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우체통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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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린우체통 01
# 학교생활
다이소에서 편지지와 펜을 들고 나오는 교복을 소년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어디론가 향하는 발걸음이 힘이 없어보였다. 아랫입술을 깨무는 소년은 눈물을 참고 있었다.
소년이 도착한 곳은 인적이 드문 공원이었다. 나무 그늘 밑 벤치에 앉아 나무로된 테이블 위에서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자꾸만 아랫입술을 깨물며 눈물을 참아가던 소년은 결국 팔소매로 눈물을 훔쳤다.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어 무언갈 하더니 편지를 곱게 접어 편지봉투에 넣고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또 다시 어디론가 향하기 시작했다.
나무테이블 위에 있던 편지지 포장봉지가 바람에 날아가고 펜도 바람에 날려 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다.
*
전라북도 금진시 금진농업고등학교에 다니는 17살 1학년 정지훈은 오늘도 어김없이 혼자서 등굣길을 걷고 있다.
정지훈은 학교도 싫고 전교생도 싫고 이 학교에 지원해서 오게된 자신마저 싫었다.
"야! 지훈?"
정지훈은 누군가 자기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하고 걸었다. 상대하기 싫었다.
"지훈!! 야 안들려???"
뒤따라오던 녀석은 정지훈과 같은 반인 소인수였다. 무시하는 지훈의 어깨를 붙잡으며 지훈을 살짝 멈춰세웠다.
"미안."
"들려놓고 뭐야.. 같이 가자."
"그래."
귀찮고 싫었지만 지훈은 내색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넌 친구 안사겨?"
인수가 물었지만, 지훈은 딱히 할말이 없어서 대꾸하지 않았다.
"하긴 나도 너같이 공부 잘하는 애였으면 이런 애들하고 친구하기 싫을 것 같아."
지훈은 살짝 언짢기도 하고 의아하기도 해서 멀리 허공을 보던 시선을 인수에게 돌렸다.
"나 공부 못해. 왜 이 학교 왔겠어."
"에이~ 잘하면서. 아니 열심히는 하잖어. 쉬는 시간마다 맨날 수업시간도 아닌데 책보고 있고, 나는 니가 전교 1등할 것 같은데?"
"허..무슨.."
지훈은 어이가 없어 실소가 터져나왔지만, 인수는 그런 지훈의 반응에 개의치않았다.
"너처럼 공부 열심히 하는 애 울학교에 없어. 내가 장담해. 내가 손에 장을 지질게 너 1등 못하면."
단호한 말투에 더 어이가 없어진 지훈은 작게 그 정도는 아니야라고 중얼거렸지만, 내심 자신을 이렇게까지 생각해준다는 것에 대해서 기분이 썩 나쁘지는 않았다. 사실 좋았을 수도.
"야!! X발 소인수!! 담배 피고 매점 온다메! 계속 기다렸는데 X발아!! 왜 먼저 쳐가고 있는건데!"
"아.. 쏘리. 욕 좀 하지말아줄래?"
"응 X 까."
"X신X끼.. 어? 지훈! 아 니 때문에 지훈이 그냥 가잖아."
"지훈이가 누군데?"
"우리반 X따."
"야 말을 왜 그렇게하냐.."
"좀 심했나?"
"아 근데 찐따라고 하니까 누군지 알것같아. X나 웃겨."
"그치? 아. 근데 나 촉 왔다. 필 X나 꽂혀서 가만히 있질 못하겠더라."
"X신. 아웃겨. 또 뭔데?"
"지훈이 전교 1등할 것 같아."
"무슨 전교 1등? 쟤 쌈 잘해?"
"아니 X신아. 시험. 중간고사 말하는거여."
"아.. 뭔가 했네. 아웃겨 X발."
지훈은 이미 인수하고 인수의 친구하고는 등을 지고 멀어졌지만, 큰소리로 떠들어대며 뒤따라오는 둘의 목소리가 자꾸만 귀에 들어왔다. 잠시 뿐이지만 자신을 좋게 봐준것 같았던 인수에게 실망하고 말았다.
'에휴.. 짜증나..'
사람같지도, 아니 학생답지도 않은 애들은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학교를 무슨 담배피러 온건지 밥만 쳐 먹으러 온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제일 후회가 되었던 공부를 열심히 하게 되었다. 중학생때는 하지도 않았던 공부를 지금와서라도 열심히 하겠다며 수업시간이 끝나면 간단히 배운것을 정리하고 집에가서 복습을 하기 위해 가방에 교과서와 공책을 넣었다. 그리고 다음 수업을 준비한다. 미리 나갈 진도를 예상해 교과서를 읽어보는 것이 지훈의 쉬는시간이었다.
