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X에서 만난 고교동창 -2부- (3부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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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X에서 만난 고교동창 -2부-  (3부작)



-2부-



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방 안에서 취해있는 태혁일 끌어안는 그 순간, 그의 체취가 오롯이 내 코 끝에 전해져왔다.  



옆에서 그저 바라만 보았던 태혁일..

속으로만 좋아하고 있었던 태혁일


그렇게 내 몸으로 끌어안는순간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기분과 함께 심장이 미친듯이 요동치고 있었다. 


승수는 바로 옆 침대 위에서 잠을 자고 있었지만, 완전히 술에 취해 뻗어있었기 때문에 지금 태혁이와 나의 상황에 전혀 방해가 되지 않았다.   


이대로 안고 잠들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지만 다시 한 번 이성을 차리고 내게 안겨있는 태혁일 떼어내어 바닥위에 조심스레 눕힌 뒤 머리를 살짝 들어올리곤 그 밑에 얇은 베게 하나를 넣어주었다. 



동시에 정신이 혼미해지면서 갑자기 힘이 빠지는 이 느낌은 대체 무얼까. 


고개를 돌려 침대 위를 바라보니 승수가 팬티만 입은채로 술에 취해 뻗어있었고 그 아래 바닥에서는 태혁이가 팬티만 입은채로 잠을 청하고 있었다. 


마치 지금 이 상황은 20살의 게이였던 나에게 극한 인내심 테스트를 하는 것과 같은 기분마저 느껴졌다. 


난 얇은 이불을 가져와 태혁이 위에 덮어주곤 피곤했는지 나도 태혁이 옆에 누워 잠을 청하려 하는데 난 몸을 옆으로 세워 태혁이 바로 옆에 누워선 태혁이의 얼굴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리고 시선을 조금더 아래로 내려 가슴과 배 쪽으로 이동하는데

술에 잔뜩 취해 깊게 호흡을 하는 탓에


숨을 쉴 때 마다 배가 아래 위로 크게 움직이고 있었다.  


난 시선을 조금 더 밑으로 내렸고  

어느새 내 눈은 그의 팬티로 고정되었다. 


눕기 전, 불을 꺼서 그런지 

모텔 방 안이 꽤나 어두웠지만

어둠 속에서 어느새 내 눈이 적응됐는지

불을 켜 놓은 것 처럼 잘 보이고 있었다. 


특히 태혁이의 팬티 안 물건의 윤곽은.. 너무나도 선명하게 보였다. 


난 다시금 고개를 들고 시선을 올려 태혁이의 얼굴을 바라보는데 그 때, 운동장 한 켠에서 땀흘리며 농구를 하던 태혁이의 모습이 자꾸만 그려졌다. 



그렇게 멍하니 태혁일 바라보고..

또 바라보는데...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었던 걸까.


혹, 내 안에 또 다른 자아가 깨어나 버린걸까.


순간, 난 겁도 없이 곤히 자고 있는 태혁이의 입술 위에 내 입술을 포개었다.



사실 정확히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5초 정도 입술을 포개었다가 가볍게 떼어내는데 다행히도 태혁이가 마냥 정신없이 잠에 취해있었다. 



참아왔던 숨을 내몰아쉬는데 심장은 이전 보다 더 빠르게 뛰어미친듯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가슴을 부여잡고 천장을 바라본 채 누워서 잠을 청하려 하는데




“창석아, 너 지금 뭐한거야?”


내가 태혁이 한테만 너무 집중했던 탓이였을까...언제 깼는지, 눈을 비비며 침대에 가만히 앉아있던 승수를 확인하지 못했다. 

 


“어!? 승수야.!! (많이 놀랐지만 최대한 놀라지 않은 척) 언제 깼어?”


“나 좀전에... 오줌 마려워서 화장실 좀 가려고.. 아 머리아퍼..근데 너 지금 태혁이 한테 뭐 한거야...? 내가 지금 잘 못 본거 아니지? 어? 그런거지?”


“어????"


