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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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지금 내가 걷고있는 이 길은...
내가 대학신입생일때... 내 추억이 가득했던 그 하숙집으로 향하는길이다.

11월의 깊은 가을을 걷는 한걸음 한걸음속엔 자박거리는 흙소리와
솔방울의 바스라지는 소리..
그리고 가녀린 낙엽의 소리가 함께하고 있었는데..

유난히 파랗고 높은 하늘아래에서
이제 이곳은 재개발로 사라질 예정이었고
난 마지막으로 오래전 추억이 담긴 이곳을 찾아온것이다.

예전의 내 기억에 없던 빌딩과 건물들이 어색하고 낯설기도 했지만..
여전히 남아있는 몇몇 건물들과 가게들...

그리고 오래되서 희뿌옇게 색이나간 간판과 아래에 적혀있는 옛 전화번호들과
시험이 끝나고나면 영화를 빌려보던 비디오가게 등..

그 하나하나 모든것을 소중하게 담고있는 내 발걸음은 무척이나 느렸고
하숙집까지 가는 그길의 쓸쓸한 분위기에 나도 묻혀있었다.


 
재개발을 앞둔 동네가 그러하듯 곳곳에 빨간색 스프레이로
철거 또는 출입금지라는 경고장이 붙어있었고
'결사투쟁' 이라는 살벌한 플랫카드도 걸려있곤 했으니까..

 
그런 공허한 분위기에서 옛 추억의 회상에 잠겨있던 나에게
멀리 눈에익은 사거리가 보이기 시작한다..

이제 저 조그만 사거리만 지나면
학교에서 하숙집을 오가던.. 내가 가장 많이 걷던 길이나오는것이다..

그길에 가까워질수록
그곳에 배어있던 내 추억도 조금씩 더 많이 떠오른다.

학교에서 200미터쯤 떨어진 이곳 쯤이 누군가랑 싸웠던 곳이고..
저 모퉁이의 구멍가게 옆 전봇대에선 술먹고 오바이트도 했었는데...;;;


정말 오랜만이었다...

이런기분은... 이런 설레임은..

처음 신입생으로 이곳에 내려왔던 그 시절..

마치 그때로 돌아간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구석구석 아직 변하지 못한 골목길에서..

내 목적지에 가까워질수록... 가슴이 두근거려왔고

늦잠때문에 늘상 뛰었던 그 야트막한 오르막길에 이르고서야 난..

조용히 멈춰섰다..

눈에익은 벽돌 건물앞에서...


스무살부터 군대가기전까지 생활하고...

내가 먹고 자고하던 하숙집..

 
오래전에 떠났었던 그 곳에... 이제서야 다시 도착한것이다.

 
그곳은 사람의 흔적이 사라져 잡초가 여기저기 자라나고있었지만
은색 대문의 옛날 그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었다.

빨간 경고문이 부착되있는 그 앞에서 담배를 하나 꺼내물고
한참을 서성이며 그 문을 몇번이고 만져본다.

옛날에 1년동안 뺀질나게 드나들며 만져왔던 그 문은
외부인이 된 나를 경계라도 하듯 굳게 잠겨있는 모습이다..

2층 창문은 이미 철거되어 쉽게 들어갈수도 있을것같은데...

 
난 그곳을 올려다보며 내가 생활했던 그 조그만 방을 기억해본다.

그리고 내가 이곳까지 오게된 이유에 대해서도...

 
20년만에 이곳을 찾게된이유는 대학생활의 추억이 가득한

이곳의 마지막을 보고싶었던것도 있었지만

그 조그만 방에 그와 내가 남긴 '그것' 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오래전 이곳에 남겨놓은 글자가...

내 첫사랑이 깃들어있는 우리만의 표식이..

이제 곧 무너져없어질 그 방안의 벽에 남아있는것이다.

마지막으로 그것을 한번 보고싶었고 사진으로라도 남겨두고 싶었던 것이

멀리 서울에서 이곳까지 내 마음을 이끌었던 것이다.

.......


주변을 다시 한번 둘러보던 난 아무도 없는 그곳의 담을 주저없이 타 넘었다.

어디선가 당장이라도 누구냐고 소리칠것 같았지만
여기까지 왔는데 걸려봤자 뭐 대수냐..라는 생각도 든것이다.

삐그덕대는 철계단을 밟고 2층 창틀을 짚고 넘어간 그곳...
철거된 창문을 통해 들어간 그곳은 조용하고 적막했고
아주 고요했다.

마치 시간이 정지된것처럼..


주변을 한번 돌아보니...
먼지가 가득히 쌓인것만 빼고 20년전 그대로이다.

창문을 통해 보이는 바깥 풍경이며..
아주 오래전에 설치되있던 무거운 벽시계도..
마치 그 오랜 시간동안 그대로 멈춰있던것만 같이 먼지를 잔뜩 뒤집어쓰고 있었다.


오래된 신문지나 깨진 벽돌조각들이 흩어져있는 마루엔
누렇게 변색된 전단지같은것도 몇장 있었고
모래같은 알갱이들이 가끔씩 자박자박 밟혀온다.

바닥을 훑어보던 내 시선이 위로 올라가고
맞은편에 굳게 닫혀있는 문을 바라보았을때...

이제 내 가슴은 심장소리가 들릴것처럼 요동치고 있었다.

 

너무나도 보고싶었던..
나와 '그 친구가' 함께 했던 그 조그만 방...

내 '첫사랑' 과 함께 했던 그 조그만 방문을 앞에두고 있는것이다.


난 천천히 그곳을 향해 걸었고 손잡이를 잡아 돌려보았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나무로 된 그 문은 내가 미는만큼씩만 조금씩 열렸고
그 틈사이로 그 방안이 서서히 드러날수록 난 그 옛날로 돌아가고 있었다.


스무살의 신입생..

그 아련하고도 아득했던 시간속에서도 그 공간은 여전한듯했고
문이 완전히 열렸을때.. 난 예전의 그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른쪽에 놓여있던 앉은뱅이 책상과 그 옆에 개어놓은 이불..
하얀색 벽지와 형광등..
벽에걸린 옷걸이와 남쪽을 향한 조그만 창...
기타를치며 노래를 부르던 우리..

실제로는 먼지가 쌓인 방이었지만 그 순간 내 눈은 20년전의 방안모습..
그와 내가 함께했던 그대로의 모습을 바라보고있는것이다.

그리고 내 시선은 자연스레 그곳으로 향했다.
그날 새벽..
잠이 오지않던 그날에.. 그와 내가 새겨놓았던 그것이 있는곳으로...

 

길고긴 숨을 몇번 내쉬어보던 난...

내가 서있는 벽의 끝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 끝에서서 벽지를 조심스럽게 조금씩.. 조금씩... 떼어내본다.

언젠가 새로 도배를 한듯한 그 벽지가 조금씩 벗겨질수록
시멘트벽에 스며든 검은색의 글자가..
조금씩..조금씩 드러나고 있었다.

차가운 시멘트벽에 ..
나와 그애의 추억이 스며든채로....
그리고 그 글자들이 온전한 모습을 드러냈을때..


난...


세상이 하얗게 변해버리는듯한 느낌과 밀려드는 슬픔에..
아무말도 못한채 멍하니 그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말..


너무나도...  너무나도 저며오는 그 아픔에..

흘러내리는 뜨거움이 내 얼굴을 적셔가도..

어딘가 고장난 인형처럼 그곳만을 바라보고 있을뿐이었다.

 

 


...................................................................................................

