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는 기차가 없다 -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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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학기와 용주는 자주 가던 모텔에서 오랜만에 뜨거운 밤을 보냈다. 너무나 익숙하게 서로의 성감대를 찾아 집중 공략을 하고, 학기는 용주의 은밀한 곳으로 들어가 다시 하나가 되었음을 알렸다. 학기와 용주는 눈물로 얼룩졌던 그림에 하얀 물감을 풀어내어 다시 새롭게 완성시켰다.


  “학기야, 우리 여행갈까?”


  “당연히 가야지. 어디로 갈래?”


  “너 가고 싶은 데로.”


  “나도 제주도 가고 싶은데....”


  “그건 좀.... 거기 가면 싸운 기억만 떠오를 거 같애.... 제주도에는 기차도 없잖아....”


  “그러면.... 목적지 정하지 말고 기차만 타고 다닐까? 아무 기차나....”


  “좋아.”


  “근데 형....”


  “왜?”


  “나 진짜 궁금한 거 있는데 물어봐도 돼?”


  “뭘 물어볼지도 모르는데 된다 안 된다 대답할 수 없잖아. 뭐? 뭐가 궁금해?”


  “왜.... 헤어졌어?”


  용주는 얼굴에 살짝 미소를 띄우고 쿨하게 대답했다.


  “발기부전.”


  “엥? 그게 말이 돼? 형 조ㅈ도 크고 조ㅈ나 단단하잖아. 빨기도 전에 발딱발딱 잘 서는 사람이 그걸 나한테 믿으라고? 말 못할 사정이라도 있는 거야?”


  “진짜야.... 제주도에 기차가 없듯이....”


  용주는 학기의 자지를 움켜쥐고 말했다.


  “걔한테는 조ㅈ이 없잖아.”


  “진짜 안 섰어?”


  “응.”


  “그럼.... 결혼하고 한 번도 섹스를 안 한 거야? 그건 아니지?”


  “한 번도 안 했어. 걔 입장에서는 못한 거겠지. 진짜 안 섰으니까.... 그쪽 집에서 사기 결혼이라고 난리 난리를 쳤어. 우리집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 또 난리를 쳤고.... 무슨 고자를 결혼시킬 생각을 다했냐고 그쪽 집에서 먼저 깠어. 그래서 내가 우리집 식구들한테 말했지. 한 번도 경험이 없어서 나도 고잔 줄 몰랐다고.... 거짓말은 아니잖아. 진짜 여자랑 한 번도 안 해봤으니까.... 이혼 얘기 나올 때는 생난리를 치면서 집안 망신 다 시켰다고 하던 울아버지도 내가 고자라니까 한숨 쉬면서 누그러지더라.... 어쩌겠어. 아들이 발기가 안 되는 고자라는데.... 요즘 울아버지 보면 좀 그래. 어머니 돌아가시고 나서 힘이 많이 빠지셨어. 이참에 나도 독립할까 싶었는데 다시 집에 들어갔어.”


  “잘했어. 그럼 집안일은....”


  “옛날부터 도와주시는 아주머니 오셔. 누나들도 자주 들르니까 괜찮아.”


  학기와 용주는 오랜만에 기차 여행을 떠났다. 이틀 내내 기차만 타고 다녔다. 말도 별로 하지 않았다. 사실 말이 별로 필요 없었다. 기차 안에서 학기와 용주는 손을 꼭 잡고 창밖의 풍경을 바라봤다. 학기도 용주도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지 않았다. 두 사람의 시선은 서로를 마주보거나 같은 곳을 향하고 있었다.


  그렇게 새 천년을 떨어지지 않고 함께 지냈다. 점심에는 용주가, 저녁에는 학기가 전화를 해서 서로의 일상을 묻고, 주말이 되면 만나서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영화를 보거나 섹스를 했다.


  학기가 서른네 살이 되던 2005년 가을, 학기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학기의 고향에서 상을 치렀으므로 용주가 매일 옆에 붙어 있지는 못했지만 마지막 밤은 학기의 옆에 함께 있었다. 학기는 용주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학기와 용주 사이는 그런 말을 할 필요가 없었다. 학기는 상속 받은 약간의 유산을 밑천 삼아 단칸 자취방에서 독립된 원룸으로 거처를 옮겼다. 학기가 혼자 살아도 섹스를 하고 씻는 것이 불편해 모텔을 전전하던 두 사람은 더 이상 모텔에 가지 않아도 되는 것을 기뻐했다. 오래된 연인답게 소강상태를 보이던 섹스가 다시 활발해질 법도 했으나 원룸에 딸려 있던 침대가 너무 작고 불편했다.