이 때 오만가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뭐지. 승수가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본거지. 난 여기서 뭐라고 말을 꺼내야 하는걸까..


생각해내야해..어서 빨리...


빨리....생각하지 않으면..



"어? (애써 태연한척) 아....방금 그거..? 태혁이가 너무 움직임도 없이 자길래 코로 숨쉬나 안쉬나 확인 한 번 하려고 그런거야.”


나도 모르게 임시방편으로 뱉어낸 말이었지만... 솔직히 조금만 생각해봐도 말도 안되는 변명이란 걸, 저 똑똑한 승수가 모를 리가 없었다. 


“아~~ 그런거였어?? (침대에 내려와선) 와 근데 바닥 개 따뜻하네???? (구석에 비워져 있는 소주병을 보고는) 야 근데 니네 4병이나 더 마셨어?? 진짜 미친거 아냐?? 그러니 저렇게 죽은 사람처럼 자는거 아녀 어휴..”


정말 모르는 건지, 모르는 척을 하는건지 승수가 잔소리를 내뱉으며 이내 화장실로 들어간다.



승수가 화장실로 들어선 순간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조용히 태혁이 옆에 눕는데..


태혁이에게 괜히 몹쓸짓을 한 것만 같아 죄책감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상대 동의나 허락도 없이 뽀뽀라니 게다가 여자도 아닌 같은 동성에게...이건 너무나 이기적이면서도 비겁하고 잘못된 행동이였단 걸 뒤늦게 깨달아가고 있는 중 이였다.    



술은 이미 흥건히 취해서 정신이 몽롱한 상태였고, 바닥은 보일러로 후끈후끈 해서 머리가 바닥에 닿는 그 순간 바로 잠이 들어버릴 것 같았지만, 태혁이의 입을 맞추던 그 순간이 자꾸만 떠올라서 그랬을까. 이상하게도 잠이 오지 않았다...



그렇게 깊어가는 밤, 아침 해가 뜨기 직전까지 잠을 뒤척이다 겨우내 잠이 들었다. 


불행 중 다행인걸까. 다음날 태혁이의 동태를 보니 아무것도 모르는 눈치였다. 


그나저나 승수는 언제 취했냐는 듯

어제보다 정신이 더 맑아져서는 해장하러 가야지! 라고 우리 둘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어깨동무를 하며 크게 소리 치는거 보니 초조하고 불안했던 마음들이 조금씩은 가시고 있었다. 




대학교 입학 후 


서울과 춘천이 그리 먼 거리는 아니였지만 몸이 멀어져서 그랬을까..


아니면 대학교 1학년 신입생 생활이 너무나 바쁘고 재미있어서 그랬을까. 


그것도 아니면 혹시라도 자기 입술에 내 입술을 갖다 댄 걸 잠결에 느꼈던 건 아닌지, 이상하게 그 이후로 태혁이와의 연락이 뜸해졌다. 


승수와 태혁이 그리고 나. 이렇게 세 명과의 관계가 점점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소원해지고 있었다.  


세명 모두 군대를 다녀오고, 다시 복학을 하고, 취업을 하고 그렇게 각 자의 자리에서 바삐 살다보니 우린 연락도 없이 10년이 넘는 세월을 정처없이 흘러보내고 있었다. 



 

*다시 현재로 돌아와서 추석 연휴 이틀 째.


조용하던 폰에서 문자 알림이 울렸다.


승수 였다.


[창석아]


[웅]


[맛난거 많이 먹었어?]


[어~ 벌써 나 살찐거 같은데.]


[너 오늘 저녁 괜찮다고 했지? 그럼 이따 저녁 8시 교동에 있는 청담이상 주점에서 보자.]


[알겠어~~]


[그럼 이따 8시에 봐~] 



8시, 주점 앞 


내가 모르는 사이에 새로 생겼는지 꽤나 비싸보이고 분위기 좋아보이는 이자카야. 