 

 

 

1. 첫사랑

 


"인사해. 오늘부터 우리 하숙집에서 같이있을 친구야.
이름이..  이준형 이라고 했나? "

하숙집 아줌마는 미리 와있던 친구에게 나를 소개시켜주었고
의자에 올라 방 천정에다 야광별을 붙여놓고있던 민재와는
그렇게 같은방을 함께 쓰는 룸메이트로 만나게 되었다.

나랑 동갑이었던 그는 고향이 부산이었는데
사투리가 진했던 그애는 서울말투인 나보다 훨씬 남자다웠고
하는 행동도 머뭇거림이 없는 친구면서도 배려심이 좋은 친구였다.

나를 처음본 그날도 자신의 책상위치를 가리키며 내가원한다면 바꿔줄수 있다고 말했다.

가만 둘러보니 이불도 한쪽 켠에 잘 쌓아놨었고
자신은 이틀전에 미리 와 있었다고 하는데..

학교 구경도 하고 얼른 집에서 나와 자유(?) 를 만끽하고 싶었다나.. ㅎ


하숙집 인원은 그와 나.. 그리고 아저씨와 아줌마.. 그리고 유치원생과 초등생 아들이었다.

그날 하숙집의 인원모집을 성공적으로 끝낸 아저씨가 가게에서 소주를 사왔고
아줌마는 해물탕을 끓여주었다.

난 원래 해물을 좋아하진 않았지만..
그집 아저씨가 술을 좋아하는 관계로 난 정말 입에 물릴정도로 먹게되었는데
그것이 그 해물탕의 첫 테이프를 끊는 날이기도 했다.


"어허~ 어디보자.. 니는 집이 어디고? "

아저씨가 나를 먼저 지목해서 물어본다.


"서울이요 .. "

"서울이 어디 다 느그집이가.. 동네가 어디냐고. 동네가.. "


"아.. ㅎㅎ 그게 방배동이라고.."

"아야.. 임마봐라. 거기 부잣집아이가. 8학군. 맞제.. "


"네?.. 아.. 네 맞습니다 ㅎㅎ "

"아니 그 좋은델 놔두고 뭐하러 여까지 내려왔노..."


".... 그게.. 그냥 .. "

"무슨꽌데.. "


" OO 과 요.... "

"........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기어든다.

내가 이번에 다닐 학교에서도 가장 낮은 경쟁률의 학과였던 것이다.


"애라이 짜슥아.. 공부좀 하지.니도 부모속 꽤~나 썩였겠다 자슥아..ㅉㅉ"

"...네.. "


옆에서 실쭉샐쭉 처음보는 우리를 관찰하던 초등생 꼬맹이가 신이나서 꺄르르 웃는다.


"아제~ 날라리 맞제 그제.. 핵교서 꼴등한거 맞제 ㅋㅋ "


쪼그만 초등생놈이 날 놀리다가 아줌마의 제지로 조금만 입이 틀어막힌다.
아저씨가 밥을 한입 가득넣고 다시 그 숟가락으로 해물탕을 떠서 입에넣는다.


"그래도 대학온김에 열심히 해야 안되긋노.
내도 공부할수 있는 여건만 되쓰면 이나이에 노가다 하고있겠나.. 안그나.. "

아저씨는 자연스레 자신의 직업을 말해주었고 술잔을 들어 우리에게 내민다.


나와 민재도 소주잔을 들어 고개를 돌린채 마셨고
그 아저씨에게 민재도 신상털이가 되면서
또다시 그 버릇없는 꼬맹이 초등생에게 놀림감이 되어버렸다.

부산대를 놔두고 왜 이까지 왔냐는 말에 민재는 자유를 느끼고 싶다고 그랬다가
아저씨의 쿠사리를 먹었고
우리는 졸지에 집에서 질리게듣던 잔소리를 하숙집에서 듣고 있었다.

 

 


.....................................................................

 

 

"야야.. 얼른얼른.. 문 막아라. "


민재가 가방을 들고들어오더니 급하게 방문을 닫았다.
난 잽싸게 준비해 놓았던 청테이프로 방문의 틈을 막기 시작했다.

민재가 통닭을 가방에 숨겨들어온 것이고
그 냄새에 그 괘씸쟁이 꼬맹이들이 들이닥칠까봐 틈을 막는것이다.

저번에 뭣도모르고 양념통닭을 사와서 방안에서 느긋하게 먹다가
초등생 꼬맹이가 하나만 달라는걸 안주고 개기다가 그 동생놈인
유치원생까지 냄새를 맡고 들어왔던 것이다.

하나만 달라는 애들한테 안줄수도 없고..
그러자니 통닭 한마리는 민재와 나..  둘이먹기에도 너무나 부족했던 것이다.

쓴 울음을 참고 그 꼬맹이들의 입속에 닭다리를 처넣은 이후로..
우리는 꼬맹이 둘을 '주적'으로 설정했고 통닭을 사오는날..

고민끝에 학교에서 청테이프를 훔쳐와 방문틈을 막는
어처구니 없는일을 하고있는것이다.


하지만 뭐 어떤가..
스무살 우리의 몸에 통닭은 그야말로 최고의 음식이었고
입이 호사를 누릴수있는 최고의 레벨이었기 때문에 기꺼이 감수할만한 것이다.


"존나 맛있다. 와.. 역시 양념통닭은 페리카나야 그치? ㅋㅋ "

"몰라. 알게뭐야.. 통닭에 메이커가 무슨 필요야. 허겁지겁. "


"이준형.. 쫌 천천히좀 먹어라. 니 무신 걸신 들렸노.
생긴건 뽀애가지고.."

"민재 나쁜놈아. 너야말로 진짜 나쁜놈이지.
저번엔 목을 나한테 내던지는놈이 너 아냐.. 우물우물 ㅋ"


민재랑 내가 신이나서 닭을 뜯어먹는데 밖에서 쿵쾅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엇.. 저소리는..

민재와 난 입안가득 통닭을 물고 서로의 눈을 쳐다보았다.

마루가 쿵쾅쿵쾅 울리는 저 소리.. 저건...ㅜ

 

 

"아제~ 아제~~ "


"시발.. 왔다 왔어. "

"저것들은 학교가 무슨 유치원이야 뭐야. 지금 몇신데 벌써온데.. "


방문에 달린 동그란 손잡이가 좌우로 마구 움직이더니
청테이프로 막아놓은 문이 들썩이며 쾅쾅 거린다.
잠겨있는 문을 깨달은 꼬맹이가 문을 발로 차고있는것이다.


"아제!~ 문 열어봐라~ 아제!!~ "


"롸.. 미치겠네. 이거 어떡하냐.."

"저기 창밖에 잠시 내다놓자. 어쩔수없다."


"냄새는 우짜고.. "

"담배 땡겨라 담배.  빨리!!"


나의 제안에 민재가 급하게 담배에 불을 붙였고
난 비닐봉다리에 통닭을 밀어넣고 창밖 아래에다 급하게 숨겨놓았다.

민재가 담배를 뻑뻑 피우면서 연기를 피워올릴때 나도 담배를 입에물고
청테이프를 떼기 시작했다.


"아제!!~ ㅠㅠ  둘이 뭐하노. 아제야~~ "


나와 민재는 손등으로 입가를 닦고 통닭이 안전한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능청스럽게 담배연기를 내뿜으며 문을열었다.

회색 연기에 꼬맹이가 콜록거리며 입을 가리면서도 방안을 힐끗힐끗 쳐다본다.
먹을것을 찾아내려는 저 끈기...
이불도 들쳐보고 책상밑도 고개를 빼또롬해서 뭔가를 찾아본다.

