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사람들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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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기발랄한 눈을 하고서 유부장이 웃는다. 준이는 떨리는 심장을 주체할수가 없어서 눈을 질끈 감는다. 늘 바래왔던 순간이니 왜 그렇지 않겠는가.
".. 와 하고 싶나?"
".. 함 하까?"
".. 내가 몬할거 같나.."
유부장의 숨소리와 능청이 섞인 경상도 사투리를 어색하게 섞은 소리가 들렸을때, 준이는 정말 유부장이 해줬으면 했다. 아니 맘껏 범해줬으면 했다. 새하얀 그의 피부를 느껴보고 싶었고, 흥분된 유부장의 모습을 보고싶었다. 그리고 준이도 마음껏 해주고 싶었다. 지금의 복잡한 문제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오직 유부장과 몸을 섞고싶은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 띵동.."
그 소리가 들렸을땐, 아이러니하게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들끓는 욕정이 안타까웠고 서러웠고, 서글퍼서였을까. 현실도 직시하지 못하는 한심한 인간이란걸 뒤늦게 알아채서였을까.
초인종 소리의 주인은 석이었다. 영우를 데리고 먹을것을 바리바리도 싸왔다. 준이는 석이를 맞이하기전 큰 숨을 뱉어보았다. 용기가 필요했다. 자신의 정체성을 들키고 처음 가족들을 마주했을때 석이도 이런 심정이었을까.
모를때 바라보는 시선은 그렇게 중요하지가 않았다. 하지만 상대방이 나를 알고 있다고 생각하니, 모든 행동이 조심스럽고 부담이 되었다. 영우와 유부장은 짠듯이 자리를 비켜주었다. 준이는 석이를 마주했지만, 모든게 어색하게 느껴졌다. 그저 먼저 말을 꺼내야 된다고만 생각했다.
".. 저기.. 석아..."
올려다 보는 눈빛이, 어쩜 어렸을적 개구쟁이 소년과 아직도 그렇게 똑같을까.
".. 나도.. 게..이...야..."
겨우 입밖으로 소리를 내보내는데, 석이가 아무말도 하지 않고 준이를 껴안았다. 그리고 등까지 두드려준다.
".. 왜 말 안했어..엉..엉..."
우는건 준이가 아니라 오히려 석이었다. 그 개구쟁이 소년이 이렇게나 컸나 싶어서 준이는 처음으로 동생에게 기대어 보았다. 동생에게 기대도 되는구나 준이는 그때 처음으로 그걸 깨달았다.
...............
유부장과 영우는 근처 까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싱글벙글이던 얼굴이 금새 그늘이 졌다가, 활짝 피웠다가 영우는 좀처럼 유부장의 기분을 가늠할수가 없었다.
".. 근데.. 형님 진짜 대단하신거 같아요.."
분위기라도 바꿔 볼려고 영우가 먼저 말을 걸었다. 그러나 유부장은 잠시 미소를 보이고는 금새 감춰버린다. 그리고 잠시후에 입을 연다.
".. 나도 내가 지금 무슨 정신으로 사는지 모르겠어.."
자조적인 말투에, 영우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옆에서 봤을땐 늘 확신에 차있던 모습이 한편으로는 부러웠고 그런 모습때문에 응원을 한것이었기 때문이다.
"... 미.친놈 같지 않아?"
영우는 말대신 두손을 휘이 저으며 그렇지 않다고 강력하게 표현을 했다. 그러자, 유부장은 답답한 속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한참 그말을 듣고, 영우가 물었다.
".. 그렇게까지 하시는 이유가 뭔데요?"
..........
유부장은 집으로 가는 도중, 따스하면서도 살랑거리는 봄바람이 자꾸 거슬렸다. 그러다 문득 아들 성진이가 죽고 딱 지금과 비슷하게 자신의 뺨에 닿는 봄바람이 너무나 싫었던 기억을 끄집어 냈다. 그리고 할수있는 한 최대한 빠르게 스스로 추락하기로 마음을 먹은일도 생각이났다.
그러나, 그때 자신을 알게 모르게 붙들어 줬던 사람이 바로 준이었다.
