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것도 사랑이라고 하신다면.. 5

작성자 정보

  •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본문


내가 그날 원했던건 부장님과의 대화였다. 외도 사실을 밝히고 이제 그만 놓아주겠다는 선포같은것 내지는, 마음대 마음으로 진실을 마주보고, 내 마음을 깨끗하게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행님과 같이 있는게 좋으면서도, 나의 더러운 진실을 쏟아 낼때에는 강력한 배수진을 쳤던 이유도 그것 때문이었다.

그런데, 행님의 턱없이 해맑은 장난스러운 문자들때문에 나는 뚫려버렸다. 다시 내마음은 흙탕물에 빠졌고, 나는 허우적대기 시작한것이다.

혹자는, 내가 그깟 한낱 영상속의 남자를 딱 한번 만나고 그런 감정을 가지냐고 비웃는 사람도 있을것이다. 아무렴 나도 알았겠는가. 이 나이에 나의 세상이 그렇게 쉽게 무너질줄...

성적인 욕망이 채워지지 않더라도, 보고만 있어도 행복감과 내적 친밀감이 솟구치는 사람이었다. 비록 만날때마다 성적으로 흔들린다 할지라도, 그 괴로운 자책감으로 힘들더라도, 오래오래 뜨끈 미지근하게 평생 행님행님 하면서 함께 하고 싶었다.

내가 처음 그분을 만난날 느꼈던 감정이었다. 그럼에도 그런 흉측스러운 말들을 뱉어낸데에는 무엇이든지 나는 그만하고 싶어서였다. 자꾸만 아깝게 소비되는 내 감정이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그날 잠든척을 했다. 무엇이 두려워서. 부장님을 아직 보내기 싫은것일까? 아니면 행님의 예상못한 반응들을 즐기는걸까?

다음날 일어났을땐, 부장님이 나를 꼬옥 안고 있었다. 어디 바람불면 날아갈까 애지중지 하면서.그런게 감동일때가 있었다. 굳이 섹스를 하면서 땀을 뻘뻘 흘러가며 서로에게 큰 흥분을, 주고 느끼지 않아도 이런 소소한것들이 주는 만족감이 더 좋을때가 있었다.

부장님은 내 핸드폰을 봤을까? 어젯잠 그의 한숨소리는 지금 나를 안고 있는 이 행동은 거기서부터 기인한것일까?

한참을 부장님에게 껴 안고 싶었는데,

( 내가 만약에 괜찮다면 어쩔건데요?)

그의 마지막 문자가 마음을 어지럽게 만든다. 괜히 어만 남자 마음을 들쑤신건 아닌지, 설마 그럴리는 없겠지만, 정말 내 마음을 받아 준다면, 나는 부장님을 떠날수있을까? 그렇다면 우린 이대로 헤어져도 괜찮은걸까? 행님의 가정은? 와이프는? 아니다. 이건 가도 너무갔다.

부장님 품을 빠져나와서 거실에 있는 소파에 주저 앉았다. 그리고 행님에게 문자를 보냈다.

한번도 고치지 않고 더 보태거나 빼지 않고, 지금 느끼는 감정을 가감없이 적어 보냈다.

[ 행님.. 저번에는 제가 무례했습니다..
  그럼에도 연락 주신건 너무나 감사합니다..

징그러우셨을텐데..
왜 이렇게 재치있게 받아주시는지..

뒤늦게 나마 제 마음을 적어보려 합니다.

진짜 처음엔 행님의 철학적인 생각들과 가치관..
그런게 저랑 결이 딱 맞았습니다..
그래서 자꾸 혼자서 정들었나봅니다.

하루종일 행님 영상을 보고, 또 보고,
제가 댓글을 달면, 행님이 달아주는 댓글을 읽고 또 읽고.. 저의 힘듦이 줄어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정말 사귀는 기분까지 들더군요..

같이 술도 한잔 하고 싶었고,
맞담배도 피우고 싶었고,
책도 읽고 생각을 공유하고 싶고..
나의 일상을, 나의 불편한 마음들을 왜 만나보지도 않은 사람한테 보여주고 싶을까요?