주점인데도 입구에서 신발을 벗어야 했고 안으로 들어서니 은은한 조명과 벽부터 천장 부분까지 줄지어 있는 일본 사케 장식들이 우릴 반기고 있었다. 


게다가 일본식 다다미방을 연상시키는 룸 테이블 구조로 꽤나 조용하면서도 연인끼리 조용히 술을 마시며 데이트하기 딱 좋은 그런 장소였다고나 할까. 



승수가 예약까지 미리 해놨는지 들어가자마자 본인 이름을 대고는 직원으로부터 어느 한 곳으로 안내를 받았고, 방 안으로 들어와 단 둘이 앉은 후, 술과 안주 몇 가지를 시키곤 이런 저런 대화를 이어가기 시작했다.


“지금 그럼 정확히 서울 어디에서 지내고 있어?”


“학교는 사당 쪽에 있고~ 사는 곳은 봉천 쪽. 넌?”


“아 밑에 쪽 이였구나. 난 왕십리역 근처~~”


“그럼 담에 서울에서 만날 때 중간쯤인 잠실에서 만나면 되겠네~~~(승수가 웃으며)”


“응 ! 그나저나 태혁이도 오늘 여기 같이 왔으면 좋았을텐데.. 아쉽다 그치? 담에 서울에선 태혁이랑 꼭 셋이서 뭉치자!”


“(아무말 없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승수)”

 


얼마 지나지 않아 주문했던 술과 안주가 다 나오곤



“승수야 우리 둘이서 같이 술 마시고 있는거, 여기 안주랑 같이 사진 찍어서 태혁이 한테 톡으로 보내줄까? 놀려주자!! 같이 못 온거 후회하게 (웃으며)”


라고 승수에게 이야길 꺼냈다. 


“어? 여자친구랑 놀고 있을텐데 뭐하러~~ 오늘은 우리끼리 즐기자~~사진은 너 편할대로 찍구~~”


"그런가...?"


그렇게 중간중간 사진도 찍으며 술을 기울이는데 그나저나 승수 저 녀석. 십년 사이에 겉모습도 많이 달라졌는데 주량도 확 늘은건가. 소주 반 병밖에 못 마시는 줄 알았던 아이가, 벌써 우리 둘이서 두 병째를 마시고 있었다. 


“근데 승수, 너 예전보다 술이 확실히 늘긴 늘었다. 이것만 마시면 벌써 각 1병이야~”


“아무래도 회식도 잦고, 술도 자주 마시다보니까 그런가봐. 내가 봐도 술이 좀 늘긴 했어. (웃으며)”


“그 때 수능 마치고, 20살 겨울방학 때 태혁이랑 셋이서 술마시던 날, 너 그때 진짜 빨리 취했었는데.. 태혁이 이야기 하니까 갑자기 태혁이 보고 싶다. 그치?”


“(잔을 들어 술 한 모금을 더 들이키곤) 근데 창석아”


“응?”


“너 왜 자꾸 태혁이 이야기만 해. (목소리를 깔며)”


“어?? (순간 당황하며)”


순간 이곳을 메우고 있는 공기가 차가워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 나는... 그냥... 다같이 오랜만에 (괜히 머쓱해져선, 일부로 목소리를 크게 내며)”


“창석아”


“응?”


“나 뭐 하나만 물어봐도 되냐? (꽤나 진지한 목소리로)”


“어~~ 그럼그럼”


“너 말야...”



승수의 저 뒤에 과연 무슨 말이 나올지, 나에게 무슨 말을 하려고 저렇게 뜸을 들이는 건지 도무지 예상이 되질 않았다. 



“너 그 때, 우리 셋이서 모텔에서 술 마시던 날”


그런데 승수가 모텔에서 술 마시던 그 날을 입술 밖으로 꺼낸 그 순간..뭔가 불안한 예감이 스멀스멀 차오르기 시작했다. 


난 아무말 없이 그저 승수의 말을 경청할 뿐이었다. 


“너 그 때 자고 있던 태혁이 한테 왜 뽀뽀한거야...? 너 혹시 태혁이 좋아했어?... 아니다..질문을 단순하게 다시 정리해서 물어볼게..... 너 혹시 게이야?”