유부장은 자꾸만 훌쩍이게 되는 코를 닦고는, 집으로 들어갔다. 미소를 한가득 머금은채로. 다행히 준이는 밝아 보였다. 마음이 한결 가뿐해 보였다. 역시 영우에게 오늘 집으로 오라고 부탁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준이의 점심을 차리고 같이 웃으면서 밥을 먹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늦은 오후쯤에 준이를 침대에 재웠다. 그리고 술대신 차를 한잔 마시고 있는데,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
효진은 지금 유부장집 앞에 서 있다. 입술을 힘을 주어 꽉 다문다. 결연한 의지가 돋보이지만, 눈빛은 불안해 보인다.
머릿속에는 유부장의 말이 계속 떠오르고있다.
(내가 어떻게 해서든 다 정리하고 너한테 갈테니까)
효진은 표정을 풀어본다. 양 입술을 옆으로 움직이며 웃는 연습을 하다가 초인종을 누른다.
" 띵동 "
문을 여는 유부장의 얼굴은 반들반들 거린다. 샤워를 했는지 머리가 젖어있고, 상큼한 비누향이 온몸에 난다.
"... 아빠..."
".. 어.. 왔어?"
"... 웬 일이야? "
못 올때라도 온것처럼 묻는 어투에 빈정이 상했는지 알굴을 찌푸렸지만, 기분탓이겠지 싶어서 애써 감정을 감춘다. 깔끔해진 집안에 달라진 유부장이 더 의심스러웠다.
"... 아주버님은?"
"... 어.. 자..."
집안에는 조용한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다. 효진은 그 음악이 아주버님을 위한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 오랜만에 아빠랑 술 한잔 할까 하고..."
".. 그래? "
갸우뚱 거리는 유부장의 목소리에 이미 충분히 거절을 품고 있는것 같아서, 효진은 슬쩍 떠본다.
"... 바빠?"
"... 아니... 준이가 자는중이라....
.. 깨어나면 내가 있어야 되서.."
어렵사리 말을 뱉어 놓는데, 효진이 당수를 친다.
".. 집에서 마시지 뭐..."
효진은 그제서야 들고있던 봉지를 앞으로 내민다.
설마설마 했다. 그런데 이건 좀 너무 심하다. 아주버님을 아끼는 정도가 도가 지나친다. 애기도 아니고 잠깐 놔두고 밖에서 술한잔 한다고 해도 특별한 일은 없을것이다.
"... 근데.. 아빠... 요즘에 술 안마셔?..."
동생이 죽고 하루도 빠짐없이 마시던 술을 어떻게 하루아침에 아무렇지 않게 안 마실수가 있는가. 더군다나 어떻게 해서든 거절을 하는 태도도 몹시 못마땅했다. 효진의 머릿속은 점점 더 화가 차오르기 시작한다.
"... 그럼.. 뭐.. 나만 마시지.. 뭐..."
이미 기분이 상했지만, 억지로라도 대화를 하겠다는 굳은 의지를 다진 효진은 소파로 가더니 앞에 놓여진 탁자에 술상을 벌인다.
"...이러지 않아도 돼... "
알수없는 말을 내뱉는 유부장. 하지만 효진은 그럼말이 귀에 들어올리 없다. 기필코 그 말에 의미를 어떻게 해서든 물어봐야겠다는 결심만이 머리속에 꽉차 있었기 때문이다.
"... 모든걸 다 정리하겠다는 말이 무슨 뜻이야?
.. 아주버님한테 가겠다니.. 그건 또 무슨 말이고?"
술 한잔을 마시더니, 잔을 내려놓으며 혼자서 애태우던 고민을 힘들게 한 웅큼 끄집어 낸다.
유부장은 가만히 듣고 생각을 하는지 아무말이 없다. 효진은 순간 자신이 설마설마 하고 생각했던게 진실임을 곧바로 깨닫는다. 그래서 울컥거린다. 그런데 마음 한구석에는 알수없는 질투가 저만치 피어난다.
그런데 유부장이 서둘러서 준이가 자고 있는 방을 가본다. 그리고 조용히 문을 닫고 나와서는 효진을 부추기며 말한다.
".. 나..가..자.. 나가서 얘기하자..."
효진의 얼굴에는 벌써부터 눈물이 흐르고 있다.
"... 내가 중요해? 그사람이 중요해?"
