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사람들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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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이는 유부장을 매일같이 데려다가 눕혔던 바로 그 침대에 누워있다. 어젯밤 준이을 성진의 방에 눕혔다가, 효진의 방에 눕혔다가 다시 자신의 침대로 눕혔다가를 굳이 반복했던 유부장은 샤워를 하는 중이었다.
"... 쏴아...."
샤워소리가 들린다. 그 바람에 준이가 정신을 차린다. 익숙한 풍경들이 눈에 담기는데, 그때 유부장이 욕실에서 나왔다.
준이도 급하게 고개를 돌린다. 하지만 본능적으로 어느정도는 눈에 담고난 후였다. ".. 흐음..." 괜히 목소리를 가다듬는 유부장은 잠시후 정장을 입고 들어온다.
"... 오늘은 하루 쉬어.. .. 그리고 이거.. "
무심하게 거울을 보며, 넥타이를 메면서 종이한장을 내민다.
종이에는 계약서라는 글자가 써있다. 밤새 유부장이 손수 적은것이다.
".. 자리 잡힐때까지, 여기서 지내..."
"...아니..."
준이의 말을 바로 가로 막는다.
".. 그냥 그렇게 해..
빨래하고 청소 요리는 니가 있는동안 맡아..
집세는 안 받을테니까...미역국 맛있게 잘 끓이더만.."
"... 그래도..."
준이는 차마 말을 잇지 못한다.
".. 식탁에 죽 사뒀으니까.. 먹고..."
툭 뱉은 말속에 따뜻함이 녹아있었다. 유부장이 가방을 챙겨서 나가려는데 멈추고 말을 한다.
"...그리고 일단은 니가 진 빚부터 갚자고.. "
그말을 들은 준이가 벌떡 일어난다.
".. 아닙니다.. 정말.. 그건 제가 해결해야될..."
".. 누가 공짜로 해준데? 이자까지 더블로 받을거야..."
".. 부장님... 제가 무슨 면목으로..."
그리고 진짜 다시 가려다가 유부장이 어렵게 다시 묻는다.
".. 그..."
좀 머뭇거린다.
".. 나 처음 봤을때.. 무슨 생각했는데?"
준이가 그때를 떠올린다. 중후한 중년이 양복을 입고서 들어오던 그때를. 가슴팍이 다 쪼그라질만큼 좋았던 감정들이 다시 솟구쳤다. 그래서 툭 튀어 나와버린다. 진짜 진심이.
".. 내 식이다.."
".. 뭐?"
".. 제 식이라구요..."
유부장은 그렇게 집을 떠났다. 무슨 뜻인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냥 그러지 않았다. 머리속에서는 '식'이라는 글자에 꽂혀있었다. 출근길에 계속 검색을 해봤지만 어떤 뜻인지 나오지 않았다.
회사에 도착한 유부장은 사람들이 인사를 해올때마다, 싱글벙글한 얼굴로 "굿모닝!" 이라고 외친다. 으례 죽을상을 하던 사람이 갑자기 돌변한꼴이라고 해야할까. 주위 사람들도 갑자기 밝아진 유부장이 적응이 안되기는 한 모양이었다.
영업1팀 분위기도 그랬다. 아무리 좌천이 되서 오는 사람이지만, 일은 해야했고 어떻게든 살아 남으려는 사람들이었다. 때로는 일하는 시간에 술냄새가 나는 유부장을 못 미더워 했지만,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밝게 인사를 할수도 있는 사람이라는건 처음 아는 사실이었다.
".. 굿모닝!!"
유부장의 인사 한마디에, 옆에 있는 영업2팀의 직원들도 눈이 휘둥그레져서 쳐다봤다.
".. 어.. 저기..."
유부장이 오자마자, 김대리에게 묻는다.
".. 저기.. 식이 무슨 뜻이야?"
".. 네?"
갑자기 친절한 유부장도 적응을 하는중인데,
친절하게 묻는 모습에 어안이 벙벙해진다.
".. 아니.. 그러니까.. 사람을 처음 봤데..
.. 그런데 보자마자 내식이다.. 그랬다는데..
.. 인터넷데 쳐봐도 안나오고.."
".. 식이요? 먹을식? "
".. 뭐? 먹어? "
".. 전 잘 모르겠는데요..."
유부장은 하루종일 궁금해했다.