  학기는 용주와 함께 침대를 장만하기 위해 백화점을 찾았다. 학기는 인터넷으로 적당한 것을 주문하자고 했지만 용주가 직접 누워 보고 사야한다고 우겼기 때문이었다. 백화점에 간 김에 학기와 용주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아기자기한 살림살이들을 구경했다.


  “용주야.”


  학기와 용주는 소리가 난 곳을 향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여긴 어쩐 일이야?”


  “백화점에 어쩐 일이긴.... 뭐 사러 왔지....”


  학기는 용주와 얘기하는 여자를 유심히 살펴봤다. 낯이 익은 듯 했다. 여자도 학기를 유심히 바라봤다.


  “얘는.... 내 친구.... 학기야, 인사해. 셋째 누나.... 얘는 내 조카.”


  “안녕하세요.”


  학기는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용주의 누나도 고개를 숙여 학기의 인사를 받았다. 용주는 지갑에서 만 원짜리 두 장을 꺼내 조카에게 용돈을 줬다. 그러는 동안에도 용주의 누나는 학기에게서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학기는 그 시선이 부담스러워 딴청을 피웠다. 용주가 약간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뭐해? 안 가?”


  누나는 여전히 학기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용주에게 물었다.


  “다음 주에 식구들 모이기로 했는데.... 넌 안 올 거지?”


  “당연한 걸 묻고 그래.... 그럼 나 먼저 간다.... 삼촌 갈게.”


  용주는 조카에게 손을 흔들고 용주와 함께 자리를 떴다. 용주의 표정이 약간 어두워 보여서 학기가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용주에게 말했다.


  “형 누나 참 이쁘네. 저번에 보니까 다른 누나들도 이쁘던데....”


  “이쁘긴 뭐가 이쁘냐? 완전 아줌마들인데....”


  “근데 식구들 모이는 데는 왜 안 가?”


  “내가 거길 왜 가? 너 만나야지.”


  “자주 모이는 것도 아닐 거잖아.”


  “자기네들끼리 걸핏하면 모여. 가봐야 지들 자랑에 자식 자랑하느라 바쁜데 내가 가서 뭐하게. 하나밖에 없는 처남이 고자라서 위로한답시고 매형들이 불쌍하게 바라보는 거 조ㅈ나 짜증나. 지들이 잘나가면 얼마나 잘나간다고 내가 명절에 조카들 용돈 챙겨주면 선생 월급에 뭐냐고 다 뺏어서 돌려준단 말야. 조ㅈ나 재수 없어.... 너도 어머니 돌아가셨을 때 그 진상들 다 봤잖아.... 그나마 셋째 누나가 나 좀 챙겨 주니까 내가 아는 척 한 거지, 다른 누나들이었으면 생까고 그냥 갔어.”


  학기는 용주가 말한 진상들을 한 번 더 만났다. 학기가 서른아홉이 되던 2008년의 어느 초여름, 용주의 아버지가 돌아가시던 때였다. 이미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던 터라 용주는 덤덤하게 상을 치렀다. 그래도 학기는 예전처럼 월차를 내고 용주의 곁에 있었다.


  용주가 한 번에 몰려온 동료 교사들을 접대하느라 바쁜 동안 혼자 남겨진 학기는 신발을 꿰어 차고 바깥으로 나갔다. 어머니와 같은 곳에서 상을 치른 터라 용주가 예전에 한참을 울었던 등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 학기는 담배를 피워 물었다.


  “옆에 좀 앉아도 될까요?”


  용주의 셋째누나였다. 학기는 서둘러 일어서서 담배를 껐다.


  “네. 앉으시죠.”


  용주 누나가 벤치에 앉는 것을 보고 학기도 옆에 나란히 앉았다.


  “우리 예전에 백화점에서 본 적 있죠? 기억 못하실라나....”


  “아닙니다. 기억합니다.”


  “어머니 돌아가셨을 때도 왔었죠?”


  “네.”


