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릴레이 소설 19

작성자 정보

  •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본문






  친구들



 유월의 끝 무렵… 대낮이었지만 청래는 변함없이 이태원의 찜질방에 죽돌이처럼 머물고 있었다. 지난번 동준에게 변 아닌 변을 당하고 한동안 숨을 죽이며 웅크리고 있었다. 그래서 종3에는 못 가고 이태원으로 왔는데 그나마 수중에 얼마 있는 돈으로 겨우 버티고 있었다.


= 이럴 줄 알았으면 그때 동준이 주는 돈 그거라도 받아 올 것을...! (뒤 늦게 후회가 더 들었다)


 그래도 이곳에라도 오면, 청래의 대물에 혹해서 가끔 재수 좋게 용돈도 주고 밥도 사주는 초짜들이 있기 때문에 청래에게 파라다이스나 마찬가지였다. 님도 보고 뽕도 따는…


= 동준, 그 인간을 어떻게 앙갚음을 하지라...? 생각할수록 열이 치미겠네! 나가 이리 그냥 물러날 거 같아라! 어림도 없어라!


 청래는 속으로 동준에게 칼을 갈고 있었다. 


 동준은 준(이정구) 과 같이 영철이 운영하는 소주방에 자주 들렀다. 갈 때마다 실내 자리가 좁아 둘은 바깥의 스페셜 테이블을 이용했다. 어떤 때는 실내에 자리가 있어도 일부러 스페셜 테이블이 있는 바깥으로 나가 앉았다. 


 계절은 9월로 접어들어 선선한 게 야외에서 마시기 딱 좋은 시기였다. 동준과 정구는 처음 만난 이후로 급속하게 가까워졌다. 뭐랄까? 영혼까지 서로 맞는 것 같은 그런 느낌...? 아무튼 서로 잘 맞았다. 술과 안주가 나오고 잔이 한 번 돌자 준이 말했다.


- 우리가 만난 지 몇 달 되었지...? 시간이 참 빠르다...!


- 그러게… 벌써 가을이 오려고 하니… 


- 동준아! 오늘 내가 누구 한 명을 초대했어!


- 잉? 누구...? 갑자기 뭔 말이야...!


- 응, 내가 여러 번 말했었지… 이쪽에서 친하게 지내는 친구가 있다고… 나이도 같고… 오늘 너에게 정식으로 인사 시켜주려고… 좋은 친구라 우리 같이 어울리는 것도 괜찮을 거 같아...!


- 그래...? 잘했다! 그러잖아도 언제 한번 같이 보나 했는데, 궁금하기도 했고… 자네가 좋은 사람이라니 좋은 사람이겠지! 하하하...! 참, 뭐 하는 친군 데...?


- 응. 그건 직접 물어보고… 그게 예의가 아니겠어...?


- 어...? 그래, 그렇지… 쏘리...!


 마침 준의 전화가 울렸다.


- 어, 어디야...? OK! 우리 자주 오는 소주방 있지? 그래, 그곳으로 와! 뒤쪽 우리 자리에 있어…


 이내 영종이 도착했다. 영종은 은테 안경을 쓴 전형적인 중년의 스타일이다. 하얀 쟁반에 검은콩을 뿌린 듯 흑백의 조화가 잘 이룬 머리칼 색이 멋지게 어울렸다. 키는 넷 중에서 제일 컸다. 이쪽에서 말하는 스탠의 체격이었는데 사람은 좋으나 인기는 없을 것 같은 그런… 그런데, 사람의 앞 일은 모르는 것이다… ㅎㅎ


- 반갑습니다. 이영종입니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다가오며 손을 내민다…)


- 네. 반갑습니다. 김동준입니다…(일어서서 양손으로 반갑게 잡으며…)


- 나는 소개 안 해도 되겠지...? 자, 자리에 앉자고! 나이도 같고 하니 서로 말 편하게 해...! 내가 그동안 따로 너희들 만나면서 가만 생각하니 함께 어울려도 좋겠더라구...! 어때, 서로 보니 맘에 들어...?


- 뭐야! 친구를 인사 시켜 놓고 뭐 소개팅하냐? 마음에 들고 안 들고 가 어딨어...! (영종의 얼굴이 좀 빨개졌다. 영종은 동준을 보고 첫눈에 맘에 든 것이다)


- 그렇게 말입니다! 하하하...! (동준 또한 처음 보는 영종에게 호감이 갔었다)


- 이 친구들! 첫눈에 서로 반 한 거 아냐? 느낌이 이상한데...? (양쪽으로 번갈아 보며…)


- 뭐라는 거야! 술이나 따라 봐! (영종이 소주잔을 들며 준에게 따르라는 듯…)


- 네, 제가 한 잔 올리겠습니다요! (동준이 농담하며 급히 따른다)


- 어쭈구리! 둘이 지금 뭐 하는 시추에이션이야...? 