하지만 연기에 자욱한 방안에 꼬맹이는 오만상을 찌푸린채 우리를 올려다본다.


"아지아들 입 벌리바라.. 뭐 묵었는지 함 벌리바라... "

"자슥이 말하는 꼬라지하고는..
먹긴 뭘먹냐.  담배먹었지.. 와 니도 담배하나 주까..
입이 심심하니 간질간질 하나.. 어? "


민재의 능청에
입술이 댓발로 나온 꼬맹이가 껀수를 잡았다는듯 엄마엄마를 외치며
아줌마에게 달려간다.


"엄마~ 민재아제가 나한테 담배줬어~~ 담배연기 내입에 넣었어 우짜냐고!~ "

그말을 들은 민재가 혀를 찬다.


"저게 인간이가.. ㅉㅉ ."

"ㅋㅋㅋㅋㅋ 미치겠다. ㅋㅋㅋㅋㅋㅋ"


정신없는 와중에 하숙집에 단 하나뿐인 전화벨이 울린다.


"준형아~ 니 전화 왔다. 전화받아라~ "

하숙집 아줌마가 건넌방에서 소릴 질렀고
난 재빠르게 전화를 향해 내달렸다.

다음주에 있을 봄축제에서 노래자랑 예선에 통과했다는 선배의 소식이었다.
난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우리방으로 돌아와 민재에게 자랑을 시작했다.


"나 다음주에 노래 본선 나간다 ㅋ"

"엇. 정말? "


"응. 축제때 부를 노래 신청해야된대. 이번주내로.."

"뭐 부를긴데."


"글쎄.. 아무래도 난 목소리가 감미로우니까 발라드가 좋지않겠니?
예를 들면 소피마르소의 유콜잇러브..

"오줌싸는소리하고 자빠짓다.. 니가 무신 유콜릿이고..
말이되는 소릴 해야지 ㅋ"


"민재 니가 날 잘 모르는가 보구나..
나 예선 통과하고 본선에 오른 사람이야.. 딱 보면 감이 안와?
내가 실력자라는게 ? ㅋㅋ"


민재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라믄.. 본선 노래는 아무래도 화끈해야하지 않긋나..
축제하는데 발라드 불러서 찬물 끼얹으면 안될긴데..."

"아냐. 다들 빠르고 신나는 그런거 갖고나올거야.
내가 듣기로는 룰라, 에쵸티, 젝키,  다 그런거 가지고 나온다던데..
그러니까 내말대로 좀 감성적인게 좋을것 같아..  '서울의달' 어때..
[아무래도 난 돌아가야겠어..]"

"지날하네. 마. 니 서울사람인거 유세떠나.. 그런거 말고 할거면 '걸어서하늘까지'
이런걸 불러줘야지..
[눈내리는 밤은 언제나 참기힘든 지난 추억이~] 샤우팅~ 크..ㅋ"


우리는 서로의 의견을 내보이다가 결국 아싸리 롸끈한 곡으로 가기로했다.

1987년도 엄청난 인기를 누렸던 메틀 곡..
[더 파이널 카운트다운..]
궁금하신분은 유튜브로 확인하세요 ㅎ

https://www.youtube.com/watch?v=9jK-NcRmVcw

 

나와 민재는 카세트에 테이프를 꽂아넣고 그 유명한 전주를 들으며
과연 부를수있을까..  라는 고민만 이틀을 내리하다가 드디어 결정을 해버렸다.

우리는 카세트 볼륨을 올리고 그 노래를 따라부르며 서로 빽빽 소리를 내질러본다.
연습이 중요한것이다.

하루하루 목을 풀어줘야 하는것이다.

우리의 목소리는 점점 커져만 갔고

당장이라도 본선 무대에 올라갈수 있을것만 같은 기세로 내지르기 시작했다..

 

 

"뭔소리고 이게.. "


아줌마가 밥을하다말고 방문을 열어제낀다.

방안은 그야말로 가관이었는데 카세트를 틀어놓고
난 옷걸이를 마이크로 쓰고 있었고 민재는 배드민턴채를 들고 기타를 치고있었다.

아줌마가 들어왔음에도 우린 그것도 모르고 여전히 소릴 빽빽 지르고 있었다.


"우째 미치갱이들이 되어뿌렀노... 하이고~ 주딩이에 침흘린거바라 .
야이 문디들아!!  밖에나가서 질르든가해야지. 이기 뭐하는 짓이고..
얼른 나가서 불르거라. 허이구.. 다큰 사내아들이 허이구..."

하숙집아줌마의 쿠사리에
나와 민재는 머쓱해져서 침을 닦고 배드민턴채를 내려놓았다.

 


"존나 쪽팔리네.. 하필 그때 들어오셔가지고 말야.."

"그러게 준형이 니가 너무 오버했어..
노래나 부르지 왜 침을 흘려가지고 그라노.. ㅉ"


우리는 화끈거리는 쪽팔림을 감추려고 서둘러 집을나왔고
마냥 길거리를 걷고있었다.


"사람이 실수할수도 있는거지.. 아 개쪽팔려..어휴ㅜ,,
근데.. 진짜 이거 부르다가 축제때 목 터지고 개망신 당하는거 아니냐 ㅋ
전교생들 다 보는데서 ㅎㅎ"

"알게뭐냐. 근데 사람들은 더 좋아할걸 ㅋㅋ 너 미친줄알고 ㅋㅋ  "


"민재 나쁘네 .. 자기 쪽팔릴거 없다구 아주 친구를 사지로 내모는구나 내몰아."

"어휴.. 다 몰르겠고... 소릴 너무 질럿더니 배고프다..
우선 배나 좀 채우면서 얘기해보자 ㅋ  시장가서 막걸리도 한잔하면서  ㅋㅋㅋ"


"난 맥주먹구 싶은데.. "

"시장통에서 뭔 맥주고ㅋㅋ.. 내 아는 할마씨 하는데 있다.
산소밥주는 할매 니도 알제ㅋ"


"아~ 국밥집 그 할머니? "

"그 할매가 부산할매라서 나한텐 곱배기로 준다아이가 . 얼른 따라온나. "

 

나와 민재는 학교 뒷편 골목에있는 '갈매기'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대학가 뒷편에 자리잡은 그곳은.. 요즘엔 전통시장이라고 불리우지만..
그때만 해도 그냥 말그대로 길 양옆에 놓인 선술집이었다.

바깥에 너저분하게 늘어놓은 안주감이며 기름판에서 구워지는 여러가지 전들..
어떤 손님의 부탁에
무를 썰어넣은 쇠고기무국을 기꺼이 끓여주는 할머니..

그 백발의 할머니는 막걸리가 찰랑거리는 주전자랑 대접2개
그리고 나물이 담겨있는 그릇 두개를 우리앞에 내려놓더니
김치전이랑 네모지게 썰은 두부 한모를 서비스로 내준다.
국밥에 밥도 말아주고말이다..


"아니.. 할마씨 그냥 막 퍼주능교.. 막걸리 값 얼마한다고.. 이렇게나 거하게..ㅋㅋ"
내가 휘둥그래진 눈을 해보이니 민재가 자랑스럽다는듯 윙크를 해보이며
(남자끼리 윙크는 ㅋ)
주전자를 들어 내 사발에 찰랑찰랑이도록 채워준다..


"자.. 한잔 받고... 중요한건 오늘이거 니가사는기라.. "

"풉.. 이건또 무슨 개날라가는소리니..ㅋ 지가 먼저 먹으러 오자고 했으면서.."