  “용주가 여기 앉아서 울던 거 아직도 생생해요.... 용주 성격에 자기 때문이라고 엄청 자책했을 건데.... 고마워요. 그때 용주 옆에 있어줘서....”


  “제가 뭘요.... 친구 어머님 돌아가셨는데 당연히 와야죠.”


  “그때 저러다 쓰러지면 어쩌나 싶었는데, 그쪽.... 실례지만 이름이 어떻게 되죠?”


  “학기입니다. 정학기.”


  “암튼 학기 씨 덕분에 밥도 먹고 해서 다행이다 싶었어요. 그리고 백화점에서 봤을 때도.... 부모님도 그렇고 우리도 그렇고 용주가 아픈 손가락이거든요. 혼자서 어떻게 사나 싶어서요.... 근데 백화점에서 용주가 학기 씨랑 같이 있는 거 보고 안심이 됐어요. 용주가 어릴 때 빼고 그렇게 밝게 웃는 거 처음 봤거든요. 이런 거 물어봐도 될지는 모르겠는데.... 혹시 결혼하셨어요?”


  “아뇨.”


  “음.... 오해 하지 말고 들으세요.... 앞으로도 결혼 안 하실 거죠?”


  “네.”


  “다행이네요.... 아~ 제가 실수한 것 같습니다. 제 말 뜻은....”


  “아닙니다. 알아 들었습니다.”


  “혹시.... 용주 결혼할 때 왔었어요?”


  “네.”


  “후~~~~ 두 사람 다한테 못할 짓이었겠네요. 다 웃고 좋아하는데, 용주만 표정이 어두운 거 보고 눈치를 챘어야 했는데.... 용주가 어릴 때부터 잘생겨서 인기가 많았거든요. 누나니까 동생 자랑하는 거 이해해 주세요.”


  “아닙니다. 지금도 잘생겼는걸요. 누님들도 다 그렇고.... 인물 집안인가 봐요.”


  “호호호 그런 말 들으니까 기분 좋네요. 암튼 용주가 중고등학교 다닐 때 여학생들한테 용주 찾는 전화도 많이 왔어요. 집 앞에 기다리는 애들도 있었고.... 그것 때문에 용주가 많이 혼났어요. 공부 안 하고 여학생들 하고만 놀러 다닌다구요.”


  “공부 잘한 거 아니었어요? 국어교육과 들어가기 힘든데....”


  “그렇죠. 근데 돌아가신 분들 욕심에 안 차니까.... 서울에 있는 국립대 가서 석박사 따고 대학에 눌러 앉기를 바라셨으니까.... 유일한 아들이잖아요. 근데 용주는 오래 공부하는 거 싫어했거든요. 그래서 타협을 본 게 사범대였어요.... 어릴 때부터 인기가 많았으니까 대학가면 본격적으로 연애도 많이 하고 그러는 줄 알았어요. 맘 편히 혼자 산다고 할 때 알아봤어야 했는데.... 결혼하고 헤어질 때 연애 한 번 안 해봤다는 얘기가 믿기지 않았어요. 서른도 훌쩍 넘은 나이에 자기가 어떤지 몰랐다는 게 말이 안 되잖아요. 다른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어머니 장례식 때는 정신이 없어서 몰랐는데, 백화점에서 만났을 때 확실하게 느꼈어요. 학기 씨가 그 이유라는 걸....”


  학기는 아무 말 없이 다음의 말을 기다렸다.


  “그때.... 백화점에서 만났을 때 제가 학기 씨 뚫어지게 봤던 거 미안해요.”


  학기가 손사레를 치며 말했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다행이네요.... 학기 씨 보니까 듬직하니 참 보기 좋아요. 믿음직스럽고.... 용주가 넓은 어깨에 기댈 수 있는 사람 제대로 만났구나 싶어서 누나 된 입장으로 마음이 놓여요. 이렇게 힘들 때 곁에 있어주니까....”


  “형도 저 힘들 때 옆에 있어 줬어요.”


  “호호호 학기 씨가 용주랑 친구 아니라는 거 밝혀 버리네요. 아무렴 어때요. 좋은 사람들이 만나서 함께 어울려 살면 그게 좋은 거죠.... 근데 슬슬 또 걱정이 되네요. 우리하고 거의 담 쌓고 지냈는데, 이제 아버지도 돌아가셨으니 이제 용주 혼자 남았으니까요. 학기 씨.... 제가 부탁 하나 드려도 될까요?”


