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어도돼? prologue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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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석을 처음 본 곳은, 비가 심하게 오던 늦은 새벽의 한강대교였다. 정상인이라면 그 시간에, 그것도 비가 오는데, 그러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나도 무척이나 할일이 없었는지..... 사실 잠이 오지 않아 새벽드라이브를 하고 있었다. 비 오는 날의 새벽 드라이브였으니 나도 그다지 정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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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는 정말 좋은 사람 이예요....."
그녀는 생긋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녀가 말끝을 흐렸기에 그다지 좋은 말이 이어져 나오지 않을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하지만, 그 이상은 생각해본 적 없어요. 죄송해요. 선배"
그녀는 학교에서도 귀엽고, 사교성도 좋았기 때문에 모두에게 인기가 있는 그런 아이였다.
나는 모두가 좋은 말로서 남자답고 멋있다고들 하지만, 키가 좀 크고, 한 덩치라면 한 덩치하기 때문에, 요즘에 인기 있는 그런 귀여운 미남형의 스타일과는 전혀 대조적이었다. 처음 보는 사람들이 조금 무서워한다고나 할까? 그녀에게도 첫인상을 물었을 때도, 역시 "무서웠다"라는 소리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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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녀석을 스치고 지나갈 때는, 그저 주정뱅이일거라 생각했지만, 잠시 얼핏 스친 모습이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어제 밤 뉴스에 나왔던 '한강자살'에 대한 것 때문일까? 이런저런 생각으로 나는 한강대교를 몇 번이나 왕복하고 있었다. '제발 좀 가라'라든지 '진짜로 뛰어들면 어떻게 하지?', '그러면 그냥 모른 척 튀자' '말려야 하는 걸까?' 라는 등등.

"젠장, 우산도 없네. 웬 놈의 비가 이렇게 많이 와"

차에서 나올 거라 생각 안 했기 때문에, 우산도 갖고 오지 않았었다. 젊은 사람이었다. 아니 소년이라고 해야 하나? 녀석은 꿈쩍도 하지 않은 채. 한강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울고 있는 걸까? 빗물이 얼굴을 타고 흐르는 건지..... 여하튼 상황이 좋지 않은 것만은 분명했다.

"이봐요. 지금 여기서 뭐하는 거예요?"

녀석은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힘없이 픽~ 하고 쓰러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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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살 정도는 되어 보이는데, 아냐 더 어릴지도. 흠 정말 죽으려고 한 것일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간호사가 녀석이 깨어났다고 말해주었다.

"약간의 열이 남아있긴 하지만, 괜찮을 겁니다. 비를 너무 많이 맞았네요. 조금 쉬면 괜찮아 질 겁니다."
"....."

녀석은 멍하니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조금의 미동도 하지 않은 채로, 의사와 간호사가 나가서 단둘만 있게 되었는데도, 전혀 무엇에도 관심 없는 사람처럼 창 밖만 주시하고 있었다. 어색한 침묵이라고 해야 될까? 나 역시도 한참동안 아무런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괜찮습니까?"
"....."

왠지 귀찮은 일에 끼어 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내가 왜 여기 있는 걸까.....

"왜....."
"?"
"왜 온거야....."

왜 왔냐고? 죽게 내버려 두지.....란 말인가? 순간 녀석이 시선이 나를 보고 있음을 느꼈다.
녀석은 한참동안 날 원망하듯 쳐다보았다. 나는 차마 눈을 외면할 수가 없었다.

"나.....나는."

"이제, 데려가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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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하튼. 나는 결국 녀석에게 휩쓸려 버렸다. 녀석은 단 몇 마디 한 후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보호자가 되어버린 나는 결국 녀석의 자살 감시자가 되어 며칠동안 병실을 떠나지 못했다. 며칠 후, 병원 측에서는 몸에는 이상이 없으니, 우선 퇴원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고, 경찰에 신고하여 신원을 파악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결국 우선은 집으로 데려가는 수밖에 없었다.

마침 나는 3년 넘게 혼자 서울에서 자취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녀석을 데리고 가는 것이 큰 문제가 되진 않았다.

"자. 들어가자."

녀석은 신기하게도 내가 하는 말은 잘 들었다. 간호사나 의사가 하는 말은 전혀 듣지 않았지만, 내 말만은 잘 들었다. 마치 내가 주인인 애완동물처럼, 하지만 그 때 이후로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물어봐야 할 것이 많은데 말이다. 의사 말로는 충격에 의한 실어 증세이며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수도 있다고 했다.

