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중설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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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화 설레는 사이 (1)



“수리비로 30만 원이나 처받아 먹고 한 달도 안 돼서 다시 고장이 난다는 게 말이 돼? 이게 jot나 누굴 호구로 아나.”


팔뚝을 뒤덮은 용 문신을 보여주려고 하는 건지, 눈앞의 사내가 팔을 걷어붙이더니 손가락으로 재은의 이마를 툭툭 밀었다. 


“죄송합니다, 고객님. 하지만 그때 제가 분명히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이 차는 엔진이 너무 낡아서 수리를 해도 소용없다고요. 수리비만 나올 뿐이니 차라리 교체를 하시라고 말씀드렸는데 그때 고객님께서 며칠만 굴러가도 좋으니 고쳐만 놓으라고 하셨잖아요?”


재은은 용 문신 사내의 말투에 잔뜩 긴장하면서도 할 말을 다했다. 수리해봤자 소용없을 거라고 분명히 경고했지만 수리해 달라고 한 건 사내였다. 딱 봐도 폐차 직전의 차를 엔진만 살짝 수리해서 팔아넘기려고 하는 것 같았다. 


“이 새끼가 왕 같은 고객님한테 따박따박 말대꾸네?”


사내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 이 새끼 봐라? 그러니까 너는 아무런 책임이 없다? 돈을 30만 원이나 받아 처먹고 수리를 했으면 최소한 6개월은 굴러가야 할 거 아니야? 야 이 새끼야. 네가 양아치냐, 양아치야? 돈만 날름 받아먹고 입 싹 닦게? 수리할 자신이 없으면 돈을 받아 처먹지를 말든가. 수리를 했으면 똑바로 하든가.”


용 문신 사내가 시비 걸듯 재은의 어깨를 툭툭 쳤다.

사무실 안에서 지켜보던 양 사장이 발만 동동 굴렀다.


“저 조폭 새끼, 한동안 안 보인다 싶더니 연말에 이게 웬 날벼락이냐? 아이고, 재은이 저 자식 어쩐다냐? 호식아, 네가 좀 나가봐라. 잉?”


양 사장이 호식이에게 나가보라고 채근하자 호식이 기겁을 했다.


“저 팔뚝에 문신 안 보이세요? 저보고 지금 나가서 맞아 죽으라는 얘기예요?”


“워매, 인정머리 없는 것. 그럼 너는 재은이가 저 자식에게 맞아 죽는 건 괜찮다는 말이여, 시방?”


“그렇게 걱정되면 사장님이 나가면 되잖아요. 그리고 이런 일은 사장님이 나서서 해결해야지, 우리 같은 직원들이 무슨 힘이 있어요?”


“우리 같은 쬐끄만 공업소에 무슨 사장, 직원 구분이 있냐? 그리고 나는 나이가 많아서 뼈마디가 삭았잖냐? 한 대 맞으면 그냥 작살나. 나보다는 젊은 네가 회복이 빠르것지.”


“그렇게 따지면 재은이가 제일 젊으니 저 녀석이 그냥 맞으면 되겠네요.”


호식이 입을 삐죽거리자 양 사장이 호식을 바라보며 손으로 가슴을 두드렸다.


“아이고, 내가 이런 의리 없는 놈을 직원이라고 데리고 있었으니…. 아, 이럴 때 경찬이가 있어야 하는 건데 말이여. 경찬이 녀석, 눈에 힘만 한번 주면 저 양아치 새끼가 저렇게 함부로 굴지는 못할 텐디…. 하필이면 이런 날 휴가를 쓴다냐?”


소심한 양 사장은 밖으로 뛰쳐나가지는 못하면서도 재은이가 걱정되어 사무실 안에서 안절부절못했다.

용 문신 사내의 손길에 한 걸음씩 뒤로 밀리던 재은이 뒤에 뭐가 와서 부딪혔다. 작업용 선반이었다. 이제 더 밀릴 곳도 없었다. 


“내가 호구로 보이냐, 이 새끼야? 내가 호갱이야?”