유부장은 그 모습을 보고도, 의식를 하지 않은것인지, 못본채를 하는것인지 대답은 하지 않고, 술상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 대답해!!! 아빠! 나.. 결혼 하지마? "
"... 목소리 좀 낮춰..."
"...설마 설마 했어.. 아니겠지.. 잘 못 들었겠지..
..현이씨한테는 말도 못하겠고.."
하지만 유부장은 여전히 안방에 있는 준이의 눈치를 보는지 시선을 어디에 둘지 모르고 계속 방황한다. 효진은 그 모습 마저도 서운하다.
"..나는 안중에도 없어? 그런거야?
..성진이만 자식이야? 입양된 딸은 자식도 아니야?
..성진이가 그랬으면.. 아빠 이렇게... 했을까? "
쏟아지는 가시돋힌 말들은 유부장의 가슴팍에 그대로 여과없이 꽂힌다. 그것은 아프고 애리다.
"....아주버님이야...
....내가 결혼할 사람 형되는 사람이라고..."
유부장은 서럽게 울먹거리는 효진을 바라본다. 그리고 말없이 치우는것을 멈추고, 소주 한병을 병나발을 분다. 그러자 차마 말하지 못했던 뜨거운 기운이 밑에서 부터 올라온다.
"... 그만 울어...."
유부장의 나직한 물음에 효진의 눈물이 결국 분수처럼 터져버린다.
"... 나 꽉막힌 여자 아니야..
... 다른 사람이 그러는건 다 이해해..
... 근데 왜 우리아빠냐고! 그것도 아주버님과..."
유부장은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있다.
"..아빠 이러지마.. 진짜! 나 애 낳으면... 뭐라고 해..
.. 할아버지랑 삼촌이랑, 그렇고 그런사이라고 해?"
갑자기 유부장이 일어난다. 그리고 마주 보고있는 효진에게 다가가 덥썩 안아준다. 그리고 깉은 속도로, 같은 강도로 최대한 따뜻함이 전달될 수 있도록 등을 토닥거려준다.
"... 미안해.. 아빠... 나 평생을 못되쳐먹게 산거 알아... ..질투만 하면서, 아빠 엄마.. 가족들 다 괴롭히고.. "
효진이 흐느낀다. 유부장 품에서 서글프게.
".. 성진이.. 사고로 죽은거...
.. 아빠가 죽인거라고.. 소리나 지르고.."
..그거... 그거...
.그거... 그거...
".. 그거.. 사실.. 나 때문이야... 나 때문에 죽었어..
..아빠 때문이 아니라고... 나 때문이야.
.. 내가 죽인거야... 성진이..."
".. 그게 왜 니 잘못이야?
..성진이 명이 거기까지인것을 왜 니탓을해?
"..아니야.. "
그때 효진이가 평생 죄스럽게 여겼던 돌덩이가 떨어진다. 늘 가슴속에 지니고 다니던 무겁던것이, 언젠가는 말해야 할것을 알았음에도, 애써 모른척했던것이, 이름도 모르는 그것이 입밖으로 나온다.
".. 아빠가 본 컴퓨터의 성진이 사진들..
.. 그거 내가 그런거야.. 일부러..
.. 아빠 보라고.. "
효진이 숨까지 헉헉 거리며 말을 잇는다.
".. 그러면.. 아빠가 성진이를... 미워하고..
.. 나만.. 좋아..할줄 알았어.. 바보같이..
.. 그렇게.. 계속 술만 마실줄은 몰랐어.. 진짜야!"
유부장은 평온하게 효진의 등을 두드리고 있다.
".. 입양된 주제에.."
그 말은 순간 유부장의 마음을 뼛속까지 저리게 만든다.
".. 그래서.. 그래서.. 나 막 살었어..
.. 일부러 쓰레기같은 남자만 만났어..
.. 빨리 내인생 망치고 죽고 싶었어..."
유부장도 희미하게 흐느낀다.
"..딸! 너 때문에 아니야.. 아빠 다.. 봤어.."
효진이 화들짝 놀래서 유부장을 바라본다.
"..알고 있었어? "
유부장이 조용히 고개만 끄덕인다.
"..근데 왜 아무말도 안했어.. 엉.. 엉..
.. 차라리 나쁜년이라고 욕해주지..
..내가 아빠한테 얼마나 못되게 굴었는데..."
".. 니 잘못이 아닌데, 무슨 말을해.."
