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는 기차가 없다 -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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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학기는 용주가 오는 동안 고민하던 것을 정리했다. 용주가 침대 위에 올라와 학기의 팔을 베고 누웠을 때 학기는 용주에게 물었다.
“형.... 만약에 우리 같이 살면.... 자주 싸우지 않을까?”
“그게 걱정 돼서 지금껏 고민한 거야?”
“응.”
“우리 부모님은 맨날 싸워도 30년 넘게 같이 살았어. 니네 부모님도 마찬가지잖아.”
“그렇기는 한데.... 우리는 자식이 없잖아. 자식 때문에 같이 산 것도 있을 텐데....”
“그럴 수도 있겠네.... 만약에 싸우면.... 내가 나갈게.”
“같이 살면 형집에 살아야 되는데 형이 왜 나가.... 내가 나가야지.... 근데 나가기 싫을 거 같애.”
“그럼 나가지 마. 싸우다 보면 한 놈이 먼저 죽겠지. 그럼 된 거 아냐. 난 맨날 싸워도 너랑 같이 살고 싶어. 이 정도 만났으면 우리 거의 부부 아냐?”
“하긴.... 남녀 커플이었으면 결혼을 하고도 몇 번은 했겠다. 이혼하고 재결합 하고 이혼하고 재결합하고....”
“학기야....”
“응?”
“우리 결혼하자.”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내가 결혼 해봐서 아는데 그거 별 거 아냐. 멋진 옷 입고, 인증샷 찍고, 여행 갔다 오면 끝이야. 혼인신고는 진짜 결혼해도 안 했는 걸 뭐.... 지금에야 말하는 건데.... 나 결혼식 할 때 너랑 같이 턱시도 입고 나란히 서 있는 상상했었어. 나는 어쩌다보니 한 번이라도 입어 봤지만 너는 한 번도 안 입어 봤잖아. 턱시도 입으면 자기가 세상의 주인공 같은 느낌이 들어.... 우리 같이 턱시도 입고 사진 안 찍을래?”
“찍고 싶긴 한데.... 찍어주는 사람이 있을까?”
“찾아보면 없겠냐? 그 사람들 돈벌인데.... 사진 찍어서 거실 한 가운데 걸어 놓고 싸울 때마다 사진 보면 되잖아. 일 년에 한 번씩 사진 찍어서 액자 바꾸고.... 사진 찍고 나면 기차 타고 여행가고....”
용주가 벌떡 일어나 앉아 학기도 일으켜 앉혔다. 그리고 용주에게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정학기 씨.... 나랑 결혼해 줄래요?”
학기는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나랑 결혼해 주면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살게 해 줄게요. 검은머리 파뿌리가 될 때까지 사랑해 줄게요. 밑져야 본전인데 속는 셈 치고 나랑 결혼하시죠?”
“이용주 씨.... 저 돈 없어서 혼수도 못하는데 몸뚱이 하나랑 숟가락 젓가락만 들고 가도 돼요?”
“짠돌이 정학기 씨. 그건 안 되죠. 양심이 좀 있으세요. 내가 집을 했는데 집 안은 당신이 전자제품으로 가득 채워야 되는 거 아니에요? TV도 사고, 냉장고도 사고, 세탁기도 드럼으로 사고.... 연봉도 나보다 더 많으면서.... 6월에 성과급 조ㅈ나 많이 받은 거 알아요. 그동안 제법 모아 놓은 거 이번에 좀 쓰시죠?”
“전자제품 바꾸려고 나보고 같이 살자고 그랬냐?”
“씨.발 들켰네. 뚱뚱한 게 눈치는 빨라 가지고....”
“그럼 다음 주말에 하이마트 가자. TV도 사고, 냉장고도 사고, 세탁기도 드럼으로 싹 다 바꿔 줄게.”
“그걸 또 다큐로 받으면 어떡하냐? TV만 큰 걸로 바꾸면 돼. 다른 건 다 있어.... 근데 진짜 중요한 거 하나 더 있어.”
“뭔데?”
“반지.... 다른 건 몰라도 반지는 하고 싶어. 너랑 나랑 이니셜 새긴 거....”
학기와 용주는 학기의 여름휴가 때 살림을 합치기로 했다. 어차피 용주는 방학이라 시간이 많았으므로 모든 스케줄은 학기에게 맞췄다.