한편, 준이는 침대에서 겨우 몸을 일으킨다. 무엇이 답답한건지 주먹으로 가슴팍을 몇번을 친다. 그리고 어렵사리 핸드폰을 집는다.
기억에 조각들을 맞추고 있었다. 유부장을 향해서 울분을 터트렸던 말들이 새록새록 생각나서 쥐구멍에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핸드폰을 확인한 준이의 얼굴에 그늘이 진다. 최사장과의 통화. 그리고 그 사단이 난 이후 최사장이 또 전화를 건 흔적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준이는 잠시 망설인다. 다시 전화를 걸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하지만 전화는 걸지 않기로 했다. 우울한 감은 여전했지만, 왠지 충전이 되어있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금방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준이가 문자를 보낸다.
[ 형...자? 형돈 갚을수 있을거 같아..
형한테 빌린게 10만불이지?]
준이가 전송을 누르고 기다린다.
그때 뜻밖의 답변이 돌아왔다.
생각해보니 매일 닦달을 하던 문자가 오지 않은 요즘이었다.
[.. 어.. 그거.. 말이야...
.. 그냥.. 안갚아도 돼...]
처음엔 무슨말인가 싶어서 꼬치꼬치 캐물었다. 하지만 안갚아도 된다는 말만 할뿐, 아무런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왜 인생은 잘풀릴때는 한없이 잘풀리고..
꼬일때는 한꺼번에 꼬이는지..
알수가 없는게 인생이었다.
거짓말처럼 몸이 가뿐해졌다. 드디어 침대에서몸을 일으키는데, 유부장의 체취가 가득했다. 갑자기 물건이 흥분을 한다. 한편으로는 어이가 없기도 했다. 겨우 숨만 쉬고 있는데, 벌써 그생각 뿐이라니.
수중에 가지고 있는 얼마 안되는 돈을 가지고 장을 봤다. 고기는 많이 없지만, 야채도 꽤 훌륭한 재료다.
머리속에는 온통 유부장으로 가득했다. 어제 난처했던 상황에서 야근을 핑계대준일이 자꾸만 떠오른다.
"... 아... 저 영업1팀 유승만 부장인데요...
저희가 이번에 엄청 큰 프로젝트때문에요...
야근에 야근을 하고 있습니다..."
준이는 어설프게 그때의 감정들을 떠올리며 유부장을 흉내를 내본다.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저번에는 억울한일을 대신해서 앞장서주기까지 했다. 표부장 뺨까지 때리는 박력. 준이가 웃으며 어깨를 들썩인다.
무엇보다 듣기 좋았던말은 ' 우리애' 였다.
".. 내가 뭐.. 자기 애인가? 나이도 먹을만큼 먹었는데.."
콧노래가 저절로 나온다. 하루 아침에 어떻게 사람이 그럴수 있는가 의문이다. 하지만 계약서는 철저하게 거부할수 없을만큼 준이를 위한것이었다.
".. 띠띠..띠띠.."
드디어 현관 비밀전호가 눌린다. 이 소리를 얼마나 듣고 싶었던지. 목이 빠져라 현관을 바라보며 기다리던 준이는 갑자기 어쩔줄을 모른다. 이리 뛰었다 저리 뛰었다. 그냥 자연스럽게 앉아있었어도 전혀 이상해 보이지 않았을텐데도.
소주 6병이 유부장이 들고있던 비닐 봉지 속에서 달싹거린다. 그리고 집으로 들어오던 유부장의 눈빛도 그러한거 같았다.
자리를 못잡고 있던 준이가 안방에서 뛰쳐나온다.
".. 오셨어요?"
90도 각도 인사가 유부장은 조금 부담스럽다.
".. 있기로 했나보네?"
아무렇지도 않은척 말을 꺼내며 농담을 했다. 반면 준이는 농담을 주고 받을 만큼은 편하지 않았다. 유부장을 생각할때 딱히 한마디로 어떤 감정이라고 꼬집어 말할수는 없었지만, 신세를 지는건 신세를 지는거니까. 농담인걸 알면서도 쉽사리 받아 칠수는 없었다.
".. 식사는 하셨어요?"
그래서 괜히 말을 돌렸다. 그리고 하루종일 준비한 음식들을 보여줄 기대에 부푼다.
유부장이 걸음을 옮기다 식탁에 차려진 진수성찬을 보게된다. 고기는 조금밖에 없었지만, 그럴싸한 음식들이었다.
조금 놀라는 유부장의 가방을 들면서 말한다.
