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걸을래?] 0화. Prolog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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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웠다.
외로움이라는 것은, 홀로 남겨져 있다는 것은,
그곳이 어디건, 언제건 상관없는 일이었다.
사람들이 아무리 북적여도
하루종일 날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시끄럽고 말 많은 친구가
껌딱지처럼 붙어 있어도
외로움은 잘라내지 못했다.
내가 외로움이었고,
외로움이 나였으니까.
"현재 시각 8시 입니다.
등록된 일정은.."
세상은 일정대로 흘러갔다.
사람이라면 응당 해야한다는
여러가지 일들이 하루에도 수십번씩
일어났고, 행해졌다.
숨을 쉬는 일처럼.
저녁 창 밖은 늘 같았다.
네온싸인은 늘 그렇듯 반짝거렸지만
까맣게 칠해진 바탕색은
이겨내지 못했다.
31층.
내 나이만큼 높이 솟은 내 집, 창가에서
바라보는 저녁 일상은
그랬다.
세상과 내 거리만큼 멀었고,
거리를 지나치는 사람들은
내게 타인이라는 존재의 의미만큼
작았다.
"딩동"
정적을 깨는 세상과의 마주침.
"누구세요?"
"택배입니다"
"네, 올라오세요."
그리고 5분, 10분
한참을 기다려도 올라온다던 택배기사는
올라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뭐지..'
그리고 그때,
다시 울려오는 벨소리.
나는 그제야 문을 열었다.
그리고 눈 앞에 모습을 드러낸
앳된 마스크의 민혁이, 아니 택배기사.
첫모습이었다.
긴장하고 당황한 듯한 표정,
그리고 얼굴에 비오듯 흐르는 땀,
찰나였지만,
꿀꺽 침을 삼킬때 크게 움직인
목젖.
택배상자는 찌그러지다 못해 터져 있었고,
순식간에 상황파악을 끝마칠때 쯤,
그 아이가,
아니 민혁이가 입을 열었다.
"저.. 죄송합니다.
들고 올라오다가 발을 헛디디는 바람에..
제가 변상 해 드릴게요.
죄송합니다"
"변상이요?
아 네 뭐..
알겠습니다. 회사 통해서 연락하면 되죠?"
"네.. 죄송합니다.
근데 저... 상자에.."
민혁이가 가리킨 상자.
보지 못했던 상자 뒷편엔
피가 묻어있었다.
"에? 피가.. 혹시?"
그때 내 시야에 들어온건
민혁이 손 바깥쪽에서 흐르고 있는
검붉은 피였다.
"아, 넘어질때 상자를 놓칠까봐 잡고있다가.
그럼.."
"아니요. 잠시만요.
하나도 괜찮지 않아 보이는데.
잠깐만요."
나는 빠르게 집안으로 들어와
구급상자를 찾아들었다.
"여기, 일단 지혈부터 해야할 것 같아요.
잠시만"
민혁이의 손과 팔은 차가웠다.
"흠.. 좀 많이 찢어진 것 같은데.
봉합하거나 해야할 것 같아요."
"네, 안그래도 병원 가보려고요."
"차 운전할 수 있겠어요?
안될 것 같은데.
119 불러드릴까요?"
"아, 괜찮습니다."
"안 괜찮은데. 땀도 너무 많이 흘리고.
그럼, 가까이에 병원 있거든요?
제가 같이 갈게요.
기다려요."
괜한 호의였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거창하게 내가 착해서, 선한 마음의 발로라기 보다는
그냥 그러고 싶었다.
오랜 외로움과 고독, 고립은
결국
사람에 대한 끈끈한 그 무언가와
똑같은 결의 이야기일 뿐이니까.
나는 차키를 찾고
쇼파에 놓여있던 가디건을 쥐어든 채
현관 밖으로 나왔다.
"가요."
엘리베이터 안에서 보니
민혁이는 더 어려보였다.
넓은 어깨나 좋아보이는 몸,
고생을 한듯한 남자의 손,
여러가지 조건들은
의외로 남자다운 모습을 곳곳에서 풍기고 있었지만
어려보이는 얼굴만은
그것들을 상쇄시키고 있었다.
"여기요. 타세요"
나는 주차되어있던 차로 다가가
조수석 문을 열었다.
"감사합니다"
문을 닫고, 나는 얼른 운전석에 탔다.
"하필 오른손이네요..
안전벨트 해드릴게요."
난 민혁이에게로 다가갔고,
민혁이 몸에서는
익숙한, 내가 절대 잊을 수 없는
그 향기가 나고 있었다.
미약하지만,
분명한 그 향수 냄새.
내가 잊을 수도, 잊어서는 안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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