사내의 말이 점점 거칠어졌다. 돈이라도 주지 않는 이상 그냥 끝낼 기미가 안 보였다.


“이 자식을 그냥 콱!”


용문신을 잔뜩 새긴 팔뚝이 재은의 머리 위로 쳐들렸다. 사내의 손이 금방이라도 얼굴로 떨어지려는 찰나. 공업소에 차량 한 대가 들어왔다. 


빵!

공업소에 들어온 차는 들어오자마자 경적을 크게 울렸다. 

용 문신 사내는 재은을 때리려다가 경적에 인상을 쓰며 뒤를 돌아보았다. 


“뭐여?”


뜻밖에 이런 변두리 공업소에는 볼 수 없는 때깔 좋은 외제차 한 대가 서 있었다. 

민재였다. 하필이면 이런 때에. 

재은은 치부를 들킨 것만 같아 저도 모르게 손으로 작업복을 움켜쥐었다. 

민재가 새까만 선글라스를 쓴 채 창밖으로 고개를 내미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당신 뭐야? 지금 무슨 짓이야?”


민재가 사내와 재은 쪽을 응시하며 따져 물었다. 돈 냄새가 풀풀 나는 차가 나타나자 사내의 입꼬리가 쓱 올라갔다. 허름한 공업소 정비공 보다 뜯어낼 게 많다고 생각한 게 틀림없었다.


“넌 뭐여?”


사내가 재은을 내버려 두고 민재에게 다가왔다. 목 근육을 풀려고 좌우로 돌리는 기색이 위협적이었으나 민재는 눈 하나 깜박하지 않았다.


“당신, 차 빼. 내가 먼저 예약했으니까.”


민재의 말에 사내가 누런 이를 드러내며 씨익 웃었다.


“아, 그러셔? 당연히 빼 드려야지.”


사내가 민재 차 후드 부분을 손바닥으로 툭툭 쳤다.


“차 좋네. 흐흐흐.”


사내가 자신의 차에 타더니 후진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눈치가 이상했다. 사내는 차를 돌릴 거리가 확보되었는데도 계속 민재의 차 쪽으로 다가가는 것이 아닌가. 배상금을 노리고 일부러 충돌사고를 일으키려고 하는 게 분명했다.

재은이 놀라서 소리쳤다.


“스톱!”


그런데 사내 차가 후진하는 것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민재가 중고차를 그대로 들이박았다.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퍽! 

그 기세에 사내의 몸이 순간적으로 앞으로 쏠렸다. 민재의 람보르** 보닛이 살짝 찌그러지고 사내의 중고차 브레이크 등이 깨졌다. 

누가 봐도 다분히 의도적인 충돌이었다. 물론 먼저 충돌하려고 했던 건 용 문신 사내였지만.


“아이고 목이야!”


사내가 죽는소리를 하며 뒷목을 부여잡고 내렸다. 민재도 차 문을 열고 내렸다. 회사에서 바로 온 모양인지 깔끔한 수트를 입고 있었다. 사내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민재가 먼저 입을 열었다.


“후진 중에 내 차를 들이박으셨군. 피하지 못한 내 잘못도 있으니 쌍방과실로 하지.”


“뭐야? 쌍방과실? 이 새끼가!”


용 문신 사내가 험악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면 폭행 미수에 협박죄로 감방에서 콩밥 좀 먹든지. 보아하니 전과 경력도 화려할 듯한데.”


“하, 씨벌. 이 새끼도 나를 호구로 아네?”


“너 같은 새끼 감방에 처넣는 거 일도 아니야. 내가 경찰, 검찰 쪽에 인맥이 좀 넓어서 말이야.”


딱 봐도 몇억은 나갈 것 같은 차에, 범상치 않은 옷차림, 차가운 말투. 그리고 자신의 문신을 보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대범함.

사내는 대번에 기가 죽었다. 


“아 씨.팔, 이래서 대한민국은 안된다니까.”


