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술 한잔-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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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타 슌페이님의 만화 [술 한잔]을 적당히 개조한 것입니다. 일본어를 읽을 수 없기 때문에 그림만 보고 대충...
왜 나카타 슌페이님 만화만 쓰냐면... 이 작가님은 설정과 전개는 정말 꼴리게 잡아놓고, 중요한 야스씬은 한장으로 떼워버리는 사악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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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의 상큼한 아침, 눈밑에 다크서클이 가득한 한 청년이 유리 문을 밀고 회사 로비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사내의 이름은 김정우로, 지난 한달 간 나주에 있는 협력회사에 파견을 갔다가 어제 서울에 돌아온 참이었다.
아무리 피곤해도 구김살 하나 없는 반듯한 양복과 스프레이를 뿌려 칼같이 빗어올린 머리칼에서 그의 성격이 엿보이는 듯했다.
'옘병. 피곤해 죽겠네. 오늘이 금요일이라 다행이지. 아예 연차를 써버릴 걸 그랬나.'
정우는 영 뻐근한 어깨를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지금 정우에게 가장 억울한 것은, 출장비 정산이 소금같이 짜고 철저하다는 것이 아니라, 늘 다니는 헬스장을 출장 때문에 한달이나 못 갔다는 것이었다.
'근손실 장난 아닐거 같은데. 어휴, 이따가 가면 바로 인바디부터 측정해봐야지.'
청년이 향하는 곳은 건물 3층의 '금성 기계공업사'였다.
꽤 오래된 회사였지만, 오너가 큰 욕심이 없어서인지, 회사의 규모는 그리 성장하지 않고 있는 애매한 중소기업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정우가 하품을 하며 회사 안으로 들어가자,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한 남자가 대번 그를 알아보고 손을 들어 인사를 해왔다.
"여어, 김주임! 벌써 출근하는 거야? 오늘은 오후에 출근해도 될텐데."
"네. 대리님. 오래간만입니다. 뭐, 밀린 일이 많을 거 같아서 확인해보려구요."
그제서야 정우를 알아본 사람들이 그에게 인사를 건네왔다. 제일 처음 그에게 인사를 건넨 윤대리는 그에게 손짓으로 담배와 흡연실을 가리켰다.
정우는 가방을 내려놓고 인트라넷에서 출근체크를 한 다음, 윤대리를 따라 흡연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후우, 하고 연기 한모금을 들이킨 윤대리, 윤창민은 정우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너스레를 떨었다.
"과장님이 별 말 없는거 보면, 일 쪽으로는 순조로웠던것 같고... 어땠어? 현지에서는 사람 좀 만나봤어?"
"에이, 무슨 소리십니까. 어플에 사람들이 없는건 아닌데, 좀 괜찮다 싶으면 광주로 올라가서 놀고 오더라구요. 그렇다고 제 숙소로 불러올 수도 없는 일이고..."
"뭐, 촌동네가 그렇지. 참, 우리 부서에 들어온 신입 얘기는 들었지?"
"아... 뭐랬더라.. 최유진...? 이었던가요. 이름만 들었을 때는 젊은 여자 느낌이었는데."
그 말에, 창민은 얼빠진 얼굴로 코와 입에서 연기를 내뿜으며 정우의 가슴팍을 손으로 두드렸다.
"파하핫! 크큭! 그래, 참 예쁜 이름이지. 근데, 뭐랄까... 유진초이라고 불러야되나."
"아, 외국인입니까?"
"아버지는 한국인인데, 어머니는 러시아계 이민자 후손인 미국인인가봐. 다행히, 한국어는 그럭저럭 잘하더라고. 면접 때 들어보니까, 아버지 나라에 관심이 많아서 한국에 여행도 몇번 왔었대. 그런데 말이지... 그 녀석 아이비리그 대학 공과대 출신이더라고. 성적도 꽤 좋아."
"네? 그런 사람이 왜 이역만리 떨어진 우리 회사에 지원했답니까? 졸업만 하면 서로 데려가려고 할텐데."
"나야 모르지... 아무튼 요번 신제품 때문에 외국에서도 바이어들이 관심이 있다니까, 그 친구 좀 잘 가르쳐놔. 우리 회사는 다들 영어공포증이잖아."