행님 어깨에 기대는 사람들이 모르긴 몰라도 많을텐데, 왜 굳이 저까지 그 어깨에 기대고 싶은건지.. 행님도 이미 나름 충분히 힘드실텐데...

그래서 하루종일 행님 생각만 하는 저에게 되물어 봤습니다. 이런것도 사랑이냐고?
그랬더니 사랑 맞답니다..
그러더니 덜컥, 행님을 가지고 싶은 욕망이 일었습니다.

죄송합니다..

행님의 순수한 마음과는 다르게, 저의 더러운 마음을 보고 있자니, 도저히 견딜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상스러운 말을 뱉어내면, 저도 행님도 각자의 인생을 살수 있을것 같아서 그랬습니다.

그럼에도 장난스럽게 받아주신거 너무 감동입니다. 저한테 그런 마음 없다는거 잘 알고 있습니다. 이미 충분하고 감사합니다. 멀리서 늘 응원하겠습니다. ]

거기까지 미친듯이 쓰고나자, 행님이 보낸 문자와 말들이 머리속에서 떠올랐다.

괜찮아.. 한번씩 만납시다...
술도 한잔 하고...
내 마음이 어떤지 설명할 시간을 줘야지..
그래야 공평하지 않을까요?

농담과 진담이 섞인 이 말들속에서,
그의 진심은 어떤것일까? 그렇게 고민을 하다가 그냥 전송 버튼을 눌렀다. 빼꼼히 고개를 드는 말도 안되는 기대감이 진절머리가 나서였다. 아서라 떡줄생각도 안하는데. 미친놈.

그렇게 몇분 자책을 하고서는, 거실 소파에서 일어나서, 주방으로 향하는데 바로 문자가 왔다.

[ 푸하하하하하! 그렇게 고백하는게 어딨엉?
지금은 그렇고, 나중에 전화할게용
오늘 저녁에 시간좀 비워둬요...
맛있는거 사줄겡 ㅎㅎㅎ]

이 명랑하고 밝은 톤의 문자는 뭐지? 뒤통수를 한대 후려 맞는듯했다. 그런데 기분이 나쁘지가.않았다. 오히려 쿵쾅쿵쾅 두근두근 뛰었다. 가슴이 자꾸 시키지도 않았는데. 그만하라고 그렇게 얘길 했는데... 당최 말을 듣지가 않는다.

나는 행님의 번호를 저장했다. " 책방 행님"

정성스레 준비한 소고기는 냉장고에, 불판과 각종 양념장과 빈찬들이 깨끗하게 치워져 있는 텅빈 식탁위를 바라보았다. 소주는 몇병이 비워져 있었다.

"... 촤아....."

온 집안에 소고기 굽는 냄새가 퍼졌다. 그 바람에 부장님도 잠에서 깼는지 안방에서 거실로 나오셨다.

".. 아침부터?"

".. 뭐 어때요? "

나도 모르게 싱그럽게 웃고 있었나보다. 그게 신경이 쓰였는지 한참을 고기를 먹다말고 부장님이 물었다.

".. 무슨 좋은일 있어?"

".. 내가? 아니? 뭐 없는데.."

".. 할말 있다면서.. 뭔데? "

".. 내가요? 없는데.. 부장님은 뭐 할말 있어요?"

".. 어? 아니.. 나도 없어..."

".. 반주 좀 곁들일까요? "

".. 그래.. "

나는 오묘한 지금 내 감정을 자세히 들여다 보고 싶지 않았다. 잠시 숨어 있어도 괜찮을것 같았다.

한참을 먹는데, 부장님이 뜸을 들였다. 할말이 있어 보였고,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차라리 내가 먼저 얘기를 꺼낼까 잠시 고민했다.

".. 저기.. 있잖아...
  .. 무슨 이상한 문자 같은거 안왔지? "

".. 이상한 문자? 그런거 안왔는데요.."

그때 부장님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분명 무슨 변화가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 오늘 날씨도 좋은데 데이트 할까? "

".. 그.. 래..요.."

나는 그때 조금 머뭇거리며 답했다.

