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중설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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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화 봄날 (1)
3월도 벌써 중순이었다. 아직 아침, 저녁으로 바람이 쌀쌀하기는 하지만 겨우내 입었던 두꺼운 외투를 벗고 산뜻한 봄옷을 입는 사람이 많았다. 재은은 살면서 요즘처럼 행복한 때가 없었다. 앞으로 살아갈 모든 날이 늘 지금 같기만 하면 좋겠다.
차 밑에서 엔진오일을 교체하던 재은이 작업을 다 끝낸 다음, 고객이 요청하지 않은 다른 쪽도 함께 점검했다.
“흠, 브레이크 패드는 조만간 가셔야 될 것 같네요. 3개월 내에 한 번 더 오시는 게 좋겠습니다. 그 외에는 다 정상이네요. 아 참, 타이어 공기압 보충해 드릴게요. 날씨가 추우면 공기압이 낮다고 경고등이 자주 떠요.”
깔끔하게 생긴 청년이 활짝 웃으며 친절하게 응대하니 싫어하는 고객이 없었다.
“아이고, 총각이 얼굴도 훤칠한 데다 싹싹하기까지 하네. 고마워요.”
엔진오일을 교체한 아주머니가 재은의 팔을 덥석 잡으며 고마워했다.
“고맙긴요. 마땅히 봐 드려야 하는 건데요.”
재은이 공기압을 보충하고 수납까지 도와준 다음, 나가기 편하도록 차를 돌려주었다.
“그럼 안녕히 가세요.”
“그래요, 총각 수고해요. 나 총각 보러 여기 또 올 것만 같아.”
“하하하, 그러면 감사하죠.”
사무실 안에서는 양 사장과 호식이 문 앞에 턱을 괴고 서서 재은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이상하네. 분명히 뭔가 바뀌었어. 저 녀석이 저렇게 자주 웃는 애가 아니었는데 말이여.”
양 사장이 미심쩍은 표정으로 재은을 쳐다보며 말했다. 호식이 옆에서 팔짱을 낀 채 맞장구쳤다.
“그러게요. 처녀도 아닌데 봄바람이 들었나, 요즘은 늘상 웃고 있어요. 작업할 때도 피식, 밥 먹을 때도 피식, 아마 화장실에서 똥 쌀 때도 피식거릴 것 같아요.”
호식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양 사장이 호식의 뒤통수를 시원하게 갈겼다.
“야 인마. 너는 남 똥 싸는 것까지 궁금하냐? 잘 나가다가 꼭 삼천포로 빠져요, 빠지길.”
“아야! 누가 남 똥 싸는 게 궁금하대요? 말이 그렇다는 거지.”
호식이 뒤통수를 부여잡으며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쩐지 오늘은 좀 조용히 넘어가나 싶었다.
“김 양아, 봄바람 전문가인 네 생각은 어떠냐? 재은이 저 녀석이 지금 봄바람 든 게 맞지?”
“네, 그런 것 같아요. 연애라도 하나 보죠.”
김 양은 쳐다보지 않고 시크하게 한마디 했다.
“뭣이라고? 연애?”
양 사장과 호식이 입을 쩍 벌린 채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서로 마주 보았다.
“저 녀석이 언제 여자를 사귀었지? 여자가 찾아오는 꼴을 못 봤는데 말이야?”
호식이 의외라는 듯이 두 눈을 가늘게 뜨고 재은을 바라봤다.
“만나도 밖에서 만나것지, 뭣 하러 공업소에 데리고 오겠냐? 허, 녀석. 보기보다 의뭉스러운 데가 있네?”
재은이 여자를 만난다고 하지도 않았건만 이미 기정사실로 생각해버린 양 사장이 호식의 말을 받았다.
“그러게요? 자식이 연애하면 한다고 얘기할 것이지, 누가 뺏어가기라도 할까 봐.”
호식이 금세 또 양 사장의 말에 동조했다. 옆에 있던 경찬이 듣기 싫다는 듯 갑자기 호식에게 버럭 소리쳤다.
“야, 너 오전 중에 소나타 엔진 부품 받으러 가기로 하지 않았냐? 설마 오후에 예약 손님 있는 것 잊은 건 아니겠지?”