"어휴. 안그래도 그거 때문에 나주까지 갔다 왔는데 미국까지 보내시는건 아니겠죠? 그건 진짜 사양입니다."
"뭐, 미국가면 색다르게 하얀 맛도 볼 수 있고 검은 맛도 볼 수 있고 그러는거 아니겠어? 농담이고, 암튼... 아! 마침 저기 지나가네."
창민은 흡연실의 문을 열고 지나가던 청년을 소리쳐 불렀다.
청년이 흡연실 가까이 오자, 정우는 깜짝 놀랄 수 밖에 없었다.
그 놀랍도록 큰 키 때문에 하마터면 이마를 흡연실 문에 부딪힐 뻔한 청년은 신입 특유의 어벙한 표정을 지으며 안으로 들어왔다.
"네, 대리님. 무슨 일이시죠?"
"아, 유진씨, 인사해. 이 사람이 그동안 나주에 출장 갔었던 김주임이야."
"아..! 안녕하십니까! 처음 뵙겠습니다. 최유진이라고 합니다."
유진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그 긴 팔을 정우에게 내밀었다.
정우는 악수를 하면서, 그 손이 자신의 예상보다도 훨씬 큰 것에 또한번 놀랐다.
'뭔 손바닥이 솥뚜껑 만하지... 역시 아메리칸은 뭐든 크구만.'
"유진 씨, 그동안 사수가 선미 씨였지? 오늘... 아니 다음주부터는 여기 정우씨에게 일 배우도록 해. 모르는 거 있으면 적극적으로 물어보고."
"아니, 대리님! 저도 할 일 많은데..."
"어허, 우리 부서에서 신제품 쪽 제일 잘 아는건 김주임이잖아. 어차피 선미 씨가 기본적인 건 다 전수해줬으니까 그렇게 일거리가 늘어나진 않을거야. 유진 씨는 일머리도 있는거 같고..."
'네네... 해외 유명대학을 졸업한 수재님이란 말씀이시죠.'
정우는 얼굴을 찌푸리며, 유진을 노려보듯 올려다보았다. 하지만, 유진은 그런 정우의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전히 싱글싱글 웃으며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 얼빵한 미소... 어디선가 본거 같기도 한데...'
정우는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절대로 그럴리가 없다고 생각하며 이내 고개를 저었다.
마침, 담뱃불이 다 타버렸기에 정우가 흡연실 밖으로 나가려고 하자, 유진이 그의 손목을 덥썩 잡았다.
"그럼... 오늘 술 한 잔 사주시는 겁니까, 선배님?"
"뭐? 내가? 왜?"
"환영회에 없으셨잖습니까. 모처럼 같은 부서이고 이제 제 사수신데 이렇게 악수만 하고 끝내시면 좀 섭섭합니다?"
"그래. 그건 좀 그렇네. 마침 오늘 금요일이기도 하고."
"거참. 요즘 신세대들은 회식자리라고 하면 질색을 한다던데..."
"전 술 좋아합니다. 파티도 좋아하구요. 그리고 무엇보다..."
유진은 살짝 슬픈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돈이 좀 간당간당하거든요."
"아, 아직 월급 못받았구나."
"그런 셈이죠."
그 말에, 창민은 자신의 턱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더니 입을 열었다.
"뭐.. 그러면 이따가 나도 같이 가지. 이 녀석은 좀.. 재미가 없는 녀석이거든. 나라도 같이 가줘야지."
"뭐라구요?"
"뭐, 내 말이 틀려? 둘이 가서 술잔이 언제 비는지만 우두커니 보고 있을 게 훤히 그려진다 그려져. 자자, 그럼 그렇게 하는걸로 하고 이따 일 끝나고 보자고."
창민은 웃으며 두 사람의 등을 밀어 흡연실 밖으로 나왔다.
정우는 어처구니가 없어 유진쪽을 바라보았지만, 그는 정우를 보며 하얀 이를 드러내고 싱글벙글 웃을 뿐이었다.
유달리 반기고 좋아하는 그의 모습에 전혀 적응되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이것은 미국인들 특유의 붙임성일거라고 정우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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