".. 저녁에 약속 있을지도 모르는데.."

".. 누구랑?"

"... 그..냥... 친.. 구..."

"... 일찍 들어오지 뭐.."

나의 머뭇거림은 행님 때문이었지만, 이내 우리의 공기도 머뭇대게 만들었다. 또박또박 말했지만 부장님의 얼굴에도 조금 그래 보였으니까.

우린 근처 동네 산을 오르기로 했다. 부장님은 산을 좋아했다. 아재처럼. 몇번 따라갔다가 나는 손사래를 쳤고 그 이후로는 같이 가지 않았는데 오늘은 흔쾌히 따라 나섰다.

등산로 입구에 차를 세워두고, 걸어 올라가려는데, 갑자기 손을 내민다. 빨리 잡으라고.

".. 왜 이러셔?"

정색하는 나를 바로 세우면서 나의 옷 매무새를 만져주었다. 그러면서 내 이마와 코와 입술에 손을 한번씩 가져다 놓으면서 부드럽고 인자하게 나를 눈으로 열심히 담는 부장님이 부담스러워서 얼른 몸을 돌리는데, 그 사이에 내 손을 낚아 챘다.

".. 아.. 민망해.. 사람들 보잖아요.."

"... 뭘 민망해!! 하나도 안 민망하구만..."

부장님은 내 손을 앞뒤로 크게 흔들기까지 했다.

"... 안 민망하다!! 하나도!!  내 애인이랑.. 풉"

다급하게 얼른 부장님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때 그 생기 넘치는 눈빛. 실로 오랜만이었다.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웃음이 헤집고 나오는데, 나도 꼭 그런 마음 같아서 그의 손아귀에서 더이상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지 않았다. 보라면 볼테지. 상상이나 할까. 우리가 애인 사이라고. 그냥 사이좋은 부자관계구나 할꺼다.

그렇게 높은산은 아니였지만, 오르막길은 버거웠다. 그때마다 부장님은 나를 밀어줬다. 내가 밀어줘야 하는데 뒤바뀐 상황이 민망스러우면서도, 좋았다. 힘들때 누군가 밀어줄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게.

몸이 힘드니, 내 감정은 아무런 노동도 하지 않아서 참 좋았다. 나도 부장님도 해맑게 웃기만 했을뿐, 그 어느 누구도 딴 생각은 하지 않는것 같았다. 이 맛에 등산하는건가 싶기도 했다.

정상을 찍고 사진도 찍고, 산을 내려와서 백숙을 먹었다. 토종닭이라서 그런지 엄청 큰 닭다리를 뜯어서 내 접시위에 올려주었다. 호호 바람도 불어준다. 가끔씩 예사롭게 느껴지던 날카로움은 온데간데 없어진것 같았다. 지난 몇년간의 시간을 만회하려는 사람처럼 더 친절하고 과하게 굴었다.

배를 채우고나니, 그제서야 숨어있던 감정들이 되살아 난다. 인간은 참 어리석다. 내가 그렇다. 부던한 노력을 하는 부장님을 앞에 두고, 나는 수시로 핸드폰을 확인하고 있었다. 아닌척해도, 행님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나보다.

기다리던 연락은 오후 늦게 왔다. 얼마나 기뻤던지, 혹시나 부장님이 이런 나의 마음을 알게 된다면, 배신감에 얼마나 치를 떨까.

그럼에도 나는 친구를 만나고 오겠다고 기어코 거짓말을 했다. 말고 버벅인채로 눈알을 사방으로 굴려가면서. 집을 나오면서도 죄스러운 마음보다는 사실 들떠 있는 마음이 더 컸다. 

그 설레는 마음도 얼마 지나지 않아서, 불안으로 바뀌었다. 그런 참혹한 말들을 내뱉고서 행님의  다시 볼 생각을 하니,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행님의 성기를 빨고 싶다니...

나는 정말 미친놈인가? 어떻게 그런말을 내뱉을수 있는가. 그런 생각들로 민망해지려는 찰나, 행님이 가게 문을 열고 들어왔다. 해맑은 아이모습을 위장한 어른 같아 보였다.

