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사람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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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준이는 다가가서 동그란 무테 안경을 벗겨준다. 

지쳐서 자고 있는 모습이 꽤 매력적이다. 

가까이 다가가는 준이. 코앞에 유부장의 얼굴을 마주하고는 조용히 숨을 들이키며 음미한다.


 "... 띠리리리"


 계속 울리는 유부장의 전화를 받았다. 

와이프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보인다. 


 "... 선명아파트 102동 101호예요..."


 할말만 하고 끊는다. 마음이 불편해서였는지 모른다. 

유부장을 보면서 고민에 빠진다. 

지금이라도 데려다 줘야하는게 맞는건지. 


 그때 이번에는 준이의 핸드폰이 울린다. 

현이었다. 조금 술에 취한 목소리이다. 


 ".. 형... 우리형이네...

  ...시차가 맞으니까.. 너무 좋다...."


 "... 어?"


 "... 아니..... 힘든일 있을때....  

  .....술먹고 전화하고 싶을때 많았는데...

 ... 미국시간으로 형은 항상 자고 있으니까...."

  

 그렇게 생각해주는 동생이 고마워진다. 


 "... 무슨일 있어? 술마셨어?"


 "... 무슨일... 많지... 

  .... 형이 한국에 온뒤로 너무 바쁘잖아...

  ... 이사간 집도 안보여주고...."


 준이의 등뒤에서 식은땀 큰 한줄기가 떨어진다. 


 "...어... 그게....."


 "... 오늘 우리집에서 한잔 하자..

 ... 내일 공휴일이잖아..."


 "...지금? "


 현이는 조금 머뭇거리다 입을 연다. 


 "... 여자를 만났는데..."


 ".. 진짜?"


준이는 기뻤다. 현이만이라도 먼저 가준다면, 

부모님에게 죄스러움이 덜해질것 같아서였다. 


 ".. 근데.. 좀 복잡해.....

  .... 통화로 하기는 길고...."


준이는 눈이 동그래져서 시간을 확인한다. 

자고있는 유부장도 슬쩍 한번 본다. 


  유부장을 만나기위해, 가족에게 거짓말을 했던 지난날이 떠오른다. 두번은 안된다. 가족이 먼저다. 그게 현실이다. 무엇보다 일반에게 더이상 끌려서는 안된다. 


 그리고 자고있는 사람은 직장 상사다. 


 "... 알았어..금방갈게..."


 ..............



 현이는 전화를 끊고, 그녀와의 첫 만남을 떠올린다. 


 "...나.. 살려냈으니까... 니가 책임져.."


 뻔뻔스런 여자의 행동에 어이가 없어서, 멀뚱히 눈만 깜빡거렸다. 


 "... 쫄기는...."


 그게 방금전의 죽으려고 했던, 왜 살려냈냐며 난리를 친 사람에게서 나올수 있는 소리인가 싶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갑자기 길을 가는 그녀의 옆에서 천천히 걸음을 맞추면서 어쩔줄을 몰라는 현이. 


 살려줬으니 그만 가도 괜찮은건지. 

이대로 놔뒀다간 더 큰일을 당하는건 아닌지.


 그때... 갑자기 여자가 소리를 질렀다. 


 "....성진아.... 미안해...."


그러더니, 한참을 주저앉아 울었다. 어느정도 서러움을 토해내고는 여자가 말했다. 


 ".. 술.....마실래?"


 현이는 어이가 없을정도로 당혹스러웠지만, 약에 취한듯 순순히 그녀를 따라나섰다. 


 술집에 자리를 잡고 두사람이 앉는다. 

자세히 보니 꽤 미인이다. 현이가 얼굴이 붉어져서 쉽사리 눈을 맞추지 못한다. 


 여자는 말없이 소주 나발을 불었다. 

그리고 한병을 바로 더 시켰다. 

방금 막 소주병을 놓고 나가던 알바생도 놀라서 쳐다볼 정도였다. 


 "사람하고 같이 술마셔본게 언젠지 모르겠네.."


예사롭지 않은 말투와 기운들이 휘몰아친다.

베시시 웃더니 그녀는 소주를 따라주며 물었다. 


 " 미,친년같지?"


 "..아니요.. 꼭... 그렇다기보다..."


 " 맞아.. 미,친년...그렇게 살았으니까.. 

오죽하면 결혼을 3번이나 했을까.."