사내의 목소리에 힘이 빠진 걸을 보니 쌍방과실로 마음을 정한 모양이었다.


“차량 번호와 인적사항은 여기 있을 테니 따로 줄 필요 없고. 돈이나 한 사오천 준비해 놔. 내 차가 좀 비싸서 말이야. 쌍방과실이 5대5로 나오면 그쯤 들 테니까. 더 나올 수도 있고.”


사내의 표정이 가관이었다. 몇십만 원 뜯으러 왔다가 그보다 딱 백 배를 더 물게 생겼으니 그럴 만도 했다.


“며, 몇천만 원?”


“그러기에 왜 감당도 못 할 짓을 저질렀어? 아까 네가 먼저 내 차 박으려고 했던 거 아니야?”


민재가 비웃자 용 문신 사내는 그제야 정신이 든 듯 말투가 급공손해졌다. 


“아 참 형씨도. 서로 접촉사고 가볍게 난 걸 가지고 무슨 쌍방과실이요? 내 더 안 따질 테니 그냥 없던 일로 합시다.”


“없던 일로 하자니. 내 차 보닛 찌그러진 거 안 보여?”


민재가 인상을 썼다. 금방 상황이 바뀌었다. 이제는 용 문신 사내가 쩔쩔매기 시작했다.


“안 되겠군. 당장 보험사에 전화해야겠어.”


민재가 전화를 하려고 하자 사내가 얼른 민재의 팔을 부여잡았다.


“돈도 많아 보이는 양반이 이거 왜 이러시오? 그냥 좋게좋게 넘어갑시다.”


“좋게좋게? 재밌는 사람이군. 당신 이 사람이 누군 줄 알아?”


민재가 갑자기 재은을 가리켰다. 난데없이 자신이 거명되자 재은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민재의 입에서 또 무슨 소리가 나올지….

하지만 정작 당황한 사람은 그 사내였다. 허름한 변두리 정비소 정비공이 이런 고급 외제차 주인과 아는 사이라니.


“당신 아까 이 친구 협박했지? 나조차도 함부로 손도 못 대는 친구인데 말이야.”


아직 재은과 진도 나간 게 없으니 손도 못 댄다는 민재의 말이 틀린 말은 아니었다. 민재 말의 숨은 뜻을 알아챈 재은은 금세 목 뒤가 달아올랐다. 이런 상황에서도 저런 말이 나올까. 하지만 용 문신은 민재의 말을 다르게 해석했는지 얼굴이 노랗게 질렸다.


“이 친구는 당신 따위가 감히 협박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야.”


민재가 선글라스를 벗고 사내를 바라보았다. 잘 생긴 두 눈이 얼음으로 빚어진 양 냉기를 내뿜었다. 오싹한 느낌이 드는 눈빛이었다. 민재가 성큼 앞으로 한 걸음 내딛자 사내가 주춤거리며 뒷걸음질 쳤다. 


“저, 저… 분이 누군데 그러시오?”


재은을 가리키는 호칭도 ‘새끼’에서 ‘분’으로 급상승했다. 사내는 있는 사람 앞에서는 고개를 숙이고 없는 사람 앞에서는 한껏 기가 사는 양아치의 전형이었다. 


“누구냐면 말이야, 바로 내-”


“감사합니다. 고객님!”


재은이 얼른 큰소리로 인사하며 민재의 말을 잘랐다. 재은의 두 눈에 난감한 빛이 떠올랐다. 민재를 바라보며 그러지 말라는 눈 신호를 연신 해댔다. 그 눈빛이 귀여워 민재의 눈에 장난기가 떠올랐다. 민재가 모르는 척 다시 사내에게 시선을 돌렸다.


“바로 내 소중한-”


“형이에요, 형. 사촌형.”


 재은이 어색한 미소를 띠며 민재와 사내를 쳐다보았다. 사촌이라는 말에 사내는 완전히 사색이 되었다. 