".. 씻고 오세요.."
유부장은 준이를 바라본다. 준이는 심장이 멎을것만 같았다.
".. 쏴아..."
유부장이 샤워를 한다. 준이는 그 소리를 듣고있다.
눈을 감자, 아침에 본 유부장의 얼핏 눈에 담았던 알몸이 떠오른다. 가장 중요한 중심부는 못봤지만. 당황해하는 모습도 꽤 매력적이었다.
'그러나, 왜 굳이 알몸으로 나왔을까.
내가 침대에서 자고 있는걸 뻔히 봤을텐데.
더군다나 나는 중년을 좋아하는 남자라는걸 잘 알고 있을텐데..'
준이가 머리를 흔든다.
".. 미친놈.."
쓸데없는 의미부여는 정말로 쓸데가 하나도 없었다.
그럼에도 준이는 그 생각을 멈출수가 없었다.
혹시나 화장실에서 나올때 오늘 아침처럼, 알몸으로 또 나오진 않을까 싶어서 괜히 안방을 서성거리기로 했다.
알고 있었다. 그러면 안된다는것을. 하지만 본능은 이성을 언제고 어느때고 지배하고 있었다.
이윽고, 샤워 소리가 멈추자, 준이가 침을 꿀꺽 삼킨다.
본인도 조금 놀랬다. 이게 침까지 삼킬일이냐면서.
드디어 화장실 문을 열고 나오는데, 알몸이 아니었다.
괜히 안방에서 정리를 하고 있던 준이는 유부장과 눈을 마주치자 속마음을 들키는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 뭐해? 여기서?"
하지만 그와중에 빛나는 유부장의 외모에 감탄을 금치 못하고 얼머부린다.
".. 네.. 여기... 저기...."
잠시후 준이와 유부장은 마주하고 앉아서 술을 기울인다. 어색한 기운은 여전히 감돌고 있다. 한참을 마시는데, 유부장이 술을 잘못 넘겼는지, 콜록콜록 대기 시작했다. 그바람에 준이가 유부장의 등을 때려주었다.
사레가 들린게 사라질때쯤, 누군가 피식거렸다.
".. 어쭈.. 웃어?"
준이였다.
".. 죄송해요.."
그바람에 둘은 미소를 지으며,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그리고 그전까지 감돌던 어색한 기운들은 거짓말처럼 사라진것 같았다.
그런데 갑자기 유부장이 솔직하게 고백한다.
".. 도대체 식이 뭐냐?"
준이가 조금 시간을 뒀다가 말한다. 진실을 말할순 없었다.
".. 음... 존경하는 느낌? "
"...뭐?"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둘은 서로를 보면서 떠든다. 그러다가 웃다가. 다시 이야기를 한다. 한없이 즐거워 보인다. 속으로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알수 없다. 하지만 확실한건 둘다 진심으로 모든걸 잊고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는것 같았다.
.......
준이는 새벽에 일어났다. 아니 눈이 떠졌다. 그렇게 자본게 얼마만인가 싶을정도로 꿀잠을 잤다. 게운하가 못해 상쾌하게 느껴졌다.
준이는 효진의 방에서 나온다. 그리고 아침을 차린다. 어느정도 준비를 해놓고서 몸을 씻고 나오는데, 때마침 유부장이 안방에서 나왔다.
서로 눈이 마주치는 순간, 그 어색함이란.
준이가 다시 화장실문을 닫는다. 그러자 유부장도 어색했는지 괜히 소파에 앉는다.
하지만 어떤 미동도 없자, 괜히 불편해져서 다시 안방으로 들어가면서 말한다.
"..안방 들어갑니다..."
화장실에서 듣고 있던 준이는 이미 왜 문을 닫았는지에 대해서 자신을 충분히 자책하고 있는 중이었다.
".. 아이고... 시계를 깜빡 했었네..."
있지도 않은 시계를 들먹거리면서, 수건으로 몸을 거리며 효진의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그리고 바로 그 소리를 듣고서
유부장은 반쯤 웃으며, 안방을 나오면서 말한다.
".. 남자끼리.. 이거 너무 불편한데... "
준이는 방안에서 주먹으로 머리를 때리며 자학을 했다.
잠시후, 준이가 차려놓은 아침밥을 먹고, 같이 출근을 하러 집밖으로 나오는데, 유부장이 평소와는 다른길을 간다. 그리고 얼마 안가서 따라오지 않고 서있는 준이를 바라보며 묻는다.