"니 내 친구아이가..
나때문에 서비스 왕창받았는데 기브엔테이크 모르나..
자 일단 한잔 쭉 마셔라..ㅋㅋ "

"ㅋㅋㅋ .....  "

 

내가 사발을 꿀꺽이며 들이키고 잔을 내려놓자
민재가 두부에다 차가운김치를 올려놓으며 얼른 먹어보라고 재촉을 한다.
막걸리엔 이게 최고라며..

민재말대로
차가운 김치가 두부랑 씹히는 아삭함과 고소함이 정말 맛있었다.

국밥으로 허기진 배도 채우고 우린 다시 사발을 부딪힌다.

민재도 한잔 쭉 들이키더니
잔을 테이블에 호탕하게 내려놓으며 막힌 숨을 내뿜는다.


"카.. 내가 아까 딱 들어보니까 준형이 니 노래 괜찮게 하긴하드라.
내 장담하는데 니 그곡 가꼬 나가면 일등은 아니더라도 뭐든 하나 탄다.. "

"바람넣지마라. ㅎㅎ "


"바람은 무슨.. 진짜라니까..
일단 고음도 잘 올라가고 목소리가 너무좋다아이가.. 그러니까..
그걸 뭐라고 표현하드라...  "

민재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

"노래 다시한번 불러봐라..ㅋ
내 진지하게 듣고 다시 평가해줄테니까."  라며 싱긋웃어보인다.


난 어이가 없었다.
시장통 할매집에서 무슨 개망신을 당하라고..ㅋ


"조용한거 불러줘도 되잖아. 조용한거..
아까 니가말한.. 소피마르소 나오는 유콜잇러브...
그거 한번 불러봐봐.. "

"됬어. 아깐 무슨 오줌싸는소리한다더니.."


민재가 숟가락을 내 입으로 가져다대며 다시 싱글싱글 웃는얼굴로 나를 쳐다본다.
그리고 갑자기 우는 표정을 지어보인다.
입술까지 삐쭉 내밀면서 말이다..


"헐.. (ιº o º)!  ..  뭐하냐. 사람무섭게... ㅎㅎ"

"그러지말고 준형아.. 한번만.. 한번만 들려주라.. 응?... "
 
난 처음보는 민재의 애교(?) 에 기가막혀 하면서도
그가 건네주는 숟가락을 마이크처럼 쥐고 흠흠 헛기침을 해본다.


"알았어.. 니 부탁이니까 불러준다..자 .. 잘 들어.. "

" ㅇㅇ "


민재는 손등으로 턱을 괴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고
난 최대한 부드럽고 감미롭게 ... 소피마르소 언니를 생각하며 목소리를 뽑아낸다.


"유~ 콜잇 러브...  "

"오오.. 좋다좋아.. "


민재가 내 앞소절을 듣자마자 두손을 모으면서 감탄사를 넣어준다.


"대라 띵잣니투세이~ "

"  ......"


"벗더왜하필~... 휑유어 암스올라운드미  유콜잇러브..."

.......

 

너무 크지않고도 나긋나긋하게..

아주 부드롭고도 감미롭게...

내가 영화의 주인공이 된것처럼..


그렇게 1절을 부르고나서 조용히 민재의 심사평을 기다렸다.

나름대로 기대도 된다.

내 생각엔 꽤나 수준급이었으니까 흠흠 ㅋ

 

민재가 내가 노래를 부르는동안 감았던 눈을 뜨더니

살짝 들고있던 고개를 내린다.

나도모르게 긴장이되어 침을 한번 꼴깍 삼켜본다.

 

"음...목소리가 참 좋기는 좋은데..  "

"좋은데 뭐?.... "


"흠.. 발음이...뭐라해야하나.. 흠.. 발음이 참 개떡같은게.. 하..."

"뭐??  개떡?? "


순간적으로 내 얼굴이 일그러진다.


"응.. 목소리는 정말 천사같은데 발음이 사탄이야.. "

"뭐냐 그게.. 칭찬이냐 욕이냐..."


"확실한건 준형이 넌 느린 팝송 부르면 안된다는거야.
무조건 빨리빨리 막나가는거 대충 막 질러야지.
우리학교 개망신당하겠다. 무슨 영어발음이 헐 ㅋㅋ"


"안해!!  ( ノ` 皿´)ノ  "

난 숟가락을 팽개치고 사발을 들이켰다.

'때대대댕' 하는 숟가락을 민재가 재빠르게 주워올렸고
그는 웃으며 내 어깨에 팔을걸치며 내 목을 꽉 죄어온다.
"농담이다 농담.. 요 서울아가씨야.. 목소리가 좋아서 놀린걸 가지고 그라노. ㅋㅋ"


"...... .  "


내가 옆눈으로 흘기듯 째려보자
민재가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본다.

술기운이 올라와서 그런가..
민재가 너무 빤히 쳐다보는것 같아서
내가 고개를 좌우로 흔들어보자 그의 시선이 내 얼굴을 따라온다.

뭐가 묻었나...

나도 모르게 손을 올려 내 뺨과 입과 코 주변을 만져본다.


"왜.. 내 얼굴에 뭐 묻었어?"

"..... 아니.. "


"근데 뭘 그렇게 쳐다봐.. "

".......와.. 쪼매 쳐다보면 안되나..

 

난 또 고개를 이리저리 움직여본다.

그래도 민재의 시선이 날 따라온다.

내가 국물을 한술 떠먹는데도 여전히 그는 내 얼굴을 쳐다보고있었다.


"아.. 진짜뭐야.. 뭐 묻었냐구. 왜 자꾸 쳐다보는데.."

"아 쫌 친구끼리 좀 보면 어디 덧나나..
얼굴이 하도 뽀사시한기 니 오늘 좋은거 발랐나싶어서 좀 보겠다는데 ....."

"뽀사시? "

".......

내가 눈을 뵤롱뵤롱하게 뜨고 쳐다보자
민재가 시선을 거두고 막걸리를 넘치게 따라 한숨에 들이킨다.


"사내아가 기집도 아이고..
이봐라.. 이기 사내아 볼이가.. 애기볼이제 애기.. "
민재가 술기운이 오른 내 발그스름한 뺨을 엄지랑 검지로 살짝 꼬집어본다.

"놔라 이거. ;; "

"와.. 만져보니까 진짜 애기볼이네.. 뭐 이런기 다있노.. ㅋㅋㅋ"

내가 놓으라는 말에도 민재는 신기하다는듯 내 볼을 쭉 잡아당긴다.
이러다 또 침흘리겠어 ;;.


"아아.. 아프다고.. 야.. 니 죽을래?? "

그제서야 민재가 피식웃으며 내 볼을 놓아주더니
젓가락으로 두부를 하나 집어먹는다.

"내 오늘부터 니 팬되기로 맘묵었다아이가...
노랠 우애그리 부르노..ㅋ인자 니 내 책임져야 한다..ㅋㅋ"

"얼씨구.. 그러셨어요?? 어떻게 싸인이라도 좀 해줄까?? "
"어.. 여기다 ㅋ 쪽 한번 해주라.. ㅋ"

민재가 자신의 볼을 내밀며 방긋 웃었고
난 내가 당한것처럼 그의 볼을 양쪽에서 잡아 쭉 잡아당겨버렸다.

"아야야. 뭐꼬.. 아프다. "

내 손가락에 힘이 더 들어간다.


