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아버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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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너 정말 안올꺼야???"
몇번 째 계속되는 진수의 질문이였다.
"미안하다...집에 일이 있어서...나도 가고야 싶지..."
진수의 계속되는 전화에 짜증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그래도..오늘은 너랑 지수때문에 일부러 준비한 자린데..."
솔직히 이번 약속을 나는 완강하게 거절하고 있었다. 지수라는 아이가 아직은 부담 스러웠던 이유도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진수의 아버지였다. 아직 그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 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제나 마찬가지로 진수는 주말 약속을 밀고 나갔고 지금 이렇게 나에게 고집을 피우고 있는 것이였다.
"지수랑 너희 아버지헤게는 미안하다고 말씀 드려줘...나 이만 끊을께..."
"야...***!!!..임마!!!"
수화기 저 너머로 들려오는 진수의 목소리를 외면하면서 그렇게 전화를 끊어버렸다.
월요일 학교에서 다시 보게되면 단단히 골이 나있을 것이 눈에 훤했다.
진수의 얼굴을 봐서라도 참석하려고 했으나 언제나 마지막에 그러한 생각을 막는 것은 그날 밤 진수 아버지의 슬픈 목소리였다.
그를 다시 한번 보고 싶기도 했다. 그리고 지수라는 아이 역시 그랬다.
하지만 왠지 모를 불안감이 만남을 저지하고 있있다.
"왜...나가 보지??? 집에 아무 일도 없는데..."
옆에서 TV 시청 중이던 누나가 말했다.
"아냐...내가 피곤해서 그래..."
퉁명스레 대답하고는 내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방으로 들어오자 다리에 힘이 풀려왔다.
침대에 몸을 뉘었다. 졸음이 밀려왔다. 눈이 감겨왔다.
"***!!! 진수한테 전화 왔어...어떻게 해???"
방 건너에서 누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냥...집에 없다고 해...엄마 식당에 나갔다고 해줘!!!"
그렇게 외치고선 이내 잠이 들고 말았다...

그를 다시 만나게 된 건 의외로 빨리 찾아왔다.
진수 녀석은 그 날 이후 여전히 뾰루퉁해져 있었고 한동안 우리는 냉전 중이였다. 평소와 같았으면 진수와 같이 헬스장에 있을 시간이였지만 그 날은 진수와의 껄끄러운 일로 학교 담을 넘어 혼자 거리를 서성이고 있었다. 5월의 밤공기는 벌써부터 여름의 열대야를 예고 하고 있는 듯했다. 발걸음은 나도 모르게 아파트 단지 근처의 작은 공원으로 향해 있었다. 공원엔 산책을 나온 사람들로 활기를 띄고 있었다.
공원 한구석의 사람이 찾지 않는 벤치로 갔다.
사람들의 소음도 멀어여 갔다.
가방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하루에 한 두개피 정도 피우는 담배였다. 담배를 처음 피운 건 중학교 3학년 때였던 것 같다. 처음 담배를 피웠을 때 어린 시절 아버지가 피우시던 "장미"라는 담배를 찾았으나 이제는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이젠 사라져버린 "장미"처럼 아버지에 대한 기억 하나도 사라지는 듯 했다.
담배 한 개피를 입에 문 후 라이터를 찾았다. 가방안에 있어야 할 라이터가 보이지 않았다. 교복 이곳저곳을 찾아보았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라이터는 없었다. 그 때 눈앞이 환히 밝아져왔다.
라이터 불이였다.
"이거 찾는거지???" 귀에 익숙한 목소리였다. 이 목소리는...
고개를 들어 목소리의 주인을 올려다 보았다. 진수 아버지였다.
순간 본능적으로 담배를 숨겼다.
"괜찮아...우리 진수 녀석도 피우는 걸..."
그가 웃어 보였다.
"아니요...괜찮습니다..."
목소리가 작게 떨려왔다.
"불편하니??? 자리...피해줄까???"
그가 내 옆에 라이터를 내려 놓으면서 말했다.
"아닙니다..."
내 앞에서 떠나가려는 그를 잡으려는 마음에 다급하게 대답했다.
"그래...그럼 옆에 앉아도 되니???"
"그...그럼요..."
나는 황급히 가방을 내 무릎위로 올려 놓으면서 말했다.
"그럼, 앉는다."
그가 내 옆에 앉았다. 그는 얇은 소재의 네이비 양복을 입고 있었다.
양복에선 그의 땀냄새가 베겨 있었다. 하루 종일 이른 더위에 시달렸을 모습이 양복에서 느껴졌다.
"진수랑 같이 안 있었니???"
그 역시 이 사간엔 내가 언제나 진수와 함께 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듯했다.
"예...오늘은 그냥 혼자 있고 싶어서요..."
