벤치에 앉아서 술 좀 깨고 들어가시죠?"
이번에는 내가 질문을 가장한 통보를 그에게 하고 있다.
대답없음을 긍정의 의미로 받아 들이고 그를 부축해 아까 우리가 처음 만났던 벤치로 간다.
조심스레 그를 벤치에 앉히고 나도 그의 옆에 앉아 한숨을 돌린다.
고개를 돌려 벤치에 기댄 그를 바라본다.
가쁘게 숨을 내몰아 쉬느라 그의 두툼한 가슴과 배가 들썩거린다.
제법 살이 오른 그의 굵은 허리에 시선이 멈춘다.
방금전까지 내가 그의 허리를 붙잡고 있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지웅아... 왜 안물어 보냐?"
벤치에 등을 기댄 그가 눈을 감은채 뜻밖의 말을 꺼낸다.
"뭘 말입니까... 선배님?"
"세상 사람들 모두가 다 궁금해 하는거..."
"......"
"그렇지? 너도 그게 궁금하지?"
그가 몸을 일으켜 세운 후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본다.
"아뇨... 그런 거라면 저는 궁금하지 않습니다."
단호하게 대답하는 내 말투에 잠시 놀란 표정을 짓던 그의 얼굴에 다시금 삐딱한 미소가 떠오른다.
"후후... 처음이네... 너같은 놈은... 너 도대체 정체가 뭐냐?"
다시금 기로에 섰다. 이번에도 기존과 같은 자세를 취하기로 했다.
머리 굴리지 말고 자연스러운 대화의 흐름에 맡기는 것 말이다.
"저는 그저 선배님 팬일 뿐입니다. 만약... 진정한 팬이라면... 다 저같이 대답하지 않을까요?"
내 대답이 마음에 들었던 것일까? 그가 피식 웃으면서 점점 내 쪽으로 몸을 기대어 온다.
"흐흐... 지웅아... 너 같은 놈은 처음이다... 좋네.... 세상에 아직 너같은 놈도 남아 있어서..."
아예 벤치에 널부러져 내 허벅지를 베게 삼아 누운 채 그가 말한다.
"지웅아... 나 잠깐 눈 좀 붙일게... 너... 나 지켜 줄 수 있지?"
나는 대답 없이 그저 고개를 끄덕였고 만족한 표정의 그는 순식간에
아기처럼 쌔근새근 잠에 빠져 들었다.
무언가 형용 못할 뿌듯한 감정이 나를 휩싸기 시작한다.
고개를 숙여 내 허벅지를 베고 잠든 그의 얼굴을 바라본다.
어떻게 보면 참 말이 안되는 상황이다.
오늘 처음 만난 낯선 남자에게 몸을 맡긴 채 잠들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그의 마음의 벽을 허문게 과연 무엇일까?
술 때문일까? 아니면 같은 운동을 했던 선후배라서?
내가 자기 팬이라서? 그것도 아니면 그냥 우연히 적절한 장소와 타이밍에 내가 나타나서?
꼬리를 무는 질문을 잠시 머리에서 몰아내고 나는 그냥 이 상황을 즐기기로 한다.
그의 잠든 얼굴을 자세히 뜯어본다.
짙은 눈썹, 살짝 찡그린 미간의 주름... 그리고 얼굴의 삼분의 일을 뒤덮고 있는 수염...
수염 사이에 가로새겨진 도톰한 입술까지...
그의 입술을 훔치고 싶다는 열망이 나롤 사로잡기 시작한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숙여 그의 입술 근처까지 갔다가 정신이 버쩍 든다.
자신을 지켜 달라는 그의 목소리가 내 귓가를 맴돌며 메아리치기 때문이다.
그가 지켜달라는 대상이 바로 나 자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식은땀이 흐른다.
"선배... 미안해요... 나도 그저 그런 힘없고 나약한 인간일 뿐인가 보네요..."
그의 귀에 들릴들 말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린 후 그의 털투성이 얼굴에 내 뺨을 살짝 가져다 대본다.