“어이쿠, 내가 눈이 삐었나 봅니다. 하기야, 이렇게 귀태가 나는 분이 공업소 정비공일 리가 없는데 그것도 못 알아봤군요. 죄송합니다. 그러고 보니 두 분이 참 닮으신 것 같습니다.”


용 문신 사내가 금세 비굴 모드로 바뀌더니 재은에게 90도로 깍듯이 인사했다. 사무실 안에서 지켜보던 양 사장과 호식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민재는 재은과 닮았다는 소리에 기분이 좀 풀려 입꼬리가 슥 올라갔다.


“그래도 눈이 장식은 아니군. 이렇게 하지. 당신이 두 번 다시 이 공업소에 나타나지 않으면 내 차 박은 건 없던 일로 해주지.”


민재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사내가 민재에게 다시 90도로 몸을 꺾으며 큰소리로 감사를 표시했다. 몸을 숙이는 건 습관인 듯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 두 번 다시 여기 얼쩡거리지 않겠습니다.”


용 문신은 민재의 마음이 바뀔세라 얼른 차에 오르더니 공업소 밖으로 나갔다.


“감사합니다. 그러면 그렇게 믿고 저는 그만 가겠습니다.”


“명심해. 다시 한번 나타났다가는 돈만 받아내는 것뿐만 아니라 콩밥까지 먹게 해줄 테니.”


“걱정 마십시오. 두 번 다시 올 일 없습니다.”


용 문신이 사라지자 그제야 공업소가 조용해졌다. 사무실 안에서 줄곧 지켜보던 양 사장과 호식이 밖으로 뛰쳐나와 호들갑을 떨며 손뼉을 쳤다.


“브라보. 정말 멋있습니다, 고객님. 어쩌면 이렇게 타이밍도 좋으신지.”


양 사장의 칭찬에 민재가 아이 같이 우쭐한 표정으로 재은을 쳐다보았다. 그 모습에 재은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방금 전까지 여기 있던 카리스마 넘치던 분은 어디로 가셨나?”


재은이 중얼거리자 민재가 반색하며 물었다.


“왜? 카리스마 넘치는 타입이 좋아? 앞으로 쭉 그렇게 할까?”


그러면서 다시 선글라스를 썼다. 


“어때? 카리스마 있어 보여?”


재은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럴 리가….


“아무렴요. 카리스마 있다마다요. 그렇게 선글라스를 쓰니 매트릭스에 나온 키아누 리브스 같습니다. 마침 기럭지도 비슷하고. 흐흐흐.”


양 사장이 다시 민재에게 아부성 발언을 했다. 조금 전까지 살벌하던 분위기가 그 바람에 훈훈하다 못해 우스꽝스럽게 바뀌었다.


“정말입니까, 사장님? 제가 제일 좋아하는 배우가 키아누 리브스입니다. 이야, 사장님이야말로 정말 사람 볼 줄 아시는군요. 하하하.”


민재는 양 사장의 아부성 발언에 기분이 좋은지 금세 표정이 풀렸다. 

카리스마는 개뿔. 딱 봐도 꼬리가 빠지도록 흔드는 강아지구만.


“그나저나 차가 망가져서 어떡해요? 견적 꽤 나올 것 같은데….”


재은이 민재 차량 앞부분을 살피며 걱정스레 말을 꺼냈다. 망가진 보닛을 보니 첫날 민재와 함께 왔던 고은정 얼굴이 떠올랐다. 고은정이 알면 난리 날 것만 같았다.


“차야 맡기면 되지. 걱정하지 마. 마침 근처에 왔다가 네가 보고 싶어서 점심도 안 먹고 한달음에 달려왔어. 역시 오길 잘했네.” 


민재가 서글서글하게 웃으며 말했다. 

자신이 보고 싶어서 밥도 안 먹고 달려왔다는 말에 재은의 얼굴이 발그레 상기되었다. 

이 아저씨, 사람 마음 설레게 하는 말을 참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버릇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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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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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pa…
  • 작성일
넘 좋아요
읽기 편하고 거부감없고
평범하고 소소한 BL소설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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