 "..네? "


 " 뭘 그렇게 놀래? 

 아직 시작도 안했는데..."


현이가 고개를 들고서 그녀와 눈을 맞췄다. 


"..들어볼래? 내가 왜 미,친년인지?

 .. 어차피 우리 오늘 지나면 다시 안볼사이잖아.." 


 그녀의 물음에 응하듯, 현이가 소주잔을 뻗자, 

그녀도 잔을 들었다. 


  "... 사는거 있잖아.. 되게 복잡한 사람도 있어..."


 ".. 안 복잡한 사람도 있어요?"


 ".. 얼굴엔 사연이 없어 보이는데...

  .. 제법 굴곡이 있는편인가 보네..."


 옅은 웃음을 띈채로, 여자는 소주를 맥주잔에 쭈욱 따른다. 거즘 다 찰때까지. 그리고 나머지는 맥주를 따르고 꿀꺽 꿀꺽 목구멍으로 모조리 다 넘겨 버렸다. 

 

 "... 여덟살때.. 난 그때 우리 엄마 아빠를 만났어..."


 그때가 그리운건지 허공에 눈을 띄워놓고서, 미소까지 띄웠다. 


 "... 파양을 많이 당했거든.. "


 "... 그 콩알만한게.. 어떻게든 사랑을 받아볼려고..

  ... 얼마나 애를썼는지...

  ... 아직도 생생해... 어제 일처럼..."


 ".... 고작 여섯살밖에 안된애를 만지고 싶니?

  어떻게 여섯살짜리를 만지니?"


 ".. 미친새,끼..."

현이가 불쑥 말을 뱉었다. 


".. 그렇게 딱 2년이 내 인생에 통틀어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어.. 왜냐하면 엄마가 임신을 했거든. 자기 핏줄을."



 ".. 엄마의 배가 불러올수록, 나는 불안했어. 

이제 좀 사랑받으면서 사나 싶었는데.."


 "..그 어린게 어쩜 우리아빠랑 똑같이 생겼던지

  ..부럽더라... 똘망똘망한 눈망울로 갓난아기가 방긋 웃는데, 베개로 눌러서 죽여버리고 싶더라.."


 "..나... 소름 끼치지?"


".. 그런데..."

여자가 조금 울먹거리며 말을 잇는다. 


"..나한테도 너무 잘해주는거야....

... 예전보다 더..."


 "...난 믿지 않았어..계속 의심했어... 가끔은 가면을 쓰면서 연기하는게 안타까울 지경이었지....

분명 본인들 핏줄인 동생이 더 좋을텐데..."


 현이는 잠자코 듣다가 그녀의 눈속에 허망함을 곧 읽어낸다. 어디선가 많이 본 익숙한 눈빛이었다. 


" 태어나서 처음 받아보는 사랑인데...

나한테 올 사랑이 반쯤은 아니, 그 이상이, 

어쩌면 모조리 걔한테 가버릴까봐..억울했어..."


 현이는 숨죽여 들었다. 


"... 왜? 놀랬어? 입양된 사람 처음봐?

  ... 혹시 너도 입양됐니?"


 여자는 아무일도 아니라는듯이 웃으며 물었다. 


 "...아니요.."


 "..이 정도면 너는 안복잡한 편에 속하지 않니?"


 현이는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나사가 빠져있었다. 


 ".. 애초에 출발점이 다른데... 너랑 나랑은...

 너희 같은것들은 부모님의 사랑이 당연하다고 

여기면서 살지. 의심을 할 필요가 없으니까."



 "... 근데요..."


갑자기 현이의 눈에 힘이 들어간다. 


".. 저는 아니지만.. 제 위로 형이 입양됐어요.."


 ".. 어?"


 여자는 놀래서 바로 되물었다. 

지금껏 이런 얘기로 분위기를 제압해왔었다. 

그리고 상당히 잘 먹히는 편이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전개였다. 

 여자는 혼자서 한잔을 더 마신다. 


 "...이것만 마시고 2차는 너희 집으로 가자... "


 둘은 말없이 술을 비웠다. 알수없는 동질감과 비슷한 감정이 들어서였는지도 모른다. 


 편의점에서 소주를 사서 집으로 걸어가는데, 

여자가 현이의 팔짱을 꼈다. 놀란 현이는 조금 움츠려드는데 여자가 빤히 보고 물었다. 


 ".. 혹시.. 너 게이니?"