까슬한 느낌과 함께 그의 따뜻한 체온이 전해져 온다.
"으음..."
더워서 였을까, 아니면 가려움을 느껴서였을까...
그가 손을 내려 사각 드로즈 속을 벅벅 긁더니 티셔츠 끝을 잡아 당겨 배를 훤히 내놓은채 다시 잠에 빠진다.
이 모든 과정을 숨죽여 지켜 보던 나...
꽉 죄는 듯한 통증에 아래를 내려다보니 내 반바지 속에 갇혀 있던 그것이 숨막혀 죽겠다는 솟구쳐 올라있다.
"씨.. 발... 진퇴 양난이네..."
둘 중 하나는 해결해야 했다. 어쩔 수 없이 내 손으로 해결 가능한 일부터 해치우는 수밖에...
백팩에서 딱딱한 카메라를 꺼낸 후 공처럼 말았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그의 머리를 손으로 들고 그 아래를 백팩으로 받쳐 놓는다.
자세가 불편했던지 그가 몸을 잠시 뒤척이다 이번에는 팬티 속에 손을 넣은 채 코를 골기 시작한다.
"으음..."
달빛에 비친 그의 모습에 내 정신이 혼미해져 온다.
착 달라 붙는 드로즈 팬티를 뚫고 나올 기세로 그의 성기를 감싼 앞섶이 나처럼 솟구쳐 있다.
"존. 나.... 크네.... 선배 물건..."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터져 나온다.
인정해야만 했다. 이 정도 까지는 아닐줄 알았는데...
그의 사진을 보고 성욕을 느꼈던 그때부터 그는 무의식 속에서 이미 나를 지배하고 있었다.
당장에라도 그의 입술을 훔치고 그의 옷을 벗기고
그의 가슴을 주무르고 그의 젖꼭지를 빨고
그의 우람한 성기를 입에 물고 싶다는 충동이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그래야만 할 것 같다. 그게 가능하면 죽어도 여한이란게 남을까 싶다...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에 누워 있는 내 이상형...
내 환상속 그 남자가 술에 취해 잠들어 있는데...
그를 지금 내것으로 만들면 안될 이유가 단 하나라도 있는가?
갑자기 통제 불가능한 욕망에 사로잡힌 나 자신이 두려워진다.
나는 황급히 돌아서서 바다를 향해 뛰어간다.
팬티와 반바지를 서둘러 내린 후 프리컴이 줄줄 흐르는 내 성기를 꺼내고
미친 듯 피스톤 운동을 시작한다.
"씨... 발... 씨.... 발.... 으윽...."
성욕, 죄책감, 회환, 미련 등... 내가 느낄 수 있는 온갖 감정들이 뒤섞인 혼돈 속에
바다 위로 내 새하얀 정액이 마치 폭죽이 터지듯 흩뿌려진다.
처음 느껴본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나는 힘을 잃은채 파도 속에 무릎을 꿇는다.
달빛에 일렁이는 검은 파도 위로 내 욕망의 찌꺼기가 휩쓸려 가는 모습을 멍하니 쳐다본다.
"으흐흐흑..."
입을 막을 새도 없이 흐느낌이 터져 나온다.
이런 내가 싫어진다.
인간도 아니고 그렇다고 짐승도 되지 못하는 어정쩡한 놈이 바로 나다.
과연 나 자신에게... 내 감정에 백프로 솔직하게 되는 순간은 언제쯤 올까?
아니... 과연 그런 순간이 나에게 오기나 할까?
6.
"어... 내가 왜 여기에..."
아침 햇살이 소나무 틈새를 뚫고 들어와 눈이 부셨던 걸까...
어느새 눈을 뜬 그의 시선이 위에서 내려다보는 내 시선과 맞닿았다.
"선배님... 푹 주무셨어요?"
그가 황급히 몸을 일으켜 세운 후 아직 잠이 덜 깬 듯 두 눈을 꿈뻑거린다.
그제서야 나는 뻐근해진 다리를 주무르며 그에게 말을 건넨다.