가장 먼저 반지를 맞췄다. 그리고 용주가 어렵게 섭외한 스튜디오에서 반지를 끼고 턱시도 차림으로 사진을 찍었다. TV를 새로 큰 것으로 들여 놓고 학기의 여름휴가가 시작되는 토요일에 학기가 이사를 했다. 집 정리의 마지막은 두 사람의 모습이 담긴 사진 액자를 벽에 거는 것으로 마무리 지었다.
살림을 합친 첫날밤에 학기와 용주는 섹스를 하지 않았다. 결혼이 완성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아직 한 가지가 남아 있었다.
월요일 아침, 학기와 용주는 함께 동사무소를 찾았다. 학기의 전입신고를 위해서였다. 신고를 마치고 학기와 용주는 주민등록등본을 새로 발급받았다. 비록 동거인의 형식이긴 하지만 용주의 인적 사항 밑에 학기의 인적 사항이 기록되어 있었다. 같은 주소로 된 집에 함께 산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것이었으니 학기와 용주는 아쉽지만 이것을 혼인신고라고 생각했다. 형식이야 어찌 되었든 의미는 부여하기 나름이었다.
서둘러 집으로 돌아와 신혼여행을 가기 위해 전날 싸놓은 캐리어를 들고 공항으로 향했다. 목적지는 일본이었다. 신혼여행인데 기차를 타고 국내여행을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일본에서 기차를 타고 다니며 여행을 할 계획이었다. 철도가 발달된 일본은 기차여행을 좋아하는 학기와 용주에게 딱 알맞은 신혼여행지였다.
학기와 용주는 해외여행이 처음이었다. 새로 발급을 받은 여권에 출국 스탬프가 찍힌 것을 보고 학기와 용주는 감격을 했다. 탑승 시간까지 기다리는 동안 여권에 찍힌 스탬프를 계속 바라보다 용주가 한 마디를 던졌다.
“학기야, 우리 여기 빈 공간에 똑같이 도장 찍으면서 살자.”
“응. 조ㅈ나 신기해.... 그나저나 형.... 잘 찾아갈 수 있지?”
“걱정 마. 공부 조ㅈ나 많이 했어.... 학기야, 나 흥분돼.”
“나두.”
후쿠오카 공항에 내린 학기와 용주는 입국 수속을 마치고 곧바로 하카다역으로 가서 북규슈 레일패스를 발급받고 미리 예약을 해 둔 승차권도 발급받았다. 용주는 아무런 문제없이 신속하게 일을 진행해 나갔다.
“형.... 정말 처음 온 거 맞아? 일본어 하나도 모르잖아.”
“공부 조ㅈ나 많이 했다니깐.... 다 한자니까 어려운 것도 없네 뭐.”
학기는 용주의 뒤만 졸졸 따라다니다 유후인 노모리 열차에 올랐다. 목적지는 온천으로 유명한 유후인에 있는 료칸이었다. 그동안 여행을 다니면서 최대한 돈을 아껴 썼지만 신혼여행 첫날밤이기에 개별 노천탕이 딸린 곳으로 예약을 한 것이었다.
료칸에 도착하자마자 유카다로 갈아입고 료칸에 마련된 온천을 순례한 뒤 저녁 식사로 화려한 가이세키 요리를 먹었다. 료칸에 어둠이 깔리고 있었다. 학기와 용주는 객실로 돌아와 유카다를 벗어 던지고 객실에 딸린 노천탕에 들어앉았다. 한여름이었지만 나무로 둘러싸인 곳이라 제법 운치가 있었다.
“형....”
“응?”
“나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 거야?”
“당연히 되지. 더 행복하게 살려고 결혼도 하고 여행도 왔잖아.”
“우리 다음에 또 오자. 정말 좋아.”
“그래. 내년에도 사진 찍고 또 오자. 기차 타고 다니면서 유명한 온천 돌아다니자.”
“응.”
학기와 용주는 쏟아져 내리는 것 같은 별빛을 받으며 키스를 했다. 자연스레 애무로 이어졌다. 용주가 먼저 학기의 젖꼭지와 자지를 빨았다. 학기도 용주의 젖꼭지와 자지를 빨고 용주를 엎드리게 해 항문을 핥았다.