 ".. 네? ...아닌데요..."


 "... 남자 10명중에 한두명은 게이라던데..

  .. 내주위에는 게이가 씨가 말랐니...."


 ".. 왜요?"


 순간 여자의 감정이 흔들린다. 


 "... 그냥... 한번 안아주고 싶어서.."


여자는 바로 말을 잇는다.  


"... 그나저나.. 니 형 한번 만나고 싶다.."


 ".. 네?"


 "....우리끼리는 동지애라는게 있거든.."

 

 순간 걸음을 멈추고 여자를 똑바로 보면서 또박또박 말을 했다. 

 

"..저희 형은 안그래요...

 저희랑 친형제처럼 잘 지내요...

미국 유학까지 갔다가, 얼마전에 들어왔어요.."



 갑자기 여자의 눈빛이 잠시 흔들렸다. 머릿속에서는 성진이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내 웃으며 물었다. 



 "....뭐야? 너희집도 좀 사나보지? 


 "..아니요.. 그냥 형이 무작정 떠났어요..

  스무살 되자마자..."


 "..거봐... 이 입양아들은... 

   일단은 벗어나고 싶어한다니까.. "

   저희형은 안그래요... 꼬박꼬박 옷보내주고...

   용돈도 보내주고...부모님 차도 사주고..

   잘나가요.. 우리형.. "



".. 그래도 그속은 모르지.. 

 친자식이랑, 입양아랑 아무렴 같을라고..


 모든일은 본인이 겪어보기전에는, 

절대 알수가 없는게 인간이야..


 우리같은 애들은 특징이 있어..

가만히 보면 속이 꼬인데가 많고..

 죽을때까지 의심을 하지. 

 진심인지 아닌지."


  " 사람마다 다른거지..

자꾸 저희 형이랑 비교하지마세요.."


 "..확실해? 니 형의 실체 아는거 확실하냐고"


 머뭇거리던 현이가 갑자기 말을 내뱉었다. 


 "... 근데 왜 계속 반말하세요?"



 "... 꼬우면 너도 하던가..."


 새벽까지 마시자는 그녀는 소주 한병을 나눠 마시자, 여자의 동공이 완전히 풀렸다. 낯설지만 희미하게 웃는 모습이 무척이나 서글퍼보였다. 


 "... 왜 안물어봐?"


 ".. 뭘요?"



 "... 왜 죽으려고 했는지..."



 "... 물어봐야 되는거예요?"



 "... 응..."


 여자가 울먹거렸다. 그리고 힘없이 입을 열었다. 



 "... 내가 동생을 죽였거든..."

 


 여자는 그대로 쓰러졌다. 핸드폰에는 정말 친구가 없다고 하던 여자의 말대로, 엄마 아빠 남편 전화번호 밖에 없었다. 하는수없이 현이는 여자를 침실에 눕혔다. 


 새벽녘에 깼을때는 여자는 이미 떠나고 없었다. 귀신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졌었다. 


 간밤에 일어난 꿈은 아니었는지. 현이는 돌이켜보고 곱씹을수록, 기묘하게 느껴졌다. 그 일이 있고나서 여자는 현이의 머리속에서 둥둥 떠다녔다. 


 언제고 갑자기 불현듯 떠올랐다. 

그럴때마다 심장이 왜 뛰는지 이해할수가 없었다. 그리고 왜 불쑥 형에게 이름도 모르는 여자를 만났다고 말했는지도 알수가 없었다. 


 한참 술상을 준비하던 현이는 초인종 소리에 급하게 현관으로 나간다. 


 "... 형이야? "


 대답없는 인기척에 문을 여는데, 

이름도 모르고 귀신처럼 왔다가 사라진 여자가 서있었다. 잔뜩 장을 본 봉지를 두손 가득 들고서.


 "...니 형 오기로 했어? 

  ... 잘됐다... 한번 만나고 싶었는데..."


 현이는 얼어붙어있다. 왜냐면 꽤 예쁘장한 얼굴에 무수히 많은 멍자국이 번져있었기 때문이다. 


 "... 괜찮으세요?"


 ".. 아.. 이거?

  .. 별거 아니야... 맨날 쳐맞는데.. 뭐.."


 여자는 자신의 망가진 얼굴를 가리키면서, 

대수롭지 않게 말한다. 


 ".. 네?"


 경악스러움에 현이가 되묻는다. 



 "... 현아!!!!"