잠시 어색한 기운이 감도는건 내쪽에서만 그러는듯, 행님은 연신 방글방글 미소를 뿜어냈다.

".. 표정 좀 풀어... 괜찮아..."

그의 첫마디는 뜻밖에도 나의 긴장을 풀어주는 일이었다. 일부러 그런 문자를 보냈단다. 너무 진지할 필요도, 긴장할 필요도 없다고. 남자한테 고백을 받는일이 처음이라서 경황이 없었지만, 나중엔 고마웠다고 했다.

어쨌든 누군가의 사랑을 받는 일은 즐거운 일이니까. 그는 그렇게 말했다. 나는 소설속에 나온 사람은 아닐까 의심이 들 정도였다. 저런 말을 듣고도 이렇게 나오는 사람이 과연 몇명이나 될까? 심지어 나는 정말 나에게 마음이 있는건 아닐까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 내 답변 안 궁금해요?"

".. 네? "

".. 나한테 고백한거잖아..
  .. 방식이 아주 솔직한 편이었지만.."

한시도 여유를 잃지 않는 모습에, 나는 자꾸만 주눅이든다. 고백이라니. 왜 자꾸 그런말들과 비교하는지 모르겠다. 그저 상스러운 나의 욕망인데.

".. 죄송합니다.."

그는 너털하게 웃었다. 장난이라고. 농담이라고. 나는 아주 심각했으나, 그는 너무 가볍게 여기는것 같아 보였는데 그게 싫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렇게 넘어가준게 고맙기도 했다.

그러다 사람 좋아보이는 얼굴을 거두고는, 조금은 심심하게 담백하게 말을 이었다.

".. 곰곰히 생각해보니까..
  .. 그럴수도 있겠다 싶었어.."

나는 쥐죽은듯이 그의 말에 경청했다.

".. 나도 예전에 여자 만날때 그 생각 했지.
다만 동상처럼 입밖으로 꺼내지 않았을뿐이지.."

".. 우리 동생은 좀 직설적인 성격인가? "

그러고는 조금 웃었다. 농담이라는 말대신.

".. 나를 좋아해주고, 아니 사랑해주는건..
  .. 너무 고마운 일이다 싶었어.. 그런데.."

무슨 문장이 이어질지 뻔해서,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얼른 말을 자르려는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 .. 어... 일단... 나는 결혼도 했고..
   .. 자식도 있고...
  .. 한번도 남자를 좋아 해본적도...없고.."

"..거절인가요? "

나는 웃으면서 선수를 먼저 쳤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그의 천진난만함이 전염이되었는지도 모른다.

"... 그.. 런... 거..긴...한데..."

"... 당연하죠... 괜찮습니다..."

나는 베짱좋은 사람처럼 헤헤 웃어버렸다.

"... 괜.. 찮지?"

"... 그럼요!! "

당연한 일이었으므로, 나는 정말 아무렇지 않았다. 더이상 케케묵은 감정을 꺼내어서 이건 이래서 이렇고, 저건 저래서 저렇가고 일일히 다 나열하고 싶지도 않았다.

".. 그런데... 나도 그랬어..
  .. 우리 동상과 댓글로 주고 받을때..
  .. 어떤 사람일까.. 궁금하고 그랬다고..
  .. 그런데 옷까지 선물로 보내주고..
  .. 나도 만나보고 싶었어..
  .. 만나서 좋았고..
  .. 괜찮으면 계속 만나고 싶고.."

그의 말이 무척이나 고마웠다. 괴물로 봐도 할말이 없었는데. 행님들로 가득채운 지난시간들이 아깝지 않게 만들어 주다니.

따스한 바람이 내 안에 불었다. 이렇게 서로 응원 하면서 나누는 마음들 나는 상상조차 못해본 일이었다. 늘 남자만 보면 가지려 들었다. 짐승과 다를게 무엇이냐 말이다. 나도 남자를 볼때 좋은 마음만 간직할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냐 말이다. 

그런 마음들을 뒤로한채, 어떻게 가게를 나왔는지도 모르겠다. 밖은 아직도 내마음에 열기가 가시지 않는것처럼 조금 더웠다.

