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리 그늘에서 자라는.... (마지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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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8개월 후>
새벽의 신선한 공기가 큰 한숨을 쉬는 나의 폐 속으로 가득 들어왔다.
자동차의 닫혀있는 문에 엉덩이를 기대고 서서 아직 어둑한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지만 안간힘을 쓰면서 버티고 있는 마지막 남은 한줄기 어둠은 이제 곧 동쪽에서 번져올 여명의 빛에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휴대폰을 들고 시간을 확인하고는 굳게 닫혀있는 잿빛의 문을 바라보았다.
인생은 후회의 반복이었다.
내가 그때 친구인 영훈이에게 연락하지 않았더라면, 그냥 돈을 받고 자신이 맡은 사건을 무감각하게 진행하는 변호사를 샀더라면... 아니 그냥 마음 편하게 국선변호사를 선임하였더라면...
그랬더라면 평소의 나를 모르는 그들은, 나의 말을 그대로 수용하였을 것이다.
혹시나 하고 접근금지 명령까지 받은 스토킹녀에게 살인 사건 당일에 나의 행적을 알고 있는지 묻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법적인 지식을 이용하여 그녀를 꾀어 경찰에 알리도록 유도하는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녀석보다는 더 이른 때에 나는 자유인이 되었을 것이다.
여튼, 녀석은 그 오랜 시간을 잘 버텨주었다.
동쪽에서 한여름의 이른 여명의 빛이 세상에 내려앉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희미했던 그 빛은 한순간 모든 세상에서 어둠을 걷어내고 자신만의 색깔을 돌려주었다.
뚫어져라 바라보던 문이 마침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녀석의 모습이 내 눈 안에 들어왔다.
마치 눈이라도 부신 것처럼 손바닥을 이마 위에 대고 하늘을 한번 올려다본 녀석이 천천히 발을 내디디기 시작했다.
겸연쩍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면서 걸어오는 녀석을 향해 부지런히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나를 마주하고 선 녀석이 아무말도 못하고 나를 빤히 보면서 하얀 이를 드러내고 웃어보였다. 한순간 바람이 한 줌 불어와 녀석의 이마에 곱슬거리는 앞머리카락을 헝클어뜨렸다.
스물아홉의 아직 앳되 보이던 녀석은 어느새 서른 여섯의 남자가 되어 버렸다.
잃어버린 녀석의 청춘이 허무하다는 생각에 나도 몰래 나오던 한숨을 녀석에게 들킬까 두려워 삼켰다.
“이거...” 녀석 앞에 두부 한모가 들어있는 비닐봉지를 내밀었다.
“그냥, 눈 감고 한 입만 넣어라.”
녀석이 나와 내가 내민 두부를 번갈아 보고는 봉지를 나의 손에서 받아들었다. 그리고 손가락을 봉지 속으로 집어넣어 두부를 한 움큼 떼어내어 입으로 가져갔다.
“고맙다.”
나의 말에 녀석이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고맙습니다.”
녀석의 팔을 슬며시 당겨 천천히 차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고생 많았지?”
“아니예요. 저 아주 잘 지냈습니다.”
눈이 시리도록 하얀 피부를 한 녀석이 나를 보고 한번 씨익 웃어보였다.
“아직 이른 아침이긴 하지만 조식을 제공하는 음식점을 알아보고 예약해 놓았다. 괜찮지?”
아무 말 없이 녀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창 밖으로 작은 연못과 정자가 내다 보이는 작은 방에 녀석과 마주 앉았다.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있니?”
주문을 받고 직원이 나간 후, 물티슈로 손을 문지르고 있는 녀석에게 슬며시 물었다.
“글쎄요...” 마치 수줍은 소년 마냥 녀석이 양 볼에 홍조를 띠면서 배시시 웃었다.
“네가 살던 집은 다 정리했다.”
손가락 끝으로 힘들게 물티슈의 비닐껍질을 뜯어냈다.
“남아 있는 짐은 모두 우리 집으로 옮겨 놓고...”
녀석이 슬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아랫입술을 슬며시 깨물었다.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녀석의 눈치를 살피며 내가 다시 입을 열었다.
“예전에 승우 엄마하고 가끔 가던 카페가 있었어. 이천에 있는 곳인데....”
말을 멈추고 손을 문지른 티슈를 테이블 한쪽으로 제쳐놓고 테이블 위에 올려있는 물잔을 집어 들었다.
“조용하고 아담하고.. 찾는 사람은 별로 없지만 노을이 아주 예쁜 그런 곳이거든....”
녀석이 고개를 들고 나를 보았다.