고개를 숙인 채 대답했다.
"지난 주말에 진수 녀석이 많이 속상해하더라..."
"예...그날은 집에 일이 있어서...못가서 죄송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내 거짓말을 이미 알고 있는 듯했다. 그래서인지 귓볼이 화끈 달아올랐다.
"나한텐 사과 같은 거 안해도 된다. 오히려 진수 녀석이 막무가내로 약속을 잡은 건 아닌가 해서 내가 오히려 미안해지던걸..."
그의 부드러운 말에 심장 마저 뛰기 시작했다.
"아...아닙니다...그건..."
말을 더듬고 말았다. 내 속마음이 들켜 버린 건 아닐까?
"그러면 됐고..."
그리고 우리는 한 동안 말이 없었다. 그가 양복 셔츠 포켓에서 담배를 꺼내 물으며 말했다.
"담배 한대 피울께..."
"예...그러세요..."
그의 얼굴을 힐끗 쳐다보았다. 라이터 불에 드러난 그의 얼굴은 그으 ㅣ목소리만큼 부드러워 보였다.
그가 담배 연기를 길게 내 뿜으며 말했다. 그를 바라보고 있는 내 시선을 의식한 듯 했다.
"왜???"
"네???"
내가 봐도 바보처럼 보일 정도로 당황해 버렸다. 그와 눈이 마주쳤기 때문이였다.
"아...아니요..그냥 담배 피우시는 모습이 멋져 보여서..."
정말 바보 같은 대답이였다. 쥐구멍이 어디 있는지 찾고 싶은 심정이였다.
"하하하...그래???"
여전히 그의 웃음은 시원했다.
"이거 괜히 쑥스러워지는데..."
그가 멋적은 듯 뒷머리를 긁으며 웃었다.
"..."
그리고 우리는 또 다시 침묵하고 말았다.
그 자리가 너무도 불편했다. 계속 함께 앉아 있고 싶었지만 한편 너무도 불편해서 벗어나고 싶었다.
"저...그만 집에 가보겠습니다..."
내가 가방을 추스리며 말했다.
"안녕히 계세요..."
그의 얼굴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벌떡 일어나 고개 숙여 인사를 했다.
"**야..."
뒤돌아서는 내 손을 잡으며 그가 내 이름을 불렀다.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 앉는 듯했다. 현기증까지 밀려오는 듯 했다.
가슴은 두근두근 방망이질을 계속했다.
차마 고개 돌려 그의 얼굴을 바라 볼 수 가 없었다.
"우리 진수...부탁한다...외로운 놈이야..."
하지만 내 눈엔 그가 더욱 외로워보였다.
그렇게 말하면서 그가 내 손을 쓰다듬었다. 따뜻한 체온이 느껴졌다.
"아..네..."
아랫도리에서는 알 수 없는 반응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러한 내 몸의 반응이 더욱 더 당혹스러웠다. 나는 엉덩이를 쭉 뺀 엉거주춤한 자세가 되고 말았다. 빨리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 뿐이였다.
"저...저...이만 가보겠습니다..."
목소리가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여전히 고개는 돌릴 수 없었다.
"그래..."
그가 손을 놓아 주었다. 해방감과 함께 왠지 모르게 아쉬웠다.
하지만 발을 뗄 수 가 없었다.
온 몸이 얼어 은 것만 같았다.
"죄...죄송합니다..."
내눈에선 눈물이...주책스러운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러자 이번엔 그가 당황하기 시작했다.
"왜...왜...그러니???"
난 흐느낌에 목이 메어와 말을 이을 수 가 없었다.
"내가 무슨 실수라도..???"
그의 목소리가 더욱 더 난처한 빛을 띄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숨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안되겠다...잠깐 여기 앉아서 마음 좀 진정시켜야지..."
그가 내 어깨를 잡고 나를 벤치에 앉혔다.
그리고 내 손을 잡아 주었다. 하지만 눈물을 주체 할 수는 없었다.
무언가 알수없는 그 무언가가 내 가슴안에서 소용돌이 치고 있었다.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의 한 쪽 팔이 내 어깨를 감싸주었다.
그의 가슴에서 진한 남자의 냄새가 전해졌다. 내 마음의 소용돌이는 더욱 더 요란하게 그리고 더 크게 나를 만신창이를 만드는 듯했다.
'여기서 더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 줄 순 없다...'
머릿 속엔 이 생각뿐이였다.
"죄송합니다!!!"
나는 그렇게 소리 지르고 난 후 그의 가슴을 밀고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났다. 그리고 달려갔다. 숨이 턱까지 찰 때까지...눈물이 바람에 씻기기까지...계속해서 달려갔다.
이미 주위엔 아무도 없었다. 오직 바람 속을 내달리는 내 모습만 있을뿐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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