".. 안가? 지하철 타고 갈꺼야?"
유부장의 손에는 자동차 키가 달려있었다.
BMW 검은색 suv 차가 유부장이 리모트컨을 누르자, 딸깍 소리를 나며 불빛을 깜빡거린다. 운명의 장난인지, 최사장 차와 똑같았다.
그동안 지하철을 탔던건, 하루에 몇시간은 아무것도 신경쓰지 않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유부장이 달라진것이다.
유부장은 능숙하게 차를 몬다. 지하철을 타고 다니던 그 허망한 눈빛으로 겨우 발걸음을 내딛던 사람과는 아주 딴판이었다.
점심시간이 될무렵, 사람들은 조금 웅성거린다. 점심을 뭘 먹을 거냐는 소리가 대부분이기는 하다.
".. 띠디링"
그때 도착한 문자.
[.. 나중에곰탕 집으로 와..]
준이는 문자를 읽고서 유부장을 바라보는데, 그때 사람들이 우르르 일어섰다. 그리고 남대리의 목소리가 들렸다.
".. 부장님!! 오늘은 제가 모시겠습니다.."
몇년동안 유부장은 늘 점심을 먹지 않거나, 혼자 끼니를 때우는 정도였다. 그래서 이런 발언은 정말로 파격적인 것이었다. 준이에게 문자를 보낸 유부장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남주임을 보고있었으니까.
".. 어.. 저기.. 내가 ... 오늘... 사업체랑 점심 약속이 있는걸 깜빡했네.."
준이는 유부장의 말을 그대로 믿었다. 그리고 팀내 사람들을 따라서 합석을 하고 있는데, 유부장에게 문자가 왔다.
[.. 왜 안와?]
".. 그러니까... 내가 하는 말은..."
남주임은 음식이 나오기에 일장 연설을 하는중이었다. 그런데. 준이의 핸드폰 소리가 크게 나서 말을 멈추고 있었다. 머쓱해진 준이는메세지를 재빨리 확인하고 핸드폰을 도로 넣었다.
".. 준이씨가 이제 우리 식구같으니까.. 하는 말이야....
..유부장님 아들이 5년전에 죽었어요..
... 상진인가? 성진인가? .. 아무튼...
.. 그래서 항상 우울해 계시니까..
.. 어느 정도 기본 개념은 알고 계셔라..이말입니다... "
짐작도 못한말들이 준이에게 쏟아진다. 그런데 남주임이 다시 말을 한다.
".. 근데.. 요즘.. 돌아 오신것 같아.. 예전의 모습으로.."
남주임은 두손을 가슴에 모으면서 활짝 웃기까지 한다.
".. 내가 부장님을 6년을 모셨어요..
.. 근데 요즘처럼 컨디션 좋은거는 처음이야.."
".. 암요!!"
다른 사람들도 금방 동조를 한다. 그런데 아까부터 준이의 폰이 울리고 있다. 유부장이었다.
".. 우리 이제 좌천된 사람들이라는 소리..
.. 안들어도 되는거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서, 속앓이를 하다가
준이가 어렵게 말을 꺼낸다.
". 저기 남주임님.. 아주 급한 일이 생겨서요..
.. 저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식당을 뛰쳐 나가서는, 나중에곰탕 집으로 미친듯이 뛰었다. 얼마나 큰 식당인지 주변의 회사원들로 북적해서 유부장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한쪽 구석에서 멀뚱히 문쪽을 쳐다보던 유부장이 손을 들자, 그제서야 준이가 알아챘다.
유부장은 곰탕 2개를 시켜 놓고 있었다.
".. 왜 이제와?"
남주임님이 했던 얘기가 귀가에 계속 남아돈다.그럼에도, 설렘은 자꾸 증폭 될 뿐이었다. 하지만 어디서 느껴본 기시감.
유부장이 숟가락과 젓가락을 챙겨준다. 그걸 본 준이가 웃는다. 방금 전 밥을 먹었지만, 꾸역꾸역 집어 넣는다. 그런데 이상하게 잘 넘어간다. 유부장과 같이 먹어서 그런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하필 지나가던 타팀 여직원이 알아본다.
"..유부장님!! 어? 준이씨?"
그리고 그 일은 영업1팀 사람들 귀에도 들어갔다. 준이는 마음이 불편했다. 조금씩 사람들과 벽을 허물고 있던 찰나였다. 그런데 유부장은 신경도 쓰지 않아보였다.