"우선 불편하더라도 여기 있어야겠다. 내일은 경찰서에 가야 하나? 아 나 우선 가게 좀
다녀와야겠다. 먹을 것도 하나도 없네. 그러고 보니..."

며칠동안 집을 비워서 마땅히 먹을 수 있는 게 없었기 때문에, 나는 집 근처에 있는 슈퍼에
갔다. 보통 때 같으면, 마트에 갔겠지만, 녀석을 데리고 갈 수도 없었기 때문에, 대충 이것저것 간단하게 샀다.

"어?"

방에 들어서자마자 녀석은 갑자기 내 품으로 파고들었다. 순간 너무 놀랐기 때문에, 나는
들고 있던 것을 다 놓쳐 버렸다.

"가..... 가지마."

짧은 순간이었지만, 녀석이 나를 필요로 하고 있는 것이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나만을 따르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함께.....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문득 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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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역시 그랬군. 미안해 너한테 부담을 준거군"

처음 보았을 때부터, 그리고 그녀가 수줍게 웃을 때마다, 왠지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느꼈었다. 다른 사람과 어울리는 법을 잘 몰랐었던 나였기 때문에, 항상 편한 태도로 대해주는 그녀가 더 특별하게 느껴진 것일지도 모르겠다.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애타고, 가까기 가고 싶지만, 가까이 하기 어려웠던..... 결국 그녀는 나와 다르게 누구에게나 친절한 거였을 뿐 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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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걱정 하지 마. 네 곁에 있을 테니까."
"....."
"하지만 사온 게 다 엉망이 되어버렸네. 계란도 다 깨지고."

녀석은 내게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듯 꼭 안고서는 놓아주지를 않았다. 떼를 쓰는 아이처럼.....

"그렇지만 임마. 머슴아가 그렇게 남자한테 폭 안기는 게 아니라고 하하"

녀석은 생각보다 가냘프고 애처로워 보였다. 그녀도 이렇게 가냘픈 모습일까?
"좋아! 우선 내 요리 솜씨를 보여주지, 아마 너도 나처럼 살이 듬뿍 오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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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 여기 정말 맛있어요. 나중에 다른 애들이랑 또 와요? 네?"

처음 둘이서 갔었던 파스타 전문점. 그녀는 내게는 첫 데이트란 의미였다는 걸 알고 있을까? 인터넷을 뒤져서 찾아내고, 또 먼저 혼자서 맛을 보기도 하고, 제일 좋은 자리를 찾기 위해서 몇 번이나 갔었던 곳이었는데.....

"내가 그렇게 무서웠어?"
"아..... 그게 그러니까"
"괜찮아. 그런 소리 많이 들었으니까."
"하지만 선배도 웃으면 엄청 귀여운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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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이 잘 오지 않았다. 침대자리를 녀석에게 양보했기 때문도 아니고, 잠 못 이루게 더운 그런 날씨도 아니었다. 지금은 그냥 잠이 오지 않는 그런 밤일 뿐.

누군가 손을 잡는 것이 느껴졌다. 녀석이었다. 침대에 재웠는데? 녀석은 어느새 다가와서는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손을 뻗게 해 팔베개를 만들고는 그것을 베고서..... 어둠 탓이었을까, 아니면 기분 탓이었을까 나는 거부감 없이 녀석이 하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너도 잠이 오지 않는구나?"
"....."

녀석은 품으로 더 파고들었다. 그리 작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었는데, 마치 아기처럼 푹 안겨졌다. 녀석이 하는 대로 내버려 두는 것이 지금은 좋다고 생각했다. 거부감도 전혀 느껴지지 않았고, 지금 녀석은 기대 쉴 곳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에..... 그리고 지금 어쩌면, 녀석은 나를 전혀 다르게 느끼고 있는 것이 아닐까? 확실히 녀석이 나를 보는 눈빛은 전혀 다른 사람을 보는 듯한 눈이니까..... 넌 대체 누구인 것일까? 그리고 네가 필요로 하고 있는 사람은 누구?

녀석의 손길이 내 얼굴에 느껴졌다. 내 얼굴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그리운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고 있는 것일까? 조금 가슴이 쓰려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내가 지금 설레어 하고 있는 것도, 한번도 내 얼굴을 어루만진 사람은 없었으니까.

"울어도 돼"

잘 들리지 않았지만, 어렴풋이 녀석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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