".. 아빠.. 우리 성진이... 어떡해...
.. 나같은게 들어와서... 다 망쳐버렸어..
.. 아빠도 망치고.. 엄마도 망치고.."
유부장이 두손으로 효진이의 팔을 잡고 눈을 마주치며 말한다.
".. 딸! 그건 내 잘못도, 니 잘못도 아니야! 알아들어?
.. 어디까지나 정해진 운명인거야..
.. 아빠도.. 엄마도.."
고개가 숙여지는 효진의 팔을 흔들어 다시 눈을 마주치며 온 우주의 기운을 담는다.
".. 아빠는.. 우리딸이 아빠한테 와서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
...단 한번도 원망하거나 싫어한적 없어..
.. 늘 더 주지 못해서 안타까웠지.."
".. 아빠...엉.. 엉.."
효진이 그 후로도 유부장 품에서 한참을 운다. 용기가 없어서 속에 삼켰던 말들을 쏟아내는건 왜 그렇게 오래걸릴까. 한없이 쌓여만 가던 체증이 눈녹듯 사라지는 마법이 일어날 수도 있는데.
제법 진정이 된 효진과 유부장은 말없이 소주를 들이킨다. 섣불리 어떤말을 해야 되는지 무슨 말을 이어가야 하는지. 머릿속에서는 온갖 말들이 둥둥 떠다니는데, 무엇이 적합한지 그 둘은 알수가 없었다.
그때, 유부장이 먼저 입을 연다.
".. . 딱 니 결혼식때까지만이야..."
효진은 뜬금없는 아빠의 말에 어리둥절 하면서 그 말을 곱씹어보는데, 유부장은 아련한 표정을 하고서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효진에게 당부한다.
"..그러니까 너는 아무것도 걱정하지마.."
..현이하고 행복하게만 살아주면돼...
..이번에는 이혼하지 말고..."
그리고 가볍게 그러나 무겁게 웃어준다. 웃어보이는 유부장의 미소가 너무나도 처절하면서 아름다웠다.
"... 아빠는?"
".. 아빠는 우리딸만 행복하면 되.."
그 말을 하는데, 유부장의 눈시울이 뜨겁다. 효진은 어찌할바를 모른다. 자신도 모르게 유부장을 안는다. 그러자 유부장의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희미하게 어깨를 떨린다. 효진은 한참을 울고나니, 마음이 평안해진다. 지난날의 얼룩덜룩 묻혀진 삶이 이제서야 보상 받는 다는 삶의 회한이 미친듯이 몰려오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어떤 결심같은게 섰다.
효진이 떠나는 현관문 소리가 닫히자, 안방에서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유부장이 놀래서 발걸음을 옮겼다.
".. 일어났어?"
준이는 멍하니 침대에 걸터 앉아있었다. 희미하게 웃어보이지먼 어딘가 슬픈표정을 짓고 있다. 순간 일어나는 준이를 보고 유부장이 떨리는 목소리로 묻는다.
"... 어디가게?"
준이는 질문에 답이 없다.
아무래도 언제부터 들었는지 듣긴 한 모양이다.
"... 들었어?"
대답없이 준이가 가방에 자신의 짐을 꾸역꾸역 넣는데, 그 손을 낚아채며 묻는다.
"... 어디가냐고?"
"... 저는 자신 없어요..부장님이랑 같이 살 자신..
.. 커밍아웃 할 자신도 없고, 현이한테 그런짓 못해요..
.. 저희 부모님한테 가슴에 못박는일은..
... 더더욱 못하구요..."
유부장은 그 마음을 알면서도, 퍼부어 주고 싶었다.
".. 그 가면을 쓰고...
..남들은 진짜 니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거짓된 인생을 살면서 죽고싶어?"
"... 네.. 저는 그렇게 살고 싶어요..
.. 그래서 손가락질 덜 받을수 있다면...
... 저는 그렇게 해서라도.. 삽니다.."
어느새 준이는 캐리어의 지퍼를 잠근다. 그리고 옷을 입고 방으로 나가려는데, 유부장이 길을 가로막고 선다.
".. 준아..."
덜덜 떨리는 원초적인 감정이 그대로 드러나는 목소리가 처량하고 애절하고 간절하게 준이의 귓가를 울린다.그런 유부장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자신의, 우리의 신세가 한없이 가엽게만 느껴진다.