"아아아!!!~ 아프다안카나.. 쫌,, "

"민재 니 볼은 안그런줄알어?.
지도 애기같은게 어디서 날 놀리구 그래..ㅎㅎ"


"아퍼.. 아프다구. 아악!!  요 자슥이 진짜 ..ㅋ"


한참을 장난치고 놀던 우리는
할머니 가게가 문닫을 시간이 넘어서면서 남은 안주를 싸들고
학교 동아리방으로 향했다.

중간에 하숙집 아줌마한테서 삐삐가 왔지만
선후배 만남이 있다고 대충 얼버무리고서는 민재랑 난 새벽까지
동아리방에서 노닥거린것이다.

뭐 이런저런 얘기에 정말 쓰잘데기 없는 얘기도 하면서
뭐가 그리 좋았는지 민재랑 난 잠을 잊은채 얘기를 나누었다.

그러고보면 그때의 체력은 정말 경이로울 정도였다.
아무리 놀고놀아도 체력은 끝이 없었으니까.. ;;

 

 

.............................................................................

 

 

2.  벽에 새겨넣은 이름..

 

(야,, 조용조용 들어와.. )
(알았다구.. 빨리 들어가 바보야.. )

민재와 난 최대한 발소리르 죽여가며 하숙집의 문을 따고 들어간다.

댕!~ 댕~ 댕!!~


(헉... )

벽의 괘종시계가 새벽 3시를 알리는것이다.


(깜짝이야.. 오휴.. )
(그러게.. 암튼 빨리 들어가.. 빨리 )

우리는 그 조그만 방의 문을 향해 쥐새끼처럼 움직였고
그 방문을 천천히 열어 걸어잠근후에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난 곧바로 상의를 훌렁 벗어버리고 이불을 가져다 펴기 시작했다.
베개까지 두개를 내려놓고나니 심한 갈증이 느껴진다.


"아.. 목말라..
물이라도 사올걸.. 지금 냉장고 열면 아줌마한테 들킬건데."

"화장실물이라도 먹을까?


"우웩..장난해?... "

"야야.. 부엌물도 어차피 같은 옥상통에서 내려오는거야.
잠깐 기달리바라.. 내 가져올테니.. "


민재가 화장실에가서 바가지로 물을 떠왔고 그가 마시는걸 지켜보던 나도
더이상 참을수가없어 벌컥벌컥 마셔댔다.


"후아.. 살거같다 안그나. ㅎㅎ"

"응.. 원호대사 바가지얘기가 괜히 있는게 아니었나봐. :


"원호대사 바가지는 또 뭐고.. 원효대사 해골말하는건가.. ㅋㅋ"

"아씨.. 그냥 넘어가줘라.. 그런거 몰라도 사는데 문제 없잖아.. "

"ㅋㅋㅋㅋ"

"......  "


그와 난 이불을 덮고 조용히 누웠다.

책상에서 째깍째깍 하는 조그만 탁상시계의 소리가
마치 다른 세상에서 들려오는것처럼 고즈넉하게 들려온다.

술에 취했는데도 웬지모르게 쉽사리 잠이 오질 않는다.
민재도 나랑 같은마음인지 조용히 내쉬는 숨소리가 일정했다.


"자냐?"

"아니... "


민재가 갑자기 이불을 들썩이며 일어나더니 창밖을 올려다보며 내게 묻는다.


"오늘 며칠이지? "

"왜?. "


"그냥.. 그냥 오늘 날짜가 한번적어보고 싶어서.. 잠도 안오고 ㅋ"

"......


민재는 부스럭거리며 일어나더니 앉은뱅이 책상에 있던 사인펜을찾아들고
벽 구석진 자리의 벽지를 조금 띁어낸다.

그리고 그 차가운 시멘트벽에 짙은 검정펜으로 꾹꾹 눌러가며
오늘 날짜를 적어놓고 자신의 이름을 적어놓는다.


"야.. 뭐하는거야.. 그걸 뜯으면 어떡해.. "

"쉿!!~ 자.. 준형이.. 너도 적어넣어라.. ㅋ"


"이게 뭐하는건데...  "

"기념이야 기념 ㅋㅋ"


"무슨 기념인데.. ㅎ"

"일단 써 얼른 ㅋㅋ"


뭔지는 몰라도 난 그가 적은 날짜옆에 내 이름도 적어놓았다..


"야야.. 오른쪽으로 좀더 떨어져서 써라,, 너무 붙이지 말고 .. 남사시럽게 ㅋ"

"여기?? "


"좀더.. 쫌만 더 옆으로.. 응응 됬다 됬어...."

"...... "


난 민재의 요구대로 그 차가운 시멘트벽에 검정색펜을 꾹꾹 눌러 내 이름을 새겨넣었다.

 

 


1998년 5월 6일  최민재    이준형.


"됬냐??.. "

"오케이.. 오늘 니 팬 된 기념으로 새긴거니까..
나중에 우리 군대 제대하고 다시만나면 여기 열어보자..
이런것도 다 지나면 추억이니까.. ㅋㅋ"


"뭐야 그게 다야??.. 유치하게 ㅎㅎ"

"ㅋㅋㅋ "

 

민재는 뭐가 좋은지 쿡쿡 웃어대며 벽지를 원래대로 붙여놓더니 자리에 눕는다.

그리고 웬지모르게...
항상 누워자던 평상시보다 그가 내 옆으로 더 가까이 다가온 느낌이다.
그의 몸이 내 팔에 느껴질정도였는데.. 싫진 않았다.
싫기는 커녕.. 그가 내 손을 잡더라도 난 가만히 있을것만 같았다.
그날밤은 정말 그랬다..

그게 술때문인지는 몰라도... 정말 그날밤은 그랬다.
그리고 여전히 들리는 둘의 숨소리...
새근새근..

뭔가 기분이 이상하고도 묘한 분위기속에서
그날따라 그가 천정에 붙여놓은 야광별이 너무나 아늑하고 아름답게 보였다.


"별 디게 이쁘다.. 민재 너.. 별자리 좋아하니?"

"응.. 어렸을때 시골에서 많이 보고 자랐거든....."


"난.. 도시에서만 살아서 그런거 잘 몰라....
솔직히 어디 캠핑갔을때나 볼수있었거든.."


"그래서 나도 천정에다 붙여놓은거야.. 보고싶을때 보구싶어서 .."

"....... "


"궁금한게 있는데.. 저기.. 저 젤크고 밝은거... 저건 이름이 뭐야?

"저거?.. 음.. 저건 거문고자리의 베가 라는 별.. 니 작년에 나왔던 영화 콘텍트알지?..
거기서 나오는 별이 저 별이야.."


"아.. 그래?.. 민재 너도 그 영화 봤나보구나..
나 그 영화보면서 진짜 신기했었는데.. 막 시간이 자기 마음대로잖아 ㅎㅎ
여기서 몇초는 저기서 몇시간이고..."

"응..ㅎㅎ."

 


새벽이라 풀벌레도 모두 자는지 방안은 정말로 고요했고
둘이 나누는 대화도 속삭이듯 조용했다.

정말로 지금 이 방안이야말로 시간이 정지된것만 같은 느낌이었고
난 민재의 별을 바라보며 문득 이 시간이 영원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


"휴...우리도 언젠간 늙고 그러겠지?.. 나도 저 별처럼 오래 살고싶은데.. "

"뭐.. 그러겠지.... 누구나 다 그렇게 되는거니까....."


"아.. 싫다.. 그냥.. 계속 지금만 계속됬으면 좋겠어. ㅎㅎ
정말 영원히.... "

"그러게... 나도... . 나도 계속 이렇게 있고 싶다... 언제까지나....  "


민재의 조금은 사그라든 목소리가
괜히 묘하게 내 마음을 건드린다...