너 혹시 게이야? 라는 승수의 말이 내 귓가에 들리자마자, 술 잔을 잡고 있던 오른손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조용히 흔들리면서 잔에 가득 담긴 소주가 넘칠 듯 말 듯 하는 이 상황이 마치 내 마음을 대변해 주는 듯 했다. 


앞으로 우리 관계를 위해 여기서 뭐라고 대답하는게 가장 최선의 대답인걸까. 


게이가 맞다고 하면 승수와의 관계도 완전히 끝날 것 같고 반대로, 여기서 게이가 아니라고 하면 그 때 태혁이와의 일들에 대해 또 추가로 어떻게 해명을 해야되는건지 머릿속이 너무나 복잡해 지고 있었다. 



그렇게 몇 십초 정도 조용한 정적이 흐르다


끝내 입술을 열었다. 


“미...미안 승수야. 그 땐 내가.. 잠시 이성을 잃었었나봐...그러면 안됐었는데..”


“넌 태혁이가 진짜로 제주도로 여행간 거 같어?”


“어?? (놀라는 눈으로 승수를 쳐다보며) 갑자기 그건 또 무슨 소리야...”


“태혁이가 널 피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 못 받았냐고..”


“어...? (당황하며)”



그러고보니 대학교 1학년 때, 주말을 앞두고 오랜만에 태혁이를 만나기 위해 서울까지 가겠다고 이야기까지 했지만 그 때 마다 바쁜 일이 있다며 거절을 했던 일이 떠올랐다.


정말 바빠서 그런 건 줄 알았는데...

정말이지 일이 생겨서 다음으로 미룬 건 줄만 알았는데.. 


그렇게 미루고 미루다 서로가 연락도 점점 소원해져갔고, 돌이켜보니 10년도 넘은 세월이 훌쩍 지나있었다.  



“태혁이가 날 왜 피해....? 약속이 있으니까 그런거겠지.. 승수 너, 나 오랜만에 만나놓고 이상한 소리 하기 있냐? (괜히 술잔을 비우며)”



승수가 갑자기 깊은 한숨을 내쉬더니 아무 말이 없다. 그리곤 뭔가 어려운 결정을 앞둔 사람마냥 고개를 들었다 내렸다..한숨을 내뱉었다, 들이마셨다 몇 번이나 반복하더니, 끝내 아무말 없이 휴대폰을 꺼내서 카카오톡을 켠 뒤 어느 한 화면을 킨 상대로 나에게 내밀었다.  


자세히 보니 승수와 태혁이의 1:1 톡 대화였다. 



[야. 근데 함수. KTX에서 창석이를 어떻게 만났어? 너네 우연히 만난거 맞어??]


[?? 뭔 소리야? 그럼 우연히 만난거지. 그것도 옆자리. 대박 신기하지?. 우리 근데 다같이 언제 볼 수 있는거냐.]


[야, 너 내 앞에서 창석이 이야기 꺼내지도 마. 그 더러운 게이 새끼랑은 더 이상 엮이기 싫으니까]


[??? 아니 아까부터 넌 무슨 소릴 하는거야? 도대체 누가 게이라는건데?]


[야. 너 몰랐어? 그 때 셋이 모텔에서 술 마시던 날.. 자고 있던 나한테 몰래 뽀뽀까지 한 새끼가 바로 창석이 그 새끼야..개는 내가 모르는 줄 아나본데.. 어우.. 진짜.. 학교 다닐 때 애들이 창석이 게이같지 않냐고 그래도, 애가 좀 섬세해서 그렇지 아니다. 그럴리 없다 내가 얼마나 커버를 쳐줬는데. 시.발..진짜 게이였을 줄이야. 더러운 새끼...난 창석이가 나한테 뽀뽀했던거..그 때 그 더러운 느낌을 아직까지도 지울 수가 없어. 이거 진짜 평생 갈 거 같은데.. 이런거는 손해배상 청구 어디다가 해야되냐? 너 강릉에서도 단 둘이 만나지 말어. 그 새끼 게이라서 너한테 또 무슨짓 할지 모르니까]


[.....나중에 통화로 이야기 하자 태혁아...] 