"이럴줄 알았으면 모텔에 가거나 형님 숙소로 갈 걸 그랬네요..."
"하하... 내가 밤새도록 동생 허벅지 베고 잠들었나? 어쩐지... 평소보다 잠이 잘 오더라니..."
민망한 듯 머리를 긁적이는 그의 모습이 나이에 맞지 않게 귀엽게 느껴진다.
마치 한마리 곰처럼 두 팔을 번쩍 들어 커다랗게 기지개를 켠 후 그가 나를 보며 말한다.
"동생... 혹시 서울 살아?"
서울에 안 살아도 살아야 한다고 대답해야 할 듯한 분위기.
"네... 송파에 파크뷰라고 조그마한 오피스텔에서 삽니다"
그의 얼굴에 장난꾸러기 같은 그 삐딱한 미소가 다시 떠오른다.
"잘 됐네. 마침 나도 오늘 서울 가야 하는데... 동생 차는 없지?"
역시 차가 있어도 무조건 없다고 대답해야 할 분위기다.
"네... 차가 있으면 뭐하러 이렇게 큰 백팩 메고 다니겠어요?"
"헤헤... 좋네 좋아... 동생은 차비 굳고, 나는 서울 가는 길 안 심심해서 좋고..."
"선배님... 그나저나 속은 괜찮으세요?"
앞장서서 성큼성큼 걷고 있는 그의 뒤를 따라가며 말했다.
"응... 여기서 한시간만 가면 진보에 고기국수 잘 하는 집 있어. 해장은 거기서 하자고~"
"네... 선배..."
오분 정도 말없이 그와 함께 걷다 보니 이곳에서 유일하게 영업중인 리조트 호텔이 보인다.
그가 리모컨 키를 누르자 리조트 앞 주차장에 서 있는 검은색 레인지로버의 비상등이 깜빡인다.
"동생 먼저 타서 에어컨 좀 켜 놓고 있어."
"저기.... 저 에어컨 켜는 법 잘 모르는 데..."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리조트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가버리는 그.
홀로 남겨진 나는 황급히 조수석 안에 들어가 이것 저것 만져 보았으나
더 건드렸다가 고장이라도 날까봐 전전긍긍하고 있을 때 그가 돌아온다.
"뭐야? 동생 외제차 처음 타봐?"
당황한채 땀을 뻘뻘 흘리는 내 모습이 귀여워 보였던걸까,
그가 호탕하게 껄껄 웃으며 차에 시동을 켠 후 에어컨 버튼을 찾아 누른다.
"죄송합니다... 제가 아직 차가 없다보니..."
시원한 바람이 실내를 가득 메우기 시작하자 당황했던 내 마음도 조금씩 차분해지기 시작한다.
그가 재미있어 죽겠다는 표정으로 내 얼굴을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진다.
"적어도 우리 지웅이는 솔직한 놈이긴 하네... 어떤 점에선 미련할 정도로..."
칭찬인지 욕인지 모르겠으나 어제만 해도 그렇게 넋이 나간 채 풀이 죽어 있던 그 사람과
동일 인물이 맞나 싶을 정도로 확 달라진 그의 모습이 반갑게 느껴진다.
그리고 동시에 내 마음 한구석이 아려오기 시작한다.
내가 솔직한 놈이라고 철썩같이 믿고 있는 선배에게 죄책감이 들었기 때문인 걸까...
속도를 높이며 달리는 레인지 로버 차창 밖으로 빠르게 지나가는 풍경만큼이나
어젯밤 만났던 나 자신에게서 벗어나고 싶은 욕망이 꿈틀거린다.
이런 내 마음을 알아챈 건지,
아니면 단순히 목적지에 빨리 도착해 허기를 채우고 싶었던 건지...
그가 액셀 위에 올려 놓은 발에 서서히 힘을 주기 시작한다.
목적지까지 남은 시간을 뜻하는 숫자 59가 조금씩 줄어드는게 그렇게 반가울수 없었다.
(다음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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