“아 맞다, 부품. 아 씨, 부품을 걔네가 갖다 줘야지 내가 왜 직접 가야 해?”
호식의 부루퉁한 말에 경찬이 다시 몰아붙였다.
“아쉬운 건 우린데 그럼 어떡하냐? 그 자식들은 오늘 시간이 안 된다고 하고, 오후에 이미 예약은 잡혀 있고. 직접 갔다 와야지. 빨랑 갔다 와.”
경찬이 신경질적으로 얘기하더니 사무실 유리문을 거칠게 열고 밖으로 나갔다.
“옴마, 저 녀석은 또 왜 저렇게 심술이 났다냐? 봄이 오는 게 싫은 갑다?”
뭔가 불만에 가득 찬 경찬의 뒷모습에 양 사장이 두 눈을 껌벅였다.
“호호호, 연애가 잘 안 풀리나 보죠.”
이번에도 자타 공인 연애 전문가인 김 양은 문제가 연애라고 보았다.
“뭐? 저 자식도 연애한다고? 이것들이 뭐야, 나만 쏙 빼놓고. 야, 문 닫고 가. 추워!”
호식이 알 수 없는 패배감에 분통을 터뜨렸다.
****
민재의 집요한 설득에 재은이 넘어가 버렸다. 1박 2일로 여행을 가기로 한 것이다. 사실 민재와 단둘이 가는 여행은 뿌리칠 수 없을 만큼 달콤한 제안이기도 했다. 여행은 민재의 위시리스트 중에서 가장 마지막에 있는 항목이었다. 그렇다고 다른 항목을 다 실행한 것도 아니었다. 다만 선운사 동백꽃은 지금 가야 볼 수 있다는 민재의 말에 재은은 뭔가에 홀린 듯 덥석 약속을 해 버린 것이다.
재은은 아직 제대로 벚꽃구경 한번 제대로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 재은에게 서울에서는 볼 수 없는 동백꽃을 보러 남도로 떠난다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아찔한 유혹이었다. 원래는 2박 3일이지만 집을 3일이나 비우기가 걱정된 재은과 하룻밤이라도 재은과 보내고 싶은 민재가 1박 2일로 서로 타협을 보았다.
재은은 지은이와 아버지가 걱정되었으나 두 사람은 너무나 태연하게 다녀오라고 했다. 두 사람 모두 재은이 요 몇 년간 일에만 치여 산 것을 잘 알기에 1박 2일로 여행을 다녀오겠다는 얘기를 꺼냈을 때 오히려 박수를 치며 기뻐했다.
지은은 1박 2일이 무슨 여행이냐며, 이왕 갔다 올 거 2박 3일로 갔다 오라고 하면서 누구와 가는지 넌지시 떠보기도 했다. 재은은 고등학교 동창들과 함께 간다고 둘러대면서도 눈치 빠른 지은이 알아챌까 봐 조마조마했다.
몇 년 만에 떠나는 여행에 재은은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 그것도 다른 사람이 아니라 민재와 함께 가는 여행이었다. 숙소와 맛집 등 여행 준비를 민재가 다 한 덕택에 재은은 몸만 가면 되었다. 이렇게 편안하고 즐거운 기분, 정말 얼마 만인지 알 수가 없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여행가는 당일, 아침부터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했다.
“하늘이 우리 여행 가는 거 시기하나 봐. 어제까지만 해도 날씨가 좋았는데.”
민재가 투덜거렸다.
“난 비 오는 것도 좋은데? 운치도 있고. 세상도 차분해 보이잖아.”
빗방울이 연신 부딪혀 흘러내리는 창밖으로 먹구름이 잔뜩 낀 어두운 하늘이 보였다. 그 밑으로 멀리 아파트 단지와 고층 건물이 멀어져 갔다. 그 모습이 답답한 일상에서 멀어지는 것만 같아서 좋았다.
창밖으로 이제 막 새순이 돋기 시작한 나무가 보였다. 비 때문에 차분하면서도 뭔가 설레는 이 기분. 여행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봄이 오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마침 차 안에는 봄비에 어울리는 감성이 풍부한 발라드가 흘러나왔다.