 정구가 옆에 있었지만 첫눈에 서로 호감이 가는 마음을 둘은 감추지 못했다. 동준과 영종은 그렇게 시작했다. 대화가 자꾸 둘만의 이야기로 빠져들자 보다 못한 정구가 한마디 했다.


- 너희들 자꾸 나 빼고 놀면 나, 간~다...!


- 잉...? 자네 아직도 안 갔었어...? (동준이 농담으로…)


- 그러고 보니 여태 있었네! 바쁘면 빨리 가...! (영종도 한마디 거든다)


- 와!~ 이거 사람 미치겠네...! 이렇게 의리 없는 친구들일 줄 몰랐네...! (일부러 테이블을 치는 시늉을 한다)


 그때 소주방 주인장 영철이 다른 안주를 하나 가지고 오며 준 편을 든다.


- 왜, 우리 준을 울리고 그래...! 누구야...!


- 아, 글씨! 저 친구들이 오늘 첨 인사 시켜 줬더니 둘이서만 노는 거야…나는 완전 찬밥이라구...!


- 그래? 하하하...! 그러고 보니 둘이 잘 어울린다. 오늘 일부러 자네가 소개팅 한 거 아냐...?


 사실, 준이 둘을 엮어주려고 자리를 만든 것은 아니었다. 서로 알고 지내면 좋겠다 생각이 들어 인사를 시켜 준 것이다. 그런데 의외로 정말 둘이 잘 어울려 보이는 게 은근히 질투가 날 정도였다. 


= 내가 과연 잘한 걸까...? (준은 혼자서 고개를 갸우뚱 했다)


 소주방에서 대여섯 병의 소주를 마시고 셋은 바(bar)로 향했다. 분위기도 좋고 해서 노래를 부르며 한 잔 더 하기로 한 것이다. 금요일 밤의 종로는 언제나 북적거렸다. 요즘은 주 5일 근무해서 그런지 주말보다 목, 금이 더 사람이 많아 보였다. 준이 바(bar)로 가면서 말을 했다.


- 언제, 인천으로 한 번 와! 다 들 회 좋아하지...?


- 회 좋지! 없어 못 먹지...! (영종이 준을 보며…)


- 응, 나도 회 좋아해! 어디 잘하는 데 있어...? (동준도 한마디…)


- 연안 부두 부근에 큰 회센터가 있는데 우리 셋이면 10만원 가지고 배부르게 먹는다! 회도 회지만 스끼다시가 그렇게 잘 나와! 내가 한 번 쏠 테니 모이 자구! 


- 그래? 나 회 무지 좋아해! (동준이 눈을 크게 뜨며…) 


- 스끼다시가 다른 가게처럼 작게 곁 가지로 나오는 게 아니라 주문한 요리 같이 잘 나와… 조만 간에 한 번 뭉치자!


 셋은 즐겁게 보내고 각자 헤어졌는데... 동준이 친구들과 헤어지고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술을 마셨기에 대리기사를 불러 가는 중이었다. 시간은 벌써 자정이 지나고 있었다.


= 이런… 너무 늦게까지 있었네… 마누라가 한 소리 하겠구먼!...


 그래도 즐겁게 보내서 기분이 좋았다. 이상하게 잠이 오지 않아 습관적으로 생각 없이 핸드폰을 꺼내 보았다. 문자가 하나 소리 없이 도착해 있었다. 오늘 처음 만난 영종에게서 온 반가운 문자였다. 2차에서 서로 전번을 주고 받았었다.


+ 동준아! 오늘 너 만나서 반갑고 좋았다. 이런 감정 나 혼자 만은 아니라는 느낌을 나는 받았어! 오늘은 이렇게 헤어지지만 조만 간에 둘이 보자! 조심히 가고… ♥


 동준의 입이 살짝 벌어졌다. 말미에 하트가 있었기 때문이다. 동준 역시 처음 보는 형종에게 호감이 갔었다. 마음 같아서는 둘이 한 잔 더 하고 싶었으나 소개팅도 아닌데 준을 두고 둘이 따로 마시기엔 양심이 좀 그랬었다. 동준도 빠르게 답장을 보냈다.


+ 친구야 나도 너를 만나서 정말 좋았다. 못 난 나를 맘에 든다니 구름에 떠 있는 기분이야! 실은 나도 이렇게 헤어지기가 아쉬웠었다. 하지만 새털 같은 날들이 많잖아! 조만 간에 다시 꼭 보자. 잘 들어가… 


 동준은 머쓱해서 일부러 하트는 넣지 않았다. 혹시, 다시 문자가 오나 싶어 내심 기다렸으나 끝내 답장은 다시 오지 않았다.



 가을로 접어들자 마켓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가을 대목인 추석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재래시장은 재래시장 대로 바쁘지만,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에서 물건을 사는 사람들은 부류가 대부분 정해져 있다. 가운데 샌드위치 같은 처지의 동네 슈퍼마켓은 시장까지 양쪽 다 흡수하는 경우라 그래도 잘 만하면 나쁘지 않은 매출을 올린다. 