 이때 문을 두고 대치해 서있던 두사람을 멀리서 발견하고는 준이가 외쳤다. 

현이는 다급히 여자를 집으로 들인다. 


 ".. 오해하지 말고 들으세요...

 ... 제 형인데.... 

  ... 지금 이 모습으로는 안만나는게 좋겠어요.."


 ".. 왜.. 내가 창피해?"


 "... 창피한게 아니라요.. 

  ... 아무튼... 잠깐만요..."


 " 띵동" 벨소리에 현이가 문을 열고 얼른 나간다. 


 "... 누구야? 설마? 그 여자?"


 ".. 어.. 형.. 갑자기 찾아 와버렸네..."

 당혹감은 숨길수없이 현이의 심장을 뚫고 그대로 나온다. 


 ".. 괜찮아... 뭐.. 인사라도 하지.."


 ".. 아니... 오늘은.. 말고.. 담에 하자.. 형..

 .. 미안..."


 그때.. 현관문이 조금 열린다. 

그리고 하얗고 매끄러운 손이 삐져나온다. 


 "... 죄송해요... 제가 지금.. 상태가.. 그래서요..

  ... 반갑습니다...

  .. 저... 유효진이예요...."


 "....네.. 이준이입니다...."


준이도 황당한 상황이지만, 손을 맞잡고 가벼운 악수를 한다.


 ".. 앗.. 저도 입양아예요.. 

  .. 그러니까.. 다음에 꼭 같이 한잔해요!!"


 ".. 네... 그래요 그럼..."


 "... 하..하.. 하...

  .. 안해도 될말을 저렇게 서슴없이...하네..."


현이가 어색하게 웃어대며 준이의 표정을 살핀다. 

 

 ".. 괜찮아.. 담에 그럼 한잔하자..."

준이가 현이의 어깨를 두드려주며 말했다. 


형을 보내고 현이는 집으로 들어와서는 버럭 화를 낸다. 


 "..잠깐만 가만히 있는게 그렇게 어려운건가요?"

   유효진씨?"


 "... 미안 성격이 그런걸 어떡하냐? 

  .. 니가 날 창피해하니까... 

  .. 더 나서고 싶던걸...

 ... 니 난처해 하는 표정도 귀여울것도 같고..."


 "...창피해서 그런게 아니라구요!!!"


 ".. 그럼 뭔데?"


 현이는 말을 돌린다. 아직 자신도 답을 찾는중이었다. 


 "...왜? 맞고 살아요? 이혼해요!!! "


 " 이번에 이혼하면 세번째야.. 

 엄마 아빠 얼굴을 볼 자신이 없어..."


 ".. 그게 사는거예요? 지옥이지?"


 ".. 난.... 살아.. 지옥이라도...

  ... 나같은 년들은 벌 받아야돼..."


효진은 손등으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낸다. 

그 모습을 본 현이는 마음속에 뜨거운 눈물 한방울을 삭혔다. 


 준이는 모텔로 돌아갔다. 

하지만 유부장은 사라진후였다. 


 ............



 모든것에 서툰 나이 많은 신입을 사람들은 어려워했다. 준이는 어떻게 해서든지 살아 남아야만했다. 그래서 출근시간보다 1시간 일찍 나와서 청소를 했다. 쓰레기통을 비우고 쓸고 닦고, 향기가 좋은 디퓨저도 곳곳에 두었다. 


 사람들이 출근하기 시작하자, 마침 배가 아픈 준이는 화장실로 향했다. 그리고 잠시뒤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진짜예요? 영업1팀이? "


 ".. 쉿... 좌천된 사람만..모인다는 폭탄전담반.."


".. 유부장이 왜 아직까지 부장 달고 있겠냐? 

 .. 지 동기들은 상무 다는데... "


 ".. 능력이 없으니까... "


 ".. 쪽팔린줄도 모르고... 계속 다닌다..

.. 진작에 그만 둬야 되는지도 모르고. "


"... 알콜중독자라는 소문도 있던데요?"


 ".. 밥도 혼자먹고, 웃지도 않고..

   .. 쏘시오패스 아니예요?"


 "... 자고로 또,라이는 피하라고 했어... 옛말에.."


 그때 손을 씻는 물소리가 멈추기도 전에, 준이가 문을 박차고 나왔다. 얼마나 큰 소리가 났는지 두사람이 얼어서 준이와 눈을 마주쳤다. 