재은은 자동차 기어를 붙잡은 민재의 손을 슬그머니 잡았다.
“왜?”
민재가 전방을 주시하다가 재은에게 살짝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그냥. 형이 좋아서.”
“이야, 오늘 비가 도와주네. 나 좋아한다는 고백도 받고 말이야.”
“쳇. 고백은 무슨.”
재은이 민재 손을 놓으려고 하자 이번에는 민재가 재은 손을 꽉 움켜잡았다.
“한번 잡았으면 절대 놓기 없기다? 알겠지?”
민재가 또 재은을 슬쩍 보며 미소를 지었다.
차가 고속도로를 벗어나 국도로 접어들었지만 빗방울은 더욱 거세지기만 했다.
“비가 이렇게 오니 오늘 선운사 가기 어렵겠는걸?”
민재가 하늘을 보며 중얼거렸다.
“오늘 못 가면 내일 가면 되지.”
“우리 재은이, 엄청 느긋하네? 그럼 점심 먹고 일단 체크인부터 할까?”
“그래.”
“알고 보니 고창이 장어가 유명하더라고. 우리도 장어나 한 접시 먹을까? 마침 힘쓸 일도 많을 듯한데.”
민재가 장어 얘기를 하면서 은근한 눈빛으로 재은을 바라보았다.
“누가 아저씨 아니랄까 봐 말하는 것도 아주 엉큼해.”
“너 먹는 것 가지고 차별하는 것 아니다? 장어 먹는 게 왜 엉큼해?”
“아무튼 싫어. 난 힘쓸 일도 없고.”
민재가 갑자기 목을 좌우로 돌리며 피곤한 척했다.
“요즘 야근을 많이 했더니 몸이 자꾸 축나는 것 같아. 몸보신 좀 하면 좋을 텐데. 어이구, 삭신이야.”
그 말에 마음이 약해진 재은은 결국 민재 따라 장어를 먹기로 했다. 재은이 오케이를 하자마자 민재는 장어를 먹지도 않았는데 힘이 솟구치는지 입꼬리가 잔뜩 올라갔다.
“장어 먹고 힘이 남아돌면 어떡하지? 팔굽혀 펴기라도 해야 하나? 오늘은 비가 와서 밖에 나가지도 못할 텐데.”
민재가 슬쩍 재은을 보다가 딴청을 부렸다.
어휴, 정말. 이래서 나이는 못 속이나 보다. 저 느끼한 아저씨 말투라니. 처음에는 안 그랬는데 알아갈수록 점점 능글맞다.
재은이 민재를 째려보다가 ‘풉’ 하고 웃었다. 어쩌면 엉큼한 것은 자신인지도 모른다. 안 그런 척 겉으로는 내숭을 떨면서도 속으로는 기대감에 가슴이 떨리니….
그런 면에서 형은 적어도 자신의 욕구에 솔직한 편이다. 나보다는.
두 사람은 민재가 심혈을 기울여 고른 맛집에서 만족스러운 점심을 먹고 오늘 밤을 지낼 펜션에 체크인했다. 호젓한 숲속에 자리한 펜션은 빨간 지붕이 있는 유럽 스타일로 마침 주위에 동백나무 숲이 우거져 있었다.
짐을 정리한 다음, 2층 베란다 문을 여니 바로 앞에 활짝 핀 붉은 동백꽃이 추적추적 비를 맞는 모습이 보였다. 비바람에 떨어진 것인지 바닥에는 꽃송이 수십 개가 통째로 떨어져 있었다. 바닥에 떨어진 붉은 꽃송이가 비에 젖는 광경이 애잔한 느낌을 불러일으켰다.
재은이 베란다 문을 열고 방바닥에 우두커니 앉아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조차 구슬프게 들렸다.
민재가 종이컵에 커피를 타서 건네주었다. 아직 기온이 쌀쌀해서인지 종이컵에서 하얀 김이 모락모락 올라왔다. 종이컵의 온기에 차가워진 손을 녹였다.
“굉장히 감상적인 풍경이네.”