-----------


그렇게 태혁이와 승수가 나눈 대화를 하나 둘 씩 읽어내려가는데


지금 이 두 눈으로 보고 있는 글들이 정말로 현실인가 싶다가도, 얼마지나지 않아 태혁이의 저 가시 돋힌 말들이 선명하게 읽혀지면서 지금 이 순간, 지독한 현실 앞에 놓인 내 자신이 너무나 비참하면서, 어느새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랬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아무리 발버둥 쳐봐도...난 그저 남들이 혐오하는 ‘게이’ 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곤 이내 눈물이 한 방울 흘러내리는데 날 조용히 지켜보던 승수가 조용히 옆에 있던 휴지를 꺼내 내 손에 쥐어준다. 


우리 둘은 몇 분 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다 마음을 조금 추스리곤, 앞에 있는 승수를 향해 입술을 열었다. 



“승수야”


“응?”


“넌 태혁이가 농구하는 거 본 적 있어?”


“어. 당연히 본 적 있지”


“난 태혁이 농구하는 모습이 그렇게 멋있더라. (담담한 목소리로) 태혁일 초등학교 때 처음 만났을 때는 마냥 어린애인줄만 알았는데 고등학교 1학년, 그것도 같은 학교에서 다시 만났을 때는 내가 알던 태혁이가 아닌 완전히 다른 심태혁으로 변해 있었어.. 그렇게 한 손에 농구공을 쥐고 땀을 흘리는, 이제는 더 이상 어리지 않은 태혁일 그렇게 멍 하니 바라보는데.. 바보같이 심장이 두근거리더라..”


(날 지그시 쳐다보는 승수, 그리고 소주를 잔에 따라 조용히 한 잔을 마시는 나.)


“근데 이런 내 감정이 도대체 뭔가 싶어서..나 조차도 답답해서 계속 내 스스로 질문하곤 했어. 성에 한창 관심이 절정으로 치닿는 시기라 그런건가? 아니면 단순한 호기심인걸까. 운동도 잘하고, 남자답고, 심지어 태혁인 잘 생겼으니까. 그런거 있잖아. 잘생긴 남자들 보면 생기는.. 그런 단순한 호기심인걸까?


근데 이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호기심이 아닌 태혁일 진심으로 좋아하고 있는 이 감정에 대해 차마 부정을 하지 못하겠더라구...


그 때부터 태혁이가 뭘 하자고 하면 단 한번도 거절한 적이 없었어. 그리고 승수 너도, 태혁이가 소개시켜줘서 그런지 보다 널 편하게 받아들였던 걸지도..



딱 한번만 참을걸....딱 한 번만....


(그 때를 생각하며, 비어있는 소주잔에 소주를 따라 한번 더 소주를 비워낸다)



근데..내가 이런 말 하면.. 진짜 니가 날 남자에 미친놈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그 때 그렇게 모텔방 안에서 참지 못하고 태혁이 입술에 내 입술을 갖다 댄 그 순간.. 그 때를 떠올리면 말야.. 


살아오면서 그 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 떨리고, 두근두근 거리고, 설레고 그래.


그 장면을 상상하는 것 만으로도 너무나 행복했거든. 지금도 잊고 싶지 않은 내 소중한 추억이기도 하고..



근데 나에게 행복하고 설렜던 추억이 상대방에겐 씻을 수 없는.. 당장 지워버리고 싶은 더러운 기억이 될 수도 있단 걸 왜 미처 몰랐을까...


나도 태어날 수만 있다면 다시 태어나고 싶어..그렇게 다시 태어나서 여자를 좋아하는 평범한 남자로..그렇게 살고 싶어.


누군가는 게이를 정신병이라고, 고칠수만 있다면 고칠수 있다면서 정신과나 교회를 이야기하곤 하는데..나도 정말이지 고치고 싶어. 