그리고 그것은 생각지도 못한곳으로 이상하게 흘러갔다.
살살 눈치만 보면서 업무를 보던 준이에게 남주임이 다가왔다.
".. 유부장님이랑 어떻게 점심을 먹었어?"
".. 아.. 네.. 그게..."
"... 잘했어.. 잘했어.."
옆자리에서 듣고 있던 최대리도 한마디 거든다.
".. 아니.. 어떻게 유부장님을 사로 잡은거야?"
".. 네? 아니.. 그런게 아니라.."
"... 저번에 표부장님한테 하는거 봐봐...
.... 아무튼.. 우리 부장님 지금처럼만 컨디션 유지될수 있게 자알 부탁드립니다.. 준 사모님!!."
고개까지 숙이면서 말을 건넨다. 준이는 어리둥절할 뿐이다. 이때 남주임이 다시 입을 연다.
"... 당신을 유승만 부장님의 오피스와이프로 임명합니다!!"
".. 네? 아니... 무슨..."
이때 준이에게 모여서 수근거리는 모습을 보고 유부장이 한마디 한다.
".. 모여서 뭣들해?"
".. 부장님.. 저희 서운해요.. 준사원하고 둘이만 식사 하셨다면서요.."
"....소문들은 빨라.. 진짜.. 알아줘야돼!!"
".. 그래서.. 저희가 부장님의 지금 이 텐션을 유지시키기 위해서, 준 사원을 오피스와이프로 임명하고 있었습니다!!"
"... 뭐? 와이프는 무슨.."
".. 어떻게 기념으로 오늘 회식 갈까요? 부장님?"
유부장이 쳐다보지도 않고, 결제서류를 넘기면서 말한다.
".. 그러던가.. 그럼..."
회식자리는 회사 근처 고깃집이었다. 끝에 앉으려는 준이에게 남주임이 말을 한다.
".. 준 사모님.. 여기 앉으셔야죠.."
유부장은 반쯤은 웃고있다. 그런 장난이 싫지 않은 사람처럼. 머뭇거리는 준이를 남주임이 끌고 와서 유부장 옆에 앉힌다.
그러자 유부장이 준이의 어깨를 감싸며 말한다.
".. 어서오십쇼.. 부인...
... 됐냐? "
능청스런 유부장의 한마디에 사람들이 실성할 정도로 웃는다. 준이도 웃는다. 그러면서 조심스레 유부장과 눈을 마주쳤다. 자꾸만 뛰는 심장소리가 안들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자... 자.. 잔들 들으시고..
.. 우리 부장님과 준 사모님을 위하여"
"... 위하여!!!"
사람들이 따라서 외치자, 식당에 묵직한 소리가 울렸다. 그렇게 소주 한잔이 모두의 목구멍으로 넘어간다.
그때, 남주임이 유부장을 바라보며 말한다.
".. 아아.. 부장님하고 준사모님은 러브샷 하셔야지요.."
".. 아.. 됐어! 그만해.."
유부장이 마시려다 말고 말했다. 그러자 사람들이 따라서 외치기 시작한다. 한마음 한뜻으로.
".. 러브샷.. 러브샷 러브샷!!"
그럼에도 유부장이 말을 무시하고 소주를 마셨다.
소주가 달았을까? 미소가 번지는 유부장에게 사람들은 계속 외쳤다. 그러자 잔을 내려놓고 준이를 바라본다.
".. 아.. 뭐해? 안따르고?"
준이는 소주잔을 내려놓고, 두손으로 술을 따르자, 사람들이 박수를 친다.
손을 교차해서 마시려는 유부장을 남주임이 기어코 또 말긴다.
".. 부장님.. 요즘엔 껴안고 뒤에서 마시는게..
또.. 트렌드 아닙니까..."
직접 옆에있는 사람과 시늉까지 하면서 보여준다.
".. 아.. 알았어.."
귀찮다는 말투와는 다르게 준이를 바라보는 눈빛은 달달하기만 했다. 소주를 들고 안으려고 기다리는 모습에
준이가 망설이다가 천천히 다가간다.
좋은 냄새가 난다.
향수도 아닌것이, 은근한 중독성이 있다.
가까이 가니, 향기가 진동을 한다.
다만 한가지, 진정이 안되는 심장소리가 걱정이다.