 그러자 물소리가 멈췄다. 


뒤에서 손을 씻기 위해서 기다리던 준이는 쭈뼛거리는 두사람에게 참지 못하고 말을 뱉었다. 


 "... 저희 부장님에게는 말 안하겠지만요..

  ... 뒤에서 욕하는거 안쪽팔리세요?"



 ".. 으흠.. 흠..."


 두사람이 괜히 기침소리를 내며 목을 다듬는다. 


 ".. 조심해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아무말도 못하고 나가던 둘은 다시 걸음을 멈춘다. 


 ".. 지켜보겠습니다.. 

얼마나 더 회사에 붙어 계시는지...

상무는 다실지..아니면 만년 부장 하실지...."


 준이는 순간 욱해서 했던 말들을 그둘이 나가자마자, 바로 후회했다. 두손으로 얼굴을 감싸면서 씻고 있는데, 갑자기 화장실문이 열리더니, 그곳에서 유부장이 나온다. 


 거울로 그의 얼굴을 확인하면서 눈을 마주친다. 

준이의 옆에서 물을 틀고 손을 씻는다. 


 ".. 너.. 내 이름 말고.. 나에대해서 아는거 있어?"


 ".. 네?"


 "... 잘 알지도 못하면서 왜 나서냐고!!"


 "... 부장님 욕하잖아요.."


 ".. 저사람들이 하는말 다 맞는말이야..

  .. 그러니까... 잘 모르면 설치지마..

 사람이 너무 나서고 그러면 싫어해..."



 "... 한국사회에서는 적당히 

 ... 자제할줄 알아야 되는법이야...

  .. 안그럼 나처럼 된다고..."



손을 닦고는 유부장은 쌩하니 화장실을 나갔다. 


 

"... 누구야????????"

  누가 일을 이렇게 만들었냐고!!!"


 표부장이 미친듯이 서류를 들고서 소리를 친다. 주위사람들은 안절부절 못한다. 


 큰일이 난게 틀림없었다. 그는 아무것도 의식하지 않고 본능적으로 참도 숨겨왔던 화까지 모두 방출하고 있었다. 



 ".. 이준이 어디갔어???"



 그사람은 곧 영업1팀에서 발을 동동 구르더니, 이윽고 준이를 맞딱드렸다.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표부장을 보는데, 그 너머로 이대리가 두손을 모으면서 봐달라는 표정이 보인다. 


 ".. 전데요..."


 바로 싸대기가 날라온다. 놀란 사람은 오히려 뒤에서 걸어오고 있던 유부장이었다. 


 ".. 니가 지금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알기나해?"


 뒤에서 손을 싹싹 빌고 있던 이대리의 눈망울이 더욱 간절하게 느껴졌다.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스러운 얼굴로 있는데, 다시 표부장이 싸대기를 날리려는데 그때 유부장이 그의 손을 막는다. 


 

"... 미쳤냐? 홍정표?"



 "..아이.. 지금 손해가 얼마인줄 알아요? 

  ... 몇천억이 공중에서 분해 됐어요..

  .. 만년 꼴찌가 뭐 그런 계산이나 할줄 알겠어요?"



 ".. 딱!"



 유부장이 이번에는 표부장의 뺨때기를 갈긴다. 



 ".. 너 백퍼센트 확실해? 우리애가 실수한거라고?"



 ".. 백퍼센트는 아니지만..."



 다시 뺨을 갈기는 유부장. 



 "... 선배 대접은 바라지도 않지만, 

 우리애들 건드는거는 못참아.."



 표부장은 맞은 뺨을 부여잡고 분해하며 준이를 노려본다. 



 "... 만약에 준이 잘못이면, 그때 내뺨 때려..

  .. 정 ..확..하..게.. 다시 알아봐..."



 그 광경을 바라보던 사람들은 수근수근대기 시작했다. 준이는 맞은 뺨을 아직도 부여잡고서 자기 자리로 걸어가는 유부장을 보고 있었다. 


 겨우 자리에 앉은 준이에게 영업2팀 이대리의 문자가 온다. 



 [ 준이씨.. 나 자식이 셋이야..

  제발 이번 한번만 살려주라...

  대리달고도 이런 실수 한거 알려지면..

  얼굴 못들어.. 영어 못하는거 들키면.. 

  승진은 꿈도 못꿔... 

  준이씨는 신입이니까.. 금방 묻힐꺼야..