 동준이 늘그막에 좋은 친구 준을 만나서 그나마 숨통이 트였는데, 최근에 영종을 알게 되어 살아가는 재미까지 알게 되었다. 그 후로 둘은 둘만의 시간을 자주 가졌다. 그러나 아직 둘은 합방하지는 않았다. 이제 나이가 들어 가면서 좀 더 진지해져 그런 것일까? 둘은 신중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추석을 앞둔 주말에 다시 둘이 만나게 되는데…



 - 응, 어디야? 난 벌써 와 있지...! 그래, 그렇게 조심히 오셔~(영종이 동준의 전화를 받으며…)


 영종이 먼저 도착해서 인사동의 콩 커피점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영종이 앉아 있는 테이블 밑에는 작은 쇼핑백이 하나 놓여 있었다. 예전에 가끔 지나다닐 때에 사람들 앉아 있는 것을 보며, 저렇게 할 일이 없을까? 길가에 앉아서 사람 구경이나 하고 있게… 했던 생각을 떠올리니 웃음이 났다. 


 그런데 지금, 자신이 앉아 있으며 오고 가는 사람들을 보니 이렇게 구경하는 것도 그다지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물원에 가면 사람들이 동물을 보러 간다고 생각하는데, 동물들도 과연 그럴까? 동물들은 인간 구경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


- 언제 온 거야...? (동준이 자리에 앉으며…)


- 온 지 얼마 안 됐어… 뭐 마실래...?


- 아니야, 내가 사 올게! 늦게 왔으니… 


- 그럴래? 그럼 따뜻한 걸로…


- OK...!


- 이제 밤에는 선선하더라…(동준이 커피를 갖고 와 앉으며…)


- 그래… 밤에는 약간 쌀쌀하더라. 이불 덮고 자야 해... 


- 너도 감기 조심해...! 


- 다들 조심해야지… 그나저나 자넨 요즘 바쁘겠다...?


- 그래, 대목이라 좀 바쁘다! ㅎㅎ 추석이 얼마 안 남았잖아!…


- 자네는 고향이 어디야...? 그러고 보니 친구 고향도 모른다. ㅎㅎ


- 난, 서울이지...! 명절이라고 어디 갈 곳도 없어… 자넨, 고향이 어딘데...?


- 응… 부모님께서 북쪽이 고향이야… 뭐, 이젠 돌아가시고 안 계시니… 명절에는 그냥 임진각에나 다녀오고 그래… 살아 생전에 그렇게 고향에 가 보고 싶으셔서 애를 쓰셨는데… ㅠㅠ


- 그렇구나… 이제, 통일되었다고 북으로 가라 해도 몸이 성치 않으셔서 가기가 쉽지 않으실 거야! 다들 살아 계시더라도… 세월이 너무 흘렀다…(동준이 오늘 따라 더 높아 보이는 가을 하늘을 올려다 본다)


- 청승맞게 초반부터 뭔 이런 이야기야! 가자! 저녁 뭐 먹을까...?


- 그래,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자네 좋아하는 갈비 먹을까? 이 부근에 맛있게 하는 데 있어!


- OK! 가자!…


 둘은 부근의 이 층 갈빗집에서 갈비와 참이슬을 주문했다. 기본 음식이 나오고 술을 1잔 따라 마셨다. 명절 앞이라 그런지 가게 손님들이 제법 북적거렸다. 둘러보니 게이 커플이 한두 군데 눈에 띄었다. 영종은 주변을 둘러보고 슬쩍 동준의 눈치를 보더니 갖고 온 쇼핑백을 내밀었다. 


- 자, 이거...!


- 이게 뭐야...? (동준의 약간 놀라는 표정…)


- 뭐긴~ 너 주려고 준비해 온 선물이지...! 받으셔~! 곧 추석이잖아…


- 뭐야, 난 아무것도 준비 안 했는데…(정말 미안해 하는 표정 ㅋ)


- 별거 아냐! 그냥 너 만나고 처음 맞는 추석이라 작은 거 하나 준비했어. 그리고 자네는 챙겨주는 사람이 없잖아… 편하게 받아… 내 마음이야~! ^^


- 야, 이러면 내가 뭐가 되냐! 참… 너의 세심함에 다시 한번 감탄과 존경을 보낸다. 고마워. 하하하...!


 동준은 좀 어색했던지 일부러 우스갯소리를 하며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동준은 이쪽 사람들을 수년 간 만나면서 이런 선물을 받은 적이 없었다. 그저 만나면 술이나 사주고, 얻어 마시고 그게 다였었다. 영종이 집에 가서 반드시, 혼자 있을 때 뜯으라고 했으나 동준이 참지 못하고 선물의 포장지를 풀었다.


관련자료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알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