택시를 먼저 잡아 줘야겠다고. 그래서 빨리 보내야겠다고 몇걸음을 먼저 걷는데, 행님도 나를 뒤따른다.

우리 둘 속사정을 알리없는 차들은 슝슝 지나가고, 우린 조금 그렇게 애매하게 서있었다. 잡힐듯 안잡히는 택시. 그래 내 인생에서 어디 내 마음대로 잡힌 사람이 있던가.

"... 택시가 잘 안잡히네요..."

".. 왜 이렇게 어색해해?
  .. 우리 이제 친해진거 아니었나?
.. 온라인상으로는 그렇게 살갑게 굴더니?"

나는 대답대신, 헤벌쭉 웃어보였다.  그러자 그는 자신이 거절해서 그러냐고 농담조로 말했다.그때 나의 기분은 그냥 더이상 끌려 다니고 싶지 않았다. 설레는 마음도 좋고, 고마운 마음도 좋았지만 우리가 우정을 나누기에는, 분명 걸림돌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그래서 그렇게 마음을 정하고 나는 말했다.

"... 오늘 고생하셨습니다..."

나의 야무딱진 말투가 오늘 그를 만나고 처음 마음에 들었다. 예의 바르게 허리까지 접고 두손으로 악수까지 청했으니, 나름 괜찮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행님은 악수대신 나를 일으키고는, 알수없는 묘연한 얼굴로 나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그 눈속으로 빠질것만 같던 그때, 행님이 나를 껴안아주었다. 1초가 찰나같던 시간. 시간이 느리게 가는 마법이 내게도 벌어진것이다.

그리고 내 등을 토닥거리는 그의 손바닥의 온기는 모든걸 다 꿰뚫기 시작했다. 메말라서 갈라져있던 마음에 흥건하게 적셔졌다. 괜찮다고 고생했다고 그렇게 말해주는것 같았다.

몇번이나 토닥였는지 모르겠다. 그의 살냄새는 무언가 사람을 아리게 하는 재주가 있는지, 왠지 눈물이 날것만 같았다. 순간 그의 품에서 다 쏟아내고 싶은 충동도 들었다.

".. 왜..에... 안볼 사람처럼 굴어?"

그는 아무렇지 않은듯 나를 품에서 떼어내고는, 다시 나를 오묘하게 쳐다보았다. 그 섬세한 위로에 나는 몸들바를 모르겠는데, 그때 행님이 내 얼굴을 두손으로 어루만지더니, 솜털같은 입술로 내 입술위에 포개었다. 너무나 찰나여서, 그의 입술을 느낄새도 없었다. 미리 알려주었더라면, 그 느낌을 생생히 기억할수있게 준비라도 했을것인데. 아쉬운 마음이 가슴에 아로 새겨진다. 

"... 거절해서 미안... .. 이건 선물..
  .. 마음에 들어? "

나는 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선물이라니. 이건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포옹만으로도 이미 충분한데, 그 입맞춤은 또 무엇인가. 왜 자꾸 나를 흔드는것인가. 우리는 가야할 길이 다른데.

그때 택시가 잡혔다.

".. 먼저 가.. 얼른.. 또 전화 할게..."

정신이 하나도 없는 상태로, 택시문을 여는데, 그때 행님이 다시 입을 열었다.

".. 근데 내 몸 원하는거 아니였어? "

".. 네?"

".. 니가 정 원하면...
... 가만히 있어줄수도 있다고... 했잖아.."

".. 네?"

".. 어제 통화 했잖아..."

".. 너무 끈적했나? 헤헤 "

어떤 사람이길래. 내 더러운 마음을 이런식으로 받아준다는 말인가. 도대체 이 행님은 어떤 분인가. 어떻게 그런소리를 웃으면서 할수 있는가.

가슴이 자꾸 몽글거린다. 큰일이긴 큰일이다.
이러다 정말 맞바람을 필것만 같다.

.......