그렇게 둘은 서로를 안은 채로 소주를 마셨다. 그리고
준이의 심장소리는 모조리 다 유부장에게 전달이 되었다.
훈훈한 회식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사람들은 준이가 유부장을 바꿔 놓았다고 믿었다. 그러면서 준이에게 자꾸 술을 권했다.
그 바람에 자꾸 취기가 오른다. 휘청휘청 목이 자꾸만 내려간다. 정신을 차려보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눈이 자꾸만 감긴다.
".. 부장님.. 사모님 많이 취하신거 같은데요.."
남주임이 재밌다는듯이 한마디 거든다.
".. 아.. 아닙...니다...."
유부장은 흔들거리며 겨우 말을 하는 준이를 한번 쓱 보더니, 머리를 자신의 어깨에 안착시킨다. 그러자 준이의 눈이 스르르 감긴다.
".. 오오.. 박력... "
".. 역시..."
".. 자..자.. 나는 사모님께서 많이 취하신 관계로 먼저 가봐야 되겠습니다.."
준이를 어깨에 기대놓고는 유부장은 몇잔을 더 마셨다. 그리고 대리를 불렀다. 뒷자석에 준이를 태우자, 버티지 못하고 고개가 바로 창가쪽으로 박힌다. 그래서 유부장은 집에 갈때까지 자신의 어깨를 준이에게 내어줬다.
"... 감사합니다.."
현금을 건네고서 준이를 흔들어 깨운다. 그러자 조금 정신이 드는건지, 유부장을 보면서 베시시 웃는다.
".. 어? 부... 장... 님..이 여기 왠..일..이세요?"
"... 취했구만.. 걸을수 있겠어?
.. 다 왔어.. 집이야.."
".. 집..이요? 집? 왜 집..인데요?
.. 저..를 부..장님..집..에 왜 데.려..가시..는건데요?"
유부장이 재밌다는듯 쳐다본다.
".. 아.. 맞다.. 나..부..장..님의 ..사..모..님이지...
.. 바..보.. 바...보.."
혼자서 주먹으로 가볍게 머리를 찧는 시늉을 했다.
유부장은 준이를 부축을 하면서 집으로 걸어가는데, 준이가 멈춰서더니 갑자기 유부장을 뚫어지게 바라본다.
".. 귀..여..워"
한마디를 시원하게 내뱉으며 그만 실소가 터진다.
".. 누구? 나?"
".. 근..데요...남편님은 원..래..태..어..날..때..부터
귀..여..우셨어요?"
준이의 목소리가 귀엽다 못해 애교가 잔뜩 섞여지고 있었다.
".. 남편님? "
".. 저..도.. 진짜.. 싫었거든요?
.. 근데.. 사..람들이... 오..피스 와이프..라고 하니까..
.. 부..장님은 남편님이죠..."
유부장도 처음 보는 모습에 웃음이 툭 터져 나온다.
".. 왜? 아주 이제 서방님이라고 하지?"
".. 네? 아.. 서..방님.. 서..방님..
.. 좋다...내 서방님... 좋아..."
빙그레 웃더니, 갑자기 세상 귀여운 에너지를 다 갖다 끌어 모아서 말한다.
".. 서..방님.. 근..데.요..준..이..사..모..님
.. 2...차 가고 싶어요.."
"..사모님... 많이 취하셨습니다...
.. 오늘은 그만 자리에 드시는게 어떨런지요..."
".. 어~어..어~ 2차 2차!! 쭌이 2차 가고 싶어요!!"
유부장은 준이의 팔을 잡아채서 집으로 이끈다. 준이의 애교섞인 투정은 계속 되었다.
2차를 가겠다고 난리를 치는 준이의 장단을 유부장은 맞춰주기로 했다. 물론 집에서다. 서방님 소리를 밖에서 들을순 없으니까 말이다.
".. 일단 씻어... "
".. 씻어요? 무엇을 하시려고..."
화들짝 놀래서 온몸을 가리는 시늉을 하더니,
"..그럼.. 서방님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그러면서 준이가 화장실로 들어가자, 유부장도 안방으로 들어가 씻었다. 샤워를 하는데 자꾸 실소가 터진다.
서방님이라니. 남편님이라니.
안방에서 나오자, 식탁위에서 곤히 잠들어 있는 준이를 발견한다. 곤히 자고 있다. 무슨 꿈을 꾸는건지 미소를 가득 머금고 있다.