  학기는 용주의 누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용주.... 곁에 계속 있어 줄래요?”


  학기는 누나의 얼굴을 보고 단호하게 말했다.


  “네. 형한테 어떤 일이 생겨도 옆에 있을 거에요. 형도 그럴 거구요.”


  “든든하네요.... 마지막으로 하나만 물을 게요. 이런 거 묻는다고 욕하지 마세요. 그냥 세속적인 아줌마라 생각해 주세요.”


  학기는 누나의 질문을 기다렸다.


  “우리 용주.... 남자 구실은 제대로 하는 거죠?”


  누나의 질문이 떨어지자마자 학기가 크게 웃었다.


  “웃어서 죄송합니다.... 네 정말 좋습니다. 저도 세속적으로 말씀 드리면.... 그때 백화점에 침대 사러 갔던 겁니다.”


  “호호호 다행이네요.... 그나저나 용주 언제 만난 거에요?”


  “형이 스물아홉 때요.”


  “십 년이 넘었네요. 그런 것도 모르고 억지로 결혼을 시켰으니.... 그럼 용주가 결혼하고도....”


  “아뇨. 그땐 제가 피했습니다. 그러면 안 될 거 같아서요.”


  “학기 씨 마음 많이 아팠겠네요.”


  “형이 저 잊고 알콩달콩 잘 살기를 바랐어요. 그게 형을 위해서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거였습니다.”


  “학기 씨 참 좋은 사람이네요. 용주가 사람 보는 눈이 있나 봐요....”


  대화가 마무리 될 때쯤 용주가 한 무리의 사람들을 전송하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곧장 등나무 벤치 쪽으로 다가왔다.


  “누나가 여기 왜 있어? 둘이 무슨 얘기한 거야?”


  “너 욕했다 왜? 그럼 안 돼?”


  용주가 진짜냐는 표정으로 학기를 바라봤다.


  “형 진짜 인생을 왜 그딴 식으로 살았냐? 이제라도 좀 누님들한테 잘해.”


  용주가 누나를 노려봤다. 누나는 용주의 시선을 외면한 채 자리에서 일어나 학기에게 말했다.


  “그럼 부탁 좀 할게요.”


  누나는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용주에게도 한 마디를 던졌다.


  “너도 이제 마흔 넘었으니까 담배 좀 끊어.”


  “당신 의사 남편이나 걱정해. 지금 술에 쩔어서 진상 부리고 있어.”


  누나가 돌아간 뒤, 학기와 용주는 벤치에 앉아 담배를 피워 물었다. 학기가 먼저 말을 꺼냈다.


  “누님 참 좋으신 분이네.”


  “응. 셋째 누나가 제일 사람답지. 뭔가 좀 아는 거 같기도 하고.... 다른 식구들이 나한테 결혼하라고 난리칠 때 셋째 누나만 안 그랬거든.... 용주 쟤도 무슨 말 못할 사연이 있겠지.... 그러는데 좀 섬찟했었어.... 그나저나 누나랑 무슨 얘기했어?”


  “형 어릴 때 얘기했어. 여학생들한테 인기 조ㅈ나 많았다고.... 근데 고자라서 결혼도 못하고 혼자 어떻게 살까 싶어서 걱정이라고 나한테 하소연하더라.”


  “셋째 누나니까 그래.... 근데 뭐가 걱정이야. 니가 있는데.... 학기야....”


  “응?”


  “너나 나나 이제 고안데....”


  “우리가 애냐? 고아는 무슨 고아.... 고어른? 고성인?”


  “암튼 이제 우리 둘 다 혼자 남았는데....”


  학기는 용주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우리 같이 살까?”


  학기는 너무 갑작스러운 말이라 쉽사리 대답을 하지 못했다.


  “왜 대답이 없어? 같이 사는 거 싫어?”


  “그게 아니라....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그래.... 그럼 지금부터 생각해 봐. 너만 오케이 하면 돼.”


  다음날, 학기는 추모공원까지 용주와 동행했다. 용주가 화장실에 간 사이 용주의 셋째 누나가 학기에게 다가와 명함을 건네며 말했다.