유튜버를 시작한지 자그만치 5년이 넘었다. 그낭 재미로 시작한게 그렇게 되었다. 책방은 그럭저럭 먹고 살기 빠듯했지만, 유튜버로 돈을 벌 생각은 없었다. 아니 그런 생각은 더욱 확고해져갔다. 늘지 않는 구독자. 절대로 채워지지 않는 4000시간.

친구들은 비웃었고, 가족들은 놀려댔다. 사람들이 보지도 않는걸 뭘 그렇게 붙잡고 있냐고. 그 놀림거리가 되어도 나는 살아 숨쉬는 기분이 들었다.

그럼에도 가끔씩 기운이 빠지긴 했다. 그들의 말이 맞는것 같기도 했다. 한명도 안들어오는 실시간 방송. 더군다나 50대에 들어서자, 모든게 무기력해졌다. 부부관계도 소홀해졌고, 자식들은 나를 멀리했다. 또한 책을 읽어서 지식은 어느정도 모았다고 생각했지만, 한편으로는 이게 한없이 부질없이 느껴지기도 했다.

부질없는거. 어차피 우린 한낱 작은 존재에 불과하지 않는가. 이 대활한 우주에 비하면. 나는 자주 허무주의에 빠졌었다.

그러다 만난 구독자가 준이였다. 힘내라 응원한다. 그의 댓글을 보고 있으니, 마음이 얼마나 따뜻해지던지. 얼마나 힘이 나던지. 모를것이다. 내가 준이에게 얼마나 큰 힘을 얻었는지. 덕분에 외로울 틈이 없이 하루하루가 즐거웠다. 재치넘치는 댓글들. 무수히 쏟아지던 위로들이 가슴에 차고 넘쳐 흘러서 범람했다. 자주 자주.

때로는 얼굴도 모르는 사람에게, 받는 위로가 지인과 친구들과 가족들보다 더 크게 다가올수 있다는걸 그때 알았다.

몸뚱아리 하나 내어주는게 무슨 큰일이라고 야단법석을 떠는지 모를일이다. 아니 큰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말도 일리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나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때문에 어떤 소설속의 남자는 저보다 훨씬 나이많은 여자를 위해서 떠나기전 그녀를 품어주었다. 그녀는 혼자서 오랫동안 끙끙 앓고 있었는데, 남자가 떠난다고 하니까 난리를 피우고 주사를 부렸는데, 그 모습을 보고는 방에 데려가서 뜨거운 밤을 선물했던 남자의 마음.

이제서야 그 소설속의 남자가 이해가 된다.

[ 잘 들어갔어? 오늘 고생했엉..
  담엔 더 맛있는거 사줄겡 ㅎㅎ
  우리 이러다 사귀는거 아니여? ㅋㅋ
  내 꿈 그만꾸고 ㅋㅋ 푹 자..
  행복하자 우리 !! ]

..............

  벌벌 떨리는 심정으로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가면서 행님의 문자를 받았을때는 좋으면서도 싫었다. 싫으면서도 좋았다. 행님이 전해준 위로는 너무나도 진하게 내 온몸에 내려 앉아서 떠나갈 생각이 없어보였다.



그런 생각을 잠재운건 전화 한통이었다.

".. 여보세요?"

".. 어.. 준아.. 내가.. 있잖아.. "

술에 취한듯한 목소리에 나는 적잔히 당황을 했다. 단 한번도 술에 취해서 전화를 건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 할말이 있는데..."

".. 그동안.. 못했다. 진즉에 했어야 했는데.."

".. 너무 늦은건 아닌지 모르겠다..."

".. 나.. 있잖아.. 사실..."

그 다음말이 튀어나오려고 할때...






관련자료

댓글 1

<span class="sv_wrap"> <a href="https://ivancity.com/bbs/profile.php?mb_id=jjd008008008" data-toggle="dropdown" title="헬정자헬린이 자기소개" target="_blank" rel="nofollow" onclick="return false;"> 헬정자헬린이</a> <ul class="sv dropdown-menu" role="menu"> <li님의 댓글

  • <spa…
  • 작성일
ㅠㅠ 절묘한데서 끊으셨네요ㅜㅜ 항상 잘 보고있습니다!
알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