"... 부장님....."
준이가 올라오는 감정을 힘겹게 붙잡으며 말을 뱉었다. 어깨까지 떨면서. 묻고 싶었다. 왜 그런말을 했느냐고. 모든걸 다 정리하고 오겠다는 말은 결국에는 아무 의미도 없는거 아니냐고. 먼저 선을 긋기는 했지만, 내심 어떻게든 그렇게 된다라고 하면 모든걸 버릴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 그러지 마.. 제발 그러지 마라..
..나는 더이상 너 애쓰는거 못보겠으니까.."
준이가 고개가 떨군다. 눈물은 그렁그렁 맺혀있다.
"..우린 애초에 말이 안되는거였어요."
어느새 유부장의 눈가에도 눈물이 맺혀있다.
"... 내가 좋다며? 같이 있고 싶다며?
처음이라며! 근데 왜 포기해!"
"... 현이랑 효진씨랑 결혼하고나면,
.. 그땐... 부장님도 날 떠나요?"
준이가 목소리를 떨며 물었다. 유부장은 울먹거리는 준이를 한참을 쳐다본다. 대답할 말이 있지 않았다.
"..근데 왜 석이보고 처남이라고 했어요..
...다 버리고 나한테 온다면서요..
...이거였어요? 결혼식할때까지만 잘해주는거?"
그만해야할것을 알았으면서도, 유부장이 다 버리고 온다고해도, 받아주지도 못할거면서, 준이는 끝끝내 자신의 깊숙한 진심을 터트려버렸다.
그때 유부장이 준이를 껴안는다.
준이는 참아왔던 힘겨운 숨결을 유부장의 목덜미에 내어놓는다. 어떤 사람이길래 이토록 품이 따뜻하고 안정적일까. 굳이 말하지 않아도 느낄수 있는 사람이 바로 여기 있었다.
"... 도망가자.. 우리..."
그때 준이를 뿌리치며 강렬한 눈빛으로 말했다. 그리고 그동안 참아왔던, 숨겨왔던 것을 모조리 쏟아낸다. 숨김없이 빠짐없이.
".. 니가 거지 같다는거.. 다 안거지같게 해줄게...
..가자.. 인생 뭐있나!
.. 니하고 내하고 좋고 사랑하면 되지...
.. 뭘 먹고 살아도 산다.
자식새끼 한 평생, 애지중지 하면 많이 했다.
인자 마지막은 니 다 줄게.."
준이가 유부장을 뿌리치고 주저 앉는다. 그리고 서럽게 운다.
".. 도망가서 아무도 상관하지 말고, 너랑 나랑 살자.
.. 니 행복하게 해줄게..매일 사랑해주고..
.. 니가 원하는거..니가 바라는거 다 해줄게...
.. 가자... 빨리 일어나라..."
준이의 흐느끼는 소리가 점차 거진다. 유부장의 포효가 커지면 커질수록.
" 우리 준이.. 더이상 아프지 않게...
..내가 다 싸매주고.. 아껴주고 한다고...
.. 가자.. 제발..."
유부장은 준이의 손을 잡아 이끈다. 그럼에도 준이는 끄떡없이 목놓아 울기만 한다.
".. 나는 다 필요없다.. 너만 있으면 된다..
단 한번도 이렇게 가슴이 뛰어 본적이 없다.
근데 너를 만나서 내 가슴이 뛰고..
기분이 좋고.. 더 해줄껀 없을까..
매번 노심초사 하게 되고...
하루종일 니생각만 하면 행복하고..
" 그래서!!. 다 필요없고..
그냥 딱 니 하나만 원한다는데, 왜 안된단 말이고!"
너도 나도 서로 좋아한다는데!"
속절없이 유부장은 맘에 깊숙히 생각해왔던 말들이 쏟아진다. 그리고 그것은 준이의 가슴팍에 애달프게 꽃힌다. 하나하나 빠짐없이.
유부장이 금방이라도 울것같은 준이를 두고서 짐을 빠르게 싸기 시작한다. 그리고 준이의 손을 잡고 집을 나선다. 질질 끌려가는 준이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른다. 정해진곳은 없다. 유부장은 계속해서 서두른다. 무엇하나 준비도 없이 왜그렇게 허겁지겁 대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그래야 할것만 같다.