.......


"근데.. 민재야.. "

"응?"


"너 언제부터 서울말 쓴거니... 듣다보니 쫌 이상하네 ㅋ"

"아.. 맞나.. 이상했나. ㅋㅋ"


"몰라.. 잘 모르겠어.. 서울말 같긴한데..
발음이라구해야하나 억양이라구 해야하나.. 암튼.. 발음이... "

"니 개떡 얘기할라고 그라지..내한테 복수할라고.. ㅋㅋ"


"그래 이자식아 ㅎㅎ . 왜 갑자기 사람 헷갈리게 서울말 흉내내구 그러는거야.. "

"내도 몰르겠다.. 니랑 있으니 내가 따라가나 싶다..ㅋ "

 

나란히 누워있는 어둠속에서 민재의 멋쩍은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ㅎㅎ 민재..니.. 내 따라서 반에서 꼴등하고싶나..ㅎㅎ"

"뭐.. 그라면 또 어쩌긋노.. 그런가보다 해야제ㅋ.."


"됬다 마.. 고마 자자.. 이러다 우리 또 지각한다 아이가..ㅎㅎ.... "

나도 민재의 사투리를 한번 따라해본다..ㅋ


그러고보니
우리도 모르게 나와 민재는 어느덧 서로를 닮아가고 있었다.

서로 함께 시간을  보내며..
서로 같은 곳에서 공감하고 모든걸 공유하는 생활을 하다보니
우리는 서로를 닮아가기 시작한것이다.

(그래서 아마도 사랑하게되면 닮아간다는말이 있나보다.
그때는 당연히 몰랐지만.. ㅜ )


그렇게 민재와 얘기를 나누며
난 그 따뜻하게 빛나는 별자리 아래에서 서서히 잠이 들기 시작했고
꿈에서는 뭔지모를 따뜻함까지를 느꼈다.
뭐라 말할순 없지만..

따뜻한 숨결이 나를 감싸는 그런 포근함이었던걸로 기억된다.

아주 따뜻하고 포근했던 숨결이..
내 귓가에서 아른거리며 나를 감싸주었던걸로...  기억된다....

 

 

 

.....................................................................................

 

 

 

3.  다가오는 그날..

 


"더파이널!! 카운트따운!!! "

끼야아아아악!!!~~~


민재의 조언대로 난 막 지르는 그곡을 들고 본선에 올라갔고..
1절을 미친감동의 도가니로 만들어놓았다.


번쩍이는 조명들과 행사용 스피커에서 터져나오는 강력한 음악에
선배들이랑 친구들이 두손을 번쩍 치켜들고 괴성을 질러대줬고
민재는 그 쪽팔림을 무릅쓰고 나와함께 무대위에서 하숙집아줌마에게 보여줬던
그 괴기한 퍼포먼스를 하고있었다.

들려오는 함성소리만 봐서는
아무래도 정말 인기상정도는 탈것 같은 예감도 들었다.

난 너무 흥에겨워서 막춤을 쳐대다가
간주가 끝나고나서 가사를 까먹는 실수를 하고 말았다. ;;

공부랑 담쌓았던 내 기억력이 제대로 위력을 발휘한것이다.

난 너무나 당황해서 내 바로옆에있던 민재를 바라보았고
눈치빠른 그는 배드민턴채를 든채 내 손을 붙잡고
우아하고도 강력한 원어민(내가 듣기에는) 발음으로 노래를 이어나갔다.

 

We're leavig together

And maybe we'll come back

 

난 민재의 그런 모습에 ..

(오,, 와 .. 섹시해 ㅋ) 란 생각을 남발하고 있었다. ㅋ


결국 우리는 마지막까지 함께 마이크를 부여잡고 끝을 냈고
결과는 정말로 인기상이었다.ㅋ

중간에 가사만 까먹지 않았어도 순위에 들수 있었다는게 선배들의 얘기였다.

하지만 민재는 진선미중에서 미가 가장 아름답다는뜻처럼
인기상은 가장 잘생겨서 인기가 가장 많은사람에게 주는거라며
말도안되는 해석을 자기마음대로 풀어대고있었다.

그래도 난 민재가 해주는 그 자유로운 해석이 듣기좋았다.


제눈에 안경이라지만...
처음으로 누군가가 나보고 잘생겼다고 해줬으니까 말이다 ㅎㅎ

돌이켜보면 지금까지 내 생애 가장 기쁘고 행복했던 때가
바로 그 1998년이었다.

특히 그해 여름엔 민재의 고향인 부산에서
해운대도 구경하고 달맞이언덕도 구경하고 했는데
날 끌고 다니면서 부산자랑하는게 그렇게 좋았던지
민재는 하루종일 나를 이끌고다녔다.

구경하다 구경하다 지치면
바다에 뛰어들어 수영도 하고 회도먹고 매운탕도먹고..
해질녁이면 바닷가에 앉아 파도소리에 폭죽터지는것을 구경하며 밤까지 노닥거렸다.

정말 그 널널하고도 기나긴 우리들만의 시간..
민재와 난 그 긴 시간을 지치지도 않고 즐기고 있었고
우리는 서로 단 한순간도 떨어지지않고 그 긴시간을 함께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여름이 끝나고 가을이 오면서..
그 길게만 느껴졌던 시간들의 속도가 다르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기말고사를 준비하다보니 어느새 낙엽이 지고있었고
찬바람이 불어올때즘엔 드디어 군입대영장까지 날아온것이다.


내 이름이 선명하게 찍혀있는 그 통지서엔
2달후.. 한창 추운겨울 어느날..

오후2시까지 입대를 해야한다는  '명령' 이 찍혀있었다.

시발...
어렸을때 만화에서만 보아오던..
그 고기뜯어먹던 붉은돼지랑 싸우러 군대엘 가게된것이다.

2년 2개월... 뭐,, 얼마전까지만 해도 거의 3년이었던거라서 많이 좋아지긴한건데..
에휴.. 그래도 26개월이면 ....

내가 이때까지 살아온것의 10분의 1이나되는 시간을 군대에서 보내야하는것이다.

어떻게보면
IMF의 여파로 너무나 힘든 시기였기에
어쩌면 군입대영장이 고마울수도 있었던 때였지만
막상 갈때가 되어보니 마음이 씁쓸하고 기분이 좋질 않았다.

뭔가.. 혼자서 동떨어져버린 느낌...
뭔가 어딘가에 내동댕이쳐진것만 같은 느낌..

난 하숙집에서 기타를 둘러메고  [이등병의 편지] 를 조용히 불러본다.

설마 이노래를 부를때가 벌써 왔다는게 믿기지도 않았고
직접 부르다보니 가슴이 울컥이기까지 했다.

 

[ 집 떠나와 열차 타고 훈련소로 가는 날
부모님께 큰절하고 대문 밖을 나설 때
가슴 속엔 무엇인가 아쉬움이 남지만
풀 한 포기 친구 얼굴 모든 것이 새롭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젊은 날의 생이여.......]

 

기타의 여음에 젖어 눈을 감고 줄을 튕기는데 방문이 벌컥열린다.


"뭐하냐.. 대낮부터.. "

"엇.. 민재 왔니? 수업 빨리 끝났나 보구나.. ㅎ"


"응. 오늘 우리교수가 연구하다 필받았나봐.
조교도 대충 설명하더니 휴강이라면서 가버리더라고 ㅋㅋ
근데 뭐하고있었냐. 기타메고 ㅋ"

"잘 들어봐.. 이 형님이 노래하나 들려줄테니까.. 흠흠.. "


"오호.. 뭔데뭔대.. 혹시 작곡이라도 한거가?"