“삼 년전 즈음에 그곳을 매입했다. 그 전부터 눈여겨 보고 있다가...”
녀석도 손을 들어 자신의 물잔을 집어 입으로 가져갔다.
“인테리어나 뭐 그런건 원래 있던 그대로 두었어. 내가 그쪽으로 잘 아는 것도 아니고...”
‘허허’ 하고 웃으면서 한 손으로 뒤통수를 긁었다.
나도 이제 다 늙어서 요새는 뭘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녀석을 바라보면서 말을 잇기 전 슬며시 한숨을 내 쉬었다.
”지한아.“
부르는 소리에 녀석이 테이블 위의 물잔에 두었던 시선을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당분간 나와 같이 지내보지 않을래?“
”........“
”카페든 음식점이든...네가 하고 싶은 것 한번 해 보면....“
”........“
”정원은 내가 관리하고... 가끔 석양이 좋을 때는 같이 차 한잔 마시면서 구경도 하고...“
”........“
”어떻게 생각하니?“
나의 말에 대답은 하지 않고 녀석이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노크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그리고 직원 둘이 들어와 테이블 위에 음식을 가지런히 내려놓기 시작했다.
그들이 돌아간 후에도 녀석은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앉아 있었다.
”우선 먼저 식사부터 하자.“
고개를 끄덕이는 녀석을 보고는 손을 뻗어 수저를 잡았다. 하지만 다시 내려놓았다.
”너에게 주려고 둔 것을 잊고 있었다.“
옆에 놓여있던 가방을 끌어당겨 옆의 지퍼를 열었다. 그리고 손을 넣어 화려한 디자인으로 포장된 작은 사각형 상자를 꺼냈다.
그리고 손을 뻗어 녀석 바로 앞의 테이블 위에 놓았다.
”이게 뭐예요?“
”너에게 주려던 건데. 벌써 몇 년째 내가 보관만 하고 있었다.“
녀석이 손을 들어 조심스럽게 포장지를 뜯어냈다.
”아저씨....“ 검은 색 빌로드 천으로 싸여진 상자를 손에 들고 녀석이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녀석이 재빠른 손놀림으로 빌로드 천을 벗겨냈다.
자신의 손에 작은 쪽빛 사각 케이스를 손에 쥐고 녀석이 눈은 똥그래지고 입을 떡 벌린채로 그것과 나를 번갈아서 빤히 바라 보았다.
떨리는 손으로 녀석이 케이스를 벗겼다.
내용물이 궁금했던 나도 호기심에 녀석의 손에 들려있는 것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천천히 녀석이 그 속에서 쪽빛 가죽지갑을 꺼내 들었다.
녀석이 재빠른 손놀림으로 지갑 여기저기를 만져보기 시작했다. 마치 무어라도 찾는 것처럼 이곳저곳을 훑어보았다. 그러다가 지갑 안쪽 끝부분의 틈새에 손가락을 집어넣고 그 부분을 덮고 있던 천을 걷어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작은 사진 하나를 끄집어냈다.
그 사진을 손에 들고 있는 녀석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리고 붉게 변한 녀석의 볼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슬며시 손을 뻗어 녀석이 들고 있던 사진을 집어들었다.
아들 녀석이 지한이와 함께 서로 얼굴을 맞대고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이게 왜....“
녀석이 고개를 숙이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나는 여전히 내 손에 있는 사진속의 아들 녀석을 바라보았다. 티 없이 맑은 얼굴에 걱정거리 하나 없는 환한 웃음이었다. 녀석은 그렇게 하얀 이를 드러내고 목젖까지 보일 정도로 입을 벌리고는 세상을 다 가진 얼굴로 나를 보고 웃고 있었다.
”아저씨, 죄송합니다.“
한참을 그렇게 흐느끼던 녀석이 퉁퉁 부어버린 얼굴로 나에게 뜬금없이 사과를 하면서 입을 열었다.
”그 날이 제 생일이었어요.“
녀석이 손을 들어 손바닥으로 여전히 흘러내리는 눈물을 문질렀다.
”........“
”종로에서 승우하고 같이 생일 파티를 하기로 했었어요.“
녀석이 옆에 놓여있던 물티슈로 흘러내리는 콧물을 닦았다.
”주말이라서 승우가 먼저 가서 자리를 잡고 나는 알바가 끝나면 합류하기로 하고요.“
”........“
”자꾸 늦어지는 나에게 승우가 전화를 했어요.“
녀석이 말을 멈추고 휴우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준비한 생일 선물 궁금하지 않냐고 어서 오라고....친구 한명 불러서 같이 생일 축하해 주려고 기다리고 있다고....“
”........“
”일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제가 승우에게 거짓말을 했어요.“
녀석이 다시 손을 들어 벌겋게 변해있는 볼을 문질렀다.