  거기다.. 계약직이잖아...

  1년뒤에는 다른데 알아봐야 할때..

  내가 신경 좀 써줄께..

  정직원으로 갈수 있는데...]


 미친사람처럼 화가 나기도 했다가 억울하기도 했다가, 정말로 눈물이 나올것도 같은지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손등으로 몇번이고 때려내면서 올바른 생각을 할수있기를 기도해본다. 


 눈치를 보던 팀원들이 더 술렁대며 일에 집중을 못하고 있다.



 "... 일해.. 일들..."



 유부장은 나지막히 분명하게 타이르며 말했다. 그리고 준이에게로 걸어간다. 조금 새 빨개진 뺨을 손등으로 갖다대고, 날아오는 준이의 손을 방어한다. 


 그리고 앞에 환하게 밝혀져있던 이부장에게 온 문자를 눈으로 읽었다. 


 그런데 하필 이날이 영업팀 전체회식이었다. 퇴근을 하면 당장에 집에가고싶은 맘도 접은채로 모두들 하나둘씩 회식장소로 모여든다. 


 각 팀끼리 모여 앉아서 술을 마시고, 왁자지껄 소리가 울려퍼진다. 그와중에 사람들은 전체회식이건, 뭐건 회식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던 유부장이 참석해서 혼자서 술만 마시는 모습을 보면서 눈치를 보고 있다. 


 2차는 노래방이다. 부족한 술을 시키면서 점점 더 꽐라가 되가는 중이다. 한쪽에선 폭탄주가 제조되고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춤을 추고 탬버린을 흔들고 노래가 한창이다. 그리고 절대로 노래방은 따라오지 않던 유부장도 술을 홀짝이고 있다. 


 준이는 머뭇머뭇 나른대로 희미한 미소를 지으면서 분위기를 맞춰주고 있다. 가끔씩 유부장을 힐끔 보기는 한다. 


 "... 자.. 준이씨.. 노래 함 들어보자..."



 박대리가 준이에게 마이크를 넘긴다. 준이는 쑥쓰럽다며 몇차례 거절을 하다가, 노래방 책자를 보지도 않고 번호를 누른다.


 " 오오 "하며 작은 환호성이 터져나온다. 


 방금전 어색해만하던 준이는 곧바로 테이블로 올라갔고 전주와 동시에 춤을 추는 준이의 모습에 모두들 입이 벌어진다. 저런 춤사위와 분위기를 끌어 올리는 텐션과 매너와 노래. 한마음 한뜻으로 단독 콘서트를 보는 사람의 박자가 딱딱 떨어지는 박수를 친다. 유부장도 놀랬는지 한참을 준이를 비라봤다. 중간에 약간 미소를 지은건지도 모른다. 


 몇곡의 앵콜과 준이의 체력이 다할때까지 사람들은 의외의 준이의 모습에 충격을 받은건지 엄청나게 즐거워했다.


 모든 회식이 마치고 직원들은 택시를 잡는다. 유부장을 먼저 집으로 보내려고 하는데, 그는 누군가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노래장 앞에서 서성 거렸다. 


 기다리다 지친 여성직원들이 떠나고, 얼마후 2팀회식이 끝났는지 걸어 나오고 있었다.


 유부장은 마중 나가듯 그쪽으로 걸어간다. 술에 취해서 비틀은 거리지만 곧장 앞으로 나가는 속도가 그리 늦여보이진 않는다. 


  그리고 길을 막아서는 유부장. 표부장은 당황스러운데. 유부장앞에 있던 이대리는 어쩔줄을 몰라한다.



 "... 준이가 한거 확실해? 

   .. 가슴에 손을 대고.. 니가 한거 아니야?"



".. 아.. 진짜 왜그래요? 유부장님?"



 표부장이 유부장을 뜯어말기며 정색을하며 말한다. 


 

 "... 내가 이날 이때까지.. 니가 아무리 싸가지 없이

 해도 아무말도 한적 없다. 맞지?"



 표부장은 둘사이를 막고있던 몸을 움직인다. 할말도 명분도 생각나지 않아서였다. 



 "..... 내가 오늘 이대리가 우리애한테 사과하러 오는지, 안오는지를 하루 종일 봤어. 화장실에 따라가면서 까지..... 근데 안하던데.. 사과..."