“형, 그냥 여기서 할까?”
“응.”
“콘돔이랑 젤 갖고 올게.”
다시 간단한 애무가 이어지고 학기는 콘돔 포장지를 입으로 뜯었다.
“학기야....”
“응?”
“콘돔 끼지 마....”
학기는 놀란 눈으로 용주를 바라봤다. 용주가 학기의 굵은 자지를 만지며 말을 이었다.
“우리 이제 결혼했잖아.”
“괜찮겠어?”
“안 괜찮을 게 뭐 있어. 10년을 우리 둘만 했는데....”
용주는 학기의 자지에 젤을 바르고 엉덩이를 내밀었다. 학기는 콘돔을 끼지 않은 자지 그대로 용주의 항문에 자지를 찔러 넣었다. 두 사람의 입에서 동시에 탄성이 터져 나왔다.
“조ㅈ나 부드럽게 들어오네.”
“형.... 너무 좋아. 들어가자마자 조ㅈ나 느껴져.”
“씨.발.... 이렇게 좋은 걸 왜 진작 안 했나 싶어.... 학기야.... 나 좀 어떻게 해봐. 조ㅈ나 좋아.”
“씨.발.... 알았어. 오늘 밤새도록 하자.”
10년이 넘는 세월은 섹스마저도 특별할 것이 없는 것으로 만들었지만 그만큼 성감대를 효과적으로 공략하는 기술을 연마하는 기간이기도 했다. 게다가 처음으로 그 어떤 보호막이 없는 무방비의 상태로 하는 섹스였는지라 그 쾌감은 훨씬 강했다.
노천탕은 자세에 한계가 있었으므로 학기와 용주는 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몸에 묻은 물기를 닦을 여유도 없었기에 요가 깔려 있지 않은 다다미 위에서 판이 벌어졌다. 학기는 용주의 다리를 어깨에 걸치고 자지를 박았다. 괄약근의 쪼임이 자지에 고스란히 느껴졌다. 학기는 깊고 강하게 자지를 박아댔다. 그리 길지는 않아도 굵고, 귀두가 약간 위로 휘어져 있어서 용주의 전립선을 자극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학기와 용주가 오랜 기간 함께 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형~~ 좋아?”
“너무 좋아.... 부드럽게 미끌려서 너무 좋아. 너두 좋아?”
“조ㅈ나 좋아.... 근데 콘돔 안 끼니까 빨리 쌀 거 같애.”
“괜찮아. 싸.... 많이 느꼈어.”
학기는 용주의 자지를 잡고 흔들었다. 용주는 자지를 받으면서 사정하는 것을 가장 좋아하기 때문이었다. 학기가 사정감이 올라왔을 때 용주의 자지를 잡고 흔들면 거의 동시에 사정을 할 수 있었다. 10년 넘게 만나는 동안 터득한 것이었다. 용주가 사정을 할 때 항문이 엄청 쪼였으므로 학기도 사정을 하는 동안 그것을 고스란히 느낄 수가 있었기에 최상의 궁합이었다.
“하아악~~~”
용주의 자지에서 정액이 터져 나왔다. 학기도 마찬가지였다. 학기는 용주의 항문이 쪼아대는 압박감을 느끼며 자지를 깊숙하게 박고 정액을 뿜어냈다.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한 쾌감이 밀려왔다. 온몸이 부르르 떨릴 정도였다. 학기는 짧고 강하게 자지를 박아대며 마지막 여운을 즐겼다. 학기의 자지에서 마지막 한 방울의 정액을 짜내려는 듯이 용주의 항문이 움찔거렸다. 학기는 자지를 박은 채로 그대로 엎어져 용주와 뜨거운 키스를 했다.
“똥꼬 안이 뜨거워.”
“아 맞다. 형 어떡해.... 콘돔 안 꼈는데 안에 싸 버렸어.”
“뭐 어때.... 우리 결혼하고 첫날밤이잖아. 안에 싸는 게 당연하지.... 너무 좋았어.”
“나두.... 자지 뺄까?”
“아니.... 아직도 불끈거리는 게 느껴져.... 학기야....”
“응?”
“이제 우리 계속 콘돔 끼지 말자.”
“응.”