"시끄럽고.. 쉿.."


"응.. 쉿 ㅋㅋ"

민재가 자신의 입술에도 손가락을 가져다대며
소리가날까싶어 조용히 방바닥에 내려앉는다.

 


[어색해진 짧은 머리를....  보여주긴 싫었어..
손 흔드는 사람들 속에.... 그댈 남겨두긴 싫어...
삼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댄 나를 잊을까
기다리지 말라고 한건 미안했기 때문이야 ......]


......


내가 [입영열차안에서]를 부르는동안
민재의 표정에 조금씩 그늘이 드리워지더니
노래가 끝났는데도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마도 짐작을 한 거겠지...

 

"벌써.. 나온거야?"

"응... "


"언제 입대하는데... "

"2달후에..  춘천으로...  "


"......... "

민재의 입술사이로 길고긴 숨이 내쉬어지고 있었다..


"전방으로 가는가보구나...

"응.. 방학 시작하면 바로 떠야지..서울가서 정리할것도 해야하고....."


"아줌마한텐 얘기했어?"

"아니.. 아직.. 뭐 어차피 1년 마치고 가는거니까 별로 상관없을것 같아서.."


"그렇긴하네..."

"...... "


"민재.. 니도 이제 조금있으면 나올걸.. 너도 이제 슬슬 준비하는게 좋을거야  ㅎㅎ "

"응... 아마 그렇겠지.... "


"시간 참 빠르다 그치?"

"그러게나 말이다.. 벌써 1년이 다 지나가네.... "

 

우리 둘은 옥상으로 올라가 저무는 해를 나란히 앉아 바라보았다.

황혼의 해가 저녁을 아름답게 물들이고 있었다.
환한 오렌지색에서 주황색으로..
그리고 자주색과 보라빛의 색감이 경이롭게 펼쳐진다.

이렇게도 아름다운 세상인데...
왜.. 슬퍼지는건지....

우리는 한참을 말없이 그대로 앉아 노을에 젖어들고 있었고
해가 산 너머로 어둠과 함께 사라지는것까지 바라보고 있었다.
멀리 어두운 배경을 뒤로한채 빛을내던 희미한 별이 어두운 구름사이로 사라진다.

 

 

 

........................................................................

 

 

 

4.  미완성의 우리..

 


하숙집을 떠나던날....

그날은 아침부터 분주했다.

아저씨가 새벽같이 일을 나감으로서 난 졸린 눈을 뜬채 아저씨에게 인사를 드렸고
다시 설잠을 자다가 짐을 챙기기 시작한것이다.

초등생 꼬맹이가 짐을 싸고 있던 내게 쪼르르 달려와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쭈뼛거리며 말한다.


"아재,, 이제 군인아재 되는거가.."

"그래 자식아. ."


"글면 인제 우리집에 안오는기가.."

"안오긴.. 우리 꼬맹이 두살 더 먹으면 올테니까 너도 동생 잘보고 얼른얼른 커라.  ㅋ"


"정말이가. "

"그럼ㅎㅎ 약속할께. "


나와 꼬맹이가 새끼손가락을 걸때
아줌마가 기차안에서 먹으라며 김밥 두줄을 가방에 넣어준다.


"밥 제때 잘 챙겨묵고.. 몸조심하고.. 준형아 잘가그래이.
그래도 정들었는데.."

"네 아줌마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저때문에 새벽잠도 잘 못주무시고 ㅎㅎ"


"됬다 마.. 기차시간 늦겠다. 어여 가본나"

"네. ㅎㅎ"

 

"아재~ 이거 가져가라.

"뭐냐 ㅎ"


꼬맹이가 뒷짐을진채 숨기고있던걸 조그만 손을 내밀며 내게 건네준다.

눈깔사탕 2개 ㅋㅋㅋ
괘씸하기만 한줄 알았는데 이녀석 참...

난 꼬맹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아줌마를 향해 웃음을 지어보였다.


"아저씨한테도 저 잘갔다고 안부전해주세요.ㅎㅎ"

"하모하모. ... 저기 택시 온다.. "


"네.. 이만 가보겠습니다. ^^"

난 가방을 주섬주섬들고 콜택시의 트렁크에 짐을 실어넣었다.


"잘가그래이 준형아. 담에 또 와야 된데이.."

"네네. 또 와야죠 ^^. "


출발하는 택시에서 보니 꼬맹이가 눈물을훔치고 있었다.
거참... 가뜩이나 슬픈데 저녀석까지...


민재는 괜찮다는데도 역까지 함께 가준다고 했다.

솔직히 나도 가슴이 꽉 메이는 기분에 당연히 말리지는 않았지만
기차시간이 다가올수록 목이 메어왔다.

역 내에서는 특유의 안내방송이 흘러나왔고 시각표를 보니
내가 탈 열차는 15분 후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열차시간이 다가오는 이 기분...

아... 진짜 실감나네.. 입대하는 이 기분..... ㅋ

이제 언제 만날지는 모르겠지만 우린 꼭 편지를 하며 소식을 주고받기로
서로 위안을 하며 서로를 다독였다.


"뭐.. 잊어버린거 없는지 봐봐 "

"응... "


난 부스럭거리며 짐을 다시 훑어보았고
민재는 그런 나를 아무말없이 내려다본다.

잊어버린것도 없는데 괜시리 난 가방을 들춰보고있었다


자꾸만..

자꾸만 뭔가 뜨거운것이 울컥하려는 느낌이 드는것이다.
그런 나에게 힘없는 민재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진짜.. 가는거네 이제.... "

"응.. "

....


"그래... 잘 가구... "

......


"준형아.."

"응... "


....


민재가 나를 바라보며
무언가 말을 할듯말듯 하다가 살짝 웃으며 손을 내민다.


"아니다.. 잘가. "
......


민재의 그 손을 보며 가슴속에서 또 뭔가 울컥 치솟아 올라왔지만 난 침을 한번 삼킨채
그의 손을 꽉 마주잡았다.


"그래 잘있어.. 나중에 다시 보자.. 편지 꼭 하고. ㅎㅎ

"그래.. 군대가서도 몸 건강해라.."


우리는 서로의 손에 더욱 힘이들어가는걸 느끼며 서로를 한번 끌어안아본다.

그리고 다시 서로를 마주보았을때...

민재의 눈밑은 파르르 떨리고 있었고
난 눈물을 보일것만 같아 얼른 뒤돌아 개찰구를 나섰다.

 
무언가가 내 마음을 짓누르는듯하다..
정말 숨쉬기도 힘들정도로..
난 힘겹게 뒤를 돌아보았다.

민재가 가만히 서있다가 손을 흔들어준다.

난 다시 몇걸음을 더 옮기다가 내 앞에 나타난 계단을 보고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이제 이 계단을 내려가면 더이상 그를 볼수없는것이다.
그동안 함께했던 민재를...

여전히 손을 흔들고있는 그의 모습..

나도 다시 손을 흔들며 먼저 들어가라고 손짓을 했지만
민재가 나에게 먼저 가라는 손짓을 해보인다..

난 입가에 애써 웃음을 지어보이며
고개를 숙인채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한걸음.. 한걸음...  또다시  한걸음 한걸음..