  “이거 제 연락처에요. 그럴 리는 없겠지만 혹시 무슨 일 생기면 연락하세요.”


  학기는 집에 돌아와 고민에 빠졌다. 용주와 함께 사는 것이 화두였다. 깊이 생각할 필요 없이 함께 살고 싶었다. 하지만 쉽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었다. 20년을 혼자 살아서 그것에 너무나 익숙해 있기 때문이었다.

  한 달에 두세 번 용주와 함께 잘 때마다 학기는 평온함을 느꼈다. 팔베게를 해 주고, 서로 얼굴을 맞대고 사랑을 속삭이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이었다. 10년을 넘게 만나면서도 용주와 함께 자는 날을 손꼽아 기다릴 만큼 가슴 설레는 일이었다.

  하지만 매일 한 침대에서 자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이벤트 성격이 아니라 일상이 되는 것이었다. 지금까지는 갈등이 있을 때면 잠시 떨어져 있다가 서로가 너무 그리워서 다시 맞붙곤 했는데, 매일 얼굴을 맞대고 살다보면 싸우는 일도 많아질 것이고, 잠시라도 떨어져서 서로에 대해 생각해 볼 여유도 사라지는 것이라 섣불리 결정을 할 수가 없었다.


  용주의 여름방학을 앞둔 주말, 마트에 들러 이것저것을 사서 저녁을 함께 해 먹었다. 늘 사먹는 것에 익숙한 학기는 원룸에 살게 되었어도 밥을 해먹을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용주는 달랐다. 요리책을 사서 그대로 따라하며 이것저것을 만들었다. 학기는 물론이고 용주도 요리를 처음 해보는 것이라 모든 것이 서툴렀지만 용주는 즐거워했다.


  “우리 이러고 있으니까 꼭 소꿉장난 하는 거 같지?”


  “그렇긴 하네.... 형 조심해. 소꿉장난 칼이 아니잖아.”


  처음에는 불조절을 못해서 태워 먹기가 일쑤였으나 날이 갈수록 나아지고, 1년이 지나면서부터는 요리책 따위는 쳐다보지도 않고 뚝딱뚝딱 만들었다. 학기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어서 함께 돕다 보니 실력이 늘었다. 매일 아침 우유에 식빵 쪼가리만 먹고 출근하던 것에서 탈피하여 밑반찬을 만들어 놓고 간단히 아침을 챙겨 먹는 것으로 습관이 바뀌었다.


  토요일 오후부터 일요일 저녁까지 용주와 함께 있다가 학기는 월요일 아침 출근을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데 잠이 오지 않았다. 이리 뒤척 저리 뒤척 침대 위를 굴러 다녔다. 덩치가 큰 학기가 뒹굴어도 자리가 남을 만큼 킹사이즈 침대는 컸다. 용주에게 팔베개를 해주면 용주가 가슴을 토닥이고, 그러다보면 어느새 잠이 들곤 했던 것이 떠올랐다. 학기는 휴대폰을 들었다.


  “잠 깨운 거 아니지?”


  “응. 근데 이제 자려고 누웠어.... 근데 왜 전화했어? 아까 헤어질 때 잘 자라고 했잖아.”


  “잠이 안 와서....”


  “내가 자장가 불러줄까?”


  “전화로 무슨.... 형....”


  “응?”


  “우리집에 다시 올래? 내가 가고 싶은데 형 침대는 작잖아.... 와서 자장가 불러줘.”


  “진짜?”


  “응. 택시 타고 와. 내가 택시비 줄게. 내일 아침에 같이 출근하자.”


  “알았어. 지금 바로 달려갈게.”





-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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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span class="sv_wrap"> <a href="https://ivancity.com/bbs/profile.php?mb_id=monkey1122" data-toggle="dropdown" title="maneating 자기소개" target="_blank" rel="nofollow" onclick="return false;"> maneating</a> <ul class="sv dropdown-menu" role="menu">님의 댓글

  • <spa…
  • 작성일
ㅎㅎ 아주 잘된 것 아닌가 하는 마음도 있고
셋째누나가 두 사람 사이를 이해 하니 다행이지만
혹여 그것이 나중에 두 사람 사이에 문제가 되지 않을까 걱정도 하면서~~
잘 읽고 갑니다.
비가 엄청 옵니다.
건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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