유부장은 살금살금 다가가서 준이를 조심히 깨우려다, 만다. 준이 사모님이 빙의가 되어 나타나실까봐 걱정이 되어서다. 조용히 준이를 부축해서 효진의 방 침대에 눕히고 나오려는데, 준이가 바스락 거리더니 입을 열었다.
"... 서방님? 어디가세요? 같이 잠자리에 드셔야죠?"
".. 어. 오늘은 따로자.. 내일.. 같이 자자고.."
".. 그럼 굿나잇 키스는요?"
".. 뭐?"
".. 쭌이 굿나잇 키스 받고 싶어요.."
유부장은 잠시 망설인다. 그때 준이가 일어나서 유부장의 목덜미를 잡더니, 그대로 입을 맞추었다.
".. 쪽.."
입을 뗀 준이가 유부장의 코를 맞댈만큼 가까이서 말한다.
".. 잘생겼단 말이지..."
그리고 다시 한번 입을 맞추고는 그대로 쓰러져 버렸다. 유부장은 그대로 멈춰있다가, 이불을 덮어줬다.
방을 나오는 유부장의 얼굴은 화끈거릴만큼 빨개져 있었다. 유부장은 냉장고에서 소주를 꺼내고 혼자 술을 마셨다. 그러다 갑자기 준이가 해놓은 멸치볶음을 꺼냈다.
성진이 죽은이후로는, 유부장은 단 한번도 술을 마실때 안주를 먹지 않았었다.
혼자 술을 마시는데 자꾸 미소가 지어진다. 분명 술 주정이었다. 주사였다. 그런데 준이는 오늘 천진하고 순진한 애들같아 보였다. 조금 밝히기는 했지만. 그렇게 마지막 잔을 하고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갑자기 준이가 방에서 나왔다.
비틀거리며 걷더니, 안방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유부장의 침대에 눕는다. 이를 보다 못해 유부장이 한마디 한다.
".. 집에서도 사모님 역할에 충실하시네...
.. 우리 준이 사모님..."
.................
더부룩하다 속이. 무언가 불편하다. 꼬르륵 대는 소리.
준이가 갑자기 눈을 뜨는데, 화들짝 놀란다.
혼자가 아니다. 심지어 한 이불속에서 유부장을 끌어 안고 자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오만가지 생각들기 시작하는데, 아랫도리가 바짝 서서는 유부장의 엉덩이에 닿을랑 말랑 하고 있다.
오만가지 생각이 한꺼번에 든다. 도대체 무슨일이 있었던건지. 왜 유부장을 끌어 안고 있는지. 상상만 하던걸 저질러 버린건 아닌지. 불안한의 극치를 달리면서 서서히 손을 빼는데, 갑자기 손이 붙잡힌다. 유부장에게
"... 우리 각시 어디 가시게?"
".. 으흐...읍..."
민망한 준이의 신음소리가 들린다. 그때 유부장이 돌아서서 준이와 눈을 굳이 마주쳐준다.
".. 준 사모님... 아무리 남자가 좋고 아저씨가 좋아도..
.. 직장 상사 침대까지 와서..."
준이는 더이상 말을 들을순 없었다. 그자리에서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리고 빨리 이 방을 벗어나고 싶은 생각밖에 없었다.
도망치는 준이에게 유부장이 끝까지 한마디 한다.
".. 이렇게 괴롭히시면, 제가 부담스러워서 어떻게 삽니까!!!!"
키득키득 웃는 유부장은 밤새 어떻게 놀려줄지 벼르고 있었다.
준이는 일단 잠옷 바람으로 집을 나왔다. 손에 든건 아무것도 없었고, 오직 드는 생각은 했냐 안했냐? 였다.
".. 미친놈아.. 상상을 실현시키는건 범죄야..
.. 이새끼야!!!!"
목청껏 회한의 소리를 지르자, 아파트에 울려 퍼진다.
새벽공기가 제법 쌀쌀했지만, 준이에게는 어떤 것도 느껴지지 않는 사람같아보인다. 오직 어제 기억의 조각들을 찾는데만 몰두하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엉덩이를 쪼이며 온몸을 위로 쫙 편다 한손으로는 입을 막으면서 소리까지 냈다.
".. 으으읍!!!"