그렇게 계단끝의 승강장이 보일때..
다시 뒤를 돌아보았지만 내려온 계단때문에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그제서야 난 쪼그리고 앉아 주루룩 흘러내리는 눈물을 느낄수있었다.

분명히..
분명히 말하고 싶은게 있었는데도...
난 그의 손을 마주잡은채 아무런 말도 할수 없었던 것이다.

뭔가 바윗덩이에 눌린듯 ...
나를 짓누르고있는듯한 그 기분때문에 정말로 하고싶었던 말을
결국 못하고 만것이다.

그때..
내 입속에서 맴돌았던 그 한마디를..
내가 그토록 하고싶었던 그 한마디만 했었더라면...


하지만..
그때의 나에겐 그 말을 한다는것은 정말로 무서운일이었다.

혹시라도 모든것이 잘못될까봐...
혹시라도 괜히 잘못해서
모든것을 잃어버리게 될까봐 너무나 무서웠던것이다.

 


 


........................................................................................................

 

 

 

IMF의 후폭풍은 정말 거세었고
그건 수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안겨주었다.

민재의 집도 내가 입대하자마자 외국 어딘가로 떠나버렸는데
그의 집안도 결국 문제가 생겨 어쩔수없는 선택을 했던것 같다.

수소문해 찾아보았지만 부모님도 이혼을 한것 같았고
민재가 나에게 행선지도 알려주지 못하고 떠난것은..
그만큼 문제가 심각했던 탓일거란 짐작이 들뿐이었다.


오래전 그 역에서 마지막으로 손을 흔들던 민재의 모습..


그 모습을 마지막으로 20년이란 세월이 지난것이고..
난 지금 그 옛날.. 그와 함께살던 하숙집 그 방에 우두커니 서있는중이다.

멀리서 희미한 소음들만이 들려오는 가운데..
난 벽을 멍하니 보고만 있었다.

우리가 남겨놓았던 글을 바라보며..
잠못들던 그 새벽에 그와 내가 꾹꾹 눌러가며 써 놓았던 글을 바라보면서..
난 그날의 새벽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내가 써놓았던것과 많이 달라져있었다.

민재가..

민재가 내가 떠난후에...
그위에 다시 글을 덧붙여 쓴것이다.

 


 


1998년 5월 6일  최민재  ♡  이준형

떠나는 뒷모습에 사랑한다고 말해보았다.
하지만 내 목소리가 준형이한테까지 들리진 않겠지.
그를 멈춰세우려면 더 크게 외쳐야했지만..
그가 멀어져갈때마다 내 목소리는 조금씩 작아져만 간다.


잘가. 안녕. 안녕 안녕,,, ㅠ  사랑해... 정말 사랑했어...


난 그가 남겨놓은 글을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는 우리의 이름사이 빈공간에 사랑한다는 표식을 채워 넣었던 것이고
차마 하지못했던 자신의 속마음을 그 아래에 써놓은 것이다.

얼마나 슬펐을까...

내가 먼저 하숙집을 떠나던 날..

나를 바래다주고 홀로 이 방으로 돌아왔을 그를 상상해본다.
홀로남겨진채 이글을 쓰고있었을 그를 상상해본다.
내가 떠나고 없는 빈 자리에서..쓰린마음으로 글자를 채워넣고있을 그를..

아무도 없는 이 곳에서 내 볼을 타고 뜨거운것이 흘러내린다.

서로 사랑하면서도..
그렇게 흘려보낸 시간이 너무나 슬프고 또 슬프다.
얼마든지 사랑할수도 있었는데...

그 오랜시간동안 말도 못한채.. 이렇게 세월이 지나가다니....
지금 이 글과 나에겐 20년이란 공백이 벌어져있는것이다.


난 떨리는 손으로 민재가 써넣은 그 글자들을 매만지다가 펜을 꺼내들었다.


2019년 11월 1일  나도 사랑했어. 민재야 정말..
나도 너에게 너무나 말하고 싶었는데.. 민재야.. 나도 사랑해.. 정말 ㅠ


난 그가 남겨놓은 글옆에 바짝 붙여 글을 남겨본다.
비록 시간의 공백은 있지만.. 우리의 글자만이라도 붙여놓고 싶은것이다.
그리고 떨리는 손끝으로 다시 그 글자들을 어루만져본다.

이루어지지 못한 우리의 첫사랑..

조금만.. 조금만 더 손을 뻗었더라면 거의 닿을수도 있었을텐데..

조금만.. 아주 조금만 더 가까이 다가갔으면 서로를 알아볼수도 있었을텐데..


.......


아마도..

아마도 우리가 이뤄지기엔 아주 조금은 부족했나보다.. 아주 조금은 말이다

그것을 완전히 이루기 위해선 꼭 해야할 말이 필요했던 것이지만...

그... 마지막.. 그 조그맣게 남은부분을 민재와 난 채워넣지 못한것이다.


아무리 서로 사랑한다고 해도..

서로의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면 그건 이뤄질수 없는것이니까..


결국 우린 그렇게 ..

오래도록 미완으로 남아버린것이다.

 


사랑해...라는 말을 하지 못함으로서...

 

 

 


..........................................................

 

 

 


포크레인은 거칠것이 없었다.

그 강력한 삽은 정말 거침없이 다가오고 있었고

그들의 벽에도 조금씩 금이가고 있었다.

 

1998년...  5월      6ㅇ;..


벽이 흔들리며 우리들이 남겨놓은 그 마지막 흔적도 이제는 사라져간다.

그렇게 추억의 시간과 공간이 무너지는동안
그가 사용했던 오래된 이메일로도 글을 보내보았지만 수신이 되지 않고있었고
대학 동창들에게 물어보아도 그가 어디로 갔는지 아는 사람은 없었다.

이제는 그 애틋했던 벽마저도 사라지고나서 아무것도 남은것이 없을때..
난 그동안 들락거리던 사이트에 처음으로 글이란걸 올려보았다.

하숙집에 새겨놓은 우리의 사랑을 이곳으로 옮겨오는 작업이 시작된 것이다.

새롭고도 새하얀 벽으로..

처음 올려보는 글이라 낯설고 어색했지만..
처음으로 내가 쓸 필명도 한번 만들어본다.


민재준형사랑해...  ;;

그리고 내 첫 글의 제목은  [ 1998년 5월 6일  민재와 나의 첫사랑.. ] 으로 정했다.


비록 너무 늦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있어도..

처음 올리는 글에 웬지모르게 설레어오기도 한다.

마치..
우리가 처음 만났을때로 되돌아간것처럼 말이다...

나는 그와의 추억을 한글자 한글자에 소중하게 새기고있었고
어느새 내 마음은 그 때의 그곳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신입생.. 하숙집. 축제.  꼬맹이.. 문틈을 막은채 먹던 통닭.. .... 그리고 우리...


내 마음은 벌써 그때의 그 곳으로 되돌아가
그를 기다리고 있는것이다.

예전엔 민재가 먼저 그곳에서 날 반겨주었지만...
이젠 내 차례인것이고 난 미완으로 남은 우리를 완성시켜보고 싶었다.

 

너무나도 간절하게...

난 처음으로 내가 쓴 글을 올려놓고 눈을 감는다.

내 마음속에 그의 목소리가 들려오기를 바라며..

내 기도를 부디 그가 듣기를 간절히 바라며...

 

두손을 모아 ..

 

언젠가 그를 다시 만나게 되었을때..

그에게 해줄말을 마음속으로 되뇌어본다..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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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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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pa…
  • 작성일
잘 읽었습니다. 결말이 아쉽고 쓸쓸하지만 두분 다시 만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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