그 누구보다 나를 위해서, 우리 부모님을 위해서..무엇보다 행복하게 살고 싶어서. 그렇게 고칠 수만 있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고치고 싶은데..


근데 이게....고쳐지지가 않아...승수야....”



승수에게 오랫동안 내 맘에 있던 말들을 모두 뱉어내고는, 비워져 있는 소주 잔에 소주를 따르려는데 어느새 다 마셨는지 술이 아주 조금 나오다가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


내가 안 쓰러워 보였는지 승수가 소주 한 병을 더 시키곤, 직원으로부터 소주를 건네받자 마자 소주를 따서 비워져 있는 내 소주잔에 소주를 조용히 따라준다.



“그래도 이렇게 말해줘서..고마워 승수야. 눈치없이 태혁이한테 연락해서 언제 보자며 계속 보챌 뻔 했네....”


“미안해...”


“미안은... (안주를 보더니) 에이.. 우리 안주나 하나 더 시키자. 소주 마시기 힘들면 하이볼 하나 시켜줄까?? 마셔 마셔~~~ 오늘 내가 살게.”


“니가 왜사..”


“아냐아냐. 고등학생 때 니가 나 많이 사줬잖아.. 그거에 비하면 뭐....그리고 우리 이제 돈도 버는데 이런 데 쓰라고 있는게 돈 아녀?? (살짝은 취한채로) 오늘 내가 쏠테니..맘껏 마시자!!!”


“너무 그렇게 밝아보이려 애쓰지 않아도 돼. 창석아..”


“???? 그게 무슨 소리야?? 나 지금 기분 좋은데.. 밝아 보이려 애쓰지 말라니...너 지금 나 게이라고 무시하는거야? 어? 너도 그런거야?????”


취한 탓인지 아니면 예민해진건지 발음이 뭉개짐과 동시에 승수에게 큰 소리를 내버렸다.   


“목소리 낮춰 창석아. 그리고 너 아까 저거 한 병 혼자 다 마신거 알지..그러니까 천천히 마셔.. ”


“아냐아냐.. 오늘은 마셔도 취하지가 않어.. 그러니까.. 냅둬 (소주를 또 비워내곤)”



차가워진 공기.


아무 말 없이 몇 분간 둘이서 술잔만 비워내고 있었다. 


그러던 도중 갑자기 전화가 울리는데


휴대폰에 ‘엄마’ 라는 글자가 띄워졌다. 


“창석아~ 어머니 한테 전화왔다. 어서 받어~~~”


그렇게 휴대폰을 들어 전화를 받는데


“어 엄마. 왜... 어?? 아직 10시 30분 밖에 안됐는데 또 왜?? (귀찮다는 듯이) 어? 누구랑 마시냐고?? 아니 내가 오늘 고등학교 친구 만난다고 좀 늦을거라고 했잖아. (목소리가 조금 커져선) 여자친구?? 여자친구 아니라니까!!!!!!!!!! 여자친구는 없다고 내가 말 했잖아!!!! 승수야 승수!!!!!!!!!!! 내가 전화까지 바꿔줄까???????? 여자친구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 (목소리를 더욱 더 높이며) 아니... 많이 안 마셨어!!!! 먼저 자. 그리고 진짜 엄마! 내 나이가 지금 서른 둘인데... 이런 전화 진짜 이제 그만 좀 하면 안돼 엄마?.. 나 진짜 지친다.........끊을게....... (뚝)” 


“창석아.. 왜 그렇게 예민하게 굴어. 어머니가 다 너 걱정돼서 그러는건데.. 집에 가서 잘못했다고 꼭 말씀 드려.. 알았어?”