”사실 그때 저는 사장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급여일이 한참 지났는데 차일피일 미루기만하고 ....그 날은 꼭 승우를 데리고 좋은 곳에서 맛있는 것 먹여주고 싶어서.....“
”.......“
”주머니에 남아있는 돈은 없고...전화로 오고 있다는 사장은 계속 나타나지를 않고...“
”.......“
”그때 그냥 사실대로 말했더라면...그냥 승우에게 사실대로 다 얘기했더라면 승우는 괜찮다고 그냥 오라고 고집을 부렸을 거예요. 그랬더라면 승우는 그런 일을 당하지 않았을 텐데...“
녀석이 두 손을 들어 흘러내리는 눈물을 손바닥으로 닦아냈다.
”여덟시에 만나기로 했는데 열시 반이 지나고...여전히 오고 있다는 사장은 나타나질 않고.. 어찌할 바를 몰라서 발만 동동구르고...“
”.......“
”그렇게 늦어지는 저한테 화를 내기는커녕 승우는 사진을 보냈어요. 이 검은색 빌로드 천하고 지갑하고.... 생일 선물로 준비한건데 미리 보여주는 것이라고.... 빨리 와서 받아가라면서...“
”........“
지갑안에 비밀의 틈새가 있다고 그 안에 우리 사진을 넣어놨다고....설마 늦어진다고 해서 못온다는 말은 하지 말라고... 와서 이 선물을 받아주기만 하면 아직까지 나에게 서운했던 것...앞으로도 내가 녀석에게 잘못하는 것 모두 다 용서해 줄 거라고...”
”.......“
한참 심호흡을 한 후에 녀석이 다시 입을 열었다.
”승우가 그렇게 가버리고 난 후, 매일매일을 그 날 일을 후회했어요. 그때 그냥 승우한테 달려갔어야 했는데...그러면 녀석을 그렇게 보내지 않고 지킬수 있었을텐데... 제발 부탁이니 내가 그때로 다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녀석이 손에 지갑을 움켜쥐고 고개를 테이블에 대고 다시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런 녀석을 바라보다가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슬며시 테이블의 모서리를 돌아 녀석의 옆에 조용히 앉았다.
그리고 녀석을 끌어당겼다.
내 품에서 나를 끌어안고 울고 있는 녀석의 등을 쓰다듬으면서 한순간, 왜 이 녀석 대신에 감옥에 가려는 그런 말도 안되는 일을 저질렀느냐고 친구가 물었을 때가 떠올랐다.
그때는 내 자신도 알지 못했다.
이 녀석이 나에게 남은 마지막 가족이라는 것을... 나에게 남겨진 녀석을 그렇게 보낼수는 없었다는 것을... 그래서 그랬다는 것을...
”괜찮아..괜찮아...“
여전히 울음을 그치지 못하는 녀석의 등을 쓰다듬으면서 나는 녀석을 달랬다.
”아버지...“
나의 가슴에 대고 녀석이 나를 그렇게 불렀다.
녀석의 절정을 봐야겠다.
녀석의 삶이 기쁨으로 가득해서 반짝거리는 광경을 지켜봐야겠다.
그렇게 녀석이 홀로서기를 하고 커다란 나무가 되어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나뭇잎을 탐스럽게 두르고 절정의 아름다움을 뽐낼 때까지 내가 버텨내야겠다.
녀석이 태양을 향하도록 그림자 속에서라도 녀석을 꽉 잡아 올려야겠다.
아내와 함께 봤던, 감탄을 연발하게 만들던 그 장관이었던 노을을 이 새로 얻은 아들 녀석에게 보여줘야겠다.
군고구마를 입으로 불어가며 승우하고는 처음에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 녀석에게 물어봐야겠다.
그렇게 다시 날개를 펴고 자유롭게 비행하는 녀석을 언젠가 내 눈 앞에 문득 다시 나타날 승우에게 보여줘야겠다.
그때는 녀석에게 웃으면서 말할 것이다. ‘아빠는 이제 너희들에게 어울리는 사람이 되었다고....’
창문 밖에서 매미가 울기 시작하고 언뜻언뜻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렇게 모든 생명은 희망으로 가득차서 환희의 노래를 부르면서 주변을 뒤덮고 있었다.
그 위를 햇볕이 내려 앉았다. 그리고 그 아침햇살은 녀석과 내가 앉아있는 이곳에도 들어와 온 방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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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사를 풀어가는 구성이
적절한 긴장을 유지해서
마지막편까지 한 호흡으로 읽었네요.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