 그리고 표부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 설마설마 했다. 아무리 너라도 진실을 알면 , 인간이라면 사과는 하라고 시킬줄 알았다. 너 진짜... 설마.. 이대리보고 우리애한테 사과하라고 말 안했냐?"



 그때 준이가 달려와서 두사람을 가로 막으며 말한다.


 "... 제가 그런겁니다.. 부장님..

  .. 이대리님이 그런거 아닙니다..

  .. 제 잘못이예요..."



 유부장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갑자기 말문이 막혀버린다. 


 ".. 죄송합니다.. "



 준이는 영업2팀 사람들에게 연신 고개를 숙이며 사과를 하고서, 유부장을 안아서 질질 끌며 택시로 태운다. 애 태우고 있던 영업1팀 직원은 곧바로 택시문을 닫아준다. 



 택시안, 두사람은 말이 없다.

고요한 정적만이 흐르는데 준이가 먼저 입을 연다. 


 "... 잘 모르면 나서지 말라고...."


 흐릿하게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유부장은 괜히 몸을 곧혀 세워본다. 목소리도 가다듬는다. 



 "...나서야 될때는 나서야 되는거야..."


나직하게 말을 하고서 유부장이 눈을 감는다.

준이는 힐끔 힐끔 눈을 감고 있는 유부장을 보고 있다. 미소를 가득 머금은채로.



"... 그만..봐..."


 눈을 감아도 다른 눈이 있는건지, 나지막한 유부장의 목소리가 퍼진다. 나쁜곳을 본것도 아닌데 괜히 찔리는 준이는 창가로 얼굴을 돌린다. 


 그리고 감정이 올라온다. 좋은건지 나쁜건지 분간이 가지 않는. 그러나 곧 희미한 미소가 자꾸만 떠오른다. 



 "... 든든 했습니다..."


 혼잣말로 조용히 겨우 내뱉는 말.


 유부장은 여전히 눈을 감고 있다. 그말을 들어서인지, 아닌지 아주 미세하게 입꼬리가 조금 올라가져있는것 같기도 하다.


 어느새 택시는 목적지에 다다른다. 

둘은 각자 옆에 있은 문을 열고 내렸다. 

문을 닫자, 택시는 먼지를 날리며 사라졌다. 


 웬지 머뭇거리는 유부장에게 준이가 먼저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 오늘 너무 감사했습니다..."


그렇게 돌아서는데, 유부장이 입을 연다. 


 ".. 저기.....한잔 더 할래?"


 순간 터져나오는 진심들을 준이는 가까스로 부여잡는다. 쓰디쓴 설레임은 전에도 여러번 느껴봤던것이었다. 더이상 일반에게 마음을 빼앗기기는 싫었다. 

그래서 선택한 귀국이었으므로.


 때마침 준이의 핸드폰에 알림이 온다. 

배달 문자가 흐릿해져가는 정신을 깨우는데, 큰 도움을 준다. 



 ".. 아니요.. 제가 오늘은 약속이 있어서요..."



마지막 배달 알바를 끝내고서는, 준이는 못다 숨쉬었던 숨을 겨우 밖으로 내뿜는다. 그리고 핸드폰을 꺼내서사기를 치고 행적이 묘연해진 장범에게 전화와 톡을 무수히 남긴 흔적들을 힘없이 바라본다. 


 [.. 형.. 그 돈 내가 미국에서 평생을 모은 돈이야..]

 [.. 제발.. 그러지마..연락줘...]


 준이는 그래도 또 톡을 보낸다. 


 일단 조금씩 모아놨던 돈은 정훈이형에게 어느정도는 보낸 상태였다. 하지만 택도없는 액수에 정훈은 최사장에게 부탁하는건 어떠냐고 제안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톡을 보내도 답장도 없는 사람에게.

무엇을 기대할수 있을까. 돈 이야기를 꺼내는것도 쉽지가 않다. 빌려주기는 할까. 거절당하면 어떡하지.

 몇글자 써 내려가는 준이는 다시 지웠다를 반복하다가 손가락을 보이스톡에 가져다 대지만, 전화하기가 망설여진다. 


 차라리 지금이라도 아버지에게 모든걸 다 말할까.

아니다. 그럴수는 없었다. 



 준이가 발걸음을 술집으로 옮긴다. 현이와 석이가 초저녁 부터 술을 마시면서 올때까지 기다리겠다고 했었다.