“.... 예민?? .... 예민한게 아니라 답답해서 그런다.. 답답해 죽을 것 같아서... 야. 함승수. 니가 이런 내 맘을 아냐...? 아니. 넌 이런 내 맘 절대 모를거야. (앞에 있는 소주잔을 들어 또 다시 잔을 비우고는) 


스무살 이후부터 지금까지 십 년이 넘도록 부모님께 여자친구 소개는커녕 여자 한 번 집에 데려간 적이 없는데... 그래도 모르는 건지, 아니면 모르는 척을 하시는 건지. 근데 전화하다가 술 마신다, 영화 본다, 밖에서 밥먹는다고 하면 그럴 때마다 혹시 여자친구냐고 물어보는 데.. 그 때 마다..이런 상황이 너무 답답해서...................


이런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이라도 해드리고 싶은데...평생 아들이 게이인 줄도 모르고 그렇게 걱정만 안고 살아야 하는 우리 엄마 아빠가 너무 답답하고 불쌍해서.......


그게 또 너무 분해서...... 점점 견디기가 힘들어..승수야........."



또 다시 내 눈이 눈물로 글썽거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울먹이는 목소리로 맘 속에 있던 이야기들을 승수한테 전부 털어놓는데..


뭐지..............?


이야기 하는 사이에 승수가 언제 내 옆자리에 왔는지, 팔과 팔이 맞닿을 정도로 나에게 바짝 붙은채로 내 얼굴을 바라보면서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었다. 


우리 둘 사이의 거리가 너무 가까웠던 나머지 조금 민망해져서는 


"뭐야... 언제 이렇게 옆에 왔어. 울고 있는 내가 이제 좀 불쌍하냐...?"


라고 승수에게 말을 했다. 


그런데 승수가 아무 말 없이 내 얼굴을 계속 바라보더니...



순간 내 얼굴 앞에 그림자가 크게 가리워지면서 내 입술 위에 그의 입술이 포개어졌다.   



순간 당황해서 승수를 밀어내려 했지만 승수가 내게서 떨어지지 않으려 강하게 손과 몸에 힘을 주는게 느껴졌고 이내 내 입술 속으로 혀를 집어넣기 시작했다. 


그렇게 자연스레 서로의 혀가 섞이기 시작했다. 



몇 초 정도 키스를 했을까..


어렵게 입술을 떼어내고는



“야...(놀란 표정으로) 너 뭐야 함승수.... 너 취했어?? 아님 미친거야? 갑자기 왜 그래?”


“아니. 안 취했어. 그리고 미치지도 않았어.”


“너 그럼 이게 도대체 무슨 짓이야? 너 내가 진짜로 불쌍하냐? 어!? 아니 시.발 아무리 불쌍해도 이건 좀 아니지 않아?? 설마 동정? 위로 뭐 그런거야? 너 이게 날 더 비참하게 하는거 알아 몰라??”


“많이 놀랐다면 미안해..”


“됐다..(자리를 털며 일어서는데 살짝 휘청거리곤)..너랑 더 이상 이야기 하고 싶지 않아. 약속대로 여기 계산은 내가 할 테니까 혼자 더 마시고 나오든, 아니면 그냥 집에 가든지 이제 너 알아서 하고 앞으로 다신 보지 말자.”



그렇게 화가 난 마음에 자리를 벅차고 일어서려는데




“나....나도 사실 게이야 창석아...”



??



내가 지금 잘못들은 걸까.


소주를 혼자서 두 병 넘게 마신 탓에 분명 취해서 잘못 들은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승수의 저 말을 듣는 순간, 내 발걸음이 도저히 바닥에서 떨어지질 않았다. 


본인의 입술로 내가 게이라고 누군가에게 이야기 하기 까지는 보통 각오가 아니면 절대로 할 수 없단 말임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였다.  


난 자리에 급히 앉아 한번 더 입술을 열었다.



“너 방금 뭐라고 했어. 함승수?”



승수를 바라보는 내 호흡이 조금씩 거칠어지고 있었고, 그런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 또한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었다.   


(다음화 마지막 3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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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pa…
  • 작성일
아웃팅한것도 잘못이지만 굳이 잘못따지자면 성추행한 주인공이 잘못이지...
게이라서x 성추행해서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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