유부장에게 입을 맞춘걸 기억해냈기 때문이다. 담배라도 피면서 진정하고 싶지만 정말 아무것도 손에 든게 없었다. 그렇게 백퍼센트 기억을 못맞추고 결국 집으로 돌아오는데, 비밀번호를 누르는게 생각보다 많은 용기를 필요로 했다.
하지만 결국 용기를 낸다. 다른 옵션은 준이에게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들어간 집에는 거짓말처럼 조용했다. 준이는 살금살금 걸어가서 정장으로 갈아입고 씻지도 않고 방을 나오는데, 유부장이 앞에 서있다. 곧바로 무릎을 꿇고는 말했다.
" 죄송합니다!!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 만약에 무언가를 했다면, 부디 용서해 주시고..
.. 다음부터는.. 절대로..."
아직 끝나지 않은 준이의 말을 자르면서 유부장이 묻는다.
" 식이라는거... 존경하는거 아니지?"
준이는 대답이 안나온다. 말하고 싶어도 할수가 없고, 하고 싶지도 않다. 그래서 냅다 집을 뛰쳐 나가는데,
"...뛰지마!! 우...산...가..져...가...야..."
준이도 유부장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쏜살같이 사라진다. 아파트 밖을 미친듯이 뛰쳐 나오는데, 유부장의 말과는 다르게 햇살은 반짝인다. 준이는 지하철을 타기 위해서 걸어갔다.
그리고 얼마후, 유부장에게 문자가 왔다.
[ 준이 사모님.. 어찌 서방님이랑
같이 출근을 하지 않으시고..]
준이는 그날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으로 일했다. 중간 중간 악마같은 유부장은 알수없는 악마같은 미소를 날린다. 그럴때마다 몸서리를 치고. 팀원들은 유부장이랑 짜고 치는 고스톱을 치는것고 아닐텐데, 자꾸만 준이 사모님이라 부르며 90도 각도로 인사를 하며 놀렸다.
점심시간에도 미리 도망을 갔다. 도저히 유부장의 얼굴을 볼 자신이 없었다. 늘 혼자 있던 화장실에 있는데 유부장에게 문자가 온다.
[.. 각시.. 서방님 배고파..]
준이가 두 손으로 머리를 쥐어 짠다. 그리고 "..미친놈.." 을 몇번이고 되뇌인다. 그렇게 숨죽여 눈치만 보다가 퇴근 시간이 디가왔다. 어김없이 유부장이 한마디를 하고..
".. 퇴근들 해.."
사람들이 흩어질무렵, 유부장은 준이가 앉아있는곳을 확인하는데, 벌써 사라지고 없었다. 뒤 늦게 나가보는데, 준이는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유부장은 뿌듯했던 모양이다. 괜히 어깨를 한번 들썩거리더니, 한발자국 내딛으며 우산을 핀다. 그러자 비들이 유부장의 우산에게로 너나할것없이 쏟아진다.
".. 사모님.. 가시죠.."
웃는 얼굴로 바라보는 유부장을..
끊임없이 맞춰주는 유부장을 바라보면서,
준이는 자꾸만 뛰는 심장이 무척이나 싫었다.
그러면서도 그럼에도 많이 느껴본 기시감을 도저히 지울수가 없었다.
그리고 곧 그 마음에 부응을 하는듯,
현실이 알아서 먼저 움직이기 시작했다.
준이의 핸드폰이 울리고 있었다.
일단 유부장을 향해 뛰는 가슴은 둘째 치더라도,
세상의 모든 시름같은 비들을 ,그 모든 슬픈것들을 손수 유부장이 나서서, 굳이 우산까지 받쳐주며 있었으니까. 누구건 간에 지금은 반칙 같은 상황이었다.
준이는 망설이다 전화기를 꺼낸다. 현이다. 머리속에서 떠나지 않는다는 여자때문인게 확실했다. 누가 뭐라해도 현이의 결혼이 먼저긴 했다.
아무리 지금의 상황이 꿈결같이 느껴지더라도 준이는 알고 았었다. 모든게 꿈같은 이야기라는걸. 그래서 망설이지 않았다.
".. 여보세요?"
".. 혀.. 엉..."
그런데, 현이의 목소리에 울음이 가득 섞여있다.
".. 형.. 영우 어머님이 집에 오셨는데..."
준이가 그 소리를 듣자마자, 뛴다. 그리고 유부장과 같이 있어서 뛰던 심장 박동수는 점점 줄어든다. 유부장은 우산에서 멀어지는 준이를 멈춰서서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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