학기와 용주는 서로 부둥켜안고 다시 뜨거운 키스를 했다. 학기의 자지가 풀이 죽어 용주의 항문에서 저절로 빠져 나갔다. 학기는 자신과 용주의 배에 묻은 정액을 대충 닦아내고 말했다.
“우리 씻자.”
학기는 용주의 손목을 잡고 일으켜 세웠다. 샤워기로 가는 동안 용주의 허벅지에 정액이 흘러내렸다.
“씨.발.... 뚱땡이 새끼 조ㅈ나 많이 쌌네....”
용주는 변기에 앉아 학기가 싼 정액을 비워냈다.
“콘돔 안 끼니까 이게 좀 귀찮네.”
“안에 싸지 말까?”
“아니.... 너 쌀 때 따뜻하고 정말 좋았어. 곧 익숙해지겠지....”
용주는 학기의 자지에 비누칠을 하고 정성스레 씻어주며 말했다.
“이 굵은 게 너무 부드럽게 들어왔어. 뭔가 쓸리고 뻑뻑한 느낌이 하나도 없었어.”
“진짜?”
“응.”
학기는 문득 용주 누나의 말이 떠올랐다. 용주가 남자 구실을 할 수 있냐는 말이었다.
“그럼 나도 할 수 있을까? 형도 남자 구실해야지.”
“됐어. 반도 안 들어갔는데 너한테 쌍욕을 듣느니 내가 안 하고 말지. 난 바텀 하는 게 더 좋아.”
4박 5일의 신혼여행을 마치고 금요일 저녁에 집으로 돌아온 학기와 용주는 잠자리에 들기 전부터 대판 싸웠다. 어찌 보면 사소한 것이었다. 땀을 많이 흘리는 학기가 먼저 옷을 훌훌 벗어 던지고 샤워를 했다. 용주는 여행 때 입었던 옷들을 모아 세탁기를 돌렸다. 학기가 욕실에서 나오는 것을 보고 용주도 샤워를 했다.
말끔히 샤워를 한 보송보송한 몸으로 거실 소파에 앉아 새로 장만한 TV를 볼 때까지만 해도 알콩달콩 좋았다. 그런데 베란다에서 들리는 알람 소리가 두 사람의 평화를 깨뜨렸다.
“빨래 다 됐나 보다. 빨리 가서 널어.”
“나 피곤해. 형이 해.”
“세탁기 내가 돌렸으니까 니가 널고 와.”
“형이 돌린 김에 마저 끝내.”
“내가 하나 했으니까 너도 하나 해야지. 그래야 공평하잖아.”
“이 무거운 몸을 이끌고 내가 해야겠냐? 날렵한 형이 해. 그리고 같이 살면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겠다 그랬잖아.”
“탈수 다 돼서 물 한 방울도 없어. 빨리 널어. 안 그럼 냄새 나.”
“귀찮아. 피곤해서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싫단 말야. 형이 해.”
“야~~ 누군 안 귀찮냐? 누군 안 피곤해? 여행은 너만 갔다 왔어? 니 빨래가 더 많단 말야. 잔말 말고 빨리 가서 널어.”
“이렇게 부려 먹으려고 같이 살자고 한 거야?”
“부려 먹긴 뭘 부려 먹어? 씨.발 너 말 다 했어? 내가 세탁기 돌렸으니까 니가 너는 게 맞잖아.”
“누가 형 보고 세탁기 돌리래? 형이 알아서 돌렸으면 마무리도 형이 알아서 해.”
목소리가 점점 격앙되고 쌍욕이 난무했다. 앉아서 싸우던 것이 급기야 일어서서 싸우는 것으로 발전했다. 그러다 두 사람의 시선이 거실 벽에 걸어둔 액자에 머물렀다. 두 손을 맞잡고 서로 바라보며 웃고 있는 사진이었다.
학기와 용주는 서로 말없이 베란다로 나갔다. 용주가 세탁기 뚜껑을 열고 빨래를 하나씩 꺼내 털어서 주면 학기가 받아서 널었다. 금방 끝이 났다.
아무 말 없이 TV를 보다가 잠자리에 들어서 용주가 학기에게 말했다.
“미안해....”