민재도 종이컵을 들고 재은 옆에 나란히 앉았다. 옆방은 비어 있는지 빗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재은이 민재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그러자 민재도 가만히 재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공기는 차가워 한기가 들 정도였지만 자신의 어깨를 감싸 안은 민재의 손끝에서 따뜻한 온기가 전해졌다.
기댈 수 있는 사람이 있어서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
비 오는 날, 이 쓸쓸한 풍경을 보면서 같이 커피 한 잔을 마실 수 있는 사람이 있어서 다행이다.
그 사람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 민재라서 정말 다행이다.
민재가 고개를 숙이고 가만히 입을 맞추어왔다. 동백꽃처럼 붉은 재은의 입술이 살짝 벌어지며 분홍색의 귀여운 혀와 하얀 치아가 모습을 드러냈다. 달콤한 커피 향이 나는 민재의 혀가 부드럽게 재은의 혀를 휘감았다. 민재가 재은이 들고 있던 종이컵을 치우더니 재은을 그대로 뒤로 눕혔다. 흐린 날씨 때문에 어두워서인지 재은의 하얀 피부가 오늘따라 더욱 창백하게 보였다.
자신을 올려다보는 사슴 눈망울같이 순한 재은의 눈을 보며 민재가 재은의 하얀 목에 입술을 갖다 댔다. 그 하얗고 깨끗한 목선을 따라 입술 자국을 남기기라도 할 듯이 민재가 천천히 입을 맞추며 조금씩 아래로 내려갔다.
민재의 손이 재은의 상의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허리선을 쓰다듬던 민재의 손길이 그대로 재은의 가슴을 어루만졌다. 재은은 특히 가슴이 예민한 편이라 손길이 조금만 닿아도 자신도 모르게 입에서 신음이 터져 나왔다.
“윽!”
민재의 손길이 부드럽게 재은의 가슴을 어루만지자 재은이 허리를 꿈틀거리며 조금씩 열기에 가득 찬 소리를 내뱉기 시작했다.
민재가 재은의 상의를 걷어 올렸다. 하얀 가슴 위에 찍힌 연분홍색 두 점이 수줍게 고개를 내밀었다. 그 아래로 부드럽게 이어지는 허리 라인을 따라가다 보면 제법 탄탄한 복근이 나오고 그 아래에 참외 씨같이 앙증맞은 배꼽이 나타났다.
그 배꼽이 너무 귀엽게 보여서 민재는 그대로 고개를 숙여 배꼽에 입을 맞추었다. 혀로 배꼽 주위를 살짝 문지르자 재은이 허리를 비틀며 뜨거운 숨을 내뱉었다. 새하얀 허리가 꿈틀대는 느낌이 너무 좋아서 입으로 계속 배꼽 주위를 애무하며 한 손으로 재은의 허벅지 안쪽을 훑었다.
“읏!”
재은의 다리에 힘이 들어갔다. 그 바람에 민재의 손이 두 다리 사이에 끼고 말았다. 그 상태로 재은의 허벅지를 쓰다듬으며 손을 위쪽으로 서서히 끌어당겼다. 이윽고 손끝에 재은의 다리 사이 봉긋 솟은 부분이 닿았다. 바지 지퍼를 뚫고 튀어나올 듯한 기세로 잔뜩 성을 내고 있는 그것을 민재가 손바닥으로 살살 어루만지며 비볐다.
“하읏!”
재은의 입에서 다시 신음이 새어 나왔다. 하지만 옷 위로 닿는 불완전한 느낌에 답답했던지 재은이 고개를 들고 민재를 내려다봤다.
“형, 빨리….”
얼굴이 약간 상기된 재은의 두 눈에 조급함이 떠올라 있었다.
“빨리 뭘?”
민재가 손바닥으로 재은을 계속 자극하면서 짓궂은 표정으로 재은을 바라보았다.
재은이 거친 숨을 내쉬며 민재를 노려보았다. 이렇게 민망한 단어를 입 밖으로 내게 하는 민재가 얄미운 듯이.
“해…줘.”
“뭘?”
재은의 표정이 재밌는지 민재가 계속 재은의 애를 태웠다.
재은이 창피한 듯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우물거리며 말했다.
“빨…아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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