4번째 쉬는종이 울리면 애들은 정신없이 교실을 뛰쳐나간다. 하지만 지훈과 몇아이들은 교실에 남아 있는다. 그리고는 30분 뒤 먼저 밥을 먹고 돌아오는 애들이 반으로 들어올 때 마다 남아있던 애들이 옹기종기 짝을 이루어 교실을 느긋하게 나선다.
하지만 지훈은 혼자서 짝이 없이 교실을 나섰다.
덩치크고 사납고 거친 애들의 새치기 때문에 힘없고 약한 아이들, 싸움을 싫어하는 애들은 거친 애들을 피하기 위해 조금 늦게 밥을 먹으러 간다.
지훈도 마찬가지이다. 그치만 지훈은 혼자다. 지훈에게는 친구가 필요없기 때문이다. 혼자서 밥을 먹고 돌아와 양치를 하고 자리에 앉고 수업준비와 약간의 예습이 끝나면 시끄러운 점심시간이 끝이나고 수업이 시작된다.
3번의 쉬는 종이 더 울려야 모든 수업이 끝나고 청소시간 된다.
청소를 하는 애들 따로 노는 애들 따로다. 어찌저찌 시간은 흐르고 청소는 우여곡절 끝에 마무리가 된다.
종례시간은 항상 행복하다. 지훈의 말 없고 웃음 없는 학교생활 중 옅은 미소를 짓는 아주 짧은 순간이다.
기숙사로 향하는 아이들이 있는 반면 학교앞 차도 쪽 버스정류장으로 향하는 아이들이 있다. 아이들은 버스정류장에 정차 중인 시전시로 향하는 고속버스를 탄다. 그 중 한명이 지훈이다. 지훈이가 거의 맨 먼저 버스를 탄다. 나머지 아이들은 매점에 들리고 종례가 늦어 조금 늦게 버스에 탄다.
1학년인 지훈은 앞에서 두번째 좌석이 고정석이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자신의 옆에 앉는 다른반 남학생.
지훈이 요새 많이 신경쓰고 있는 이 아이의 이름은 안하진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지훈의 옆자리에 앉았다. 지훈은 혹시라도 자신의 옆자리에 다른 아이가 앉을까 조마조마하며 하진을 몰래 기다렸다.
다행이다. 하진이 자신의 옆에 앉았고, 지훈은 심장이 마구마구 뛰기 시작했다. 허벅지 옆이 닿아 하진의 온기가 느껴졌다. 지훈 이대로 시간이 멈추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왜 우리 반에는 이런애가 없는거지.'
지훈은 매번 집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생각한다. 그렇게 숨막히고 혼자서 별의별 생각을 다하다보면 시전시에 도착하자마자 맨먼저 내려버리는 하진이 덕분에 많이 아쉽고 서운한 지훈이다.
지훈은 맨 마지막에 내린다. 버스안에서 미친듯이 고민하고 생각하고 있다보면 자신의 집 앞에 도착하는 버스가 괜히 야속하면서 좋다.
항상하는 고민은 말을 걸까 어떻게 걸까 망하면 쪽팔리면 이상한애가 되면 어떡하지.
맨날 고민하면서 해답은 나오지 않고 집에 도착한다.
집에 도착한 지훈이는 저녁을 대충 차려먹고 샤워하면서 교복을 빨고 탈수를 하고 널고 나서야 책상에 앉는다.
오늘 있었던 수업의 교과서를 무거운 가방에서 꺼내 정리한다. 순서를 정하고 그 순서대로 복습을 시작한다. 마무리가 되면 내일 수업이 있는 교과서를 무거운 가방에 넣는다.
그리고는 스마트폰을 만져본다. 연락온 곳이 없어 보였지만 숨겨놓았던 잭디에는 연락이 와 있었다. 이상한 녀석이 요새 자꾸 메세지를 한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동갑인데 말놓을게
-답이 없네
-어디 살아?
-가까운거 보니까 시전? 무슨동?
-너 왜 자꾸 읽씹해?
-괜히 섭섭하다..
-근데 차단은 안하네?
할게
-안돼 하지마ㅠㅠ 안하는 것 같은데
-뭐야? 안녕?
-안녕?
-살아있니?
-아 학교 싫다..
-양아치새끼들도 담임도 다 싧다..
그 동안 보내온 내용 맨 밑에 아까 1시간전 보내온 새로운 메세지를 읽었다.
-너 금진농고 맞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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