“씨.발.... 내가 먼저 미안하다고 할라 그랬는데.... 내가 더 미안해. 그냥 내가 널면 되는 거였는데....”
“같이 사는 게 처음이라 그랬어.... 우리.... 서로 역할 정하자.”
“오케이. 그게 좋을 거 같애.... 아니다. 그냥 같이 하자. 아까도 같이 하니까 빨리 끝났잖아. 청소하는 날, 빨래하는 날 정해 놓고 같이 해.”
“그래. 같이 사는 거니까 같이 해.... 너.... 많이 피곤해?”
“조금.... 왜?”
“할래?”
“응.”
함께 사는 집에서 처음으로 하는 섹스였다. 침대에서 시작된 섹스는 장소를 옮겨 거실 소파에서 마무리 되었다. 갈등을 봉합하는 데에는 섹스만한 것이 없었다. 학기와 용주는 같이 사정을 하고, 같이 씻고, 같이 잠자리에 들었다.
일본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용주는 학원에 등록하여 일본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전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생존 영어가 통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학기는 용주만 따라다니면 되었기에 따로 배우지는 않고 용주를 응원만 했다. 용주는 한 달에 한 번 있는 레벨 테스트에서 만점을 받은 시험지를 흔들며 용주에게 자랑을 했다.
“일본어 배우기 쉬워?”
“응. 우리반에서 내가 탑이야. 배용준이랑 이름 비슷하다고 내가 욘사마로 불려. 근데... 독해는 금방 되는데.... 씨.발.... 안 들려. 학교 영어 선생한테 물어보니까 마흔 넘어서 외국어 시작하면 잘 안 들릴 수도 있대. 옛날에 영어 듣기도 못했는데....”
용주는 기본 문법 과정을 마치고 회화 수업도 들었다. 하루는 풀이 죽은 얼굴을 하고 있어서 학기가 왜냐고 물었더니 용주가 힘이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원어민 선생님이 욘사마는 독해만 잘해요 이러더라. 씨.발.... 우리반에 나만 아저씨고 다 어린것들인데 한자 때문에 독해는 못하면서 말은 조ㅈ나 잘해. 죄다 애니메이션 덕후들이야.”
그래도 용주의 일본어 공부는 여행을 할 때 꽤나 쓸모가 있었다. 안 들리고 말을 못한다고 해도 생존 일본어는 가능했기에 식당에 들어갈 때 ‘후타리데스’라고 당당하게 말했고, 스타벅스에서 ‘도리뿌코히니하이구다사이’하며 자연스레 주문을 하고, 화장실 안내판이 없는 외진 휴게소에서 ‘토이레와도치라데스까’하면서 학기가 바지에 오줌을 싸지 않도록 만들었다.
특히 유명 관광지에서 용주의 일본어 독해 실력은 진가를 발휘했다. 가이드가 없는 자유여행이었지만 용주는 일본어로 된 안내판을 보며 학기에게 줄줄 설명을 했다. 학기가 감탄을 하자 용주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일본어 독해는 껌이야. 죄다 한자니까 조사랑 어미만 알면 그냥 끝이야.”
“가이드처럼 소리 내서 읽어봐.”
“읽지는 못하지. 뜻만 알 수 있어.”
“그게 말이 돼?”
“일본어 한자 읽는 게 말야.... 너 향가 배울 때 향찰 어쩌구하는 거 들은 거 기억나지? 일본어 한자가 꼭 향찰 같애. 한자를 음으로도 읽고 뜻으로도 읽거든. 도쿄는 한자를 음으로 읽은 거고, 후쿠오카, 오사카는 뜻으로 읽는 건데 대체로 명사는 음으로 읽고 동사, 형용사는 뜻으로 읽는단 말야....”
용주는 교사답게 독해만 하고 소리 내어 읽지는 못하는 이유를 장황하게 설명했다. 학기는 곧 두 손 두 발을 다 들고 말렸다.
“형 미안.... 다시는 안 그럴게. 소리 내서 안 읽어도 돼.”
아무튼 용주의 일본어 공부는 여행의 질을 한껏 끌어올렸다. 그리고 일본 여행에서의 섹스에도 재미를 부여했다. 기모찌~, 스고이, 이꾸이꾸 하며 야동 배우가 된 것처럼 재미나게 놀았다.
-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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