허공에 촛점없는 눈동자를 하고, 준이는 안전벨트도 하지 않고 차에 가만히 있는다. 유부장은 그런 준이를 발견하고는 안전벨트를 손을 뻗어서 채운다.
"..두르릉.."
이윽고, 차에 시동이 걸리고, 급하게 아파트 단지를 빠져 나온다. 차창밖으로는 네온불빛들이 무수히 쏟아져 내린다. 달빛은 서럽게 온 우주를 비춘다. 둘은 조용히 정적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그렇게 온 세상이 조용해진다. 세상에서 나오는 생활소음도 더이상 들리지 않는다. 둘은 그렇게 세상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유부장이 잠시 편의점에 간사이, 준이의 핸드폰이 전화벨 소리를 낸다. 준이는 차창밖을 바라보다 전화를 받는다. 현이었다.
".. 어.. 현아..."
"... 형엉..."
".. 왜그래? 무슨일 있어?"
".. 효진씨가 헤어지제.."
순간 준이의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그래서 일단 유부장의 차를 빠져나와 미친듯이 달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숨을 헉헉 대더니, 말을 한다.
".. 여보세요?"
" 어.. "
울먹이는 소리로 현이를 다독거리며 말한다.
".. 너는 이제부터 아무 걱정하지마..
... 너는 효진씨와 결혼을 할테니까.."
준이는 전화를 끊고, 미친듯이 뛴다. 죽을듯이 . 마치 멀리 도망가는 사람처럼.
그때 때마침 비가 내리고, 유부장은 차에 돌아오지, 사라진 준이를 발견하고 잠시 멈춰있다가, 비를 맞은채로 전화를 건다.
".. 띠.. 띠.. 띠.. 띠..."
이윽고 전화를 받고는, 목소리가 들린다.
".. 형님.. "
".. 어....나야...
..우리 준이좀 찾아줘야 겠는데..
.. 시간이 많이 없어...."
얼마남지 않는 시간. 유부장은 마음이 초조했다.
...........
"그렇게 까지 하시는 이유가 뭔데요? "
영우는 유부장의 전화를 끊고, 그와 만났던 늦은 오후를 떠올렸다.
" 꼭 한번은 준이를 채워주고 싶어..."
영우는 이해할듯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 말을 하던 유부장의 모습은 찬란하기까지 했다. 직접 보지 않으면, 절대로 똑같은 감정을 느낄수가 없을정도였다.
".. 그럼 원래부터 끝까지는 안가시겠다고 마음 먹으셨건거예요? "
유부장은 희미하게 고개를 흔든다. 그리고 최사장과의 대화를 떠올렸다.
".. 내 욕심때문에 다치는 사람이 너무 많아.."
".. 근데 왜 저한테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 도와달라고.. 준이형과 잘되게 해달라고.."
".. 그건 내 진심이었어.."
".. 아니요.. 제가 잘 이해가.. 안가서요..
.. 전 정말 형님이 어떻게든 잘해보시려고 하는줄 알았어요.
...아무리 힘든 상황이지만.."
유부장이 쓴 웃음을 짓는다.
" 난... 이 사랑을 언제 끝내야 하는지를 알아.
근데, 그것에 연연하면, 내가 알잖아..
얼만큼 해야 준이가 상처를 덜 받을것을.. "
영우의 눈이 커진다.
".. 그럼 채워지겠어? 그렇지 않아도 텅텅빈 애인데.."
".. 언제 멈춰야 될걸 정확하게 알고있지만,
.. 그런건 애초에 몰랐던 사람처럼,
.. 모든걸 다 준이에게 쏟아 붓고 싶었어.."
유부장이 고개를 숙이고 읖조렸다.
" ..그러면, 만약에 채워져 진다면..
...더 이상은 그 허망한 눈빛은 안하겠지 싶어서...
.. 그럼, 우리가 헤어지저라도,
.... 준이가 지금보다는 더 단단한 사람이 되었으면 해서...
.... 덜 상처 받고...
....누구에게라도, 더 많이 사랑받는 사람이 되었으면 해서....
.. 그래서..."
영우는 거기까지 생각하고는, 급하게 준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계속되는 신호음만 갈뿐, 목소리는 들을순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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