 한참을 삼형제는 즐겁게 술을 마셨다. 그러나 어느순간부터는 석이의 행동이 조금 어정쩡해보인다. 무엇이 불편한지 구석으로 숨는 제스쳐까지 취한다. 



 ".. 쿵.. 쿵.. 쿵.. 쿵.."



누군가의 발소리인지, 또는 누군가의 심장소리인지 분간이 가지않는데, 



 ".. 형님들... 잘 지내셨습니까?"



 현이와 준이는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어릴적부터 석이와 늘 붙어 다녔던 영우였다. 언제 이만큼 커버린건지 준이는 한참을 빤히 영우를 쳐다본다. 


 구리빛 피부에 적당한 근육이 붙어있어 제법 남자냄새가 난다. 눈은 동그란게 또 얼마나 큰지. 미소는 또 얼마나 매력적인지.



반가운 마음에 준이와 현이가 웃으며 말한다. 



 "..오랜만이다.. 진짜.."


한편 구석에 쳐박혀서 고개를 돌리고 있던 석이를 발견하고는 준이가 묻는다. 



 ".. 너희들 싸웠냐?"



 ".. 아니요.. 그런건 아닌데... 

  .. 죄송하지만.. 석이 좀 빌릴수 있을까요?"



 떨리는 석이의 마음. 요동을 치는데. 순간 떨리는건 그것뿐이 아니었다. 


 현이의 전화기에는 문자가 왔다. 효진이었다. 


 [ 도와줘...]



 한편 준이에게는 전화가 왔다. 



 ".. 여보세요?"


 ".. 저기요.. 이 아저씨 또 쓰러졌는데....

  .. 바로 안오실꺼 아니면.. 경찰에 연락하구요..."


 ".. 지금 가요.. 금방.....5분이면 도착합니다..."



준이와 현이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다. 



 ".. 그래..."



 그렇게 둘은 떠났다. 



 구석에 있던 석이는 참고 참았던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슬픈 미소를 짓고 있는 영우와 눈을 마주쳤다. 



...........



 준이는 술집을 나오면서 앱으로 택시를 예약했다. 

그리고 거리로 나올때쯤에는 미친듯이 손을 흔들었다. 택시든 아니든 아무것도 상관없었다. 


 그저 빨리 유부장에게 갈수만 있다면, 

돈을 얼마를 내건 신경 쓰이지 않았다. 


 ".. 부장님.. 부장님!!!"



 조금 늦게 도착한 준이는 유부장을 흔들어서 깨워본다. 유부장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는다. 준이는 편의점 알바에게 고개를 살짝 숙이고는, 도움을 받아서 유부장을 업었다. 


 물컹거리는 느낌이 뒤에 진하게 전해지자, 순간 온몸이 흥분된다. 어떻게든 정신을 차려보지만, 간절한 마음과는 다르게 유부장의 묵직한게 준이의 등에자꾸만 부벼진다. 


 싫지않은 그 느낌을 오히려 떨쳐내려 뛰어서 유부장의 집에 도착한다. 비밀번호를 누르고, 집에 들어가서 침대에 눕힌다. 벌써 수차례 이런 상황이 이어지고 있었다. 


 방을 나오려던 준이가 멈춰서 잠시 유부장의 얼굴을 아련히 바라본다.어둠속에 있어서 잘 분간이 가지도 않는데도. 


 생일도 아닐텐데, 준이는 무작정 미역국을 끓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불을 켜고 익숙하게 어질러진 집을 치운다.


그리고 집을 나가려는데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현관문 옆에 있던 액자에 눈길을 준다. 왜그랬는지 모르지만 그동안 유부장을 데려다 주면서도, 되도록이면 안보려고 했었다. 


그런데 왜 하필 지금 유부장에 대해서 자꾸만 알고 싶은건지, 그 허망한 욕구가 왜 자꾸 꿈틀거리는지.

준이는 참지못하고 고개를 돌린다. 사진속에는 티없이 맑고 젊은시절의 유부장이 미소를 짓고있다. 


 그 미소를 보고있자니, 얼어붙어있던 마음들이 눈 녹듯이 녹아서, 무장해제가 되버린다.


그리고 곧 그의 옆에 개구쟁이처럼 웃고 있은 꼬맹이 여자와 남자도, 너그럽게 웃고 있는 여자도 발견한다.



 "... 성진아... 성진아..."


 방안에서 흐느끼는듯한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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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읽고했습니다 내용이 슬프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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